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신화여행 - 신화, 끝없는 이야기를 창조하다
강정식 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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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믿음, 근거 없는 주장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지배하는 것." 신화(myth)의 정의(定義)에는 (아마도 후대에 추가되었겠으나) 저런 풀이도 끼어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나 독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계몽된 정신을 단련하길 원하는 이들은, 신화를 그저 흥미를 돋우는 이야깃거리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티프로만 받아들입니다. 재미있게 여길망정 진지하게는 수용하지 않습니다. "단군 신화" 같은 것에는 그나마 재미도 없다며 형식적인 경의만 표할 뿐입니다. 우리가 지적인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은 그저 "역사"이며, "전설"과 "설화"는 인문, 문학적 교양의 원천 이상이 아니라고 쉽게 봐 넘깁니다.

물론 신화를 그렇게만 활용하거나 이해해도,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유용한 문화적 자원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조상들, 혹은 다른 겨레의 선조들(아마도 현명하고 사려깊기까지 했을)이 남겨 준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은, 그저 듣고 나면 마음이 넉넉하거나 깨끗해지는 어떤 감동과 교화의 매개일 뿐이 아니었습니다. 신화는 우리 정신 깊은 곳에 자리한 남모를 특질, 개성을 파악하게 도와 줍니다. 게다가 신화는, 명확한 모습으로 채 기록되지 못한 아득한 옛적의 역사 몇 자락을 에두른 말로 일깨워주는 스승이기까지 하더군요. 이 책을 읽고 독자로서 까맣게 몰랐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엄청 많이 접했을 뿐 아니라, 고갱의 유명한 그림 제목처럼,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깊고 심각한 고민을 해 보게도 되었습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미국-서유럽 중심으로 본격화하면서 우리 나라도 자신의 시원을 추적할 때 자연스럽게 남방계, 북방계 하는 혈통을 따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G, A, T, C 라 이름 붙은 이런 단백질 계열 분석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절양장의 혼란만 가중하자, 지성계는 자연스럽게 더 익숙한, 그러나 소홀히 다뤄 왔던 신화의 영역 탐구로 그 방법론의 무게 중심을 옮기게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신화의 여러 화소(話素)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면, 민족과 종족 간의 근연 관계 같은 난제에서 의외로 쉽게 해답이 얻어지기도 합니다. 김헌선 교수님의 명쾌한 프레임 설정, 즉 무신론 대 유신론의 논쟁 중 에드워드 윌슨의 입장이 "신화의 해석을 통해 많은 난제가 해명 가능하다"라는 정리는, 꼭 도킨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라기보다, 도구로서의 신화 탐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흥미롭고 유익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지에 대해 보다 후련한 설명이 되었습니다. 배설, 성관계, 혼인, 출산, 번식에 대해 각국의 신화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특히 아시아의 남방계 여러 신화에 대승불교적 요소가 어떻게 끼어들었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지적이 유익했습니다.

경기도 오산 같은 곳이 독자적인 "창세 설화"를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독자로서, 박종성 교수님의 "시루말"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흔히 큰 활을 잘 다루어 "동이(夷)"족이라고 이름붙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비류와 온조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 주무대가 되었던 경기 일원에 유독 "쇠로 만든 활" 화소가 널리 퍼져 있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은 오해와 왜곡이 끼어들기 쉬운 작위적 문자 풀이보다, 풍성하고 직접적인 아날로그의 향연인 신화, 그 이야기의 몸뚱아리에 무슨 무늬가 새겨졌는가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주도는 남방계 신화가 원형이 훼손되거나 다른 모티브와 타협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보고와도 같은 지방이죠. 사실 저로서는 그동안 할머니 등이 재미있게 들려 주신 이야기 보따리 정도로만 이들 설화를 이해했고, 그나마 마음에 새기지도 않았습니다만, 이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근원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 소중한 신화라는 점을 강정식 소장님의 이 강연 기록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래 아 모음 발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제주도의 방언은, 정확한 발음으로 읽힐 때 또다른 의미를 드러내는 여러 신화의 개념과 이름들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이 파트 뿐 아니라 다른 장에서도 아래 아 표기가 그래야 할 곳에서 각각 정확하게 이뤄져서, 강연자가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가 더 잘 와 닿았습니다. 장례와 같은 흉사를 시급히 처리하기 위해, 부자와 빈자가 차별을 두지 않고 제기(祭器)를 공유했다는 설명에서, 신화가 어떻게 종족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지 잘 배울 수 있었네요.

오키나와는 우리보다 규모가 훨씬 작긴 하나,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꾀하고자 여러 설움을 겪었던 동병상련의 역사를 공유하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탄생, 민족 시조의 남매혼(婚), 태양, 군주의 농사 지도 등 신화의 여러 모티브를 통해, 류큐 인(엄밀하게는 범위가 불일치합니다만)들의 심성과 심상, 이상과 좌절 등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일본과 그토록 오랜 동안 대립하면서 남방계 한 지류의 특징을 간직하려 애쓴 흔적을 보며, 우리와 어디가 닮았고 또 다른지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더군요. 꼭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관계를 떠나, "국가"라는 독점적 폭력 집단이 인간 본연의 생존에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를 잘 깨우치는 게 그들의 신화였습니다. 이는 또한, 신화가 열심히 (정치적)현실과 소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덧입고 성장하는 좋은 예인 듯합니다. 반미 운동, 그리고 반일 운동의 한 중심에 서 있는 게 저들 오키나와의 사회 단쳬이며, 그들 신화의 새로운 의미가 구명되는 것도 이들의 노력 덕분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매장, 농경, 식인 등은 여러 지점에서 서로를 연결하며, 각국의 신화에서 공통점과 분기점을 형성하는 화소입니다. 인도네시아의 하이누웰레 신화는 이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신화들에까지 전면 재해석과 연계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소스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 5강에서는 하이누웰레의 분석을 통해,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그리스의 크로노스 신화 등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체험을 독자에게 선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계모-친자-의붓딸의 오랜 갈등을 다룬 신데렐라 설화의 근원까지 파헤치며, 인류가 그 까마득한 옛적 어디서 서로 만나고 다시 흩어졌는지에 대해서도 건강한 영감을 자극하더군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을 넘어 세계적 성공을 거둔 데는, 그가 자국뿐 아니라 세계 신화의 본질을 꿴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서 우리는 신화라는 문화 유산이 단지 각 민족의 배타적 자산일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주고 꾸어 받은 공통의 보고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평화와 박애의 정신을 작품 속에 담아 온 그는, 신화야말로 바벨 탑 이래 말과 글이 서로 달라진 인류가, 아날로그식 소통을 통해 다시 한 아버지의 자식들임을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아고라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파편적 개념이나 부호의 교환으로는 형식적 화해에 그치는 게 고작입니다. 마음에 쌓인 걸 풀려면 "속을 탁 터놓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속"이 어떤지는 피상적 기계적 논리적 사고로는 자신의 사정도 알지 못합니다. 나를 모르는데 타인, 이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속"에 감춰진 무의식을 탐구하는 데 신화가 큰 도움을 줍니다. "신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와 나의 사연이 의외로 많이 닮았음을 깨우칩니다. 많이 닮은 우리가, 더 이상 누가 다르고 누가 틀렸다며 서로 싸워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의 웹툰이 세계적 인기를 모으는 현실은, "아날로그식 이야기"가 가진 무서운 힘, 따뜻한 힘을 실감케 합니다.

"눈은 다른 것을 보지만,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라는 라틴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문명의 힘을 입어 자연을 지배하고 효율적인 사회 제도를 만들었지만, 짐승과 인간의 경계를 막 넘어설 무렵에 대한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데다, 인종과 민족으로 편을 갈라 잔인하고 격렬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자신이 낀 패의 시원에 대해 거의 무지합니다. 이뿐 아니라, 나 개인의 무의식에 어떤 욕구, 원한, 상처, 만족, 죄의식, 감사함 같은 게 자리하는 지 거의 무시한 채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똑똑한 척, 모든 것을 아는 척 행동하고 착각하죠. 우리는 어리석은 선조들과 달리 현명하고 과오를 피해 가며 환경을 지배한다는 양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폐기해야 할 "신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얼핏 보아 엉성하고 모호한 이야기로 가득한 신화는, 우리의 한 처음이 어떤 모양이었으며 우리의 현재가 어떤 색깔이고, 우리의 앞날이 어떤 방향일지 넌지시 일러 줍니다. 나의 조상이 결국 지금의 나 자신이며, 그 면면한 세월 동안 계승된 온갖 가능성과 잠재적 자질 중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묻은 채 지나쳤는지 가르치고 가리킵니다. 겸허히 나 자신의 근원과 질료를 더듬고 살필 때, 우리는 앞날에 놓인 문제와 장애를 더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화가 곧 인류 문명공통의 블루 오션"이며, "신화와 현실이 소통하고 서로를 살찌워야 문화와 사회의 앞날이 밝을 수 있다"는 진단은 실로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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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인 아트
배정원 지음 / 한언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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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존재하는 외계의 표면을 모사(模寫)하는 게 본연의 기능이나 존재 목적이라기보다, 나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온갖 욕구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우선입니다. 만물의 영장이자 신(神)에 맞닿으려는 심원한 희구를 가진 우리 인간이지만, 무엇을 제 붓끝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대뜸 먼저 떠올릴 만한 건 번식의 욕구, 그리고 그 이전 사출과 합일의 본능일 것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아득한 시원부터 창작된 예술 중 혹 오늘까지 전하는 게 있다면, 그건 대부분 교접의 환희와 만족을 담은 것들입니다. 따라서 꼭 아트 속에 성(性)이 있다고 할 것만이 아니며, 태초에 성(性)이 있었기에 그 부산물로 비로소 예술이 태어났다고 말 못 할 바 없습니다. 나아가, 성(性)의 현상 뿐 아니라 기술(art)을 담은 게 예술(art)이라는 둥, 서로 물고물리며 선후를 다투는 무익한 말장난의 뫼비우스띠를 펼침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회화와 조소의 걸작은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라 할 만큼, 인간 나신의 이상형과 성행위의 한 단면을 인기리에 소재로 채용합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보아 온 명작들도 선명한 도판으로 많이 수록하지만, 최소한 저는 처음 보는 걸작들도 눈 휘둥그레지게 지켜 볼 매력을 듬뿍 담아 절묘한 감각으로 독자들에게 제시하더군요.

네덜란드는 그 상업적 흥기가 이미 석양을 넘어간 후에도 반 고흐 등 천재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는데요. 그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나 여전한 필력으로 지난 시대의 화법 그 이상태를 잘 구현한 아리 셰퍼의 걸작이 p72에 나와 있습니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신곡> 지옥편의 주요 에피소드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 전체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스캔들이었죠. 저자께서는 단테의 태도에 적극 감정 이입하여, 문예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비련의 주인공들에 대해 매우 동정적이시지만, 사실 엄연한 법적 혼인 관계를 저버리고 가정을 파괴한 당사자들에게 마냥 너그러울 수도 없습니다. 여튼 도덕과 성(性)은 대개 다른 트랙을 타게 마련이라, 저 역시 이 생생한 그림(당대 주류 화풍과는 다소 이격된) 속의 "선남선녀(저자님의 표현이죠)" 그 반(半) 나신과 애절한 눈빛에 깊이 집중할 수밖에 없더군요. 이 그림에서 히트는 사실 뭘 단단히 심판하려는 듯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는 양인, 다 라미니와 말라테스타가 어둠 속에 선 그 모습이라고 봅니다.

포드 브라운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그만의 개성으로 치명적 사랑의 매혹을 표현합니다. 결혼만 미친 짓이 아니라 그에 앞서 사랑 혹은 어떤 이름이 붙든 일체의 연정이 다 광기의 발로입니다 ㅎㅎ.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 모든 사랑은 다 치정인지도 모릅니다. 베로나의 두 명문가 자녀들이 손톱만큼의 이성이라도 갖췄다면 그런 무모한 애정 행각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비극적 결말이 빤히 보이는 이런 충동, 그리고 결심이 아무리 어린 나이인 그들이라 해도 "다른 옵션"을 생각 못 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았을 겁니다(성장 환경도 좋고, 대사나 다른 행동 묘사를 보면 충분한 지성을 갖췄음이 짐작되죠). 저자께서는 특히 "이별의 분주함과 애절함"이 잘 표현되었다고 지적하시는데, 이 그림에서 로미오는 특히 비장하고 무모한 표정이며, 줄리엣은 딴 세상으로 가 버린 듯 환희와 실신의 경계에 선 그 얼굴선이 돋보입니다. 물론 이별이라고 하면 희곡을 읽은 이들은 다 알듯 "그 첫날밤 후의 이별"임이 당연한데, 화가는 특히 이 점을 강조함으로써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신"한 양인의 내면을 부각합니다. 이 책은 모든 챕터에서 주제인 작품을 두 페이지에 걸쳐 싣고, 작가님의 의도를 특별히 프레임화하여 결론과 함께 제시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건 더 야하게 보이고, 어떤 건 다시 전체 속에서야 맥락이 잡히는 등 그 효과가 일관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이 책에도 잘 설명되어 있지만 "라파엘 전(前)파"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이 이 포드 매덕스 브라운입니다. 미술 주제가 아닌 번역서, 예컨대 장르 소설 중에서 매우 자주 오역되는 개념이기도 하죠.

귀스타브 쿠르베는 19세기 후반 사실주의의 고유 가치를 굳건히 지킨 거장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현대적 성 담론에 얼마나 선구자적 각성을 일찌감치 이루신 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정치적으로는 대단히 진보 성향), 최소한 그는 성(性)의 한 충격적 국면에 담긴 진실을 잘 포착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그림은 그저 춘화처럼 보이고, 이 책에 실린 <잠> 역시 어지간히 깨인 정신의 소유자에게도 일단은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긴 합니다. 저자께서는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으며 또 그게 건전한 시각이긴 하지만, 여튼 왼쪽 여성분은 소위 "부치"스러운 특징이 많이 드러나고는 있습니다(발달된 근육이라든가 짙은 피부색, 단호한 듯한 표정[비록 수면 중이지만], 짧은 머리 등). 사실 이 그림은 보는 입장(화가 포함)에서 관음의 색채가 너무도 노골적이라, 해석의 힘을 빌려서도 현대적 성 담론을 개입시키기가 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로운 공존이야말로 모두가 수용해야 할 궁극의 가치라는 주장이야 그 타당함을 새삼 논할 필요도 없겠지만.

틴토레토의 <묙욕하는 수잔나>에서 그 피사체는, 성경 속 기술로도, 또 (작가님의 해석처럼) 작품 속에 명백히 드러난 의도로도, 관음이라는 남성적 폭행의 희생자입니다. 책에도 나와 있는 설명처럼, 수잔나는 화려한 장신구를 (알몸 목욕 중에도) 착용하고 있으며, 그 표정이란 세상에 근심이라곤 없는 지극한 평온을 구현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 표정에서, 앞으로 닥칠 아주 귀찮고 불쾌할 사건을 깜깜히 모르는 무지를 발견하기보다(그런 걸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최종의 승리를 이미 예견하는 듯 지혜로운 여성 특유의 여유까지 느꼈습니다.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도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대로고 말이죠. 반면 "문제의 원로"는 대상이 아마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각도로 고개를 숙이는 중인데, 이는 이미 더러운 욕구가 일단 충족된 후여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패배가 예견된 범죄자의 좌절이라든가, 처음부터 세상을 향해 고개를 못 들 파렴치한임을 스스로 자백하는 모든 심리의 압축일 수도 있습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작품만큼이나 그에 얽힌 배경 에피소드가 더 유명하죠. 제가 참 재밌게 느껴진 게, 도대체 작품 속의 나신이 아름다우면 그로부터 유발될 만한 충동이 훨씬 강할 텐데도(말이야 바른 말이죠) 사람들은 표정 관리를 한 채 "예술성"에 짐짓 찬탄하고, 이처럼 그닥 반듯하지 못한 외관의 여성이 "벗고 있으면", 비로소 "그림이 외설적"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겁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이처럼 자의적일 뿐 아니라, 거의 폭력적으로 마구 재단되기까지 하는데, 여기서 저자분이 내리는 결론이 흐뭇합니다(구체적인 건 직접 읽어 보시고요). 마네의 진짜 공적은 이처럼, 명화와 예술을 통해 우리들 자신의 정직하지 못한 품성을 고발하고 자성하게 한 데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성행위의 쾌락도, 예술 작품의 바른 감상도 나 자신에의 진솔한 응시가 필수 선행 단계라는 데에 교집합이 만들어지기도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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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전 2 - 위원회, 개입을 시작하다
청빙 지음, 권미선 그림 / 폭스코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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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평범한 중고딩이라도 일단 과거로 거슬러올라가기만 하면 초인으로 군림할 수 있느냐. 이 문제는 그리 쉽게 단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물론 아득한 미래에서 온 자는 앞 시대의 첨단 교육과 기예를 익힌 자보다 더 앞선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그런 능력 중에는 인프라가 깔려야만 제 효과를 낼 법한 게 상당수죠. 저는 예전에 구대성 선수가 일본, 미국 등 선진 리그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난 후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할 때, 타고난 능력에다 경험, 기술까지 익혀서 더 좋은 활약을 보일 줄 알았는데, 꼭 노쇠해서라기보다(정력도 대단한 선수라 노쇠화라는 게 큰 의미가 없음) 몇 달 국내 리그에서 뛰고나면 그 장점이 다 사라지고 적응과 평준화가 동시에 이뤄진다는  본인의 토로처럼, 그게 꼭 그렇지 않더라는 겁니다.

이 소설에서 진용운이 당대의 효웅인 유비의 군사(軍師)로 일약 발탁된 건, 그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에 힘 입은 게 아니라, 그만이 가진 능력에 더 크게 기댄 결과입니다. 첫째로 그는 순간기억능력이 탁월하여, 예컨대 유비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그의 심기가 진짜 편한 게 아니라는 점까지 읽어냅니다. 정말로 그가 만족하거나 방심할 때의 표정과, 남들 앞에서 본심을 숨길 때 가장하는 표정이 미세하게 차이나더라는 건데, 이게 눈치 빠른 사람은 특유의 적성으로 해결하는 판단이지만, 진용운은 성격이 꼬인데다 오타쿠 기질도 강해서 그런 눈치가 매우 둔하죠. 말하자면 남들이 소프트웨어로 푸는 걸 그는 막강 하드웨어(엄청난 기억력)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고나 할까요.

진용운이 전략적 두뇌가 뛰어난 편이냐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에서 그가 유독 날고 길 수 있는 건, 다른 이유보다 그가 평소에 삼국지 게임을 열심히 했다는 것(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래서 전황이나 전체적 맵에 훤하다는 게 유력한 비결입니다. 말하자면, 미리 비축해 놓은 전략적 자산을 이것저것 꺼내서 그때그때 써먹는 것일 뿐이며, 진짜 하늘이 내린 책사, 전술가들이 순수 창의력으로 짜 내는 기막힌 술수와는 순도 면에서 차이가 있죠. 그래서 1권 끝에 저쪽 진영의 책사 가후한테 된통 걸려 죽을 뻔한 것입니다. 기억력에만 의존하여 유사 상황에 잘 적용되던 해법을 근사치로 맞추는 대응과, 신출귀몰 임기응변의 천재가 부리는 재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니 말입니다.

진용운에게는 다만 남들이 도저히 따라하거나, 심지어 그런 게 있는 줄 짐작조차 불가능한 어드밴티지가 있는데, 그것은 인적 자원의 능력치를 낱낱이 꿰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그.... 진용운만 할 수 있다는, 정신집중해서 정보창 띄운 후 소위 "대인통찰"이라는 게, 순간기억능력이 탁월한 그라면 과거에 게임하던 기억을 살려 다 파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능력치라는 게 불변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여튼, 이 2권에서 가장 기발했던 게, 현재는 군영에서 말단직에 종사할 뿐이지만 앞으로 크게 출세할 장수, 인재를 훤히 꿰고 있는 진용운이, 가후의 소수 정예부대에 바로 대항마로 내세울 수 있는 특공대를 조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쟤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된다는 결말을, 소설과 게임을 통해 다 알고 있는 그만이 부릴 수 있는 재주죠. "미래를 심원하게 통찰할 수 있는" 가후와, "통찰이 아니라 확정적 답을 알고 있는" 진용운이 상대가 안 되는 포인트입니다.

처음에 진용운이 해킹을 통해 창조한 "사기 캐릭"이 여전히 2권에서도 결정적 순간마다 맹활약을 보입니다. 이래서 게임에서도 소위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건데요. 진용운은 자신이 창조한 사천신녀의 "주군"일 뿐 아니라, 사실상 이 세계의 창조에 지분을 크게 갖는 주주이기도 합니다. 조운이나 관우 등은 이 세계의 피조물들이니 그 막강한 위력에 굴복한다 해도, 성혼단 멤버들이나 <수호전>에서 건너 온 캐릭터들은 과연 위상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역시 예외가 없더군요. 아니 어떻게 다른 고전의 인물들이 등장할 수 있는지 의아한 독자들에게 진용운은 그저 "자신과 부친이 중국 기서들에 두루 관심이 있었다"고만 말하고 넘어갑니다.

웹소설이지만 고전의 원 캐릭터들에 대한 해석은 자못 진지합니다. 유비에 대해서는 1권 리뷰에서도 언급했는데요. 야심이 가득한 인물이니 무슨 간디 급의 성자로 그를 보는 건 무리지만, 여튼 남 보기에 그런 "위선"도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한다는 천부적 능력이 있다는 식입니다. "유비가 베푸는 감화"가 곧 "능력의 각성"이라는 말도 있는데, "등 뒤에서 관우는 이미 용을 보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같은 문장은 비록 장르물의 색채가 강하긴 하나 이 유비에 적용시킨 게 매우 그럴싸해 보입니다. 장비가 미남자라는 분석도 이미 여러 연구자에 의해 도출된 결론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를 위해 더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여포는 누가 봐도, 유저의 인위적 조작이 아니라(ㅋ) 태생의 자질 그 자체로 사기 캐릭임이 여기서 잘 드러납니다. 사기 캐릭(아무리 여자라도)을 정면 대결을 통해 무공으로 꺾으니, 이건 비유컨대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자와 그냥 맨몸으로 싸워 이긴 거나 마찬가지. 사천신녀 중 하나인 청몽이 매우 앙칼지게 반항하고, 동시에 현대 여성 고유의 계몽된 논리로 여포의 약점을 찌르자 천하에 없는 영걸인 그도 말문이 막힙니다(본래 말과 지성으로 승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드라마, 시츄에이션, 후드 같은 말은 못 알아먹는 게 당연한데, 엿 먹으라고 할 때 "엿"도 못 알아듣는 게 재미있었습니다(고대 중국에 없는 음식). 순간 기억 능력이 참 편한 게, 요리에 꼭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 사진 같은 기억력으로 샤브샤브 먹는 법을 알고서 장졸들에게 먹이는 장면이 꽤 재미있었네요.

성혼단 이야기가 드디어 한 꺼풀 풀어헤쳐지는데, 이게 진용운 부친의 실종과도 직접 관련을 맺는 설정입니다. "처음에는 명나라 시절로 침투할 예정이었으나.. " 이 말이 꽤 의미심장합니다. 책에 의하면 청나라는 야만 오랑캐가 세운 나라니, 몽골 제국을 축출하고 세워진 영광스러운 한족의 역사를 바로잡을 최적의 시기로 명을 골랐다는 건데, 이게 사실은 동아시아 평화 전체를 위협하는 중화 패권주의의 발호 한 국면(현실)을 날카롭게 짚은 면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럼 이들에 의해 위해를 입은 걸로 보이는 진용운 부친, 그리고 진용운의 활약이 어떤 방향성을 가질지도 예측이 좀 되겠고 말입니다. 우군도 인프라도 없이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대단히 고독한 싸움을 벌일 용운에 대해 다시 한번 화이팅을 외쳐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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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차르 -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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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들 하지만 러시아의 장기 집권자 푸틴에 대해서도 이 말이 어떻게건 적용은 될 것 같습니다. 안티팬도 팬이라고 농담삼아 이야기하곤 하는데, 비슷한 의미에서 안티히어로도 히어로이긴 하기 때문이죠. 본디 러시아의 국민성이 어떤 강압이라든가, 폭정으로 앞에서 끌고 가면 "노예근성"으로 묵묵히 따르는 편이라곤 해도, 소련 붕괴 후 첫 집권자였던 보리스 옐친의 경우 그 집권 기간 동안 정정이 대단히 소란스러웠을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중 어느 부문도 원활히 돌아가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인들은 진짜 능률적인 독재자(예컨대 이 푸틴이라든가 스탈린)에게는 독재자라는 소릴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 욕은 무능한 리더(옐친이라든가)에게 퍼붓곤 하는데, 무능한 독재자가 곧잘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때 그런 오명을 끝까지 쓰곤 합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내려왔을 뿐 아니라 사회의 혼란과 경제 난맥이 극에 달했기에 국민들의 불만이 한때 대단했습니다. 지금 푸틴이 사실상 20년째 권좌를 유지하지만, 이제 대체적인 여론은 그의 지도력을 높이 사는 편입니다. 미국 등 서방에서는 질 나쁜 깡패로 폄하되는 이유 하며, 자국 내에서는 반대로 꾸준한 지지를 유지하는 그 비결이 뭔지, 이 두꺼운 그의 평전을 읽은 후 독자로서 대강의 해답은 얻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인물을 다룬 평전이 반드시 두툼한 볼륨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지난 세기 지성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던 러시아 혁명가들을 다룬 연구서, "평전"은 한국에 번역 소개된 것들만 봐도 매우 두꺼운 책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혁명가들의 삶과 정신 세계가 그만큼 심층적 소재들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이번에 이 푸틴의 평전을 읽고 나서 그게 다름 아닌 러시아인의 고유한 특질을 파헤치다 보니 도달한 결과물이라 비로소 판단하게 되었네요. 푸틴이 어떤 의미에서건 "그들 혁명가들"의 정신적, 물적 계승자라고는 전혀 여길 수 없으니.

이 책에 따르면 푸틴이 그의 조상 계보를 통해서라도 그 이전의 혁명가들과 전혀 연이 안 닿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그의 조부는 무려 블라디미르(푸틴, 그리고 푸틴의 부친과 이름이 같은) 레닌의 전속 요리사였습니다. 대개 "높은 분들"의 요리사가, "그 모시던 분"에 대해 지극한 존경의 마음을 품는 건 실제 역사뿐 아니라 픽션에서 즐겨 다뤄지는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조부의 그런 순수한 마음이 이 손자에게까지 간접으로라도 계승되었을 법하지는 않네요. 우리가 지금 러시아를 다스리는 그의 "쿨하다 못해 냉혹하고 무자비하며 비열하기까지 한" 스타일을 봐도 그렇고, 이 책에 상세히 기술된 그의 성장 과정, 출세 경로를 봐도 역시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많은 이들에게 한때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되었던 것처럼(지금은 거의 잊혀졌습니다만), 구 동독(東獨)은 지난 시절 촘촘히 운용되었던 공업 시설의 잔재의 덕을 입었건, 혹은 특유의 근면하고 우수한 기능적 효율을 발휘하는 국민성 덕이건,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보다 더 풍요로운 사회를 가꿔 왔었습니다. 다만 국경이 거의 오픈되었던 이유로(같은 분단국가인 남북한과 대조할 때), 베를린 장벽이라는 허울이 가로막았을망정 국민들의 개혁 욕구가 상당히 높았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공산당- 중앙 정부의 비밀 경찰 조직이었던 슈타지(이 책에서는 "슈타시"로 표기되는)의 활동 범위, 성과, 그리고 악명도 매우 유명했습니다. 동구권에서 소련군이 철수하고, 각국의 공산 독재가 무너진 후에야 "본진"인 소련 체제도 붕괴되었는데요. 이미 이 동독 슈타지에서 소련측 연락책으로 젊은 시절부터 상당히 유능한 요원이었던 푸틴의 한창 때 커리어가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슈타지의 해체(대전 종전 직후 마치 히틀러 잔재 그 모든 것이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 되었듯)로부터 그는 조국의 공산 독재체제도 곧 같은 운명을 맞으리라 날카로운 직관으로 예측할 수 있었는데요. 실업자 꼴이 된 그가 돌아온 조국은 여전히 생필품 하나를 변변히 구하지 못해 국영 상점 앞에 긴 줄을 선 대중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한심한 꼴이었습니다.

이런 소련이 망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고 예견한 그이지만, 망하고 난 후에도 국민적 자긍심만 증발되었을 뿐 경제난은 몇 배로 더 나빠진 판이었죠. 하지만 정보기관 재직 중 갈고닦은 동물적 본능과 시세 판단 능력으로 그는 유력 정치인 밑에서 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보좌를 받는 상관들은 선거에서 그의 우수한 첩보 능력, 상황 판단의 자질로 톡톡한 덕을 입었지만, 대체 불가능한 그의 조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투쟁에서 패배한 "주군"들은 여전히 많았는데, 이는 대개 자신들의 무능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정보총책, 전략가로서 모신 이들 중 마지막 인사, 그리고 최고위 정치인이 바로 보리스 옐친이었는데, 지난 "주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옐친(이 책에서는 유독 "병약한"이란 수식어를 자주 달고 있는) 역시 "지금까지 나를 잘 도와줬는데, 이 자리를 아예 자네가 맡는 건 어떤가?"로 퇴임의 변을 건넵니다. 놀랍게도 이런 식으로 그는 1억 6천만 인구를 지닌, 세계 최대 영토 대국의 수장까지 등극한 거죠.

푸틴의 처세는 대단히 특이합니다. 일단 그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자신보다 우위에 선 적을 고꾸라뜨리는 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확한 책략을 구사합니다. 지금이야 이 "적(敵)"이 다름 아닌 자신의 적이지만, 사십 초반까지 적들은 자신의 주군이 상대해야 할 적들이었죠. 그는 상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확하게 읽고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습니다. 그 속을 뒤집는 게 물론 아니라 시원하게 긁어 주되, 긁어 주고 난 후 일종의 경외감을 주군에게 남깁니다. "저놈은 누군데, 나와 나의 적 그 속셈을 정확히 꿰뚫는 걸까?" 마치 조맹덕이 양수(楊修)에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데, 푸틴이 모신 상관들은 모두 푸틴의 깜냥보다 훨씬 하수급에 머문 작자들이어서, 감히 이 유능한 부하를 숙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유명한 일화로, 옐친이 거느린 정보기관 FSB(KGB의 후신)가 곧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리라는 예측이 세간에 난무했을 때, 푸틴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일축했다는 사실이 유명하죠. "우리가 이미 권력을 잡고 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뭐하러 귀찮게 쿠데타를 일으킨단 말인가?" 이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진 건 옐친의 적들이라기보다 차라리 옐친 본인이었으리라는 분석도 이 책에 나옵니다.

이 책이 나오기 전 푸틴의 어두운 행적과 음모적 근성에 대해 분석한 책으로는 <푸틴의 제국>이라는 일본 저널리스트 에가시라의 고발성 프로가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읽혔습니다. 그 책에도 나온 유명한 실화인데, 옐친의 권한 남용과 부정부패를 혐의잡아 목줄을 죄어 온 검찰총장의 뒤를 캐어, 그가 여러 매춘부들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촬영한 후 방송국에 필름을 보내 방영토록 한 사건이 있었죠. 당국은 이에 대해 "그 찍힌 남성의 얼굴이 검찰총장님과 매우 닮았다"고 한 코멘트가 유명한데, 이를 놓고 미디어와 여론은 "이 비겁한 촬영을 한 자가 푸틴 국장(당시) 나으리와 매우 얼굴이 닮았다"고 비꼰 한 마디도 함께 널리 알려졌습니다(이 책에도 나오고요). 이 사건 후 병을 핑계로 총장은 사직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옐친은 자신의 수하인 푸틴에게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 과거 러시아나 소련에서의 전통은 권좌에서 끌어내려질 수밖에 없었던 독재자들의 운명을 매우 비참하게 만들었는데요. 푸틴은 파격적인 권력 승계를 약속받는 대가로(당시 러시아에선 매우 젊은 나이였던 사십대 후반) 옐친에게 어떤 위해, 정치적 보복도 가해지지 않고, 동시에 극진한 예우가 베풀어질 것을 약속했습니다. 잔인하고 거침 없으며 지독하게 유능한 그였지만, 이런 류의 약속은 칼같이 지킨다는 평판이 잘 나 있었기에, 결국 그는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옐친은 체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지만, 푸틴은 정반대였습니다. 그가 스스로의 입으로 장담했던 것처럼, "어리석고 마구잡이였던 구 소련의 선배들(사실상 옐친도 포함되는 뉘앙스)과는 달리, 우리는 매우 지능적이고 신중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아까운 젊은이들의 목숨이 낭비되지 않게 하겠다"는 말을 지켰습니다. 사실 소련의 군사적 전통은 병사의 목숨을 초개처럼 낭비하는 인해전술에 가까웠습니다. 히틀러도 결국 여기에 질려 나가떨어졌던 건데요. 푸틴은 이마저도 절제하며,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교활하고 영리한 책략을 쓰겠다는 스탠스이며, 실제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체첸은 지금 이슬람 극렬 분자 일부 외에는 러시아의 통치에 순응하는 분위기이며, 미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그루지야(조지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망을 합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미적지근하니 온건한 대응을 하는 듯 보이다가, 한 2, 3년 지나면 어느새 해당 지역의 패권이 푸틴(곧 러시아) 손에 다 넘어간 듯 대세가 굳는다는 거죠. 이게 이 독재자의 무서운 점입니다. 원래부터 친러 성향이었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과의 연계가 더 단단해진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중국과의 적절한 연대를 통해 미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것도 푸틴의 영리한 책략입니다. 2년 전만 해도 나토군이 우크라이나에 쳐들어가기라도 할 듯 기세가 등등했는데, 지금은 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데다 사실상 통일된 군사행동은 물건너간 분위기입니다.

사실상 푸틴은 스탈린 이래 이 나라의 국세와 사기를 최고로 끌어올린 지도자로 그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굳었습니다. 스탈린이 그 나름 시스템을 정비한 후 반 세기 가량 소련이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한 것처럼, 이 푸틴이 물러난 후에도(자연사 외에는 방법이 없을 듯) 러시아의 위세가 지금처럼이나마 이어질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의 수완이 최소한 대증요법으로는 누가 따라올 자가 없을 만한 수준임은 도무지 부인할 수 없고, 한반도의 긴장 역시 그의 태도에 따라 그 수위가 달라지겠음을 고려하면 그의 개성과 행보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 초반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구급차가 달려올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소련 붕괴 직후 난맥상 상징) 아버지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던 어린 딸 "카챠"가,  바로 한국인 청년과 몇 년 전 연이 맺어질 수 있다는 루머가 돈 예카테리나 푸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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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전 1 - 난세의 한가운데 떨어지다
청빙 지음, 권미선 그림 / 폭스코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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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중학생 때는 별의별 망상에 다 빠지기 마련입니다. 야릇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성적(性的)인 판타지도 만족시켜 주면서, 동시에 여전히 의지도 유약하고 지식도 부족한 자아에게 일일이 멘토링해 줄 누군가가, 그것도 여럿이, 곁에서 자신을 지켜 줬으면 좋겠다는 헛된 생각이 떠날 때가 없죠. 그런가 하면 친구들이 즐겨하는 온라임 게임에도 빠져, 가상의 세계에서만큼은 최강의 능력치를 가지고 싶은 욕구도 자아 깊숙한 곳에 심어 놓습니다. 지루한 등굣길이나 자율학습 시간도 이런 유쾌한 상념과 함께라면 언제 지나가는 줄 모르는데, 성인이 되고 하나 뿌듯한 게 있다면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며 그 해결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지 어떤 망상으로 좌절감을 몰아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이버에 장기간 연재된 웹소설이 종이책으로 정리, 출간된 이 작품은, 어렸을 때 빠져 들기 쉬운 <삼국연의>(게임이든 책이든)의 여러 모티브와, 어렸을 때만 빠져 들 수 있는 갖가지 환상과 페티시(..)를 잘 버무려 놓은 깔끔한 판타지입니다. 장르의 전통을 충실히, 군더더기 없이 잘 따르는 데다,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발상이 군데군데 돋보이기까지 해서, 킬링 타임용으로 읽어내기 안성맞춤인 오락물입니다. 장르물이라고 마냥 폄하할 게 아니라 동심으로 잠시 돌아가고 싶을 때 이런 동반자도 곁에 두기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성인이 너무 이런 장르에 빠져드는 건 곤란한 게, 솔직히 낯간지러운 서술과 묘사가 너무 자주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게 이 작품의 단점이라는 게 아니라 본디 장르 자체의 문제입니다.

주인공은 과다기억증후군(병)과 순간기억능력(재능)을 보유한, 미소년 고등학생인 진용운입니다(하필 성씨가 陳인게 벌써 무협지 냄새를 풍기는). 아버지는 특별한 능력을 보유한 분인데 중국에서 갑자기 실종되었고, 무슨 까닭인지 국정원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주변을 감시하기까지 하는 그의 현재입니다. 혼자 사는 데다(재산은 넉넉해서 별 문제가 안 생기는 건 쿠도 신이치, 기타 많은 망가나 라이트노벨에 나온 이들과 상황이 같네요. 내 수중에 돈은 많고 간섭하는 어른은 없었으면 하는 것도 많은 틴에이저들의 공감을 얻는 환상) 성격도 안 좋으니 친구가 있을 리 없고, 다만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였던 여자애 민주가 속으로 좋아하는 정도입니다. 저렇게 기억력만 좋은 건 성적 향상으로 잘 연결이 안 되기에, 학교에서 아주 석차가 높지는 않네요.

소설은 우리 현대의 미소년 진용운이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삼국 시대 유비의 군사(軍師)가 되어 있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개요 설명 없이 이야기의 중간부터 서술이 시작되는 형식을 문예비평용어로 In medias res라고 하죠. 많은 웹소설들이 시간순 구성을 따르지 않지만, 여튼 독자가 그것때문에 곤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 역시 성공한 웹소설이 보통 그렇듯, 오히려 사연의 중심부로 더 자연스럽게 독자를 끌고 들어갑니다. 라이트 노벨이나 망가가 채용하는 많은 설정 중의 하나가, 현대에서 아주 평범한, 그것도 나이까지 어린 주인공(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지만)이,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 일종의 초인이 되어 상황을 지배한다는 발상입니다. 진용운뿐 아니라 많은 캐릭터들의 경우 현실(과거건 현재건)의 다른 제약을 받기 때문에 이런 기대는 곧 깨지기 일쑤지만, 진용운은 대단히 현실적인 성격이므로(망상에 젖고 싶은 어린 독자들을 매혹하려면 적어도 주인공만큼은 정반대로 현실주의자라야 하죠) 주위 세계와 자신의 포텐을 신중히 잘 저울질하며 조심스런 행보를 잇습니다.

일단 애가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유비, 조운 등 주요 인물(이 소설은 주무대가 중국의 후한 시대이며, 우리가 아는 <삼국연의>와 설정이 대부분 같습니다)들의 호감을 얻는 데에는 실패하지 않는군요. 물론 이 시대 인물들이 그에 대해 어떤 페도필리아나 동성애 같은 심리를 갖는다기보다, 그 시절에 보기 힘든 인물상이나 피처에 대한 호기심이랄지, 혹은 그런 용모로부터 짐작되는 고귀한 출신, 비범한 자질에 대한 동경 같은 게 더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일종의 OOPARTS라고도 여길 수 있겠네요. 진용운은 영리한 편이기 때문에,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압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건,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한 외모인 진용운을 두고, 유비가 내심으로는 100만점에 50 정도의 신뢰밖에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진용운의 말을 빌리면 "과연 일세의 효웅이라서 남을 전적으로 믿는 법이 없는" 그만의 자질이라는 건데요. 이뿐 아니라 다른 이가 보이면 위선의 제스처라는 게 빤히 드러나는데도, 유독 유비의 언행은 지극히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상대에게 남다른 신뢰와 공감까지 유발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삼국연의 분석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진단이지만, 여튼 장르물에서치고 흔히 접하긴 어려운, 깊이 있는 문장이죠.

고속주행을 하는 인체에서 손이 잘리자 더 맹렬한 속도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든가, (진용운 지가 키운 아이템이니) 분명 익숙은 한데 기대했던 바와 좀 달라서(왤까요?), 게다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존재겠거니 여긴 탓에 더 늦게 알아봤다든가 하는 설명은, 장르물의 전통에 그리 익숙지 않은 독자들에겐 와 그럴 수도 같은 놀라움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여튼 서로 닮아가며 크는 웹소설들의 개성과 특징을 고려하면서도, 그 좋은 점만 잘 추려 장착한 이 작품의 장점에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네요. 유머 감각도 장르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인데, 의형제를 맺은 조운에게 뭔가 고마움의 표시로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진통제 한 알과 500원짜리 동전밖에 없어서 그걸 그냥 건넵니다. 이런 진용운에게 조운이 극구 사영하며 하는 말,

"이 형태나 질감은 보기 드문 귀한 금속이다. 게다가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학의 움직임과 깃털 하나하나의 묘사까지. 그걸 조각한 자는 천하 제일의 장인임에 틀림 없다. 내 이 귀한 보물을 어찌 감히 받을 수 있단 말이냐."

인격자인데다 딴 맘 품지 않고 수련만 해 온 자룡에게 익히 나올 법한 진정어린 대사지만, 보는 우리는 너무나 웃겨서 말이 안 나올 정도죠(자룡의 개성을 이해하는 만큼 더 우습기도 합니다). 천하의 조운을 고작 500원짜리 동전으로 저렇게 감격시킬 수 있다니. 이런 게 다 작가의 재능이고, 다만 다 좋은데 나중에 그 전개는(스포일러) 식상할 뿐 아니라 개연성(뭐?)에도 의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자룡 같은 인물의, 본디부터 평면적인 경우에 대고는 우리 현대인(현대 독자)의 합의나 기대에 충실하면서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 주는 상상력이지만, 앞에 말했듯 유비 같은 보다 입체적 성격을 두고서는 제법 깊이 있는 통찰이 보이는 것도 소설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이는 것 같아요. 2권까지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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