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조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8
김소연 지음 / 비룡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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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눈으로 본 20세기 초의 조선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러시아와 조선은 국토의 크기, 인종적 구성, 역사의 궤적 등 모든 면에서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도무지 나란히 선 이웃이 될 수 없는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1860년 열강과 청 제국의 분쟁을 거중조정하고 방대한 영토를 할양받은 후, 우리 조선과 러시아는 두만강 자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접경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와중에서 대원군의 외교정책이 좌절, 이후 병인박해와 병인양요라는 비극을 부르기도 했고요. 인천 개항 후 러시아는 다른 열강들처럼 반도에서 이권 침탈 경쟁에 적극 개입하고, 절영도(현 부산 영도) 조차 등 한반도를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활용하느라 온갖 책동을 부린 바도 있습니다. 소설의 태도와 무관하게, 이 점은 역사적 진실로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소설이 시작하는 지점은 1905년,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가고, 내우외환이라더니 마침 국내에선 "피의 일요일" 사건이 터져 나라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고, 도저히 국가 역량을 전쟁 수행에 기울일 분위기가 못 되던 시국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청년 장교 알렉세이는 극동으로 파견되어, 조선이란 나라의 정세와 환경적 조건을 면밀히 파악하라는 명령을 시달 받습니다.

귀족 출신 자제들이 구성의 주류를 이루던 러시아 장교단이지만, 그 중에는 계몽 의식을 지니고 민중들의 비참한 실상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지닌 부류도 많았습니다. 이 소설 후반에도 나오지만, "황제 폐하가 안 계신 궁정에 무슨 요구 사항이니 뭐니를 가지고 난입하려는, 그 자체가 이미 폭동이다!"라고 외치는 대공 같은 이도 있고, 그에 반대하며 신중한 처사를 유도하려는 알렉세이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

알렉세이의 이런 동정적(compassionate)한 태도는, 도적 무리의 약탈 때문에 기초적인 안보 여건도 누릴 수 없던 당시 국경 부근 거주 조선인들에 대해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지방관이란 자들이 백성의 가장 긴급한 현안에 대해서도 외면, 방관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알렉세이는 윗사람들이 거의 손도 대지 않고 물린 밥상을 두고 "일하는 마부에게 주면 어떨지" 하는 의사 타진을 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자상한 마음씀이 현지 조선측 관리에게 칭찬 받습니다. 보는 독자로서의 우리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생길 뿐이고요.

조선에서 지도층으로 군림하던 양반들의 낙후한 의식에 대한 비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아라사(러시아)도 10년 전 청국처럼 일본에 패배하는 걸 보라고. 속 빈 강정이나 아닐지?" 이렇게 열강 간의 우열을 간사하게 가늠하면서도, 정작 자국의 내실을 다지는 실천적 과업에는 무관심합니다. "강상의 도를 부인한 채 폭동을 일삼는 무리들(동학도 지칭)은 이미 나라의 백성이 아니오!" 외국인인 알렉세이가 더 황당해하는, 소위 지배층이란 이들의 뒤떨어진 봉건 의식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언사입니다.


알렉세이는 "근석"이라는 이름(러시아인에게는 그 발음이 상당히 어려운)을 가진 아이 하나를, 가이드, 하인, 말동무 삼아 일정 중 자신과 일행을 수행하게 합니다. 삼천리 강역 곳곳에서 암담하고 희망 없는 모습을 주로 목도하며, 국경의 한 모피상(작가 모파상이 아닙니다)이 일러준 대로, "무책임하고 게으른 민족"으로서 이 험난한 국제 정세 속에 열강들의 각축에 밀려 그대로 사멸할 것 같은 이 민족의 참상 중에 그나마 이 어린 소년의 총기와 활력을 보고 어렴풋한 희망을 갖습니다.

소설 제목 "굿바이 조선"은 그저 주인공 알렉세이가 제 할 일을 마치고 이땅에 고하는 작별인사만은 아닙니다. 마침내 이 머나먼 땅 조선에도 양심과 역사의식, 불굴의 재생 의지를 놓지 않은 민중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태동하고 있음을 깨달은 알렉세이, 그리고 그의 "벗" 근석(알렉세이는 소설 초두에서, 부관 비빅이 근석을 호되게 구타하려 할 때 엄한 추궁을 하며 제지하죠)이, 같이 "낡은 조선"을 향해 고하는 이별의 외침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조선은, 외세를 몰아내고 봉건 잔재를 일소하여, 정의와 평등이 먼 시골 구석까지 민생을 어루만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들이 보게 될 조선은, 무기력하고 나태와 인습에 젖은 백조의 나라가 아니라, 불의에 단호히 저항하고 자유와 자존을 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산신" 호랑이와도 같은 의병의 나라입니다. "한번 러시아인은 영원한 러시아인"을 되뇌는 비빅처럼, 한번 조선인의 영혼과 정체성을 새긴 겨레는 그 생령을 놓고 결코 이민족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소년 근석의 두 눈빛에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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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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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께 따님이 있어서, 생전에 부친의 많은 기대를 모으고 듬뿍 사랑을 받았다가, 투병 중 별세하셨다는, 소위 "참척"의 아픔을 보셨다는 안타까운 사연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당신의 저작을 통해선 좀처럼 이 말을 잘 안 꺼내시다가, 비교적 최근에 낸 책 중에서 간간히 따님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그 예입니다.

박사님이 워낙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사요 석학이시다 보니, 사실 그 전후 경위에 대해선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으나, 당신의 입으로 직접 그 아픈 마음을 표현하시는 건 극히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이 책이. 온전히 그 화제에만 집중하여 한 권으로 엮여져 나왔네요. 박사님의 책은 어떤 주제와 의도 하에 쓰여진 것이라도, 최소 그 아름다운 문장 하나만으로도 탐독의 가치가 있지만, 박사님의 인간적 면모까지를 존경해 온 독자로선, 따님에 대한 그 간곡한 소회가 담겨 있을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굿나잇 키스"는 다음 날 아침을 기약하는 달콤한 다짐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이에 대한 비통한 고별의 의식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이 책 제목은 그 두 가지 의미 모두를 다 포함하고 있다 여겨집니다. 육신을 가지고 호흡, 생동하던 이승에서의 삶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고했지만, 영혼으로서 한 번 맺어진 인연은 그 매듭을 결코 풀지 않은 채, 구천과 예토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녀 지간의 애틋한 정을 이어갈 테니 말입니다.

선생 연배의 어르신들이 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을 맑은 흙과 상쾌한 공기가 뿜던 그 정기를 흡수하며 시골에서 자란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설사 자신이 도회에서의 세속적 성취, 즉 "출세"에 성공했어도, 자신의 아들딸들에게 결코 도시의 콘크리트가 내뿜는 독기에 그 혼이 압사되지 않길 기원합니다. 선생님 역시, 장항선편 그 낡은 삼등 열차간에서 지극히 서민적인 메뉴인 삶은 계란을 사먹이며, 금지옥엽이신 따님에게 "인생의 본맛"이 무엇인지 프루스트 효과를 통해 가르치려 했습니다.

선생은 결혼을 하신 후에도 문인 특유의 무책임한(?) 삶을 그대로 이어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던 분이, 딸을 슬하에 보고서야 그 고고히 천상을 향하던 눈을 내리고, 땅만 쳐다보며 일상에 집착하는 "속물(본인의 표현)"이 되셨다는군요. 사실 선생은 워낙 젊은 시절부터 문명을 날린 스타였기 때문에, 세들어 살던 시절에도 집주인이 알아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자신을 두고 그는 스스로 메롭스란 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 알듯 박사님의 따님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미국 현지에서 법조인으로 활약하기도 한 분입니다. 박사님이 문화부 (초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 따님은 미국 내 흑인 폭동과 관련, 특정인(들)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현직 관료로서 재외국민의 고충 해결 사무에 잠시 관여하던 부친과 조우하게 됩니다. 이 사건 관련, 박사님은 자세한 사연을 적어 두고 계신데,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참고할 만한 자료도 되겠습니다. 물론 이 대목 회고는 저자 이어령 박사님 입장에서야 돌아가신 따님에 대한 애끊는 부정이 그 저술 동기겠지만서도요.

책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1부가, 이런 식의 절절한 사연의 행렬이라면, 2부는 다소 뜻밖에도 박사님이 직접 지으신 여러 시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박사님 솜씨라 그 완성도야 뭐라 말을 꺼내는 게 무엄할 뿐이고... 3부는 영애 이민아 변호사의 서신, 인터뷰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열림원에서 낸 모든 책이 다 그렇듯 이 책도 디자인과 장정이 참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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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5-07-1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중국의 大전환, 한국의 大기회
전병서 지음 / 참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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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 선생의 책들이 대개 그렇지만, 자세한 논증과 풍부한 근거자료, 도표의 보강 못지 않게, 그 문장이 주는 힘이 실로 강력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통이자, 앞으로 좋든 싫든 중국에 목을 매고 살아야 할 우리들이라며 특유의 비전을 제시하는 경세가로서의 면모도 과시하는 전 소장님은, 연단에서뿐 아니라 지면상으로도, 명강사의 제스처와 아우라를 그대로 뿜어내는 듯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예언자의 잠언을 계시받는 느낌입니다. 그의 문장은 결코 길지 않고, "읽는 분들 시간 없고 주의력 딸리는 것 잘 아니까, 뭘 해야 하는지 결론만 딱딱 짚어 줄게"라고 작심이나 한 것 같습니다. 워낙 깊은 분석, 반추 과정을 밀도 있게 겪은 후 명제화한 결론들이라, 무슨 모세의 십계가 풍기는 양 카리스마가 구절구절 묻어납니다.

이 신간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줄이면 "중국은 앞으로 금융업이 뜨니, 지금 유망주에 돈을 묻어 두라"는 것입니다. 전작에서 그는 "외환 위기를 겪고 지난 10년 동안 동력과 활기를 상실한 한국 경제가 연명할 수 있었던 건, 신흥 공업국으로서의 중국이 힘차게 제조업 엔진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시기 특히 한국의 중간재 섹터, 대표적으로 포스코가 (여전히) 잘나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쉼 없이 질주하며 한국의 중간재 생산을 독려하고 있었던 덕이란 거죠.

그러던 중국이라지만 1) 어느 단계를 지나고서까지 철강, 정유 따위를 인접국 시설에 마냥 기대지는 않을 테고(자체 역량 확보) 2) 이미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수출 대신 자국 시장 내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그들이, 더 이상 한국과 윈-윈 하기보다 자국 실리를 두터이 챙기려 드는 게 또한 당연하다는 겁니다(스테이지 전환).

지금까지 중국이 우리 경제의 성장 지탱에 큰 기여를 해 왔음은,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며 전세계의 진지한 애널리스트들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기대어, 중국은 이번 THAAD 관련 미국과 마찰을 빚을 때, "한국이 경제적 실익을 중국으로부터 취하면서, 이런 사안에 대해 타국 편을 들면 안 된다."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죠. 이만큼 막강한 상수로 한국 경제 함수식에 자리를 잡은 중국이, 그 내부 사정으로 말미암아 정책적으로 다른 스탠스를 취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기민하게 전략을 수정해야 함은 당연하다는 게 저자의 기조입니다.

앞으로 제철 제강 정유 등이, 중국 고도 성장기처럼 혜택을 보지 못하는 건 이로서 자명합니다. 지금 중국이 집중하는 건 소위 후강통으로 상징되는 금융 섹터의 육성입니다. 이 분야는 우리가, 아직도 그들이 미처 따라올 수 없는 메리트, 노하우를 많이 축적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그들에게 선도적 입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게 바른 선택이라는 거죠.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포철, 삼전 주식 사서 묻어둔 이들이 지금 큰 이익을 보았듯, 고성장이 명약관화한 종목, 기업을 골라 베팅하면, 과거에 채 챙기지 못한 기회를 다시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충언입니다.

지난 4일 동안, 지구 반대편 그리스 위기 국면과 겹쳐, 버블 붕괴로 의심되는 중국발 증시 폭락 사태가 이어져, 아마 이 말대로 중국 주식에 돈 좀 들인 분들(많이 없겠지만)은 당장 큰 피해를 보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 상당수는 아직 장래가 창창하며, 중국 증시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 앞으로 국가 자체가 체제 위기를 맞으면 모를까 현재로선 반등의 요인이 몇 배는 더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황의 분석 중요성과 더불어, 전 소장은 "역대 G2중 중국처럼 G1을 바짝 추격하며, 고도 성장을 길게, 현재진행형으로 이어간  나라가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주위 분위기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분명한 원칙을 유지하며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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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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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데미도프만 극중에서 고생하는 게 아니라, 그의 (말도 안 될 만큼 다사다난한) 동선을 따라가는  우리 독자들도, 걱정, 안도, 불안, 분노, 좌절, 그리고 감동이 몰아닥치는 마음을 간수하느라 거의 초주검이 될 지경입니다. 희망고문을 당하는 건 소비에트 철권 체제로 송환된 레오가 아니라, 과연 이대로 철저한 부조리, 악덕, 기만, 음모가 승리한 채 극을 마무리짓고 말 것인지 마지막 한 페이지까지 핏발 선 눈을 추스려 가며 대치하는 독자입니다.

이 장편은 스릴러로서, 그리고 미스테리로서도 완결성을 갖추었지만 (도중에 이야기가 너무 스케일을 넓혀 나간다고 주의를 흩뜨리지 마십시오. 작가는 이렇게 대담한 서사를 펴 나가면서도 벌여 놓은 가닥은 모두 수습하는 매섭고 무서운 솜씨를 지녔습니다), 그 담은 테마는 마치 앙드레 말로 作  <인간 조건>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묵직하고 순도 높은 성격입니다. 멋진 장르 문학인데, 그리 편하게 장르물 범주에 넣고 정리하지 못 할, 아찔하고 심오한 메시지가  책을 덮은 후에도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작품의 무대는 이제 러시아를 넘어, 미국, 아프간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소설의 시작이 레오가 라이사를 처음 만난 즈음, 그러니 그가 전쟁 영웅으로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소설의 마지막은..... 우리가 사는 지금과 아주 멀리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이렇게만), 그러니, 이 <에이전트 6>는 데미도프 트릴러지의 완결편이자, 동시에 시, 공 양면에서 현대사 상당 부분을 커버하는 총괄 정리편이기도 합니다. 아마, <차일드 44>를 제아무리 인상적으로 읽은 독자라도, 작가가 이야기를 이렇게 웅대한 규모로 키웠다가 장엄하게 마무리지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이 소설 전반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제시 오스틴이라는 캐릭터는, 아마도 실존 인물 폴 롭슨을 모델로 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1970년대에 (거의) 천수를 다 누리고 타계했으며, 소설에서 묘사되는 그런 비극(이런 게 실제로 벌어질 순 없죠..)에 연루되진 않았습니다. 비천한 가정에서 성장한 인물도 아니고,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로스쿨 졸업으로 학위를 끝낸, 건장한 체격을 한 풋볼 선수 경력에, 헐리웃 영화 다수 출연 경험까지 거친, 두루두루 축복 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상당 부분을 흑인 민권 운동에 헌신하고, 가수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으며, 자신과 똑 같은 열혈 원칙주의자 타입 아내를 두었고, 말년이 가난했으며 정보 기관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점, 그리고 러시아를 몸소 방문한 사실(부부 동반이라는 데서 차이가 납니다만) 등은 이 소설 캐릭터와 매우 닮았습니다. 처음에 조금 나오다 말 줄 알았는데, 이건 웬걸 이 사람을 한 축으로 삼아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이 소설의 중핵을 이루는 미스테리의 발단이 됩니다.

미국에서의 참변이 봉합된 후, 진실은 유야무야되고 데미도프의 인생은 엉망이 됩니다. <시크릿 스피치>를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그는 이제 무기력한 중노년 남자로서 어느 한지의 공장장 노릇으로 소일하는 신분이 된 반면, 아내 라이사는 학교 교장으로 승진하여 출세 가도를 달리는, 뭔가 서로 뒤바뀐 형국이 되었더랬는데..... 이제 레오는 그 최소한의 안식도 빼앗긴 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 거의 자멸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당국은 그를 체포한 후, 마지막으로 회생, 회개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이상하게도 저는, 이게 관대한 조치처럼 보였는데, 그 느낌이 틀린 건 아니더군요. 나중에 이유가 나옵니다), 1980년대 가망 없는 소련의 도박이었던 아프간 침공의 현장으로 보냅니다. "그들은 도로를 점령하지만, 우리(무자헤딘)는 나머지 모두를 다 가진다." 어째 이로부터 반 세기 전 있은 중일전쟁 당시 어느 진영의 모토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레오가 발 디디는 곳은, 도무지 사람이 사람의 참 모습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데가 없습니다. 하나같이 남편이 아내를 고발하고, 아비가 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린치의 대상이 되게 하고, 정보 기관이 무고한 국민에게 누명을 씌워 불명예, 치욕의 극한에서 죽게 하고,.... 2부까지 읽어 온 독자들은 이게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정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는 대서양 저 건너편의 사정도 본질적으론 다를 바 없었으며, 오로지 평등과 자유만을 신봉한다는 검은 투사 역시, 결정적 순간에는 자기가 믿고 싶은 바만을 믿기로 결심한다는 걸, 레오는 쓰디쓴 대가를 치르고 깨달으며, 이를 지켜 보는 우리들도 같은 교훈을 얻습니다.

이 소설 전체를 꿰뚫는 키워드는 "일기장"입니다. 개인의 가장 내밀한 고백을 담은 기록이 그 비밀 보전이란 소명을 못 지킬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레오는 또 한 번(사실은 더 앞에 벌어졌지만) 눈 앞에서 끔찍한 경험을 하고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엔, 의붓딸 엘레나(1, 2부에 나온 그 아이입니다)의 일기장을 제때 훔쳐 보지 않은 과실(!)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운명에 처합니다(그는 스스로 이렇게 정리하고 있지만, 어차피 결과가 크게 달랐을까, 개인이 어떻게 정부와 대적하겠는가 하는 게 독자로서 제 생각이었고요).

이 결말을 두고 과연 행복한 엔딩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더버빌가의 테스처럼 빈사지경에서야 간신히 맞는 잠시간의 평안에 우리는 더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사악한 거대 권력(들)도, 레오의 필사적인 인간성 회복과 구원을 향한 몸부림(사적 원한이나 요구 때문이 아닌) 앞에선 잠시 자제하는 분별력을 보이더란 거죠. 굵직굵직한 현대 국제정치사 주요 국면 배후 곳곳에 "그"가 있었더라.... 물론 사정을 알면 웃음은커녕 숙연함에 고개를 못 들 느낌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진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가증스러운 위선의 탈을 쓰고 있을지, 새삼 전울하게도 됩니다. 무엇보다, 과연 우리는 생의 고비마다 맞는 결단과 선택의 순간에서, 얼마나 사람답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길을 고르는지, 진정 발가벗은 나의 진짜 내면과 맞대면하는, 깊은 성찰에 잠기게 해 준 독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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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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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누미디아 왕국에서 포로로 끌려 온 섭정왕 유구르타가 말하는 내용 중 이런 게 있습니다. "대체 왜, 로마인들은 저처럼 강한가?"

 

누군가의 지속적인 보호 하에 놓이는 신세란, 따지고 보면 "노예 상태"를 바꾸어 부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지중해 건너 누미디아는 로마의 피보호국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내정을 스스로 살피지 못하며, 로마의 정치적, 군사적 간섭을 받는 채로, 자신들의 왕을 세우고 내리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누미디아는 약하고, 로마는 강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대를 이어 명예로운 귀족 가문의 지위를 유지 못 한 시민은, 자신의 대에 설사 큰 업적을 쌓았다 해도, 다른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 했습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 장군은 특히 군사 부문에서 남다른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누대의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정관 등 고위 관직에 당선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에게는, 특정 명망가의 피보호민 출신이라는 누명마저 따라다니는 형편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명백한 독립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구르타의 누미디아는 위신에 크게 상처를 입은 채 섭정이 적국에 볼모로 잡혀 와야 했습니다. 이제 몇 년 후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격에 걸맞은 직책을 따 내지 못한 마리우스는, 이름 없는 퇴물로 원로원 말석이나 지키다 한 줌 재로 화할 운명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유구르타와 마리우스는 공교롭게도 젊은 시절 친한 교분을 쌓은 바 있습니다. 두 청년이 가지지 못한 바를 모두 지니고 있었고, 대신 두 청년이 넉넉히 향유한 바를 전혀 지니지 못했던 "똥돼지" 메텔루스 카이길리우스 역시, 이 두 청년과 같은 또래였죠. 두 청년에게 오물 범벅인 돼지우리에 처박히는 모욕적 경험을 한 후, 이 명문가 자제는 이후 수십 년이 이어질 큰 원한을 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앞으로 자기 재능과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일일이 장벽에 가로막히는 건, 메텔루스가 실질적으로 훼방을 놓은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십 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이 풀리지 않은 이유를 잘 압니다. 특정 개인과의 악연이 그 원인이 아니라, 로마라는 사회 체제, 혹은 국가 단위가, 안에서, 혹은 밖에서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그들의 그런 불운이 초래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제거되어도 또 하나의 실력자가 출현, 적의 도전을 막아내는 로마 공화정의 시스템을 유구르타 같은 전제 왕정의 총아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는 한번 군주가 무너지면 나라 자체의 운명이 끝이었기 때문이죠. 왕을 제외한 나머지 신민 모두가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노예처럼 굴다 일생을 마치는 체제 바로 그 모순이, 자신의 나라가 약하고 적국이 강한 비결이었음을, 어쩌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마리우스는, 가문의 후광, 그리고 선명한 로마인의 혈통 외, 모든 것을 소유한 멋진 남자였음에도 불구, 바로 그 결격 사유 때문에 일인자 자리에 오르지 못한 채 전성기를 의미 없이 보내는, 참으로 처량한 처지입니다. 그 역시, "강하고 효율적인 로마 공화정"의 탄탄한 저력 때문에, 개인의 야망을 실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정을 다 아는 처지의 그가, 공화정을 전복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반역이나 배덕은, 마리우스 같은 인격자에게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 치욕이기 때문이죠.

 

앙앙불락하는 두 남자 외에, 술라라는 귀족 청년, 흠잡을 데 없는 귀족 혈통에 힙입어 마치 남신으로 착각할 만한 완벽한 외모(마리우스의 말입니다)를 지닌 그는, 이 둘보다는 많이 나이가 어립니다. 이 사람은 능력과 가문의 후광은 지녔으나, 경제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처럼, 이 소설의 초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세 남자는, 각각 무엇인가 한 요소가 부족하여 웅비를 못하는 모습으로, 작가는 파악하여 무대에 캐릭터로서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 모두가 잘 알듯, 로마 공화정 하면 두 말이 필요 없는 그 대표적 아이콘이,  바로 줄리어스 시저, 혹은 라틴어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란 이름을 지닌 대 영웅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아는 그 카이사르의 할아버지가, 마리우스, 술라라는 양대 거인의 시대에 함께 산, 중요 정치인으로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작가의 독단이나 상상만은 아닌 것이, 실제 역사상 이 老 카이사르는, 마리우스, 술라에게 각각 자신의 두 딸을 주어, 사위로 맞이하고 그들의 저력을 자신의 가문 자산 일부로 삼은 인물입니다. 이런 분명한 실제 행적만으로도,  앞날을 멀리 내다본 통찰력의 소유자로 평가될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우스는 큰 부호에 군사적 실력까지 겸비한 인물이었으나 나이가 많고 가격(家格)이 너무 떨어진다는 흠을, 술라는 나이와 외모, 가문의 품격 모두 적합하나 개인적 평판이 나쁘고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흠을, 각각 가졌습니다. 그저그런 속물 귀족이었다면 그저 세평이 편히 용납하는 바를 좇아 살고, 괜한 모험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텝니다.

 

그러나 카이사르 그는 예사 귀족이 아닌, 대(大) 파트리키의 후손이고 일원이었습니다. 현재 가세가 빈한할 뿐, 만약 다소의 재력이 갖춰져 중앙 정계로 들어서면, 로마의 모든 세력가와 귀족들은 그의 외모 자체가 바로 증명하는, 베누스 신의 직계로까지 이어지는 그의 혈통과 존엄에 대해 곧바로 무릎을 꿇고 말 것입니다. 최소한 로마는 이런 데에 아주 약한 면을 가졌으며, 바로 이런 관습이  반대편에선 저 마리우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거죠.

 

카이사르의 큰딸 율리아는 마리우스를 두고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기까지 한 그분은, 아빠와 너무도 다르면서도 또한 닮은 분이에요."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이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등장인물들도 알고 우리 독자들도 압니다. 율리아의 마음, 진정을 저보다 더 잘 표현한 말도 없다는 걸. 그녀는 같이 즐길 남자보다, 진심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배필로 바라고 있었다는 걸.

 

이 결혼은 누가 봐도 정략결혼이며, 거의 사업상 거래이기까지 합니다. 이상한 건, 그토록 명예와 염치를 중시하는 카이사르 노인이, 태연하게 마리우스 앞에서 금전적 조건을 흥정하듯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마리우스는? 얼핏 들어 큰 모욕으로 여겨질 수 있는, 노인 측의 노골적 흥정에, 처음엔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곧 상대의 진의와 인격 깊이를 가늠하고선, 마치 이런 제의를 기다렸다는 듯 부대 조건을 달거나 수정하지 않고 모든 사항을 응낙합니다. 이 와중에도 "어린 아가씨가 날 싫어한다면? 다른 젊은 연인을 이미 두고 있다면?" 같은 걱정을 품고, 그 경우 어떻게 해서 부녀가 상처 받지 않게 이 혼담을 무마할지 요량부터 하는, 참으로 속 깊은 사내입니다. 율리아의 말을 조금  패러디하면, "가장 전형적, 노골적 정략 결혼인데. 또 전혀 정략결혼이 아닌 결혼"이라고나 하겠습니다.

 

로마 공화정이 얼마나 튼실한 체제였고, 그 성취한 물질 정신 문명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으면, 이런 고아한 인물들이 대거 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메텔루스 똥돼지는 어떻습니까? 이 자야말로, 공화정의 모순과 부패, 속물성  자가 치유 능력 결여를 한 몸으로 대변하는 듯 질이 나쁜 인간입니다. 술라? 곧 나오지만 그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돈 빼고 모든 걸 다 가진 내가, 돈 때문에 주저앉는데서야 말이 되는가. 귀족의 자부심을 야수와 같은 생존욕구, 근성으로 치환시킨 그는, 이제 한 인간이 어디까지 냉혹해질 수 있는지 그 가장 나쁜 예를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정말 기대되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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