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얽힌 흥미진진 인문학 1 영어에 얽힌 흥미진진 인문학 1
박진호 지음 / 푸른영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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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원어민들과 자유자재로 소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을 찾아 읽고 뉴스를 즐겨 들으며 드라마나 영화도 자막 없이 감상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공부하는 게 최선일까요? 대학생 때에도 영어는 학습자의 발목을 잡고 안 놓아 주는 마계에 가깝다고들 합니다.

어원, 어근 중심 학습서가 예전부터 여러 종이 나와 있지만 그닥 학습 효율이 오르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작정 철자와 음성 기호에 따라 뜻을 외워야 하는데, 무작정 덤비는 암기처럼 사람 두뇌를 피곤하게 만드는 작업이 또 없기 때문이죠. 사실 기존의 학습서들도 예문이 많이 나와 있어서, 문장 속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좀 끈기를 갖고 공부하면 의외로 얻는 게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습자들은, "책에 더 신경 쓰고 성의를 들이는 게 손해이며, 최소 노력으로 최소 정보만 습득하고 땡이라야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 저자의 의도에 잘 안 따라와 줍니다.

이 책은 그런 종래의 학습서들과는 크게 달리, 단어 하나에 스며든 사연이랄까 역사, 문화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은 그 자체가 인문 컨텐츠의 핵심 구성 요소이므로, 단어 뒤에 깔린 이런 흥미진진한 사연을 추적하다 보면 영어 단어들의 뜻이 머리에 안 남을 수 없습니다. 얼개와 전후 맥락이 촘촘히 끈끈히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사람 머리에 오래 새겨지는 정보가 없으니 말입니다.

영어는 많은 학습자(非natiive)들을 어렵게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을 찾아보면 그 설명해 놓은 항목이 한두 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어 사전에서 어떤 엔트리를 놓고 봐도, 4번 정도를 넘어가는 어의가 달린 표제어는 매우 드물며 없다시피합니다. 이 많은 뜻 중에 뭘 골라야 할 지도 모르는 학습자가 다수이며, 그 중 많은 이들은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으니 더 열심히 노력해서 내 지식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게 아니라, 같은 지구인의 언어가 어쩌면 이렇게 모습이 다르고 판이한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같은 위화감에 아예 학습 의욕 자체가 꺾이기 십상입니다.

저자께서는 "우리말보다 네 배 많은 어휘를 가지는" 영어의 단어 코르푸스 특성을 지적하며, 양이 많은 만큼 더 많은 사물과 사연과 인류의 지난 발자취를 담아낸 영어라는 말의 학습을 통해, 우리 인식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일단 독자의 의욕을 고취시킵니다. 우선 이용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최신의 시사 뉴스에 등장한 여러 어휘를 환기시키며, 한 단어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단어의 뜻들과 인접 의미군의 단어 소개를 구수하게 펼쳐 놓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고 독자의 눈길을 잡아채는 요소입니다.

정치 최근사에 대해 저자께서는 다소 대담한 가설도 책 속에 소개합니다. 뭐 이런 "카더라"급 루머는 일단 독자가 읽기에 구미가 꽤 당기는 것도 사실이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아무개의 먼 방계 후손이라는 역사적 지식부터 찔러 주시고는, 파파라치(이 단어의 단수형, 어원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는 건 당연하고요)가 그 정부와 함께 탄 고급 승용차의 뒤를 쫓다 비명에 갔다는 "오피셜 경위"를 들려줌과 동시에, 사실은 며느리의 부정을 괘씸히 여기고 시가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그녀를 왕실 차원에서 응징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십니다. 물론 이 토픽이 주제는 아니고, 솜씨 좋으시게도 이에 얽힌 다양한 국면에서 영어 단어의 배경 사연을 설명하는 게 주된 포인트입니다.

찰스 폰지는 현대형 사기꾼의 원조라 부를 만한 기발한 방법으로 선의의 투자자들을 울린 악질 범죄자죠. 이 자가 eponym이 된 여러 파생 어휘부터 해서, 유럽의 지난 경제사가 사실 얼마나 지독한 비리와 비위, 협잡,  강도질에 의해 텃밭을 꾸렸는지 흥미진진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소금"은 영원히 성질이 변치 않기에 음식의 보존부터 해서 사람이 문명 생활을 일구고 사는 데 필수 불가결의 역할을 해 왔는데, 이 salt라는 어근에서 얼마나 많은 뜻이 파생했는지 책은 흥미롭게 짚습니다.

읽다 보면 저자만의 흥미로운 관점도 많이 발견되더군요. "라틴 계 민족은 대개 성적으로 문란한 게 보통이라 이런 규제 방법이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같은 다소 과감한 진단, 종교 개혁을 촉발한 메데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의 "발가벗은 소년들을 시중들게 한 호사" 언급 등등. 영어뿐 아니라 역사 전반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있어야 이렇게 끊김 없이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영어 어원과 뜻을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끼며 책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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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카드 3
마이클 돕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푸른숲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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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최고의 필력과 최고의 상상력입니다. 구절구절이 명언이고 배경이 영국을 벗어나는 대목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정확한 실사가 바탕된 사연이 이어지는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놀랍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드라마 포맷도 정말 재미나게 만들었지만, 그 진미와 진수를 접하기 위해서는 원작 소설을 읽는 게 필수입니다 정말. 만약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일시적 센세이션이나 동시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감적 특권 등 거품이 일절 걷히고 나도, 이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는 불멸의 걸작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저 정치 풍자 소설(풍자라곤 하지만 경박한 유머 코드에 의존하는 바도 별로 없고요) 영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세련되고 기발한 대사(이 매력이 가장 크죠), 소설가(작가가 전업 소설가 출신이 아니지만)가 가장 들여다 보기 힘든 정계의 초(超) 엘리트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고 핍진하게 묘사한 그 성취, 런던의 정가에만 그 초점이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정치, 나아가 어느 나라에나 두루 적용될 범속하고 타락한 세태에의 비판 등이 심오하고 보편 타당한 주제에까지 발전하는 그 속 깊은 구조.... 이 정도면 반 밀레니엄 전에 나온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비겨도 어디 떨어질 것 없습니다.

정치 엘리트들(대부분 신분상으로도 귀족 출신이죠. 물론 그 부자-피트 등 몇만 빼고)의 그 소피스티케이티드한 말투와 사고 방식은 평범한 작가가 쉽게 상상, 모방, 구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특별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특별한 사고방식을 갖췄고, 대개는 우월한 부모에게서 특별한 두뇌까지 물려받았기에 발상 자체가 남들보다 다른 게 보통이죠. 평범한 두뇌가 비범한 이들의 행동, 생각에 접근한다는 게 어렵고, 그래서 이런 특별히 선택받은 계층과 집단의 생활상은 그들을 가까이서 접해 본, 본인도 그들과 출신성분, 정서, 가치를 공유하는 작가만이 허구의 세계 속에서 재창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선택받은 특수 계급의 잘나가는, 아름다운, 우아한, 남이 넘볼 수 없는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오히려 독자들에게 반감이나 사기 딱 좋았겠지만, 다들 아는 것처럼 이 소설은 이들 선택받은 정치인들과 그들의 축복받은 가족들이 얼마나 범속하고, 평범한 이들보다 모럴이 더 타락했으며, 일초일각을 치사한 계산에 매달려 지내는지를 신랄하게 드러내고 풍자합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다우닝가와 웨스트민스터의 터줏대감(나이 불문)들이 찌들고 이기적이며 교활한 부류는 아닙니다. 사람인 이상 그렇게 남 보여주기에 몰두하며 거짓을 늘어놓고 매스컬레이드로 자신을 무장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튼 한때 정가에서 촉망받는 장래를 보장 받았다가 한순간에 몰락을 맛본 작가는, 어느 정도는 분풀이삼아, 어느 정도는 "나라(나아가 세계)가 이런 식으로 가선 안 되겠다"는 우국충정의 발로에서(?), 또 어느 정도는 "이게 진짜 나의 적성!"이라는 각성에서 이 멋진 장편을, 완성도의 희생 없이, 이어갑니다.

이 3권은 다소 뜬금없이, 수십 년 전 아직 영국 통치 하에 놓여 있던 키프로스로 배경이 옮아갑니다. 프랜시스 어카트가 아직 새파란 장교 시절의 과거가 잠시 독자들 앞에 제시되는 거죠. 서유럽에서는 귀족의 자제들이 장교 신분으로 군에서 복무하는 게 특권 중 하나입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왜 저렇게 능력 좋은 인력이 고작 부사관(NCO)에 머무나 하고 의아할 때가 있는데, 그게 다 출신 계급이 나빠서입니다. 이 앞부분에서도 청년 장교 어카트와 그에 항명하는 병장의 이야기가 잠시 나오죠. "영국놈들 물러가라! 키프로스 독립 만세!"를 외치는 꼬마 둘이서 위험한 화기를 갖고 숲 속에서 영국군 소대와 대치하는데, 냉혹한 귀족의 피가 흐르는 우리 프랜시스께서는 "숲에 불을 질러 애 둘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사병들은 "애들이나 죽이라고 내가 군에 들어와서 총을 잡은 건 아니다"고 반발하지만, 지혜나 용기가 탁월하진 않아도 상황의 정치적 수습에는 (벌써 그 시절부터) 발군의 수완을 보였던 프랜시스는, 망설임 없이 (비교적 쉬운) 군사적 행동으로 손수 후환의 빌미를 제거하고 동시에 현장에 있던 사병들과 (그들을 꼼짝 못하게 할 손씀을 통해) 이후의 명예에 누가 될 수 있는 진실의 은폐를 위한 타협에 성공합니다. 이럴 경우를 두고 "될 성 싶은 나무는.. "이란 속담을 쓰는 거죠?

세월은 흘러흘러 무대는 이미 그가 다우닝가 관저의 주인으로 십 년째 권좌에 머무는 현재로 옮겨옵니다. 근본 없이 얄팍한 처세술만으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른 자는 결정적 단계에서 몸에 배지 않은 센스의 결핍으로 자기 신상과 자기 집단 전체에 누를 끼칠 과오를 범하게 마련입니다. 제프리 부자-피트(Geoffrey Booza-Pitt)라는 젊은 장관이 바로 그인데, 이 이름에서 "부자"는 富者나 父子도 아니고 강부자 김부자도 아니며 영미권에서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미들네임도 아니고, 성씨의 일부분입니다. 이 푸른숲에서 나온 한국어 번역본은 적절하게도 하이픈을 다 살려 표기하고 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번역본은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이 소설에서 중요한 배경 구실을 하는, 당연히 그 연극 상연 전용 극장 소재지이기도 한) 스트랫퍼드온어펀에이번 같은 지명을 띄어쓰기 없이 다 붙여쓴다든가 하는 적절한 태도를 줄곧 유지합니다.

야, 일국의 수상(총리)를 해먹으려면 이처럼, 순간의 재치로 여러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수완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독자로 하여금 절로 들게, 프랜시스는 젊은 시절 그 능구렁이 같은 정치술이 어디 가지 않아, 저 서투른 부자-피트가 지역당협 위원장(우리식으로 따지면요)의 아내(아마 트로피 와이프겠죠?)와 저지른 부정을 무마해 주고, 동시에 이 부자-피트의 정치생명을 한번에 끝장낼 "자술서"를 챙깁니다. 세상 사는 데 거저가 어디 있겠으며, 지금껏 근본도 없는 놈을 그 자리까지 끌여올려준 은덕이 또 얼만데 이 정도는 받아내야죠.

본래 저렇게 성씨에 하이픈이 붙으면, 부계 모계 어느 쪽이든 성씨에서 떨굴 수 없는 명문 집안 간의 결합이며, 대개 한사(限嗣) 상속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하기 위한 창씨일 수 있습니다. "피트"라고 하면 옛 잉글랜드 귀족 가문의 방계 같은 느낌이고, "부자"는 모르긴해도 남아프리카에서 보난자로 한몫잡아 큰 부를 일군 보어인(아프리카너) 가문 같은 느낌도 주지요. 족보가 너무 분명하면 위조한 게 들통날 테고 해서 저런 식으로 출신 성분을 조작하는 건데, 근본 없는 이들이 자신의 구린 과거를 감추는 흔한 수법이라 하겠습니다.

지은 원죄의 끈덕진 응보가 어디 안 간다고, 수십 년이 흘러 버젓이 일국의 수상 직위에까지 오른 지금, 다시 키프로스. 지중해 어디나 다 있으나 유독 여기만 빼고 매장된 석유가 기를 쓰고 비켜간 그 키프로스에, 왜 대체 석유가 (그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매장되어 있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드디어 밝혀지는데, 이런 미공개 정보는 먼저 발견한 자에게 엄청 유리한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대통령님, 설마 여기에 관심이 없진 않죠?" 그 대통령(북키프로스)은 다시 영국의 수상에게 의사를 타진합니다. "관심 있으시죠?" 정치가 부패라는 악령과 손을 끊을 수 없는 건, 바로 이런 "엄청 돈되는" 미공개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직위이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이 물러가니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 종전보다 더한 지옥상을 연출하는 한심한 작태도 이 소설 속에서 또한번 조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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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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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부 시절에 가장 인기 있던 표준적 경제수학 교과서로 통하던 책을 쓴 A C Chiang이란 저자가 있었습니다. 중국계 미국인이던 그분의 성씨는 한자로 쓰면 張씨였는데(가장 흔한 중국 성씨이기도 하죠), 영문 표기가 같은 (그분보다 훨씬 어린) 이 작가님은 姜씨입니다. 姜은 표준 북경어 발음으로 "쟝"에 가깝지만 여튼 이분은 Chiang으로 자신의 성씨를 표기하네요. 중국은 광대한 나라라 한말로 중국계라고만 하면 어디 출신인지 따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분의 빼어난 작품 몇(본래 과작을 하는 분이라)을 모은, 그리고 탁월한 번역이 함께해 준 이 선집을 몇 번 거듭 읽어 봐도, 과연 그 먼 선조가 중국 어느 지방 출신일지 감 잡을 수 있는 대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작가의 실물적 정체성(거기 대해 구태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은, 그저 천재적 두뇌를 지닌 미국인 정도로만 정리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들 중 하나에 "동양적 인(仁)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는 어렴풋한 한 마디가 들어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출판사 서평 중에 이런 구절이 보이더군요. "머리를 쓰는데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선집의 성격과 개성, 혹은 성취를 요약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문구도 없을 것 같습니다. 소위 하드 SF 작품들(단편이든 장편이든)을 "즐기면서(문학이니까 당연히, 즐기지 못하면 그게 독서라고 할 수 없죠)" 읽어 가려면 사전 지식이 필요하고, 사전 지식이 충분히 갖춰진 독자라도 작가의 의도와 호흡을 맞춰 가려면 머리를 적잖이 써야 하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하드 SF의 정수를 즐길 만한 능력이 되는 독자라면 테드 창의 단어 구사 하나하나, 구성의 의도마다에 감탄을 보내며 작품의 음미가 가능하겠고, 지식이 설령 부족한 독자라도 이야기의 감동적인 전개에 인문적 전율을 체험하기에 충분합니다. 2년 전에 개봉되었던 SF 영화 <인터스텔라>가 영화치고는 하드한 편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킵 손 교수가 따로 이에 대한 논의만 모아 대중서 한 권을 내기도 했죠) 특히 한국 관객들은 그 감성적 코드만 따로 뽑아 즐길 줄을 알아서 천만 흥행을 달성시키기도 한 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직은 젊은 편이지만 활동 기간을 감안한다 쳐도 꽤 적은 수의 작품만 발표한 그인데, 이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역자분에 의해 추려져 정확한 우리말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테드 창의 원래 세계도 우아하고 탁월하지만, 작품 본연의 의도가 이처럼 분명하게 전달되게 표현할 수 있다는 한국어 독해의 체험도 상쾌하게 이뤄 준 역자께도 감사 드리고 싶어지더군요. 처음부터 테드 창(다시 말하지만 그는 중국인의 인종적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외모만 지녔을 뿐 영혼은 이미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류의 미국인입니다)이 한국어로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착각할 만큼요.

어떤 작품이 심오한 주제와 사색의 결과를 담는다고 해도, 그런 작가의 성취가 독자에게 바로 공감되게 하는 건 또 별개의 과제입니다. 어쩌면 그저 사색가, 사상가이기만 한 인물의 특질과, 작가적 재능이라는 게 이 지점에서 준별되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테드 창은 그저 자연과학도 출신 작가라기보다, 그 어느 정통파(?) 인문 소양을 쌓은 이보다 더 정밀하고 깊이 있게, 인간 보편의 주제를 파고들어간 본격 문학에의 기여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표제로 선택된 구절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출처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어느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 주는 내러티브 형식(에다, 분리된 어느 충격적인 공적 체험의 첨가, 분리, 융합?ㅋ)을 띠고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렇게 거칠게 요약하는 자체가 이 작품을 제대로 대접한는 게 아니죠. 주인공 여성은 언어학자인데, 어느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그녀의 연구실을 찾아와 "기괴한 언어"의 녹음 파일을 들려 주며 자문을 구합니다. "이것이 언어입니까?" 주인공은 확답을 피한 후, 혹시 외계인과의 접촉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이게 그녀의 직분상 당연히 도출되는 결론이었는지, 그 밖의 정보를 참고하거나 직감 따위를 함께 동원한 성과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인칭 주인공은 의도적으로 이런 정보를 상대(우리들 독자, 혹은 그녀의 딸인 "2인칭" 주체)에게 감춥니다. 대신 그녀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지적인 추론" 결과로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헵타포드라는 외계 생명체(혹은 의식 주체)가 "체경(looking glass)"을 통해 정부 고위 당국과 의사소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체경은 화학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기에 어떤 분명한 통신의 매개로 쓰임이 입증되는 형편이고요. 이 체경에 등장하는 "거울 저편"의 그들과 필사적인 소통을 이루면서, 언어학자인 그녀는 패턴 분석을 통해 그들의 언어를 우리식 문법으로 정리하려 애씁니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음성언어는 어차피 시간 차원의 지배를 받으므로(누구든 둘 이상의 음절을 동시에 발화할 수 없습니다) 시간 순으로 정돈되어야만 하지만, 문자언어는 2차원(적어도) 평면에 표시되는 게 보통이므로 연대기순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즉 인간은, 말을 할 때와 달리 글을 쓸 때는 여러 심상과 생각, 사건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일단 가능성으로는요). 이들 헵타포드의 B형 언어는 이를 현실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딸에게 들려주는 "너와 네 아빠, 그리고 엄마인 내가 겪은 인생 이야기"를 위의 외계인 사연과 교차하며 다룹니다. 딸이 2인칭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의 시제(tense)도 독특한데,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다 아는 걸 보면 (우리 눈치로)이게 분명 과거의 일이지만, 시제는 미래, 최소한 미래로 보일 법한 현재입니다. 이미 인식의 지평이 동시간대의 동시 지각으로 넓어진(?) 화자라서 미래의 일을 과거처럼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계인과의 소통 체험과 언어 연구를 통해 그녀는 주체와 격체의 치환, 과거와 미래의 교차가 적어도 부자연스럽지는 않은 지적 작용임을 받아들이게는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선 작가의 깊은 언어학적 소양도 잘 배어나는데요(도대체 모르는 게 뭐야?), The rabbit is ready to eat. 이란 문장을 두고 상(相. aspect)의 근원적 모호성에 대해 많은 숙고의 결과들을 토로합니다. 이런 게 다 중국어 발화 상황을 근거리에 둘 수 있었던 작가만의 이점이었을까요?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본래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연속선상의 시간 개념에 대해 무신경한 편입니다. 여기서의 헵타포드 종족은 이방인(alien)으로서의 동양인을 함의하는지도 모릅니다.

<영으로 나누면>은 제가 예전에 영문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났네요. 어떤 천재 수학자(역시 여성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가 젊은 시절부터 주위의 기대와 촉망을 한 몸에 받고 자라났는데,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형식 체계로서의 수학이 너무나 큰 허점을 지니고, 절대적 확실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은 다른 (불완전한) 언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편의적 표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모든 의욕과 신념, 심지어 재능까지도 잃어버린다는 내용입니다. 대학생 시절 그녀는, 남편이 될 칼이란 청년과 교제를 시작하는데, 칼(이 사람은 위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남편 게리와 비슷한 포지션이죠)의 말을 잠시 옮겨 보면요, "그 얼굴에서 그처럼이나 다른 표정이 나타난다는 점이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저런 깨달음이 담긴 표정을 평소에는 어떻게 감추고 있었는지가 신기했다." 우리가 흔히 "질리지 않은 사람의 매력"이란 게 다 이런 걸 두고 이르는 거죠.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아니다를 떠나, 사람의 정신 세계가 단세포성이 아닌, 변화무쌍한 다양한 국면을 두루 포함해야 그 사람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지루하질 않죠. 이처럼 테드 창의 작품은, SF의 세계에 인간 보편의 관심사, 일상적 측면까지 깊이 담아낸 작가적 통찰이 단연 돋보입니다. 테드 창이 의도적으로 배열한 작품 표제, 제사(에피그램), 형식 구분 기호가 마지막 9장에서 a=b로 합쳐지는 모습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처럼 형식과 내용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구조에서, 테드 창은 정말 초지능의 외계인처럼 실험적 소통의 변방을 탐사 중입니다.

이 선집에서 단연 압권을 이루는(제 개인적 생각으로) 단편은 <이해>입니다. 뇌 손상을 입은 평범한 남성이 정부 주도(CIA라고 하네요. 만만하면 불려나오나요?) 실험에 참가하여 약물을 주입받고 초지능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저 추론이나 판단, 연산만 능해진 게 아니라, 감각, 지각 능력까지 극도로 민감해져서, 나노 단위의(ㅋㅋㅋ) 외부 자극만으로도 그 원인과 이후 추이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약물 주입이 아니라 해도 정상적인 지능 역시 계발을 하면 할수록 향상되는 이치처럼, 자잠재력의 발견에 아주 기냥 탄력이 붙은 그는 신경 세포 단위의 극미 요동만으로도 상대의 생각을 다 읽어내는, 초자연적 존재(물론 과학적으로 설명이 다 되니 초자연적이라곤 못 하지만 ㅋㅋㅋ)가 되고 맙니다. 헌데, 어디 정부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이가 이 자뿐이겠습니까? 다른 누가 극히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해 와 (그와 비슷하다며)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같은 초지능의 소유자지만 지능의 우월과 그 확인이 인생에 있어 최고 수위의 가치이자 목표인 그와, 이 새로운 "동류(자신보다 못한 다른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자가 되려 함)"는 서로 매우 성향이 다릅니다. 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알기 위해 말을 할 필요가 없고, 그저 신경 세포 단위의 미세한 동요만으로 상대가 뭔 의도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습니다. 둘 사이에 타협이 불가능한 가치관의 차이를 감지한 주인공은, 이제 뇌파의 발사(?) 등 상대 의식에의 (해킹 같은) 침입을 통해 그의 존재를 파멸시키려 듭니다. 하지만 상대 역시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지녔는데 당하고만 있을까요? 우리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지도 못하며, 혹 근처에 있었더라도 이상한 아저씨 둘이서 눈싸움 하는 모습 정도로만 보이겠지만) 구원자 성향인 레이놀즈가 주인공을 제압하길 바라야 하겠는데... 결말도 여태 이뤄진 거창한 전개에 걸맞게 극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제가 보기엔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대결 못지 않은, 장렬함과 극적 타당성이 있더군요. 이렇게만 소개하면 장난스런 무협인가 오해하실 수도 있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신경과학과 생체 구조에 대한 완벽한 지식이 있어야 형상화할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최민식, 스칼렛 조핸슨 주연 <루시>도 이 소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겁니다.

이상의 세 작품이 특히 하드 SF의 개성을 진하게 구현했다면, <바빌론의 탑>과 <지옥은 신의 부재>는 본격 순문학 작가들이 자주 다루면서도 서투르게만 성과를 내는 "엄청난" 주제에 과감히 접근하면서, 테드 창 외에는 누구도 낼 수 없는 심오하고도 상상을 초월한 경지의 결론으로 과감히 마무리되는 내용입니다. <바빌론..>이 SF 장르에 포함되는 건, "분리된 하늘과 땅"이 실은 원통과 같은 연속체꼴이며, 이 때문에 하늘 끝까지 올라가 그에 구멍을 내려 든 주인공이 목표를 달성하고 도로 땅에 떨어졌다는 수학적 설명이 핵심이라는 이유 뿐이겠습니다. <지옥...>은 그나마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테드 창 스럽게" 드라이하고 논리적인 서술에만 의지한다는 이유뿐 이게 꼭 SF로 여겨질 필요가 없죠. 읽으면서 이런 생각지도 못한 대담한 해석과 제안이 그가 우수한 두뇌를 지닌 덕인지, 아니면 책을 많이 읽고 광폭의 사색에 잠긴 시간이 많아서인지, 한참을 고민하게도 되었습니다. 꼭 답을 한쪽으로만 정할 필요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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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이야기 -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사이먼 하비 지음, 김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밀수라는 주제가 이렇게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채울 만큼 긴 역사를 가졌을까? 이런 궁금증이 드는 분들이라면, 우리가 사는 현대 세계의 탄탄한 공적(公的) 사회 구조가 얼마나 개개인에 큰 혜택을 제공하는지 잠시 잊었을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무역의 역사는 곧 밀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 나지 않는 산물인데, 어쩌다 운이 좋아 한번 구해 써 보니 그렇게 요긴할 수가 없더라, 뭐 이런 반응이 퍼지면, 그래서 그 물산을 갖고자 하는(수요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모험심 강한 이들은 멀리라도 가서 물량을 확보한 후 고향 사람들에게 풀어 놓고 한몫 크게 잡자는 생각을 품을 만합니다. 그 타향에서 이 물자가 발에 채일 만큼 흔하다면 더 이문이 크겠음은 말할 것도 없겠고요.

헌데 국가는 이런 장사치들의 행태에 늘 주목합니다. 농업처럼 수지 구조가 빤한 산업에도 세금을 일일이 물리는 게 나라인데, 하물며 장사치들의 이런 크게 이익이 남는 경제 활동에 눈을 감을 수는 없죠. 한편으로 풍토병 등의 유입 가능성은 관리들의 개입에 좋은 구실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국경을 넘는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단 나라에서 들춰 봐야 법도에 맞다고 법으로 정해 버립니다. 들춰 보는 김에 세금도 매겨야 정석이라며 서슬이 퍼런데, 거칠 걸 이처럼 다 거쳐서는 남는 게 없겠다고 판단한 장사치들은 밀수를 시도합니다. 태초에 무역과 국경과 세관이 있었고, 밀수는 그 형들과 몇 초 사이를 안 두고 태어난 쌍둥이 동생입니다.

다만 근대형(?) 밀수 중 규모가 크고 우리들 현대인들에게 충격을 줄 만한 역사적 사실들이라야 시간을 내어 책장을 넘기는 보람이 있겠으므로, 저자께서는 특히 근현대사에 제법 굵직한 족적을 남긴 "밀수의 대가, 엄청난 스캔들"에 초점을 두어 이 두꺼운 책을 채워 나갑니다. 밀수라는 위법, 변칙 행위에 주안을 두었을 뿐 내용은 흥미진진한 대중 역사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우리 독자들에게 꽤 알려진 이들이 대부분인데, 다만 그들이 행한 "밀수"를 중심 축으로 바꿔 이들의 행적을 살피니 새삼 경제구조와 정치적 행위 사이에 그간 눈에 안 띄던 분명한 함수관계가 부각되는 맛이 있더군요. 물론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밀수도 했었어?"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짓"도 하고 남았을 대담성을 갖춘, 사악한, 혹은 과감한(?) 품성을 지녔음을 우리가 익히 알죠. "밀수"에 활동상의 중심이 놓인 채 관찰되는 그들은 일견 찌질하기도 하고, 반면 그들의 "미션"이자 이 책의 사실상 주인공인 밀수는 의외의 밀도와 무게로 독자 앞에 그 존재감을 뽐냅니다.

카리브해는 보통 미국의 뒷마당으로만 알려져 그 먼 과거에 어찌 세계사의 중심으로 등장했을까 하고들 착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죠. 이미 대항해시대에 이곳은 거대 해양 세력의 각축장이자 엄청난 물량의 주된 수송, 교역 루트 중 하나였습니다. 요즘은 절판된 가일스 밀턴 저 번역서가 한때 한국의 독자들에게 큰 인기였는데(도정제 실시 전 7,80% 할인 아이템으로 아주 자주 노출되었죠). 이 책의 1장은 그 책의 전권 내용을 요령껏 압축하다시피(직접 참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책이 더 재밌게 쓰여졌다는 게 제 개인적 평가)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만큼이나 "남는 장사"를 했으니 VOC가 그만큼 행세를 했던 거고(그 이전 시대 포르투갈, 스페인의 성세도 당연 다뤄집니다), 심지어 교회(가톨릭)까지 끼어들어 성사(sacrament)의 미명 아래 이 검은 거래에 끼어 구린 돈을 챙기네요. 드레이크, 존 호킨스 등 요 시절을 누빈, 불세출의 악당 들도 불려나와 재미있게 지면을 채웁니다.

"독점"은 예외적 병리 현상이 아니라, 이윤 추구의 극대화를 노리는 상인, 사업가들이 필연적으로 일구려 애쓰는 궁극의 진화 단계입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비판과 지적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몸 속에서 자라나는 필연적 독소"를 제거해야 하는 절실함이 깃든 단계입니다. 미국에서 독점 방지법에 대고 "부정경쟁방지" 같은 타이틀, 명분을 꼭 붙이려 애쓰는 게 다 이런 이유죠. 아무튼, 이 이른 시점에서도 벌써 "독점"에의 집요한 노력이 사방에서 작용했는데, 이렇게나 풍성한 이익을 안겨주는 무역의 텃밭을 근본 없는 해적들에게 넘길 게 아니라, 국가(혹은 그를 위원회 삼아 뒤에서 조종하는 사업가들)가 직접 관장하려 든 게 2장의 주제가 된 역사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전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각축전을 벌인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아직 잉글랜드이기만 하던 시절)의 쟁투가 주된 뼈대네요.

3장은 이처럼 국가가 직접 나서 무역을 통제, 지배, 장악, 독점하려던 시도가 (해적 사이가 아닌) 국가들 간의 치열한 분쟁으로 비화했고, 어느 정도 타협과 우열 상황이 가려지면서 안정적으로 (각국의) 공적 시스템에 편입한 후에도 또다시 암암리에 성행했던 밀무역의 실상, "진화된 모습"에 대해 다룹니다. 1장에서 "뛰는 국가에 나는 밀수꾼"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요즘 미드를 봐도 잘 나오지만 마약 단속을 시도하는 공권력의 수단이 얼마나 정교하게 발전합니까. 그런 와중에서도 마약 카르텔의 수법은 언제나 이런 법망을 피해 교활한 수단을 더 발전시키는 작태가 잘 드러나죠. 이익이 생기는 곳에 뛰어난 두뇌가 몰려들 수밖에 없고, 항해 기술의 발달 덕에 이런 밀무역의 무대는 전세계를 향해 넓어집니다. 이 와중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들은, 기독교로 거짓 개종하여 생활의 터전을 지키려 든 유대 상인들이군요.

앞 단락에서 잠시 마약 밀수에 대해 언급했지만, 바로 이어지는 4장에서는 구 스페인 제국 식민지에서 어떤 과정으로 여전히 밀수가 성행했고, 이 오랜 밀수의 전통(?)이 현대의 마약 카르텔로 계승되는 과정, 그 와중에서 그런 현지의 독특한 풍조가 빚어낸 대중 문화에까지 화제를 옮겨갑    니다.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점은 이처럼, 어떤 단선적 연대기 구성에 그치지 않고 지역을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현대사의 주요 이슈에까지 분석의 기조를 이어간다는 점이겠습니다. 네덜란드 장사꾼들. 그리고 잉글랜드의 라이벌들이 워낙 큰 이익을 남기는 꼴을 보다 못한 프랑스도 동인도 회사 하나를 창립하지만, 부패가 그들의 발목을 잡습니다. 여기서 "부패"라 함은 뇌물 수수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계약의 준수 등 폭넓은 신뢰의 기조가 사업가들 사이에 형성되었는지를 두루 가리킵니다. 라틴 계의 동인도 회사, 혹은 그보다 선배격인 스페인 제국의 체제가 본토에로의 영속적 번영으로 이어지질 못하고 일부 토호들의 배만 채운 채 흔적도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소재를 던져 줍니다.

로버트 만드린 같은 자는 바다에서뿐 아니라 육상에서도 자치국과 제국을 오가며 현란한 밀수의 기술을 뽐낸, 일종의 협객이나 의적처럼 떠받들어지던 괴한이죠. 저자는 에릭 홉스봄(물론 우리가 아는 그분)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기이하게도 왜 이런 "전설적인 밀수꾼"들이 범죄자로 인식되지 않고 민중 영웅 혹은 문예 속에서 이상화한 거물로 미화되었는지를 짚습니다. 화제가 여기에 이르고 보면, 대체 "밀수"가 얼마나 일반 민중의 생활에 밀접히 닿은 경제활동이었는지를 실감합니다. 제가 로버트 만드린의 예를 접할 때 언제나 떠올리는 인물은, 광해군 연간에 가도를 점령한 희대의 밀수꾼 모문룡입니다. 그를 원숭환이 처형한 건 황제의 국고를 축낸 대형 범죄자에 대한 당연한 의율이었는데, 이런 정당한 법집행을 이룬 그가 도리어 환관, 북경의 대상인들의 미움을 사 능지처참되고 만 건 이런 배경이 따로 작용해서입니다. 침체에 빠진 수도의 경기를 유례 없이 살린 그를 왜 죽이냐 이거였죠.

12장으로 가면 아예 필그림 파더스의 대의를 더럽히는, 조지 워싱턴 등 4인방(이른바 "국부[國父]"의 위상)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밀수에 가담했는지 적나라한 폭로가 자세히 언급됩니다. 임칙서의 실패도 결국은 교역에서의 거대한 이문의 향방을 놓고 배후에서 벌어진 파워 게임에서 정세를 바르게 읽지 못한 점도 지적됩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 추동력은 당연히 이익에의 욕구이며, 이런 벌거벗은 욕구를 밀수만큼 극명하게 구현하는 집단적 경제 활동사도 따로 없음을 이 책은 너무도 재미있게 설명해 줍니다. 밀수는 예외가 아니라, 차라리 대세를 이루는 치명적인 몸부림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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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황홀한 역사 - 수의 탄생에서 현대 수학 이론까지 지식의숲 K
토비아스 단치히 지음, 심재관 옮김, 정경훈 감수 / 지식의숲(넥서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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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재 중등 교육 과정에서 "말, 감성"이란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 영역은 수학밖에 없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삭막한 물리만 해도, "빛은 과연 파동이냐 입자냐, 혹은 아인슈타인이 답을 정해 준 방식을 과연 답이라고 할 수 있느냐"를 놓고 하염없는 상념에 잠길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걸 캐고캐다 보면 철학의 영역에 도달하고, 혹은 칸트, 헤겔, 마흐 철학만 깊게 파고들어도 꽤 소양 있는 수준의 물리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반면 수학은 문제가 감춘 정답을 찾기 위해 최적의 경로를 모색하는 쾌감이 고작입니다. 이런 건 정적 속에서 깊은 상념에 잠기며 먼 궁극을 응시하는 겸손된 희열이 아니라, 말을 타고 사냥감을 쫓는 동적인 쾌감과 연결될 뿐입니다.

음 그런데, 대략 지금보다 백여 년 전에 활약한 이 책 저자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의 시대(는 우리와 마찬가지)보다 일정 시점 앞선 때에는 수학 교과서가 그저 공식과 문제 풀이 위주로 쓰여지진 않았다고 하십니다. 수학 교과서에 품위 있는 문장으로 인문의 교양을 곁들여 가며 두툼한 분량으로 어린 독자와 소통하는 점잖은 책을 상상하니 괜히 마음이 설레기도 하는데요. 국가가 베푸는 시스템 아래서의 교육이 "보통 교육", 즉 출신과 신분에 무관하게 누구나 시민으로서 최소 소양을 쌓을 수 있게 배려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이의 확산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보다 실용적인 편제를 차리다 보니 지금처럼 삭막한 모습이 되었다는 취지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아마도 토비아스 단치히 박사님께서 "10대들에게 읽혀야 할 진짜 교과서는 이래야 마땅하거늘" 같은 계획을 품고 써 내려간 게 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는 드는군요.

수학도 무슨 신으로부터 느닷 태블릿에 새김 받은 십계명 같은 게 아니라면, 사연과 인물과 사건과 가치관과 철학이 (표면에 드러나지만 않는다뿐) 다 지난 내력에 서려 있게 마련입니다. 숱한 사람들(좀 특별한 두뇌를 타고난 이들이긴 하지만)의 노고와 피땀이 서려 이뤄진 학문적 성과 중 안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괜한 감성의 개입이나 그로 인한 오해의 여지를 안 남기게, 깔끔하게 그 성과가 정리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보니 그런 불친절한 모양새를 띨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수학의 진짜 모습을 어린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수학의 역사를 쉽게 풀어 쓴 책도 있고, 원리를 잘 표현하는 퍼즐 여럿을 섞어서 "생각하는 힘"을 사연과 함께 길러 주려는 의도의 책도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수(數)"라는 언어를 계발시켜 온 과정에 보다 초점을 맞춰, 인문과 수학이 아직 별개가 아니던 시절까지의 힘겹고도 장엄하며 위대했던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事象)에 사연, "스토리"가 빠질 수 없고, 토비아스 단치히 박사님이 파악하는 "수학이 살아 온 이야기"는 이런 내용인가 봅니다.

저자는 "수의 역사는 사유재산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라고 추정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도 많겠으며, 다만 수가 일상의 생활에 그토록 절실한 필요가 있으려면, 재산의 취득과 관리, 증식에의 강한 욕구가 생기는 게 우선이었겠다는 정도는 충분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이른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수뿐 아니라 최초의 표음문자도 페니키아 상인들에 의해 고안되었으니, 수가 처음 생겼을(발견 혹은 인식되었을) 때만 해도 그저 사람의 경제 활동을 돕는 수단으로 퉁쳐 여겨졌을 뿐 오늘날처럼 세련되고 정교하게 구분되지는 않았겠죠.

p66에 보면 삼각수의 발견 과정이 단순한 그림을 통해 제시됩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기에 의아할 정도인 피타고라스 학파의 "진지함"은, 자신들의 업적이 후세인들(현대인뿐 아니라 수 세기 후 세계문명 발전을 주도한 아랍인들 포함)에 의해 어떤 학문적 의의를 부여받으며 칭송될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수학만큼 "종교"와 거리가 먼 분야도 없을 것 같은데, 이들 고대 그리스인들은 초월과 피안에의 열망 그 비의의 발견과 묵시를 오로지 수를 통해 이루려 들었으니, 세상 만사의 통성과 본질은 당최 그대로인 게 없이 변화무쌍할 뿐입니다.

저자께서는 아랍인들의 업적을 소개하며, "왜 이들이 그처럼 인도의 흔적과 영향을 배제하려 들었는지 알 수 없다. 헬레니즘의 계승자를 자처하느라 의식적으로 브라만을 멀리한 것일까?"라고 하시지만 그저 반어적 언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헬레니즘 세계는 (비록 적대적이었다고는 하나)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어느 정도는 공감대가 형성된 "바다 저편"이며, 반면 힌두이즘의 아대륙은 "알 수 없고 혼란스러운 다신교의 난장판" 정도로 혐오와 경멸이 어린 시선이 끼어들었던 이유가 아니었을지요. 여튼 기독교인들은 "people of the book"이라며 그 예언자가 일정 예우를 당부한 바도 있으니 말입니다. 아바스 왕조는 그 존속 기간 동안 대체로 비잔티움과 팽팽한 외교적, 군사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정수론은 매혹적이지만 그 이산적(discrete)인 성질 때문에 아직도 곳곳에 장벽이 가로놓인 분야이죠. 여기서 저자는 페르마의 정리를 잠시 독자에게 환기시키는데, 이처럼 이 문제는 수백 년 동안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의 대명사처럼 인용되어 왔습니다. 감수자님의 주석에도 잘 나오듯, 1990년대 초반 옥스포드대 교수 앤드류 와일즈가 현대 수학의 성과를 총동원하여 결국 "옳음"을 증명해 냈죠. 외관상 그토록 간단해 보이는 정리, 명제가 그토록 까다로운 과정의 증명을 요한다는 게 경악스러울 뿐입니다. 소수(素數. prime number) 이슈도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부터 해서, 여전히 풀릴 공산이 희박해 보이는 여러 난제들과 함께 소개됩니다.

이 책은 저자분과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버트란드 러셀이라든가, 수학에도 빼어난 재능과 소양을 지녔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등의 업적도 정성을 들여 서술합니다. 그뿐 아니라 푸앵카레도 여러 군데에서 다양한 맥락 속에 언급되는데, 이런 쟁쟁한 석학들과 같은 시대를 호흡한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게 다소 신기한 느낌도 주는 대목이네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수학은 무오류이며 언젠가는 이 수학의 영향 하에 모든 학문의 언어, 나아가 모든 일상어까지 모호함이 일절 배제된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강한 낙관적 신념을 가졌던, 당시 지성인들의 공통된 분위기를 반영하는 문장이 눈에 많이 띕니다.

어떤 집합에 마지막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수학은 "무한"이 개입하지 않는 한 완전한 무오류의 패러다이스입니다(무한이 포함되면 양상이 어떻게 바뀔지, 여전히 일체의 오류를 몰아내어야 한다는 게 수학자들의 소명이지만 최근에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죠). "마지막 원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란, 보기보다 엄청, 일반인이 구체적인 상상을 해 내기 어려운 문장입니다. 마틴 가드너는 "무한 호텔"의 비유를 들며 "마지막 호실이 없는 숙박업소"에, 꽉 찬 객실마다 동시에 "자신의 호수 다음 방으로 옮겨 가십시오"라는 통지를 보내, 손님 하나를 더 들이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을 합니다. 손님이 무한히 많으면, 손님들에게 방을 옮기라는 통지를 하는 데도 무한한 시간이 걸릴까요?(경비실에서 한 동 모든 세대에 인터폰으로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편, 손님들이 바로 옆 방으로 옮기는 행위를 동시에 벌인다면, 무한한 손님이나 1인의 손님이나 경우마다 소요되는 시간은 같을 것입니다. "무한"이란 이처럼 반드시 모든 연산, "행적"마다 무한을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서 더욱 혼란을 줍니다. 0으로 나누는 게 정의되지 않는 이유도, 평이한 계산에 처음으로 "무한"이 끼어드는 대목이라서 그렇습니다.

8장에서는 수열을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건 "급수"입니다. 급수는 수학과 학생들보다는 공대생들이 머리빠져라 공부하고 외워야 하는 파트인데(증명 과정이 이해가 안 되면 크라이직 공업수학 책 통째 다 외워야 하죠), 테일러 급수 등 "초월수"의 근삿값을 기계적이고 직관적인 프로세스로 구해내는 그 모습이 매우 매혹적이죠. 이처럼 이 책은 점잖은 어조 속에, 수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매력과 신비한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강조합니다. 수열이 흥미로운 이유는 독특한 패턴이 드러나기 때문이며, 현대 수학 중 가장 재능 있는 이들로부터 헌신의 대상이 되는 "프랙틀"도 이 "반복"의 묘(妙) 그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음.. p213을 보면 감수자께서는, 저자가 언급한 제곱근 계산 알고리즘에 대해 "개평법"이라 단언하시면서, "그 원리도 모르고 가르치긴 하나 계산 효율이 낮다"고 혹평하십니다. 아마도 이 언급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정을 염두에 두신 것 같고요. 기계가 아닌 사람이 수행하기엔 제법 재미도 있을 뿐더러, 하다 보면 제곱근의 원리까지 곱씹게 되기도 합니다. 저로서는 동의하기가 좀 어렵네요.

p139에 보면 국제 정치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저자의 생각 편린이 엿보입니다. 여기 말고도 그는 루이 14세 본인이 직접 털어 놓은 속셈으로 "외교에 있어 병합만큼 좋은 수는 없어!"라고 했던 일화를 인용합니다. 실제로 루이 14세는 번영하던 소국 네덜란드와 어떤 교류, 협력을 이뤄 자국의 이익을 꾀하는 번거로운 방책보다, "그냥 삼켜 버리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 식 강경책을 구사했고, 이는 수백 년 후 나폴레옹 등 정치가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튼 이런 국제 정치학상의 "병합"과, 저자가 역점을 두어 설명하는 "불변의 원리"가 서로 무슨 연관을 맺는지는, 독자들이 깊은 숙고를 하여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p150을 보면 감수자께서 "이건 사실 당연하여 증명이 불필요한 명제이다"라고 하시는데, 수학적 센스가 있는 독자라면 이 감수자님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다들 여길 겁니다. 그런데 구태여 누가 "왜 당연해?"라고 묻는다면 좀 설명이 궁색할 수 있죠. 이 책을 열심히 읽은 독자로서 제가 한 마디 덧붙인다면



만약 우변의 a가 유리수라면, 그 유리수는 어떤 유리수의 거듭제곱으로 당연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 거듭제곱근 중 하나가 b라면 이 식은 이제,



로 바뀌는데, 좌변의 x나 우변의 b나 같은 유리수 집합 안의 원소이므로, 양변은 결국 문자만 바뀌었을 뿐 같은 의미이고, 따라서 아무 내용이 없습니다. 이런 걸 항등식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책 본문 바로 위를 보시면 이 식을 두고 "방정식"이라고 합니다. 항등식에 지나지 않는 걸 방정식이라고 하니 모순이 아닐 수 없죠. 감수자님의 지적이 이런 이유에서 타당한 겁니다. 이처럼 이 책은, 원저의 부주의나 오류도 한국어판 감수자께서 일일이 메타적으로 발견해 놓았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p169에 보면 감수자님의 재미있는 지적이 하나 더 나옵니다. 주석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신 건 저자의 "... 원과 같은 넓이를 지닌 정사각형을 작도하는 게 불가능하다"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그럴 리가요), 본문에서 설명된 내용만으로 "불가능 증명"이 이뤄진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2차뿐 아니라 4, 8, 16차,.. 모두에서 "불가능"이 밝혀져야, 본문처럼 "최종적으로 불가능"을 단언할 수 있죠. 일일이 모든 짝수차에 대해 개별 증명을 할 수는 없고(책 앞에서 나온 대로 무한이니까), 감수자께서 말씀 하신 대로 "대수(algebra)적 수가 아님"을 들어 일반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라는 도구가 대단히 편리하며,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정연한 체계를 보이지만 유일한 혼란이 바로 "무한" 논의에서 발생하므로, 이 책은 챕터 를 가리지 않고 이 토픽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합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대상을 바라보며 분석하려 드니 여러 무리가 따르는 게 당연하지만, 역으로, 무한에 대해 이처럼 깊은 생각에 접어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근원적 낙관을 내포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게오르그 칸토어의 유명한 말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처럼, 수학에 몰두하는 인간은 사고와 사색의 위대한 힘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절대를 근사(近似)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이런 심원한 주제를 숙고한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이, 이 고전을 읽는 행위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고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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