미래의 속도 - 산업혁명보다 10배 더 빠르고, 300배 더 크고, 3,000배 더 강하다!
리처드 돕스.제임스 매니카.조나단 워첼 지음, 고영태 옮김, 맥킨지 한국사무소 감수 / 청림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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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우리가 착각하는 것과 달리, 속도는 수치적 측면 외에도 방향성까지 같이 강조되는 개념입니다. 절댓값만 문제되는 측정량을 스칼라, 방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걸 벡터라고 부르죠. 우리가 미래(가깝건 멀건)을 주시할 때, 얼마나 빠르게 다른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느냐만 염두에 두진 않습니다. 어디를 향해 가는 중인지를 더 심각하게 살피고 이동하는 행동 주체라야, 특히 이런 미래의 전망을 전략 대상으로 삼는 경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이, 문명이 시작된 이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괴적 격변의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레이 커즈와일이 그 도발적이고 발칙한 어투로 "당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은 홍수에 떠밀리는 무력한 부유물처럼, 덩치가 크든 작든 떠밀려갈 것이다."라고 단언한 후, 학자, 대중 저술가, 강사 등이 자신들의 책과 강연에서 입을 모아 외치는 기조이긴 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최상위 논점으로 잡은 토픽들이 미세하게나마 (다른 책들과) 차이 나는 포섭 범위를 가지며, 둘째 브렉시트 등 최근의 중요 사건, 모멘텀을 논의 중에 귀납하려 애썼으며(물론 이 책의 원서는 2015년 중에 발간되었으므로, 브렉시트 논의만큼은 이 한국어판[서문]에 한해 추가된 사항이겠습니다), 셋째 변화의 방향성을 뚜렷이 서술함과 동시에 그 파괴력의 파장까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강조했고, 넷째 이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다른 책에 비해 "산업간 연계가 보다 고도화한 현실"을 (대중서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부각하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네번째의 특징 덕분에, 독자들 중 거시경제학, 특히 산업연관론 백그라운드를 지닌 분들에게 이 책은 각별히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선지식 없이도 이 대목은 독자의 눈높이와 (지적) 수요에 맞게 그 대의가 이해될 것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No Ordinary Disruption입니다. 그 앞에는 "There is", 그 위에는 "any more"가 생략된 걸로 보아 "더 이상은, 예사로운 파괴는 없다." 정도로 여길 수도 있고, 아니면 뒤에 "~ should be expected." 정도가 생략되어 "무난한 파괴는 꿈도 꾸지 말라(당신이 안주하려 들 현실은 인정사정 없이 파괴될 것이다." 정도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그 뒤에 붙은 부제가 이 책의 주제지요. "(변화를 이끄는)네 가지의 힘 - 기존의 트렌드를 모두 파괴할". 20세기 들어 세계 경제는 여러 차례의 몰락과 위기를 거치며 이만큼이나 성장했고, 그 변화의 과도기에서 취약 계층은 물론 경영자와 정책 당국자들이 겪은 아픔과 좌절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반면, 이런 과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이에 대처하는 이들이 최소한으로 의지할 연속성이랄까, 지침, 혹은 토대 비슷한 것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건, 지금부터 우리가 맞게 될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서는 그런 것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무척 살벌한 경고입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의 제목은 "그래도 희망은 있다"입니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주된 논지와는 잘 안 어울리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저자들께서 주장하는 바는, 여태 철칙이라 여겼던 모든 규범이 무너지고 일말의 확실성도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그래도 절망할 일은 아니다"라는, 이성적이고 유연하게, 합리적으로 모든 도전과 위험에 대응하면, 기존의 번영 수준을 유지하거나, 혹은 여유 있는 생존의 레벨에 도달할 희망은 여전히 (그런 현명한 행동 주체에게)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난폭한 랜덤 워크에 맡겨져, 노력을 하건 말건 합리적 사태 파악이 가능하건 말건, 아무에게나 뜻밖의 행운이 떨어지는 (반대로 말하면 누구에게나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식으로 미래가 전개되지는 않으리라는 토닥임입니다. 특히 이런 언급을 한 걸 보면 저자들에게도 브렉시트 가결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봅니다(트럼프 당선까지 목도한 지금은 과연 어떨까요?).

속도는 방향성을 포함한 개념이므로, 속도의 실체를 알려면 무엇이 뒤에서 이를 추동하는지를 살피는 게 먼저입니다. 그 첫째는 도시화인데, 특히 저자들은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인도)의 도시들에서 어떤 거센 변화의 추세가 보이는지에 주목합니다. 이런 도시들은 자국의 낙후된 지역보다, 미국의 뉴욕 같은 가장 번화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개성을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이런 신흥 도심에서 시장 조사를 하는 기업들이, 그저 도시의 "국적"에만 현혹되어, 거주민들의 취향과 선호를 엉뚱하게 파악해서는 안 됨을 뼈아프게도 짚는군요(쉽게 말해, 호치민이나 리우의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같은 나라의 농촌이나 오지가 아닌, 차라리 도쿄나 파리의 결과를 참고하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여러 역량과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 "밀집하여 거주하기에", 개개인의 기량 그 단순합보다 더 큰 폭의 혁신과 더 빠른 속도의 변화가 목격됩니다. 이렇게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도시를 여럿 가진 나라가, 21세기의 변화와 대세를 선도하며 성장 자체도 가파르게 이룰 것임을 책은 분명히 짚습니다.

다음으로는 파괴적 혁신, 일찍이 없던 "파괴적인 양상으로, 기존의 성과가 거의 무의미할 만큼" 혁신을 이루는 배경에, 12가지의 주요 팩터가 자리함을 강조합니다. p69에 보기 좋게 도식화되어 있는데, 12가지(혹은 그 이상, 그 이하로 정리해도) 주요 요소는 다른 책에서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건 그 12가지를 무슨 상위 범주로 나누느냐 하는 그 기준이죠. 1) 사물의 구성 요소 변화, 2) 에너지에 대한 생각의 변화, 3) 인간을 위해 일하는 기계, 4) IT의 활용과 발전법, 이 네 가지 범주가 그것입니다.

저는 이런 상위 분류가, 다른 책에 비해 학문적 근거를 갖추었고, 인식의 과정에서 더 차분한 접근을 보이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3)을 보면 그 하위에 첨단 로봇,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 3D 프린팅 등을 배치하는데, 그 흔한 "인공지능"이란 단어가 이 페이지에 전혀 안 보입니다(물론 본문에선 등장합니다). 책의 저자들은 현재 마케팅 차원에서 지나치게 과장 홍보된 이 개념의 무차별 적용을 자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유능한 로봇(드론 포함)의 등장만으로도 인간의 삶은 충분히 개선되고, 동시에 많은 일자리들을 더 나은 능률 발휘로 대체할 것입니다. 1)에서 (요즘 대중서들에서는 간과되는 경향인) 신소재 개발을 뚜렷한 한 아젠다로 올려 놓은 것도 보다 현실적인 프레임으로 보입니다.

고령화 추세는 어찌 보면 저런 로봇화의 급속한 부각과 앞뒤가 맞물린 방향성입니다. 젊은 노동력 공급이 감소되고 육체 노동의 수요는 여전하니, 로봇이라도 나서 빈틈을 메워야죠. 반드시 원가 절감과 비능률 요소 제거만이 근본 추동력은 아닙니다. 이런 고령화에 대응하는 노력은 특히 이 문제를 일찍부터 겪어 온 일본에서 두드러집니다. "현실이 된 나비효과"는, 한 가지 변화가 파급되는 경로가 너무도 다양해져, 일견 동떨어져 보이던 산업 섹터에서 걷잡을 수 없이 얽히고설킨 파장이 이어짐을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그 정치적 함의와 무관하게, "세계화"의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변형적 등장 예를 여럿 지적합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도시화 역시, "세계는 통합되고 긴밀히 연결되어 간다"는 전제를 깔아야 의미 있어지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소비자가 세계 경제를 이끈다는 지적은 딱히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고요. 앞에서도 언급된 대로 신흥국, 신흥 도시의, 신흥 중산층이 선진국의 세련된 소비자들의 대세를 따라가되, 자신만의 분명한 요구와 개성도 내세움으로써 글로벌 기업의 전략 전술 설정에 큰 영향을 줄 것이며, 이런 미세한 차이를 예측, 적응하는 데 실패하면 어떤 기업도 생존 못 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책에서는 LG 냉장칸이 각국의 실정에 따라 어떻게 구조를 바꾸는지, 네슬레가 중국 시장에서 얼마나 더 달아지는지 등을 예증으로 내세웁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주장은 1) 철저히 현지화한 마케팅 기법을 발견하며, 2) 특히 인적 자원보다는 자본 분배를 유연하게 이뤄낼 것을 당부하는 대목입니다. 이 책에서는 LG의 사례가 성공적 대응의 예로 자주 거론되던데(저 앞에서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RFID 태그를 장착한 유플러스의 사례를 실음) 여기서도 현지화에 성공한 가전팀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p169의 "수요가 늘어나도 가격이 떨어지는 시대"는 최근 몇 년 간이 그러한 추세였으며 지금부터는 반대로 바뀐다는 지적이니 독자들이 읽으면서 오해가 없어야겠습니다. 원자재 가격은 (이 책 저술 시점 기준) 지속적으로 오르는 중이며, 그 추세에는 분명한 동력이 작용한다는 저자들의 지적은 팩트에 근거했을 뿐 아니라 담론적으로 타당합니다. 옥수수 생산이 (예전에는 전혀 예상이 안 되던 패턴으로) 에탄올의 공급 과정에 대거 영향을 끼친다는 실례는, 산업간 연관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고도화되는 무서운 저변의 현실을 입증합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 원유가가 이런 "원자재 가격의 추세적 상승"에 포함된다는 지적에는 반대합니다. 전통적 원유 생산 방식은 이미 추세적으로 경쟁력을 잃는 중이며, 파쇄법의 개발(앞으로도 그만한 혁신은 계속 나올 것입니다)로 인한 (셰일유 등) 새로운 생산 방식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짐도 자명하며, OPEC 내부의 역학 관계 등 정치적 요인이 이런 거대한 산업적 대세를 거역할 수 없음은 강조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죠.

경계선이 흐려지고, 전례 없는 파괴적 속도로 기존의 틀이 붕괴되는 지금, 미래에 어떻게 각 개인과 정부(정책 결정자)가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저자들은 다양한(그러나 친근한) "인문적 소양에 기반한 충고"들을 내놓습니다. 변하는 건 세상과 외재 변수이며, 변하지 않아야 할 건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의 지혜와 의지입니다. 인류는 여러 차례의 급격한 변화를 맞으면서도 생활 수준과 복리가 퇴보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총체적 향상과 (장기 관점에서) 더 고른 부의 확산을 이뤄 왔습니다(최근 몇 년 간 양극화가 진행된 건 사실이지만). 이런 급격한 파괴적 변화가 진행되며, 인류의 지혜가 바른 방향을 찾아 나간다면 오히려 이전의 적폐를청산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고르게 누리는 행복상이 미래를 수놓을 것입니다. 여태까지의 도전과 시련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기에, 지금까지 잘 적응해 온 지혜로운 인류의 미래엔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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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경쟁전략은 무엇인가? - 하버드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의 성공전략 지침서
조안 마그레타 지음, 김언수.김주권.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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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영사상가들의 업적과 이론은 학문적 영역에서만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비즈니스맨들에게 경영 지침을 제공해 줍니다. 흔히 경영인이라면 "탁월한 감"으로 기업을 이끌어간다고도 하지만, 또 그런 직감적 요소를 특정 국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막연한 감만으로 큰 조직체(작은 사업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를 경영할 수는 없습니다. 관리와 시장 개척에는 체계적인 준비와 실행 과정, 그리고 피드백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을 즉흥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룸살롱 사장도 낮에는 도서관에서 필요한 학문적 정보를 검토한다며 자랑하던데, 얼마나 그 정수를 새로 깨닫고 자기것으로 소화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론 없는 실천이 엄청난 맹목임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CEO 선까지 갈 것도 없이, 일반인이 자신의 인생을 "경영"할 때에도 어떤 비전과 철학에 기반해야만, 실패와 좌절을 가능한 한 적게 겪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마이클 포터의 정립된 이론 그 핵심 중, 경영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는 유익한 명제만 모아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제가 삼 주 전쯤 피터 코틀러의 이론 중 중요한 부분을 풀어 주거나, 동아시아의 현실에 맞게 잘 개량해서 학계와 일반에 제시한 어느 일본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필립 코틀러나 마이클 포터나 사실 일반 독자가 읽고 바로 무리 없이 소화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론에 정통한 다른 학자가 이 큰 간극을 요령 있게, 솜씨 좋게 메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 권으로 읽는 피터 드러커도 누구를 위해서건 필요하듯, 마이클 포터도 시간에 쫓기는 여러 수요층을 위해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지요. 요약본이 나와도 되도록이면 학문적 권위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분의 솜씨면 더 좋겠죠.

저자 조언 마그레타는 현재 하버드 경영대 소속의 Senior Associate이며, 역시 현직으로 HBR의 편집자 위치입니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서문에서 "왜 (이런 성격의 책에, 그리고 마이클 포터 같은 세계적 권위자의 업적을 요약하는 작업에) 내가 집필자로 나서야 하는가?"를 두어 단락 정도 분량으로 따로 설명합니다. 그녀는 HBR의 핵심 필진 중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한 명인 마이클 포터와 오랜 시간 동안 필자와 에디터 사이의 관계로 교감했으며, 본인 자신이 이 분야 이론에 정통한, 전미 범위에서 손에 꼽을 만큼 빼어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녀는 마이클 포터의 독보적 업적이 구축된 영역인 "경쟁"과 "전략"이라는 주제에 대해, 포터의 본령에 충실하면서도 실천적 의의가 훼손되지 않게, 최대한 쉽고 최대한 실제 적용에 도움이 되게끔, 평이한 언어와 풍부한 실례를 들어 서술합니다. 학문적 자격과 독자의 이해 편의,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을 만한 역량을 갖춘 저자가 확실히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론이건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잡지 않고서는 출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조언 마그레타, 그리고 마이클 포터는 이 점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며, "전략"에 대해 매우 간명한 정의를 내립니다. "전략은 곧 탁월한 성과를 내는 방법이다." 실제로 이 정의는 마그레타 편집장만의 의견이 아니라, 그 세련되고 주도면밀한 이론 전개가 정신의 특질을 이루는 포터 교수 본인이 직접 마련한 문장입니다. 다시 말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전략은 이미 전략도 아니라는 뜻이죠.

여기서 우리는 책의 편제를 다시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두 파트로 나뉘었는데, 1부의 주제가 "경쟁", 2부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위 문단에 소개한 "전략"의 정의는, 2부가 아닌 이 1부에 벌써부터 등장합니다. 왜일까요? 책의 목적도 실용에 있고 경영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현실에서 성과를 내기 위함인데, 책의 내용을 전개할 때 구태여 형식에 얽매일 건 없죠. 이처럼이나 실용적으로 "전략의 정의를 경쟁 논의에서 벌써 내세우는" 이유는, 경쟁에 대한 논의부터가 전략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략 없는 경쟁은 토대 없는 건축이며, 이런 이유에서 저자(들)은 전략이 무엇인지부터 독자에게 제시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명제가 또 하나 등장합니다. 경쟁은 반드시, 라이벌들을 제압하고 경쟁력을 상실시켜야 승자, 최고가 될 수 있는 걸까요? 마이클 포터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경쟁은 결국 성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지, 라이벌의 제압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가 대뜸 "성과"를 전면에 내세운 "전략의 실용적이고 간단한 정의"를 이처럼 책의 앞부분부터 가르치는 것도 다 이런 고려가 작용해서입니다.

자 그러면, 포터 교수와 마그레타 여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보다 현명한, 그리고 실용적인 경쟁"은 무엇으로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는 걸까요? 이건 문제 제기 단계에서 암시된 바와는 달리 그리 달달한 컬러는 아니고, 오히려 더 살벌한 제안입니다. 혹 실망할 분들이 있을까봐 미리 밝히는 건데요, 이분들이 제시하는 "성과를 내는 경쟁"은 결국 객관적, 절대적(다른 업체와 비교할 게 아닌)인 경쟁력 강화에 중점이 놓여 있네요. 고객, 소비자가 주도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백날 "경쟁"을 해 봐야 손해이며, 설령 시장에서 선두 주자라 한들 허울뿐인 점유율만 높을 뿐, 수익, 성과가 안 납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애플의 예를 들며, (전통적 경제학 용어를 빌리면)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 대체되기 어려운 상품, 서비스를 생산하라"고 합니다. 이 역시 제가 저 위에 잠시 언급한 어느 일본분의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상통합니다. 라이벌을 제압하기보다, 라이벌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만큼 경쟁력을 키우라는 뜻입니다.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탑 독이 되라는, 더 독한 충고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역시, 라이벌에 대한 (소모적 구태를 통하지 않은, 진정한 선제적, 본원적) 제압임도 우리는 다 눈치챌 수 있죠. "도전의 불씨"마저 근절해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지혜가 요구됩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조건 생산 단계에서 후려치기만 하면(내부 공정이건 외부 하청이건) 다 되는 걸까요? 이번 갤럭시노트 7 사태에서도 새삼 이 점이 주목 대상이 된 적 있죠. 마이클 포터는 이런 비용 절감 문제에 대해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고, 오히려 어떤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이, 최종 생산되는 상품에 어떤 가치를 추가하는지를 잘 살피라고 합니다. 책에 나오지는 않으나, 이 점은 경영학보다 순수(협의의) 회계학에서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이슈입니다. 특정 이벤트를 비용으로 계상(計上)할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자산(의 일부)에의 평가를 할 것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논의를 거치는 딜레마입니다. 물론 가치 평가를 허술히하면 기본적으로 보수성이 지배하는 회계 원칙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이클 포터는 좀스럽게 "절약"에만 매달리는 기업가가 혁신을 이뤄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합니다. 제4장이 제2부("전략" 논의의 본격 전개) 처음에 자리하면서 "가치는 모든 전략의 시발점"으로 부각되는 건 마그리타 여사의 탁월한 센스입니다.

연속성은 장기 전략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미덕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흔히 전략의 유연성을 강조하며, 최초의 프레임을 너무 고집하면 이미 전략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도 하죠. 저자는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디테일에 변화를 주되 그 뼈대마저 교체되는 전략은, 이 전략을 접하는 외부(고객 혹은 라이벌)에 혼란을 주며, 끝내는 전략의 설계와 집행의 주체인 조직에게마저 타격을 입힌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시어즈(미국의 유명한 백화점)의 예를 들며, 실제로 저는 삼전의 최근 15년을 보면 마케팅 부문에서 뭔가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특히 전략의 연속성은, 지금 그 조직이 무엇을 내세우고자 하는지, 그 "핵심 가치"의 설정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회사, 조직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유지되는 한, 가치의 전달 방법은 보다 유연한 모습을 띨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단기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대세를 그르치기가 참 쉽습니다. "방법 이슈"가 아니라 온존해야 할 핵심 가치의 침훼(侵毁)에 이르는 실패가, 어느 기업에서건 비일비재한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전략의 얼개를, 그리고 특징들을 제시하면 "아 이건 마케팅에 관한 논의구나"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이(특히 현장에서 치열하게 뛰면 뛸수록)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 포터 교수는 "전략은 마케팅보다 (개념상, 그리고 실제 적용상) 고차원의 개념"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차별점을 분명히 부각하기 위해, "전략"을 논의하는 파트에서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그렇게나 강조한 것입니다. 조직이 생산하고 창조하는 가치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기업의 생존 전략에서 중핵에 놓여야만 하며, 마케팅 섹터란 이에 비하면 그저 지엽말단의 비중이고, 위에 쓰인 용어를 다시 끌어들이자면 "전달 방법"의 variation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은 말미에 포터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특히 일반 독자에게 난해했던 개념과 이론 구조에 대해 본인의 명료한 육성으로, 다소나마 친절하게 "전달, 소통"이 이뤄져서 그를 존경해 온 독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됩니다. 권말부록으로는 용어 해설, 그리고 (에디터다운 꼼꼼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참고 문헌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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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항공 승무원 청소년을 위한 진짜 진학, 진로, 직업 멘토링 1
MODU 매거진 편집부.이정호 지음 / 가나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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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승무원이란 직종에 대해 그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많은 오해를 갖거나, 반대로 어떤 환상을 품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서 저도 비로소 안 사실이지만, 항공사 승무원 채용시 경쟁률은 거의 200대 1에 육박하기도 한다는군요. 그만큼 인기도 좋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지만, 이 직업에 어떤 자질과 능력, 준비가 필요한지는 여전히 인식이 미진한 편입니다.

이 책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에 근무하는 두 분의 중견 승무원을 모시고 인터뷰 형식으로 승무원 직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줍니다. 질문의 수가 많고 그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라서 이 분야 지망생들이 유익한 정보를 많이 얻어갈 것 같은데요. 인터뷰 대상이 된 두 분 승무원은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가장 모범이 될 만한 마음가짐, 외모, 자세, 능력을 갖춘 분들"로 보였습니다. 책에 실린 수십 컷의 사진을 통해 두 분의 얼굴을 보면 성실함, 근면함, 자상함, 그리고 자신의 직분과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물씬 풍기는 모습들입니다. 앞서 승무원 채용 경쟁률이 200대 1에 가깝다고 했지만, 이런 치열한 관문을 통과하고도 각각 십여 년, 이십 년 가까이 근속하는 분들이시니 그 내공과 자질에 대해선 짐작이 되고 남습니다.

항공사 승무원은 일반의 오해와는 달리 1) 육체적으로 만만치 않은 노동 강도를 요하고 2) 다양한 손님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가짐이 절실하며 3) 비상상황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의 특성상 순발력과 전문 지식이 습득되어야 하며 4) 일정 기간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자질이 평가되기에 전문직종으로 분류되는 직업입니다. 특히 2)와 관련, 많은 탑승객들이 4)에 대해 인식이 미진한 편이기에 이 직종의 고충을 배가하는 원인이 되죠. "사치"와도 거리가 먼 직업이라서, 특히 면세점 구매액 한도가 일반인보다 훨씬 못한 100달러라는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분 승무원은 각각 사무장, 부사무장의 직급인 고참들이시라서 승무원이란 직종의 특성, 자질, 고충, 보람, 현황, 전망에 대해 핵심을 꿰뚫는다 할 시원한 설명을 해 줍니다. 아무래도 탑승 손님들 중 일부가 무례하고 거친 매너로 항의, 불평, 시비 등을 해 댈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하시는군요. 점프 시트에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고 1) "일은 안 하고 가만 앉아만 있네?"라며 비꼬고 지나가는 이도 있고, 2) 승객 모두가 제 자리에 앉아야 이륙을 할 텐데 끝까지 비협조적으로 굴며 오히려 화를 내는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에나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사실 이런 특수한 유형은 우리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독 잦은 빈도로 노출되곤 하죠. 1)의 경우 자신이 월급 주는 입장도 아닌데 지적(같지도 않은 지적)을 할 이유가 없고(고용주라면 물론 업무의 성격을 알겠으므로 당연히 지적을 안 하죠), 남 일에 신경 안 쓰는 문화가 지배적인 곳이라면 나타날 수가 없는 행태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경력을 쌓은 분들이라 자신의 직역을 넘어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고백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륙 직전 쥬스를 서비스하는데 갑자기 기체가 움직이니 자세가 흔들려 쥬스를 쏟을 수밖에 없죠. 옷을 버린 손님은 불같이 화를 내고, 어떻게든 옷의 얼룩을 지워 드리겠다고 한 후 한참 뒤 세탁한 옷을 갖다 주자, 화를 낸 손님이 오히려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더라는 겁니다. 저는 이 경우 손님의 태도가 이해할 만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좀 기다렸다가 쥬스를 내와야죠!"라는 그의 지적은 상식으로 판단하건 법적 기준을 적용하건 타당한 항의입니다. 유능한 승무원이라면 당연히 고려에 넣어야 할 사항이었죠.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 수 있는 고성을 낸 건 그의 불찰이기도 합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절차를 밟아 해결될 수 있는 피해이니 말입니다. 이런 까닭에 자신의 잘못 역시 깔끔하게 인정한 건 역시 정중한 매너가 맞습니다. 이 손님의 태도와 케이스 해결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기에 해당 승무원께서도 이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특별히 언급한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할 대목은 채용 절차에서 어떤 점을 어필해야 합격할 수 있냐는 점이겠습니다. 무엇보다 면접에서, 이 응시자가 항공 승무원 업무에 적합한 인재라는 점을 그 짧은 시간 안에 심사위원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군요. 다른 회사, 다른 영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특히 이 직종의 경우 "일에 적합한 얼굴인지 아닌지 보기만 해도 감이 오며, 만약 채용될 경우 어떤 패턴으로 업무에 적응해 나갈지까지 훤히 그림이 그려진다"고 할 정도라는군요. 면접이란 그만큼이나 중요한 절차이며, 혹 떨어진 응시자 입장에선 추상적 기준이라며 억울해할 수도 있겠으나, 해당 직역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의 "감, 촉"이란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직관이란 때로 모든 물리적 기준, 객관적 수치를 능가하는 타당성을 지닙니다.

모든 항공 승무원 지망생들이 부러워할 만한 경력을 가꾸어 온 두 분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털어 놓습니다. 자기 직역에서 버젓한 커리어를 구축한 이들이 (성장기 중)언제부터 직업상을 그려 나가기 시작하고, 어떤 배경을 가진 이들이 지원하게 되는지 매우 시사하는 바가 많은 대목이었습니다. 한 분은 김포공항 근처에서 자라났다고도 하시고, 아버님이 교사이셔서 책임감과 성실을 중요한 덕목으로 훈육받았다고도 하십니다. 두 가지 다, 특정 개인의 상황으로만 넘길 수 없는, 성공한 승무원의 전형적 성장 배경 요소로서 곱씹을 만한 대목이었습니다.

승무원으로 이분들처럼 성공적인 경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성격이 활달하고 밝아야 합니다. 사교적인 품성으로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어려운 일에 닥쳐서도 감정적으로 거뜬히 소화해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분들 역시 어려서는 부끄러움을 잘 타고, 아무래도 여성이시니만치 남 앞에 나서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생 시절 여러 "알바직"을 거친 게 이런 사회성 함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도 하는데요. 한 분은 통신사 프론트에서 방문 고객을 맞는 업무를 맡았는데, 이 체험이 이후 모르는 이들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 등을 씻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시네요. 지원자들이 깊이 염두에 두고 곱씹을 부분입니다.

외국어 능력도 필요합니다. 승무원직은 아무래도 고객과 소통하는 일이고, 그 소통이 깊이 있을수록 유능한 평가를 받게 마련입니다. 만국 공용어인 영어 등에 능통하지 않고선 소통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두 분은 모두 아시아나 소속이지만, 한국인들이 외국의 타 항공사에 지원하기도 하고(이 경우 한국쪽 노선에 배치), 반대로 일본인, 동남아인 들이 한국의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합니다. 일어, 중국어를 잘하는 것도 유리한 조건이며, 실제로 토익 점수가 높거나 해당 외국어 구사 실력을 증명할 시험 점수를 갖추는 게 채용시에 호의적으로 평가됩니다.

승무원 업무 이해에 큰 도움이 될 여러 사진이 실린 게 장점이겠고요. 영화잡지 씨네21에서 이름을 자주 접하던 최성열 기자의 "작품"이어서 "과연!" 싶기도 했습니다. 두 분 승무원을 담은 여러 사진들은 그저 개인의 용모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업무와의 연계에 포커스를 둔 "자료"에 가까운 성격이라서 특히 유익했습니다. 다만 인터뷰이 두 분 모두 여성이시고, 이미 남성 승무원들이 많이 활약하는 현실을 반영해서 그쪽으로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소개했으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제가 남자가 아니라서..."라는 솔직한 답변에서 친근감과 매력도 느껴졌지만, 남성인 대학생, 대졸자, 혹은 10대 청소년들도 이 책에 관심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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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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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킬러 넥스트 도어", 즉 "이웃에 사는 살인자"에 대해선, 사실 이 소설 속에서, 최소한 양적으로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보통 이런 소재를 선택한 장르 소설에선, 이유 없이 희생자들이 죽어나가고, 독자와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에게 아직은 그 정체가 숨겨진 "킬러"가 조용히 자신의 독백과 동선을 이어 가고, 그를 쫓는 경찰이나 탐정이 별개 공간에서 자신만의 탐색을 벌이고, 새로이 희생자가 될 누군가가 등장해서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 제시되고, 이런 여러 시퀀스가 교차되어 독자의 마음을 졸이는 게 공식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러 인물들, 같은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각 세대의, 그 처지도 다양한 인물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시퀀스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킬러와 그의 희생자들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킬러는 물론 여러 "껀"을 해 내고 전리품들을 자신의 집에 잘 간직해 둡니다. 그가 전리품을 간수하는 방식이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여튼 소설 막판에 다다를 때까지 킬러의 동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없습니다. 이 점이 특이하더군요.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은, 살인 사건이나 범죄와 얼핏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아주 평범하고 때로 선량한 데다(선량하지 못할 때가 제법 많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치이고 상처 받고, 당장 내일의 삶도 장담 못하는 절박한 처지에까지 몰립니다. 킬러보다는 이런 평범한 주변 인물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이런저런 곤란을 당하고, 한 건물에 산다는 점 외에도 여러 국면에서 삶의 색깔이 비슷한 처지끼리 모여 하소연도 하고 도움(자질구레한)도 받고 상처를 달래는 모습이 부각됩니다. 이런 일상적인(?) 구질구질함 속에, 조용한 킬러가 조용하게 자기만의 열띤 작품을 완성하는 장면이 스리슬쩍 삽입되는데, 대부분의 독자는 이런 끔찍한 범죄자에 시선을 주기보다(작가가 혹 잊을까봐 독자에게 자주 찔러 주는데도) 이들의 수다와 좌절, 좌충우돌 소동에 더 몰입하게 됩니다.

이 건물에 거주하는 이들, 셰릴, 콜레뜨, 할머니, 망명자 호세인만 놓고 보면 3/4가 여성인데다(ㅎㅎ), 잘생긴 남성이긴 하지만 망명자라는 사실부터가 약자임을 드러내는, 뭔가 사회적 취약 구조가 어떤 식으로든 작용해서 그 열악한 위치를 마련한, 일종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러니 작가는, 킬러가 소녀들을 죽이고 끔찍한 콜렉션을 만들듯, 영국이라는 웃기는 나라(작중에 실제로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가 마치 저 음산한 킬러처럼, 이들 불쌍하고 비참한 이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암시를 하는 셈입니다. 작가의 정치 성향이 대단히 리버럴, 진보 쪽임을 눈치챌 수 있죠.

킬러는 드러나지 않게(정말, 내내 존재감 없다가 마지막에 확 부각될 뿐입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범죄를 저지르는 바는 없으나 추한 모습 못된 마음을 만방에 전시하며 "못난 사회 구조"의 얼굴 노릇을 하는 로이 프리스는 킬러의 범죄 온상, 그리고 저 약한 여성들의 난관에 대해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입니다. 독자는 킬러보다 이 120kg에 육박하는 탐욕스런, 버릇 없는 중년 남성에 대해 더 적의와 경멸을 보낼 만한데요. 이건 다분히 작가의 의도입니다. 드러난 나쁜 짓은 로이 프리스, 안 드러난 진짜 나쁜 짓은 "그 킬러".. 여기에,  작품 중간쯤에 역시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중년 사내가 셰릴의 성을 사려다 지갑을 뺏기고 나중에 셰릴을 폭행하는 에피소드가 끼어드는데, 이 역시 사회의 무능하고 추악한 면을 중년 남성이란 배역을 빌려 표현하려는 작가(여성입니다)의 계산이죠.

영화로 잘 만들기만 하면 꽤나 신선한 충격을 줄 드라마가 될 것도 같습니다. 스티븐 킹이 "지옥과도 같은 무서움, 최고의 캐릭터"라고 평했다는데, 한 챕터에서 어느 캐릭터의 1인칭 시점으로 그의 생각을 독자 앞에 다 드러내고, 다음 챕터에서 철저히 객관화한 그 캐릭터의 행동 결과(대부분은 비참하게 실패한)를 충격적으로 제시하는 기법 등은 스티븐 킹이 애용하는 테크닉이기도 합니다. 저 말 중에 "지옥처럼 무섭다"는 건 좀 생각할 부분이 있는데요. 셰릴이나 콜레트가 이 소설 속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은, 현재 온갖 사회 문제와 경제난에 신음하는 런던 안에서 상당수 시민들이 실제로, 실제로 치러 내고 있는 삶의 모습이며, 이것 때문에 지난해에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잘생긴 호세인을 두고 "목구멍에서 h발음을 하는 동양 남자"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물론 유럽인과 거의 차이 없는 음가의 h발음을 합니다. 이란과 아랍에선 가래침을 뱉어내듯 조음하는 [kh] 음소가 따로 있는데 이걸 지적한 거고요. "푸주한의 딸(캐릭터 본인의 표현)" 베스타 할머니가 돼지 로이 프리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이 자가 왜 비뚤어진 인성을 갖게 되었는지 배경이 나옵니다만 제 생각엔 느닷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설명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의 모순상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영국에서 진보 좌파 진영에 표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스릴러 장르 특유의 박력이나 짜릿한 재미보다 더 마음 속에 상기시켜 주는 좀 특이한 독서였다고 개인적으론 평가하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장이 따로 마련되었는데 바로 뒤에 다시 "그 후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도 작가의 의도에 대해 곱씹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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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신은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가 악하는게 만드는가
아라 노렌자얀 지음, 홍지수 옮김, 오강남 해제 / 김영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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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 얼핏 보면 "신의 존재 여부"를 과감히 논하거나, 21세기에 접어들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유신론 vs 무신론"의 현황을 소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 보면, 그런 추상적이고 어차피 똑떨어진 답이 나오기도 힘든 물음에 시지프스의 도로(徒勞)처럼 무익한 수고를 벌이는 게 아니더군요. 오히려, 아주 실증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로, 때로는 특징적 혹은 무작위로 뽑힌 집단을 두고 벌인 실험을 통해, 중립적이고 과학적 접근으로 "왜 신은 우리 인간의 관념 속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나"를 해명하는 내용입니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않고는 차라리 부차적인 이슈입니다.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면(아주 어리석다든지 하는 이유로), 그 신은 속타서 죽을(?) 지경이겠지만 여튼 인간의 시선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인간은 이런 번거롭고도 부자연스러운 개념을 만들어 내어 자신도 괴롭히고 안 믿겠다는 다른 동족까지 괴롭혔는지, 그 해답이 그런 이유에서라도 필요는 합니다.

일일이 인간사에 끼어들어 악당을 처단하고 불쌍한 이들을 구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적극성을 보이지도 않는, 냉정하고 초연하며 공감도 안 하면서 전지전능하기만 한 신, 따라서 그 가시적 흔적을 확인도 할 수 없는 저런 신을 왜 인간은 숭배하는지, 지극히 이기적이고 생존 본능에 충실하게 진화해 온 인간치고는 썩이나 안 어울리는 이런 선택("관념론적 신앙")을 왜 거창하게 해 온 건지, 이 책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하나하나 짚어 나갑니다. 그렇다고 이 책은, 그저 과정의 기술에 그친다거나, 최종적인 해답은 독자가 스스로 내 보라며 무책임하게 발을 빼지도 않습니다. 그 나름 대담한 결론까지 낸다는 점에서 독자는 더욱 혹해서 읽어 갑니다. 그리고 제법 알찬 생각거리까지 건지거나, 더 나아가 저자들의 결론에 동조할 수도 있습니다. 논쟁적인 주제를 담았으면서도 흥미롭고, 논의의 과정이 공정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하기란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첫째 명제는 유신론/무신론 여부에 관계 없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종교, 특히 신의 존재를 가정하고 윤리적 의무를 부과하는 믿음 체계는, 일일이 마을의 원로나 실력자가 개개인의 뒤를 쫓아 다니며 도덕을 준수할 수고를 덜어 줍니다. 사회가 청동기 시대를 거치며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1차 집단의 윤리가 다양한 개성과 선택을 규율할 수 없음이 분명해지지만, 일탈 분자의 질서 파괴 행위를 작건 크건 용인하면 공동체 전체의 존속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합니다. 종교, 특히 신의 존재를 가정(이 아니라 확신)시키고, 설령 현장에 감시하는 (사람의)눈길이 없다 해도 저 위에서 전지전능한 이가 지켜 보고 있다고 환기시키면, 그저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보다야 훨씬 효과가 강력하다는 겁니다. 요즘 같이 개명한 세상에서는 우스운 아이디어처럼 보여도, 역사 시대 초기 전체가 공존할 지혜가 필요한 단계에선 이게 꽤나 효율적인 발상이었고, 실제로 효과를 크게 보았을 터입니다. 우리 종이 지금 이 정도로나 생존을 이어 왔고 현재와 같은 번영을 누리는 것도 저런 어설픈 믿음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소수의 범죄자(어리석기까지 한)가 공동체 전체를 망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 아닐까요?

종교의 효과가 개인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건 쉽게 말해 이런 뜻입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개인이 종교적(이라기보다 사회적) 의무를 잘 지킨다기보다, 그저그런 껄렁한 신자가 어떤 특별한 분위기가조성되었을 때 이런 의무를 더 확실히 지킨다는 겁니다. 즉 종교는 개인의 생각이나 마음을 일일이 고쳐 먹게 한다기보다, 불특정 다수가 평균적으로 나쁜 마음을 덜 먹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거죠. 이때 저자가 강조하는 건, 이런 기능은 종교적인 기능이라기보다 차라리 친사회적인 기능이라는 겁니다. 종교는 이 경우 다분히 실용적인 효용을 창출하며, 여기서 강조하는 도덕은, 결국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돕는 공리적 메커니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누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시스템 한 구석에 고장이 났을 때 보수 없이도 자발적 봉사에 나서는 건 그게 동기가 종교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으며, 결국은 개인의 행동으로 사회가 건전한 질서로 복귀한다는 그 실용적 결과가 중요하다는 뜻이죠.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성원들의 바른 행동으로 사회의 질서가 잡히는 그 결과에 주목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가 내내 구사하는 "친사회적"이란 용어는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닙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보면 "천하고 가난하며 사악한 종자들에게 죽어서 지옥 간다는 협박도 못 하면 어떻게 교회가 유지되겠소?"라는 어느 성직자(...)의 말이 나옵니다. 여튼 이런 사후 세계에의 엄혹한, 혹은 한없이 희망적인 기제가 개념상으로 구축되면, 사람들의 행동은 아무 현세적 보상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친사회적(결과적으로는)"으로 재편됩니다. 처벌은 꼭 현세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며, 존재의 필멸성, 유한성이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머리 속에 인식된 이들에게 "지옥의 위력"은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혹은, 현세의 처지에 큰 만족을 못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신(사실은 이를 빙자한 권력자의 야욕)의 미션을 수행하면 지복(至福)의 쾌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미끼로 테러리스트의 길을 부추기는 집단(IS 등)도 있습니다. 샤리프와 렘툴라의 실험 보고서가 이를 직접 표명하지는 않아도, 어쩌면 이 역시 "친사회성 증대"의 범주로 판단하면 (테러리스트= 반인륜 이란 이유에서) 다시 타당성이 확인되는 셈입니다.

무신론자는 어떤 경우에도(흑인이나 [미국에서는 소수파인] 가톨릭이나, 여성이나, 심지어는 모르몬, 동성애자보다 더) 나쁜 취급, 불신을 받는 게 흥미롭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어떤 기독교도는 "설사 내가 다니는 교회도 아니고, 다른 교파로 적대한다 해도, 그가 아무 것도 안 믿는 사람보다야 더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같은 말을 합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이는 종교 관념이 희박한 동양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 주장 같습니다. 한국이라면 오히려 무교라고 밝히는 이들이 더 합리적이라는 인상도 주고, 기독교라 해도 자파에서 이단이라 점찍은 이들에게는 무교인(잠재적 고객)보다 더 가혹한 대접을 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 책에서 드는 예 중 가장 재미있는 게 "코코넛을 운반하는 운전수들"입니다. 힌두의 신전까지 코코넛을 그 원산지로부터 옮겨 가야 하는데, 중간에 가로채거나 의무를 태만히하는 이도 없이, 일단 앞 "주자"로부터 바톤을 넘겨 받은 모든 운전수들이 착실히 이를 (아무 대가 없이) 운반핝다는 겁니다. 인도 사회가 정직하고 이들이 교육을 충분히 받아 명예를 지키는 까닭일까요? 전혀 아니겠죠. 그 비결은 오로지 "마 타리니 신이 무슨 응보를 내릴지 몰라서" 같은 아주 원초적인 두려움입니다. 이처럼 종교적 신념은 경제 질서를 원활히 작동시키는 핵심 팩터이기도 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예전에 사회를 선진 질서와 그렇지 못한 혼란으로 양분하는 원인으로 "트러스트"를 꼽은 적이 있죠. 이런 "신뢰"가 종교적(거의 미신적) 믿음에 기초하지 않고도, 이성적인 형량 과정을 거쳐 자발적으로 이뤄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사회 질서의 고도화 단게에 차별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열등한 개인들의 예를 들며 "이런 문제도 하나 해결 못하는데 A의 효용이 대체 무엇이냐?"며 유치하고 미숙한 불평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자신의 예를 들며, 나 자신이 효과를 못 봤으니 아무 필요 없는 것이라며 일반화의 폭주 그 끝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책에 실린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하여, "종교가 있어도 이 모양인데 종교가 없으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관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신이 창조하여 완전무결한 인간이 오늘날 이지경으로 타락했다고 생각하기보단,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이 정도까지 발전한 게 어디냐며 대견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훨씬 건전하다"고 말했습니다. 신이 있고 없고, 어느 종교가 그르고 옳고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든 뭐든 어떤 제도와 신념의 도움을 빌려 인간이 얼마나 나은 삶(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을 살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그 공리적 결과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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