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 맑음 - 지치고 힘든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
마스노 슌묘 지음, 오승민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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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수도에 정진하신 스님이라면 그 나오는 말씀이 참 예사 경지의 산물이 아니다 싶은 게 많습니다. 이 책도 참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 읽어 나가면 그렇지가 않고, 치열한 직장 생활을 해 보신 적도 없을 텐데(여러 대학에서 환경 디자인학 교수직을 맡고 계시긴 합니다) 어쩜 이렇게 월급쟁이들 마음을 잘 알고 다독이시는지 신통하다 싶었습니다. 꼭 직장인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상처 받은 이들 그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데 정말 능하신, 그저 노하우를 잘 아는 게 아니라 세상의 숨은 이치, 모순, 문제의 발원을 훤히 꿰뚫으신 달인의 토로이자 가르침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더군요.


마스노(枡野) 슌묘(俊明)라는 이 저자 스님의 함자는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 보는데요.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은 스님들에게 법명을 쓰게 하는 게 관행입니다만 이 저자께서는 그대로 속명을 쓰시는 듯합니다. 정원을 가꾸는 자세란 곧 내 마음의 잡풀을 제거하고 온갖 속세의 번뇌와 탐욕, 하잘것없는 집착을 뿌리채 정리하는 그 태도와 통합니다. 인간이란 결코 환경과 유리되어 살 수 없고, 인간을 낳고 품어 준 자연과 적대할 때 인간의 생존마저 위태로워지는 게 자명합니다. 스님께서는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보존하며 그 가장 소중한 고갱이를 돌보고 가꾸는 노력을 통해, 세상에 사람이 모여 사는 가장 깊은 원리를 깨닫고 이를 가장 쉬운 말로 어리석은 대중에게 설파하시는 스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말 회사원들과 많이 접촉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어 보셨는지, 유독 이 책에는 그들을 염두에 두고 설복하시는 말씀이 많습니다. 할당량을 반드시 납기에 맞춰 조달하는 건, 특히 대기업을 상대하는 많은 중소기업 사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과업일 것입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마냥 속이 편한 건 아닙니다. 독촉하면 갑질한다고 뒷말이 나올테며, 납기가 늦어지면 일단 깨지는 건 담당자 자신이기에 남의 회사 사정을 자애롭게 고려할 처지가 못 됩니다. 그런데 스님은, 비단 자신의 회사 입장에서만 살펴도 품질을 무시한 기계적 할당량 달성은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황폐화한 후 폐허의 앙상한 잔해처럼 다가올 "미션 완수"가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겁니다. 이게 현실에 맞지 않은 한가한 도리의 설법이라고 생각되시면 다음을 계속 읽어 보십시오.


이 파트 말고 책의 좀 뒤를 보면, 아무래도 스님이신 이상 장례식장에서 일정 역할을 맡아 주십사하는 촉탁이 많이 들어오는가 봅니다. 그것 관련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 유수의 대기업 이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광범위한 인맥을 쌓고 업계를 호령하던 분이기도 하고, 그 풍채도 권위 가득한 모습이라 언제나 주위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이 갑자기 타계하니, 유가족들이 많은 문상객들을 갑자기 맞을 걱정에 여러 채비가 많았고, 스님께도 각별히 당부하는 바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조문객을 받으려 하니, 첫 몇 시간에만 줄이 이어졌을 뿐 오후부터는 사람이 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융숭한 예식을 다 갖춘 상가에 정작 조문이 뜸하니, 유가족이 상심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스님 자신이 민망해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는 거죠. 반면 늙은 나이까지 말단에서 근무하다 생을 마감한 다른 어떤 분은, 비록 차림은 빈한해도 "생전에 이분께 은덕을 입은" 이러저런 많은 문상객들이 성의를 보여 그 가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누가 더 보람된 생을 살다 간 걸까요.


"불교식 사고방식에 양자택일은 없다." 저자의 아주 의미 깊은 말씀, 가르침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소위 "책상을 뺏기고"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지금까지 맡아 오던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발령나기도 합니다. 대체로 능력 없는 이들, 사고를 치던 이들, 무사안일로 나날을 때우던 잡된 직원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겠으나, 개중에는 억울하게 밀려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때 스님은 "이것 역시 나쁘지 않고, 당사자가 즐겁게 혹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한 운명"이라고 가르칩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따로 있다는 게 이분법 사고인데, 불교에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모든 게 동등하다는 태도입니다. 하긴, 나와 타물(他物)도 본디 분별이 없는 법인데, 자신이 처한 운명 역시 좋고 나쁜 고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관련 법사께서는 "대지황금(大地黃金)"이란 법어도 들려 주시는데, 자신이 밟고 선 누런 땅이 바로 복된 곳이라 생각하면, 황금덩이를 깔고 사는 이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읽고 나서 참 지당한 이치라며 수긍이 되었네요.


"유연심"을 가지면 "선입견"이 없어지는데, 이로서 무한한 가능성이 싹튼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흔히 "저건(혹은 저 사람은) 내 타입이 아니다."는 말을 즐겨 하죠. 혹은 내 가치관에 현저히 미달하는 질 낮은 아이템(혹은 사람)이라며 폄하하기도 일쑤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며 마주할 갖자기 선택의 순간에서, 당사자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무수한 가능성이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잠재한, 그리고 간과한 선택지 중, 나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을 만한 보석 같은 옵션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사물과 모든 인연은 (다시 말하지만) 나쁘고 좋은 품질의 차가 없고, 모든 형량과 분별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결과가 딴판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마음의 벽을 헐면 모든 이가 나의 이웃이요, 나의 형제고 부모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이가 회사 일이라 한들 척척 못 해낼 리 없고, 상관이나 오너가 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은덕을 조직에 베푸는 셈입니다.

임운자재. 참 불교의 가르침에는 좋은 구절이 많습니다. 사람이 애쓰고 버둥거려도 안 되는 일이, 그 나름의 운수와 정해진 바가 있어서 스스로 풀리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어르신들, 간부들이 종종 따끔하게 놓는 한 마디가, "요즘 젊은이들은 멘탈이 약해."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이미 기성 세대이시면서, "젊은이들은 너무 악착 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도 일깨우시네요. 때로는 모든 업무에 작은 틈을 주며 쉬어가는 게, 일의 여운을 주어 전체 과업이 잘 풀리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어제와 오늘이 한결같게 느껴지는 권태"야말로, 정신이 죽어가는 징후임을 지적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날은 그 어느 하루도 같은 시간이 아닌 축복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긴장과 강박은 다른 것이며, 성실과 집착 역시 다른 범주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이를 준별하는가. 마음이 바른 곳을 보면 가능하겠습니다. 그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먼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독기를 품고 때로는 절망한 듯한 그 얼굴들을 편견 없이 봐야겠습니다. 그 얼굴들에서 내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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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터[569]번째 책이야기

황태자의 첫사랑 /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황태자의 첫사랑 /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연극과 영화로만 알고 있던 <황태자의 첫사랑>의 원작 소설을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완역해서 소개합니다.

신분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발랄하고 애잔하고 쿨한 사랑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황태자는 궁정에서 백부의 손에 엄격하게 자라났다. 스무 살이 되어 자유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로 유학 온 그는 첫사랑을 만나고 청춘을 만끽하지만,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겨 내기에는 나약한 존재다.
숙명처럼 찾아온 첫사랑 케티와의 짧았던 사랑과 긴 이별 그리고 재회.
이 작품은 주변 인물들과 애정을 나누고 갈등을 겪으면서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이 내면으로 서서히 성숙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황태자의 첫사랑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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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의사.의과대 학생.직업 전문가가 들려주는 의사의 모든 것 꿈결 잡 시리즈
고정민 외 지음 / 꿈결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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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불확실성이 만연한 세상에선 어린 시절부터 진로와 그에 따른 전략을 확실히 결정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직업이라면, 사회적 존경과 높은 보수가 보장되다시피한 "의사"이겠습니다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맹목적 선호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자신의 성격과 능력, 가치관 등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긴 시간의 학업과 수련을 요하는 자격 취득부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자격을 얻는다 한들 개업을 할 본인 자신이 행복해질 지가 의문이기 때문이죠. 남들 따라서 진로를 선택했고, 좋아 보여서 그 길을 밟았지만, 많은 기대를 품은 자신을 막상 기다리는 현실이 "그게 아니라면" 여간 낭패가 아닙니다. 반면, 너무 어려워 보여서 선택이 망설여졌는데, 좋은 선배들(의대생들)과 성공한 개업의들이 들려 주는 충고와 조언을 듣고 "이게 내 길이었구나!"하는 반가운 각성이 밀려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로 탐색에는 그래서 구체적인 경험담, 현장감 있는 정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의 부제는 "의사, 의사를 말하다"인데요. 모두 아홉 분의 글이 실렸습니다. 여섯 분은 현직 의사, 한 분은 법의학자, 한 분은 직업 전문가(고용노동부 공무원), 그리고 한 분은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독자인 제 생각 같아선 의대생들의 합격 수기가 좀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도 싶었지만, 이 책은 "직업" 자체를 탐방, 분석하는 목적이지 입시용 서적이 아니므로 이 정도가 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서울대 의대를 합격할 정도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 아찔한 느낌이 우선 들 것 같습니다. 의예과 1학년 신재문(19)은 먼저 "수학 공부를 생활화하라."고 조언합니다. 많은 이들이 수학이라고 하면 대뜸 어렵다,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떠올리는데, 일단 그런 부정적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야 이 과목에 대한 정복... 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접근이나 "교분"이 가능하죠. 수학은 사실 의대를 들어가고 나면 쓸 일이 적어지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접하기로는 의사 선생님들도 특히 응급 환자를 다룰 때 무슨 처방부터 써야 할 건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단계부터 밟아야 환자가 가장 덜 아파할지를 결정할 때, 이 "문제 풀이, 최적해 도출" 사고방식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부터 먼저 손 대면, 환자가 아파서 누워 있지를 못한다고." 일류 의사는 기계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응을 보여야 한다는 알고리즘만 머리에 채워 넣는 게 아니라, 여러 징후가 한꺼번에 닥쳤을 때 각각의 단계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것도 갖기 쉬운 건 아니지만)만으로는 부족하죠. "사랑"에도 지혜가 깃들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박주연 선생님은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입니다. 이분이 인턴 시절 쓴 일기의 한 토막을 소개하는데, 독자로서 해당 대목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느껴지더군요. 다 귀한 집에서 자란 따님들인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문 기능을 습득하려니 저렇게 잘 시간도 없이 배우고 수련하느라 고생하는구나.. 그러나 산부인과야말로 우수한 인력들의 세심한 손길이 특히 요구되는 분야입니다(어디인들 안 그런 곳이 없겠습니다만). 아직 젊으신 분인데도 박 선생님은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전부다."라는 의젓한 말씀을 하십니다. 근래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산부인과가 기피되는 과목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렇게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분들이 계속 늘어나야겠고, 이런 책을 읽으며 돈보다는 보람으로 자신의 장래를 설계하는 학생들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박 선생님이 인용하신 좋은 말, "직업은 꿈이 아니다. (그 직업을 갖고 나서 어떻게 살지가 꿈이 되어야 한다). 꿈이 만약 그저 의사라면, 의사고시 합격하고 나서 꿈이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만다." 어떤 의사로 남은 긴 인생을 살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자는 뜻이겠는데, 모두가 마음에 잘 새겨야 할 것 같네요.



윤준택 원장님은 페이닥터로 2년 정도 경력을 쌓고 개원하신 분입니다. 이분은 해외 봉사 활동에도 수 년 간 몸소 참여하신 경험담을 털어 놓으십니다. 안과의사인 그는 비전케어라는 봉사 단체에 몸을 담으셨다고 하는데요. 백내장에 걸려 실명 직전이었던 다롄의 노인, 캄보디아의 어느 가난한 소녀 등이 그가 도움을 준 환자들로 소개됩니다.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고, 많은 꿈을 품고 키워나갈 어린 나이에 포기와 좌절이라는 아픈 상처를 걸머지어야 할 소녀들에게 다시 희망을 찾아 주는 건, 세상에서 의료인 말고는 누가 대신 수행할 수 없는 크나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재진 한림대 교수님은 초등학생인 두 딸을 둔 흉부외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을 때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고백하시는군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분과는 의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영역이 늘어나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마주칠 수 있는 난관도 덩덜아 증가할, 책임이 막중한 분야라는 거죠. 심장과 폐는 인체에 있어 가장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다루기가 복잡하고 환자의 고통도 그만큼 더 절박한 기관인데, 이런 까닭에 어지간한 사명감 없이는 배겨날 수 없는 하중으로 전문의를 짓누르는 전공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교수님이 강조하는 건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이며, 이것이 없이는 의사가 자신의 소명을 다할 수 없다는 자못 엄숙한 고백으로 들립니다.

최유경 원장님은 연년생 두 딸을 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입니다. 이 책에 사진이 실린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선량한 분위기라는 게 공통점인데요. 꼬마들을 키우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의사라서 가장 좋은 점"이라면 서슴없이 "내 아이들이 아플 때 정확하고 빠르게 돌볼 수 있다"는 점을 꼽으십니다. 한국에서 전문직 여성들이 겪는 이중고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고민인데요. 최 원장님은 그나마 "내가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기에 고충이 반으로 줄었다"며 웃으시는군요. 이처럼 내 아이를 다루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린 환자들을 챙기는 의사 선생님들이 늘어갈 때 사회와 국가가 보다 살기 좋고 복리가 증진될 수 있습니다. 시민으로서 너무 감사할 뿐이죠.



외국 드라마를 보면 "병리학자(영드 셜록에서 몰리 같은 사람)"와 검시관(코로너), 법의관 등의 용어가 다 다르게 쓰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의사를 보조하는 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코로너 중에 전문 지식이 빈약해서 주위로부터 경멸 받는 이도 나오는데, 그런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는 뜻도 되죠. 이상한 경북대 교수님은, 요즘 특히 CSI 같은 드라마 덕에 주목을 받기도 하는 이 법의학 관련 종사자들에 대해 의문을 잘 풀어 주십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이런 법의학 전문가가 되려면, 당연하지만 의사로서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다른 의사와 차이가 있다면, "전문의 취득 코스"가 없다는 정도인데, 이 역시 얼마 안 있어 마련될 전망이 크죠. 선생님은 자신의 직분상 1) 교육, 2) 병원 진료 3) 연구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여기까지는 다른 의대 교수님들에 공통되는 애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4) 자주는 아니라도 사법 당국으로부터 요청되는 부검까지 업무의 일환으로 책임지니, 이 점이 다른 분들과 차별되는 고충이겠지요. 역시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이 아니면 수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부검이란 "변사체", 그것도 유별나게 큰 손상을 입은 시신이 대부분이겠는데, 일반인이라면 이를 흘낏 보는 체험만으로도 충격이 올 만하죠.

책의 마지막에 인터뷰이로 참여하신 허희진 전문의(동국대 일산병원)께서는, 어려서는 막연히 "나이팅게일의 모자와 에이프런이 예뻐서" 의료인을 꿈꿨으나, 교사이신 아버지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의 도시락을 싸 주는 모습을 보고, 사회적 약자의 구호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 의식을 다지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시네요. 버젓한 전문의로서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해 내는 그녀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힘든 건 공부"라며 "다시 돌아가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에 대해 손사래칩니다. 사회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선 이런 각별한 소명의식을 갖고 직분에 임하는 분들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직업인들이 늘어나려면, 어려서부터 확고한 목적 의식이 교육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배양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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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 교과서 - 기내식에 만족하지 않는 마니아를 위한 항공 메커니즘 해설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9
나카무라 간지 지음, 김정환 옮김, 김영남 감수 / 보누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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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라이트 형제에 의해 발명된 지 근 백 년이 지났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만큼 인류의 뇌리, 가슴에서 오래 자리하고 성장해 온 꿈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는 두 가지 점에서 미스테리한 구석이 있습니다. 1) 대형 여객기, 초음속 전투기까지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그 비행 원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전문가들조차) 어딘가 좀 복잡해진다. 2) 아직도 그 "자가용"화가 요원하다. 1)에 대해서는 비행기가 특히, 자연과학보다 실용적 공학의 발전에 더 직접적으로 기댄 발명품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물론 거의 모든 기계, 시설, 발명품은 둘 이상의 과학 원리에 의해 운용되고, 과학자는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지 기계 만드는 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정말로,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숱한 시행 착오를 거듭하다 "어 이러니 되네?" 같은, 현장의 땀과 노고의 산물 그 성격이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고층 건물이 그 엄청난 하중을 견디고 지속되는 이유, 디젤 기관이 상상을 초월하는 질량을 쾌속으로 운반하는 이유 등은 반면 정말 몇 가지, 몇 가지 심원한 과학 원리(중고딩들도 다 배우는)로만 설명(설명만큼)은 가능합니다. 이론상으로도 쉽게 납득이 잘 안 되는 게 비행기의 운항 원리라는 뜻입니다.

이 책은 그런 걸 가르치는 내용은 아니고요. 만약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건 비행기의 조종간을 직접 잡을 일이 있다면, 그게 자동차를 모는 것과는 어디서 어떻게 다른가(대부분 자동차 운전 면허는 있겠으므로), 무슨 장치와 핸들이 무슨 기능을 각각 떠맡고 있는가, 혹시나 반드시 유념해야 할 기술적 원칙과 자연과학 원리(비행기 제작에 관련된 게 아닌, 운행과 조작에 필요한)가 있다면 무엇인가 등을, 시원시원한 그림과 함께 가르쳐 줍니다. 그걸 어디다가 써먹을까 싶어도,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인데요. 사람이 꿈을 품고 한번쯤은 이렇게 기능을 써먹을 날이 있겠거니 진지하게 계획을 가져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미래의 충실도 면에서 제법 큰 차이가 난다고 말이죠. 심지어 이런 기술은, 언젠가 내가 자가용 비행기를 가져야지 하다가 정말 굴리게 되는 그런 순간 말고, 여객기에 탑승했다가 불시착이라도 했을 때, 아 저번에 그 책 알차게 읽었으면 그나마 대처가 지금 쉬울 텐데, 같은 아쉬움으로 만날 가능성이 더 크죠. 그게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고요? 어차피 확률은 탁상 위의 계산 테마일 때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49%든 0.0001%이든). 닥치고 나면 비로소 100%의 절박함으로 당사자의 코 앞에 디밀어지는 거죠. 흠.

이 책은 비행사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 혹은 대체로 출발 전에 동료(주로 동료가 있을 법한 인력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책입니다)들과 어떤 루틴을 거치는가 등에 대해서도 곰살궂은 설명을 베풀고 시작합니다. 그 후, 비행기에 탑승하여 무슨 장치를 어떻게 점검하고 어디에 눈금들을 둔 채 "띄워야" 하는지 차근차근 가르치네요. 사실 비행기 운전을 책으로 배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운전은 그게 경차 운전이라 해도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 뭘 만져 봐고(물론 현행법에 저촉 안 되게) 밟아 보고 도로를 달려 봐야 그게 몸에 배는 기술이지, 이론으로 만족하고 넘어갈 게 따로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런데 이 책을 넘기면서 느낀 건, 정말 매뉴얼 단계에서라도 무슨 개념을 잡고 시작해야 한다면, 실물로 계기반을 만지기 전에 이런 책, 이렇게 쉽게 가르쳐 주는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거죠. 비행기 모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따로 있어서 발품 팔고 찾아가는 게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자동차는 엔진 추력의 크기를 몰라도 비탈길을 모는 데 지장이 없지만(그렇죠? 그냥 몰기만 하면 됩니다) 비행기는 추력의 크기를 알아야 뜰 수가 있다." 저는 이런 문장이, 독자에게 무엇, 아주 복잡한 그 무엇을 알려 주는데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추력"은 비행기가 나는 데 필요한 4대 힘 중 하나입니다. 이상하게 이런 건 상식이라고 생각했는지 이 책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라 제목 그대로 비행기를 모는 법을 가르쳐 주는 요령을 담았다"고 생각한 저자의 실용적인 태도일 수도 있죠. 자동차에서도 엔진이 중요합니다만 비행기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제트 엔진"을 달고 있음은 또 우리가 다들 아는 상식이죠. 자동차는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거의 모든 아날로그(혹은 디지털) 지침을 두고 주인과 소통하지만, 이 추력을 직접 지시하는 장치는 없다고 합니다. 이는, 오너 드라이버의 경우 그저 소비자일 뿐이지만, 비행기 조종사는 대부분이 엔지니어, 혹은 그 이상의 소양을 쌓은 이들이기 때문에 다른 장치를 보고 "추측(이 책의 표현입니다)"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장치들은 N1(팬 등의 회전도를 잼)계, EPR계(엔진의 압축도를 잼) 두 개라고 하는군요.

비행기 아니라 어느 엔진이라도 흡입, 압축, 폭발, 배기라는 4공정을 거치는 건 공통입니다. 중학교 때 기술가정 시간에 이걸 배우긴 했는데, 나중에 아무 쓸모도 없고 입시에도 도움 안 되는 이런 걸 뭐하러 가르치냐고 원망하며 지옥 같은 암기를 했습니다만, 그걸 이렇게 다시 마주치는군요. 지식이란 뭐라도 머리에 넣어 둬서 해로울 게 없습니다. 머리 나쁜 사람은 탓해야 할 자기 머리가 아니라 지식을 엉뚱하게도 적대하기 마련이지만("저딴 건 필요없어!" "응, 너한테는.").

2장에서 조종 장치의 점검과 여러 계기반 세팅을 가르칩니다만, 추력 세팅이 그만큼이나 중요한지 (관제 당국으로부터 이륙 허가가 떨어지면) 다시 한 번 이를 살피고, 본격적으로 "이륙에 알맞은" 추력 게이지로 올려 놓을 것을 지시하네요. 이게 제트 엔진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소형 경량이지만(비행기에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겠습니까)" 회전수의 가속이 느린 편이라고 합니다(제일 빠른 건 오토바이 엔진이죠). 이 때문에 아이들(idle) 상태에서 바로 가속이 이뤄지면, 이상(異常) 연소를 일으킬 위협이 높다는 겁니다. 왜 영화 같은 데서 멀쩡한 비행기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고 엔진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까 했는데 말이죠. 다 그게 비행기 모는 걸 어깨너머로나 구경한 작가들의 나름 능력 발휘였다는 걸..

자동차의 선회는 그저 핸들(휠)만 꺾으면 됩니다만, 비행기의 경우 좀 더 복잡한 조작 메커니즘이 끼어듭니다. 이 저자는 참 적절하게도, "(심지어) 종이 비행기의 경우도 좌우 균형이 안 맞으면 날지 않는다"는 예시를 들며, 조종간과 사이드스틱의 조작을 통해 "양력"과 "항력"의 재배분으로 방향을 트는 그 원리를 잘 설명해 줍니다. "양력"은 양력이라지만 항력이 왜 나올까 했는데, 바로 이처럼 방향 선회에 필요한 힘의 원리로 기능합니다. 힘의 본성을 규명하는 건 자연과학자들의 몫이지만, 현실에서 성질이 다른 두 힘(혹은 네 힘)이 어떻게 얽히고 합력을 이루며 상호작용하는지 예리한 센스를 통해 알아내는 건 엔지니어들의 역량입니다.

언제나 비행기의 속도는 마하(음속의 배수)로 단위를 잡죠. 이 마하는 사실 "마하"가 아니라 철학자 "마흐"의 이름에서 딴 것인데(외래어 표기법 개정 전엔 "마하". "바하" 등), 이 사람의 철학적 업적은 아인슈타인의 연구에도 직접 영감을 줬습니다. 비행기의 속도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소리와의 상대 속도로서만 수치 측정이 쓸모가 있습니다. 음속의 몇 배(물론 1 미만일 수 있습니다)이냐가 조종사로선 유용하게 쓸 정보라서, 구태여 초속 340m/s니 뭐니 하고 환산을 안 하는 거죠. 이처럼 이 책은 기술적 지식으로서의 비행기 조종 뿐 아니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자연과학적 기초 지식이 이런 첨단 기술 속에서 어떻게 필수 부속으로 활용되는지 생각할 여지까지 독자에게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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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이 아닌 해암으로 다스려라 - 현명한 암치료 선택을 위한 통합의학 가이드
윤성우 지음 / 와이겔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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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으나 어디 저 외딴 산골에서 혼자 요양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려 애 쓰고, 자신의 지난 과거와 화해하면서 암이 저절로 나았다는 회고가 자주 나돕니다. 물론 그 중에는 못 믿을 과장이나 허풍도 많지만, 여튼 암이란 질병이 그 암만 집중 상대해서 격파한다고 금방 낫거나, 원상의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는 질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설사 암이 나아도 몸의 다른 기관이 망가지거나, 얼마 안 되어 재발하는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서구식 현대의학이 취한 전략은 "항암" 즉, anti-cancer treatment인데, 이게 기본적으로는 대증(對症) 요법이라 사람의 몸 근본에서 싹트는 어떤 병인을 제거하지는 못한다는 거죠. 하긴 그렇게 따지면 거의 모든 현대의학의 치료법이 (외과시술을 비롯해) 대증요법인데, 총체적 불신을 버리지 못한다면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 드러눕는 게 고작 아닌가, 뭐 이런 반론도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암이란, 뭔가 다른 병들과는 접근을 달리해야 할, 마음가짐이라든가 스트레스 많은 환경, 체질의 근본 요인과 관계 있는 병 같습니다. 제가 1년 몇 개월 전에 읽은 책 중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주장도 담은 게 있는데, 이게 성격이라든가 암을 키우는 체질 따위를 의미하는 걸로 밝혀질지 더 지켜 봐야 하며, 만약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복이 어려운지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겠지요.

이 책은 한국에서 한방의학 분야에선 최고의 권위를 지닌 윤성우 박사님이 지은 책입니다. 그간 통합(통합이라 함은 양방, 한방 학제간 연구) 암학회 등에서 확고한 명성을 남기셨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명의로 소문난 분이시죠. 이번에 대중을 위한 안내서로는 이 책을 처음 펴내신 셈인데, 첫째 체계적인 정보와 자기성찰적(객관적) 관점, 둘째 일반인이 알기 쉬운 설명, 셋째 대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유병 과정 해설과 대응에 대한 충고 등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선생님이 염두에 두는 첫째 전제는 "한방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은 큰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온화하신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과 어투는 책 어디에서건 괜한 대립적 언사를 자제하십니다. 한방은 귀납적으로, 다양한 임상 체험과 구체적 처방의 경과를 보고 오랜 시간 지혜가 축적된 의학이지만, 서양 의학은 자연과학에서의 확고한 성과, 의심할 수 없는 법칙(주로 화학 관련이겠습니만)을 토대로 "연역"되어온 학문 체계라는 겁니다. 귀납과 연역은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대체하거나 부정할 수 없고, 상호 보완적으로 진리 탐구에 병용되어야 할 방법론입니다. 의학이란 환자를 위해 적용되고 발전되어야 할 수단이지,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지식과 요법인 양 통용될 수 없다는 거죠.

한방이 본디 성격과 기질, 마음가짐의 요인을 강조하긴 하지만, 서양 의학도 예컨대 막 실려온 환자에게 "절대 안정 요망" 같은 추상적 당부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자께서는 "비록 후천적 요인이 암 발생의 8, 90%를 차지한다고는 하나, 아직 이론적으로 명확히 환경 요소와 병발의 인과과계가 구명된 건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십니다. 저자께서는 서양 의학계의 최신 동향 중 일부를 소개하며, psycho-neuro- endocrino- immunology라는 신 분파를 거명합니다. 앞의 psycho-라는 접두사가 중요한데, "정신"이 신경, 내분비, 면역을 일괄하여 영향을 끼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분야입니다. 마음가짐의 어떤 상태가 특정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며, 이것들이 인체에 어떤 총체적 영향을 남기는지 밝히는 게 목적입니다. 그렇고 보면 윤 박사님 같은 분들의 업적이 서양 의학에 일정 부분 자극을 준 게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더 인체와 의식에 스트레스를 안긴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막연한 스트레스라는 개념에 상당히 적절한 병인 포섭을 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황기(黃芪. 두번째 글자는 "단너삼 기" 자 입니다)란 약재는 이미 서양 의학에서도 채택했다고 합니다. 논문(<Cancer Letters>에 수록)에 의하면 직접 암세포에다 독성 효과(cytotoxic effect)를 내는 게 아니라, 이런 암세포의 확산을 막는 정지 효과(cytostatic)를 보게 하는 처방으로 쓰인다고 하는군요. 다만 이 역시 저체중자에게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공식으로 인정한 효능 중의 하나로, 한방이 취하는 태도가 양방과 어떻게 다른지를 단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약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책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항암은 말 그대로 암과 맞서 싸우며 암의 덩어리를 파괴, 소멸시킨다는 겁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침투해 온 병원체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가 타당해도, 어쩌면 나의 타고난 체질과 지속적인 습관이 몸 안에서 만들어낸, 내 몸의 일부나 다름 없는 게 어쩌다 혹을 키워 암이 되었다면, 이런 상대를 놓고서는 "잘 달래어 스스로가 무장 해제를 한 후 몸의 원 성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 발본색원 처방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암과 싸우지 말고 화해하며 같이 살 생각할 하니 낫더라"는 고백을 하는 것도 많이 들었습니다.

양한방 협진시스템도 많은 권위자들이 환자에게 추천하는 방식입니다. 저자께서 몸 담는 경희대에 잘 마련되었다고 하시는데요. 경희의료원이 이런 통합적 접근을 선구적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잘 발전시켜 온 내력이 있기도 합니다. 반면 "한방 단독 치료"의 유효성 역시 저자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방법 중 하나로 권하시는데요. 한방에서는 본디 종기를 "반쯤만 죽여 놓은 후" 나머지는 살려 놓은 채 체질의 강화에 보다 주력하는 방법을 취한다는 겁니다(역시, 항암이 아닌 해암이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전략입니다). 적극적으로 암을 공격하는 걸 "공법", 반쯤 죽여 놓은 후 약해진 신체의 기를 살리고 체질을 보강하는 걸 "보법'이라고 붕른다는데, 저자의 결론은 "단독 한방 치료가 더 적용확대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보완의학, 대체의학, 통합의학 등에 대해 저자는 엄격한 준별을 행합니다. 특히 대체의학은 아직 허황하고 위험한 부분이 많으며, 검증 없이 통용되는 각종 약재도 그 복용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의술은 인술(仁術)이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저자분의 여러 충고, 특히 마음가짐이 바르고 남 탓을 하는 잡된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는 말씀은, 사람 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환자의 몸이 낫는다는 원칙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병이 낫는 건 그게 기적이 아니라, 결국은 당사자 자신이 병을 키우기도 하고 낫우기도 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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