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용도 (양장)
니콜라 부비에 지음,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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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가 속한 곳(where he/she belongs)에서만 최우선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그가 성장하며 사귄 친구, 그의 평판을 보증해 줄 지인들, 그가 이뤄 온 업적들(크든 작든),... 그의 존재는 그의 본향에서야 제 색깔을 지니고, 그의 말은 그의 동아리 안에서 제 의미를 드러내죠. 이런 익숙한 환경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보다 편안히, 그리고 유창하게(fluently) 규정하지만(define), 정작 당사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 빠져 나오려 가끔 몸부림치는 다른 감정의 덩어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고, 때로는 불안 속에 스스로를 묻습니다. 이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게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 속에서 발견하는 게 참다운, 그간 억눌려 왔던 자아일 수도 있고, 과거 어느 순간 극복되었던 퇴행의 흔적일 수도 있습니다. 수치로야 한 길도 안 되는 연약한 인간, 그 육신과 동반하는 마음의 복잡한 구조와 규모란 우주의 그것과도 맞먹고, 이 때문에 이를 다스리는(다스리려 하는) 주인의 심사란, 반란이 심한 속주를 다스리는 총독의 고뇌로 가득합니다. 정말 피치자를 제압하려 드는 관리이건, 부모의 마음으로 상처를 돌보려는 구호자이건, 제 목적을 달성하려면 현지를 방문 그 정확한 실상을 살펴야 합니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타지에 임할 때 바로 드러나는 타자 같은 자아와의 맞대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과감히 자신들에 부여한(니콜라 부비에 본인의 말. 책에서 인용합니다), 두 젊은이들의 여행록입니다. 지금은 벌써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 그들에게 독자로서, 소박하게, 하나 부러웠던 건, (이런 놀라운 책, 혹은 당대 평자들의 표현처럼 "경이의 책", "지혜의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차치하고라도) 제네바에서 카불까지 피아트를 몰고 기나긴 횡단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룰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이었는데요. 냉전이 한창이었을 당시에 오히려 가능했던 여행 방식이고, 지금은 이 코스 곳곳에서 정정이 불안한 나라들의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말썽, 나아가 참극들이 거의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장도(長途)의 여정이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할 형편이라서죠. 만약 이런 계획을 누가 세우고 실천했다간, 부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뜻에서 당사자의 "육신"이 파괴되기 십상입니다. 껍질을 깨고 더 성숙한 영혼으로 거듭남이야 바람직하겠지만...

아마 당시 티토가 다스리고, 인종청소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지옥도를 지상에 펼쳐 보이기 훨씬 이전이었겠지만, 유고슬라비아(지금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등 여러 후신들로 쪼개진)를 통과하며 이처럼 낙천적이고 활발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들. 물론 본인들의 표현대로, 이미 경화되고 박제화하여 마음이 그 안에서 질식할 듯한 껍질을 깨는 중이라 준(準)전시상황의 내면이긴 했겠지만 말이죠. "헝가리 국경에서 마케도니아까지" 모든(全) 전(前) 유고인들이 한데 모여 다시 "콜로"를 출 수 있고, "빵가루를 입힌 갈비, 백포도주, 고기 만두"를 먹을 그 날은 언제 다시 올까요. 헤세를 직접 접대하기도 했던 부비에 씨의 모친의 (그 악명 높은) 요리솜씨가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여튼 자리는 흥겹고 신나며, 뭔가 근원의 안식과 여흥이 자리할 듯합니다.

이 책에도 잘 나오듯 앙카라는 아나톨리아 한복판에 위치한, 신생 공화국(신생이라니! 그러나 이 말이 차라리 과분할 만큼 어려웠을 시절)의 수도로 새로 데뷔한, 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목가적이라는 말의 뜻이 뭔지 새로 가르쳐 줄 만한" 풍경을 그 옆에 낀, "아르카디아를 연상케도 하는" 고장이었습니다(지금이야 뭐..). 히타이트 유적이 지근거리에서 화제에 오를 만큼, 메소포타미아 제국(諸國)이나 비잔티움 황조가 오랜 동안 국고의 텃밭, 국세의 기반으로 삼은 땅임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죠. 숭그를루를 지나치기 전 왜 바빌로니아(현 이라크 남부)가 화제에 오를까 궁금하다면, 본디 이 땅들(터키니 이라크니 하는)이 서로 그만큼이나 잇닿은 역사를 지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한 대접과 정직함, 친절함 등은 언제나 터키인들이 잃지 않는 좋은 매너라오." 흠, 그래서, 호의를 악의로 보답한, 이때로부터 이십 년 후의 앨런 파커 감독 같은 사람은 좀 크게 반성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제르바이잔 타브리즈"라는 표현을 들으니 위화감이 확 느껴집니다. 물론 이곳은 지금도 (높은 자치권이 보장되며, 소수 인종으로서 여전히 큰 발언권이 보장되는) 동 아제르바이잔 주에 속해 있지만, 지난 역사의 대부분은 페르시아 제국의 여러 수도 중 하나로 기능해 왔죠. 테헤란보다 더 유서깊을 이곳은 그만큼이나 "페르시아적 정체성"도 공유한 곳이니. 저자 두 분은 이곳, 아르메니스탄(이렇게 부르니 정말 낯서네요), 신생 쿠르디스탄(당시 기준. 책에도 나오지만 잠시 부각되었다가 팔레비 왕조에 의해 소멸)을 쌍둥이 같은 처지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둘은 처한 상황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도 다릅니다. 책에도 나오듯 마치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니콜라 부비에는 이란(그때도 이름은 이란이었습니다)에서 돈이 떨어지자 베르네와 함께 "알바"를 시작하는데, 현지의 약사 세파보드히가 문법적으로 틀린 프랑스어를 말하자 고쳐 주는 대목이 재미있네요. "à dans le 라고 하지 마세요. 도시인 타브리즈 앞에는 그냥 à만 쓰는 거에요. 국가 앞에는 en를 쓰고 말이죠." 그나저나, 왜 그는 이곳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했을까요? 프랑스도 당시라면 형편이 팍팍하긴 거의 마찬가지였을 텐데(미처 몰랐던 듯).

이들은 이곳 북서부 이란(현대 기준)에 꽤 오래 머무릅니다. 마하바드 교도소에 머문 건 무슨 터키의 빌리, 지미, 맥스처럼 누명을 쓰고 "수감"이 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잠재적 말썽거리를 통제하려 든 교도소장의 "사실상 연금" 시도지요. 교도소를 찾아와 "계약 이행의 문제(헉)"를 놓고 불평을 토로하는, 엄청나게 수다스러운 창녀에게서 이 청년들은 "생의 활기와 맹목적 도약"을 감지하고,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실행에 옮기지는 않음). 그녀를 다루는 소장의 태도를 보면 이 시절 이란의 행정이 더 문명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지금 같으면 어딜 감히! 기둥에 묶여서 채찍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죠.

이스파한, 테헤란 등은 모두 지난 시절 제국의 수도들이었습니다(하계, 동계에 따라 수도 여럿을 둠). 이곳에서 여러 지인들(이미 그전부터 연락을 하던 이들인 것 같네요)과 교감한 후, 두 청년은 광야나 험준한 산지로 드디어 문명을 떠나 발길을 돌립니다. 이란 중동부에 보면 사람이 거의 안 사는, 산악과 사막이 죽 펼쳐진 광활한 지대가 있는데, 거기 한복판이 야즈드 사막입니다. 시라즈를 지나 이란 동단의 케르만 주에 도착하고, 이때에도 여전히 차도르를 쓴(세속주의 통치자였던 수상 모사데크 치하였지만) 여인들이 구수한 죽을 끓여 객들을 대접합니다. "묘석보다 더 큰(이런 표현들이 재미있어요)" 기록부에 서명하고 국경의 세관(복무하는 군인들은 차림이 단정치 못했다는데, 국가 기강의 해이를 반영하는 묘사일 수 있죠)을 통과한 후, 그들은 드디어 광활한 옛 제국의 영토를 벗어납니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가 시작된다는 반가운 표지판이 눈에 띄지만(그들은 계속 피아트를 타고 여행 중이죠), 이곳 아프가니스탄 역시 사정이 호의적일 리 없습니다(당시에도). 이란 남동부, 인도 북서부,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는 소수 인종으로 발루치 족이 사는데(아주 넓은 자치구를 이룸), 이 이름에는 "불운"이란 뜻이 있다는군요(저는 이 책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일부러 이름을 그렇게 붙여야 불운이 알아서 피해간다는 기대인데, 우리도 아이들 이름을 험하고 천하게 붙여 유년의 질병 등 우환을 쫓으려는 민간 풍습이 있었죠.

"한 청년이 강을 건너가네
얼굴은 한 송이 꽃 같고
엉덩이는 복숭아 같아
하지만 이럴수가, 난 수영을 못한다네."

울림이 알쏭달쏭한 이 지역 민요지만, 아마도 이 책 화자인 두 분과 테렌스는 심심상인으로 뜻이 통했나 보죠? 여기는 아프간이다 보니 본토인이라 할 그 유명한 유목 민족 파슈툰인이 다수입니다(책에서 "파탄 인"이라 표현하는). 지금하고는 상전벽해라 할 만큼 풍습과 풍광이 차이나는데, 한때 영국 세력권(제정 러시아와 다퉜죠)에 있었던 이곳이니만치 심지어 (갓 즉위했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가 발견되는가 하면, "기니로 주시오, 기니로!" 란 말에서 드러나듯 여전히 화폐로서 영국 금화가 통용되네요. 그도 그럴 것이, 영국령 인도에서 철수한 옛 식민지 거주자들을 자히르 샤가 여러 면에서 편의를 봐 줬기 때문이죠. 이로부터 몇 년 후면 민중 혁명으로 축출되지만.

"신비주의자(아마도 수피를 가리키는 것 같네요)도 이 세계의 비밀을 여전히 모르는데
도대체 술집 주인이 어떻게 그걸 그렇게
잘 가르쳐 줄 수 있는지 궁금하네...."

14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하페즈가 남긴 한 구절인데, 이 사람은 부비에, 베르네 두 청년이 몇 달 전 지나쳐 온 시라즈 태생입니다.

바부르 황제가 언제 카불을 다스린 적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는 델리를 식민지로밖에 여기지 않았고, 그의 후손들은 그래서 끊임 없이 "본향에 돌아가 칸으로 군림하길" 바랐던 거죠. "사람이 사는 세계의 중심"이었던 매혹적이고 융성한(지금은 그러나?) 이곳 카불에서, 박트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헤르마이오스는 "앞면에 인도 글자, 뒷면에 중국 글자"가 새겨진 동전을 주조하게 했다고 부비에는 서술합니다. 엄연히 아프간인들 자신의 역사인데도 이를 까맣게 잊어버린 무슬림들이 안타깝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도 그간 인종적 부족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교차한지라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죠.

힌두쿠시의 험준함, 반짝이는 잎새의 버드나무가 울창한 카이바르 고개의 녹음을 지나 그들은 인도의 문턱에 도착합니다. 모든 지점은 다른 두 영역의 접촉, 인연의 산물이며, "지속성, 세계의 투명한 명증성, 평온한 귀속"(p660)의 증명입니다. "탄젠트는 구상할 수도 없고 중명할 수도 없는 접촉이다"란 플로티노스의 말을 부비에는 인용하는데, 지구 반의 반 바퀴를 돈 기나긴 여정도, 혹은 보리수 아래에서 우주의 원리를 직관한 석가모니도, 인간 내면의 굴곡 많은 모습을 책 몇 십 권의 분량으로 다 표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비의는 어느 정도 궁극의 미지로 남아야 생산적인 각성을 우리 아둔한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방위와 지향 그리고 인문의 다른 얼굴로서 동(東)은 아마도 이들 프랑스 청년들에게 영원한 과제의 단서로 남아 있었을 것 같네요. 그게 곧 "어떤 가르침을 위한 세상의 쓰임새"이기도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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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미래의 대이동
최윤식.최현식 지음 / 김영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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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이 필요 없는 한국 미래학의 최강자 최윤식 박사님의 대담한 예측을 담은 새 책입니다. 그의 책은 언제나 최신 정보와 상황변화가 업데이트된 채 산출되는 예측을 담습니다만,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저서들에 뚜렷한 일관성이 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보통 미래를 내다보는 책들은 이 두 가지 미덕이 서로 trade-off 관계를 이루는 게 보통이어서 더욱 그렇죠.



1부에서는 "판의 이동"을 테마로 삼습니다. 최 박사님이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사정이었겠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지진안전지대라 여겨졌던 한반도에 실제로 강진이 발생하여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떠는 일이 불과 며칠 전에 있었기에, 이 "비유"가 매우 피부에 와 닿기까지 합니다. 고체 상태에서도 "대류"가 가능함이 20세기 전반에 밝혀졌고, 오랜 세월 동안 충격이 누적되어 임계선을 넘으면, "판"들은 마침내 가장 약한 부위에서 지진, 화산 폭발 등의 재앙을 유발합니다. 최 박사님은 저런 비유를 써 가며(이런 대목이 여기뿐 아니라 곳곳에서 좀 길다는 게 독자로선 조금 불만이긴 합니다만, 저자의 박식함과 인문- 자연 현상의 통섭적 파악을 도모하시는 그 방향성 쪽으로 좋게 이해하기로 하죠), 지구촌에서 그간 아슬아슬 균형을 유지했던 모든 정치, 경제, 문화, 산업적 요인들이 드디어 누적된 모순의 폭발을 맞이하리라 예측합니다. 세상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때 흔히 "판이 바뀐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저자는 판구조론의 지구과학적 설명과 21세기 초반 문명의 대격변을 교묘히 연결시켜 독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셈이네요.



미- 중의 충돌을 설명하시면서 남중국해 논란은 큰 언급을 안 하시는데요, 여튼 최 박사님은 이걸 말단적 동요 정도로 봐 넘기신 것 같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 시스템의 실패를 만천하에 노정하면서 중-러가 대대적인 패권 도전에 나섰고, 저자께서는 전작들에서 이 점을 크게 짚은 바 있습니다. 미국 역시 그런 양국의 속셈을 잘 알기에, 특히 중국이 "더 크기" 전에 확실히 승부를 걸 마음임을 다시 지적하십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그리 밝은 전망을 내세우지는 않으시는데, 특히 내부 모순 중 빈부 격차, 도농 간 간극의 확대 등을 거론합니다. 지니 계수가 태평 천국 운동 시절의 그것을 능가하며, 이른바 루이스 전환점의 이슈를 꺼내면서 낙후된 농촌이 마냥 현실을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합니다. 다만 중국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엄청난 인구와 장차 서유럽- 북미를 압도할 경제력 성장 추세로 보아 더 이상 미국의 세계 패권이 이어지기도 어렵다는 쪽입니다. 하나 유념할 건 아시아를 어느 범위까지 단일 주체로 파악할 것인가인데, 책 조금 뒤에서도 언급되지만 인도와 중국 사이의 잠재된 분쟁 요소(수자원 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 역시 08년 금융위기가 매우 뼈아프게 노출시킨, 쉽사리 부정하기 힘든 이 시대의 위기 국면입니다. 책에서도 언급되듯 예컨대 아일랜드 감자 기근 사태처럼 탐욕과 착취가 절제의 지혜를 압도해 버린 비극적 구간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 동안 자본주의는 자체 혁신의 미덕을 발휘할 줄도 알아서, 특히 냉전 기간 동안에는 두 이념의 사이 좋은 보조를 유지해 온 면도 있었죠. 그러나 푸틴의 냉소적인 평가처럼, "지난 수십 년 간 쌓아온 수익을 한순간에 모두 날린 월 가는 이제 더 이상 그 자부심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관점이 누구에게나 설득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어가는 중, 한국이 맞게 될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지만, 최 박사님은 언제나 변화의 홍수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낙관주의의 기조지요. 다만 한국에게는 여전히 희망적인 변수보다, 크나큰 시련을 부를 조짐이 더 크게 보인다는 쪽입니다. 특히 2부 첫 장의 제목을 "기회의 이동 중(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계속된다"고 잡으실 만큼이네요. 미국의 금리 인상을 촉발점으로 삼아, 이른바 "다섯 개의 폭탄"이 연이어 터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이 경우 한국경제는 끝을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사실 표현만 다를 뿐 가계 부채라는 시한 폭탄을 두고 조만간 정부(현 정부 말기 혹은 차기 정부 초기) 머리 위에 날벼락이 떨어질지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거의 일치해 왔습니다. 어떤 이는 부동산에 방점을 두고(이쪽이 수적으로 더 우세), 어떤 이는 주식 섹터를 더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죠. 최 박사님의 진단은 그러나 "예측을 통해 리스크 요인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대위기의 파장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입니다. 합리적 기대이론의 한 결론 중에서도 충분히 증명되었듯, 치밀한 예측과 그에 따른 대응은 언제나 파국을 피해가는 집단지혜를 안출합니다. 최 박사님의 위기 진단은 이런 가계 섹터(다른 전문가들도 하는 이야기니까)보다 기업 쪽을 향해 한 말씀 하시는 게 큰 울림을 빚는데요. 이 2부보다는 뒤쪽으로 가야 좀 "쎈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 책의 표지를 보시면 영어로 "Exodus of Opportunity"란 글자가 나옵니다. 기회의 엑소더스! 한때 한 자리에 머물러 있던 기회가, 이제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와 다른 "준비된" 플레이어들에게로 방향을 틀었다는 거죠. 박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기회는 "산처럼" 많다는 겁니다. 하긴 불확실성의 증대가 기득권을 위협하고, 기민하게 사태를 관측한 이들에게 큰 이익을 안기는 패턴은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나 발생해 왔죠. 박사님은 앞서 "우리에게 특히 위태로운 변수, 상수"가 도사림을 지적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역시 총체적으로 "기회의 산"을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4차 산업혁명", "증강 현실" 등의 키워드를 단 여러 서적에서 거론하는 갖가지 첨단 산업의 부상을 최 박사님도 하나하나 짚으시는데, 그 중 저자께서 특히 주목하는 부문은 자율주행, 대체에너지 개발을 앞세운 자동차 산업인듯 보입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역시 최박사님 다운 대담함, 거침없음이 돋보인 대목이 "테슬라를 과연 현대차(아님 삼성이나 LG라도)가 샀어야 했는가?"에 대한 똑부러지는 해답이었습니다(많은 이들은 아마 이런 질문, 이슈, 아젠다가 있었는지를 모를 겁니다). 실제로 엘론 머스크가 아직 입지가 단단하지 않을 때 간을 보러 한국에도 왔었고, 최 박사님 생각은 "그때 그가 분명히 팔 생각이 있었으며"(이렇게 잘라 말하시는 그 확신이 진정 놀랍네요), 앞으로도 그는 점점 베팅액을 높일지언정 구매자를 물색하고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는 "머스크는 그렇게 비전 좋은 회사를 왜 키우지 않고 팔려 드는가? 팔 의향이 없든가, 아니면 자신의 평소 주장과는 달리(책도 많이 썼죠) 미래자동차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부족한 것 아닌가?"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어떤 영리하고 합리적인 행위자도, 항상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상황 봐 가며 가능성을 열어 두는 법이죠.



독자로서 최박사님의 진단과 예측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며, 예컨대 "가상국가vs 현실국가" 같은 프레이밍은 그 설명력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장벽이 2030년까지 해소되며, 그 즈음에 뇌 구조가 다 해독되리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기술적 난관이 한둘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제퍼디 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챔피언을 이긴 사건도 벌써 5년이나 지난 토픽이며, 그이후로 의미있는 진전이라면 몇 달 전 알파고의 대국이겠는데 이 역시 그 효과를 더 신중히 지켜 볼 필요가 있죠. 하지만 최 박사님의 책에서 가장 생산적으로 취할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는, 이런 격변하는 추세 속에서 개인들이 어떤 전략으로 미래를 맞을지에 대한 자상하고 성의 있는 충고입니다. 학자들의 모든 예측이 다 실현되는 건 아니며, 일부는 정반대의 결과에 직면하기도 하죠. 그러나 미래의 유력한 예측들과 전망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방향으로 대비를 한 사람과, 마냥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선택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판이 송두리째 바뀌고 기존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지금, 역으로 엄청난 기회의 산이 우릴 향해 달려 오는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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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河內 일본에 남은 문화강국 백제의 발자취 1
양기석.노중국 외 지음 / 주류성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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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고대사 그 바른 내역에 대해서는 워낙 기록이 불충분하게 남겨진 까닭에 누구라도 논쟁의 고비에 확언 정설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다만 역사학자 모두가 열린 마음 공정한 자세로 겸손되이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 할 텐데요. 이런 학자적 양심을 기대하기에는, 근래 일본이 너무 막나가는 태도를 취하기에 뜻있는 이들의 우려가 매우 큽니다. 우리 겨레가 각별한 마음가짐으로 선조들의 노고와 유산을 재조명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그 빛나는 자취란 그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한류 열풍의 진앙지"라는 어구를 제목 일부에 쓰는데요. 완독한 후 이 표현이 책 내용을 정확히도 짚어내었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 말에서 "소녀시대나 카라의 활동상"이 혹시 오사카 일대에서 재조명되는 내용인가 잘못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고대사, 특히 일본이 아직 야만과 무지몽매의 늪에서 채 못 벗어날 시절 우리 조상들에게 문화적으로 진 빚의 깊이와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이었습니다. 한국의 연예인들이 열도에서 맹활약하는 모습도 물론 자랑스럽지만, 이 책을 통해 공부할 수 있는 고대사의 생생한 한 단면은 우리가 과연 이렇게 태만히, 덜 각성된 후손으로서 몰역사적 의식을 이어가도 되는 건지, 심각한 자기 반성을 촉구하더군요. 그저 "자랑스럽다"는 말로는 불충분한, 근본에서부터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집니다.

일본 고대사는 구석기- 죠몬- 야요이 - 고훈 시대로 대개 구분됩니다. 이 책에서 특히 중요한 시대가 저 중 마지막 단계인 고훈[古墳]기(期)이겠는데요. 거대한 무덤의 출현은 곧 계급 사회의 도래를 선포하는 상징이나 다름 없기에, 이 시대를 향한 분석은 일본 열도의 사회 구조가 어떤 심대한 변화를 맞이했는지 중요한 암시를 어떤 방면에서도 던져 줍니다. 이렇게 일본에서 지배 - 피지배층이 본격 분화할 때, 문화적, 제도적, 의식적 면에서 적지 않은 공헌, 최소한 영향을 미친 이들이 바로 "도래인"들이었습니다.



"도래인"들이라는 용어에 대해, 최근에는 이 말이 "일본 중심"의 시각을 전제로 한다는 지적이 있어 "도왜인"으로 바꿔 쓴다는 설명이 책에도 나옵니다. "왜"는 특정 시기, 그저 지역과 민족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을 뿐이니 어떤 비하의 의도는 없는 셈이죠. 이 책은 그래서 "텐노[天皇]"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당시 이르던 대로 "왜왕"으로 일관합니다. 이것이 올바르며, 당해 호칭이 쓰이지 않았을 때에까지 모두 소급 적용하는 저쪽의 태도가 오히려 문제지요. 참고로 이 책은 "고훈[古墳]"에서처럼, 일본어 어휘의 보충 설명에서는 꺾은괄호를, 한국어 한자음 뒤의 병기에서는 일반 괄호를 씁니다. 행여 일본식 독음을 한국어의 그것과 같은 위상으로 둘 위험을 배제하려는 사려 깊은 표기법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이처럼 시대로는 고훈 기, 지역적으로는 오사카 일대, 그 중에서도 가와치를 중심으로, 우리 조상들의 활발했던 외교, 정치, 군사, 문화 업적상을 주목합니다. 지금까지 막연히 "조상"으로 칭해 왔습니다만, 구체적으로는 당연 삼국 중에서도 "백제인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교근공의 논리에 따라 백제는 고구려, 또 그의 속국 비슷한 위상의 신라(일단 4세기 기준)를 견제하기 위해 바다 건너 왜의 군사력을 특히 탐냈는데요. 왜 역시 고구려의 강력한 위협, 인접 신라와의 잦은 분쟁 때문에 일단 군사역학 상으로도 협력이 시급했습니다.



먼저 접촉과 교린을 시도한 건 백제였는데, 이 때문에 지금도 일본인들은 얼토당토않게도 이를 "문화 노예" 정도로 왜곡, 비하하며, 상국의 위치에서 공물을 거두었다는 등의 낭설, 억측을 일삼죠. 하지만 백제는 영리하게도 인구가 많고 물산이 비교적 풍족했던 왜의 1차 자원을 이용하려 들었던 것뿐이며, 왜의 무력이 보잘것없음이 드러난다거나, 고구려, 신라 등과 파트너 체인징을 시도할 국면에는 지체 없이 교류를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사정이 급한 건 대개는 왜 측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고훈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계급의 분화가 가속되었는데, 지배층으로서 하층민들을 향해 위신을 세우려면 세련된 문화의 향유를 과시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6세기부터는 열도에서도 불교 문화의 본격 도입이 이뤄졌는데, 왕실이 항구적으로 신민의 복속과 유연화를 이루려면 이런 고등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그 심리의 기층 저변을 통제할 필요가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백제 문화는 열도의 그것보다 외관, 성능, 미학적 가치, 심미적 만족 등 모든 면에서 우월했기에, 심지어는 숙어적 표현으로 "쿠다라나이" 같은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백제의 산물이 아니면 질이 낮아 시시하다"는 뜻이 담긴 이 표현은, 열도의 지배층이 백제로부터의 문화적 세례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왜왕은 살아서 백제 문화의 숭배자를 자처했고, 죽어서도 묘지를 그런 뜻에 맞게 조성한 후 묻히기를 바랄 정도였죠. 백제의 문화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그 사람은 남 위에 설 자격이 더 갖추어졌다고 통념이 생겼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또한 불교는 이 책에도 잘 나와 있듯, 그저 추상적인 신앙으로서 퍼진 게 아니라, 의식과 예배와 교리와 성직자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패턴이었죠. 이른바 삼보(三寶)는 불- 법 - 승을 가리키는데, 초기 백제는 이 불교 문화를 전해줄 때 승려의 파견은 누락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두고 이 책에서는 "이미 널리 불교를 수용하려 든 현지(왜)의 실정을 감안"했다고도 하시지만, 전체적으로는 백제의 전략적 고려도 작용한 바 있겠음을 우리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죠. 아무튼 지금도 일본 국민의 40% 가량이 불교 신도임을 감안할 때, 고대 백제가 일본에 다져 준 문화의 기틀이 얼마나 아득한 역사를 갖는지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 특히 백제인들이 왜에 끼친 영향은 이런 문화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인적인 교류가 직접 이뤄진 부분도 큽니다. 오사카, 특히 가와치 일대에 사는 현대의 일본인 상당수는, 그 조상을 실제로 한국계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여러 이유, 정치적, 경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집단 이주를 일본에 도모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지명이 河內라 쓰고 가와치라 읽는 건 그 깊은 사연이 따로 있다는 거죠. 책은 특히 "고훈 시대", 말 그대로 거대한 무덤들(지배층의 위신을 드러내기 위한)이 하나같이 백제 양식을 모방하여 조성된 그 추세에 주목하면서, 이런 물적, 인적인 "한류 열풍"이 얼마나 뿌리 깊고 항구적으로 일본 문화(그렇게 부를 만한 게 있기나 했다면)에 영향을 주었는지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유적과 문화재, 언어적 흔적들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그 실상을 왜곡하며 막무가내로 우겨대던 건 심지어 고대사의 한 국면에서도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송 황실에 사신을 보내어, 자신들 왜국의 수장을 백제, 모한(=마한), 신라 등의 지배자로까지 책봉해 달라며 억지를 썼다는 거죠. 이런 주장은 당대인들, 혹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정치 단위 중 왜국인들 말고는 아무도 수긍하지 않는 망상이었습니다. 다만 한반도가 그들의 이런 방자한 태도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건 그저 무시해 버릴 만한 망동이어서이기도 하겠으나,근본적으로는 삼국이 분열했던 정치적 취약성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겁니다. 조상들의 찬란한 위업을 돌아보며, 우리 후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얼마나 본분을 다하는 중인지, 진지한 역사의식의 각성과 분발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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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3
김창회 지음, 강윤정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손영운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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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없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의 세계를 무대 위에 마음껏 펼쳐 놓고, 자신과 같은 시대 청중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예능인이었다는 점에서 융합인재의 첫손에 꼽힐 만합니다. 표현과 비유가 천재적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말재주의 세련되었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물과 관념을 그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알았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풍성한 색깔을 띤 언어로 가르칠 수 있었다는 뜻도 되죠. 신기하게도 셰익스피어는 아직 근대 영어가 제 모습을 갖추기 이전의 꼴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현대 영어 원어민들이 (고어[古語]에 대한 지식 없이) 읽어도 그 생동하는 활기와 천재적 영감이 주는 전율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널리 읽히고 여전히 사랑 받는 모습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과연 현대적 의미의 창의인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이유에서 셰익스피어는 닮고 싶은 인재의 대표, 모범이겠지요.



주희도 격물치지(사물과 자연, 인간 사는 모습을 연구하여 그로부터 진리를 깨우침)를 강조했습니다만, 어린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온 에이번)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풀밭에 날아다니는 풍뎅이의 모습 하나에도 그에 알맞은 표현을 떠올릴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고 이 책에 나옵니다. 우리도 큰 인물은 도시 아닌 시골에서 성장해야 감수성이 자극 받고 다양한 상상력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지닐 수 있다고들 하죠. <한여름밤의 꿈> 등에 나오는 다채로운 표현은 이런 어린 시절의 자극으로부터 든든한 창작 소양을 갖추게 된 보낸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솜씨라는 게 저자님의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한 방식으로 아들을 가르쳤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분뿐 아니라 이 시절 잉글랜드의 많은 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애들을 키웠다고 하는데요. 윌리엄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문법 학교"에 입학시켜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합니다. <좋으실 대로>에 보면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듯, 마지못한 태도로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이게 아마 이 시절 자신의 추억을 회고하며 창작에 반영한 게 아닐지 하는 작가님의 추측이 책에 나옵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후엔 다시 "킹즈 뉴 스쿨"에 다녔는데, 여기서 그는 라틴어, 그리스 어 등 유럽의 고전 문학에 접할 필수 수단일 여러 언어를 배웁니다. 라틴어는 그저 과거의 문예가 기록된 언어일 뿐 아니라, 그 엄정한 문법과 체계적인 어법을 배우면서 말과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표현이 기발한 것 외에도, 고급스럽고 규범을 (알고보면) 정확히 지키는 양식적 우월함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린 윌리엄은 특히 오비디우스의 작품을 해석할 때 반에서 가장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이 때문에 젠킨스 선생님으로부터의 칭찬이 자자하군요. 삽화를 봐도 총명한 그의 모습이 잘 나와서 보는 독자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친구와 하굣길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윌리엄은 커서 훌륭한 극작가가 될 꿈에 부풉니다. 친구는 걱정이 되어 이렇게 말하네요. "그렇게 책을 많이 읽다 머리가 터지면 어쩌려구 그래?" 으악! 다행히도 셰익스피어는 머리숱이 좀 적어지는 정도에 그쳤지만 말이죠. 작가님의 말에 의하면, 어린 윌리엄은 그저 신화나 고전 속의 이야기를 즐겼던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생각, 생활 방식, 가치관" 등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할 줄 알았다는군요. 훗날 셰익스피어가 희곡 속의 인물 그 성격 창조에 대해 탁월한 솜씨를 보인 건 모두 이 시절의 깊은 생각과 교육의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네요.

여기서 작가님의 말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존재하는 지식을 상황에 맞게 고치거나, 다른 분야에 적절히 응용할 수 있다면, 그런 어려운 일도 척척 해 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p53)

셰익스피어는 가게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많은 직종, 직업의 사람들을 접하고 그들이 쓰는 언어 습관, 행동의 특징을 눈여겨 관찰했다고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 등에서 그가 그처럼 법률 용어와 관행, 제도의 운영 원리를 잘 알고 작품에 배경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가 컸다고 하는군요(법률가, 혹은 송사에 휘말린 손님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경청함). 꼭 천재라서 이런 재능의 계발이 가능했다기보다, 주어진 시간과 집중력을 알차게 사용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할 수 있는 창의융합인재의 길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봐요 젊은이, 연극이 어린애 장난인 줄 아쇼?(극장을 처음 찾아온 셰익스피어에게 어느 단원이)" (p61)
"여봐, 극장이 너무 더러우니 정리 좀 해 주지 않겠나?" (p63)
"뭐야, 저 얼굴 좀 봐! 벌게진 게 꼭 으깬 토마토 같지 않나? 하하하 (대사를 잊은 초보 배우인 그에게 관객들이) (p66)

이처럼 배우로서 셰익스피어는 무대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대사를 까먹는 등 초보 시절 부족한 점도 너무 많았다네요. 그러다가 단역, 조연 배우로나마 차츰 자리를 잡아갔는데요. 이때 그의 뛰어났던 결단이라면 "다른 영역"에도 눈을 돌릴 마음을 과감히 먹었다는 점이겠습니다. 확실히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그 고비에선, 학벌이라든가 인맥이 경험 없는 젊은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게 현실입니다. 이 책에는 이른바 "대학 재사(university wits)"라고 해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를 갓 졸업한 젊은 인재들이, 셰익스피어 같은 저학력 경쟁자가 나타나면 조소를 퍼붓곤 했다는 일화도 나와 있습니다. 창의인재의 꿈도 좋지만, 학과 공부도 열심히 병행해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곤란을 겪지 않는 것도 때로 필요할 것 같아요!



"이보게, 오늘 공연도 매진이야!"
"관객들이 소리 지르고, 울고 웃고, 아주 반응이 대단했어!" (p74)

이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능을 갈고닦았던 셰익스피어는 불과 스물 여덟의 나이에, 극장가 최고의 스타 극작가로 대중 사이에 각인됩니다. 이때 로버트 그린이란 문인은 "우리들의 깃털로 아름답게 치장한, 벼락출세한 까마귀"라며 호되게 셰익스피어를 비난했는데요. 이런 태도는 어린이들이 본받아선 안 되지만 왜 그렇게 엘리트 그룹이 그를 싫어했는지 책에 실린 그린의 원문을 읽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어요(설령 온당치 못한 이유라고 해도).

흑사병의 유행, 연극계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집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성공, 창작 소네트가 (특히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받은 열띤 호응 등으로, 이제 그의 앞날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죠. 리처드 버비지, 윌리엄 켐프 등과 협력하여 로드 체임벌린즈 멘 극단을 크게 키운 그는, 이제 경영인으로서도 여왕에게 인정 받는 두드러진 거물이 됩니다. 여기서 작가는 그를 가리켜, "많은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평가합니다. 이 역시 창의융합형 인재상과 통하는 부분이죠.

이런 그에게도 작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으니, 아들 햄닛(Hamnet)의 때이른 죽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술집에서 서로 크게 다투는 젊은 극작가(이제는 그가 이런 젊은 인력들을 건사하고 육성해야 할 위치가 되었어요)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연극이나 문예로서의 각본이 추구해야 할 바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크게 고민합니다. 이런 고뇌의 산물이 바로 그의 커리어 후반에 창작된 여러 비극들입니다. 희극도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만, 생의 본질과 영혼의 심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비극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작가님의 결론은 이거네요. "경험과 관찰을 결합시킨 창의력". 확실히 그의 작품은 일찍이 대중 문예, 본격 문학이 짚거나 꿰뚫지 못했던 여러 국면을 생생히 잡아내었고, 말년에는 기교를 떠나 주제와 극 전개에 있어 여태 없던 성숙함과 심오함까지 보였습니다. 벤 존슨의 유명한 애도사로 책은 마무리되네요. "나의 셰익스피어여 일어나시오! 그대는 한 시대의 인간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위인이었소."

세익스피어의 시대에 대한 친절한 설명, 어려운 말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나오는데다, 여러 도판에 대한 출처까지 다 달려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창작 일러스트가 더 비중이 높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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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아워 -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삶의 마지막 순간
케이티 로이프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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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시작에는 그 끝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명대사가 다시 짚어준 진리가 꼭 아니라도 인간은 이미, 한 번 있었던 자신의 출생이 언젠가는 "죽음"으로 대칭적 마무리를 갖는다는 걸 알고들 있었죠. 아직 젊었을 때는 자신의 청춘이 영원히 이렇게 이어질 줄로만 기대합니다. 이 책의 저자께서도 냉소적으로 표현하듯, 그러나 그런 헛된 믿음은 대개는 거울 한 번의 응시만으로도 흔들리겠는데요(예외도 있지만). 우리가 딛고 선 평면, 차원 외에 지평선 저 너머에 몸을 숨긴 진리를 묵시(reveal)한다고 믿어지는 뛰어난 작가들, 혹은 위대한 지성들은, 이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자신의 것들을 그 최후의 순간에 맞이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도 나오지만, "바이올렛 아워(violet hour)"란 인간의 영혼이 죽음 즈음에 체감하는 그 아득하고도 무섭고, 신비로우면서도 영원에 닿을 듯한 그 주관적 시간을 뜻합니다. T S 엘리엇의 長詩 <황무지>에 나오는 표현이죠. 죽음의 영접을 혹 색으로 표현하자면 정말 제비꽃과 같은 빛일까요? 그럴 법하다고 여긴다면 평소에 진지한 생각을 해 본 분일테고, 모르겠다는 답이 나온다면 아직 나이가 어리거나, 생에 대해 그리 진지한 태도를 안 가져 본 분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죽음은 그로부터 환영을 받건 말건, 제 때가 되면 찾아가는 손님이죠. 우드로 윌슨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토머스 마셜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장례식에서 이런 弔辭를 했습니다. "죽음은 그가 잠든 동안 찾아와 영원으로 안내했으니, 이는 혹 그가 깨어있었을 시 벌어졌을 법한 다툼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성질 드센 이라도 사신과 싸워 이길 수는 없음을 잘 표현하는 일화입니다.

사신이 와서 갈 길을 청해도 쉽게 따르지 않았을 것만 같은 이들 중의 하나로 대뜸 떠오를 만한 위인이 정신분석학의 개조 지그문트 프로이트인데, 마침 작가님도 책의 첫 주제로 이 사람의 죽음 그 즈음을 다룹니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비범한 두뇌의 활력, 명철한 지성, 거의 독재자에 가까웠던 고집과 의지, 독선적 성품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 편이었죠. 이런 분이 만약, 낯선 죽음이 이제부터 친구 하자고 찾아오면, 그리 고분고분 교류에 소통에 응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종양(구강암) 때문에 말년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나, 모르핀 기타 진통제의 투여를 일절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프랑스 어느 문호의 모 작품(그가 그 무렵 읽던 중인)에 나오는 묘사대로, 행여 자신과 같은 대 지성이 약물의 효과 때문에 정신이 다소라도 흐려지는 지경까지 가는 걸 거부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꼭 그 작품의 영향이 아니라도, 의사인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외인(外因)적 처방의 손에 조금이라도 넘겨 주지 않으려 한, 어느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그 자신의 주인이고 싶어 한 집념의 소산이라 이해하는 게 온당하고 공정하겠습니다.

수전 손택은 이른바 "대중 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후반 미국 문화평론(그 자신은 평론의 가치를 높이 두지 않았지만)을 이끈 참여형 지식인입니다. 2004년 타계했을 때 한국에서도 그녀의 저작들이 새삼 주목을 받았을 만큼 지명도가 높은데요. 권력과 미디어가 때로는 헛된 명분, 때로는 더러운 사익 추구를 위해 날조하는 거짓을 그리도 몸서리치며 혐오, 배격, 고발한 그녀였지만 역시 연약한 육신을 지닌 인간에 불과했는지 자신의 건강과 영혼의 평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주관적 환상을, 특히 말년에 갈수록, 지어내면서까지 선호했던 편이었다고 합니다. 웬만해서는 사후의 상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는지, 지인의 안내로 불가의 교리도 접해 보았지만, 당찬 그녀 답게 대뜸 나온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참 매력적이더라고, 하지만 내겐 그 가르침들이 헛소리에 불과했어!" 그는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을 때 이처럼 힘없이 고백하기도 했다는군요. "언제나 운이 좋았던 나지만, 이번에는 행운이 내 편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말들에서, 재능 있고 그 재능에 자부와 확신을 가졌으며 자신의 의지로 세파를 헤쳐 나간 이들의 공통된 attitude(생전의)가 보이는 것 같네요. 손택의 간병인 중 특히 친했던 피터 페론을 저자가 직접 만나 증언, 회고를 받아적어서 이 파트가 특히 역사적 가치까지 유지합니다. 애써 죽음의 공포를, "신화"까지 만들어 회피한 그녀의 심리에는 비교적 어린 시절 부친의 죽음을 목도한 그 기억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짐작합니다.

어떤 소설가들은 편집, 강박, 자기 도취 등 별의별 괴벽을 끝까지 지키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재능은 신의 선물인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지?" 헤밍웨이도 그러했고, 작가는 아니지만 정치적 시인이었던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평전을 읽고 리뷰도 썼던) 무함마드도 그런 타입이더군요. <달려라 토끼>로 유명한 존 업다이크 역시 갖가지 자기만의 강박과 습성에서 안 빠져 나오려 애쓰고, 그런 모습이 더 화제를 탄 소설가인데요. 이 사람은 이언 매큐언과 주고받은 서신에서도 짐짓 과장된(그로써 타인에게 위안을 받으려는) self-pity를 드러냈는데, 이게 다 자기애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죠.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여성과의 성행위가 작가로서 자신의 소양, 영감 등에 특별한 원천이 된다"고 진심으로 믿었으며, 이런 취향, 생활 태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기까지 하여 일각으로부터 빈축을 샀습니다. 책에 인용된, 그 자신의 회고록 <자의식> 중의 유머러스한(이게 유머가 아니라면, 모럴에 분명 문제가 있는 사람) 어느 문장처럼 "명철한 의식을 얻기 위해 카를 바르트를 읽고, 다른 남자들의 아내들과 사랑에 빠진"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정신의 선도를 유지했죠(전 처음에 롤랑 바르트의 오타인 줄).

특히 시인들은 그 격정적 기질 때문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딜런 토머스는 이 책에서 표현하는 대로 "스무 살의 나이에 정말 혜성처럼 문단에 데뷔한" 천재 시인이었죠. 그가 체질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탓도 있겠지만, 시사주간 <타임>이 노골적으로 지적했듯 그는 (요즘 정확히 개정된 용어대로) 알코올에 의존하는 정도가 지나친, 시인의 오랜 원형 중 나쁜 전통을 불운하게도 이어받은 케이스였습니다. 폭포처럼 솟아나는 영감과 눈부신 표현력으로 주위를 황홀하게 만들 줄 아는 재능을 가진 그였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만은 병적인 강박처럼 혐오한 이중성도 드러냈죠(찾아오는 여성들은 구태여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과연 그 남편에 그 아내라 할 만큼, 서로에게 운명의 배우자였던 케이틀린 맥나마라 역시 미친 듯 똘똘뭉친 자기애로 남편의 그것과 한번 충돌했다 하면 답이 없는 싸움으로 이어졌죠. 여튼 딜런- 케이틀린 부부의 기묘한 부부관계는 마치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세이어의 그것에 비길 만큼 열정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는 게 매순간 전쟁이고, 그 격정의 폭발 순간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둘 만큼 지치고 예민했던 그의 정신을 생각하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동화작가 모이스 샌닥은, 독자로서 저 역시 모르고 넘어갔지만 4년 전에 타계했다고 책에 나와 있네요. 명작 동화들이 흔히 그렇지만 그의 작품도 마냥 아름답고 가공된 꿈과 이상으로 부푼 작품 세계가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대해 가르쳐 줘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작품을 통해 표현된 결과겠는데요. "어른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아이들을 그만큼 더 좋아한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겠습니다." 이처럼 유보적인 태도로 동심을 옹호한 그는, 죽음을 가장 멀리하고 싶은 심리에서 인생의 그런 시기를 막 지나치는 중인 아이들의 마음에 침잠하려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 반대급부라든가 치러야 할 시험이나 되듯 죽음을 의식한 사람이었는데요. 생(개인적 생이든 보편 개념으로서든 간에)에 가득한 수수께끼와 충돌 지점, 혐오스러운 요소들과 싸우는 걸 아예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두려움과 원망도 그치지 않았던 좀 특이한(특히 앞의 네 사람과 대조할 때) 경우 같습니다. 아니, 특이하다기보다, 어쩌면 이런 태도야말로 죽음의 필연성과 위력에 압도되어, 애써 (고작) 현세의 괴로움으로 그를 잊으려 드는 우리 모두의 나약함을 그대로 대변하는 정직한 정신의 몸부림과 순응이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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