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 - 가사로 읽는 한대수의 음악과 삶
한대수 글.사진 / 북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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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 사진도 그렇고, 저희 아버지가 생전에 사다 모으신 몇 장의 앨범 재킷도 그렇고, 한대수 선생의 얼굴을 담은 컷들은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 번 보면 누구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마스크, 표정, 주름살, 눈빛... 저는 그분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도 아니고, 지금 들어도 그리 깊은 공감을 이룰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으며(혹은 들을 뻔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어른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하여) 여러 뮤지션들은, 그의 가사, 곡조, 보컬에 녹아 있는 깊은 feel과 자유혼에 완전히 매료된다고 합니다. 한대수의 음악은 지구상에서 한대수만이 만들고 부르고 연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작 도이처는 레온 트로츠키의 전기 3부작을 쓰면서 마지막 권의 제목을 <추방당한 예언자>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이 한대수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이분 역시 그런 별칭으로 (감히)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말끔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신의 음성을 전달했다기보다, 일종의 법열에 들떠 피안의 진리, 묵시의 비전을 대중에게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대수 선생이, 엄혹한 군사 독재가 민중의 숨줄을 짓누르던 시절, 노래를 통해 작시(作詩)를 통해 이 땅의 민중과 교감하려 했던 바는, 자유와 해방과 인간 본연의 기쁨의 회복 같은, 특정 신앙에 구애 받지 않는 보편의 휴머니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음악이 나왔을까 싶을 만큼, 그의 목소리는 투박하고, 그의 가사는 몽환적입니다. 이 책은 별권부록으로 악보집이 함께 딸려 있고, 본권에는 그가 찍은 사진, 그가 만들고 부른 대표곡들의 가사, 그리고 그의 비밀스런 사연과 가족사,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을 향해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명문 경남중을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고교를 나왔고, 대학 졸업 후 유력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다 낸 음반이 모조리 판금 조치가 되는 바람에 다시 도미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첫번째 부인은, 안정된 생활의 보장도 마다하고 "당신의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미국으로 가자"고 오히려 격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결국 파경을 맞으시긴 하나, 저는 당시의 여성이 이 정도로 과감하고 깨어 있는 생각,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부창부수, 과연 그 남편에 그 부인이다 싶었습니다.

그의 음악만큼이나 가사도 사실 난해합니다. 그의 음악에 공명하는 이들은 그런 문자적 의미를 따지지 않고 열광을 보내었습니다만, 이제 칠순을 바라보시는(그리고 건강도 썩 좋지 않으시다고 합니다) 이 거장의 세계를 후대인들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처럼 작시, 작사의 동기가 무엇인지, 각 시어가 어떤 해의로 다가와야 하는지, 아티스트, 포우이트 본인이 직접 내린 "유권해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도 출간이 적실했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가사만 보아서는 전폭 몰입이 어려우며,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배경음악으로 그의 마스터피스를 깔아 놓고 독해해야 비로소 온전한 감상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의 작사는 그의 작곡만큼이나 그의 유니크한 감성, 예술혼의 산물이기에, 애써 독립문학으로 간주하자면 그에 알맞은 해석론 전개가 역시 가능하긴 할 것입니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여러 번 거론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입니다.

저는 이분의 존재감을 2000년경, 김현철이 진행하던 KBS FM 심야프로애서 게스트로 출연하셨을 때 청취자로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도 그 무렵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는 HOT가 한국의 음반시장을 독식할 때였다. 내 봐야 팔리지도 않을 한대수의 음반을 누가 제작할 것인가?" 손무현 등 뜻 있는 뮤지션들이 힘을 모아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그는 책에서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HOT와 한대수.... 생각해 보니 정말 모든 코드에서 극과 극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네요. 저 무렵만 해도 아직 정력 좋아 보이는, 기질 드세고 직정적인 이미지의 아저씨였는데, 이제 그는 누구의 눈으로도 노화를 부인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 방송에서도 그렇게나 "사랑"을 강조하시더군요.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사랑을 못하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이 책에도 에이즈 관련한 여러 언급이 나옵니다만, 당시의 그는 국제 에이즈 퇴치 기금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이 20대, 혹은 그 부유한 가정에서 귀하게 자란 아동 시절 어떤 모습이셨을까가 궁금했는데, 책 말미에 여러 컷이 실려 있어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저는 한 선생의 부친이 어떤 경위로 어린 아들, 가족과 이별하게 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핵물리학자인 그는 (이 책에서 아들인 한대수 선생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 정부에 의해 모종의 조치를 당하여, 납치 후 강제 기억 상실 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언급하며 그는 소련의 스파이란 혐의를 쓰고 사형당한 "긴즈버그 부부"의 예를 드시고 있는데, 긴즈버그는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 주자며, 그 사건의 주인공은 로젠버그 부부입니다. 집필 중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기억을 잃어 버린 그는 미국인 여성과 다시 결혼하게 되는데, 이분을 한대수씨는 "미국 엄마"라고 부르시더군요. 물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바대로, 한대수씨에게는 그의 10대~20대를 열성으로 보호해 준 유명 피아니스트인 모친이 따로 계십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듯 그는 조부모부터 해서 실로 화려한 가계를 지닌 분입니다.

15년 전 방송 출연시에도, 선생은 두번째로 맞은 아내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나이 차가 이십 년 가까이 나는 러시아 국적의 여성이시죠. 그 당시엔 언급이 없으셨는데, 이후 두 분 사이에 아이가 생겼나 봅니다. "양호"라는 이름의 귀여운 소녀가 이 책 곳곳에 모습이 나옵니다. 선생도 노령이지만 아내분도 임신 당시 노산이라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아주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 이름을 그리 지으셨다고 합니다. 책에는 부인 옥사나 알페로바 여사의 누드가 두 컷인데, 풀 프론틀 샷이니 주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을 앨범 자켓에 쓰자고 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단 말밖에 안 나옵니다. 아내 사랑이 극진함을 여러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었고,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책 말미에 나오듯 여사는 현재 알코올 의존증으로 매우 큰 고통을 치르시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건강이 이러시니, 보는 이들이 깊은 우려를 떨칠 수 없겠죠.

책은 깔끔하고 담백한 구성입니다. 다 읽고 나서 "그렇게도 무거운 내용이었던가?"를 생각하며 잠시 놀랐을 만큼요. 신중현은 10.26이후 "하늘이 나를 살리고 박정희를 데려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한대수 선생만큼 한반도의 1970년대를 몸으로 치열히 살아낸 분도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란 말이 유행어로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선생은 그 살아 있는 표본으로서 순일한 이데아를 보여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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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독립 -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남자, 독립을 꿈꾸다
이봉규 지음 / 프롬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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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쓰신 이봉규 박사님의 성함도 처음 들었고, 책을 펼치고 나서야 본업이 정치평론가, 교수이신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란 게 아예 부재하기에, 그를 두고 이뤄지는 무슨 "평론" 같은 것도 가치를 평가할(영어로는 believe in)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내용대로, 가수 조영남 선생이 "당신 정치평론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란 코멘트를 했다면, 모르긴 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정치평론가로서의 호불호가 아주 극명하게 갈리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저자께서 주장하신 바가 만약 열 가지라면, 여덟 가지 정도에 대해선 심한 반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라지만, 그런 가치관상의 반대 성향은 이 책을 읽기 오래 전부터 저 나름의 인생 경험을 통해 다져 온 것이라, 앞으로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유익하기도 했고요.

 

우선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저자분이 너무도 솔직하시다는 점이었습니다. "솔직하다"는 건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나의 감정상 호불호를 숨기지 않고 마구 표출한다"는 뜻일 수 있고(이 경우는 뭔가 따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솔직하다"보다는 "경솔하다"가 어울리겠죠), 다른 하나는 "치부에 가깝거나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도 격의 없이 털어놓는다"일 수 있습니다. 이봉규 박사님의 개성, 태도는 이 중 후자에 가깝습니다. 연세도 거의 육십을 바라보시는 단계인데, 이처럼 자신의 세계관, 습성, 태도에 대해 아무 가식 없이 털어놓으실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놀라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책 속에서 털어놓고 있는 대부분의 사연이나 견해가, 저 개인적으로는 종래 거의 일일이 반감, 혹은 경멸감까지 갖고 있는 터라, 책 읽은 후 다가온 그 정체를 모를 상쾌한 독후 감상이 더욱 신기한 체험이기도 했고요.

 

저자는 마흔 후반에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시고 연구, 평론직을 생계로 잡으신 분이라 내내 "늦깎이"라고 겸손한 자평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겸손이라기보단, "난 본래 그런 사람인걸? 그게 뭐 이상한가?"하는 어조로 들립니다. 그렇다고 애써 ego를 내세우는 분위기냐 하면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허허, 난 본래 이런 걸 어쩌겠어."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한마디로 대변, 요약할 수 있는 분 같습니다. 연령 불문하고 이처럼 인격이나 스타일에 어떤 높다란 장벽을 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분 주위에 참된 친구와 인맥이 모여들더군요. 말은 쉬워도 "편한 사람 되기"가 사회생활에서 제일 힘든 노릇이니까요.

 

사람은 비슷한 성향, 개성끼리 어울리는 게 보통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분이 칭찬하고 높이 평가하는 분들도, 일부에서 욕을 먹을지언정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퍼스낼리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자 이봉규 박사님은 늦깎이 데뷔라곤 하나, 미국 유학 시절 교민 대상 방송에서 이미 앵커맨으로 나선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DC에는 여러 사정으로 정치인들이 드나들게 마련인데, 이때 섭외하여 방송 출연이 이뤄진 거물들도 상당수더군요. 실명을 일일이 적진 않겠지만, 제가 막연히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부정적 인상이, 이 책을 읽고 거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통 와이프와 자식한테 끔찍히 잘하는 남자치고, 겉모습처럼 답없는 마초인 수가 잘 없습니다. 아내, 자녀 자랑하는 팔불출치고 악인이 대개 없습니다. 주위 눈치 보지 않고 그런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장면을 머리에 그리면서, 저 개인적으로 겪어 봤던 "잘 놀면서 술자리 분위기 띄우는 털털한 타입들"이 절로 오버랩되었습니다. 친분에 따라 다소 과장, 왜곡이야 있을 수 있지만, 책에 적혀 있는 진술들은 대체로 진정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 혹은 스타급 연예인 이야기는 이 책의 본령이 아닙니다. 책의 제목에서 보는 대로, 이 책은 "남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냐"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독립'이라고 해서 혹시 "마누라에게 쥐여 사는 처량한 신세로부터의 독립"이 아닐까 짐작하실 수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비중이 매우 적습니다. "주위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이 행복한 방식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어서, 유한한 인생- 특히 중년이라면 더욱- 신나게 즐기고 이 한생 보내라"는 유쾌한 주문입니다. "남자의"라고 해서 여성 적대적 주장이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도 있던데, 전혀 아니고 차라리 정반대입니다. 책 뒤표지에 "쉿! 여자는 읽지 마세요"란 말이 있습니다만, 반댑니다. 여성분들이 좀 읽어 주셨으면 하고 구체적 제안을 한 글도 있고, 설령 남자들 들으라고 한 이야기라도, 여성들이 좀 읽고 "이 철없는 남자들이 뭔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면 참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 많았어요(물론 주로 중년 여성들 말입니다. 젊은 여성이 공감할 만한 대목은,....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극히 적지 싶습니다). 남과 여가 어디 서로 싸우고 승부를 가르고 시비를 세우려고 지상에 태어난 존재들입니까. 이런 사이비 쟁투를 부추기는 사람들이야말로 애정사와 인생사에 모두 실패한 루저들이죠.

 

거듭 말하지만 저자분의 주장에는,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 동의 못 할 내용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은 너무도 스킨십을 원하는데, 남편(이 점만 빼면 경제력으로나 좋은 부모로서나 완벽한 남자)이 한사코 마다는 부인이 있답니다. 손만 슬쩍 잡아도 흠칫 놀라며 물러서고, 그렇다고 외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 이봉규 박사님 말은, "그냥 이혼하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와 결합하라."입니다. 이 과격한 조언(?)을 곧이곧대로 따를 분은 없겠지만, "당신의 그런 욕구와 아쉬움에는 정당성이 있다"는 진단에 큰 위안을 얻을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굳이 인용하는 건, 이 책이 특히 중년 여성, 주부들이 읽고 공감하거나, 자신들의 남편 그 감춰진 속내에 대해 배울 바가 적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듣기에 민망하다 싶은, 너무 솔직한 고백도 많았습니다. 저자분은 자녀도 두신 이혼남이고(양육은 전처분이 도맡음) 현재는 독신입니다. 이분은 20대의 젊은 여성-아주 미인이라는데요- 을 애인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여성 말이, 돈 많은 중년 남성, 자기 또래의 킹카, 그리고 저자분 셋을 애인으로 두고 있답니다. 다른 두 분은 자신에게 다른 애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릅니다(알면 당장 관계 종료- 뭐 당연하겠죠). 용돈도 넉넉히 못 주고 명품 선물도 못해주는 늙은 자신과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을 다 털어놓을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여성이 공인이 아니니 이런 정도의 언급이 그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배타적으로 여성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현한다면(솔직히 그건 무리죠), 이 정도의 관계도 이어나갈 수 없기에, 만족함을 알고(?) 현실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매력녀는 본디 누구 하나가 독점할 수 없고, 마치 매력남, 능력남이 여러 여자를 오가는 거나 같은 이치 아니냐는 거죠.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심각한 논란을 부를 수도 있는 이 같은 주장은, 그러나 저자의 솔직한 어조와 악의 없어 보이는 매너에 많이 중화되어 전달됩니다. 지나치게 괜찮다 싶은 여자가 내게 접근해 오면, 혹시 이거 쉐어링 아닌지 한번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은데, 서평에 일일이 적을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성교육 시간에, "지나친 마스터베이션은 이후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지닐 때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하나의 교조였습니다. 아마 지금 아이들은 꼭 그렇게 배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성 담론이 많이 오픈되었으므로). 저자분은 여기에 대해, 전혀 반대되는 논리로, 제법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애인과 서로 협조하여 실습하라는 말까지 있는데, 이러면 이미 그 이름을 버려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성행위에서 강조하는 포인트는 "애무, 전희, 후희"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 싹트거나, 죽은 애정이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 독자층이 중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든 남성은 돈많은 사장님 아니고선 룸살롱에 가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괜히 아가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죠. 그게 진리입니다. 대신 중년들은, 미국처럼 파티 문화, 인맥을 만들어서, 특화된 기쁨과 보람을 찾으라는 겁니다. 앞에 룸 이야기는 흘려 듣더라도, 뒤의 파티 이야기는 모두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 이 같은 신조가 자연스럽게 생기신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티 문화는 또한 나이의 노소를 가릴 필요 없이 수용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교제입니다(물론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얼핏 들으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는 민감한 이슈를, 툭 터놓고 논의의 장으로 끄집어 내니 오히려 개운해지는 뒷맛, 이것이 솔직함의 미덕이요, 또한 남자가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진정 남자다워지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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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라오스 - 순수의 땅에서 건져 올린 101가지 이야기
한명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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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부터 베트남 중심으로 부동산 투자 붐(그리고 이에 부대한 다른 경기 호황)이 크게 일어서, 동남아시아 중 옛 인도차이나 지역도 더이상 한국인에게 낯선 땅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오랜 내전으로 정정과 치안이 불안했던 게 큰 장벽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 문제는 예전같은 난맥상은 더 이상 아닙니다. 베트남 전쟁의 승자답게(?) 통 큰 행보를 "도이모이"라는 간판 아래 1980년대말부터 보여 왔던 베트남엔 이미 많은 한국 사업가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인도차이나 3국(그리고 아세안 가입 10개국 중) 중 유일한 내륙국인 라오스입니다.

 

라오스는 한국인에게만 낯선 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나 국제정치 무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입니다. 이런 책이 쓰여진 건, 국토 넓이에 비해 인구가 매우 희소하여 개발의 잠재력을 넉넉히 품고 있다는 사정이 알려진 후, 한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 투자와 사업의 기회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라오스의 가장 큰 매력은 넓은 땅이다"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영토 넓이가 대체 얼마이기에 그럴까요? 책에 나와 있듯이, 수치상으로 약 23만㎢으로서, 한반도 전체 면적에 경기도 면적 하나 정도가 더 붙은 정도입니다. "그게 뭐가 넓다는 것?" 지구상의 어떤 땅이건, 넓다 혹은 협소하다라는 건 상대적 개념입니다. 라오스 정도의 영토를 보유한 나라에 인구가 그리 많지 않고, 그 거주자들조차 개발의 욕구, 능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면, 그 나라는 상대적으로 넓은 땅을 지닌 나라입니다. 철저히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고, 현재 외국 자본이 활발히 유입되어 GDP를 올려 주길 기대하는 그 나라 정부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 라오스가 "넓은 영토"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다른 관점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미국처럼 광대한 영토를 지닌 나라도, 이미 한 뼘 땅에조차 적법한 사적(私的) 소유자가 일일히 정해져 있는 경우라면, 그 나라는 외부 투자자가 보기에 "넓은 땅"을 지닌 나라가 아닙니다. 반면 라오스는 헌법상, 그리고 현실 정치상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영토는 국가 소유입니다. 중국도 명목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라곤 하나 사실상 전 영역이 사유화한 지 오래이며, 땅이 넓다곤 하나 부양 인구가 너무도 많기에 오히려 인접국들이 피로, 경계를 느낄 만큼 팽창욕이 강한 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은 전혀 "땅이 넓은 나라"가 아닙니다.

 

 

라오스 역시 상당수 토지에 현주 점유자가 있고, 그 점유자들이 그 땅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들이 "소유권자"는 아니기에, 약간의 보상 외에는 수용이나 협의 취득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게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다소 야박할 지는 모르나) 개발 비용의 부담에 신경 쓰는 사업가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일단 다가오는 겁니다. 한국에서 일단의 토지개발에, 원 거주자들과의 협상 과정에 얼마나 어려운 (양쪽 모두 마찬가집니다) 절차, 트러블이 끼어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냉전 시절 공산국가였던 이들에겐, 역설적으로 "볼륨 존" 안에서 이런 메리트가 새로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면적이 23만여㎢라는 사실은, 저 개인적으로는 좀 놀라움으로 다가왔는데요. 우리가 보통 참조하는 지도는 메르카토르(마케이터) 도법으로 작성된 것이기에, 적도 부근이 축소왜곡되어 실상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막연하게마나 남한보다 작겠거니 하는 정도였는데, 웬걸 한반도 전체보다 더 큰 면적이라니 크게 의외였습니다. 이 비슷한 예로, 라오스 바로 왼쪽에 붙은 태국이, 일본에다 북한 영토를 합쳐 놓은 넓이라고 하면 다들 믿지 않습니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상당히 큰 나라인 줄로만 알지만, 일본에서 규슈와 시코쿠가 떨어져 나간 정도에 그칩니다. 반도와 보르네오 섬 양쪽에 걸쳐 있는 국토의 형상에, 다민족 다종교 연방체인 시스템이 그런 착시를 부르는 거죠.

 

기회의 땅 라오스에서 사업을 펼치고 싶다면, 일단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사정이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은 분석용 보고서처럼 형식이 짜여져 있지 않고, 마치 맘 편하게 배낭 여행을 다녀 온 수필가가 독자의 편의와 감상을 위해 꾸려 놓은 듯, 널찍널찍한 레이아웃에 컬러 사진에 큼직한 활자로 편집되어 있고, 문장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단문체로 끊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라오스에 투자를 준비하는 사업가라면 뭐가 궁금할까?"를 고민한 듯, 실용적 정보로 가득 차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라오스를 그저 사업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와 비슷하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피침의 설움을 겪었고, 오랜 세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서양화한 시간관념이나 합리적 의사 표현 등에 미숙할망정 동양 특유의 인간적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는 라오스인들에 대한 깊은 동정과 공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현지인들의 특성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다면, 그들의 반감이나 비효율적 소통을 초래하여 사업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이 책은 올컬러 편집이고, 라오스의 정치 체제, 고대사, 현대사, 풍습, 문화에 대해 매우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 전개를 취하고 있어서, 두꺼운 분량이 언제 다 읽혔는지 모르게 지나가며, 다 읽고 나면 라오스란 나라에 대해 대강의 개념이 잡히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미국이 닉슨 행정부 당시 왜 라오스를 집중 폭격했는지 의문이 생기곤 했는데, 이 책에선 라오스를 통과하는 소위 호치민 루트가 베트콩 보급선 노릇을 했음이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해서 아직도 불발탄 제거 문제가 큰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군산복합체의 탐욕이 필요 이상의 재고 정리를 위해 이 가난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그토록 많은 폭탄 세례를 받게 했을 것이다." 같은 저자의 통찰도 있는데, 사실 이게 남의 나라 사정만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인(저자와 독자들 모두)이 라오스인과 라오스 역사에 대해 이처럼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겨레가 살아온 내력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이유도 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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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물리학 - 빅뱅에서 양자 부활까지, 물리학을 만든 250가지 아이디어 한 권으로 보는 교양과학 시리즈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최가영 옮김 / 프리렉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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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 다닐 때 물리 때문에 엄청 고생하셨다구요? 흠. 그럴 만도 하죠. 물리는 수학이란 언어가 아니고서는, 그 기술(記述)이 불가능한 영역이니까 말이죠. 수학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수학 기호만 잔뜩 써 놓은 채 무슨 법칙 어쩌구를, 내가 관심도 없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답시고, 그냥 외우라는 건지, 아니면 이해를 하라고 나름 열심히 풀어 주는 건지, 가뜩이나 싫은 수학에다 다른 공식까지 들이대고 있으니(수학만 해도 외울 공식이 얼마나 많나요), 이건 성질과 손버릇이 모두 나쁜 일진이 얼굴까지 못 생기고 입에서 냄새까지 풍기는 꼴 아닐까요? 물리 공부하다가 수학책 펼치면 그래서 차라리 무거운 짐 들었다 내려놓고 바로 가벼운 짐 진 것처럼 당장은 마음이 편하기까지 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약발은 5분이 채 안 가죠.


 


근데 어떤 학생은, 수학에선 몇 문제를 틀려도, 물리는 한 문항도 오답을 안 내는 친구도 있습니다. 물리 시험만 쳤다 하면, "호구 왔능가?"를 반가워서 외치는 거죠. 그런  애들을 보면, 물리란 과목을 정말로 우리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운동 현상을 설명해 주는 비결, 귀한 정보로 알고, 열심히 이해하며 소중히 여기고 나중에는 감정적으로 밀착하게 됩니다. 이 마지막 단계가 중요해요. 운동 중독 일 중독 되는 분들도 다른 사람 보기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도, 그 사람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대상에 몰입하는 거거든요. 물리를 마지못한 동기(대학 진학을 위해, 점수 따기 위해)가 아니라 감정상으로 애정하게 되면, 그때부턴 확신이 생겨 (따지고 보면 몇 개 되지도 않는- 오히려 그 수가 부족해서 문제죠) 공식들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어떤 경우에 무엇을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단계에서도 소위 "분별의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자발적인 흥미를 갖게 되고 나서부터는 만사가 편한데, 어떻게 그 흥미를 이식(?)하는가가 많은 이들의 경우에 문제가 되죠.

이 책은 좀 특이한 책입니다. 보통 물리를 대중에게 소프트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려는 책은, 1) 퀴즈 형식을 띠거나 2) 수학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말로만 풀어 주려 하거나 3) 역사책의 포맷을 빌려 "물리도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계열적 발전을 이뤄 왔음"을 강조, 두려움이나 막연한 경외감을 없애려 듭니다. 그런 책들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는 하나, 독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1)은 결국 그 문제만을 "상식 Q&A, 교리문답"식으로 알게 될 뿐, 다른 이슈에 대해 적용, 응용이 안 됩니다. 학문은 어떤 경우에도 "팁"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특히 물리는 자연 현상, 물체의 운동, 정지에 대한 "해명"의 동기에서 태동한 학문이므로, 종교 도그마처럼 고정된 형식을 띤다는 게 극심한 자체 모순을 드러내는 거죠. 마치 피겨스케이팅, 백발백중 사격술을 책만 읽고 마스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2)는 그런 시도를 하는 저술가가 아인슈타인과 폴 디랙, 세익스피어를 합친 초능력자라야, 물리의 전 영역에 대해 그런 태도로 일관 서술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파인만 같은 천재도 결국 중도 포기한 것입니다(할 수 있었다 해도, 들인 노력에 비해 결국 성과가 무의미하다 판단). 일반 독자도, 십만 원도 안 내고 구입한 책에 대고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받는 이백만원도 안 되는 월급만으로 사우디 항만 공사 수주를 모레 안으로 따 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장에게 무슨 생각이 들까요.



3)은 결국, 과학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인문 설교"를 하고 마는 부작용을 적지 않게 드러냅니다. 과학의 매력은 결국 그 어느 영역보다 "정치 중립, 가치 중립성"을 띤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트 롬니가 믿는 조셉 스미스의 무덤 위를 운행하는 천체나, 탈레반 광신도들이 장악한 아프간 산악 위에 느닷 떨어지는 운석이나, 뉴턴이 발견한 법칙에 종속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편협한 독자는, 취향대로 골라잡은 인문 설교 책을 읽고 "나는 과학을 마스터했다"는 지극히 의도적이고 속 보이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빼어난 메리트는, 1), 2), 3)이 지녀 왔던 장점, 1), 2), 3)이 빠지기 쉬웠던 단점에 대해 숙려를 거듭하여, 독자에게 거짓말 하지 않고 물리학의 본령적 매력을 전달하며, 동시에 이후 심화 단계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독자 자신의 힘만으로 전진할 수 있는 든든한 지적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쉬운 설명만 해 주는 책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그 책을 읽는 동안에만 느낄 수 있는 불건강한 쾌감이, 막상 다른 영역에 지식을 적용해 보려 들 때 드는 "여전히 안 되는걸?"의 막막함, 좌절을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의 서술은, 초심자들에게 아주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음 심화 단계"로 결국 발을 디디려는 진지한 독자에게, 이 책의 설명은, 영양과 풍미를 고루 갖춘 일류 레스토랑의 프라임 메뉴처럼 황홀감을 안깁니다.



"연대순으로 책을 엮은 이유"에 대해, 저자는 구태여 무슨 해명이 필요할까 싶은데도 서문에서 길게 독자를 향한 겸손한 설명을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의도는 "물리학이 무엇인지, 현대 물리학이 자연에 대해 설명하는 단계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를 대중에게 밝히는 데에 있습니다. 첨단의 단면을 선명히 노출하려는 노력에서, 다시 그 일부나마 시계열로 재편성하려는 시도는 괜한 혼란을 주거나, 앞에서 말한 3)의 병폐를 재현할 수 있습니다. 되풀이하지만 이 책은 "지금 인류의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를 한 눈에 정리하게 돕는 책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진리의 이해"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지성의 거인과 불세출의 천재들도 얼마나 어이없는 시행착오, 억단을 여태 되풀이했는지, 그런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비싼 대가를 치르고 여기까지씩이나 도달했는지, 건조한 부호의 더미를 넘어 역시 인간의 피와 땀이 밴 이정표가 바로 물리학임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아무것도 모르지 않고, 무엇인가 극히 일부나마 우리는 알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은 이렇게 바꿔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신기해하는 게 부메랑인데, 어른들은 다른 이유에서 이를 신기해합니다. "어떻게 해서 저 무지몽매한 야만인들이 이런 도구를 가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값싼 사이비 문화인류학이 도출하여 판매하는 "모두는 평등" 같은 위선적 팻 앤서(pat answer)가 아닙니다. 저자가 구태에 이것에 대해 한 꼭지를 할당해서 책에 끼워 넣은 이유는, 1) 물리학은,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 경이에 대한 만족할 만한 기술적 설명을 내놓기 위한 학문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고(근거 없는 자아류의 도취적 형이상학 설교가 아님), 2) 어떤 발견도 무슨 지적 설계 같은 게 미리 예상, 설계를 마친 데서 나온 소산이 아니라는 것, 다만, 우연이 빚어 준 귀한 만남을 영리한 정신이 놓치지 않고 그 해명을 시도한 결과가 모이고 모인 것, 그 체계가 물리학임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우리가 일만 있으면 이용하는 항공 교통 수단인 비행기도, 그 "하늘을 나는 원리"를 학문적으로 명쾌히 설명하라고 하면 의외로 어렵다고 합니다. 이론이 먼저 생기고 그 결과물로 기계가 생긴 것보다, 일단 필요에 의해 이것저것 시도하며 뭘 만들고 난 후, 알맞은 해명이 그에 뒤따르는 게 더 보편적이란 거죠.

푸리에 분석은 수학의 테마인데 이 물리학 책에 왜 나왔는가. 그래서 2)가 잘못이라는 겁니다. 수학이 없으면 물리는 (전혀 불가능할 건 없겠으나)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막대한 노동과 가망 없는 성과를 요구하는 무의미에 그칩니다.  "분석"은 사실 어느 정도는 오역이며, 수학에선 현상의 수식적 설명을 두고 "해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이 역시 딱 들어서 분명한 의미가 팍 와 닿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오역입니다만 여튼 한국에선 그렇게 쓰죠). anaysis는 오직 물리와 수학에서, 이치와 현상을 정연한 기호쳬계로 일괄 치환해 보겠다는, 데카르트 이래 가장 대담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중 눈부시고도 유용한 결과를 낸 이가 푸리에이며, 그는 수학적 소양도 매우 빼어났던 황제 나폴레옹에 의해 발탁되어 제자리에 쓰일 수 있었던 인재입니다.

미터의 탄생은 하찮은 것 같아도, 측정의 이슈가 어떤 물리학책(학부 교과서 수준 이상의)이건 맨 앞에 설명되는 걸 고려하면, 물리학 인식의 토대이자 시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프랑스를 위시한 세계의 지성들이 미터법을 국제 합의로 제정했을 때만 해도, 이 공통적 프로토콜로 언젠가는 세계의 모든 비의가 해명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는데(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후만 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 서문에 나오는 윌리엄 톰슨의 호언장담을 떠올려 보십시오, 할 일이 없으면 종말을 맞는 겁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어지긴커녕.....), 20세기 초 느닷 등장한 양자역학 혁명 때문에 도로 제자리에 돌아온 걸 생각하면 지독히 짖궂은 아이러니입니다. 측정으로 시작한 물리학책이, "측정은 불가능하다"라는 저주로 끝나니 이런 배드 엔딩이 또 있겠습니까.

해왕성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아마 뉴턴 법칙이 태양계 끝자락에서는 적용이 안 되든가, 혹은 그 자리에 무엇(그게 바로 해왕성)이 놓여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한 말에서, 우리는 뉴턴 법칙이 과학자들에게 얼마나 중차대하고 양가적 위상을 지니는지 알 수 있습니다(저 말 자체는 수사법의 장난 혹은 농담입니다). 무너질 수가 없는 철칙, 그러나 언젠가는 무너졌으면 하는 오만의 장벽, 이것이 지난 절반 밀레니엄 동안, 인간의 입과 손 끝에서 나온 유일하다 할 절대 진리가 가져 온 체계의 위상이었습니다. 푸코의 진자, 갈릴레오의 진자는 들어봤어도 뉴턴의 진자는 처음 듣는다고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일반에게 알기 쉽게 설명할 때도, 가장 편하게 동원되는 예는 "뉴턴의 회전하는 물통"입니다. 뉴턴의 위대한 점은, 오늘날까지도 그를 의심하고 그의 허점을 공격하는 예리한 지성들의 날카로운 공성(攻城)의 순간에도, 동원되는 무기는 바로 그 자신이 창안한 사고의 틀이자 프레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물리학은 양자역학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 이론의 근본 전제는, 지금까지 뉴턴적 지성이 확고부동 유지했던 모든 이론 체계의 정합성을 부정하려 들고, 최소한 그 파생물로서 "진리 탐구는 이러이러해야 하며, 그 최종 목적의 전망은 이러할 것이다"는 공통된 기대, 태도를 허물어뜨려 놓았습니다. "완벽한 동물원에선 특정 종(種)들과 다른 동물군과의 접촉이 일어나지 않으며, 동물원 관리인의 존재조차 모른다." 일관된 질서나 원리의 존재는 우리 인간의 주관을 투사, 반영한 허상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무엇인가 저 먼 배후에 그래도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이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알고 있음이 무엇인가의 존재 증명인지, 아니면 랜덤 파핑의 쳇바퀴, 야바위에 인류가 집단 자가 최면을 건 것인지, 판단은 이 매혹적인 책을 읽고서 우리 개개 독자가 내린다 해도, 설령 무지의 부끄러움을 느낄망정 신성모독의 죄를 짓는 건 아닐 텝니다. 가장 무지한 독자라도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거짓과 독단을 삼가게 하는 정연성, 진지함이야말로, 친절하고 똑똑한 이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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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단돈 350만원으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리라 마음먹은 소녀, 이제 스물 두 살,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감행할 만한 결단임에 분명합니다. 설령 타인의 눈에,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뭔가 실패라든가 볼썽 사나운 면이 있다 해도, 가장 아름다운 젊은 시기에 저지르는 실수이니 어느 정도는 용서가 되지 않겠습니까. 외부로부터의 자극, 아름다운 풍광,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추태, 착하고 때 안 묻은 이들이 베푸는 선의, 터무니없는 악인들의 범죄 시도까지, 모든 영향으로부터 좋은 것만 섭취하고 나쁜 걸 걸러내는 능력이 최고치에 이르는 것도 아마 그 나이에 가능할 것입니다. 나이 들어 신기한 풍물을 보아도, 이미 감성이 찌들어서인지 못난 기성 관념만 재확인하고 끝내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봤습니다. 체험이란 그래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려서 치르어야 합니다.



세계 일주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그 적은 돈으로 여러 군데를 잘도 순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인도에 대한 기행담으로 채워져 있는데, 저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대세 중 하나가 그 너른 아대륙 곳곳을 살피며, 그 특유의 기후나 풍경, 사람들의 습속, 혹은 문화 유산을 속속 즐기다 오는 건데요. 인도란 곳이 말이야 한 마디로 인도일 뿐, 같은 나라라고 보기 힘들 만큼 다양성이 존재, 분포하는 동네입니다. 가중치를 주려면 인도에다 많이 주고 일정을 잡아야 공평(?)하겠지요. 어린 학생답게, 인도인들과의 소통과 교류에서 받은 인상, 효과, 소득이 아주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본 사람은 알지만, 소박하고 꾸밈 없고 문명 세계 일반이 지향하는 바와 아주 다른 양식의 삶을 영위하는 그들이라, 한번 마음이 통하면 많은 기쁨을 나눠 주고 속을 틉니다. 반면, 이슬람 정복자나 영국 제국주의자들(혹은 그 훨씬 이전부터 아리아인의 재앙과도 같았던 침략)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었기에, 어이없는 속임수를 부린다든가 생각지도 못할 한심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치는 일, 여성을 우습게 알고 때로는 만행을 저지르는 등 그들 특유의 풍속이랄까 습성이,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다각도로 남깁니다.



공항 출발시 세 시간 정도 무서워서 막 울었다는 토로가, 솔직히 독자 입장에선 "이런 약한 나를 좀 봐 달라"는 식의 내숭 비슷한 태도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가진 돈이 넉넉지 않아 이런 위험천만(!)한 반(半) 무전여행을 어거지로 시도하는 형편에 대해, 일종의 서러움이랄까 자기 연민의 표현으로도 느껴져 한편으로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 책 처음(그리고 본문 중간중간)에도 나오듯, "도대체 350만원으로 비행기삯이나 치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렇게 최소의 비용만 들인 채로, 영리 숙박 업소를 이용하지 않고 현지인들의 호의에 기대어 무료 홈스테이만을 시도하는 패턴을 "카우치 서핑"이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가 아니고선 거의 시도하기 힘든 여행양식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가? 이 역시 모바일 시대라서 가능한 일입니다만, 프로모션을 알려주는 실시간 정보를, 요즘 같으면 항공사 앱을 깔았다면 바로 받을 수 있죠. 제주도 코스 같은 인기 상품이야 시즌 아니라도 바로 매진되겠지만, 안시내씨의 계획 안에서처럼 비수기 비인기 지역들이 그 타깃이라면 조금 부지런을 떨었을 때  티켓의 연쇄 확보가 일정 맞춰 가며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이런 거대(?) 기획을 이루려면 여간 열정과 성의가 들어가지 않겠지요.



혼자 힘으로는 어렵고, 아무래도 경험자의 조언이 있어야 했겠으며, 유명한 저자들, 전문가들에게 일일이 메일도 보내면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이름이 종종 나오는 "대진오빠"는, 카우치 서핑에 일가견이 있는 국내 전문가인(책도 다수 쓴) 김대진씨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런 패턴의 여행에 관심 있는 분들은 그의 블로그 등을 참조해 보십시오.



해맑은 미소는 언제나, 낯선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저자를 지켜 주었다고 합니다. 약한 여성의 몸으로(상투어구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는 정말로 160cm도 안되는 신장에 가냘픈 체구의 여성)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구반대편에서, 견문을 넓히고 사람을 사귀겠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절로 돕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도 인간 사는 세상에, 나쁜 놈들보다는 착한 사람이 더 많다는 증거, 선의를 확인하고 온 거죠. 물론 당찬 마음도 먹어야 합니다. 책 표지 사진을 보면 티없이 맑은 표정으로 현지의 풍미를 감상하는 저자의 모습도 나오지만(이 사진에 반해서 책을 고른 독자도 많을 거에요), 책장을 잘 넘기면 가늘게 뜬 눈에 단호한 표정을 지은 샷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의 어느 세상이건, 호의나 선의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때로는 독기를 품고, 악의의 시도에 대해 표독스런 거부를 표시해야 합니다.

이런 힘든 여행이 어린 몸에 얼마나 고단했겠습니까. 아마도 책을 읽으신 분들은, 버스 안 "독수리 3형제"가 치한을 퇴치해 주는 그 장면이 가장 통쾌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정작 당사자는 버스 안에서 존다고 무슨 위해가 가해지는 줄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생긴 모습과 풍습은 달라도, 사람 사는 이치와 연대의식, 정의감은 공통되는 바 있음을 확인했기에, 이 스토리가 풍부한 여행서의 독해는 읽은 이들에게 정보 이상의 많은 걸 남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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