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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파이트 - 애플과 구글, 전쟁의 내막과 혁명의 청사진
프레드 보겔스타인 지음, 김고명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애플과 삼성의 소송 대전이 연일 지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급기야는, 두 달여 전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쓰려져서, 6월 26일 현재 아직도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비상사태가 이어질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프레드 보겔스타인이라는 이 저널리스트는, 우리 대중이 보지 못하는 거대한 전쟁의 이면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합니다(최소한 본인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삼성이건 애플이건 저렇게 법정에서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나가다간, 둘 다 천문학적 소송 비용의 부담 때문에, 설사 어느 한쪽이 소송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말 그대로 상처 뿐인 영광만 안을 뿐, 기업의 건전한 재무 운용에는 치명타를 입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 나타난 보겔스타인은 "거 보라"는 듯, 세상 만사에는 이면의 작동 원리가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번지는 싸움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는 마치 소설 한 편(여기서 소설은, 굳이 장르를 말하자면 "팩션"이 되겠죠?) 을 써 내려가듯,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이해력 달리는 독자를 채근해 가며, 마치 눈 뜬 장님처럼 진실에 어두웠던 우리를 준열하게 다그칩니다. "보이는 게 전부 다가 아니었어!"

그 는 이 싸움을, 다소 당혹스럽게도 "도그파이트"라고 명명합니다. 룰이고 원칙이고 자제고 체면이고 없는, 둘 중 하나가 죽어나갈 때까지 처참하게 벌어지는 밑바닥싸움을 가리키는 말이죠. 확실히, 애플과 삼성은 "정말 두 기업 사이에 타협점이란 없는 걸까?" 같은 의문을 대중 사이에서 불러일으킬 만큼, 도를 넘은 싸움을 법정 안팎에서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인데, 보겔스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충격적인 진실을 말합니다. "그 싸움은 섀도우 복싱이다. 진짜 싸움은 삼성 뒤에 숨은 구글이 그 한 당사자이며, 애플은 거대한 싸움의 서막을, 일종의 phony war를 통해 비로소 연 것이다. 애플은 구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이 투쟁을 개시했고, 삼성이 쓰러지면 비로소 진짜 상대가 나올 것이다. 구글은 어쨌든 피할 수 없는 싸움, 아니 어쩌면 자신들이 먼저 도발한 싸움이기에, 막후에서 체력을 세이브하고 있다. 싸움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이며, 어쩌면 본게임은 아직 시작도 않은 셈이다."

우 리는 우리의 눈이 직접 보고, 최초의 인지 수행에 의해 머리에 각인된 걸 끝까지 더 믿고 싶어합니다. 기업의 총수가 쓰러져서 의식불명이 되기까지 했는데, 그럼 그분은 남의 싸움에 말려들어 자신의 건강과 운명을 희생했단 말인가? 이게 사실이라면, 글로벌 기업을 이제 하나 가졌나 보다 하며 내심 으쓱했던 중진국의 국민으로서 다소 처량해지는 느낌도 듭니다. 실제로, 사실상 후계체제로 접어든 삼성에서는 애플 측과 화해의 움직임을 물밑에서 벌이고 있다죠. 만약 싸움이 결국 대리전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면, 맹장이 일선 퇴진한 후에는 전쟁 지속의 동인이 사라질 것이니, 이 관측은 이미 한 방증례를 마련하고 있다고도 보겠습니다.
제 가 책을 다 읽은 오늘, 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접한 뉴스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글, 안드로이드를 축으로 세상을 통일하려는 거대한 야망" 뭔가 보겔스타인의 진단, 시나리오가 척척 맞아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에 따르면, 본디 애플은 (비록 자신이 까마득한 선배이긴 하지만) 신생 소프트웨어 업체 구글과 업무적으로, 그리고 인맥상으로 대단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잡스 생전에 구글과 애플은 충돌은커녕, 공개석상에서나 사석에서나 CEO들끼리 유대에 가까운 협력을 주고받았습니다. 비교우위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각 맡아 자기 영역에서 차곡차곡 실리를 다지고 있던 두 기업은,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서로가 양립하기에 "이 지구가 너무 좁았다"는 인식 공유에 완전 합의를 이루고, 단지 그 개전이 시간 문제일 뿐인 총성 없는 전쟁 상태에 돌입합니다.
보겔스타인은 탁상의 이론가나 소설가(?)가 아닙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발로 현자을 뛰며 진실과 가십을 대중에게 전하는 저널리스트였습니다. 그가 끄집어내고 신나게 전개하는 가설은, 자기가 직접 인터뷰한 인물, 목도한 사건, 지근거리에서 감을 잡았던 숨겨진 특종 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기자다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고, 온갖 이야기를 그들로부터 듣다 보니 매스미디어에는 감춰지거나 아예 교묘하게 조작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의 취재수첩에는 넘쳐납니다. 구글 담당자가 처음 안드로이드 안(案)을 꺼내들고 나왔을 때, 업계 관계자들은 "당신 약하셨소?" 같은, 경멸과 당혹이 섞인 반응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애플은 한편 MS가 지상에 공룡처럼 군림할 때에도 갖지 못했던 야심을, 아이팟 아이폰의 잇단 성공을 계기로 현실화할 비전을 준비합니다. 보겔스타인이 날카롭게 짚어낸 진실 중 하나는, 진정한 혁신은 동시대 대중의 라이프 패턴을 바꿔 놓은 아이팟이나 아이폰의 개발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문화 생활의 플랫폼 하나를 새로 마련한, 신개념 개인 디바이스인 아이패드였다는 것이며, 이는 사실 애플 측에서도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되고 나서야 깨달았을 뿐 철저히 장기 전략의 산물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구글의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는, 단지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했을 뿐 처음부터 "지구 정복 로드맵"의 일환으로 태어난 것이고요. 이 두 거인이, 서로가 손에 쥔 도구가 "절대 반지"임을 비로소 실감했을 때,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개싸움이라고 이름은 붙었지만, 내실은 세계를 눈 앞에 두고 지구 곳곳에서 전선을 펼치는 "세계 대전"입니다. 혹은, 중세 유럽 그들의 대륙 지배권을 두고 게르만의 두 명문가 호엔슈타우펜과 벨프 가문이 맞붙었던 대회전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중요한 건 이 개싸움에, 지구 반대편의 이름 없는 소시민까지 나름의 판돈을 걸고 작은 이해관계나마 연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죠. 개싸움이란 사실 물주들이 개미를 끼고 벌이는 도박이고, 에이전트로 나선 개들이야 한없이 불쌍한 신세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건곤일척의 "개싸움"에서 싸우는 두 선수들, 아니 개들은, 겉보기로야 무척 여유로운 모습으로 대전을 벌이는 양상, 정확히는 싸우는지 안 싸우는지조차 누가 가르쳐 줘야 알, 고차원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비 양상과 선호까지 이들 "빅 도그"들의 싸움 국면에 맞춰 조종당하는 우리 소시민들이야말로, 이 "개싸움"에서 진정 피를 (대신) 튀기는 "불쌍한 잔챙이 투견"이 아닐지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