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지음 / 아카넷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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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자 정승구 감독님 세대에게는 쿠바라는 나라가 여러 의미로, 그것도 강렬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영원한 투사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친구 피델을 도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바로 그 본고장이고, 그 세대가 어려서부터 열광하며 보고 자란 야구라는 스포츠에 무지막지하게 강한 나라이기도 한 나라가 쿠바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체 게바라라는, 너무도 멋지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 불멸의 게릴라, 투사에 대해선, 386 세대가 탐독하던 소위 불온서적에서나 만날 수 있었을 뿐 한국에선 한동안 잊혀졌다가, 15년 전쯤 어느 평전의 히트와 함께 전혀 다른 세대를 중심으로 열기가 리바이벌되었죠. 종주국 미국을 제껴두고 세계 최강의 국대 실력이라는 전설만 자자했던 쿠바 야구팀에 대한 동경, 이미지도, 특정 세대가 아니고선 설사 야구팬이라고 해도 공유하는 자산이 아닙니다. 이렇듯 한국의 특정 세대에게는, 쿠바라는 나라가 정말 각별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금단의 땅이었고, 소련, 중국도 참여한 1988 서울 올림픽에조차 불참한 골수 친북 국가인 쿠바를, 실제로 방문하여 두 눈으로 보고 "호흡"하는 건 소수에게만 허여된 특권이었을 겁니다.



혹시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정승구 감독님은 야구 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이십니다^^ 영화감독님이 쓴 책답게 이 책은 그가 순간에 포착한 여러 아름다운 이미지(사진 컷)로 가득 차 있고, 쿠바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근사한 건물(알고 보면 역사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 치욕적인 기억이 배었거나, 반대로 자부심이 담긴)들에 대한 예술가적 논평이 빠짐없이 지면을 채우며, 정 감독님과 함께 이 책의 공동 주연인 쿠바의 청춘 커플, 페페와 다리아나는 내내 그를 "디렉또르"라 부르고 있죠.(야구 감독은 영어로 "매니저"입니다)



페페는 정 감독님이 쿠바에 머문 숙소 호텔 여주인 "씨뇨라" 마그다의 아들입니다. 성년이지만 아직도 정신연령이 열 살 정도라며 어머니의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하지만 페페 본인은 "내가 본래 스마트하다니까요!"를 입에 달고 살며 아무 근심 없이, 잘생긴 외모(물라토로서 양친의 좋은 점만 물려받았다고 하네요)에 어울리는 쾌활한 매너로 정 감독님과 거리낌 없는 소통을 이어갑니다. 페페에게는 잘 어울리는 여친이 있는데, 이름이 다리아나인 그녀는 본디 발레리나가 꿈이었으나 교통 사고 이후 감을 잃고 평범한(그러나 여전히 꽤나 미인인) 여성으로서, 이것저것 돈되는 알바를 하며(정 감독은 내내 그 내막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 저 나이에 자기 수입만으로 저런 사치를...?) 젊은 여성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정 감독의 소신은 이렇습니다. "한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 나라의 젊은이들과 먼저 접촉하고 소통하라." 학자니 관료니 지식인이니 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잔영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알고 싶은 것만 입에 담고 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꾸밈이 없고, 자신의 나라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누구보다 발달한 감각으로 예리하게 꿰기 마련입니다. 우연한 만남과 인연일 뿐이었지만, 페페와 다리아나는 정 감독 같은 이에게 최적 최상의 가이드가 된 셈입니다.

쿠바는 지난 냉전 시기 동과 서가 가장 첨예한 대립상을 보이며 충돌한 전선이었을 뿐 아니라, 풍요한 북과 빈곤한 남이 교차, 공존하는 상징과도 같았고, 심지어 흑과 백이 뒤섞여 구 식민시대의 모순과 폐단을 그대로 노출하는 적나라한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복잡한 역사를 지닌 쿠바가, 그 국토 곳곳에 소위 절충주의(eclecticism)의 반영물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인과의 필연이라 하겠습니다. 정 감독님처럼 예술에 대해 민감한 안목을 지닌 분에게는 무엇보다 이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터입니다.



시가 하면 쿠바산이 예나 지금이나 최고로 꼽히죠. 처칠을 찍은 사진 중에 시가를 물고 기관총을 점검하는 포즈를 담은 게 있는데, 처칠의 반대 진영(나치 독일)은 이를 악용해서(특히 선전선동의 대가 괴벨스) 대중 조작에 큰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가 하면 처칠이 (긍정이건 부정이건) 퍼뜩 연상되는 건 아주 자연스럽죠. 이 처칠이 실제 쿠바에 와서, 미-서 전쟁 당시 관전 무관(당시엔 이런 제도가 있었죠) 신분이었다는 건 저로선 처음 안 사실이었습니다. 처칠 이후 기라성 같은 정치인, 연예 스타가 묵고 간 유서 깊은 호텔은, 본의 아니게 세계사 격변의 중심이 된 이 나라의 굴곡 많은 역사를 혼자 몸으로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주 늦은 시점까지 노예 제도가 엄존하여 흑과 백이 극심한 분열, 대립상을 보였던 나라가 쿠바입니다. 카스트로의 혁명 후 이런 폐습은 일소되었으나, 그 동생 라울이 집권하며 제한적 개방 정책을 펴고, 관광 산업이 외화 획득원으로 자리하면서, 관광업 부대 서비스직이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자리로 떠올랐습니다. 흑인이나 혼혈보다, 관광객들은 백인 종업원을 선호하기에, 이제 이 나라에는 다시, 생각지도 않았던 섹터에서 불길한 인종차별주의의 망령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세대 간 갈등, 혹은 세대 내 갈등의 새로운 근본 원인도 여기서 비롯하는 기운이 뚜렷하구요.



쿠바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은 건, 역설적으로 이곳이 진정 천국과도 같은 기후와 자연 경관의 혜택을 받은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제국주의가 패퇴하고 난 후엔 미국 마피아들이 이 나라를 자기 뒷마당 텃밭처럼 가꾸며 알토란 같은 수익을 챙겼는데, 마피아 본진의 고향이 시칠리아이며, 그 섬 역시 아름다운 기후와 풍요로운 물산 때문에 숱한 외침의 표적이 되었다는 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습니다(책엔 그런 말이 없긴 하지만 말이죠).

저는 예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지금 하는 월드리그 말고요 그 훨씬 전)에서, 쿠바 선수들이 경기를 하다 감정이 격해져서 상대 소련 선수들과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걸 본 적 있습니다. 더운 지방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다혈질 아닐까 생각하기 쉬운데, 정 감독님 보기로는 지극히 평화주의적인 성격들이랍니다. 저자의 표현으론 "한번 세상을 뒤엎은 경험이 있는 이들 특유의 초연함"이라나요. 모든 게 평등하고, 아프면 국가에서 병이 나을 때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인간으로서 기본 생존 조건이 보장된 이 나라의 현실은, 아프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치료비를 댈 능력이 없을 때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미국보다 나은 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진부한 선전이 아니라, 정말 여러 모로 "천국"을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경제 봉쇄와 소련 붕괴 후 큰 시련을 겪은 쿠바인들은, 이제 빗장을 풀고 다시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와 교류를 트려는 모험에 나서려 합니다. 완벽한 국가 후원 체계가 자리한 사회에서라면, 사실 부모도 "세상이 무서운 곳"이라며 세뇨라 마그다처럼 자식 페페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역사가 자신들에게 새로 부여한 시련에 맞서 "레솔베르"의 정신으로 그 도도한 파고를  직시, 감연히 응전해 나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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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밀리언셀러 클럽 22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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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영 장군이 남기신 말 중에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게 있습니다. 저 말의 "황금"을 "백은"으로 바꿔도 그 타당성이나 깊은 교훈성에 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고대 로마가 변방 경영, 특히 브리타니아 같은 기후도 나쁘고 원주민의 기질도 고약한 땅을 왜 그토록 공을 들여 관리했냐면, 바로 각종 광물이 풍성히 매장되어 있는 고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황금이나 백은 따위를 돌 같이 무심히 보지 않고, 제국 경영의 기초로 삼기 위해, 노예들을 시켜 광석을 캐어 제련한 후 그 결과물을 알토란 같은 덩이(이걸 ingot이라 하며, 이 책에서 번역 없이 "잉곳"이란 음사 형태로 내내 노출되어 있습니다)로 농축시킨 그들. 다만 잉곳을 말끔히 다듬어 본토 로마로 이송해야 할 공직자, 장군들은 그야말로 최영 장군(그들의 시대로부터 1400년 후대 지구 반대편에서 활약한 사람입니다만)의 정신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몸에 배게 한 재목들이라야 했습니다. 아니라면 이거 국가 체제 근본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로마 멸망의 원인에 대해 납 중독이다 기후변화다 게르만 족의 외침이다 말도 많지만, 가장 근원적 사유를 꼽으라면 고위 공직자, 사회 지도층의 부정 부패지 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 잉곳(ingot)은 자기가 있을 곳에 있어야 그게 정상입니다. 이걸로 국가는 금화, 은화를 주조해서 "시민 여러분 제국 신민 여러분! 그리고 로마의 통치 영역 밖에 있는, 어제 기나긴 핵 협상을 타개하고 30여년 만에 세계와 다시 교류의 문을 연 페르시아 국민 여러분! 로마가 보증하는 이 순도 높은 리걸 텐더로 마음 놓고 물품 거래를 하세요! 불편하게 물물 거래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함량을 믿을 수 없는 다른 나라 불량 동전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저희 제국의 주화는 외국인도 무조건 믿고 쓰는 겁니다!"라고 장담하는 게 가능하죠. 근데 이 잉곳을 뒷구멍으로 슬슬 빼돌리는 못된 공무원, 썩은 장사꾼들이 있다? 그럼 대원군 말년처럼 국가는 부도 수표를 남발하다 기둥 뿌리가 썩어가면서, 서까래 아래 태평스레 살고 있던 국민을 모두 깔아죽이며 붕괴하고 마는 거죠. 외세의 침략은 차라리 부차적 요인입니다.

 

연산군이 재위할 때 조선은 아직 싱싱하고 건실하게 체제가 돌아가던 효율적이고 젊은 국가였습니다. 마르쿠스 디디우스 팔코가 살던, 그리고 이 패기만만한 공화주의자(거의 반체제 분자처럼 위험한)의 가치를 알아본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군림하던 시기 로마도, 네로 같은 광인을 권좌에서 막 몰아낸 소동을 겪었을망정 아직 모든 면에서 잘 돌아가는 젊은 국가였습니다. 그러니까 팔코 같은 젊은이가 타락한 세태에 찌들지 않고 이처럼 건전한 사회관을 유지할 수 있는 거죠(단 팔코는 물론 가공의 인물입니다).

 

팔코는 로마의 명탐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1권에서 제가 본 팔코는 그러나 명탐정이라기보다는, 명탐정이 될 재목에 가까운 미완의 대기입니다. 그는 1) 일단 너무 자주 얻어터지고 실수를 저지르며, 죽음의 위기에 세 차례나 몰립니다. 일부는 오판 때문에, 일부는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서였습니다. 그렇게 얻어 맞고 코가 내려앉고 갈비뼈가 부러지면서도 회복이 빠르고, 외려 끓어오르는 복수욕까지 장착한 채 더 강인한 정신으로 거듭나는 건, 그가 아직 스물 아홉(이 소설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습니다)이란 젊은 나이의 사내이기 때문입니다.

 

2) 그는 명탐정이 되기에 지나치게 잘생겼습니다. 마르쿠스 디디우스 팔코 본인 입으로 떠들질 않아 그렇지, 주위 여성들은 한결같이 그를 "잘생긴 녀석"으로 일단 인식하는 그런 행운아형 타입입니다. 이게 명탐정 노릇하는 데 방해가 되는가 아님 그 반대인가. 최소한 몰래 잠입하고 다니면서 정보를 캐야 하는 그로서는 누군가의 주목을 강렬하게 받는다는 게 방해면 방해지, 자연스럽게 환경 속에 녹아드는 강점으로 활용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듯 "난 훌륭한 정보원이 아니다."가 맞는 말이며, 그러기에 방세도 제때 못 내고 주인 등쌀에 시달리며 도망 다니다 걸려 가끔 난폭한 채권 추심단(그냥 깡패들) 때문에 몰매도 맞는 겁니다.

 

3) 그는 지나치게 낭만적이며, 어떤 때는 반대로 터무니없이 냉혈한 같은 "추리"를 내세워, 범인으로 결코 몰 수 없는 이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독자로서 책을 읽어나가다가 "아니 이 자식이 지금 제정신임?"하고 벙찌기도 했는데, 이게 다 아직 팔코가 경험이 덜 쌓인 형편이라 그렇습니다.

 

 

소설 마지막에 팔코를 위협하는 범인은 OOO를 하며 "이게 팔코 네놈의 약점이지!"를 내뱉으며 비열한 시도를 하지만, 팔코는 지지않고 "아니, 오히려 강점인걸!"로 맞받습니다. 저 위에 제가 적은 팔코의 단점들은, 사실 그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그는 아이들과 여자들에게 한없이 잘해주는 선량한 남성이며, 무능할망정 한번 정의감이 발동하면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는 무모한 헌신(거의 불구자가 될 뻔한)을 하고도 후회가 없는 진짜 사나이죠. 그가 황제의 군림기에 시대착오적 공화주의자로 남은 것도, 저 최영장군처럼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는" 청렴함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때 안 묻은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한국어 번역판은 400여페이지의 두꺼운 볼륨인데, 언제 다 읽었을지 모를 만큼 재미있고 스케일도 큰 모험담, 그리고 미스테리가 펼쳐집니다. 미스테리의 공식에 잘 맞게 곳곳에 독자를 위한 단서가 숨겨져 있으며,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게 바로 복선이니 주의를 느슨히하지 말길 바랍니다. 작가는 꽤 유머러스하고, 우스꽝스럽거나 좀 장난이 심한 서술 트릭을 많이 쓰는 편이니 독자는 해당 대목에서 괜히 발을 헛디딘 채 넘어지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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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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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 주고,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외부 환경이 부과하는 그 모든 불편함을 극복하게 도와 주고, 혹시 극복하지 못한 불편, 달성하지 못한 과업이 있다면 이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일종의 달콤한 자기기만을 통해) 그 좌절감을 씻어 주기도 하는 게 바로 이 기관입니다. 분명 우리 신체의 일부인데, 존재 전체를 좌우하며 주종 관계의 본위를 의심하게까지 이르는 주제가 바로 뇌입니다.

 

이 책은 여튼 우리 신체의 부속 기관에 불과한 뇌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하여, 일상에서 만나는 무수한 난제들을 잘 해결하고, 특히 잘 정리만 할 수 있었다면 더 적은 노력을 들여 해결할 수 있었거나, 아예 실패한 채 방치하지 않을 수 있었던 많은 미해결 과제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만병 통치 처방을 제시해 주는 내용입니다. 다 읽고 나서 좀 놀라웠던 게, 그저 몸에 밴 관성대로(이 책에 나오는 대로 소위 motor memory) 행동하는 사람이, 그 관성 하나를 고치지 않아서 자신이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그 많은 실책과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실패자는 타고난 조건이 나빠서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자기 과오를 고칠 줄 몰라서 실패하는 거라고, 뇌를 두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만들 줄 몰라서 똑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하는 거라고, 이 책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산뜻한 표지를 다시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번역 제목은 <정리하는 뇌>입니다만, 원제는 이와는 조금 다릅니다, "조직화한(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적화한, 효율화된') 정신"이란 의미이던데, 이게 이 책 내용을 잘 요약이야 하는 제목이긴 해도, 제목이 그렇게 달려서는 최소한 한국 독자들이 거들떠 볼 것 같지를 않습니다. 따분한 이론서, 혹은 (정반대로) 전형적인 자계서를 연상시키기 일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번역서에 붙은 제목 "정리하는 뇌"는, 딱 봤을 때 장르가 언뜻 기계적으로 떠오르질 않고, 뭔 내용을 담은 책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제목 자체도 중의적인데, "사물과 사태를 잘 정리하여 인간의 의사 결정을 도와 주는 뇌"란 의미이기도 하고, 반대로 "여태 뇌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 번번이 실패했던 당신, 이제 이 책을 읽고 뇌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라!" 같은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전자의 주제에 대해 학문적으로 잘 요약해 주고, 후자에 대해 별반 강력한 촉구를 하지(자계서처럼)도 않으면서 학문적 근거 제시를 통해 독자를 경각시켜 주는 효과를 발휘하는 책입니다.

 

이 "정리하는 뇌"라는 제목은,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목을 단 이 책은, 두꺼운 볼륨이 대체로 담아 낼 수 있는 내용, 효과, 파장 그 이상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뇌의 효율성이나 건강성은, 그 용량이나 속도에만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뇌가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기억력이나 연산 처리 속도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루마니아에서 온 어느 수재 여학생에 대해 회고하는 부분을 보십시오. 그녀는 빼어난 인재들만 모인다는 명문대 클래스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축복받은 천재형 두뇌를 지니고 있습니다. 헌데, 빈한한 환경에서 내내 자라다 갑자기 선택지가 확 늘어난 풍족한 국가에 오다 보니,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지(소위 결정장애) 몰라서 큰 혼란에 빠지더라는 겁니다. 그녀보다 훨씬 성능이 뒤떨어지는 뇌를 가진 이도 잘 겪지 않는 곤란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이 수재의 모습이라니!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실제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주관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비결이, 이 뇌의 조직화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도 재확인이 가능하고요.

 

흥미로운 지적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남자들이란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고통 받는 수가 있는데, 고통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으로 증폭된 갈등에 시달려서, 일상에서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이 저자 대니얼 레비턴이 지나가듯 거론하는 사실, 곧 "두뇌와 고환은 포도당을 두고 서로 다투는 유이한 기관"이란 점입니다. 우리 인간의 물질 대사에 있어 포도당이란 그토록 중요한 에너지의 근원인데, 이의 20%를 뇌가 사용한다는 건 존재의 유지, 생존에 있어 이 뇌에 의존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 줍니다. 뇌가 개체의 생존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면, 고환은 그 개체 당대의 생존을 넘어 먼 후대의 번식까지를 관장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뇌는 고립적 주제를 분석하고 정리할 뿐 아니라, 타인,  사회와 소통하고 효과적 네트웍을 구성하는 데에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개별적 대상에만 집착한 채 외부를 돌보지 않는, 이른바 자폐증 징후를 보이기도 하죠. 뇌는 객관적 실재를 정확히 포착할 뿐 아니라, 인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단순화, 혹은 왜곡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른바 집단 자폐의 증상은 이의 극단적 발현태입니다. 사회에서 낙오한 무리들이 자신들만의 네트웍을 형성하여, 주류와 비주류의 위상을 역위치환하고 상처 입은 자아를 위로하는 행태가 이에 속합니다. 인간은 당장의 타격을 치유하기 위해 망상의 기제를 만들었습니다만, 망상에만 빠져 있는 자아가 그 생존을 효과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지극히 부정적이죠.

 

왜 우리는 특정 사건의 발생과 개연성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가? 이 책의 저자와 그 스승님(지도교수 폴 슬로빅)은 이에 대해 "분모 생략"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확률이란 다 아는 것처럼 분자와 분모의 두 항으로 이뤄지는데, 분모는 잊고 분자만 떠올리는 거죠. 우리말은 언제나 분모를 먼저 읽게 가르치기 때문에(영어와는 달리), 사람들이 분모를 (무의식중에서라도) 생략할 가능성이 적어요. 다만, 잊지 않으면 뭐하겠습니까. 분모를 애초부터 잘못 계산하기가 쉬운데 말이죠.

 

이 책 중반, 확률을 논하는 대목은, 딱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독립이 아닌 걸 독립으로 판단하는 오류", "독립인 걸 독립 아니라고 판단하는 오류". 어떤 사람이 국립 공원 관리인이라는 사실과, 그 사람(일반인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 벼락에 맞을 사건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뿐이며 결코 독립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남들 일생에 한 번 맞기도 어려운 벼락을 세 번 네 번 맞을 수 있는 거죠. 이 책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어떤 사태의 개연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류를 이처럼 정확히 귀인시킬 줄 알아야, 전에 저지른 실패로부터 회복을 용이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면, 오히려 실패를 쉽게 잊고 끊임없이 재도전을 시도하는 데에 노력이 덜 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고의로 전전두엽을 손상시킬 필요는 전혀 없겠구요^^ 마치 뇌에게 포도당을 독점시키기 위해 고환을 절제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는데, 1980년대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가 상대 플레이를 교란하기 위해 일부러 칭찬을 하면("여, 백스트로크가 좋은데!")  상대는 그걸 의식하느라 자연스러운 플레이를 (소위 muscle memory에 의해) 이뤄내지 못하고, 갑자기 개입한 두뇌의 반성 작용 때문에 오히려 범실을 저지른다는  겁니다.

 

뇌는 우리가 맹렬히 활용하면서도 자각을 못 하는 특이한 기관입니다. 전전두엽이 다소 덜 활성화하면 실패로부터 더 빨리 회복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즉시는 아니라도) 이를 이제 의식하며 고의적, 물리적 손상 없이도 알아서 해당 부위를 자제시킬 수 있는 게 우리의 뇌입니다. 에디슨 같은 위인은 어디, 뇌가 불구라서 그 많은 실패로부터 딛고 일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성공하는 사람은 이런 책을 안 읽어도 이미 성능 좋은 뇌가 알아서 어디를 억제하고 어디를 자극하는 습관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몸에 길든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는, 이제 그런 방식으로 뇌가 기능한다는 걸 알았으니, 마치 피트니스 클럽 다니면서 뱃살을 태우듯, 인위적으로 뇌를 최적화시키면 결국 같은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저자는 요즘 학계, 산업계, 그리고 출판계(!)를 휩쓸고 있는 행동경제학 창시자 중 핵심 멤버인 에이머스 트버스키의 직계 제자입니다. 과연 그런 명성답게(굳이 1만 시간의 법칙 창안 같은 걸 거론않더라도) 책은 창의적이고 근거 확실하며 진정성 높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주장이 매우 적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정확한 논증이 두드러집니다.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는데, 그가 대학원 과정에서 배웠다는 베이지언 확률 도출 사분표법은 사실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는 내용이죠. 사분표 아니라 십육분표도 같은 메카니즘이므로, 댄 카너먼이 말하는 소위 패스트 씽킹으로 숙달에 의해 몸에 배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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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사춘기 고민 상담소 - 성장욕구와 매너리즘 사이에 낀 직장인들을 위한
최현정 지음 / 팜파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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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라는 게,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 할 상황에서 그렇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현상을 두루 가리키는 대유입니다. 평생 직장의 신화가 무너지고, 임원으로 승진하여 느긋한 관리직으로서의 여유를 누리기는커녕, 당장 내일의 자리 보전도 걱정해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린 직장인들에게, "사춘기"는 10대 시절에도 겪어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당사자를 괴롭히는 갈등과 불안정의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봄 춘(春)이란 단어가 주는 한편의 희망과 낭만과는 전혀 무관하게, 좌불안석 직장인들이 오늘도 마음에 두는[思] 바는 살벌하게도 진퇴의 여부이며, 스잔한 인생의 가을[秋]에 버려지는[捨] 걱정입니다. "버틸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을 때, "아직 내 나이가 이 정도로 젊은데 어딜 가서 뭘 못하겠어!"라며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는 상상은, 때로 안 먹어도 사람 배를 부르게 하는 낭만과 흥분을 부릅니다. 하지만 거리에 빈 몸으로 던져진 후엔, 후회와 미련이 당사자를 엄습하리라는 게 저자의 의견입니다. 구체적인 퇴사 후 계획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표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쓰고 간직하는 게, 경우를 가리지 않고 온당한 선택이라는 게 거의 확정된 결론입니다.

일 못한다고 다그치기만 할 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업무 수행인지 구체적으로 지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게 많은 부하직원들이 현장에서 깨지고 난 뒤 갖는 마음이겠습니다. 어떤 상사는 이처럼 무력화된 부하의 심리에 파고들어, 이후 뭘 하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드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기질을 발휘하곤 하는데, 이게 물론 아랫사람을 키워 준다거나 건전한 인맥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아님은 자명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여튼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런이런 시도를 해야한다"며 다소 야멸찬 팁을 제시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면 "상황이 이러이러하지 않아요?"하고 독자를 말 없이 다독이는 쪽입니다. "희망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솔직히 답이 없는 상황을 무리해서라도 타개하려 들기보다, 의욕을 북돋워 주면서 주위와 원만하게 타협해 나가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저자의 현실적인 이런 기조는 책 한참 뒤인 p142에서도 이어집니다. "한번 열외가 되면 일종의 주홍글씨가 찍히는 셈인데, 프로스포츠에서 2군으로 밀려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규정합니다. 못하는 선수를 후보군으로 보내면 그 선수를 며칠 간은 콜업하지 못합니다. 이때 선수에게 자신감마저 떨어지고 나면, 사실상 그는 거의 영원히 응달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결국 낙오하면 당신 손해!"같이 매몰찬 독촉을 하기보다, 문장 어딘가에서 묻어나는 따스한 도닥임을 베풀어주는 게 특징입니다. 하긴 코너에 몰린 이들에게 살벌한 콜드 터키 요법을 강행하기보다, 이처럼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어깨를 풀어주는 게 훨씬 현실적인 처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당신은 괜찮아!"를 주입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냉정하게 자신을 객관화해서 관찰하고 점검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뿐이라고 지적하는 건, 이 희망쌤의 태도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컨대 p184를 보십시오. 일단 다니던 회사 밖으로 나와 재취업을 시도할 때, 지원자는 철저히 "그 회사의 채용담당자" 입장에 서서(역지사지) 전략을 짜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의 입장과 질문을 가상 설정하여 자신에게 던졌을 때, 그 나오는 대답이 (스스로 생각해 봐도) 뭔가 시원시원하지 못하고 부정적이면, 현실적으로 그 분야 구직은 단념하라는 겁니다. (구인) 시장이 냉정히 평가하는 바에 거슬러 무리한 대시를 해 봐야, 결국 상처입는 건 자신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다시 처음의 충고("사표는 마음 속에만!")로 돌아가는 거죠. 희망쌤의 조언은 이렇게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말투가 다정하다는 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협상의 정석적 스킬을 다 발휘해서 상대하는 데도 끊임없이 갑질만 일삼으며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런 경우 그 사람 자체와 일을 분리해서 다루라고 합니다. 영어에서 흔히 하는 말투로 "Not personal."이라는 거죠. 이때 무력감과 패배감이 자신을 휩싸게 방치하지 말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이런 걸 보면, 현실적으로 직장인 대다수를 차지할 "일 못하는 대리들"을 저자가 얼마나 많이 상담해 오셨고, 그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힐링의 대가라고 하겠습니다.

"스트레스는 해소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 이런 말도 참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어느 정도 불변 상황인데, 받는 스트레스가 설사 일시 해소되었다 한들, 다음날이면 또 같은 프레셔가 당사자를 짓눌러 오지 않겠습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스트레스와 싸우려 드는 것만큼 가망 없는 계획도 없다는 게 저자의 입장입니다.

멀티맨이란 말이 좋아 멀티맨일 뿐, 사실 처량하고 고달픈 처지입니다. "감초 같은 조연" 역시 능력과 수고에 비해 제 대접 못 받는 현실을,  그 말 안에 스스로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겠고 말입니다. 저자는 명성 "희망쌤"답게, 조연으로 부지런히 뛰다 보면 언젠가는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있군요. 그 말씀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건, 이런 따뜻한 조언이 많은 회사원들에게 추운 어깨를 감싸 주는 바람막이 구실을 해 줄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찬바람을 헤치고 험한 거리를 개척해 나가는건 결국 당사자 본인의 몫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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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이야기 - 천 가지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도시
미셸 리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처럼 제목이 <런던 이야기>라고 붙었을 때, 독자는 정말 런던에 대해서만 장대하고 두툼한 서사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런 책이란, 1) 시간적으로는 이 도시가 터를 닦은 먼 고유의 태초부터 지금까지를 커버하며, 2) 특히 공간적으로는 주제에서 일탈함 없이 엄격히 런던과 그 위성구역들이 이루는 벨트만을 공전하며, 이심률을 최소화한 채 서술의 기조가 유지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책이 쓰여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지난 역사를 신나게 설명하다 보면 서술의 관성에 의해 현재로 급선회하기 어려워, 결국 과거의 회고에 머물게 되고 2)그러다보면 주제는 결국 "런던의 역사"란 탈을 쓴 "(흔한)영국의 역사"가 되어 지금까지 나온 숱한 유서(類書)의 틀을 답습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 한들, 독자는 어떤 책이 달고 있는 제목만 보고, 부모에게 장난감을 조르는 어린이처럼 자신이 기대한 모든 바가 해당 도서 안에서 그 해결을 보리라는 식의 무리한 희망을 가져선 곤란합니다.  대개 그런 경우, 아닌 줄 뻔히 알면서 의도적으로 기대치를 높이 잡아, "내 기준에는 못 미침" 같은 블랙 컨슈머 형의 불순한 트집을 잡거나, 중국집에서 파스타를 주문하는 식의 비뚤어진 속물 심리가 작용하는 까닭이 크죠.



그런데 이 책은, 설령 그런 기대를 품고 접근한 독자라고 해도, 책이 달성한 성취 앞에 압도되어 정직한 만족을 표시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는, 재미있으면서도 속이 꽉 찬 그런 책이었습니다. 어떤 책이 재미가 있다 보면, 대개는 깊이가 부족하거나 부정확하고 빈약한 서술이 이어지기가 쉽습니다. 제대로 정석에 맞춰 역사를 쓰면 이번에는 아주 따분한 litany로 떨어지고 말거나, 인내를 시험하는 까다로운 형식 논증으로 돌변하는 게 또 골칩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그만큼 어렵고, 책 쓰기라고 해서 예외가 아닐 터입니다. 헌데 이 책은, 정말로 두 마리 토끼를 (다소 이상한 신명의 장단에 맞춰) 잡아내고 있더군요! 이 분야 책을 적잖게 읽어온 독자로서 이는 드물고도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사실 비전문가, 비전공자, 게다가 한국인 저자의 솜씨라고 해서, 처음에는 오랜 체류의 경험에 바탕을 둔 "애정과 열정으로 전문성과 진지함을 대체한 책"으로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런 책도 저자의 열정이 바른 방향만 지키고 있으면 읽어 줄 만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아니라, 웬만한 전공자가 쓴 역사서보다 훨씬 가독성 높고, 속속들이 디테일을 이해한 깊이가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강렬한 집필 충동"에 끌려 시원시원 천의무봉으로 써내려간 게 확 눈에 띄는 책이었습니다.



다시 처음의 논점으로 돌아가서, 이 책 제목은 <런던 이야기>입니다. 1) 런던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의 실상에 유기적으로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 그렇습니다. 2) 과연 "공간적으로" 런던에 초점을 넉넉히 두고, 할 말 없을 때 적당히 영국사 일반으로 우회, 퇴각하는 꼼수를 쓰진 않는가? -이 역시 '그렇습니다. '란 답이 바로 나옵니다. 솔직히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부정적이라도, 3) 읽는 재미만 있으면 용서가 됩니다. 어차피 대중서 아닙니까. 그런데 이 책은 1), 2), 3) 모든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주었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그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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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잉글랜드가 서로 구별되는 단위, 개념이듯, 잉글랜드의 심장이 언제나 런던이었을지언정 두 영역의 정체성이 언제나 한 방향, 같은 본질을 지니진 않았습니다. 예컨대 이 책에서, "거절 컴플렉스"를 설명하는 대목을 보십시오. 색슨 족이 대거 침략해 들어왔을 때, 로마의 호노리우스 황제는 "너희 살 길은 스스로 찾으라."며 런던 체류 제국 속민들의 안위를 보장하길 거부, 아니 포기했습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설명이 "이때 버림을 받았다는 그 트라우마가 면면히 이어져, 근세에 이르기까지 反로마, 反 대륙의 정서가 이곳 주민을 지배하는 근원이 되었다는 설명. 물론 이게 저자 고유의 학설은 아니고, 역사심리학적으로 꽤 인기도 있고 연혁도 긴 입장입니다. 재밌는 건 침략자 색슨 족에 대해 품어야 할 원한이 엉뚱하게 종래의 종주권자 쪽으로 전환되었다는 건데, 여튼 유독 반 가톨릭, 반 라틴 성향이 정치적 보수주의와 함께 (민족주의 자체보다 더) 깊은 뿌리를 내린 데 대한 재미있는 설명은 됩니다. 난립하는 학설들 중 용케도 이런 "매력적인 가설"을 뽑아내어 유효적절히 제 자리에 삽입한 저자의 센스가 돋보이며, (앞서 말했듯) 런던의 과거와 현재가 이처럼 매 장에서 긴밀히 대화를 나누게 하는 솜씨, 배려, 긴장도 마음에 듭니다.



유럽의 역사는 그 어느 나라의 사정이라도, 로마나 파리와 연계를 짓지 않고는 온전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탈리아나, (왕권이 속속 미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프랑스 같은 게 아닌 , 로마와 파리(그리고 좀 지나서 빈) 같은 도시 단위가 그들 역사를 파악하는 데에 핵심 축을 이룹니다. 잉글랜드 아닌 (그 중심지) 런던은 이들(로마, 파리 등)과 같은 도시 자격으로 균형을 이루고, 그들과는 또다른 기류와 성향의 정치적 거점이었기에, 확실히 유럽사(영국사라고 해도)의 설명에 있어 든든한 발판 구실을 합니다. 이 책은, 앙주 제국 성립 이래 내내 서유럽 국제 정치의 유력한 중심지였던 이 도시에 대해,  확실하고 탄탄하게 그 족보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완독한 후 "영국의 역사"로 넘어감은 물론, 서유럽사 개관을 도모하는 데 든든한 밑천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이 영국에서 노예로 잡혀 온 소년들을 두고 그 아랫사람과 Angle, angel 로 말장난(pun)을 하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죠. 근데 이 시대에 영어가 유럽의 통용어(lingua franca)도 아니었고, 교황이 영어를 알지도 못했을 듯한데 신빙성이 클까? 이런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이 일화의 진위 판정은 별론으로 하고, 저 단어 둘 다 라틴어, 혹은 이탈리아 모처의 방언상으로도 발음이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언어학적으로 모순이나 문제점을 드러내는 바는 없으며, 정황상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1999년작 미국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에 이 소재를 활용한 장면이 있습니다.

가이 포크스란 인물의 평가는 언제나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할 위험을 안은 화제이기 때문에, 이를 거론할 땐 누구나 조심스러워져야 합니다. 제가 이 대목을 읽을 때도 신기하게 생각된 게, BBC 조사를 인용하며 이 인물이 30위권에 들었다는 이유로, 그 복권 혹은 재평가를 아주 자연스럽게(혹은 당연하다는 듯) 다루고 있으신데, 사실 상황에 따라선 분위기를 아주 싸하게 만들 수도 있고, 런던 외 지역에선 아직도 보수적 기풍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 책 제목은 <런던 이야기>, 런던의 현 거주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에 더 초점을 두어야죠. 한때 비열한 반역자의 표상처럼 여겨진 가이 포크스가, 그래픽 노블 혹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화려하게 재조명된 것처럼, 이 책 역시 그에 대해 긍정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도 역시, 이 책의 장기로 (런던의) 과거와 현재가 밀접한 소통을 유지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영국 영화를 보다 보면 2차 대전 당시 이 나라 국민이 고강도의 내핍 생활을 견뎌야 했던 사정이 자주 나옵니다. 한국도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의 전시 경제 체제가 민생을 휘몰아치는 바람에 큰 고초를 겪었지만, 나치 독일의 공군이 시도때도 없이 도심, 부심을 폭격하던 런던 역시 사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독일의 전격전을 가리켜 반 고유명사로 "블리츠크릭(독일어입니다)"이라 부르는데, 이 당시 독일의 매서운 공격을 견뎌낸 런던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블리츠 스피릿(영어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 심각한 정치적 어조를 띠거나 사회학 담론 설교를 않으면서, 저자는 당시 생포된 독일군 군인에게 런던 시민들이 린치를 가하거나 하지 않은, 성숙한 정신의 발현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설명하며 넘어가시는 이 모양새가 참 자연스러운 맥락을 형성해서 속으로 "이야기꾼이다" 싶었습니다. 어느 도시건 지하철 시설이 전시엔 일종의 방공 대피소 구실을 하게 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BBC 영드 <셜록>이 다음 시즌에서 이 장소를 잘 활용해 줄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희한하게도 이 책은, (본디 재밌는 구석이 많긴 한) 영국사(런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를 두고, 단 한 대목도 심드렁하게 넘어가질 않고 활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사는 본디 정복과 피침으로 인한 격변이 빈번했고, 역사의 주체라 할 nation이 노르만 왕조의 도래 후에야 그 틀이 잡히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혼 중심"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자연히 11세기 이전 역사는 초심자에게 전달하기 대단히 까다로운데, 이 책은 마술처럼 호흡이 매끄럽더군요. 그 이후 과정도 복잡한 정정 혼란기는 대표 인물 하나를 잡아내서 중심을 잡고, 안정기나 발전기는 반대로 시점에 변화를 줘 가며 공정성을 확보하고, 전공자도 아닌 분이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감탄스러웠습니다.

책 말미에는 책 기획과  집필의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듯, 런던 관광 명소 8곳을 따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토종의 피가 흐르는 저자 그 영혼을 오롯이 뺏고 장악한 그 매혹의 도시, 세계의 한 수도 런던은, 아마 이 두툼한 한 권의 책으로 웬만큼 미련 없이 독자의 마음과 머리에 담아 두고 넘기며 애무하고 음미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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