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의 연인 2 - 개정판
유오디아 지음 / 시간여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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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상 어떤 악평과 함께 기록된 이들이라 해도, 한결같이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최소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혹 누가 좀 표독스럽게 군다 싶어도 그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를 할 수 있는, 어떤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악역이었는데요. 이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악당들이 악당으로서의 제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 중 한 명이 인빈 김씨, 정원군의 생모이고, 1권에서 "(공빈 김씨를 가리키며) 수랏간에서 이름 없는 나인으로 그냥 묻혀 죽었어야 했거늘.."이라며 수수께끼 같은, 독한 말을 내뱉던 그 사람입니다. 성격이 좀 못된 정도가 아니라, 이 2권 분량에서 주인공 경민이가 겪게 되는 온갖 고초의 원인을 제공하는, 아주 악질적인 음모를 꾸미는 원흉입니다.

인빈 김씨는 말 그대로 교언영색, 상황에 따른 연기와 변신에 능한 악귀 같은 인간형입니다. 선조는 좀 멍청한 인물로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이 후처의 본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궁정 안의 난맥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무능한 모습을 보입니다. 영리하고 유능하다곤 하나 광해군 역시, 이런 아버지의 속마음에 대해 끝내 오판한 걸로 보아, 약한 마음의 줏대가 결국 그 지혜를 가린 비극적인 인물로 설정된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게다가, 결국 이명의 출생 사연에 대해 정확한 진상을 알지 못하고, 경민이의 (두 차례에 걸친)설명을 듣고 난 후에서야 전모를 파악하게 됩니다. 한 번에 알았으면 그나마 정원군을 역모로 모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테며, 뜻하지 않게 자신의 귀한 아들을 잃는 참척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어린 이종(능양군이며 나중의 인조)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광해군은, 부친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그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커서, 이후 명민한 판단력을 유지하는 데에 지속적으로 장애를 겪은 걸로 나오고 있습니다.

1권에서도, 웹소설의 주인공 답지 않게,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2년이라는 긴 세월을, 험한 과거에서 버티고 참고 인내하는 경민이의 행적을 보며 조금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현대에서 비교적 넉넉한 가정 형편에다 안락하고 즐거운 것만 찾아다니던 10대가, 아무 편의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비인간적인 법도가 일상 구석구석을 속박하는데다, 겉만 아름답게 꾸몄을 뿐 속은 짐승 같은 탐욕과 간계가 지배하는 오백 년 전 궁중 생활을, 두 달도 아니고 2년을 버틴다는 게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딴 걸 다 떠나서 먹는 것부터가 변변치 못하겠고, 병이라도 걸리면- 실제 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1권에서 -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그런 걱정 때문에라도 편히 못 지낼 것 같네요). 헌데 이 2권에서는, 인빈 김씨에게 매를 맞고, 턱없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거나(더군다나 애를 밴 몸으로) 죽기 직전까지 가질 않나, 천리 밖 제주도에까지 귀양을 가서 험한 생활을 5년이나 겪지 않나... 이 정도면 고대 소설의 전형적 평면적 캐릭터들이 겪던 고초 그대로입니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두 왕자를 사로잡은 자유로운 영혼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주인공이 이처럼 모진 고난을 겪고도 독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건, 경민이의 내러티브가 로설 주인공답게 시종일관 밝다는 그 이유 하나뿐입니다. 1권에서 겪은 고생만으로도, 육체적 상해가 아니라 정신이 입은 내상, 그 스트레스 때문이라도, 평균적인 현대인이라면 몇 달을 못 버티고 죽을 것입니다. 이 2권에서 문자 그대로 온갖 개고생을 하는 경민이, 이해가 안 갈 만큼 힘을 못 쓰고 상황에 끌려 다니는 광해군. 이 두 남녀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광해군이 저처럼 무기력한 채로 남아 있는 걸 납득시켜 주는 건, 다름 아닌 소설의 치밀한 배경 세팅입니다. 이 16세기 말 궁중에선, 대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구분이 안 가고, 어떤 이가 강자였다가 한순간에 약자의 음모에 넘어가 숙청을 당할지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의 연속입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는, 광해군 아니라 누구라도 혼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게 작가의 지긋한 암시 같습니다.

1권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유일하게 기사도 정신(?)에 빛나며 영혼의 순정을 지키는 사람은 정원군입니다. 그는 몸을 던져 정인(情人)의 안위를 지키고, 생모의 더러운 흉계가 효과를 못 보게 저지합니다. "이게 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데...." 땅을 치고 통탄하지만 분에 넘치게 훌륭한 아들을 둔 덕에 인빈 김씨의 포부는 날개가 꺾입니다. 여주를 더 많이 사랑하는 남성이 대개 인격적 가치도 비례해서 높기 마련이니, 소설에서 더 큰 비중에 값해야 마땅할 것 같지만, 정원군의 행보는 이에서 더 벗어나질 못합니다. 경민이는 결국 이런 그의 연정을 모른 체하며 제 갈 길만 가는 걸까요? 겉으로는 영악하고 당차 보이며, 본색이 현대인이니 당연히 또 그리 굴어야 합니다만, 광해군 못지 않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경민이란 여성이더군요(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 여자애가 아닌 성인여성입니다. 애도 낳고 산전수전 다 겪은 처지입니다). 이 2권에서는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경민이네 집안 내력인 시간여행자를 구속하는 규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니, 3권의 재미를 충분히 캐내기 위해선 유심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평행우주 관점을 전면 부정, 배제하며, "시간 여행자와 시간의 투쟁"이란 관점을 도입한 게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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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개자식 뷰티풀 시리즈
크리스티나 로런 지음, 김지현 옮김 / 르누아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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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의 소개에도 나와 있듯, 크리스티나 로런이라는 단일 필명을 쓰는 두 여성 작가의 "Beautiful~" 시리즈 중 첫째 권입니다(지금까지 여섯 편이 출간되었습니다). 남주 베넷 라이언을 가리키는 게 분명한 저 별명 "잘생긴 개자식"은, 이 장편의 제목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소설 중에서도 이 베넷을 가리키는 통칭으로, 캐릭터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로설의 설정이 흔히 그렇듯, 남자주인공이 대단히 재수없는 타입입니다. 성격이 그저 까칠할 뿐인 spoiled kid라면 그건 그냥 여성 입장에서 무시하면 그만입니다("버르장머리 없이 키워져서 사회성이 부족하군, 불쌍한 놈."). 그런데 베넷은 명문가의 둘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나, 완벽한 학벌과 초기 사회 경력을 쌓아 왔으며, 집안의 후광을 입어 낙하산으로 꽃혀 기업의 중역을 맡은 케이스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유능한 인재일 뿐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렇게나 성격이 까칠하고 오만불손하니, 일 못하고 집안 변변찮고 직급도 낮으며 올라가야 할 계층 사다리가 까마득히 높게만 솟은 그저그런 부하직원(특히 여성)들은, 회사에서 그에게 깨질 때마다 속에서 마그마가 치밀이 오릅니다. 분노가 가라앉고 난 후에는 자괴감과 열등감의 두번째 파고에 신음하며 사직을 고민하는 게 공식이 되다시피 했죠. 이 베넷 라이언은 이 바닥에서 이런 쪽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베넷 라이언을 두고 사내에선 그런 추측도 일었습니다. "너무 미모가 빼어나서 누가 섣불리 그의 능력을 의심할까봐, 저렇게 가시를 곤두세우고 사는 거다." 회사에서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직장인의 모습만 노출하는 그의 동선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평가를 두고 "괜한 질시, 못난 중상모략"으로 한칼에 후려칠 만합니다. 그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부친과 친형의 회사("라이언 미디어")에 입사하기 전 프랑스 로레알(이렇게 실명이 나오더군요. 회사 입장에선 픽션 출현으로 간접 홍보가 되므로 마다지는 않겠지만)에서 훌륭한 실적을 쌓은 것이 그의 능력을 입증합니다.

 

여주 클로에 밀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 베넷은 그의 아버지, 그의 형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는 두 명에 대한 한없는 존경, 찬사이자, 자신의 직속 상사인 베넷에 대한 폄하의 의도였습니다. 클로에 밀스는 학부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모은 재원이었는데, 지금 라이언 미디어에서 인턴십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MBA 장학금을 받으며 이제 학위 최종 취득까지 3개월을 남기고 있습니다. 마지막 관문만 잘 넘으면, 그녀는 학장으로부터 "최우수 CEO 추천장"을 졸업장과 함께 받게 됩니다. 인재 보는 눈이 누구보다도 탁월한 엘리엇 라이언은, 이 클로에 밀스를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습니다(말 그대로 후원일 뿐 다른 불결한 연상은 불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 라이언 회장과 개인적 친분까지 쌓게 된 밀스는, 그의 둘째 아들인 베넷 이사의 어시스턴트로 채용되어, 이 파란만장하고 시끄러우며 다분히 폭력적인(?) 데다 닭살 제대로 돋는 로맨스를 펼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잠깐 적었듯, 필요 없이 까칠하게 구는 베넷의 심리 이면에는, 모종의 강박이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클로에 밀스와의 관계(베넷 개인과, 라이언 미디어 회사와의 관계 모두)가 파탄에 이르자, 부친과 형은 그를 질책합니다. 왜 공과 사를 구별 못해서 회사 분위기에 지장을 초래하고, 앞날 창창한 여성의 커리어에 중대한 흠집을 남길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하느냐는 거죠. 물론 우리 예전 신파 드라마마냥, "물정 모르는 남의 집 귀한 딸을 농락하여 몸을 망치게 했다" 운운은 아닙니다(세팅만 보면 딱 그런 오해를 받기에 좋습니다만). 여튼 이때 베넷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걸작입니다. "두 분 다 아시다시피 내가 좀 멍청하잖습니까." 사실 그렇게 학벌, 경력이 좋은 남성이 "통상의 의미에서" 멍청할 리는 없고, 단지 부친과 형이 너무 뛰어난 인재들일 뿐입니다. 능력도 탁월할 뿐 아니라, 감정의 조절과 모럴의 "유지, 보수"에도 도무지 패착이란 보이지 않는, 직무와 사회성 공히 달인의 경지에 이른 진성 엘리트들이기 때문이죠. 이런 압도적으로 뛰어난 혈육들 밑에서, 베넷은 적잖이 주눅든 성장 과정을 거쳤을 법합니다. "아버지만큼 뛰어난 사람이 되는 건 포기한다손 쳐도, 내가 형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여튼 이런 건 그 집안의 내밀한 속사정이고, 바깥에서 보기엔 셋 모두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반신반인의 경지일 뿐이죠. 부친 엘리엇과 형 헨리는 그럼 외모가 좀 처지는 편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클로에 밀스의 말을 빌리면,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뿐 내가 본 중 가장 잘생긴 남성"이, 이 라이언 미디어의 수장이자 휘황찬란한 엘리트 가문의 어른 엘리엇이라고 하네요. 아마도 이런 이끌림에는, 그런 남성적 외형의 완성도뿐 아니라, 내면의 자상함과 완비된 인격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클로에는, 이런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인 베넷과, 소설 초장부터 위험천만한 불장난에 빠진 걸까요? 클로에가 대단히 침착하고 지능이 높은 데다 절제력, 감정 조절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 의외입니다. 클로에와 베넷이 그것도 회사 집무실, 복도, 기타 그닥 안전하다 편하다 여길 수 없는 여러 장소에서 무차별 정사 행각을 벌이는 장면 묘사를 읽기 위해, 여러 페이지를 읽어 나갈 수고와 인내를 독자는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몇 장 안 넘겨서 바로 시작이고, 이 소설은 성애 묘사와 그 다음 묘사 사이에 과연 몇 페이지의 간격이 필요한지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땀흘리고 애쓰는 캐릭터들(둘 다 파워풀 플레이어들입니다)보다 독자가 더 빨리 지칠 지경입니다.

 

답은 클로에와 베넷 모두 아는 것처럼, "이성이 거부해도 몸이 끌리는 걸 어쩔 수 없다"입니다. 베넷이 더 적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우위의 신분이니만치 행동의 재량이 더 폭넓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 31세의 청년이 진성 bastard는 아니기 때문에, (전혀 안 그럴 것 같아도) 여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만약 그랬다면 아버지와 형이 그를 가만 두질 않았을 겁니다. 가정 교육과 가풍이란 이래서 중요한 거죠). 그렇다고 해도, 여성이고 하급자인데다 아직 학생이기까지 한 클로에는 분별 없이 굴 수 없습니다. 베넷은 집안 배경이 있으니, 설사 큰 실수를 해도 어디 다른 데서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하지만 일개 시골 치과의사의 딸인 그녀는, 한번 평판이 망가지면 재기가 불가능하죠.

 

클로에는 괜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베넷은 알고보니 진짜 순둥이 타입이었고(따라서 까칠함은 모두 가면), 자기 친구이자 또 한 명의 엄친아이며 역시 부친과 형이 대단히 아끼는 인재인 조엘 치뇰리가 그녀에게 접근하자 "저놈 내 것에 접근하다니, 어디 조용히 묻어버려야겠군." 같은 생각을 품기까지(물론 농담이고 베넷이 그런 치정에 빠질 사람이 아닌데다 둘은 오랜 절친이죠) 합니다. 냉혹하고 까칠한 사람이면 절대 이런 젤러스한 감정을, 그 무엇 그 누구에 대해서도 품지 않습니다. 지켜낼 게 있으면 그저 책략과 계산으로 해 내면 되니까요. 근데 베넷은 정말 클로에에게 홀딱 빠져, 여태 성실히(?) 얼굴에 착용하고 다니던 페르소나의 끈이 끊어져 쌩얼이 드러나고, 일자로 언제나 곧게 굳게 닫혀 있던 입가에선 (클로에에 대한 상사병 때문에) 침이 질질 흐르는 것도 이제는 의식하지 못할 지경이 된 겁니다. 이 소설은 이런 이유에서, "잘생긴 개자식(은 어쩌다 폐인으로 떨어졌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클로에 밀스가 남자 다루는 요령이 좋아서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사실 아주 속된 관점에서 보면, 팔자를 고칠 남자 하나가 지금 제발로 굴러 들어와 한입에 먹어달라고 조르는 격인데, 밀당이고 뭐고 다 번거로운 소모전 중간 과정일 뿐이죠. 게다가 남자 집안에서 반대라도 하면 모를까, 그렇기는커녕 겉으로 봐서는 어른 두 명이 자식보다 더 호의적입니다(클로에는 회장 사모님인 수전 라이언과도 친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여주인공은, 예사로운 된장이라면 태생 소경 상태에서 눈이 번쩍 뜨이기라도 할 이 블리스포인트에 머무르지 않고,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맙니다(뭔지는 스포일러라 적을 수 없습니다). 거 참 이상합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게 나름 작전이라든가 밀당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커리어우먼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청춘사업에 재미들려 시간을 낭비하고 원칙을 훼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런 자각과 신념이 워낙 강한 겁니다, 밀스라는 처녀 자체가요. 어찌 보면 클로에 밀스가 딱히 외모가 출중하고 섹시한 매력이 넘쳐서라기보다, 베넷, 그의 부친, 모친, 형 모두가 그녀의 이런 내면을 제대로 꿰뚫었기에 그녀에게 모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반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운이 좋은 베넷이, 그녀의 성적(性的)인 면모에 정통으로 꽂혔을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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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의 연인 1 - 개정판
유오디아 지음 / 시간여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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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출생하여 발달된 문명의 온갖 이기가 주는 혜택을 받고, 기본적인 생존 조건의 결핍이 주는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안온한 환경에서 감성의 건전한 계발과 감각의 세련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건 참으로 큰 행운입니다. 주인공(그것도 여주)에게 이런 말을 꺼내서 좀 안됐긴 합니다만, 18세 소녀 김경민이, 시간 여행이라는 특출한 능력을 타고나서 서기 환산 1597년에 가 꽂힌 게 아니라, 그저 당대인으로 태어난 후 여차저차한 곡절로 궁궐 무수리가 되었다면, 과연 지존의 몸 조선 세자와 말을 트고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요? 치도곤을 맞고 당일로 목숨을 잃을 중죄인 신세나 면하면 천행이겠습니다.

 

김경민은 21세기(2013년)에도 그 자유로운 영혼을 주체하지 못해서, 또래들 다 다니는 정규교육도 변변히 이수하지 못하고 검정고시나 준비하는 신세입니다. 이런 소녀가, 시대상 근 500년을 거슬러가, 반상의 구별과 신분제의 차별이 엄존하던 조선 시대 한복판에 불시착한다면, 단 하루도 온전히 체제와 사회에 적응 못하고 비참한 신세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런 그녀가, 당대 만인이 존숭하는 지존의 몸으로부터, 존중, 친밀감, 우정, 나아가 사랑 비슷한 감정을 얻어,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딱한 처지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건, 제 생각에 현대인으로서 어느 신분적 굴레, 사회적 폐습으로부터도 오염되지 않은 채 자신의 영혼 그 순수성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랄 수 있었던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우리의 경민이는 용모가 예쁜 편입니다(안 봐서 모르긴 하나, 그런 것 같습니다). 키가 크다는 말은 아직 이 1권에서 분명히 표현되고 있지 않은데, 제 생각에는 "현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매력 요소인 장신까지 갖추었으면 좋았을 텐데, 영양상태로나 섹시함을 강조하는 분위기의 버프를 받아서나 중세인은 이 점에서 상대가 안 될 겁니다. 그런 설정이 빠진 건 아마도 자신보다 키 큰 여자를 광해군, 그리고 그의 이복동생인 정원군이 과연 좋아할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정원군은 특히. "그 나라는 대개 다 여성들이 기가 센 모양이죠?"하며, 이복 형에게 전언으로만 듣고 상상으로만 떠올리는 모습으로도 김경민과 사랑에 빠진 사람입니다. 광해군처럼 강단이 있는 사내는 몰라도, 정원군처럼 우유부단한 구석이 많고 로맨티스트 기질이 다분한 남자라면 장신 여성에 끌릴 만도 한데... 그러나 경민이가 저런 모습을 한 데에는 모르긴 해도 작가님의 원모심려가 다 있었겠죠.

 

소설이 아닌 실존인물로서의 정원군은 거의 실록 전체를 통틀어 왕족 출신 악당 랭킹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말종에 가까운 방탕아였습니다. 그 아들 이종- 여기서 네 살짜리 꼬마로. 보모 상궁 김경민의 보살핌을 잠시 받기도 하는 - 역시, 군위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는 도무지 보기 힘든 변변치 못한 왕족 정도로 평판이 난 사람인데, 어찌어찌해서 시운을 잘 탄 끝에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임금까지 되고 말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정원군은, 광해군 못지 않게 정이 많고 선량하며(광해군도 그리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는데... ), 우리의 주인공인 김경민에게 깊은 정을 주는 남성으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려 "보지도 않고" 사랑에 빠졌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이 정원군의 사랑이야말로 광해군의 그것보다 순도가 높은 것 아닌지 하는,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사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정원군의 어린 아들 이종 역시, 아이치고는 순하고 눈치도 빠른 영특한 개성으로 묘사됩니다. 역사를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정원군은 물론 그 아들까지, 광해군과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정치적으로나 개인 간 감정으로나 지속적으로 대립하던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1권에서의 정원군은, 이복 형을 무척이나 따르고, 혹시 자신의 제안으로 형이 정치적 곤경에 빠질까 염려하여 상당한 배려까지, 왕족으로서 사소한 거동과 행사를 두고서도 일일이 베푸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린 아들 이종은 아직 광해군과는 컨택이 없습니다만, 주인공 경민이를 (비록 친어머니와 친할머니의 방해로 오래는 같이 못 지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만의 인연으로도 무척이나 따르는, 실존인물로서의 말로와 성격, 인생을 낱낱이 아는 우리들로서는 기겁할 만하게, "아주 귀여운"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실감이 안 나는 분들은 jTBC 드라마 <꽃들의 전쟁>,에서 작가 정하연 선생이 틀을 짜고 배우 이덕화가 열연한 그 찌질한 군주 인조를 떠올려 보십시오. 애가 그 사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커서 저렇게 되어 버렸다는 걸까요..

 

이런 의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직 1권까지밖에 안 읽었지만, 김경민이 시간을 거슬러간 1597년과, 인조반정이 일어난 1523년,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건대" 그 좋았던 사람들이 저리 변해 버린 걸까요. 사람이 변한 건 정원군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이 1권에서도 경민이가 염려하듯,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건 여간 잔혹한 심성이 아니고선 저지를 수 없는, 도덕적으로 떳떳지 못한 행동입니다. 자기가 아는 광해군은 그럴 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 경민이가 그 과거의 시간대에서 혹시 뭔가 "사고를 쳐서" 두 청년의 인격과 퍼스낼리티에 심대한 영향을 남긴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의문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저 "아 그래서 역사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군"하는 통속적 감동을 예비하거나, 혹은 (속으로는 뻔히 다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짐짓 놀라움을 가장하는 장르 문학 애독자의 관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시간 여행자는 결코 역사의 정해진 흐름에 간여할 수 없다."는, 작품 자신이 마련한 자체 규칙에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규칙대로라면, 경민이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착한 두 왕자, 서로 우애가 좋았던 형제를, 악귀로 바꿔 놓는) 큰 실책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그건 작품 내의 완결 우주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독자와 맺은 약속(우리가 먼저 청한 바 없다 해도)을 어기는 과오입니다. 이 구조적 갈등을 어떻게 무마하면서(혹은 멋지게 승화시키면서) 이야기가 발전해 나갈지 지켜보는 게 미학적(그리고 통속적 관람의) 포인트입니다.

 

멋진 표현이 많더군요. 특히 정원군이, 경민이와 광해군이 가까워지는 걸 필사적으로 막으면서, 경민이의 다소 궁색해 보이는 변명을 듣고는 "남녀 사이에는 친구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를 단호하게 던진 뒤, "설령 그대의 말이 옳다 해도, 전혀 (이성으로서) 마음에 없는 여성을, 남자가 친구로 두지는 않죠."라고 덧붙이는 장면은, 독자의 뺨에 한 줄 소름을 쫙 돋게 하더군요. 저 말 자체가 얼마나 맞고 틀리고는 중요치 않습니다. 제가 주목한 건, "설령 그대의 말이 옳다 해도"라면서, 정원군이 자기 확신에 한 뼘 유보를 남기는, 여성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 신사다운 매너와 심성이 저 말 한 마디에 포함되었다는 겁니다. "설령 그대의 말이 옳다 해도"라! 캬, 21세기를 사는 남성이라 해도, 자신의 여자에게조차 소위 mansplain을 하려 들고, 일장 설교나 늘어 놓으면서 우월감을 과시하는 자기 중심적인 모습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물며, 조선 시대 왕의 아들로 태어난 고귀한 신분이, (자기 안마당에서야) 일개 나인에 불과한 여자의 의사 따위야 그저 무시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잠자리에 끌어들이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런 강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이, 저 정도라도 은근한 언사를 구사하며, 여성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 마음을 사고 싶어하는 뜻을 표현하는 게 어딥니까. 이런 모습으로 보아 이 소설 속의 정원군은 정말로 괜찮은 사람 같습니다. 이랬던 사람이 나중에 그렇게나 단단히 탈이 난다면, 그건 정말로 큰일이 또한 아닐 수 없겠구 말이죠.

 

판타지 소설이 자체적으로 엄격한 규칙을 마련하고, 앞으로 전개되는 행보에 있어 스스로 설정한 그 룰에 철저히 충실하면서, 동시에 자유분방한 상상력까지 마음껏 발휘한다면, 독자로서는 그 이상 고맙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은 2, 3권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 보겠으나, 왠지 이 장르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끔찍한 비극이나 결말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가식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걱정이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도역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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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증언
오정은 지음 / 디아망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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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특검"이란 용어는 아주 드물지만은 않게 세인들의 귓전을 울립니다. 통상적인 수사로 진상이 명쾌히 밝혀지지 못하거나 그럴 전망이 농후할 때, 어떤 사회적 압력이나 잇속에도 구애받지 않으리라 기대되는, 법률적 소양을 갖춘 이를 뽑아 그런 "특검"의 직분을 맡깁니다. 성격은 아주 다르지만, 조선 시대에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었나 봅니다. 소설에서의 "특검"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의미의 "이능자"가 그 대상이라는 점,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는 달리 "묘령의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긴 하지만 말입니다. 행동이 민첩하고 무예가 빼어나며, 웬만한 위협적, 파국적 사태가 벌어져도 전혀 심적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이들은 남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선 가장 밑바닥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결국 운명의 장난이 몸을 비틀 때, 이들도 어쩔 수 없는 여인이라서인지 왈칵 눈물을 쏟는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이긴 합니다. 이런 장면에서, 우리 (현대의 독자들)은 기분 사납게 하는 괴물딱지들로 그녀들을 보지 않고,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되 우리가 얼마든지 공감을 보낼 수 있는, 인간적이고 매혹적인 영혼으로 다루며 마음 한 구석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이능자란 미모가 빼어나다든가, 위에 적은 대로 범죄 수사에 탁월한 면모를 지녔다든가 하는 정도를 넘어, 어느 정도 초자연적인 능력의 보유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판타지의 경계 쪽으로 많이 넘어드는 면을 보입니다. 이런 젊고 아리따운 여성 이능자 뿐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혀끝으로 빚는 묘사만 듣고서 정확한 용모파기를 붓끝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놀라운 그림 솜씨를 지닌 "신체적으로 눈먼(이게 중요하죠)", 나이 지긋한 남성 화공도 한 사람 나옵니다. 본디 뛰어난 화가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솜씨가 아니라(사실 이것도 보통 재주가 아닌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정확히, 자유자재로 표현하여,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소경이나 마찬가지인 우리들에게 선명하고 생생한 선, 면, 색으로 보여 주는 능력이 더 본질적입니다. 미켈란젤로나 루벤스가 그저 기막힌 모사 능력으로 불후의 명성을 얻은 건 아닙니다. 이 역사사의 거장들처럼, 소설 속의 화공도 신화의 테이레시아스처럼 진정한 심안(心眼)을 갖추고 있었기에, 장삼이사가 지껄이는 어설프기 짝이 없을 몇 마디 말로도 사태의 진상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던 거죠. 이능자란 캐릭터들의 등장에선 차라리 뭐 그러려니 정도의 심드렁한 반응도 나올 수 있습니다만, 이처럼 깊이 있는 성격과 운명의 설정을 접하는 독자로선, 소설 자체의 넉넉한 주제의식, 치열한 고민을, 앞으로 읽어 나가며 기대할 수 있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런 기대는 여러 면에서 배반당하지 않고 풍족히 갈증을 채우게 됩니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경계"의 의미는, 망자가 이승의 삶을 잃고 나서 죄를 씻는 공간인 연옥, 아니면 림보와도 살짝 비슷하지만, 죄벌의 개념이 없고, 육(肉)과 영(靈)의 중간 지대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죽은 이의 영혼이 완전한 영적 세계에 진입해 버렸다면, 이능자들로서도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할 수 없습니다. 영화 <엑소시스트 3>에서 킨더만 형사가 범죄 피해자들의 망령을 수수께끼의 기차역(어디로부턴가에서 어딘가에로 떠나는 공간이기에 분명 일종의 "경계"였습니다)에서 만나는 장면과 비슷하고, 그보다 더 대중적으로는 "전설의 고향" 류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원귀, 혼백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이능자 특검관들은 여타의 정상인처럼 혼비백산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를 노출하지 않고, 태연하게 일상 대화를 그들과 나누며 자기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정보를 능숙히 취득한다는 점에서 다만 크게 다를 뿐입니다.



이능 특검관의 존재는 범죄를 전제로 하고, 그 범죄가 소소한 낙오자, 반사회분자, 부적응자 따위에 의해 저질러진대서야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엔 부족합니다. 사회 질서와 안녕을 해치고, 떳떳지 못하게 그 더러운 야욕을 추구하려는 덩치 큰 거물이 전면 혹은 배후에 자리해야 "이거 예삿일이 아니겠구나" 하는 긴장과 전율을 유발할 수 있죠. 배경이 조선시대다 보니, 거물급 악당은 신분적으로 화려한 배경까지를 지녀야 이런 자격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윽한 풍취를 나긋하게 발산하는 품격 넘치는 봉호와는 달리, 이 소설에서 야망의 크기나 사회적 지위로나 큼직한 비중을 차지하는 악당은 "나이도 많고 자질도 범상치 않으나" 적통인 이복 동생에게 보위 승계에서 밀려야만 했던 서장자 하월군입니다. 방계 왕손도 아니고, 선왕의 직계 혈족이며 한창 왕성한 혈기를 보일 나이이니, 어린 임금과 (생모로 보이는) 대비에게 이처럼 위협적인 존재가 없습니다. 질서와 사회 안정, 누대를 이어온 왕실 법통까지를 수호해야 하는 사법관으로서, 서은우는 그의 음모를 저지해야만 합니다. 헌데, 그녀 역시 여인의 몸인지라, 풍채 좋고 남성적 포부로 가득한 왕자를 보며, 이성으로서 두근거리는 심사를 마냥 억누를 수가 없으니 이게 문제입니다.

이승의 애환과 사연이란, 끝도 없이 펼쳐지는 억겁의 연과 기에 비하면 티끌처럼 가볍고 하루살이의 날갯짓처럼 덧없습니다. 서은우는 경계에서 헤매는 무수한 넋들과 대화를 나눠 보았기에, 인간사 영욕과 오욕칠정의 동요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제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한 인식에 도달해 있습니다. 소설은 "비밀스런 조직과 불온한 사상 간의 운명적 조우, 충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주인공 서은우의 이런 갈등과 마음씀의 미묘한 동선 역시, 독자들의 동조와 안타까움, 그리고 보다 먼 곳으로의 그윽한 눈길줌을 잘 끌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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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박물관 산책 -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이희수 지음 / 푸른숲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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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라는 정치단위가 주는 감흥, 동경, 위엄이란 실로 남다른 바 있는 듯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임했다가 상대가 저지른 뜻밖의 전술적 실책에  힘입어 광대한 소(小) 아시아 영토를 만지케르트에서 확보했을 때, 이들은 이곳에 룸  술탄국(國)이라는 경계를 새로 설정해서 다스렸습니다. 천 년을 지중해에서 패권자로 군림해 온 실체에 대해, 이름의 잔해라도 그대로 보존해 주는 게 자신들의 자존에 그리 해 되 것은 없다 여긴 소이입니다. 이로부터 다시 수백 년이 지나서야, 부족 시조를 달리하는 별개의 제국이 나서서, 최종적으로 "로마"란 이름을 지닌 제국의 심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정복자인 메메드 2세는 현지의 신앙, 풍습, 언어에 대해 일단은 원상의 존중이란 관용적 정책을 취했습니다. 인종과 사고, 기질이 판이한 종족을 다스리는 제국이라면, 그 정도의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덕입니다. 여튼 과거의 늙고 쇠잔한 제국을 정복한 젊은 제국은, 인수한 유산과 그 유산이 뿜어내는 영광을 가능하면 본 모습 그대로 후대에 전하려고 애썼고(쉽지 않은 결단이었겠죠), 그 결과가 우리 현대인들이 목도하는 대로, 그저 평범해 보이는 공화국 터키에 그토록 많은 "인류 문화 유산"이 분포해 있는 바로 그 사실입니다. 터키 정복자들의 야만적이고 잔인한 행태에 대한 평판에 그 표현, 그 글자 하나마다 신뢰를 준다면, 이는 대단한 모순과 인지부조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지에 가서 보아야, 투르크 제국 이전과 이후가 얼마나 긴밀하고 따뜻한 호흡을 교차하고 있었는지 그 확인이 가능할 테니까요.



이 책은 한국에서 터키사 연구, 현대 터키 정세 연구에 권위자이신 이희수 교수님이, 천연색 사진 자료와 인문적 통찰, 지론을 복합해서, 현재 터키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이해가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지, 일반 독자 입장에서 편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돕는 내용입니다. 터키는 최근 IS의 발호로 다시 국경 일부가 정세 불안에 빠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서아시아에서 보기 드물게 치안 유지, 건전한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당장 여행자들의 안전이 위협되는 수준은 아니죠. 이 서평이 작성된 5월 31일 현재, 터키는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교부에서 발동한 어느 주의단계(여행 자제 등)에도 해당되지 않은 국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다방면의 교류를 해방 직후부터 이뤄 오기도 했죠.

책에는 "서양이 터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신적 빚을 졌는지"에 잦은 언급이 나옵니다. 이 논의의 배경을 알려면, 서양이 터키에 대해 얼마나 나쁜 선입견, 편견을 지녔는지부터 먼저 살펴야 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소위 "성지"를 점령하고, 동시에 동서 무역의 요충지를 장악한 후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부터, 서유럽인들은 터키에 대한 경계와 증오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죠. 십자군의 원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사실상 현지인들에게 피해를 준 건 우리가 잘 알듯 기독교들의 과오가 더 큽니다. 종교를 표지로 한 두 진영의 대립이 이처럼 첨예해지고 나서는, 보다 격렬한 양상으로 군사적 갈등이 야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잔혹한 만행이 자주 빚어졌죠. 어느 싸움이건 가해자가 피해자가 분명히 구별되는 건 아니고, 대개 자신이 도발한 범위에 대해선 쉽게 잊는 게 상례입니다. 중근세사 전체를 통해 투르크는 기독교 세력에 대해 공세적 태도를 유지했고, 서구 국가들은 자연 과장, 왜곡된 인식을 그들에 대해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술탄의 일인 전제정이 통치 전반에 걸쳐 불러온 해악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해소, 극복되지 않고 이어졌기에, 터키에 대한 나쁜 인식이 더욱 고착된 건 일부 그들이 자초한 면이 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불가리아와 아르메니아에서 그들이 저지른 제노사이드 역시, 비슷한 시기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에게 자행한 만행을 잊을 수 없는 처지에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소행입니다.

여튼 터키, 투르크는, 근 오백 년(그 이상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에 걸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 만나는 접점 일대의 광대한 영토를 호령하던, 세계사적으로 겨우 중화 제국 정도나 그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강성한 제국이었고, 통치 시스템의 지속성과 세련됨 면에서 몽골 제국과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원칙과 일관성, 독특한 신조에 의해 피지배 종족 다수를 다스렸기에, 문화 유산은 지배자 고유의 것이 성취한 수준을 훨씬 넘은 기존의 유산을 넉넉히 아우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 이희수 교수님이 지적하는바 "서양이 터키에 크게 빚진 사실"입니다. 투르크는 그때까지 현지에 내려오던 소중한 유산을 제국의 이름으로 끌어안아 품위 있는 컬렉션을 만들다시피했고, 이를 제국이 망해갈 무렵에도 사방에 흩뜨리지 않은 채 비교적 잘 보존하여 현대인이 온전히 감상하고 그로부터 정신적 효익을 얻을 수 있게 도왔다는 것입니다.

성 소피아 성당의 사연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처음으로 이 도시에 이슬람의 깃발을 꽂았을 때, 정복자의 관용 덕에 대대적인 약탈이 이 성스러운 건물에서 행해진 바는 그닥 크지 않았습니다. 이 유적이 큰 시련을 겪은 건, 그보다 이백 년 앞서 라틴인(프랑스인, 베네치아 인 등)들이 "못 받은 빚을 받아내려 자력 구제를 시도했을" 그 시점이었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토록 대대적인 약탈, 파괴, 신앙에 대한 능욕이 행해진 적은 없었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그토록 어이없는 만행이 이뤄진 점과 대조하면, 터키(투르크) 정복자들이 어느 정도 여유와 관용으로 제국을 다스렸는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스탄불 현지에는 1453 파노라마 박물관이라는 게 있습니다. 터키인들로서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이룬 이 정복이 자랑스럽기도 하겠으나, 패배한 그리스인들에게도 지존의 황제까지 그 목숨을 바쳐 가며 마지막 투혼과 애국심, 신앙심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장엄한 긍지를 갖는 대목이죠. 저도 구경한 적 있습니다만, 이 당시에 벌어진 양측의 대접전은 인류 역사상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극적인 이벤트였습니다. 이곳을 둘러보고 온 한국의 모 전직국회의장이, 그 관람의 감흥을 살려 책 한권을 지어 내었을 정도죠. 터키 당국의 훌륭한 정책적 안목이 돋보이는 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또 그 조상들은 타 민족으로부터 인수한 바를 잘 보존한) 유산만으로 관광객을 끄는 게 아니라, 이처럼 지난 역사의 현대적 재현을 통해서도 볼거리를 제작하여 웅대한 과거의 위용을 외부인들에게 상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터키는 공화국을 수립하고 수십 년 동안의 노력으로 재건에 성공하여 현재는 인구 대국, (전성기에야 턱없이 부족하나) 영토 대국, 지역 강국의 위상인데도, 제국의 해체 몰라기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아직도 외국인들 사이에 그닥 존경받는 이미지를 쌓지 못하는 게 유감이긴 합니다.


문화 유산은 곧 지난 풍속의 자취를 더듬어, 옛 사람들이 어떤 의식과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고 삶을 영위했는지를 짐작게 하는 좋은 단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혼사를 앞두고 시어머니 될 이가 며느리 후보자와 알몸으로 대면하며 서로의 인격과 됨됨이를 살핀 목욕탕 문화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고부 갈등이 심한 당사자가 같이 대중탕에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한 꺼풀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눈길을 끕니다. 아무래도 기원이 같은 동아시아다 보니, 현지 혼혈과 기후 적응을 통해 크게 달라진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 깊숙한 곳에서는 서로 통하는 바가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터키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이, 그리스 본토보다 더 양적 질적으로 풍부하다면 많은 이들이 놀랄 만합니다. 실상은 이 소아시아 반도부터가, 특히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농경, 무역 등 여러 경제활동으로 터전을 삼던 주무대였습니다. 서양 문명의 태반 구실을 했던 그리스인들의 본향 중 한 군데를 그토록 오랜 동안 지배한 게 터키였으니, 이처럼이나 많은 박물관이 자리하여 귀한 유산을 품고 있음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터키는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물게, 동과 서를 자기 한 몸에 아우른 적이 있고, 오늘날까지 인류 문화의 연속성 유지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큰 공적이 있습니다. 책은 올컬러 편집에 백상지 인쇄이고, 휴대하기에 가벼워 현지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가이드북으로 삼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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