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로 책쓰기 - 책 쓰기를 위한 나만의 현명한 AI 활용 비법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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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로 책쓰기

최근 우리 주변에서 열풍인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AI의 진화는 실로 놀라우며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 노동력 상당 부분을 대체할 듯합니다. 한편, 이렇게 AI 발달하면 사람도 그 막강한 성능의 도움을 받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글쓰기와 책쓰기입니다. 사실 책쓰기 노동의 많은 비중은 창의력이나 혁신과는 큰 관계가 없는, 단순 반복 작업에 가까운 군더더기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AI가 글쓰기를 도와 주면, 사람은 그저 창의적인 컨셉만 갖고서도 좋은 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런저런 소스를 통해 짜깁기만으로 책 하나를 만들어내는 좋지 못한 관행은 많습니다. 그럴 바에야 공인된 글쓰기 AI의 도움을 받았음을 떳떳이 밝히고, 작가는 빛나는 아이디어나 컨셉의 창안에 더 주력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2를 보면 이 클로드의 장점이 나옵니다. 첫째가 대화의 자연스러움, 둘째가 기억력이라고 나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챗GPT 같은 (더 범용성 높은) 엔진을 써 봐야 실감이 납니다. 챗GPT를 써 본 이들은 알겠지만 사실 "챗"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 말투가 대단히 판에 박힌 스타일입니다. "네! 맞아요!" 같은 뻔한, 진정성 없는 그 특유의 대화투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는 주변의 반응도 많이 접합니다. 또 챗GPT가 기억력 나쁘다는 평도 이미 대중에 널리 퍼졌습니다. 질문을 할 때 간단한 것도 엉터리 답이 잦게 나오는데, 질문자가 다그치면 다른 오답을 몇 개 더 내놓다가 다시 처음의 오답으로 돌아갑니다. 즉, 앞의 실수로부터 뭘 배우고 개선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입니다. 클로드는 이 점에서 (아직 아쉬운 면이 있긴 하나) 챗GPT에 대해 비교우위를 갖습니다.

또 일관성이란 점에서도 챗GPT보다 클로드가 낫다고 합니다. 이 역시도 제가 써 봐서 느끼는 건데, 챗GPT는 어떤 때는 반말을 했다가 갑자기 존대로 바뀌는 등, 내가 대화하는 상대가 어떤 영혼(ㅋ)을 갖는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극단적으로는, 그때그때 상황만 모면하려고 겉으로만 그럴싸해보이는 답을 내놓는 기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치를 하고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이 안 나온다 싶으면 다소 유보하는 듯한 말투로 이용자의 기대를 낮추어야 하는데, 언제나 자신만만하니 이용자는 잔뜩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클로드는 일관성이라는 점에서 챗GPT보다 낫기에 유저가 불의의 타격으로부터 약간은 안전해집니다.

작가는 책을 다 쓰고 나서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운지, 퇴고가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지 묻고 이 클로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p46). 사실 이 기능은 작가보다는 편집자, 나아가 출판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책에서는 이 때에도 유저가 클로드에게 질문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해야 기능이 극대화한다고 일러 줍니디. 생성형 엔진에의 프롬프팅 일반 원칙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이 책을 꼼꼼히 읽고 클로드에 가장 잘 맞는 프롬프팅의 특징이 무엇인지도 우리 독자들이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p66에도 여러 좋은 요령들이 나옵니다. p116 이하 부록에는 유용한 프롬프트 모음이 나옵니다.

자계서, 실용서, 에세이,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클로드가 도와 주고 사실상 대필(?)해 줄 수 있는 책 저술의 장르도 참 다양합니다. 이 책의 p70 이하에 장르별로 어떻게 클로드를 활용할 수 있을지 자세히 나옵니다. 자 그러면, 책을 쓸 때 클로드의 도움만 아무 생각없이 받고 책을 출판해도 될까요? 만약 결과물이, 이미 출간되어 있는 타 저작물의 내용과 형식 상당부분과 일치할 경우, 본인이 기 저작물울 직접 봤건 아니건 무관하게,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이 져야만 합니다.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이디어와 주제를 자신만의 언어, 표현(p97)으로 완성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지적인 성과를 이루는 최후의 결정적인 기여는 바로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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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잘가
김미란 지음 / 주부(JUBO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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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간다는 하나의 징표입니다. 어려서 엄마, 아빠만 알던 아이가 또래들과 소통하고 긴밀한 정서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격도 성장하고 감정도 더 풍부해지게 마련입니다. 이 작은 책은 모두 13단계로 구성되었는데, 표현 하나에 9개 국가 언어가 같이 딸려옵니다. 예전 같으면 9개 국어를 배워 봐야 일생을 두고 어디다 써먹을까 회의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습니다. 물론 챗GPT 등이 있어 말을 번역도 해 주겠지만, 기왕이면 사람이 직접 자신의 영혼을 담아 정겨운 말투로 말을 건넨다면 사람 간의 마음이 더욱 도탑게 오갈 것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3챕터에는 QR코드가 달려 있어서 원어민들의 발음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원어민들의 발음을, 아직 선입견 없이 깔끔하게,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어른은 이게 안 됩니다) 어린이들에게 자주 들려 줘야, 나중에 발음기호나 다른 보조 수단 없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인사 "안녕!"은 아마도 모든 언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표현이겠는데, 프랑스어로는 봉쥬르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한국 제빵 브랜드인 "뚜o주르"도 tous les jours, all the days라는 뜻이라서 이 단어 jour가 들어가는 표현입니다. 정작 good day 같은 영어 인사 표현은 호주 등에서만 많이 쓸 뿐이니 재미있습니다. 이 책에도 hello!가 대표 표현으로 제시됩니다. 

챕터 4에서는 같이 놀자는 표현을 배웁니다. jouons ensembles라는 게 프랑스어의 표현인데, "쥬옹 앙상블"이라 발음합니다(책에 한글로도 써 놓았습니다). 동사 jouer의 1인칭 복수 명령형인데, 영어에는 명령형이 2인칭에만 있고 그나마 형태가 원형과 같습니다. 따라서 영어만 배운 이들은 복수 명령형 활용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let's 형태가 있을 뿐인데 이건 다른 사역동사의 힘을 빌린 것이지 자체 활용(conjugation)이 아닙니다. 독일어도 영어와 비슷하여, lasst uns zusammen spielen!에서, lasst uns는 영어의 let us와 완전히 같습니다. lasst는 lassen의 2인칭 복수형이며 예전 같으면 laßt로 쓰였겠습니다. 아무튼, 어린이용 책이므로 복잡한 문법 사항은 알 것 없고, 원어민들이 발음하는 바를 자꾸 듣고 표현이 상황에 따라 척척 나오게끔 연습하는 게 최고입니다. 

포르투갈어는 재미있게도 vamos jogar를 쓰는데, 스페인어로는 같은 페이지에 juguemos(후게모스)라고 책에 발음도 정확하게 나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스페인어로는 간략하게, jugar가 1인칭 복수 격변화하여 표현되는데, 포르투갈어로는 구태여 vamos를 조동사처럼 끌어들여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포르투갈어가, 스페인어와 같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달한 언어인데도 이런 패턴은 영어와 비슷하게 생성되었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기본어휘만 놓고 보면, jogar(포르투갈어)와 jugar(스페인어)도 얼마나 닮았습니까. 이것만 놓고 보면 방언의 차이 그 이상이 아닙니다. 

넌 할 수 있어! 아이한테 힘을 주는 멋진 말입니다. 영어로야 You can do it!이며, 요즘은 어린이들도 아주 유식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다들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책을 통해 다른 언어 표현도 함께 공부하는 건데, 이탈리아어로는 puoi farcela!라고 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puoi는 potere의 2인칭 단수형인데, 이게 영어의 can과 같은 조동사입니다. 조동사이므로 뒤에 farcela라는 동사원형이 왔습니다. potere는 영어의 potential 같은 말과 어원이 같으며 possum이라는 라틴어의 직계 후손입니다. 스페인어로는 tu puedes라고 간단하게 표현하는데, 본동사가 따로 안 온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포루투갈어로는 conseguir라는 동사가 따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tu consegues!라고 책에 잘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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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
민은선 지음 / 라온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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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행만 추구하는 브랜드보다 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p54)." 브랜드는 그저 듣기에, 발음하기에 좋은 음소 몇을 모아 놓은 단순음향이 아니라, 창업자와 그의 승계자들이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를 압축해 둔 한 마디의 기업헌장입니다. 그러니 현대의 소비자들이 어찌 브랜드의 지향성을 간과할 수 있겠습니까? 저자 민은선 대표는 말합니다. "유행은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니 유행에만 기대는 기업은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붙여 민 대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기업만이 영속할 수 있으며, 기업은 따라서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지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는가? 저자는 자신이 업계에 데뷔할 무렵에는 열정, 감성 등의 요소가 높이 평가받았으며, 이런 요소들이 패션 그 자체로까지 여겨졌다고도 회고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진리라면, 그 브랜드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어야 했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물론 열정은 소중한 요소이지만, 열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도 다시 확인 가능합니다. 이 책에서는 토종, 혹은 해외 브랜드의 많은 예들이 열거되는데, 무엇이 행동이고 무엇이 철학이며 또 무엇이 단순 열정에 불과했는지를 독자들이 읽으며 확인 가능합니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요즘같이 정보가 흔한 사회에서는 일반 소비자들도 어떤 기업이 말뿐이며 어떤 기업이 행동에까지도 나서는지 얼마든지 검토 가능한 세상이라는 점도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 정부 예산이 대거 투입된 사업으로 밀라노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습니다. 대구 중심의 섬유 공업이 사양산업화하자 고부가가치 구조로의 전환을 꾀했던 건데, 이 책 p126 이하에서는 그 시도를 실패로 규정합니다. 한국도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제조업이 크게 일어났던 나라이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도 모두 그런 과거가 남긴 흔적에 크게 빚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덩샤오핑의 영도 하에 본격 부흥을 시작했었으며, 이 책에서는 경남 진주(한때 세계적인 실크 원단의 본산 중 하나) 역시 신화직물의 폐업을 계기로 완전히 명성을 잃었다고 진단합니다. 원단 산업이 근방에서 잘 지탱되어야 의류 섹터도 활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인사이트에 수긍하게 됩니다.  

외환위기 여파에도 알게모르게 생명력이 지속되던 곳도 있었습니다. 밀리오레, 두타 등이 흥했던 건 당시 대대적으로 진행되던 리모델링에 힘입어 쾌적한 쇼핑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몰(mall)들이 "자생적 컨텐츠 생산지가 아니라 수익형 부동산으로 변질되면 상가는 투자자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이라고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왜 바이어들이 떠났는가? 더 이상 새로운 디자인과 상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p136). 

원가 타령만 하고 중국에 운명처럼 먹힐 수밖에 없었다고 자탄할 게 아니라 원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아이디어, 창의력이 샘솟듯 솟아야 하는데 그게 더이상 안 되니 쇠퇴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동대문 업체들이 광저우에 가서 카피를 해 오는 현실이란 말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인들(특별히 눈 밝은 이들)이 서울 남대문, 동대문에 와서 싸고 질 좋은 디자인에 감탄했었습니다. 한국은 원래 이런 걸 잘하는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과거에는 동대문 주변의 봉제공장들이 있어 배후의 공급기지 역할을 했는데 현재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책 전체를 통해 일관된 관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니어들을 시니어라고만 부르는 것도 일종의 편견입니다. p190을 보면 better, not younger라는 브랜드가 소개되는데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젊어지려고 발버둥칠 게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원숙미가 갖춰지면 충분하다는 철학의 압축이라고 하겠습니다. 패션+아트로 머추어한 콘텐츠를 만드는 도쿄의 긴자식스 예를 보며 우리 패션 산업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도 영감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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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잘가
김미란 지음 / 주부(JUBO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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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국어로 배우는 언어 표현, 세계 어린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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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그의 친구들 -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
막심 로베르 지음, 박영옥 옮김 / 인간사랑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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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문명이 유럽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핀 건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존중했던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고 나오는데 1677년은 벤투 스피노자가 40대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해이며 또한 그가 쓴 저작들이 출간된 연도이기도 하다고 이 책 뒷표지에 나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평전이지만, 그 형식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그간 스피노자의 생과 사상은 다분히 추상적으로만 알려졌으며, 유명한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중고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한 자신의 신조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였거나 크게 곡해되었다는 게 작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전하는 자료만으로 더 정확한 진실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형식을 통한 탐구"입니다. 꽤나 재미있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스피노자는 추상의 너울을 벗고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를 만납니다. 프랑스어 원제 "le clan spinoza"는 직역하면 스피노자 무리라는 뜻인데, 영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모두가 "스피노자들"이란 뜻도 되며, 좁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모든 동조자들과 동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대사를 읊고 행동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실존인물들이며 가공된 캐릭터는 드물게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의 나라이며 특히나 암스테르담은 당시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번성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사건의 배경은 거래소들인데 거래소라고 해도 참으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합니다. p107을 보면 한 노인이, 아직은 세상 물정에 서투른 젊은이가 저자를 기웃거리는 걸 보고 현물 거래는 여기서, 또 선물(先物) 거래는 저쪽에서 이루진다고 가르쳐 줍니다. 17세기라도 이미 현대의 금융파생상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선물(future)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선물은 일종의 위험 헤지(risk hedge) 수단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나쁜 일이 터져도 이 선까지만 피해를 입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거래행위입니다. 밀, 설탕, 향신료의 가격 동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얼마이고, 반대로 희망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신중함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현자들이 대중을 위해 고안한 파생상품이 바로 철학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는 듯합니다. 

p242를 보면 데카르트는 논리, 기하, 대수라는 별개의 영역을 통합했다는 찬사를 받고 실제 스피노자도 자신의 시대에 데카르트 전문가로 꼽혀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위대한 좌절을 보면 알듯 이 세 영역의 완전한 통합이란 요원한 목표이며 다만 데카르트는 초급 해석기하의 발판을 놓았기에 상당수 도형 문제를 방정식으로 훨씬 명료하게 처리하는 천재적인 업적을 이뤘습니다. 예컨대 원은 천 수백 년 전 에우클레이데스의 언명대로 "특정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점들의 집합"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a,b)로부터 거리 r을 유지하는 (x,y)로 표현됩니다. 스피노자, 그리고 로데베르크 메이어르는 novum institium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세계관에서 기존 물리학이나 의학의 개념들은 일제 변혁을 맞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는 수백 년 후 변증법의 근대적 변용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p379를 보면 판 벨타위선은 <철학이 성경을 해석한다>를 쓴 불온한 저자로 지목되어 재판관들의 엄혹한 추궁을 받기 직전입니다. 불온서적의 명단에는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필독서로도 꼽히는 이런 책들이, 그토록 자유로웠다던 암스테르담에서도 칼뱅주의 신정론자들의 엄혹한 심판대 위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냥 의견일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p458 이하에서는 스테논 등이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클랜 안에서 언제나 최상위의 제단에 고정된 덕목은 첫째도 자유, 둘째 셋째도 자유입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지구 최후의 날까지 자유와 동의어이자 그 상위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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