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코틀러 인브랜딩 - 브랜드 속 브랜드로 승부하라
필립 코틀러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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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인브랜딩이 필요한가?


시 장의 경쟁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의 극치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가격으로 승부를 보자니, 원가 책정의 단계에서부터 개별 기업의  통제를 벗어나고, 마진을 낮춰서, 셰어(share) 선점 전략을 쓰자니 제살깎아먹기로 귀결할 뿐입니다. 품질 혁신이 아니고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R&D의 결실이란 단기간에 쉽게 맺어지는 게 아닙니다. 결국 소비자에게, "나의 제품은 다른 경쟁 제조사들이 만드는 그것들과는 질적으로 차별됩니다." 라는 마케팅 영역에서 승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요? 제품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브랜드"의 고안 단계에 초점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무 이름이나 붙여서는 안 되고, 제품의 속성이 그 짧은 음절 안에 화체(化體)되는 방식으로 작명되어야 하죠. 이것이 바로 코틀러가 말하는, "ingredient branding", 줄여서 inbranding입니다. 상표의 그 사운드만 귀로 들어도 제품의 내역과 품질, 구성, "아우라"가 떠오를 만큼, 그 한 마디로 복잡한 매뉴얼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압축적인 효과를 지닌 이름을 지어 줘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라!' 이것이 필립 코틀러가 외치는 핵심의 메시지입니다.


2. 인텔의 예

저 자들은 이 책 3장에서, 인텔의 예를 아주 자세히 적어 두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으나, 예전 스티브 잡스는 "인텔은, 마이크로칩을 포테이토칩처럼 팔아 먹는 놀라운 회사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죠. CPU라는 부속은 내장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최종 소비자(엔드 유저)가 쉽게 외부에서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한때, 컴퓨터 구매자들은 "인텔 인사이드"의 로고 스티커가 붙여진 제품만 시장에서 구매하려 하는, 작은 하드웨어(아무리 그것이 컴퓨터의 심장이라고 해도) 하나의 존재 여부에 구매 동기의 전부를 거는 놀라운 행태를 보이곤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코를러가 말하는 "인브랜딩, 인그리디언트 브랜딩, 성분-특성 부각 상표화"의 좋은 예입니다.

원서와 청림출판의 표를 대조해 보았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고, 그 내용의 타당성 면에서 확실한 검증이 이뤄졌습니다.


기업브랜딩과 인브랜딩은 서로 중첩되지 않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또한, 음식, TV 등 인간의 기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즉각적으로 소비되어 없어지는 제품들도, 인브랜딩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전제를 분명히합니다.

특히 중간 부품 제조회사를 "기관"으로 인브랜딩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흥미를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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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말하는 CEO - 세계 최고의 리더들에게 배우는 성공의 비밀
제프리 J. 폭스 & 로버트 라이스 지음, 김정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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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영자란 무엇인가.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 어떤 것을 골라 타고, 어떤 것을 스쳐 지나가게 해야 하는지 파도타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힘 있는 정의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CEO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며 혁신의 아이디어를 장려하되, 무모한 결단에 자신과 조직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말 역시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습니다. 기존의 경영학 서적에도 CEO의 덕목을 가르치고 정리한 책은 많았습니다만,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 이 책에서 독자가 큰 공감과 교훈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저자 두 분이 미국 비즈니스계에서 다양한 경력으로 경영의 잔뼈가 굵은 분들이고, 이 두 분이 인터뷰를 한 대상이 자기 영역에서 뚜렷한 성공을 거둔, 기라성 같은 CEO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CEO가 말하는 CEO>라고 되어 있지만, 책의 장점을 제대료 표현하려면 "CEO를 말하는 CEO들을 CEO들이 만나 듣고 정리하다"쯤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현장을 발로 뛰고 몸으로 누빈 소중한 경험담은, 겉으로 보아 비슷한 단어와 표현을 쓴다 해도, 오직 같은 영역에서 결단과 선택의 기로에 선 입장만이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실감이 나지 않을 대목입니다.


1장은 "조직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입니다. (이 제목이 맞는 제목이고, 차례에 실린 "조직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는 착오인 것 같습니다. 조직을 "살린"다는 말은, 이 책의 pp26~42에 나오는, 변화를 모색할 때 활용하는 5가지 기술"에 제한된 주제 같아서요) CEO는 일단 조직의 수장입니다. 아무리 도덕적이거나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조직를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하면 쓸모가 없죠. CEO의 어려운 점은, 일단 주주와 이사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수치상으로 분명한 실적을 제시하여,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파산 직전에 놓여 있는 회사에 취임한 CEO라면 그 책임은 더욱 큽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만, 이때 CEO가 명심해야 할 원칙은 1) 비전을 확실히 정하라, 2) 조직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라. 3) 적절한 인재를 확보하라. 4) 언제나 고객을 잊지 말라 5) 실천 계획은 한 페이지 분량을 넘겨서는 안 된다. 이 다섯 가지입니다. 단기의 목적에 급급해서는 회사가 결국 회생할 수 없고, 여러 사람이 결함한 조직이라고 하나 머리와 팔다리가 따로 놀아서는 효율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업에는 "영혼"이 필요하고, 이것이 바로 조직 문화라는 의미입니다. 인재는 결국 기업의 활력 근원이자 구체적인 실천 단위입니다. 인재를 중시하지 않는 기업은 어디에서도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죠. 또, 고객은 기업에 있어 혈액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짐 스키너의 유명한 말이 떠오르네요. "고객이 아니면, 누가 우리의 수천 수만개의 햄버거를 사 주겟는가?" 리처드 오길비의 말처럼, "고객은 멍청이가 아니고, 바로 당신의 와이프다!"가 진리인 법이네요. 마지막으로 실천 계획은 짧고 분명해야 직원들이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상세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다 포하하는 계획안이라도, 복잡해서 부하 직원들이 이를 실행하기에 애로를 느낀다면 그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죠.


이 책은 정말 많은 CEO들이 나와 한 마디, 때로는 여러 마디씩을 하고 들어갑니다. pp226~239에 잘 정리되어 있지만, 부록에서 다루지 않은 CEO들도 꽤 있었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표로 다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자들이 생각하기에 더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한 CEO는, 여러 챕터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사람별이 아닌 주제별로 재편집한 책이라서, 사람별로 다시 정리하고 싶을 때 이 표를 참조하면 좋을 것 같네요.

CEO

회사

등장 챕터

필 그리핀 Phil Griffin


MSNBC

1-1

아카디 쿨만 Arkadi Kuhlmann


ING DIRECT

1-2, 2-8,

데이빗 슈타이너

David Sreiner


Waste Management inc.

(이후 뉴욕 주 교육감 역임)

1-2, 2-8

래리 컬프

Lawrence Culp, Jr


Danaher

1-2, 3-19

Patrick Joseph McGovern, Jr


International Data Group (IDG)

1-2, 2-9, 4-25

Robert Louis Johnson


Black Entertainment(BET),

RLJ

1-2, 1-6, (2-8)

Arunas Chesonis


Sweetwater Energy

1-2, 4-23, 4-24,

Anne Mulcahy


Xerox Corporation,

Save The Chidren

1-2, 2-9, 5-28

Daniel Lamarr


Cirque du Soleil

(태양의 서커스)

1-2, 2-10, 4-26,

Mark Dixon


Regus plc(리저스 퍼블릭)

1-2, 2-11, 2-13,

James F. McCann


1800 Flowers

1-2, 1-5, 4-26, 5-27

George Halverson


Kaiser Permanente

1-2, 5-30

Jack Bogle


Vanguard Group

1-2

Maxine Clarke


Build-A-Bear

1-2, 1-6, 2-13, 에필로그

Bill Roedy


MTV

Network International

1-2, 2-10, 2-11, 2-13,

Peter Cuneo


Marvel Entertainmen

1-3

Jim Skinner


McDonald

1-3

Lynn Tilton


Patriarch Partners

1-3

Douglas Conant


Campbell Soup Company

1-3

John Paul

DeJoria


Paul Mitchell line of hair products ,

The Patron Spirits Company

1-3, 1-6, 2-8, 2-9, 2-12, 3-16

 

Tony Hsieh

 (본명:謝家華사가화)

Zappos.com

1-4, 1-5, 1-6, 2-8, 4-22,

 

Bernie Marcus


Home Depot

1-5

Ayn S. LaPlant


Beekley Corporation.

1-5, 4-24, 5-33

Patrick E. Connolly


Sodexo Health Care

1-6, 3-16, 5-27(2회)

Rochelle "Shelly" Lazarus


Ogilvy & Mather.

1-6, 2-9, 3-15, 4-26

D. Scott Davis


United Parcel Service of America, Inc.

1-7

Seth Goldman


Honest Tea

2-8, 2-12, 4-26,

Frances Hesselbein


Leader to Leader Institute

2-9

Daniel P. Amos


Aflac Incorporated. Amos

2-9, 2-11, 4-26

Ken Powell


General Mills

2-9

Jim Gillespie


Coldwell Banker

2-9

Joseph M. Taylor


Panasonic Corporation of North America, Inc

2-9, 4-25,

Richard Fain


Royal Caribbean Cruises Ltd.,

2-10

Willy Walker


Walker & Dunlop

2-11

Ralph de la Vega


AT&T Mobility

2-12

Patrick A. Charmel


Griffin Health Services Corporation

2-13,

Charlie Lanktree


Eggland's Best

2-14, 3-15, 4-24,

Kip Tindell


the Container Store

3-16, 3-18, 3-21(2회),

Kathy Cloninger


Girl Scouts of the USA

3-16, 5-32

Daniel Warmenhoven


NetApp

3-16, 4-23

John Paul Jones


naval fighter

CEO는 아니고 미 독립전쟁 당시의 해군 제독.

3-17

George Steinbrenner


principal owner of

New York Yankees

3-17

Chris Skomorowski

(인물 사진을 찾을 수 없어 기업 로고로 대신함)

Bicron Electronics Company


3-20

Christopher A. Jones


MicroCare Corporation.

4-23, 4-25

Aj Khubani


Telebrands

4-25

Joseph J. Grano, Jr.


UBS PaineWebber,

Centurion Holdings LLC,

producer of the Broadway hit musical Jersey Boys

4-26

Simon Cooper


The Ritz-Carlton Hotel

5-27

Calin Rovinescu


Air Canada

5-28, 5-29

Richard S. Pechter

Pershing LLC


5-29

2 장은 무엇을 위해 일할까? 입니다. 기업은 더 이상 맹목적인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소비자에게 "이 기업은 믿을 수 있다. 이 기업의 제품은 신뢰를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CEO는, 앞의 1장에서 본 것처럼 자신의 조직을 성장시키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 성장이 무얷을 위한 일이었는지, 다시 말해 존재이유(프랑스어로 raizon d'etre)를 직원에게,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과 불확싨성이 팽배한 현대의 CEO들이 잊지 말고 경영의 방침으로 새겨야 할 원칙입니다.


3 장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입니다. 이는 호율적인 경영 방침에 의해 잘 성장하고(책의 제 1장), 여기에 CSR까지 확실한 이념으로 정착하여 친사회적 영혼으로 거듭난 회사가(2장), 앞으로 조직 내부를 잘 추스리고 이끌어야 할지, 그 CEO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논한 장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CEO는 인기관리를 하는 리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대목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이는 한국의 공기업이 안고 있는 부실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오너가 직접 다스리는 기업은, 비자금 등 부정부패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무사안일주의, 적당주의, 최소 위험주의가 지배하는 일은 없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미국의 기업에서, CEO는 회사가 극적으로 성장, 이윤 창출에 성공한다 해도 명예가 남을 뿐이지 자신에게 직접 이익이 크게 형성되지는 않습니다(성과급이나 스톡옵션도 한계가 있고, 여기에서 대리인 문제가 비롯하는 거죠). 사후에 결과가 나빴을 때, 사람들에게 경영상 배임으로 추궁당하지 않으려면, 그저 무난한 선택만을 하는 게 낫습니다. CEO의 창의성, 모험적 결단능력은 바로 여기서 절실히 요구됩니다. 무사안일 CEO는 99명이 예스, 1명이 노를 말할때, 노에 마음에 흔들려 전략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CEO는, 99명이 노를 말하고 1명이 예스라고 해도 그 1명에 고무되어 혁신 전략을 추진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이었어요.


4 장은 고객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의 문제를 다룹니다. 기업은 고객에 이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고객에 이끌려다니는 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될 수 있으나, 결국 다른 경쟁사에게까지 이끌려 다닐 수 있다는 게 문제죠. 그렇다면 어떻게 고객과 시장을 선도할 것인가. 저자들은 첫째 CEO는 최종의 결정권자로서 무한 책임을 지고, 일단 결정한 바에 대하여는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충언합니다. 다음으로, 품질이건 기술력이건 이것이 고객에게 평가를 받아 이익으로 회수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사 제품의 가치를 고객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제품의 수월성을 "가격화"하라는 게 저자들의 지침입니다. "강력한 브랜드는 경영진보다 수명이 길다." 여기서 "브랜드"는, "기업"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유효합니다. 경영진은 떠나고 교체되어도, 영혼이 있는 기업은 영원히 남아 소비자를 상대합니다.


CEO는 조직의 선량한 관리, 고객과의 원만한 관계에만 치중해선 안 됩니다. 과거 한 때에는 그런 방식으로도 시장에서 생존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지적한 대로 "파괴적 혁신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이 책의 부제처럼, transformative CEO가 아니고서는, 바로 내일의 생존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창의적이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익 추구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시장과 고객이 두려운 줄 아는 전인적(全人的) CEO야말로 오늘날 파고 높은 바다 한 복판에서 조직의 구세주로 기능할 인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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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트렌드 2014
커넥팅랩 엮음 / 미래의창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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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으로 저는 모바일이 PC 환경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그렇습니다, 결국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모바일 퍼스트"까지는 몰라도, "모바일 온리"라는 이 책의 취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유익했습니다. 책을 통해 얻는 것은 저자(들)이 주장하는 최종의 대의일 수도 있지만, 그 저자들이 주장을 펴는 방식, 상세한 각론으로부터 얻는 주변 지식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채 300페이지가 되지 않습니다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기본 패러다임을 결정하는 중대 요소 하나를, 여러 각도에서 상세히 풀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도 감사한 책이었어요.


(이하의 설명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제 해석과 표현에 의해 전개된 것이므로, 혹시 내용이 부정확하더라도 책의 잘못이 아닌 저의 책임입니다. 물론 내용의 정확성에는 자신 있으므로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는 보시는 바대로, 2013년의 리뷰입니다. 트렌드가 아무리 순간을 단위로 바뀌는 변덕스러운 녀석이라고 하나, 만약 그 시계열상의 연속성의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미 "트렌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흐름, 유행을 두고 특별히 "트렌드"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에는, 어떤 지속적인 맥락이나 최소 한도의 "역사성, 인과 관계" 같은 걸 상정한 후의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해의 트렌드를 전망함에, 올해의 반성이 빠져서는 그 기초를 신뢰할 수 없음은 당연하죠. 1부에는 총 5장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 1장과 4장은 서로 연결시켜 읽어야 유기적인 파악이 용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1장을 보시면, all-IP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C-N-P-T의 각 영역을 지금과 같은 업체간의 할거가 아닌, 단일 업체가 통합적으로 장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어떤 독과점이나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탐식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산업별 경계로 나뉘어져 있던 네 개 영역의 구분이 무너지고, 단일 산업으로 통합되어 보다 편하게, 보다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효용을 제공하겠다는 거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C란 콘텐츠, N은 네트워크, P는 플랫폼, T는 단말기라고들 합니다(저자의 설명입니다). 저 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네 가지 중 두 개 이상의 영역을 장악하고 있던 주체는 통신사밖에 없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가정합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다음에선 갑자기 "...오히려 다른 영역에 있는 사업자들이 실질적인 all-IP를 구현하고 있는 형국이다."며 다소 모호한 설명을 합니다. 앞뒤의 내용이 서로 배치되는 느낌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현 단계에서 all- IP의 주도권을 잡는 데에는 통신사가 가장 유리한 입장이나, 시장의 특성과 잠재력을 영리하게 간파하고 이슈를 선점하며 구체적인 개별 단계를 밟아 나가는 데에는 다른 기업들이 더 두각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네요. 쉽게 말해서, 현재 땅을 가장 넓게 차지한 건 통신사이지만, 전투를 위해 자신들의 좁은 땅에나마 야무지게 전투 시설을 구비하고 개별 전투의 승리를 다짐하는 쪽은 다른 중소규모의 도전자들이라는 거죠. PCS가 도입되어 소비자(가입자)들을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끌어 모을 때만 해도, 016, 018 등의 통신 사업자(N)가 게임이나 영화 등의 콘텐츠(C)를 "생산(제작)"한다, 혹은 검색 사이트(P)를 운영한다, 이런 건 대단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폰을 직접 만드는(T) 일도 어색했죠(011 SKT의 "스카이폰" 브랜드는 예외겠습니다만). 쉽게 말헤서, 드라마, 영화, 게임을 만들고, 망을 관리하고, 포털을 운영하고, 단말기를 만들고, 이 모든 걸 한 회사가 다 맡아하는 게 all-IP죠.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KT가 싸이더스를 소유하고 있다든가 하는 게 다 그 예라는데, 이 외에도 구 하나로통신을 SKT가 SK브로드밴드로 흡수 합병한 일, 파워콤을 LGT가 인수한 일 따위가 더 실감나는 사례이겠습니다(같은 N 안에서의 흡수융합).


제 생각에는 all-IP란, 그저 패기있게 각 사업자들이 외치는 구호일 뿐, 가 까운 시일 안에 실현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어떤 단일, 소수 사업자의 지배적 대두를 허용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 점은 이 저자도, 위의 저 모호한 서술로 어느 정도는 자인하고 있는 셈이죠. 대표적인 컨텐츠 기업인 카카오가 과연 통신사의 위상을 넘볼 수 있을까요? 이 책의 p73(제 2부 1장)을 보시면, "이통사는 컨텐츠 기업의 덤프 파이프로 추락하고 말 것인가?"라는 화두가 던져져 있는데, 이는 이 1부 1장에서 논하는 all-IP 이슈와는 상당한 모순을 빚는 주장입니다. 또, 거대 통신사가 과연 네이버 등의 플랫폼 영역을 넘볼 수 있겠으며, 애플의 앱스토어 역시 그 기능을 어느 정도나 더 유의미하게 유지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이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만만한 건 단말 제조 영역[T]입니다. 물론 애플이나 삼성 역시 거대한 자본력을 갖췄으니만치 이 볼만한 전쟁에서 종속 변수로 머물려 하진 않겠죠) 여러 필진이 관여한 기획이고, 다양한 시각들을 엿보고 공부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니만큼 서로 모순되는 주장도 각각 음미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여튼 산업으로서의 all-IP 대두는 특히 소비자들에게 흥미로운 새 방향을 제시하지만(기존의 경계 소멸), 단일 기업이 패권자로 나설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엔 각 영역에서의 컨텐더들의 저력이 다들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요.


페 이스북이나 트위터 모두, 본성상 반드시 모바일 친화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소통의 대의가 유저들의 동선과 보다 밀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대체 모바일을 버리고 유선에 집착할 수는 없는 일이죠. 실제로 모바일 트렌드를 가장 선도적으로 구체화하는 기업은 페이스북이며, 이 점에서 과연 21세기의 총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페이스북의 각종 약진상은 놀라우며, 이익 창출과 생존을 사명으로 하는 기업의 발빠른 행보와 비전은 여타 누구의 상상력이라도 따라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빌 게이츠가 "생각의 속도"라는 개념을 말했지만, 모두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단계를 지금 여기서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잘나가는 기업, 증시에서 한결 같은 기대와 낙관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번 저자들이 자꾸 강조하는,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질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최후의 승자"가 과연 존재해야만 할까요? 또, 그 후보들은 여기 제시된 기라성 같은 기업 중의 어느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지요. 실제로 이 책 2장 2절을 보시면, 프라이빗 SNS를 비롯해서, 심지어 안티 소셜 서비스까지 등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바일 생태계에서 어느 한 서비스만으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고, 다양한 서비스의 컨셉, 기능이 존재하는 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이 장에도 나와 있듯, 페이스북은 이 점을 간파하여 틈새 시장을 별도 서비스로 벌써 공략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네이버가 "밴드"를 통해 벌써 국내 시장을 선도적으로 창출하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죠. 과거 유선 시대를 돌이켜 보면, 야후,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그 외 각종 특성화 검색 엔진이 각각의 영역에서 자기 장기를 뽐내며 할거하는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구글 하나로 판도가 거의 통일된 형국이죠. 서비스는 다양화하되, 비용과 공급 구조의 합리화를 위해 패권자는 하나, 혹은 소수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습니다.


유료화의 이슈도 IT 업계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과 거 프리챌이나 싸이월드의 몰락은 이 문제의 소프트랜딩이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님을 잘 알려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카오톡의 성공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이제 겨우 흑자로 돌아섰다곤 하나 본디 안정적인 수익 구조의 설계, 안착이 지난(至難)한 게 이 바닥의 사정임을 고려하면 뭐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동전화 초창기 시절부터 문자메시지가 무료였던 일본(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은 우리나 미국처럼 sms 기반이 아닌, e메일로 펀더멘틀을 잡았기 때문이죠. 번호와 번호 간의 통신이 아니라, 메일 계정 둘을 통신사가 연결해 주는 구조입니다. e메일이 무료니 당연히 문자메시지도 무료였죠)에서, 우리처럼 "무료 문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네이버의 라인 메신저가 일본에서 대거 약진한 건, 동일본 대진재가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책을 직접 읽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독자들이 가장 흥미있어할 만한 내용으로는 음성 매시업을 다룬 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요.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기계 하나로 통역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면 정말 신기한 일이겠죠. 어떤 마술 같은 게 아니라, 최근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빅데이터, 그리고 음성 인식 기술이 융합되어 가능한 기술일 수 있습니다(책에서는 음성 인식 기술과 데이터 속도만 강조하는데, 그 이전에 방대하게 축적된 번역의 선례 데이터의 양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을 읽으면서 못내 미심쩍은 게, 뭔가 저자분께서 "매시업"의 개념을 잘못 이해, 제시하신 것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매시업이란 두 개의 오리지널 소스를 연결해서, 유용한 제 3의 서비스를 창출해낸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통역을 도와 줄 기술로는 1) 음성 인식, 2) 기존의 텍스트 번역기, 이 둘은 종래 전혀 별개의 영역에서 놀고 있었는데, 이제 3) 즉시 통역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에 이 둘이 매시업 될 수 있다는 의미죠. 그렇다면, 영화 <설국열차>의 그 통역기는 매시업과는 무관할 가능성이 크죠(그 통역기가 중앙망에서 다른 db를 연결해서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퀄컴의 "스냅드래곤 보이스 액티베이션" 역시 자체 CPU에서 독립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데, 이 역시 매시업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겠구요(배추장수 소형 전자계산기가 매시업이 아닌 거나 마찬가지죠). 통합된 기기(단말기가 아닌 고립된 기기)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건 이미 매시업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오리지널입니다. 음성 통역이 자유자재로 되는 단계까지 갔다면 이미 그건 매시업 단계를 멀찌감치 초월한 거죠. 매시업은 지금 같은 초창기에서나 방법론으로 거론되는 거구요. 그리고 저는 근본적으로,통번역은 논리연산의 문제가 아닌 휴리스틱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빅데이터나 연산 처리 속도, 망의 차원이 아무리 확대, 진화되어도, 질적으로 해결 못 할 문제가 남아 있는 겁니다.


고도로 통신기술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더 이상 모바일과 유선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큰 그림만 얻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동전화를 쓰면서, 이게 SK다 KT다 하는 구별, 또 게임을 하면서 이게 카카오톡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혹은 PC 상에서 이게 넥슨의 서비스다 NC의 작품이다 하는 인식이 있습니다만, 장 래에는 그런 개념 없이 그저 편하게, 중간 경로를 인식하지 않고 즐겁게 소비하는 선에서 다 끝낼 것이라는 말이죠. 우리가 래미안에 입주해 살면서, 그 벽지와 마감재, 콘크리트의 제조사가 어디인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모바일이 일상 생활에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그 주도권을 가진다는 의미지, 다른 기기(예컨대 PC나 TV)를 모조리 대체한다는 건 아니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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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동물복지의 모든 것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박하재홍 지음, 김성라 그림 / 슬로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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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만 보고 어린이 동화인 줄 알았는데요, 내용은 아주 심각한 주장과 사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심각하고 중요한 깨달음을 요구하는 내용이지만, 내러티브는 쉽고 재미있게, 공감을 유발하는 식이라서 금세 읽어낼 수 있었네요.


제목의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는 무슨 뜻일까요? 말 그대로입니다. 돼지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대단히 지능이 높고(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시죠?), 깔끔하며(고개가 갸웃거려질 수 있습니다), 탐욕스럽지 않고, 지루한 걸 못 참는 부지런한 동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소나 다른 가축들은 훈련을 통해 행동 양식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돼지는, 반복된 행동을 통해 기본적인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네요(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에 보면, 가이아의 말로 원숭이와 돼지가 교접하여 탄생한 게 인간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죠. 돼지를 동원한 건 그 지능을 따오기 위해서랍니다). 게다가, 배설을 언제나 거주 환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해 놓고 행한다는 점에서 깔끔합니다. 그럼 왜, "돼지우리"란 말이 더러운 거처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이 책의 취지에 한 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본능에 맡겨 두면 얼마든지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살 돼지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마련한 가혹한 환경에 갇혀 살다 보니 그처럼 열악한 환경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다시피 바뀌게 되었다는 거죠. 문제는 인간이지 돼지가 아니었던 겁니다! 단조롭고 지루한 걸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돼지이며, 우리 인간을 위해 육질을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한 만큼, 이 동물에게 장난감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는 이 돼지 외에 닭과 소가 나오는데, 특히 도축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일이 벌어짐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흔 히 우리가 전근대를 야만적이라고 범주적으로 비난하지만, 소위 "백정"들은 동물을 도살하면서 가장 인도적인 배려를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물질만능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축의 대접과 운명이 더 나빠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를 가혹하게 다루는 데에 주저함이 없어진 인간마저도 그 도덕성의 퇴화를 겪었다는 점이 심각하죠. 우리가 동물을 학대하는 일은, 동물 학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 자신이, 생명을 경시하고 영혼을 타락시켜, 우리 자신을 전보다 더 못한 존재로 추락시키는 거죠. 동물을 위하는 건 동물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돼 지 등의 가축에 항생제를 먹이면 성장이 무척 빠르고 뚜렷하다는 이유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이 항생제 주입을 많이 하는 게 우리나라라는데요. 문제는 이 항생제가 그것을 먹는 우리들의 몸에도 축적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병원 안 가고 주사 안 맞고 약품을 남오용하지 않아도, 돼지고기를 무분별하게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몸은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었네요! 이제 삼겹살 요리 애호 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기로에 선 습관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2부는 더 볼만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 크레인을 아십니까? 이 호랑이는 어려서 장애로 태어났는데, 송곳니가 뻐드렁니라 턱이 잘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만약 자연에서 이런 개체가 태어나면, 그 동물은 온전한 맹수 성체, 포식자로 자라지 못하고 도태할 가능성이 많다는군요. 좀 충격적인 것은, 이런 불구의 자식이 나오자 그 어미 호랑이가 아기를 버리고 돌보질 않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모정이다, 혈육의 정이다 하는 문제는 자연의 본성으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DNA가 온전히 전파될 정상아의 생육에만 해당되는 문제고, 이런 장애개체의 경우는 해당이 없나 봅니다. 무정한 어미 호랑이 때문에 결국 아이의 보호 양육은 사육사들이 전담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어려선 개성 있는 외모로 동물원을 찾은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 크고 보니, 그 장애의 훙한 모습이 영 두드러져 입장객들의 항의가 잇따랐다고 하네요. 결국 이 아이는 동물원에서 내쫓겨, 민간 업자에게 팔리게 되었는데 그 이후의 사연은 더 기구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한 녀석이 바로 개입니다. 개처럼 인간에 의존하고 순종적인 동물은 없죠. 어떤 이가 늑대 어린 것을 어려서부터 무리와 격리시키고 가정에서 길러 봤는데, 개처럼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이지는 못하더라는 겁니다. 오랜 시간 (거의 몇 천 년 단위죠)에 걸쳐 본성 자체가 바뀔 만큼 길들여져 온 터라, 아예 유전 정보 자체가 바뀌어 버린 거죠. 게다가 개는 한 마디로 개라 통칭할 뿐, 얼마나 크기와 모양이 다양합니까? 이 역시 교배와 개량 작업이 빚은 마법이죠. 그런데 그런 개라고 해서, 인간이 그 처분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으로 여기면 그건 아주 곤란한 이야깁니다. 그래서 뜻있는 분들은 "애완견,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반려견,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거죠, 정말 지당한 일입니다.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려와 고찰을 통해, 과연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본성과 실체는 무엇인지, 다소 엄숙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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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부터 청춘
야마사키 다케야 지음, 김형주 옮김 / 지식여행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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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 이 책을 고르게 된 동기는, "육십이 청춘이면 난 그럼 태아인가?" 같은 상대적 안도감을 느껴 보고자 하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선착순 긴 줄 앞자리에서, 뒤에 끝도 없이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으쓱해지지 않습니까? 어르신들께는 좀 죄송하지만, 아직 젊다는 상대적 유리함을 수시로 확인하면,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에서 한창 현장을 누비는 입장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은 순전히 그런 이기적인 의도에서 고른 책입니다.


그런데 이건 웬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득가득 채워진 당부와 가르침(단순히 명언, 금언이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을 읽으니, 아직 60이 되려면 까마득한 나이이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 느낌은 뭘까요? 올 바른 말, 진리는 사실 알고 보면 어느 원전을 바탕으로, 다소의 변형을 거쳐 비슷비슷한 모습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가르침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말들,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비록 낯선 표현이고 가르침이지만, 살면서 느낀 바를 잘 반영하고 있어서 실감 나는 교훈으로 마음에 다가왔어요.


저자는 일본 분입니다. 야마사키 다케야라는 성함인데, 1935년생이십니다. 우선 책을 읽다가 저자가 일본 분이라는 점에 조금 놀랐습니다. "외국인 저자의 느낌과 생각을 담은 저술인데, 이처럼 공감이 넓게 이뤄지나?" 그것은 일본과 우리가 비록 앙숙으로 지낼지언정, 같은 동아시아 유-불 문화권으로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서일 수 있고, 특히 이 저자분이 살아 온 고속 번영, 개발 시대가 우리의 그것과 많은 공통점을 지녀서일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저자의 깨우침, 내공, 살아 온 인생의 밀도가 남달라서일 수도 있죠. 이 책이 유독 저에게 많은 교훈을 안긴 데에는, 이 세 가지 이유가 다 나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분입니다. 이 연세에 동경대 법대 출신이면 그 연배에선 최고 엘리트겠죠.

책에서는 "인터내셔널 아이"의 최고경영자라고 하고, 이 사진의 출처인 재팬타임즈에서는 "차나유 인터내셔널"의 CEO라고 합니다. 어느 편이 맞는지, 둘 다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이 많지만 하나만 인용하면요.

회춘이라고 해도 겉모습이 다소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장 기관의 건강이다.
염색, 화장 등의 겉치레만으로 사람들 눈을 착각하게 할 수는 있으나, 자신은 그것이 참된 모습이 아님을 알므로,
"이것은 나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자책 때문에 위축되는 태도가 어느 한 구석에건 드러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상당한 미인이다 싶은 여성인데 이상하게 어딘가 주눅든 모습을 보이는 때, "아 이분은 성형을 하셨구나," 로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너무 짖궂은 해석, 혹은 내용의 왜곡이 될는지요. 하지만 저는 이책에 실린 여러 가르침들이, 주어와 상황을 조금만 바꾸면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가령, "어떤 젊은이들은 고의적으로 나를 '영감님!'이라 부르며 거친 언사를 보인다. 그 이면에는 먹은 나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존경 없이 위력으로 대등하게 승부를 보겠다는 무례함이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들을 개의치 않는다. 젊은 나이에 걸맞은 패기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반증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같은 대목도 있습니다. 실무 현장에서 기싸움의 일환으로, 고의적으로 거친 매너를 보이는 일은 흔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은 결국 행위자의 지각 없음과 무능을 드러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결론인데, 저 역시 사람 상대하면서 자주 실감하는 대목입니다.


노후 설계 같은 장은 역시 주로 노인분들을 위한 정보와 조언이겠습니다. 그런데, 저자의 결론은 그렇네요. 상인들이란 결국 호시탐탐 고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모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자신이 주체적으로 큰 얼개와 방향을 잡아야 하며, 기술적인 세부 사항에서나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 족하다는 겁니다. 이 역시, 60 아니라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도 지침과 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자 식과 손주와 거리를 두는 법. 이 대목은 얼핏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도 주지만, 매우 현실적인 면을 충언해 주는 서술입니다."자식은 삼계의 멍에이다" 같은 말도 있다는군요. 결국 장성하여 독립적인 인격과 이해를 갖게 되면, 아무리 부모라도 예전처럼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 자식이 손주를 낳게 되면, 조부모의 입장에서는 그 예전 어린 자식을 키우던 시절이 생각나서 귀여워할 수밖에 없는 거겠구요. 이런 자식, 그리고 손주들에게 잘하는 하나의 방법은, 교육비나 여행비 등을 지원해 주는 게 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증여세나 상속세 부담을 덜어 좋다고도 합니다. 한국 세제상으로도 그리 해석되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동작이 예전같이 민첩하지 않고, 몸매가 망가지기 쉬우므로 옷차림에 신경 쓰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이는 무분별한 사치나 낭비와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결국 행복한 노후는 건전하고 흔들림 없는 인생관이 어느 정도 성숙해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은 노화와 죽음으로 수렴해 가는 인생이므로, 인생의 대선배가 될 이런 가르침을 잘 새기고 갑작스런 충격에 조금씩은 면역을 들이는 것도 현명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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