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딸 - 가깝고도 먼 사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심리학
이우경 지음 / 휴(休)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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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그러더군요. "아버지도 아니고 '딸'은 더더욱 아니면서 왜 봐?" 그런데, 언젠가는 누군가의 귀한 따님을 반려로 맞을 테고, 혹시 어떤 딸의 아버지가 될 지도 모르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역시 제게 해당 사항이 있는 책입니다. 다 읽고 보니 정말 좋은 책이었고, 설사 남성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산다 해도(따라서 누군가에게서 딸을 볼 일도 없다 해도), 사회 생활을 하며 여러 여성들과 부대끼고 소통하는 한, 이런 책은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책들을 보면 권위자, 사회 저명 인사들의 추천사가 책 표지 혹은 권두에 길게 적혀 있기도 합니다. 이 중 어떤 경우는 신뢰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건 그냥 안면 봐서, 혹은 인맥의 힘으로 확보한 공치사나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 정신과 전문의들 중 대중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인지도를 지니신다 할 이시형 박사님의 추천사가 나와 있는데요. 분량이 길기도 하거니와 정말 글쓴 분의 진정성이 문장마다 그대로 묻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읽고 나서 머리가 꽉 차는 느낌이 들고, 내가 개인적으로 겪어 온 여성들의 이러이러한 행동 패턴이나 기질이 이런 이유에서 연유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파노라마처럼 지면 위에 떠오르는 신기한 체험도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딸이라는 인격체에게 그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치는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그럼 딸의 모든 영혼, 성격적 특질은 그저 아버지라는 거대 변수 하나가 좌우한다는 뜻인가?" 같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위력은, 그것대로 그냥 인정하는 게 정직한 독자의 자세라고 결국 정리하게 되었구요.

"아버지의 딸"이란 어구는, 심리학 전문용어입니다. "아버지에게서 영혼, 성격, 기질적 특징, 혹은 정신적 결함 요소를 뚜렷하게 받은 여성"이란 의미 정도입니다. 딸 아니라 아들 역시, 부모의 성격적 영향에서 운명적으로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의 경험, 혹은 주위 지인들의 예를 봐도, 아들의 경우 그 부모님의 유전적 인자, 혹은 부모님이 베푼 양육 환경과는 거의 무관하게, 자신이 독립적으로 겪은 경험 요소(학교, 군대, 직장, 혹은 우연히 어울리게 된 친구들 등)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고, 자신만의 길을 신나게(혹은 비참하게) 걷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아들, 혹은 어머니의 아들(후자의 경우 마마보이라고 하죠)"이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성인들이 더 많습니다. 어려서 환경이 불우했다고 해도 멀쩡하게 사업 크게 벌이며 잘사는 녀석도 있고, 반대로 그렇게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랐어도 성격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본전도 못 챙기는 인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딸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의 많은 딸들은  성장 환경의 압도적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분이 참 많이 보입니다. 이런 분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 아닌, "누구의 아내" 나아가 "누구의 엄마"로 성장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 그늘, 족쇄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거죠. 물론 악영향과 성격 장애가 지나칠 경우, 잘 맞는 반려를 만나기도 어렵고, 결혼 생활을 원만히 영위하는 첫걸음을 떼기가 일단 힘듭니다. 딸의  인생 각 단계에서 아버지가 끼치는 영향은 그만큼이나 큰데, 이 이유로는 저자가 정리, 제시하는 유력한 가설이 있습니다.

융의 비전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생물학적 성(性)에 관계 없이, 아미누스, 아니마, 즉 남성성, 여성성이, 그 정신의 구조를 내부 공존 양상으로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남자에게도 여성성이 있고, 반대로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아직도 남성 위주의 질서가 지배하는 상황이고, "딸"에게 있어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는 남성은 바로 아버지이며, 처음 만나는 남성상에 따라 딸의 정신에 지리한 남성성이 형성되기 시작되며, 이 남성성의 성숙도에 따라 그 딸의 향후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원활히 형성될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가설은 이 책 전체의 전제로 기능하기 때문에, 책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언제나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이 책 중에선, 앞부분에선 이를 암묵적으로만 전제하며 내용이 전개되다, 명료한 명제 형식으로는 중반 쯤에 처음 소개됩니다). 책의각 챕터가 자체 완결적으로 잘 짜여져 있고, 가명으로 보호된 실제 인물들이 사례가 흥미롭기 때문에, 독자가 특별히 학구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전혀 없이 잘 읽힙니다만, 내용 전체를 유기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 전제를 유념해야겠고요.

아버지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 부정 양면으로 작용합니다. 긍정적 측면, 즉 아버지가 최고의 롤모델로 기능하여, 향후 그 딸이 아무 하자 없는 멋지고 유능한 사회인으로 활약하게 되는 케이스는, 이 책에서 별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의 사정이야 딸의 양육에 있어 부모들이 품는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이니, 주로 "병리적 문제"를 다루는 이 책에서 비중이 높을 이유는 없겠죠(다만 말 그대로 한국형 알파 걸, 즉 명문대 졸업, 고등고시 패스, 공기업 중역 등 실로 화려한 커리어 우먼의 행보를 보여 온 어느 여성이, 우등생 강박, 해피 페이스 신드롬 때문에,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전화한 사례는 하나 나옵니다). 지난 세대 여성들의 경우, 지나치게 엄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아들에 비해 딸을 차별하거나, 같은 딸을 놓고도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홀대하거나 하던 아버지가, 이후 딸의 인생 내내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일차 원흉으로 종종 작용하곤 합니다.

책임감이 없이 몽상에만 잠기는 스타일로, 가장으로서의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는 (발달장애형) 아버지를 둔 딸은, 구타의 습벽이 있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딸 못지 않게, 이후 남성 일반을 적대하는 식으로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장벽을 치는 부정적 행보를 걸어가게 됩니다. 구세대에는 이런 유형이, 특히 한국에서라면 제법 높은 빈도로 등장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딸도, 성장 기간 동안 부재(不在)한 아버지에 대해,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투사하여, 이후 "이런 아버지에 못 미치는 남자와는 관계를 이룰 수 없다"는 퇴행에서 벗어날 줄 모르면서, 정상적으로 이성과 소통을 진행하지 못합니다. 전자의 경우 어머니에 대해 과도한 충성, 집착을 보이다가, 기대 하나가 틀어지면 배신감 때문에 관계가 악화되는, 극과 극의 행보를 걷기 쉽고, 후자의 경우 어머니와는 피상적인 소통, 이기적인 일방 이익 추구 쪽으로 흐르는 게 보통이죠.

반면, 요즘처럼 "프렌디형 아빠", 혹은 "딸바보형 아빠"가 미디어를 통해 보편적 아버지상으로 등장하는 요즘도, 사랑만 듬뿍 받고 자라는 "신세대 딸"들에게 적잖은 문제를 남길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른바 "파파걸"의 문제, 즉 언제까지나 아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질 거부하는, 영원한 딸로만 머무려는 여성도, 결국 사회로 원활히 편입되는 데에는 큰 한계를 겪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특히 폭군형, 독재자형 못지 않게,  이런 한없이 좋은 아빠 역시, 딸이 성숙한 여인으로 자라는 데에 장애 요소가 될 수 있음에 주목합니다.

딸에게 익애를 퍼붓는 아빠 중에는 은근 딸에게 과도한 의존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도 저자는 주목합니다. 저자는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인용하며, "딸을 보살피며 동시에 딸에게 보살핌을 받는 아빠"는, "자신을 스스로 잘 돌보면서, 딸도 스스로를 잘 챙기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키우는 아빠"보다 훨씬 못하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대목에서 인용하는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는데, 저자 역시 "이런 말을 하는 딸은 대단히 잔인하게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현실적이고 현명한 딸"이라고 정리합니다. 사랑을 주는 건 물론 중요하나, 딸은 언젠가 자신의 곁을 떠나 다른 짝에게 맺어져야 할 "여성"으로 길러져야 함을, 아버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렇게 감상적이고 의존적인 아빠 밑에서, 어떻게 저런 단호하고 지혜로운 딸이 길러졌는지 의문이 들었는데(어찌 보면 책의 취지와는 반대니까요),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책이 쓰여진 의도도, "지나간 아픈 과거를 되씹기보다, 내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분연히, 독기를 품고 일어서는 편이 낫다"라는 교훈을, 모든 불행한 "아버지의 딸"들에게 가르쳐 주려는 데 있으니 말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코델리아, 그리고 근원을 같이하는 동양의 설화 역시, 아빠가 과도한 기대를 품고 여성상을 투사하는 딸은, 그 아버지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딸도 문제지만, 반대로 아버지에게 과도한 죄의식을 품고 "내가 아빠를 떠나면 누가 보살펴 드릴까?" 같은 강박에서 평생 못 헤어나는 딸도 문제입니다. 문제 있는 딸을 길러내는 건, 그 아버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책은 결국, "무엇을 받고 태어났는가 보다, (변변치 못한 것이라도) 그 받은 것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인용구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아버지 때문에 불행한 인생을 산 딸들이 사례로 많이 나오고, 반대로 활달하고 진취적인 아버지 덕분에 세상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은(물론 정치적으로 극심한 반발도 산) 마거릿 대처의 예도 들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은 여성 독자들이, 나의 경우는 어느 사례에 해당할지 파악하여,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에 큰 지표로 삼는 독후 활동입니다. 책은 심리학 용어를 일일이 원어(영어)로 병기하고 있어서, 개념을 정확히 (타 출처로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독자가 참조하기 좋게 편집하고 있습니다(저는 이 점이 무엇보다 편하게 다가오더군요). 저자 역시, "어린 시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계모의 등장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키 크고 서구적인 용모를 한, 이른나이에 가족의 곁을 떠난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남겼는지, 심지어 전공인 심리학을 택하게 된 것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싶어서였다는 고백도 적어 놓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솔직한 공감이야말로, 저ㅏ신이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게 스스로 돕는 태도겠습니다.

혹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룬, 후속작도 저술할 계획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어머니에게 방치되었다고 매사에 푸념하면서도, 자신이 자녀를 낳으면 자녀 교육에 정성을 쏟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일종의 복수?), 발달장애형 퇴행 심리에 빠진 노처녀의 사례라든가, 우리 주변에는 어머니와의 소통이 원만치 못해 힘들어하는 딸들도 많습니다. 위에 인용한 마거릿 대처 역시, 결국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실패한 딸입니다(이건 이 책에 잘 나오죠). p119: 5에 perentification → parentification 오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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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텔분양 투자로 평생 월세를 받는다 - 25살, 내가 명동호텔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
백승우 지음 / 오투오(O2O)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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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 스물 다섯에 명동 한복판 입지의 호텔 지분권자가 되어, 월 수백대의 수익을 챙긴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청년입니다. 금액이 설사 수십만에 그친다 해도, 자신이 투자에 들인 노력을 보상하고 남는 수준이라면 그게 어디겠습니까. 이 수익은 본업도 아니고 부수입인데 말입니다. 더군다나 또래들이 9~10시간 뼈빠지게 일해서 버는 돈이 월 100이 채 안 되기도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요.

저자의 "스펙"을 보면 맨 아랫줄에 "삼성전기 입사 예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교는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군복무는 이 책에도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만, 학군 장교 복무로 해결한 분이네요. 저자의 장점이랄까, 자계서 집필자로서 확실한 메리트를 들자면, 무엇으로부터든, 무슨 경험으로부터든, 무엇이라도 배우고 나온다는 그 성실성이라고,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로서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는 장교로서 사실 고달프거나 따분했을 수도 있을 복무 시간을, 그 업무로부터 배워 나올 수 있는 모든 걸 챙기면서 귀한 경험으로 채운 분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학군단 상급자들에 의한 언급이 곳곳에 나오는데, 훌륭한 분과의 만남은 결코 그 인연을 소홀히하지 않고, 이후의 인맥으로 다져 두는 꼼꼼한 습관이 몸에 밴 분입니다. 성공하려면 정말 이런 점이 체질로 스며들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다지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아 이런 분이 호텔 투자로 성공했으니 나도, 우리들도 다 같이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런 기회가 누구한테나 올지도 극히 의문이거니와, 어쩌면 요 사이클을 지나고 난 후 명동호텔 경기는 식을지도 모릅니다. 꼭 메르스 한파와 요즘 중국에 일고 있는 이상열기의 혐한 바람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떤 섹터가 일시 성황을 이루었다 해도, 그 활황이 금세 잦아드는 건 특히 한국처럼 성장 동력 자체가 꺼져 있는 나라에선 흔한 움직임이기 때문이죠.

이 책에서 배워야 할 내용은, "이런 투자처가 좋다"는 정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근거 없는 소문과 이미 피크를 지난 정보에 속지 말고, 냉정히 그 실속을 따져서 판단하고, 판단이 섰으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그 교훈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주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말은 쉬워도 책에 적어 놓은 그 하나하나를 실제로 해 보기가, 엄청 어렵지 않았을까 짐작되었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부동산 투기, 펀드 탐색에 일가견이 있어서 그 에서 보고 배운 가락이 있다면, 커서 자신도 몸에 밴 대로 따라하는 게 그리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 저자는 그저 평범한 중산층 자제입니다(제가 책 곳곳에서 느끼기로는, 좁은 의미의 "중산층"이라기보다 그저 중류층 출신이 아닐까 정도). 그런 분이, 어디서 "호텔 투자"가 유망하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한들, 거기다가 (애써 구한) 목돈을 심어 둘 생각이 쉽게 들겠습니까? 내 주위에서 못 들어본 정보, 지식은, 따져 볼 것도 없이 틀렸다는 게 보통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나중에서야 "아 그 사람 대박 쳤다더라" 같은 소문이 나면, 그제서야 이제 진리라는 듯 너도나도 묻지마로 줄을 섭니다. 투자의 핵심은, 정확한 정보로 냉철한 계산 하에 이익이라는 판단이 섰으면, 누가 주변에서 뭐라 하든 과감한 결행에 주저가 없는 태도입니다. 이 책 저자분은, 책에서 느껴지는 말투로 봐선 대단히 신중한 타입 같은데, 주위에서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호텔 투자로 이처럼 재미를 보고 있다니 참 대단합니다.

스펙을 보면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입니다. 적당히 좋은 학벌이고, 이렇게 성실한 분이 10대 시절이라고 놀았을 리 없으니 갖출 만한 스펙이죠. 그 밑에 보면(이 서평 저 위에 적었듯) 삼성전기 입사 예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분 아버지 뻘 되는 세대 상당수와는 정반대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삼성전기 퇴사 예정. 퇴직금으로 투자처 여러 군데 물색 중. 마땅한 곳 없어 치킨집 개업 예정" 그런데 이분 말이, "진짜 스펙은 (요즘 세상이라면) 통장 스펙이다"라고 합니다. 대학을 어디 나왔든, 집안이 어디든 간에,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잔고가 없으면 그게 바로 하층민이라는 냉혹한 평가입니다. 이 말은 어설픈 우월의식이 아니라, 실속을 챙기며 사는 빠릿빠릿한 인생이 아니면, 남은 인생 전체가 좌절과 불만으로 물들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분이 투자처를 찾아볼 때, 처음에는 상가, 오피스텔 쪽으로 생각했답니다. 누구나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보통이고, 늦게 잡아도 6, 7년은 된 트렌드입니다. 그런데 이분 생각이, 투자 대상에 일단 공실률이 높으면 안 된다는 거였는데 뭐 당연하죠. 생돈을 박아 넣고 손가락만 빠는 그것처럼 조바심, 자괴감 느껴지는 시간이 있을까요. 주상복합 투자는 이래서 일단 대세를 이미 지난 겁니다. 그러니 투자자를 못 구해 다들 안달이죠. 오피스텔은 일단 세입자가 고소득자라는 안정감이 있으나,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5년이면 시설상 외관상 매력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라고 (그 스스로) 판단했다고 합니다(이렇게 되면 사실상 "레몬"이 되어, 괜찮은 고객이 외면합니다). 제가 책 읽으면서 감탄한 게, 이분은 이처럼 "카더라"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만의 정확한 기준을 세워서 그에 의거한 후회없는 결단을 내린다는 것. 이게 참 쉽지 않거든요.

이분은 역시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한 분이라서인지, 용어를 정확히 구분해서 쓰는 게 돋보였습니다. 자신은 명도 하고 다닐 자신이 없어서 (오피스텔 투자를) 포기했다는데, 이분 말이 "명도는 법률상 용어는 아니며, 정식으로는 인도라고 할 뿐이다."라네요. 정확합니다. 명도는 우리 착각과는 달리, 실무나 시장에서 쓰는 말에 불과하죠. 그런데, 판례를 통해 확립된 것도 있어서, 판결문에도 "가옥은 명도, 토지는 인도"라고 이미 사용례가 정해져 있습니다. 현직 판사님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이므로 믿어도 됩니다. 여튼 이렇게, (순전히 투자 관점에선) 사소한 사항도, 법대 출신 아닌 경제학과 출신이 이렇게 정확히 (일단은) 가리고 드는 태도가 참 돋보였습니다. 이런 사소한 데서 이렇게 야무지게 하는 분이, 자기 큰 돈이 걸린 투자에서는 얼마나 철저하게 처리하겠습니까.

이분이 목돈 손에 쥐고 뭘 할까 고민할 때, "선배" 한 사람이 찾아와 다단계를 권하더랍니다. 다단계라고 하면 아주 바보 아닌 이상 누가 그런 걸 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제 주위에도 (이 저자분보다 더 상위권대 출신에)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이 하는 분 있었습니다. 아직 높은 순번이라면서, 이런이런 메리트가 있으니 하자는 말에, 일단 수긍이 가더랍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 보니, 이미 그 업체는 탑 랭크가 다 찼다면서(책에 이런 말은 없지만 제 해석으로) 당장 그만두라고 단칼에 자르더라네요. 여기서 이 저자가 하는 말이 걸작인데, "여튼 투자는 인맥으로 한다. 그 선배도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걸 권했을 것이다."에요. 저 같으면 누가 다단계를 권한다. 이러면 선배고 뭐고 없습니다. 나한테 사기치려는 인간한테, 싸움이 아니라, 행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살벌한 응징을 했을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 이분 참 착한 분인가 보다 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저자가 하는 말은, 투자는 여튼 인맥에 의존 안 할 수 없다"인데, 저는 읽으면서 좀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선 저자 본인은 객관적 정보를 참 중시하는 편이고, 이 이야기도 결국은 "좋은 인맥"이 나쁜 인맥으로부터 자신을 세이브했다는 결론으로 받아들여도 되거든요.

왜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 시장이 커지는가에 대해 저자는 자기 나름대로 쉽고 시원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보긴 이 대목 한정으로 선대인 소장 책보다 나은 구석도 있더군요. 하지만 여러 리스크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이곳이 퓨처라고 장담하긴 힘들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근래 화제가 되었던 <부의 추월 차선>에서 여러 대목을 인용하며, 결국 남들 잘 눈 안 돌리는 블루 오션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여유 있는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실속과 알짜 교훈으로 가득찬 멋진 책이었고, 호텔 투자에 관심 없는 분들도 읽어 볼 만한 재테크 책입니다. 이런 책까지 써서, 소의 잡뼈 하나까지 알뜰하게 이용한다는 자세로, 자신이 일단 투자처 물색에 들인 비용은 그 본전까지 뽑는다는 듯, 살뜰하게 출판 수익까지 올리니, 얼마나 이분이 야무진 분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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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언제나 남쪽이었다
이종화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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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럽게 날마다 철마다 방향을 바꾸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그를 맞는 사람의 마음이 변덕스러운 것일 뿐, 바람은 일관되이 남으로 불고 있었다..... 시인의 깊은 시심을 정확히 알 요량은 없으나, 이 시집을 다 읽고 난 독자의 소회는 그런 쪽으로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시집은 총 4부로 짜여져 있는데, 시상이 아닌 시적 화자의 어조에서 제가 주관적으로 받은 인상만으로, 좀 억지스럽게 끼워 맞추자면 춘-하-추-동 의 구성처럼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각 부의 초반에는, 반드시 "겨울"을 언급하는 시 한 편이 꼭 낍니다. 이울어가는 인생의 열기 그 자취를 석양의 낙조를 받아 조용히 바라보며, 지난 봄, 지난 여름, 그리고 멀지 않은 기억의 막 지난 가을을 돌이키며, 생의 고비에서 불었던 바람은 과연 어떤 지향을 품고 있었는지, 시인은 차분히 반추하고 환기합니다.

제목의 연원이 된 시는 책 맨처음에 실린 <남풍>입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나는 곳)도, (무상히 바뀌는 얼굴,) 얼굴이 (결국은) 향하던 곳도 남쪽이었다." 북반구에 사는 우리들은 언제나, 북풍의 사나운 손매가 우리 살결을 엘 재간이 없는 훈훈한 낙원을 "남쪽"과 동일시합니다. 임금의 지위를 "남면하는 자리"라고 대유하는 관습에서도 그러나 알 수 있듯, 일상의 팍팍함에 치어 살아가는 우리네들은, 한가로이, 사치스럽게, 남쪽만 해바라기하는 자세를 그나마 금기시하며, 남방을 희구하는 마음가짐에서 은연 죄의식마저 느낍니다(혹은 그렇게 사회화됩니다). 알고 보면 인생의 정직한 눈뜸이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는 순간, 물리학의 이치가 그러하듯 내가 서 있는 이 지점이 우주의 중심이요, 적어도 나 아닌 누구에게는 내 지금 선 자리가 곧 남쪽입니다. 어디가 남쪽인지를 애써 찾으려 할 게 아니라, 그저 바람이 절로 가르쳐 주는 방향이 곧 진실의 근원임을, 얼마나 더 헛된 세월을 보내야 우리는 깨닫게 되는 걸까요.

호떡은 본디 우리 겨레가 즐기던 간식이 아니라, 삭풍이 계절에 따라 매섭게 몰아치는 북중국에서, 고칼로리를 제공받으며 간단한 레시피와 구하기 쉬운 재료로 즐길수 있게 태어난 먹거리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한국 골목 노점의 명물 중 하나가 되었고, 이국적 음식이라며 맛나게 먹어 보는 벽안의 이방인들도 특정 거리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조용하고 정적인 풍경에서, 민첩히 움직이며 시각적 정적(靜寂)을 깨는, "귀화한 지 오래된" 고양이 한 마리를 주목합니다(<북촌>). 호떡이나 보이차나 고양이나, 너무도 익숙해서 우리 것인 줄로만 착각해도, 사실 좁은 반도에 오래 전 흘러들어온 "귀화자 출신"들이죠. "저문 역사의 홍등가에 일렁이는 무통의 경련"은, 나와 나 아닌 것의 가름을 애써 고집하는 일체의 몸부림도, 공연한 허공에의 손짓이 주는 무해의 피로와 인식의 혼란만을 야기할 뿐이라는 시적 화자의 고백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내가 본 자도 없고, 나를 본 자도 없다." 제법무아의 경지를 법열 속에 노래하는 듯한  이 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칼 가는 이"의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칼 가는 자의 노래>). 그는 그저 칼을 가는 게 아니라, 삶을 가는[摩] 사람이며, 삶을 가는 방식은 "꿈에서 별빛을 잘라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꿈도 탁한 바탕이 고갱이를 휩싸고 있을 수 있고, 꿈이 꿈 그대로의 원재료로는 쓸모가 없을 터입니다. 광석에서 펄펄 끓는 물로 핵심만 추려 제련을 하듯, 원석에서 용케 별빛만 솎아 아름답게 벼리고 강철같이 다듬는 작업이야말로, 어지러운 세상을 보다 많은 이들이 살만한 곳으로 가꾸는보람된 장인의 이바지이겠습니다.

아기새가 첫 비행을 하는 날은 그저 설렘으로만 가득한 소풍이 아닙니다. 아직 서투르고 못미더운 날갯짓 말고는 세상에 보여 줄 게 없는 그는, "뼛속까지 비워야만(<아기 새>)" 처 푸른 하늘을 날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띄우는 그는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위험한 여정을 감행하는 걸까요? 답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내 삶을 인증받기 위해서" 누구로부터요? 어디서나 피할 방법 없이 나를 가로막고 갈구며 과업을 독촉하는 상사(<상사 죽이기>)? 반 백제 반 신라 사투리를 요란히 섞어가며 제 나름의 진실을 설파하는 술자리의 노가다 십장(<노가다 십장 1, 2, 3>)? 아니면 오늘 저녁도 들녘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주워 담는 아가씨들(<사마르칸드 가는 길>)?. 그 모든 것이, 태몽처럼 길하고 설레게 다가왔다가, 겨울이면 딸내미 용돈 달라는 소리처럼 범상하게 울리며 언젠가는 멀어질 것들에 불과합니다. 유치한 겸손, 미화된 침묵을 멀리하고, 오늘만큼 부질없을 내일에도 남쪽을 바라며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아득한 의식의 근원만이, 그 질문에 답을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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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복권과 연금복권에 당첨되었어요 - 행복한 이야기
이승훈 외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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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 우리에게 미시경제학을 가르친 L 모 교수님의 말씀 중에 "확률과 기댓값이 그렇게나 낮은 복권 당첨을 꿈꾸며 판매대 앞에 줄을 선, 옷차림도 허술한 이들의 눈빛을 보면 도저히 이해불가"라는 언급이 있었는데요. 결론은 "인간은 기대값이 아닌 (주관적) 기대효용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린다."였습니다. 요즘처럼 "행동(행태)경제학"이 방대한 성과를 낸 바탕 위에서라면 아마 더 매끄러운 설명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사실, 번호가 도안과 함께 이미 인쇄된 채 판매소에서 대가를 받고 배부하는 식의  과거 복권이라면, 궁상스럽고 처지가 딱한 이들이 눈치 봐 가며 주로 구매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전히 그런 분들이 다수이긴 해도) 은퇴 후 넉넉한 밑천을 마련해 둔 노인들도, 복권방에 들어가 준비한 번호를 규격 용지에 싸인펜으로 마킹하며 꿈꾸는 듯한 눈빛을 보이곤 합니다. 1) 형편이 어렵지도 않고 2) 앞으로 사실 날도 얼마 안 남았으며 3) 그 정도 재산을 모았으면 1등 당첨은커녕 순위권 입성의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이성적으로 충분히 알만 한 분들이, 그렇게 끈덕지게 복권을 사는 모습은 진정 이해불가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야말로 최신의 어떤 샤프한 이론을 고안해서 누가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을 텐데, 그 정도로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고작 이런 문제를 두고 자신의 소중한 정력과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을 것도 같네요.

이 책은 "로또 혹은 연금 복권에 당첨된 분들의 수기"가 아닙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뜻밖에 닥친 행운 덕에 물 쓰듯 당첨금을 쓰기에 바쁘거나, 좀 더 현명하다면 종적을 감춘 채, 원금은 최소한 까먹지 않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자신의 장래를 설계할 것입니다. 화제가 될 만한 책을 쓰는 작업만큼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잘 드러내는 일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차라리 일류 문인들의 글을 한데 모아 멋진 앤솔로지를 출판하는 게 더 쉽지 싶네요. 이 책은 차라리 그런 책입니다. 서문에 명확하게 출판의 경위가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책에 실린 글들이 문인다운 풍취를 듬뿍 뿜고 있고, 각 글마다 말미에 본명 혹은 필명이 부기된 걸로 봐서, "복권 당첨"을 주제로 삼아 의뢰 후 투고된 작품집, 수필집인 것 같습니다.

서문에 나와 있는 편집인(겸 출판사 사장님)의 말씀으로는, "이 책은 상상만으로도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은 복권 당첨을 주제로 하여", 한정된 시간 동안 이승에서 갖은 영욕울 겪다 한 줌 흙으로 사라질 우리네 인생에 대해, 가능하면 낙관적이고 행복한 상념에 접어볼 것을 독자에게 권하는 취지인 듯합니다. 그러니 "복권 당첨 되는 비결" 같은 걸 기대한 분들은 다른 쪽을 알아보셔야 하겠고,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수필가, 문인들의 생각을 알고 공감하고 싶은 분들이 펼치면 좋을 그런 책 아닐까 생각해요.

필자를 모두 달리하여 총 48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48편의 배열은 글쓴이들의 성명 가나다순에 따르고 있습니다. 복권 당첨이라는 황홀한 소재가 설령 아니었다 해도 원체 글을 잘 쓰시는 전문가들의 솜씨라서인지, 교과서 독본처럼 반듯하고 명료한 문장들이 돋보입니다. 여기에, 제재가 제재이다보니, 붓끝도 그 도움을 받아 유쾌하고 가볍게 움직이며, 읽는 이의 눈 앞에 절로 행복한 상념을 떠올려 주고 있습니다. 복권 제도 운용에 설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고 해도, 주제가 그저 복권이라는 탈을 썼을 뿐 실상은 "행복"에 관한 내용이다, 이 정도로 이해하고 읽으시면 누구라도 얻는 게 많은 독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역 댄스 아마츄어 선수이기도 하다며 자신을 소개하는 필자 강OO 님(남성이십니다)은, 만약 복권에 당첨된다면 예쁜 외국인, 아마 댄스의 본고장 영국 런던까지 가서 염색 않은 노랑머리 여성을 모시고 와 원 없이 프로무대를 누비고 싶다시네요. 현재 스테이지 한 번을 위해 여성 파트너를 초빙하려면, 대부분 배우자들이 있는 현실상 섭외 자체가 어려울 뿐더러, 드레스 협찬 비용 등 추가로 해결해야 할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기왕 돈 쓸 것 확실하게 써서, 무대에서 만인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그런 파트너를 쓰겠다는 포부인데, 좀 소박하다 싶다가도 중간을 넘겨 읽으니 "당첨금 15억"을 전제로 하셨더군요. 1등이 얼마나 어려운데 그래봐야 공동 당첨자 여럿이 끼면 그 확률의 파고를 넘고서도 고작 손에 쥐는 게 15억이라니(하물며 세후 순수령액은....).... 대회에서 입상한 후라면, 파트너에게 공을 셈해서 후하게 보너스를 주고 남은 돈으로도 댄스 학원 하나를 차리는 데에 부족하지 않을 거라 하십니다. 이 정도면 (첫인상과는 달리) 그 꿈 한 번 대단히 치밀한 예산 하에 세워진 현실주의의 산물 같기도 하네요.

그런 사실이 있은 줄은 몰랐는데, 실제 우리나라에 407억 당첨금을 독식한 사례가 있었다는 게 문OO님의 설명입니다. 이 당첨자는 "더이상 승진 시험을 못 치르게 되어 아쉽다"고 했다는데, 직무에 충실한 외에 열심히 공부해서 직급을 오르는 게 진정 이분의 낙이었나 봅니다. 우리 나라의 사례는 아니고 어느 미혼모가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아이 넷을 키우다, 역시 거액 1400억의 당첨금을 손에 쥐고 "이제 아이들을 위해 남에게 손 벌릴 일 없어 기쁘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필자(엄OO님)의 말씀은, "성실히 제 인생을 산 자에게 당첨금이 갔으니 정말 보기 드물게 돈이 바른 임자를 찾은 셈이다."고 합니다. 이런 말에 우리가 공감한다는 건, 그만큼 사행심을 부추기는 이 제도가 문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른들 말로 그렇게나 길한 꿈이라는 똥꿈을 꾸고 덜컥 복권에 당첨된(꿈을 꾸며 이 수필을 쓰시는) 이OO님은, 당첨금으로 과연 무엇을 할지 목록까지 작성해 가며, 막상 용처를 매기면 금세 바닥이 드러나는 이 돈이란 녀석의 허상도 아울러 짚습니다. 이 글 뿐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중 25편 넘는 글들은, 정말로 "내가 당첨이 되었을 경우 우선순위에 따른 지출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이 "꿈"들이 가상이 아니라 실제였다면 아마 배가 아파서 책을 못 읽을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어차피 모두가 백일몽임을 알고 신나게 꾸는 환상이기에, 다른 분들, 특히 글쓰기가 본업인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엿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충분합니다. 거금이 손 안에 들어 왔으면 하고 요행을 바라는 얄팍한 마음이야 누구나 비슷하지만, 사람 얼굴이 각양각색이듯, 그 꾸는 꿈의 모양새의 디테일로 일단 들어가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가상의 시나리오,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상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책에는 과거, 1980년대 이전에도 한국에서 성황이었던 복권이란 요물에 대해 회상을 적은 글들도 많이 있습니다.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 성공을 기려, 기금 조성을 겸해서 "올림픽 복권"이라는 게 생겼고, 허름한 슬레이트집이라도 짓고 부모님 아내 자식들과 오붓하게 사는 게 모두의 꿈이었던 시절에는 주택복권이라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복권업을 하면 그건 바로 불법으로, 엄격한 제재와 형벌을 받습니다. 예외적으로 대중들을 상대로 펼쳐지는 이런 복권 사업에 명분이 있으려면, 수익금이 실제로 공공용도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편집인의 설명에 따르면 "반액은 주택 건설 등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머지 반액을 몰아다가 1등 당첨자에게 안겨 주는 건데.... 이런 사행성 강한 제도의 도움 없이도 온 국민이 진정 행복한 꿈을 무리 없이 평등하게 꿀 수 있는 날이 하루바삐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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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조훈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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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조훈현 국수는 단지 바둑이라는 스포츠, 기예(技藝)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빛낸 그랜드마스터일 뿐 아니라, 일종의 문화 아이콘의 위치까지 겸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일본에서야 당연 프로 바둑기사분들에 대한 존중과 경의, 인기가 상당하지만, 한국도 그에 못지 않았습니다. 바둑의 저변 확대라면, 비록 내기 바둑 싸움 바둑이란 평을 들을망정, 동네꼬마(어려서부터 할아버지들한테 바둑과 한자를 같이 배운 세대[世代]가 제법 두텁습니다. 요즘은 아니지만)에서 노인들까지, 집에 바둑판 하나 쯤 비치하고 소일하지 않는 세대[世帶]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바둑의 인기가 높았던 나라에서, 4천만 중 최고수인 분이라면, 그 사람은 국민적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죠. "정치 9단" 같은 유행어에서도 알 수 있듯, 바둑 용어는 시사나 일상에까지 퍼져 나가, "꽃놀이패"니 "신산"이니 "반 집 승부"니 하는 말이 누구 입에도 자연스럽게 오르내렸습니다.

 

이 책 말미에서도 저자 조 국수께서 지적하고 계시지만, 현재 한국의 바둑 인기는 아마 조선 시대 이래 최저라 할 만큼, 저변도 얕아지고 전문인 양성의 질적 수준도 저하되는(학원 등에서 뻔하고 모범적인 수만 가르침) 등, 뜻있는 이들 사이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책에서 조 국수께서도 날카롭게 짚으신 것처럼, 마치 일본이 바둑세가 크게 주춤하며 하락일로를 걸을 때 국가경제도 침체에 빠져 들고 국운(國運)도 쇠락한 것처럼, 우리 한국이 전반적으로 활기를 잃은 나라가 되어 가는 분위기와도 무언가 관계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바둑만 집중 진흥시킨다고 해서 나라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세계를 향해 웅비할 때,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들도 국제 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던 기억을 떠올리면, 현재의 상황에 대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 패업을 달성한 명인이라 해서, 그 달인의 인격이나 인품까지 뻬어나다든가, 인생의 사표로서 누구나 우러를 만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으로 승승장구한 탓에 타인을 대함에 있어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다든가, 남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지 못해 결국 개인사의 불운에 빠진다든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하는 평판을 얻고 만다든가 하는 경우가 훨씬 흔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둑은, 그 세상을 잘 모르는 우리 일반인이 보아도, 점잖고 품격 있으며 인생사에 대해서도 깊은 도를 깨친 분들이 주도하는 분야가 아닐까 하는, 어떤 막연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조 국수께서는 "바둑기사 고수들치고 오만한 사람이 없다"며 자신 있게 프로기사들의 인간적으로 성숙한 면모를 내세웁니다. 왜 그런가? 어려서부터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들에게 숱하게 깨지고 패배한 체험이, 사람의 정신과 인격을 전보다 한층 키워 주는 자양분 구실을 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조 국수께서는, 책 속에서 이런 가상의 질문을 던진 후, 스스로 답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절정의 젊음을 누리던 그때의 역량으로, 바둑의 신과 대국하면 이길 수 있을까?" 아마 이 질문은 누군가가 그에게 실제로 던진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은 "그럴 자신은 없다."입니다. 만약 무예의 고수가 해당 기능의 신(그런 게 있다고 일단 친 후)과 대적한다면, 제아무리 기량이 빼어나도 몸에 상처가 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힘을 못 쓰는 게 당연한데, 어찌 불멸불사의 신(神)과 승부를 겨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종목이 바둑이라면, 그것은 기책과 지혜, 노련미, 정신력만의 승부(사실 체력도 받쳐 줘야 합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이창호 9단과 승부를 겨룰 때, 조 국수는 너무도 힘이 들어 누워서 대국을 이어간 일화가 있습니다)이므로,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해 볼 만한 것 아닌가 하는 게 아마 질문자의 의도였을 겁니다.

 

그러나 조 국수의 답은 부정적입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설사 9단 고수인 다른 기사들과 붙어도, 승부의 향방이 어디로 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수(手)가 높아도 자칫 실수를 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아닌 신이 대결 상대라면 말할 필요가...." 역시 그다운, 명쾌하면서도 겸허한 논리입니다. 조 국수는 1999년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이전 세대인 고바야시 고이치 9단과는 당연히 다른 사람입니다)과 승부를 겨룰 때, 포석과 중반까지의 승부에서 패색이 짙었다고 합니다. 모양새와 패턴, 특유의 미학을 중시하는 일본 바둑에서는 "이쯤이면 진 것"으로 보아 돌을 던지는(불계패) 게 보통인데, 조 국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정사정 없이 거친 수를두며 상대를 몰아붙였다고 합니다. 결국 기가 질린 고바야시 9단은 패착을 두었고, 조 국수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승리를 거두죠. 이때 주위에서(아마도 특히 일본 쪽에서) 품위 없다면서 비난을 많이 했는데, 이에 대해 조 국수가 책에서 적고 있는 바는 단호합니다. "승부는 과정 뿐 아니라, 결과도 중요하다!"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통은 저 말을 뒤집어서 사용하곤 하죠. 그러나, 영원한 승부사 조 국수께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암만 멋진 승부라고 해도, 결과에서 져 버리면 아무 소용 없다."

 

이 일화를 조 국수는 책에서 제법 앞부분에, 그것도 제법 긴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조 국수라고 하면 그 인생에 있어 숱한 영예와 기쁨, 환희의 이벤트로 시간을 가득 채운 축복받은 스타입니다. 책에서 만약 자랑을 하고 싶으시면,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눈대중으로 보니, 응창기(잉창치)배 제1회 대회에서 녜웨이핑을 꺾은 이야기와, 이 고전 끝에 피로스의 승리를 거둔 1999년의 대국 이야기가, 서로 분량면에서 차이도 별로 안 납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해 보면, 이 고바야시와의 결전을 더 신나게 회고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객관적으로 이무렵의 기량으로는, 사실 고바야시 9단이 더 우위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조 국수는, 애써 화제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가 고수의 행적이나 생각에서 무엇을 배울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진솔한 영혼이 들려 주는, 인생의 척박하고 초라한 순간조차 꺼릴 것 없이 털어놓는 바로 그 태도와 달관의 격조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승부의 세계가 얼마나 무상한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더불어 배울 수 있습니다. 과연 이기고 지는 건 병가의 상사(常事)입니다.

 

조 국수는 우리가 타 분야에까지 널리 응용할 수 있는 많은 교훈을 이 책에서 들려 주고 있습니다. 전설의 오청원(우칭위안) 문하에서 배우고, 한때 소속 없이 여러 군대를 떠돌다 한국에 정착한 루이 여성기사가, 이른바 "고바야시 정석" 중 어느 하나에 의문을 가지고 조 국수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조 국수는 비행가 안에서 차민수씨와 상의하다 좋은 묘수를 떠올렸는데, 이를 옆에서 들은 이창호 9단이 며칠 동안 생각한 끝에 그 수를 깰 다른 수를 생각해 냈고, 조 국수는 이를 듣고 그를 격파할 다른 방안을 고안해 냈다는 군요. 이 회고를 마무리하며 조 국수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창호는 다시 그 수를 깰 궁리를 열심히 짜내고 있을 것이다."

 

조 국수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정제되고 완성된 법칙이라 해도, 그 방법론 하나로 계속 지탱할 수 없으며(만병통치약이라는 게 존재하지 못하는 것처럼), 전략 전술은 지속적으로 개선 개량하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썩게 마련이라는 거죠. 조 국수는 일본 바둑의 침체를 책 중반에 거론하면서 그 이유를 분석하고 있는데,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잃어버린 10년"의 이치도 결국 같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책 후반부에서 직접 그 지적(일본 경제의 몰락)도 하시더군요. 창의력, 어떤 권위나 틀에도 얽매이길 거부하는 도전 정신은 그래서 중요한 거겠죠.

 

위에 언급한 일화에서 조 국수는 "저 과정에서 창호가 다른 정석 하나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수학과 바둑이 참 비슷한 데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 역시, 난제 하나를 해결하려고 내로라 하는 천재, 학자들이 다려들어 갖은 수를 다 쓰는데, 설사 본 문제는 못 풀어도 그 과정에서 파생적으로 발견된 법칙, 공식이 매우 많습니다. 조 국수는 책 중에서 "수학에도 수학의 정석이 있듯...."이라며 비유를 쓰는데, 무심결에 나온 비교이겠으나 이 책을 읽고 정말로 수학과 바둑이 닮음꼴임을 독자로서 절실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방법만 답습하다가 창의력이 퇴화하고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것도 정말 비슷하죠.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정해진 방법론만 이식하려 들지 말고, 아이 스스로 기상천외한 방법을 스스로 떠올리게, 자유와 재량을 주라는 게 조 국수의 제안입니다. 어디 아이를 가르칠 때뿐이겠습니까. 스스로 자기 계발을 도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좋아서 천변만화하는 요령과 묘수를 깨치는 자의 실력을 누가 감히 이길 수있겠습니까. 세고에 겐사쿠 9단도 조 국수를 내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칠 때 이런 식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소위 내제자 시스템이 과연 어떻게 이뤄지는 건지 정말 궁금했는데, 야구로 치면 철저한 "자율야구"에 가까운 것이더군요. 세고에 겐사쿠 선생은, 1) 복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2) 연구 중인 제자에게 "여기 여기를 잘 생각해 보라"고 툭 던지듯 하곤 자리를 뜨는 게 거의 다였다고 합니다. 일생을 통틀어 단 세 명의 내제자만 받은 바둑의 신(진정 신이라 불릴 만하죠) 세고에 겐사쿠 선생의 지도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방법만으로, 내제자 세 명을 모두 세계 최고수로 키운 건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세고에 겐사쿠 선생의 유명한 일화가 이 책에도 여럿 나옵니다. 내각총리대신(즉 일본 수상)에게 오청원 소년을 일본으로 들여올 것을 부탁하자, 총리는 "그 아이가 일본 명인위를 빼앗아가면 어쩔 생각이오?"라고 물었다 합니다. 세고에의 대답은 "그게 바로 오청원이 이곳 일본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였다 하는군요. 책 뒤에서 저자는 일본 후지쓰배 등 국제 대회가 다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본인방이나 명인전 등을 외국인에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이 고립에 안주하며 갈라파고스화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지요. 인생의 스승인 세고에의 본국이자, 자신이 10대 시절을 다 보내다시피한 나라 아니겠습니까.

 

나쁜 환경, 불운에도 좌절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전기로 삼아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일본 수상도 깍듯이 높이고 존숭하는 세고에 9단의 제자, 그것도 내제자라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한 수 가르침을 청하는 게 상례입니다. 헌데 한국에 들어와 보니, "조군아 일루 와서 짜장면 내기 바둑 한 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고, 한국말 못 한다며 소외시키고, 난관이 한둘이 아니더랍니다. 그러나 조 국수는 "오히려 계급장 다 떼고 두는 싸움 바둑이라 실전 감각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이를 태연히 즐겼습니다. 조 국수는 이 책의 다른 대목에서 모 바둑대회를 거론하며, "아마고 프로고 할 것 없이 참여하여 승부에 이기기만 하면 상금을 가져 가는" 철저히 오픈된 방식을 극구 칭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고수 달인은 이처럼 아무 격식도 권위도 따지지 않는가 봅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자, 최종의 결론을 짚어 봐야겠습니다. 조 국수의 바둑관은 1) 어떤 난제라도 생각을 거듭하면 반드시 답이 나온다 2) 반드시 나의 한 수가 부를 상대의 다른 한 수, 또 그 다음 수를 모두 고려해야만 하는, 입체적 사고라야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조 국수는 책에서 말하길, "바둑과 달리 인생사는 궁리를 거듭해도 답이 안 나오곤 한다." 시지만, 이처럼 인생을 다면적으로 고찰하고, 매사에 임하길 열심과 근성으로 승부를 내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며, 마음을 비우고 생사에 초탈한 담벡한 기분을 잊지 않고, 창의적이며 자유로운 시야로 문제를 대하면, 인생에 있어서도 최상의 해답에 가까운 바를 생각해 내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네요. 영원한 국수 조훈현 선생의 육성으로 듣는 교훈이라 더 실감나게 와 닿았으며, 세고에 선생의 죽음 등 바둑사에 얽힌 여러 비화까지 접할 수 있어 더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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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6-1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기하다..
복기하고 있는 사람은.. 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