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싸우지 않는가 - 저성장 시대를 돌파하는 강소기업의 3가지 전략
야마다 히데오 지음, 서라미 옮김 / 청림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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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안 싸우고" 돈을 버는 사업가는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받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자 사이의 무한 경쟁, 완전 경쟁(혹은, 그에 가까운 경쟁)이 빚은 효율로 인해 오늘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쟁을 피해가거나 독점을 통해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기준, 잣대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며, 실제로도 사법, 공법이 아닌 제3의 영역인 "사회법(중 경제법)"에 의해 규율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업가 입장에선, 가능하면 피 말리는 경쟁 없이 편하게 돈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듭니다. 앞으로 도래할 "제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어떻게 그 양상이 바뀔지 미지수이지만, 자본이란 본래 덩치를 키우면 키울수록 시장에서 이로운 위치를 점하며, 일제강점기에도 "물산 장려 운동"이 벌어진 배경이, 도대체 조선인 사업가들의 손에 종잣돈이 좀 모이게나 해 보자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덩치를 부풀린 자본은 개인의 사업 시작(소위 breakthrough) 단계에서만 요긴한 게 아니라, 이미 덩치를 키울 대로 키운 자본이 다른 경쟁자를 다 쫓아내고 독점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더 유용합니다. 가격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반대로 가격을 나에게 가장 유리한 지점에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 사업자 입장에선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습니다. 반대로 소비자의 후생은 축소되며,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체 생존을 위해 이런 독점 현상을 규제하며, 나아가 생산자들 간의 담합을 통해 이뤄지는 과점까지 제재합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주제는 그러나 이런 탈법, 초법, 예외적 현상이 아닙니다. 경쟁이 없어지니 사업가의 마음이 편한 것까지는 같은데, 덩치를 키워 경쟁자를 쫓아내거나 (언제 배신할 지 모르는) 경쟁자들과 뒷거래를 하는(그래서 소비자를 등치는) 게 전혀 아니라,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사업 영역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그 영역에서 나의 물건만 찾게 하자는 전략입니다. 다시 말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상대가 안 나타나, 오직 나 자신만이 경쟁 상대"인 블리스포인트를 가리킵니다. 이런 걸 가리켜 예전부터 블루 오션, 혹은 퍼플 오션 같은 말을 써 왔으나, 그런 용어들은 어찌보면 결과론으로서, 혹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그런 시장을 운 좋게 발견하는 사례에 가까웠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그런 사례보다, 진취적이고 혁신 친화적인 기업가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안온한 자신만의 시장을 만들었는지, 그 비결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가 지향하는 미래 이상적인 기업의 목표상은, 바로 강소기업입니다. "소"는 사이즈가 작아야(이게 앞서 언급된, 규모를 키워 독점의 장벽을 높이는 지지난 세기의 악폐와 대조됩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함의이며, "강"은 경쟁력을 통해 다른 참여자의 위협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는 뜻이겠습니다. "강소기업"의 육성은 예전부터 대만 같은 신흥국에서 강조해 온 정책 목표이자 미덕이었는데, 개발 독재기의 한국은 정반대로 재벌 중심의 중후장대형 산업 구축에 몰두했습니다. 저자의 견해로는, 이제 아이디어 중심, 톡톡 튀는 창의력 위주로 수시의 혁신이 필요하며, 이런 환경적 변화에 맞는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려면 강소기업 체제 외에 답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경영서를 쓰시는 저자들을 보면 1) 실무 최전선을 뛰다 나이 든 후 컨설팅 쪽으로 전환하신 분들 2) 처음부터 컨설팅 섹터가 주무대였던 분들 3) 학자 출신 세 부류로 대강 나눌 수 있는데, 이 저자님은 3)에 속합니다(컨설팅 쪽에서도 일정 경력 있음). 자신만의 파격적인 주장을 개진하신다기보다, 정평 있는 여러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촘촘히, 다양히 인용하시는 체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본디 경영자나 통치자의 유형도, 자신만의 개성과 일관성을 이어가는 타입(멋있긴 하죠)보다 주변의 말을 경청하고 센스있게 취사선택 잘 하는 타입이 끝에 가서 더 성공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균형 감각과 조화 있는 분별의 미덕이 잘 발휘된, 실무자들을 위한 개념 찬 요약서 같았습니다. 만약 "틈새시장(niche)", "블루 오션", "비경쟁 전략" 같은 주제들에 대해 여러 책들을 참고하는 수고 없이 단 한 권만 독파하고 최대한 실리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이 최고의 참고서이겠습니다.

일단 그는 잘나가는 선두기업의 기본 전략이 뭔지를 정리합니다. 선두기업이란 우리가 잘 아는 필립 코틀러의 정의에 기반한 개념인데, 리더/챌린저/니처/팔로워 중 "리더"를 의미합니다. 시마구치 미츠아키는 코틀러의 개념과 정의를 다소 수정하여 1) 주변 수요 확대(치약의 예를 드는 저자의 재치가 돋보이더군요) 2) 동질화 전략(챌린저의 혁신을 무용지물화) 3) 비가격 대응 4) 최적 점유율 유지 등입니다. 4)는 지나치게 시장 점유를 확대하려 들면 역효과(법적 제재도 포함)가 난다는 상황 인식에 기초합니다.

저자가 염두에 두는 "이상적인 기업"이 이런 선두 주자를 의미하지는 않음은 명백하죠. 이 책은 코틀러의 범주 중 니처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이어나갑니다. 작은 기업이 그 유리한 틈새 시장 안의 강자 지위를 유지하려면 여러 (변칙적으로 보이는) 지혜가 필요한데, 저자가 앞서 "선두기업의 전략"을 정리하고 넘어간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전략이란 나 혼자 멋지게 잘 짠다고 상대가 그 의도에 고분고분 응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좋은 전략이나 자원을 가지면 상대도 당연 그 점을 고려에 넣고 반응합니다. 저자는 그래서 "선두 기업- 대체로 규모가 크고 가용 자원 pool도 방대한 곳"이 내 시장에 못 들어오게 하려면, 1) 너무 이익률을 높이지 말고, 2) 너무 시장을 단기간에 키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익률이 높거나 시장이 갑자기 커지면 대기업 역시 전망을 좋게 보므로 곧바로 진입합니다. 이후 이 니처는 바로 약자가 되어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순인데 남 좋은 일만 시키고 희생자가 되는 셈입니다. 시장을 빨리 키우면 투자자금이 빨리 회수되는 장점이 있지만, 이걸 보고 대기업들도 눈독을 들이므로 "그 이후"가 보장이 안 됩니다. 책에는 노래방 기기 시장, 의료용 가운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재미있는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구체적인 예증 소개가 이 책의 최고 장점입니다.

특히 니처들은 기술니치(가장 이상적이지만 유지하기 어렵죠), 채널 니치(아주 좁은 경로만을 확보해 막고 있으면 대기업이 접근하기 어렵거나귀찮아서 간과합니다), 시공간 니치, 특수 니즈(수요) 니치 등의 전략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원도 적고 규모도 왜소한데 덩치 큰 대기업과 정면 맞대결을 하다간 자멸의 결과뿐입니다. 전환 비용 니치라는 전략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캡슐 제조와 약품(펠릿 꼴) 투입을 전담하는 쿠오리커후스(퀄리캡스)社를 전형적인 예로 소개합니다. 이 사업은 첫째 이익률이 적정 수준이고, 둘째 정부의 인허가를 받기가 번거로우며, 셋째 기존의 니처가 쌓아온 평판이 확고한 데다 신규 사업자에 대해 소비자들(제약회사들)이 일일이 눈길을 주지 않고, 행여 작은 사고 한 번의 실수라도 바로 매장되므로 시장 진입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거죠. 익숙한 건 그대로 몇 십 년이라도 같은 브랜드를 쓰는 예도 "전환 비용이 높은 예" 중이 하나로 드는데, 일본에서는 종이수첩인 "능률수첩"이 그런 브랜드 파워와 충성도를 유지하는가 봅니다.

선두기업이 강소기업에 빼내 들기 좋은 가장 좋은 전략은 "동질화"인데, 이는 쉽게 말해 "너희들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좀 치사하긴 해도- 자본주의는 원래 치사한 거죠) 우리가 바로 따라해서 없애 버리겠다"입니다. 여기에 강소기업(니처)가 응수할 수 있는 전략은 딜레마 전략인데, 2006년에 등장한 온라인 전용 보험사인 라이프넷의 사례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1) 영업사원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가입하게 한다 2) 특약을 폐지하고 약관을 간이하게 한다 3) 원가 구조를 모두 공개하여 소비자에게 유리한 계약임을 분명히 밝힌다. 인데, 이걸 대기업에서 따라하다간 바로 타격이 옵니다(이른바, 자산이 부채로 바뀌어 버리는 결과). 그런데 제 생각엔 이 예는 일본의 실정에 제한된 것 같고, 실제로 삼성생명이나 동부화재 같은 경우 다이렉트 사업 부문도 바로 만들어서 이런 틈새시장까지 차지하려 드는 걸 볼 수 있고, 이들은 시장 규모를 천천히 키우는 전략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이렉트 섹터가 더 이상 니치도 아님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을 합친 新전략을 "코퍼티션"이라 부르는데, 저자가 이 책 중 원용하는 네일버프와 브랜든버거는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게임 이론 분야에서 큰 업적을 쌓은 학자들입니다(당시 한 번역서에서 "나레버프"라고 표기한 걸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들의 연구를 재원용하자면 아메리칸 항공과 델타 항공이 경쟁 관계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보완적 생산자 관계도 유지한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일반 대중들도,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이 격화되자 메모리 조달 계약을 해지하는 결과를 목격함으로써 역으로 이 둘이 그간 보완적 공생 관계도 이어왔음을 알 수 있었지요. 전적으로 특정 생태계에서 양자가 적대하기만도 오히려 어렵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게 마켓 메이커 전략인데, 저자께서는 라쿠텐 버스 서비스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우리 같으면 코버스 같은 버스 회사 연합(운송사업조합) 사이트에서 이를 전담하지만(만약 외주를 통하면 수익이 안 날 겁니다), 일본에서는 이 회사가 예매 업무를 대행하는데, 좌석의 쾌적도나 터미널 주변의 시설 정보도 제공하고, 혹 특정 노선이 수요가 초과되면 회사에 통보하여 증편할 수 있게 하는 등 부가 서비스를 통해 니처로서 입지를 굳힌 경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부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으므로 이렇게까지 온라인 예매 패턴이 진화하기란 좀 시일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사례 소개와 연구가 책 읽는 재미를 몇 배로 늘려 주는 유익한 경영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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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앞으로 5년
이경주 지음 / 마리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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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을 소개하고 대비를 촉구하는 책은 많지만, 이 책은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수십 년 근무한 전략기획통께서 다분히 한국 실정에 최적화한 현장 감각을 통해 우리 독자에게 최대한 쉽게 설명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 어떤 얼개와 기반, 분야, 트렌드를 통해 우리 삶을 통째 바꿔 나갈지에 대해 다양한 시각들이 있지만, 이 책은 3차 산업 혁명 당시 우리의 대응과 응전, 결과는 어떠했는지까지 차분히 돌아보면서,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상에 대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보다 현장감과 적실성 있는 충고를 베풉니다. 저자 같은 분만이 겪을 수 있었던 기억과 체험, 평가가 책 곳곳에 스며 있어서, 한국 산업 발전사의 한 토막을 접하는 보람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이 한마디로 뭔지 아직 정리가 안 된 이들도 많이 만나는데요. 다른 가십 거리는 잘만 암기하면서 정작 우리의 미래를 통째 바꿔 놓을 담론, 프레임에 대해서는 인식이 미진하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자의 정의가 다른 책들의 개념 규정과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기업인답게 좀 더 직관적이고 간명한 표현이 눈에 띕니다. "4차" 혹은 네번째가 뭔지 정확히 알려면, 그 앞의 이벤트나 과정, 단계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합니다.

1차 - 석탄의 (연료로서의 본격) 사용, 채굴 : 경공업 (주로 영국)
2차 - 전기의 발명: 대량 생산 혁명 (주로 미국)
3차 - 정보통신 혁명
4차 - 인터넷 기반 유비쿼터스 혁명

저자께서는 일단 3차 산업혁명에 대처한 우리의 자세가 매우 진취적이었고, 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며 자평합니다. 지금은 잊혀진 용어가 되었지만 한때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란 말이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행했고, 거칠게 말하면 이 기술의 "세계최초도입" 덕분에 PCS 단말기가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에 보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냉장고폰"들이 퇴출되고 점점 작아지면서도 기능성을 높인 모바일폰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지요. 어떤 신문은 이 당시 "세계 거대 자본들의 실험장으로 전락했다"며 비관적 논조를 펴기도 했는데, 그게 그릇되었음은 지금의 결과가 잘 말해 줍니다. 본래 전통적인 셀룰러 방식의 단말에서는 문자 전송이 안 되었는데(초기 011 가입자), CDMA 덕에 누구나 통화 뿐 아니라 간단한 텍스트 전송으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 최초였고, 반면 일본은 이 단계에서 전통 방식을 고집하다 갈라파고스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자는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진취적으로 임해야 풍족한 미래가 보장된다며, 그때와는 달리 한국은 미적거리며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실태에 경각심을 촉구합니다.

저자는 1세대 오너, 창업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말은 잘못 오해하면 현대, 삼성, LG 등의 위대한 거물들을 존경하자는 뜻으로도 들리는데, 물론 그러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런 탁월한 돌파력, 배짱, 과감한 결단력, 미래를 보는 혜안을 가진 경영자가 현재 부족한 실태를 개탄하는 의도입니다. 으뜸가는 대기업은 거의 2세, 3세가 경영을 맡고 있는데, 이들은 그 선대가 보여준 과감한 기업가 정신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는 거죠. 어느 경제건 "사회는 곧 정글이며, 약자, 어린 자는 먹히고 짓밟히는 게 당연하다"는 결의로 대담한 개척 정신과 도전 결의를 가진 경영자가 필요한데, 또 그런 이들 중 살아 남은 적자(適者)가 주도하는 풍토 형성이 중요한데, 현 체제는 이런 "새 1세대 오너"들의 등장을 자꾸만 가로막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 생태계 조성뿐 아니라 기업 내에서도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새 프로젝트와 아이디어 기안에 성공한 인물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새 부서가 형성되는 등, 유연하고 자생적인 조직 문화가 만들어지는 게 매우 중요한데, 저자분이 일했던 시절 삼전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며 회고하시는군요.

M&A가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선진 기술과 노하우가 국내 기업에 활발히 수혈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한때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다 크게 피를 본 삼성이고, 당시 이를 지켜 본 분의 발언이라 더 신뢰가 가는데요. 지금 중국은 거의 무차별적이라 할 만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그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갑니다. M&A는 사실 과거 정주영 창업자 같은 경우 대단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를 보기도 했고("기업가는 제 손으로 회사를 키워 나가야 함"), 이의 대가 중 한 명이었던 김우중씨가 현재 고전하는 결과만 봐도 그리 호의적인 전망을 키우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신중하고 체계적인 실사를 통해 성공적인 M&A를 일궈 내면 그건 그것대로 단계의 도약을 낳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올해 초 큰 화제를 낳았던 "알파고"를 언급하며 이는 영국으로부터 "딥마인드"를 5억 달러에 인수한 구글의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그 막강한 구글도 처음부터 R&D를 할 수 없었는데, 우리 기업들이 하물며 원천 기술 개발에 나서기란 너무도 무모하며, 이런 현실을 타개할 길은 M&A밖에 없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죠.

기존의 낡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일본 기업들은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30조 원 가까이를 투자한다는군요. 일각에서 왜 대기업에 거액의 정부 예산을 퍼주느냐고 하는데, 현기차 한 군데가 그나마 미래를 대비한다며 애를 쓰지만 사세를 다 기울여도 2조 정도가 한계라고 합니다. 한국이란 경제 단위가 미래에 살아남고 변화와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지 거시 전략을 보다 큰 관점에서 고안하는 게 중요하며, 한국의 좁은 국경 안에서만 사안의 가치판단을 행하려는 태도는 우리의 가능성을 스스로 폐쇄하는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저자께서는 로그데이터가 쌓이면 수동운전- 자율 하이브리드에서 완전 무인 가동으로 진화할 텐데, 이때 "빈 자동차"는 새로운 비즈니스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차 안에 없지만 차가 나를 대신해서 현장을 살피며 정보를 모으고, 나를 대신한 센서들이 꼼꼼히 공간을 커버하는 유비쿼터스 세계가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던 숨은 차원을 열어주는, 연쇄적 혁명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야말로 인간이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신처럼 어디에나 자재(自在)하며 모든 정보를 관리, 통제, 생산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기반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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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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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G 웰즈의 <타임 머신>을 읽어 보면, 먼 미래에 인간이 엘로이와 몰록 두 가지 종(種)으로 분화하여 대립, 적대하는 쪽으로 진화한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두 종은 용모, 기질만 다른 게 아니라 서식하는 지역까지 빛과 어둠으로 완전히 나뉩니다(A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타고난 체질과 지능 따위가 신분 요소이며 서식지가 크게 강조되는 차별 요소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건 "진화"라기보다 퇴화에 오히려 가깝죠(엘로이, 몰록 모두에게). 퇴화는 두 종의 대립, 항쟁으로 멸종의 비극이 가까워졌다는 결과론적 의미뿐만 아니라, 과정의 불건전함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바람직하지 못한 이런 퇴화는 악의 배태이자 종말이라 평가할 만도 하죠.

"다른 지구(地區)의 삶을 한번이라도 들여다 본 적 없이 세계관이 형성된 사람은, 법을 만들 자격도, 판단, 적용할 자격도 없는 겁니다."

레오 마샬은 특권 신분의 자제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이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프라임 스쿨의 수업 시간에서 교수에게 이렇게 일갈합니다. 대개 이런 소설에서 지배층, 특권층은 빼어난 용모, 지능, 품성 등을 타고난 행운아이며, 그런 이들은 엄격한 시험을 거쳐 입학생을 선발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그 학교에서 특별한 사람으로 길러져 체제를 수호, 관리하는 운명이죠. 이런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란 19세기의 소위 "사회적 진화론" 비슷한 색채를 띠게 마련입니다. 이런 이념은 (이 소설 속의) 상위 지구인 1지구만 (뿌듯한 자부심으로) 누리는 게 아니라, 저 아래 하위 지구 거주자들에까지 대체로 패배주의의 한 형태로 널리 퍼지는 게 보통입니다. "가장 우수한 자, 가장 적합한 자(the fittest)만이 살아남게 마련이다." 적자 생존 기제를 이렇게 표현하는 건 대체로 사회적 진화론의 지지자이며, 반대로 새뮤얼 베케트 같은 이는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며 아주 음울하고 비판적인 어조로 작품 속에 피력한 바 있습니다.

위에 잠시 언급한 레오 마샬은 프라임 스쿨의 재학생이지만, 동료 학생들 주류의 가치관과는 다소, 아니 많이, 동떨어진 상념에 침잠하고, 이를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타입입니다. 이런 성향은 아무래도, 비판적인 성향의 컨텐츠를 많이 제작하는 그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에도 결국 체제를 전복하는 단초는 미디어 제작자들이 만든다는 식인데, 이 소설 속에도 그런 크리에이터들의 각별한 사명 같은 게 은근 암시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다윈은 총명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을 뿐 아니라, 용기 있고 일단 바른 판단이 섰다 하면 누구의 의견도 개의치 않고 직접 위험에 뛰어드는, 모두의 신뢰를 얻을 자격이 있는 품성의 소유자입니다. 다윈은 레오와 그 부친들 대(代)부터 서로 아는 사이이기까지 합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 부모들도 정통 성골 신분이 아닌데도 사회적으로 꽤 높은 직위까지 올랐으며(물론 한 사람은 정부 섹터, 다른 사람은 미디어 분야의 유력인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 아들들을 프라임 스쿨에 합격시켰다는 사실입니다(전자보다 후자가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프라임 스쿨에 다니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위 두 사람, 그리고 다윈 영이 첫눈에 반한 여학생 루미, 얘네들 집안은 세대간에 그리 화목한 분위기가 자리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의 출신성분과 지향점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표면적 상황 설정, 둘째(이게 진짜 중요하지만) 이런 회의로 가득한 성장 배경이, 주인공들(모두 3대째의 어린 학생들)이 이 사회와 세계의 바른 진상, 그리고 과거의 미스테리에 대한 정확한 해결과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성장통 노릇을 하기 때문이죠. "진정 진화된 종(種)은 자신을 포함한 일체의 현상, 존재를 회의할 수 있어야 한다." 원래 확신과 폭주는 그저 백치들의 특권일 뿐입니다.

프라임 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은 태도도 의젓하고 의복에도 위엄이 서려 있어, 누구라도 그 특권적 신분을 알아 볼 정도죠. 엄격한 학풍에서 교육 받고 졸업한 후에는, 설령 그 부모님들이라 해도 "자신보다 더 성숙한 어른 같은 자녀들"에게 함부로 말을 건넬 엄두를 못 내고, 학생들은 어느 새 가족들보다 동료들 사이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게 보통입니다. 다윈과 루미 역시 이런 그들의 소중한 행운과 의무감을 잊지 않는 명철한 정신의 소유자들이지만, 글쎄 진정 탁월한 영혼이란 모든 것을 한번쯤은 의심해 보는 그 자질에 자리잡고 성장하는 법이죠. 30년도 넘게, 이제는 자신의 아들이 그 나이에 갓 도달할 정도인, 어려서 죽은 자신의 친구 그 추도식에 매번 참석하는 문교부 차관 니스 씨,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진 속 말고는 본 적도 없는 "제이 아저씨"를 거의 인생의 지향으로 삼다시피한 다윈, 속 시원히 미스테리의 진상에 파고들 마음을 못 먹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처음에는) 출신 성분에 대한 경멸로 표현하는 루미, 이런 루미를 사랑하다 못해 존경심까지 품는 다윈... 역시 이런 소설은 일단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라야 합니다.

이 소설은 이런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괜히 사연을 복잡하게 꼬지 않고(레이 아저씨의 죽음, 그리고 이 체제가 꽁꽁 숨겨 온 비밀을 추적하는 내용인데도) 모험심과 애정으로 추동되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뒷장을 더 넘겨보지 않고 못 배길 만큼 재미있게 풀어 들려 줍니다. 과연 그런 끔찍하고도, 동시에 슬퍼지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다가도 의분에 떨며 분연히 일어서게 만드는 "진실"이 숨어 있더군요. 비겁한 어른들이 채 직시 못하고 가려 온 진실을, 나와 연인의 양심 말고는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 아이들의 손에 의해 밝혀지게 하는 것은 신의 섭리, 혹은 속 깊은 작가의 치밀한 계획이었겠습니다. "The Child is the father of the Man." 다윈 영 네 집안 어르신들이 이 소설 중에서 자주 거론하는 저 명언은 계관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그의 대표작 <무지개>의 한 행에 배치한 구절인데, 그 역시 이 소설의 다윈 영처럼 명문학교 출신이었죠. 엄청 두꺼운 분량인데 하도 술술 잘 읽혀서 세 번이나 마치고 난 후 이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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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천재가 되는 단 세 가지 도구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제 해결의 기술
기시라 유지 지음, 기시라 마유코 그림, 정은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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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가 "생각하는 힘"이며, 그래서 이 종(種)에 붙여진 학명이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하지만 종 전체에 균일하게 주어진 능력이라기보다는, 어떤 개체는 영리하게 생각을 잘 해내고, 어떤 개체는 열심히 따라는 하는데 성과가 좋질 못합니다. 재주가 뛰어나거나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은 그런 능력을 타고 났거나, 아니면 남다른 노력을 통해 선두주자를 추월합니다. 천재가 노력파를 못 이긴다고도 하는데, 이는 그 천재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의 트랙에만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노력파는 처음에 주어진 트랙이 불운했음을 알고, 노력을 통해 옮겨 간 유리한 트랙에서조차 머물기를 거부하며 계속의 상향을 추구합니다. 노력파가 천재를 이기는 길은 이것 외에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ToC(theory of constraints)는, 갖가지 상황적 제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최상의 성과를 올릴지에 대한 방법론인데, "생각을 잘 해내고 주어진 과업을 잘하는 천재"가, 그렇게 따라하고 싶지만 잘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 "이 순서대로 하면 나처럼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이론화한 업적입니다. 자신이 잘 하는 일이라도, 그걸 알고리즘화하여 만인과 공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경영학 이론의 과제인데, 이를 고안한 주인공 엘리야후 골드렛 박사는 물리학자라는 점이 특이하죠. 이미 학문 간의 장벽은 무너진 지 오래고, 인접 학문의 빼어난 시사점이나 영감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학자는 자기 자리조차 지킬 수 없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엘리야후 골드렛 박사가 정립한 ToC도 탁월한 업적이지만, 이것조차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기시라 씨 부부가 함께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낸 이 책은(남편 유지 님이 글을 쓰고, 아내인 마유코 님이 삽화를 그렸습니다), 정말 어린이들이라고 해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독자 친화적인 컨텐츠를 담았습니다. 어떤 주제나 이론을 쉽게 표현하여 설명하는 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도, 해당 토픽을 완전히 통달하듯 이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또한, 순수 학문의 성과를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는) 평범한 일상인들에게, 그들 자신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도록 쓸모 있게 가공하는 일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사천 명의 군중에게 물고기 한 마리 분의 식사를 제공했던 일만큼이나 "나눔과 봉사의 큰 보람"을 빚는 소중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저자들이 밝힌 대로, 일머리가 아직 덜 무르익은 신참 회사원들에게 쓸모 있는 도구를 제시하며, 심지어 공부가 마냥 힘들기만 한 초등학생도 이 책을 읽고 "자기 주도 학습법"에 비로소 눈을 뜨일 만큼 친절합니다.

세 가지 도구는 책의 편제에 따라 1) 가지 2) 구름 3) 목표 나무 를 가리킵니다. 먼저 1) 가지(branch)를 보면, 일단 회사의 말단 사원뿐 아니라 CEO들까지 뭔가 화끈한 각성이 올 만한 주장으로 시작하더군요. 잠시 인용해 보면,

"...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전체로서 마주하길 두려워한다. 전체로서의 문제가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제를 잘게 쪼개려고 한다. 잘게 쪼개진 문제는 부분적인 해답을 찾기 쉽기 때문에, 일부의 문제만 최적화시켜 놓고는 전체를 다 해결한 듯 안심한다...."

어떻습니까? 만약 문제를 모조리 방치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안심이 안 될 겁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일부에 대해서만 정확한 답을 찾아 놓고는, 나머지는 운에 맡겨 버리는 게 보통인데, 이런 태도가 대부분 좋지 못한 결과를 맞는 건 애초에 바른 (종합적) 대책을 세워 놓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복잡한 문제는 복잡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우선 문제를 분석할 때, 무슨무슨 사항이 있는지 박스(상자)로 구분하고, 박스 안에 사항을 채워 넣으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위에서 지적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다를 게 없습니다. 서투른 의사 결정자도 여기까지는 해 놓죠. 그리고 박스들 전체를 보지 않고, 박스 두어 개에만 주목한 후 그에만 알맞은 해답 발견에 골몰합니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정확한 답이 전체로서는 그릇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 앞에서도 지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상자들 서로의 관계가 어떤지 표시하는 "화살표"들입니다. 화살표는 어느 상자가 다른 어떤 상자의 원인(혹은 결과)인지를 표시합니다. 각자 따로 놓일 때에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자들이, 이제 화살표에 의해 관계가 밝혀짐으로써 분명한 의미를 부여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나나"가 있는데,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화살표 중 "이미 현실화되었거나",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것"을 특별히 서로 묶어 놓은 표시가 "바나나 모양"이라서입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이는 "메타 화살표"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 엘리야후 골드렛 박사의 원저에 그런 말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책의 저자들께선 "다 그려 놓고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하시네요. 이렇게 소리 내어 읽은 후 어색함이 느껴지면, 그건 문제의 분석이 상자, 화살표, 바나나 어느 단계 중 제대로 안 이뤄진 구석이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무언가를 검증할 때 한 가지 감각에만 의존하면 자기 타성에 젖어서, 보이는 것만 보이고 잘못된 구석이 체크되질 않습니다. 검증은 공감각적인 과정이어야 하고, 이로써 익숙한 루틴이 간과하는 허점이나 모순이 보다 쉽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압권은 개인적인 판단으로 2부 "구름"인 것 같더군요. 이 "구름"의 기능은 뭐냐 하면, 우리가 이거냐 저거냐 양자택일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두 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때, 어떻게 하면 가장 현명한 결정을 할 것인지 그 방법론을 제시하는  겁니다. 사실 회사에서건 개인적 용건이건, 이 "딜레마"를 똑똑하게 잘 넘기는 사람이 바로 인생의 성공자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누차 강조하는 건, 일회용이거나 그 적용 범위가 제한된 "지식"에 집착할 게 아니라, "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 줄 "생각하는 지혜"를 키우자는 목표죠. 공교롭게도 탈무드가 그 최초 출전인 이 말("고기 대신 고기 낚는 법")의 실천적 방법론을, 역시 유대인인 엘리야후 골드렛 박사가 가르쳐 주는 셈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상황을 박스와 화살표로 나눠 그림으로 표시하는 게 우선입니다. 물론 바나나도 여기저기 쳐야 할 텐데, 그 전에 박스 사이의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를 먼저 곰곰히 따져야 합니다. 먼저, 양립할 수 없는 두 상황을 D와 D'로 놓습니다(친절하게도 저자는 ' 기호를 프라임으로 읽어야 한다고까지 가르쳐 주시네요). 그 다음 단계, D와 D'가 무엇을 바라고 하는 행동인지 파악하고, 앞에다가 각각 B와 C로 둡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바라는 바(이것을 저자는 "요망"이라고 합니다)인 B와 C의 최종 목표가 뭔지를 생각하고, 대체로 이것은 공통된 A일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첫째, D와 D'가 딜레마지만(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지만), 최종 목표는 A로 같을 수 있다.
둘째, D는 B가 아니며, D'는 C가 아니다. 즉 각각의 딜레마 상황과, 그 딜레마 상황이 직접 요망하는 바는 같지 않다.

이 점이 참 중요합니다. D와 D'는 양자택일 관계(딜레마)임이 분명하죠. 그런데 D와 B가 친한 것처럼, D와 C도 친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D와 C가 딜레마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에 꼼짝없이 딜레마로 출발한 게,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의외로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많다는 겁니다. 이 겹치는 부분을 집중 공략하면, 이거냐 저거냐 선택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도,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쉽게 말해서, 절벽이 살벌하게 갈라진 협곡에서 괜히 모험을 하지 말고, 두 능선이 가장 가깝게 맞붙는 데서 건너갈 생각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도 1) 사람은 누구나 선의를 가진 존재이니 생각의 괴리를 좁힐 생각부터 하고, 결코 사람 자체를 적대하지 말라. 생각이 싫은 거지 사람이 싫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란 그 사람이나 자신이나 언제든 바뀔 수가 있다. 2) 사람 사이는 항상 승과 패가 갈리는 게 아니라, 둘 다 승리자가 되는 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 3) 내 생각이 옳다고 집착하는 바로 그 태도가 잘못이다. 등 처세에도 유익할 사고 방식을 먼저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故 엘리야후 골드렛 박사는 이를 두고 "과학자가 가져야 할 자세"라고 했는데, 기업이든 가정이든 타협점과 해결책을 찾아야 할 모든 사람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가르침이겠습니다.

3부에서는 "야심찬 목표 나무"가 다뤄지는데, "제약 이론"의 핵심은 본래 여기에 놓여 있습니다. 제약이란 곧 장해물인데("해[害]"를 더 강조하는 단어겠죠), 이 장해가 있음을 괜히 불평하지 말고, 장해물마다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그 작은 목표를 우선 달성한 후 큰 목표를 이루라는 전략입니다. 사실 큰 목표를 한번에 이루기란 오히려 어려운데, 그 목표를 잘게 쪼개서 더 정밀히 접근하라는 듯 장해물이 설정되었으니 이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쁜 조건을 반대로 선용하라는 발상부터가 이미 성취하는 이의 길(吉)한 마인드셋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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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로 본 경영의 착각과 함정들 - 건강한 한국 기업을 위한 피터 드러커의 제언
송경모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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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방대한 저작을 남긴 경영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경영에 "사상"이 개입할 여지나 있을까 의심을 갖는 게 더 흔한 인식일 텐데요. 드러커 박사님은 이런 인식이 오히려 그릇된 속물적 태도임을 분명히 계몽이나 하듯, "혁신"이라든가 "사회적 책임", "동반 성장" 같은 개념을 그 이른 시기부터 명확히 규정하며, 대중과 CEO 모두에게 상생과 건전한 성장에 대한 이상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 타당한 지표를 가르쳐 준 그의 저작이라 해도, 한 권의 분량에 압축된 내용을 독자가 접하거나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의문도 적잖게 들었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음 이 한 권으로 드러커를 마스터했다"라는 생각보다는, "확실히 오늘날에는 드러커(의 가르침)란 이렇게, 혹은 이런 내용들을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오긴 했습니다.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21세기에 재조명되는 드러커의 교훈에선 이런 지점들을 눈여겨 봐야 한다"라든가, "여태 못 읽고 지나친 드러커의 함의 중에 이런 것도 있었구나"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종래 고도성장기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쉬웠고, 마냥 편한 보장이 제공되는 건 아니라도 "평생 직장" 개념이 (일본처럼) 자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은 우리들에게 낯설기만 한 단어이며, 지금도 노동계에선 "모두의 정규직화"라는 의미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기도 합니다. 헌데 그렇게나 예전에, 드러커 박사가 "비정규직의 중요성"을 논한 적이 있었을까요? 서구나 북미에선 그때부터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비중이 컸었기에 (우리 막연한 인식과는 달리) 이 점에 대해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긴 했을 것입니다. 저들의 고용 환경에서 일상화된 패턴 중 하나이기에 이런 한 마디가 나왔던 게 당연하지만, 그런 사정(비정규직의 보편화)이 아직도 낯설고 적대적인 우리로서는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드러커는 "비정규직도 분명 소중한 지적 자본 중 하나"라고 규정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가 당신을 실망시킨다면 과감하게 자유로운 유목민이 되는 길을 택하라."고 권유까지 하시는 저자님이지만, 독자로서 꽤 망설여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4대 보험은 있어야죠.

아무리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주권의 시대라도, 회사에서 민주주의가 절대 보장 안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뿐만 아니라 사장님들은 종종 그 직원들의 "부족한 인성"까지 교정하려 듭니다. 회사는 특히 한국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 모인 파트너쉽이나 2차 집단이라기보다 원칙 없는 학교 같은 느낌도 줍니다(요즘은 학교라고 해도 선생님들 자의가 지배하지는 않죠). 보통 경영 관련 서적에서 가능하면 지배적인 리더십을 따르라고 충고하지 이런 문제적 상황을 지적하는 태도는 보기 힘든데요. 저자께서는 "CEO가 선의의 계몽군주는 아니다.'라며 드러커의 주장을 정면 인용합니다. 사실 이 (드러커의) 한 마디는 올해 초 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 김종인 씨의 전횡을 지적하며 조국 교수가 꺼낸 표현이기도 합니다. "군주는 선의건 악의건 현대 조직에서는 필요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민주화한 조직에서 개인의 창의가 최대한 발현되고, 조직 소기의 목적을 보다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직원의 연수가 아니라 경영자 개발이다" 드러커의 한 마디 중 이것보다 파격적인 언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에 따르자면 소위 "목적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 MbO)"의 관점에서, 당면 과제에 효용을 제공 못 하는 모든 자원은 다 낭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저자께서는 재미있는 비유로, "드러커"라는 이름은 중세 네덜란드어로 인쇄업자라는 뜻인데, 이때만 해도 인쇄업 기능이란 평생 한 번만 배워둬도 그 자손들까지 쓸 수 있는 기능이었습니다. 하지만 드러커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노동자나 경영자라도 지금처럼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휴짓조각으로 급속히 변하는 시대는 겪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러커의 대안은 "지식을 배우지 말고, 배우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드러커는 생전에 일본의 "개선"이라든가, "온 더 잡 트레이닝"에 주목하고 구미의 경영자들에게 적극 도입을 추천했죠. 노동자들, 직원들이야말로 그들 자신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현장에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무엇을 배울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게 경영자가 아니라 노동자, 직원임은 또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들에게 자율권, 참여권을 주고 혁신을 스스로 이뤄나가는 주체로 키우는 기업, 경영자 스스로가 무지를 인정하고 함께 기업을 꾸려 나가는 기업이야말로 이 혁신의 시대에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이겠습니다.

블룸버그에서 혁신 지수 1위로 한국을 올려 놓았다는 뉴스는 저도 몇 달 전 웹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드러커가 파악한 혁신의 개념은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그는 첫째 혁신은 위험하지도 않으며, 둘째 뛰어난 아이디어나 기적적인 행운에 의하지도 않고, 셋째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며, 넷째 내부에서만 일어나지도 않으며 업종의 현황에 반드시 밝아야 할 필요도 없으며, 다섯째 (개인적으로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만) 영리 기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여섯째 공무원이든 학자든 누구라도 일으킬 수 있는 게 혁신이라고 합니다. 혁신은 심지어 어린 청소년의 반짝하는 아이디어에서도 유발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하는군요. 혁신의 이런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혁신이 그저 근로자나 사회 다른 섹터 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의욕을 꺾는 데만 구호처럼 동원된다면 우리 나라는 곧 보잘것없는 변방의 활기 없는 소국으로 전락하리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드러커의 가르침이나 혁신에 대한 이런 통념이, 보다 실질적이고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경영 목표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잘 확인할 수 있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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