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
임용한 지음, 손무 원작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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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님은 국방TV에서 제작 방영했던 토전사 시리즈를 통해 큰 인기와 영향력을 얻은 분이며 사실 그 이전부터 전쟁사 관련 대중서 저술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최근 계엄령 사태에 대해서도 한 말씀을 남기기도 했는데, 지금도 YTN 등에서 틀어 주는 <전쟁과 사람> 몇몇 회차에 출연하여 허준 MC, 이세환 기자, 윤지연 아나운서 등과 함께 다시 좋은 컨텐츠를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로서 반갑기도 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손자병법>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담겼기에 이천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으로 존중됩니다. 임 박사님도 토전사 등에서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건 이면의 독특한 사정이나 맥락을 잘 짚어 주기에, 해당 고전의 주해자로서 이보다 더 적격인 분이 없다 싶었습니다. 책을 받아보고 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손자병법은 모두 13편으로 되었는데 임 박사님도 이 편제에 맞춰 내용을 이어갑니다. 역시 임 박사님답게 동서고금의 중요 전쟁사를 자유자재로 원용하며 이 오랜 동아시아 고전의 내용에 생생한 주해를 달며 원전의 볼륨을 훨씬 풍성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p122(제3편 謀攻 중) 같은 곳을 보면, "병력이 대단히 열세이면 전투를 피한다"는 구절에 대해, 저자는 이게 정말로 항전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나마 최선인 방법을 모색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같은 말이라 해도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의미라는 게 바뀌게 마련입니다. 또 워낙에 중국이란 나라가 땅이 넓다 보니, 이 전선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theater에서 재도전을 모색한다는 뜻도 관용적으로 품는다는 의견을 저자는 제시하는데, 임 박사님의 책들은 이런 독자적이고 살짝 변칙적이기도 한 해석의 독창성이 그 읽는 맛 중 하니입니다.

p123에서 저자는 분진합격(分進合擊)이라는 전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는 12세기 몽골 기병들이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택틱스라고 할 만한데, "여러 개의 여단으로 산개(散開)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 결정적 타깃 앞에서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적을 타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의 위력이란 이치상으로 누구라도 납득하고 상상할 만하지만, 몽골 군대의 특별한 성공 비법이 있었다면 그건 그들만이 실전에서 구현할 수 있었던 기동력 덕분일 것입니다. 또 저자는 십자군의 요새 운용법에 대해, 부족한 병력을 기술로 대신했다고 진단하는데, 크라크 데 슈발리에(Crac des chevaliers)가 <손자병법>의 "적은 분산, 아군은 집결" 원칙을 저 성채라는 구조물로 달성했다는 탁월한 분석이 있습니다.

"수비는 내게 남음이 있게 하고, 공격은 적이 부족함이 있게 하는 것이다(p181)." 임 박사는 이 구절을 두고, 손자병법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평가를 소개합니다. 이 구절은 제4편 형(形)에 나오는데 4편의 제목은 진형(陳形)이라고도 칭합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서 저자는 태평양전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만 폭격에서, 왜 미군을 더 철저히 무력화할 수 있었던 유류저장고 파괴를 단행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평소의 지론을 다시 전개합니다. 토전사 해당 에피소드를 시청한 이들에게는 익숙할 듯합니다. 이어 저자는 독소전으로 화제를 옮겨,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소련군 포로의 엄청난 숫자가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자유로운 기동에 큰 방해가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기세(氣勢). 사람 사이의 싸움이라는 게 참 묘해서 분명 어느 한쪽의 역량이 상대방에 크게 못 미쳐도, 이 기세라는 것이 뜻밖의 국면에서 작용하기라도 하면, 마치 1526년의 파니파트 전투처럼, 명백한 언더독 바부르가 이브라힘 로디를 패퇴시킨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p238에서 이릉의 전투를 분석하며, 적의 기세에 휘둘리지 말고 나의 기세를 조절할 줄 알라는 문장으로 이 장의 취지를 요약합니다.

1차 대전 직전 독일 육군은 필승의 방책이라 할 슐리펜 작전을 마련해 두었으나, "지나치게 대담한 계획이었던 탓에 독일 참모본부의 심장이 나약해진 탓으로(p286)"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저자는 결론내립니다. 반대로 2차 대전 때에는 간이 부은 히틀러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을 기다렸다는 듯 승인하여, 허를 찔린 프랑스 육군을 대파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기세" 라면 바로 이런 걸 두고 이름이겠는데, 요아힘 페스트 같은 이는 그저 "도박꾼의 행운"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습니다. 

제11편 구지(九地)에는 박사님 말씀대로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자주 쓰입니다. 사실 <손자병법>뿐 아니라 중국 고전 대부분이 이와 같습니다. 박사님은, 어렵게 파고들면 한도끝도없이 어려운 이 고전에 대해 최대한 쉽게, 또 박사님의 장기인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쾌하게 해석해 줍니다.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에는 위 무제(조조)가 주석을 달았고, 이제 인류의 간교한 지혜가 끝을 모르고 발달한 현황을 낱낱이 반영하여, 박식한 임 박사님이 고전에 이처럼이나 팔팔 뛰는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손자병법의 타이틀을 빌린 세계전쟁사로 읽어도 되겠으며,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책보다 더 실용적이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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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 예술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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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족의 철제 하에 신음하다가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하여 급기야는 동족 상잔의 비극까지 이어졌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 단정 수립까지를 보통 해방공간, 해방 정국이라 부르는데요. 신복룡 박사님의 이 묵직한 책을 보면 우리 민족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장래를 모색하고 민족의 앞날을 설계하려 노력했는지 그 생생한 단면을 개관할 수 있습니다. 분량도 풍성하거니와 대석학의 원대한 통찰까지 지면 곳곳에 숨어 있기에 독자로서는 너무도 행복하면서도 유익한 독서가 가능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역사는 대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 쟁패의 연속으로 채워졌습니다. p29를 보면 저자께서도 버나드로 몽고메리의 말을 인용하여 "결국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패권자가 된다"고 소결론을 내십니다. 일본은 왜 그리도 잔인하거나 호전적이었나? 이에 대해서는 무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도 언급이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호전적이고 냉혈 기질이 다분한 그들, 집단의 명예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포함하여) 개인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것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심성이, 바다를 지배하는 실력과 결합되었을 때 이웃 반도에 위치한 우리 겨레에 어떤 피해가 닥쳤는지는 이미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바입니다.

언변 좋고, 부티 나고, 사회적 지위도 번듯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런 유형이 되고 싶어하며 혹은 그런 사람과 친분을 맺길 원할 것입니다. 저자는 몽양 여운형을 가리켜 그런 축복 받은 인물이었겠다고 추정하며, 다만 이런 분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처럼, 해방공간에서처럼 좌와 우가 극렬히 대립하는 국면에서 과연 어떤 포지션을 취하는지, 양자를 조화롭게 중재하는 게 가장 바람직했겠으나 그런 고상하고 숭고한 시도가 좌절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실감나게 보여 준 위인이 바로 몽양 아니었겠냐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합리적인 중도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게 해방공간 비극의 한 국면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통감하는 바입니다.

p147을 보면 저자의 참으로 심오한 통찰이 담긴 말씀이 나옵니다. 해방공간은 과연 좌우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방울뱀도 동종의 공격에 대해서나 생사를 걸고 싸우지, 이종과의 대치 상태에서는 상대가 강하다 싶을 때 적정선에서 꼬리를 미리 내리는 게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우파 내에서, 또는 좌파 안에서의 권력 투쟁이 더 심각했으며, 이승만과 백범의 갈등도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이유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심각성을 띠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두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대립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입니다. 백범은 올곧은 지사형 인물이었지 권력투쟁 쪽에는 무관심했으며 실제로 한 살 연상이었던 이승만에 대해서도 대체로는 형님 대접을 하며 양보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승만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권력욕의 화신 같은 권위주의적 성격이었습니다.

"용서해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원한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까요? 대체로 사람은 아무리 지독한 악몽에 대해서도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잊기 마련인데, 이는 머리가 나쁘거나 사람이 물러터져서가 아니라, 나쁜 기억을 갖고 사는 게 자신의 생리적 건강 유지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색출 처단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해 적군에 몸을 허락했던 매춘부 등에 대한 린치, 마녀사냥, 사력구제 등 한심한 분풀이에 그쳤던 일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걸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라 반대로 자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칼 야스페르스 역시, 뉘른베르크 재판은 진정한 전범자를 가리는 정의의 심판장이 아니라, 거꾸로 크고작은 공범자들이 자신만은 가담의 책임을 면하려고 더 큰 범죄자를 지목하기에 바빴던 위선의 퍼레이드였다는 취지로 말한 적 있었다고 p199에 나옵니다.

김일성은 과연 진짜 독립 운동가였을까요 아님 가짜를 덧칠한 과장일까요? 일단 나이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였다고 해서 그 많은 공훈이 그것만으로 부정될 근거는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북측에서는 만주 일대의 가혹한 기후, 지형 조건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젊은이라야 그런 행적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옹호하기도 합니다. 반면,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혁혁한 공적은 1920년대까지도 거슬러올라가는데, 그 많은 전승이 심지어 10대 시절의 김일성에게 낱낱이 귀속되는 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상식 선의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국전은 과연 남침을 유도한 미국의 음모 같은 게 개재했었나? 이 역시도 근 70년 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오래된 논쟁거리입니다. 미 국무성에서 유엔 담당 업무를 맡던 D W 웨인하우스가 이미 한국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침략자로서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이미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수정주의도 두 갈래 입장이 있는데 하나는 브루스 쿠밍스(=커밍스)의 주장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구조적 유도 끝에 북한이 필연적으로 남침을 감행한, 사실상의 북침설이며, 다른 하나는 이 신복룡 박사님처럼 미국이 어설프게 뭔가 함정을 파 두기는 했었는데 우연도 다분히 개재하여 북한이 덜컥 미끼를 물었다는 입장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신복룡 박사님의 이 주제에 한정된 어떤 압권(壓卷)이 하나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딱 맞게 이 멋진 신간이 출간되어 독자로서 너무 행복하고 책을 받아들어 읽게 된 자체가 영광입니다. 원래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아티클을 모은 2017년 지식산업사판이 있었고, 이 신간은 그에 여운형, 김규식론, 남북협상 등의 화제가 더 보강되었습니다. 두고두고 읽으며 제 마음의 양식과 교양의 원천으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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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단기공략 지텔프 공식 기출청취 - 5일만에 청취 완벽 공략 ▶ 65점 달성!
G-TELP KOREA 문제 제공, 서민지.시원스쿨 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LAB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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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재는 특히 DELF의 A1에서 B2까지의 급수를 따기 위한, 문법 파트 정복을 위한 내용입니다. B2까지 커버가 된다는 점에서 웬만한 학교 문법은 다 다루는 셈입니다. 모두 25과로 구성되며, 딱딱한 문법 용어보다는 예문을 제시한 후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문법 사항을 끌어냅니다. 본문 학습이 다 끝난 후에는 연습 문제를 통해 앞에서 배운 바를 체크합니다. 올컬러 편집이며 일러스트도 많아서 학습자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시원스쿨 프랑스어 사이트, PC버전 학습자료실에서 음원(압축 전 55Mb, 압축 59Mb), pdf 문서 4종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받을 수도 있고, 예를 들어 p25의 QR을 스캔하면 그 트랙의 음원만 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leçon 1의 트랙은, p24에서 시작하는 exercices의 문장들을 원어민 여성이 읽어 주는 문장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p24 이하의 문제들은 그 일부에 블랭크 처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 음원들은 받아쓰기 연습용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 충분히, 유사한 문장들을 배웠으므로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습니다. 교재에서 누누이 강조하듯, 프랑스어는 특히 연음 현상에 유의하여 듣고, 이해하고, 받아써야 하겠습니다.

5과에서는 소유형용사를 배웁니다. 영어의 인칭대명사 소유격과 비슷합니다. 책에서는 "한정사 구실도 하므로 소유형용사가 올 때에는 관사가 오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점도 영어의 소유격과 매우 닮았습니다. 또 3인칭 단수 il, elle는 소유 형용사가 son, sa, ses로서 모양이 같습니다. 소유대명사에 대해서는 저 뒤 p210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또 p59를 보면, C'est la maison des amies de Lisa?가 "이것은 Lisa의 친구들(여자들)의 집이냐?"라는 뜻이라고 나오는데, 답도 Oui, c'est leur maison.(네, 이것은 그녀들의 집입니다.")입니다. 즉 의문문이나 평서문이나 어순이 같은 셈인데, 이에 대해서는 p99 이하에, 프랑스어에서 의문문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을 설명할 때 배우면 되겠습니다. 즉 저 문장은 억양만을 바꾸어 의문문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p78 이하에서는 준조동사에 대해 배웁니다. 일반 동사로 쓰일 뿐 아니라, 별다른 전치사 없이 바로 동사원형을 쓸 수도 있어서 이걸 준조동사라고 부릅니다. 영어에서 이것 비슷한 동사라면 need나 dare 같은 게 있겠습니다. 또 고전 라틴어를 배운 분들은 알겠지만, p79의 vouloir, pouvoir, devoir(모두 원형)는 라틴어의 volo, possum, debeo(모두 1인칭 단수형)와 각각 생긴 것부터가 너무도 닮았습니다. 뜻도 같고 거의 직계 후손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래서 고전 라틴어를 배워 두면 유럽의 언어들을 잘 배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p111에서는 간접목적보어를 배웁니다. "Il me parle."에서 me 같은 것이 간접목적보어입니다. 또 "Elle nous donne des cadeaux."에서 nous 같은 게 간접목적보어입니다. 특히 두번째 문장은 영어로 치면 "She gives us some gifts."이겠는데 이건 영어 문법 용어로는 간접목적어(4형식의)죠. 그러나 프랑스어에서 간접목적어라고 하면 영어 문장 "She gives some gifts to us."에서 us 같은 걸 가리키므로 이것과 구별되는 간접목적보어라는 말이 따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영어에는 간접목적보어라는 말이 없습니다.

p154에서는 복합과거를 배웁니다. 왕래발착 동사들은 조동사로 etre를 사용한다고 나오는데, 마치 독일어에서 현재완료형에 sein을 조동사로 쓰는 것(원칙대로라면 haben을 써야 하지만)과 닮았습니다. 이 페이지에 대명동사도 언급되는데 se lever(일어나다), se reveiler(깨다) 등 재귀대명사를 목적어로 갖는 동사를 가리킵니다. 영어에도 seat oneself, behave oneself 등이 이것과 닮았습니다. 이 설명은 p81에 나옵니다.

설명이 쉬우면서도 체계적이고 예문이 많아서 이해가 쉽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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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동사 활용 쓰기 노트 - 원어민 MP3 음원+동사 활용표+동사 활용 총정리 노트+동사 색인+단어 색인
김수경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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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강력하다." 저자 법상 스님의 설법에 대해 이 책 앞날개에 나온 평입니다. 독자인 저도 법상스님의 설법 장면을 TV에서 본 적 있는데 저 말이 스님의 공력을 압압축적으로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비의를 날카로운 눈으로 꿰뚫어본 지혜가 말씀 안에 담겼고, 법상 스님만의 독특한 어조와 제스처 등에도 수양, 수행의 힘이 가득 담겼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이제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된 스님의 설법을 읽으니 새삼 마음이 겸허해지며 주변을 새삼 정리하듯 돌아보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요즘은 불교도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합니다만 기독교 신구 종파에 비하면 아직도 차이가 나죠. p72를 보면 스님이 "저도 어렸을 때는 성당, 교회에 다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이 있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법상 스님도 자연인으로 보자면 그렇게 고연령자가 아니시니, 이 세대는 아마 당연히도 기독교 계열의 선교 범위에 더 넓게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스님께서 어렸을 때 불교를 모르셨다고까지 하시니 그 점은 재미를 넘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한국의 특정 지역이었다면 워낙 사찰도 많고 불교의 교세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해당 종교를 믿고 아니고를 떠나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삶, 내맡기는 삶(p40)" 법상스님의 우리들에게 건네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네 삶이 괴로운 이유가 괜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이기 때문이죠. 생각이 없으면 그게 인간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법상 스님은 생각이라는 게,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십니다. 필요하다면 주머니에서 도구를 꺼내 쓰면 되는 것이지, 그 생각이라는 게 우리를 거꾸로 지배하게 놔 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지고보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모든 괴로움은, 쓸데없는 생각이 그 주인인 우리를 쥐고 놓아주지 않아서입니다. 초원의 사슴이 사자에게 잡혀 먹힐 걱정에 빠진다면, 어디 단 한 순간이라도 편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행여 걱정이 필요하다면 사자가 눈에 띌 때 비로소 시작하면 되겠으며, 그나마 걱정 따위보다는 즉시 아무 생각없이 잽싸게 달아나는 "행동, 실천"이 그 생존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걱정이 평소에 많은 애였다면 걱정에 찌들어 그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도 잘 치지 못합니다.

불교의 가르침 중 핵심이, 이 세상은 그저 무심하게 흘러갈 뿐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다(p81)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도 부릅니다. 진지하게 세상을 사는 분들이 평생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다른 일체의 기쁨을 희생하여 기어이 그 지점에 도달했더니, 막상 생각했던 그것과 너무 달라서 낙담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분이 이렇게 좌절하니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나의 아집만으로, 원래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우긴 게 오히려 교만이 아니었냐고 차분히 일깨웁니다. 그분 역시도, 하나의 목표에 일로매진하며 치열하게 살았으니 그것으로도 얼마나 보람되냐며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내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 내 뜻대로 뭘 해낼 수 있다, 이것만큼 잘못된 집착이 없다(p104)고 스님은 말합니다. 인생은 어디에도 치우치는 것 없고,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p105)."고도 하십니다. 이렇게 생의 무상성, 중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사람만이, 생의 온갖 장애와 고통에 일일이 타격받지 않고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무너지지 않고 한 세상 살아갈 수 있다고 스님은 강조합니다.

누구에게 욕을 먹었을 때 나는 화를 냅니다. 그런데 스님은, 그 욕을 먹은 것도 사실은 내가 아니며, 화를 내는 것도 내가 아니라고 합니다(p167, p261).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허상에게 욕을 한 것이고(실제로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애초에 일정한 실체라는 게 없으니 내가 욕을 먹는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며, 나의 화나는 감정 역시 나의 고정된 일부도 아닙니다. 한번 잘 자고 일어나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깡그리 잊습니다. 세상사가 이러한데, 뭘 고민하고 분노하며 애를 쓸 게 있습니까?

그럼 이렇게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인가. 스님은 그렇지도 않다고 말씀합니다. 정말로 무위를 행하는 사람은 아예 자신이 뭘 하는지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이 그냥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유위도 없고 무위도 없는 경지라야 그게 진짜 무위입니다(p198). p230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부산 광안리 해변은 타지 사람들에게는 엄청 큰 감탄을 자아내는 멋진 풍경이지만, 그 근방에 살며 일상으로 바다를 구경해 온 사람들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다는 거죠. 내게 이렇게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자극도 없겠다는 점도 하나의 깨달음이지만, 역으로 내가 이렇게 무심히 넘기던 게 사실은 엄청난 은혜요 고마움이었구나 하는 자각도 중요합니다. 못난 자기 생각으로 분별하고 걸러서 보지 말고(p256), 십수년 만에 만났더니 성향이 정반대로 바뀐 사람(p272)에서 보듯, 내 생각이라는 자체가 에초에 근거가 없는 허상임을 직시할 때 생의 평화가 찾아옴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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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시간 오후 4시
이주형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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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책은 역시 에이든 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실린 제작자 일동의 편지를 보면 "아날로그는 나쁘거나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구태여 이런 말을 안 해도, 요즘은 디지털을 맹종하고 아날로그를 폄하하는 사람은 잘 없지 싶고, 혹시라도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사소한 에러가 망(網)에서 잦은데, 문제는 이게 not humane이라서 실수인지 뭔지를 사람이 알아서 경계, 보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즉 디지털이 실수를 하면 사람은 불의타를 맞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대략 어디서 삐끗하는지 예측이 되기 때문에 알아서 거를 수가 있죠. 하물며 장인들이 만든 아날로그 명품이라면 어설프고 불안정한 디지털보다 훨씬 믿을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에이든 지도는 언제나 최고지만 저는 특히 한국과 일본 편이 좋았습니다. 지금 이 책은 도쿄 편입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에이든 지도에서 메인 아이템은 한 장으로 뽑힌, 대형 지도입니다. 재질이 특수해서 쉽게 찢어지지 않습니다(하지만 공연히 힘을 주거나 하면 당연히 안 되겠고요). 이 지도 단품도 대단히 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를 재편집해서 맵북, 상세지도 각 1권씩이 더 들어 있습니다. 여행노트에도 노트 블랭크 말고 요긴한 정보가 많이 들었으므로 이것도 책이고 본품으로 봐야 합니다. 박스를 열고 아 이거는 광고지인가 보다 해서 뭘 하나라도 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도 버리지 말고 쟁여 두면 여행 갈 때 다 쓸 데가 있습니다.

상세지도는 메인 지도의 재편집이라는 점 앞서 말했습니다. 휴대하면서 참조하기에는 맵북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도쿄를 중부, 남부, 서부, 동북부, 서남부로 나누어 담았는데 이런 분류도 해당 도시를 자주 찾은 분들은 알겠지만 매우 실용적입니다. 서부가 있는데 또 서남부를 나눈 이유가 뭘까 할 수 있는데 지도를 펼쳐 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서부는 신주쿠[新宿], 시부야[澁谷] 일대에 초점이 놓였으며, 서남부라고 하면 좀 내려와서 롯폰기[六本木]와 에비스 중심입니다. 이렇게 권역별 지도가 먼저 나오고, 다음에야 긴자(중부), 우에노(동북부), 아키하바라(동북부) 등 세부 지역을 더 자세히 담습니다. 지도에는 랜드마크, 중요시설 표시 외에 간단한 설명도 적어 두었습니다.

권역별 지도에는 먼저 한국어로, 다음에 일본어로 지명이 적혀 있습니다. 대축척판은 더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예를 들어 시부야 파트에는 츠키시마 몬자 쿠우야(아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가 지도에 표시되는데 밑에 月島(월도)もんじゃ(몬쟈)くうや(쿠-야)라고 일본어로도 병기했습니다. 현지 간판 확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이게 원래는 17세기 과자가 文字(문자. 일어로 もんじ[몬지]) 모양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나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빈대떡 비슷한 음식이고 한국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도 해당 부분에 澁谷이라고 붙은 건, 공식 명칭이라서 정확하게 소재지까지 다 인용한 것입니다.

아사쿠사[淺草. 천초]는 센소지[淺草寺]로 유명하다고, 도쿄를 상징하는 절이 이 센소지라고 책에 나옵니다. 보시다시피 한자가 같은데도 지역명은 훈독하고 절의 이름은 음독한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쿄 아사쿠사의 화월당(花月堂)은 메론빵 맛집으로 잘 알려졌는데 花를 か[카], 月을 여기서 げつ[게츠]라 읽으므로 현지에서는 가케츠도(카케츠도)라 부르지만 한국인들은 국내 유명 빵집이 연상된 때문인지(아니면 한자가 쉬워서인지) 그냥 한국식으로 화월당이라고들 합니다.

여행책 구실을 겸하게끔 텍스트로 된 세부 정보도 제법 많아서 더욱 유익한 지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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