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독학 운전면허 - 운전면허 필기부터 도로주행까지 이 책 한권으로 완벽 정복
현상철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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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율주행 시대가 열린다고 하지만 기술적, 법제적 난점이 언제쯤 말끔하게 해결될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운전면허 보유자가 국내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고, 한국의 운전면허 시험은 인근 중국에 비해서는 쉬운 편이라고도 합니다. 또 이 책 표지에도 나오듯, 올해 10월부터는 1종도 오토(자동)로 면허를 딸 수 있게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그간 바라던 바가 실현되기도 할 예정입니다. 보통 독학으로 운전면허를 딸 생각들은 잘 못하는 편인데, 생각해 보면 혼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필기건 실기건 통과하면 되며, 구태여 학원에 비싼 수강료를 내고 취득해야 할 이유야 없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시험이든 간에 어려운 유형이 따로 있습니다. p24에 나오듯 학과 시험에서는 숫자를 묻는 문제, 또는 정비 문제 유형이, 많은 수험생들이 힘들어하는 유형이라고 하겠습니다. 같은 페이지에 예시가 나오는데, 답은 ③배기량 125cc 이하, 정격출력 11kW 미만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이하와 미만 단위를 반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겠습니다. 사실 정격출력이라는 말 자체가 상한선을 나타내므로 그 앞의 "최고"라는 수식어는 사실 중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고속주행차량 타이어 이상의 두 경우를 고르는 문제가 정비형의 예시로 나왔는데, 답은 ②스탠딩웨이브 현상과 ④하이드로플레이닝 현상이 되겠습니다. 이 교재의 장점은, 오답인 ①베이퍼록 현상과 ③페이드 현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두 현상은 고속 주행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오래되고 경력도 긴 운전자들도 자주 틀리는 게 p43에 나오는 교차로 신호등 보는 법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물어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운전에서는 많은 운전자들이 무시하기 일쑤인데... 시험 시 기능장 내 교차로 신호등이 일반 도로의 신호등보다 신호 간격 주기가 짧다고 나옵니다. 또 교재에 특히 빨간색으로 처리된 부분이, "교차로 정지선 전에 신호등이 파란불이라고, 이걸 빨리 통과하려 들기보다는 다음 신호를 기다리라"는 문장입니다. 안전을 위하여 우리 운전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겠습니다. 

차량 후진이 초보자들에게는 참 어려운데, 이 교재에서 가장 잘된 부분이 바로 p50 이하에 나오는 수정 방법입니다. 저자는 특히 "공식대로 진행했더라도 수정 없이 한 번에 들어가려고 하면 조금의 위치 변화 때문에 탈선할 수 있다"고도 알려 줍니다. 윙 미러로 뒤를 보며 후진한 후, 핸들을 오른쪽으로 끝까지 꺾은 후, 기어를 후진(R)에서 전진(1단)으로 변속하고, 차량 적재함이 뒷부분 모서리에서 반대편 모서리의 중간까지만 전진하도록 주의하라는 게 이 대목의 포인트입니다. 마무리는 뒷바퀴가 하얀 확인선과 맨끝 황색선 사이에 들어가게만 하면, "확인되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고 하네요. 확인되었습니다 부분을 그냥 텍스트로 처리하지 않고 그래픽으로 보여 주는 데서 이 책의 편집센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은 책에 QR코드가 박힐 수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직접 골라 둔 영상을, 이 QR코드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운전자에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차선바꾸기이겠는데, 초보자들은 겁이 나서 이럴 때 속도를 줄이곤 한다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차량의 흐름에 방해를 주는 것은 물론, 위험천만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 페이지(p73)에 찍힌 영상을 보면, 왜 차선 변경시에 속도를 줄이면 안 되는지, 어떤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p85를 보면 집에서 물 풍선을 만들어 발 밑에 두고 연습하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유격을 느끼며 실수를 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도 나옵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령 중 하나는 복잡한 도로에서의 시선처리(p111)일 수도 있습니다. 옆 차량의 속도와 거리를 관찰하며, 동시에 윙미러로 옆 차선의 뒤 차량도 체크하라고 합니다. p113을 보면 출발할 때, 유지할 때, 가속 구간에서 엑셀 페달의 각도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그림을 통해 잘 나옵니다. 실기에서 특히 조심행야 할 포인트를 그림과 함께 요령껏 잘 짚어 주는 교재라서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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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니체를 만나라
이동용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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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마치, 현대인이 앞으로 앓게 될 모든 정신적 고뇌를 혼자 도맡아 선제적으로 앓아 내기라도 한 듯, 진정한 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천재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에 걸맞게 성숙한 세계관이 몸에 배어야 하는데, 니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일생을 두고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할 추싱적인 난제를 다룬 딴세상의 신선이 아니라, 어른이라면 누구나 골머리를 앓고 갈등했을 만한 이슈에 대해 감각적이고도 직관적인 언어로 그 해명을 시도했기에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지난 시대의 독일인이기에 한국 독자에게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을 수 있는데, 저자 이동용 박사님이 더욱 쉽고 일상적인 설명으로, 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우리들에게 속시원하게 풀어 주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자도 자신의 먹잇감이 된 동물에 대해 사냥을 마치고 경멸감을 느낄까요? 이 책 p79에서 <차라투스트라....>를 재인용한 구절이 잘 설명하듯,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해 경멸을 표출하는, 좀 독특한 감정 성향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 경멸감이란 약하고 무능하고 열등한(그렇게 판단되는) 무엇인가에 대해 느끼는 단순한 우월감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이 저런 무기력하고 위험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어떤 위기감이 그리 발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대체로 인간은 (만약 그가 성숙한 어른이라면) 그런 경멸감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그리 편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약한 타자에 대한 경멸감이라면, 아 내가 이래서는 곤란하겠다며 비겁한 자신에 대해 책망할 줄도 압니다. 만약 내 자신에 대한 경멸이라면, 그게 경멸감 같은 낮은 차원의 감정에 계속 머물게 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으로 오르게 스스로를 재촉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니체는 이런 경멸감에 대해, 스스로를 애써 부정하지 말고 좀 더 솔직해질 것을 권합니다. 일단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건 그 자체로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어떤 감정이 솟아오를 때 일일이 이를 성현, 석학의 가르침에 대응하여 더 고상한 무엇으로 치환하는 건 대단히 피곤할 뿐 아니라 아무나 수행할 수도 없는 과업이라고 하겠습니다. 니체는 구태여 감정을 속일 게 아니라, 있는 힘껏 한계에 부딪혀 과연 내 자신이 경멸받아 마땅한 저 다른 패배자들과 같아질지, 아니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차원으로 도약할지, 현실의 좌표에서 어디 나 자신을 제대로 점검해 보라고 합니다. 어떤 안온한 울타리 안에서 나 자신을 과잉보호할 게 아니라, 승리자와 패배자 사이에서 과연 내가 어느 그룹에 속할지 칼 같은 잣대로 숨김없이 회피않고 마주쳐 보라고 외칩니다. 

독일어의 Wildnis, 영어의 wildness도 우리말로 옮길 때 오해를 사기 좋은 단어들입니다. p158에서 저자께서 잘 설명하시듯이, 이걸 구태여 황야 등으로 옮기기보다, 야생, 야만, 자유분방 등을 뜻하게 번역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니체의 심상에서 사자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바는 바로 "자유"입니다. 사자는 야생에서 절대 강자이기에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으며, 어떤 강제력 앞에 쉽게 굴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사자 역시 자신보다 강하거나 덩치가 큰, 기린, 코끼리, 코뿔소 등 앞에서 때로 목숨을 건 사냥을 감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겁하게 타자의 폭력 행사 앞에서 물러날 필요까지는 없기에, 사자의 삶은 호쾌하고 사내다우며 행여 일격을 당하고 사바나의 그늘에 피흘려 눕더라도 그의 여생에 아무런 회한이 없습니다. p159에 잘 나오듯, 끝없이 이어지는 도전의 사슬을 지혜롭고 끈기 있게 풀어나갈망정 운명 앞에 체념하거나 비참하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자의 삶이요, 또 자유로운 인간의 지향이라야 합니다. 

p170에 잘 나오듯, 니체는 흔히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한 철학자로 알려졌습니다. 자 그럼 신이 죽었으니, 악마는 세상 살판났다는 듯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일까요? 악마가 그토록 득세하게 되었다면 우리 인간은 윤리 도덕은 땅바닥에 갖다버리고 악마의 길을 따르면 그만일까요? 니체는 그런 말을 하고자 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은연중에 사람들의 마음에 심은 패배주의, 수동적 삶, 세상의 악에 끌려나니며 마침내 굴복할 수밖에 없는 노예적 평화주의 따위를 비판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신이 죽었다는 건, 사문화한 규범에 더이상 기대지 말고, 십계명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나를 지켜 주겠거니 막연히 의지하지 말고, 내 인생은 내가 싸워서 쟁취하고 개척해 나간다는 의지를 다지라는 뜻으로 우리는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니체가 말한 자유인의 삶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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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 화석이 된 흔적들
홍긍표 지음 / 반달뜨는꽃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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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을 먹고사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내 영혼을 지탱해 주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런저런 현재의 바람 앞에 결국은 한쪽으로 쓰러지는 오외로운 나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자께서는 평생 교편을 잡으시고 이제 정년을 맞아 중국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소속을 옮기시는 교육자이시며, 이 예쁜 책 안에 자신의 지난 인생 소중한 추억을 담으시어 우리들 후학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수하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7 이하에는 "꽃상여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제목 하에 참으로 심오한 교훈이 전개됩니다. 저자님 등 동료분들의 부모님들께서는 거의 구순 가까이되는 연세에 별세하신지라 다들 호상(好喪)이라며 지나친 비통보다는 가벼운 농담도 오가는 분위기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를 세상에 낳아 주시고 어렸을 시절 보설펴 주신 부모님을 이제 세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찌 그 마음이 미어지지 않겠습니까. 저자께서는 인생의 신산을 두루 겪으신 분들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따스한 말씀, 그리고 개인적인 회고를 곁들여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십니다. 

선생께서는 예순을 넘기신 연세입니다. 이때라면 나라가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이들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놀거리가 극히 제한되었던 시절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책 p57 이하에 그림까지 곁들이며 아무것도 없던 시절 자연을 벗삼아 잘만 놀던 어린이들이 과연 무엇을 벗삼아 소일했는지 저게히 설명해 주십니다. 과연 우리는 이처럼 풍요로운 세상에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떠난 우리들의 앞선 선배들, 조상들에게 합당한 감사를 표하고 사는 중일까요, 아니면 은혜를 까맣게 잊고 말초적인 향락에 젖어 불건전하고 무의미하게 세월을 죽일 뿐인 걸까요. 

우리네 국토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습니다. 전라남도 고흥군에는 신양선착장이라는 곳이 있고, 연홍도(延洪島)라는 절경의 섬이 있는데 저자께서 친지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시고 이 책 p144 이하에 그 기행문을 적어 두셨습니다. 사진이 설령 없다 해도 우리 나라 다도해 기행문은 장소가 워낙 장소이다 보니 관광객들에게 자연스러운 흥취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글들은 같은 한국인이라면 마음 속에 공감의 파도를 절로 일게 하여,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풍경에 대한 파도치는 감회와 설렘을 마음 속에 매우 자연스럽게 생성하기 마련입니다. 홍긍표 저자님의 이 부분 기행문도 그렇습니다.  

18세기말에 조엄이 한반도에 처음 들여온 고구마는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도 널리 사랑받는 작물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라남도 여러 곳에서 자라는데, 저자께서는 이 고구마에 대한 추억이 어려서부터 참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p97 이하에 상세히 이어지는 사연은 아마도 홍긍표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께 무궁무진한 추억의 연상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듯합니다. 선생께서도 표현하듯 이 작물은 경신대기근 무렵부터 기후 변화로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에게 구황 작물 노릇을 톡톡히 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웰빙식(食) 메뉴로도 많은 기여를 하는 중이죠. 

p183에는 비익조, 연리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연리지라는 말은, 저자 말씀대로 요즘 예식장에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도 한데 그 뜻을 알면 참 예쁜 말이 과연 그럴 만해서 자주도 쓰이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왕소군(p157)은 전한(前漢) 대를 산 비운의 궁녀, 미인인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동방규의 유명한 시구에도 등장하여 후대의 독자들에게 더욱 크게 어필한 문학적 모티브입니다. 하동은 경남, 광양은 전남이 그 행정상의 소속인데, 이 두 고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바짝 붙어 있죠. 하동의 명물 녹차, 광양의 상징(제철소와 더불어)인 매화에 대해 구수하게 풀어 주시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중국의 대학생들도 저자로부터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듯하여 부러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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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글자로 끝내는 중국어 표현 100
리리제제 지음 / 한다중국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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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한국과 많은 교역을 하는 나라이며 싫든 좋든 우리 경제와 긴밀한 관계로 엮인 거대한 단위입니다. 이미 한국에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이 많이 건너와 있기에 비록 그 수요는 많이 줄었으나, 중국어를 잘하는 인력은 어느 회사에서나 필요합니다. 우리가 간단한 중국어 몇 마디를 익혀 두면 어디에서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중국어 컨텐츠를 즐기거나 중국 커뮤니티에서 잠시라도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중국어 실력이 꼭 필요합니다. 불과 다섯 글자로 부담없이 몸에 익힐 수 있는 표현들이 있다면, 이것부터 먼저 몸에 배게 하고, 그 다음에 더 어려운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8을 보면 중국어의 가장 기초적인 인사라고 할 니 하오!라는 인삿말이 나옵니다. 중국어로는 你好라고 쓰며, 책에서처럼 느낌표를 붙이는 게 보통입니다. 페이지 안쪽의 QR코드를 찍으면 한다중국어 사이트로 연결되며 다시 책의 목차가 나옵니다. 지금 공부하는 챕터로 다시 들어가면 해당 대화의 원어민 목소리로 문장을 읽어 주며, 한국어 뜻은 한국어 목소리가 다시 설명해 주는 형식입니다. 음원을 다운받을 수도 있는데 페이지 중간 오른쪽의 점 세 개 부분을 클릭하면 다운로드 링크가 나옵니다(이 서평을 작성할 때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니하오에서 하오 부분은 우리가 배워 아는 대로 3성이며 얼핏 하~처럼도 들립니다. 책에는 이 표현과 유사한 다른 표현들(嗨 등)도 나옵니다. 

나이를 말할 때는 p64에 나오듯이 我三十岁라고 합니다. 岁는 중국어로 쑤이(4성) 비슷하게 읽으며 우리식 한자로는 歲(세)와 같습니다. "나는 30세"라고 하는 셈입니다. 상대의 나이를 물을 때에는 你几岁(니 지 쑤이)? 처럼 말하면 된다고 합니다. 모든 대화에는 간단한 컬러 일러스트가 딸려 있어서 중국어 쌩초보의 이해를 조금 더 돕는 편입니다. 또 처음 나오는 표현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을 달아 주는데, 예를 들어 p65를 보면 多大[뚜오어따] 같은 말은 한국어로 "얼마"라는 뜻이라고 바로 아래에 주를 달았습니다. 

이 교재의 또다른 독특한 점은, 성조를 표시할 때 보다 직관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성의 경우 쭉 뻗은 화살표가 대신 나타냅니다. 또 2성의 경우 위로 올라가는 화살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3성은 글자 자체가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p82에는 晕이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이게 책에는 헐!이라며 놀라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자세히 나옵니다. 이 글자는 중국어로는 [윈] 비슷하게 읽으며 1성이라서 쭉 뻗은 화살표가 함께 표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한자를 잘 쓰지 않으며 구태여 뜻을 찾자면 현기증이 난다는 [훈]이라는 음으로 읽습니다. 

이 책은 확실히 긴 표현이 잘 나오지 않고, 간단간단한 회화 표현 위주입니다. 그래서 따라서 배우기에 별 부담이 없습니다. 길다고 해 봐야 p85에 나오는 대로, 其实我不是韩国人("사실, 나 한국인 아냐.") 정도가 고작이며, 대부분은 정말 제목 그대로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p90을 보면 完了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우리말로야 "완료"지만, 중국어로는 책에 나오듯이 "망했어!"입니다. 같은 한자어라고 해도 이처럼 뜻이 한국어와 중국어가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어이가 없다, 황당하다, 노답이다 같은 표현도 있는데 无语了[우위이이러]처럼 읽습니다. 无는 우리말의 無하고 같습니다. 교재 p116 이하에 이 표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나옵니다. 太过分了!는 너무해! 정도의 표현인데, 뒤에 따라오는 "말도없이 계약해지라니!"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표현은 다 생략되었습니다. 제목대로, 까다롭고 어려운 건 중국어에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 배우라는 배려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네요. 모든 내용에 컬러 일러스트가 따라와서 정말 부담없이 초보 중국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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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안규남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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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만 봐서는 헷갈릴 수 있으나 지그먼트 바우만은 독일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나치 독일에 의해 모진 핍박을 받은 폴란드계 유대인의 일원이며, 이후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기에 지금 이 책 <In praise of literature>도 원서가 영어로 쓰였습니다. 만약 지그문트 바우만이 독일인이었다면 저 Zigmunt Bauman이란 철자도 매우 다르게 적혔을 것입니다. 심리학의 개조 프로이트처럼 Siegmund였겠으며, Bauman도 끝에 n이 하나 더 붙은 Baumann이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무튼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후 공산주의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 사회학자로 열심히 활동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이른바 68혁명이 일어났고 이 여파가 폴란드에까지 미쳐 공산당의 전횡에 저항하는 학생 시위가 일어났죠.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무우카(예전 책들에서 "고물카"로 표기되던 사람)는 이를 진압하고, 흉흉해진 민심의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뜬금없이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한심한 책략을 부렸습니다. 폴란드에 인민공화국이 들어선 건 나치에 짓밟힌 조국의 자존을, 마르크스주의(나치의 가장 큰 적)를 통해 실천적으로 회복하려는 민중의 몸부림이었는데, 이 자는 기가 막히게도 나치의 악행을 계승하여 손쉬운 마녀사냥을 부채질했던 것입니다. 바우만 교수는 이때 정든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이후 다시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 책은 이탈리아 출신 편집자 리카르도 마체오와의 의견 교환 형식으로 쓰였습니다(대담[對談]은 아닙니다). 마체오 에디터가 대체로 "문학" 진영을 대변하고, 바우만 교수가 "사회학"을 옹호하는 스탠스로 볼 수도 있으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어차피 리카르도 마체오도 인문학 다방면에 소양이 깊은 분이고, 바우만 역시 전인적 시야로 문학을 사회학적, 철학적 지평에서 능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성이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거의 같은 지점을 나란히 응시하며, 때로 살짝 조(key)만 달리하여 화성을 이루는 이중창을 연주하는 듯도 보입니다. 

바우만 교수가 격동의 20세기 한복판을 지내온 분이기에 혹시 이 책도 어떤 고색창연한 주제만을 다루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p92를 보십시오. 18세기 계몽사상의 대표적인 두 사상가 볼테르와 루소의 시대에서, 마체오 에디터는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이렇게나 약해졌는지 그 단초를 찾아냅니다. 아버지의 권위 실종과 남성성의 시대적 퇴조는 철학, 사회학, 문학 등 어떤 관점에서 봐도 현대적인 현상이며, 다만 리카르도 마체오는 그 뛰어난 인문적 식견으로 이를 18세기까지 소급해 가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인용하는 책은 루이지 조야의 <Il gesto di Ettore. Preistoria, storia, attualità e scomparsa del padre>인데, 2009년에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이미 번역도 되었습니다. 

제6장은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인데, 물론 소멸하는 건 중개자이며 인터넷에 별반 진입장벽 없이 누구나 개설하여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는 블로그는 그 세부 형태만 달리하며 발전 중입니다. 또 유튜브 등 뉴미디어, 트위터(현 X)나 메타 등 소셜미디어는 이미 전통적 중개자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중이며, 신문과 잡지 등 오랜 역사를 지닌 매체들이야 당연히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 원로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 같은 이가 이 이슈에 대해 각별한 소회를 피력하는 게 당연하죠. 이에 대해 바우만 교수는,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은 저 토마스 그레샴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코페르니쿠스, 심지어 아리스토파네스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현대의 의견 개진과 소통의 장이 확장되는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큰) 하나를 받으면 (상대적으로는 작은) 하나를 내주어야 하는, 일종의 역사 진보에 따른 대가 지불로 보자는 제안으로, 마체오 편집자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랩니다. 

바우만 교수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한 또래이며 마체오 편집자는 조국 교수 등과 세대가 같습니다. 이분들 사이에도 이미 세대 차가 크게 나며 바우만 교수가 워낙 장수한 분일 뿐 사실은 타계 1년 전까지 이런 지적 활동에 참여가 가능할 만큼 젊은 사고를 유지했다는 자체가 벌써 기적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책 제목은 "문학(literature) 예찬"이지만 널리 "인문 예찬"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며, 두 지성은 이미 전통적 한계를 저만큼 뛰어넘는 21세기 대중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저만큼 먼 곳으로부터 관조하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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