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국부론, 중국에 있다
전병서 지음 / 참돌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G2의 시대를 운위하는 요즘입니다. 현재 중국의 GDP는 비록 상징적이라고는 하나 이미 미국의 수치를 추월하였고, 이번 시[習] 주석의 방한 시 국내 언론조차 앞다투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며 다소 절박해 보이는 헤드라인을 달았습니다.

중국의 장래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진단들이 나왔습니다. 세기가 갓 바뀌었던 무렵만 해도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고 패권국이 될 것이다.", "이제 10년 만 지나면, 중국어 못 하는 학생들은 기업에 취직도 못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같은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었죠. 이때만 해도 짝퉁, 유독 음식, 저질 공산품 양산 기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동북 공정"조차 아직 시작이 안 되었을 때입니다.

2008년, 세계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유일 초강대국으로 언제까지나 그 위세를 떨칠 것 같았던 미국에서, 사상 초유의 금융 부실 스캔들이 터져 거대 공황을 몰고 오기 직전까지 사태가 악화되었던 거죠. 이라크 전 마무리가 최악의 무능을 노정하며 대혼란으로 치닫던 터에, 생각지도 않았던 금융 사고까지 발생하여, 철옹성 같았던 미국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했었는지 전세계에 그대로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위신도 땅에 떨어졌지만, 바야흐로 중국이 이 틈을 파고 들어, 형세의 역전을 노릴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습니다만, 역량 부족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기를 못 살리고 성장의 동력이 점점 꺼져 가는 모습마저 드러내자, "곧 부동산부터 해서 거품이 꺼질 것이다.", "도농 간, 동서 간의 빈부 격차 심화, 잠복해 왔던 민족 문제의 폭발, 지도층의 부정 부패 같은 시한 폭탄이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같은, 비관론이 급속하게 확산되기도 했죠.

이 책의 저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인 전병서 선생입니다. 책은 근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데, 군더더기라곤 하나도 없는 알짜 분석과 진단으로만 가득한 내용이라, 읽어나감에 따라 머리가 꽉 차는 느낌이면서도, 전 분량이 언제 다 소화되었는지 시간 경과를 의심케 할 만한 독서였습니다. 책의 결론은 "우리의 장래는 결국 중국에 달려 있다. 중국의 장래가 승천하는 용이라면, 우리는 그의 등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만약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무기로 떨어지는 신세라면, 우리는 당장 시련을 겪겠으나 장기적으로 더 튼튼한 지위로 올라설 여지가 생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현황과 실체를 정확히만 파악하면, 우리의 장래는 탄탄대로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제가 앞에서 적은 그간의 상황을 독자가 다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 동서고금 경제사의 다양한 실례를 거론하며 논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단, "지리상의 발견(일단 이 용어를 그대로 쓰자면)" 이래 패권국의 지위를 지닌 여러 나라의 운명과 주기를 분석합니다. 패권국이 있었고 그에 도전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패권국이 갓 도약할 기간과 최융성기가 있고, 전쟁을 거쳐 서서히 쇠퇴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정 주기가 지나고 정해진 패턴을 겪으면, 패권국의 위치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 갑니다. 이런 구조는 무력의 우열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근본적으로는 금융패권을 얼마나 견고하게 장악하고 있는지에 의해 판가름난다고 하는군요. 패권국이 그 패권을 강력히 유지할 시기는, 금리 수준이 자연스럽게 0 주위를 맴돕니다. 이것이 이제 상승점으로 치고 올라갈 무렵, 패권국은 드디어 그 왕관을 타국에 물려 줘야만 할 때가 온다는 주장입니다.

패권의 교체는 꼭 전쟁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지배층의 무능과 방만은 주로 금융 섹터에서 그 곪은 상처가 터지기 십상인데, 이런 금융 사고는 최근세에 들어 아홉 차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중 압도적 다수는, 서양 쪽에서 내실과 근검으로 경제생활을 유지하지 않고, 남의 빚을 내어 사치와 타락의 풍조에 빠져들면서 벌인 사고라고 하는군요.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도 바로 그 예입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유럽만큼 타격을 입지 않은 이유는, 이 위기의 진앙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었던 중국에 긴밀히 의존하고 있었던 덕이 크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가 유럽, 미국을 향해 쏟아내는 비판은 신랄합니다. 무슨 놈의 자본주의가, "자본(capital)"은 하나도 없고, 남의 빚을 내어 오히려 공갈을 쳐 가며 사치를 누리는 "부채주의(creditism)"으로 타락할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3세기 전 영국의 엄청난 국력과 잠재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애써 무시한 채 제 나라가 그저 최고라고만 여겼던 건륭제의 우(愚)를, 이제 이 서양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똑같은 모습으로 범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내부 모순 때문에 망한다. 분열된다, 거품이 꺼진다. 벌써 성장 축세가 둔회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하는 자신들은, 훨씬 더 심각한 체제 모순에 빠져 있다는 거죠.

미국은 기축 통화국의 위치를 남용하여, 남의 나라 재화를 "프린터 인쇄 비용"만으로 강제 취득하고 있는 셈이라며 비판합니다. 달러의 가치를 담보하는 건 닉슨이 금의 태환을 중지한 이래 현재 아무것도 없으며, 오로지 석유 거래에 있어 강제적 결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그 사실 뿐입니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통화 발행권 남용으로 실물의 뒷받침 없이 제조업 중심 국가로부터 금융, 서비스 중심 국가로 부의 강제 이전을 꾀하는 미국의 전략을 비판합니다. 남의 빚에 의지한 채 낭비를 일삼는 나라가 오래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반면 중국은 재정 건전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미국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채권국입니다.

재미있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패권국 지위에 도전하기 위해, 정면으로 싸움을 건 나라들- 일본, 독일- 은 반드시 패망했다는 겁니다. 중국은 그래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기보다, 가벼운 잽은 맞아 가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이라고 하네요. 현재 중국은 이미 제조업 분야에서는 미국을 능가했지만, 아직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분야가 금융 산업이라고 합니다. 금융의 체질이 허약하기 짝이 없기에, 이 분야의 개방은 극구 미루면서 체질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태가 이러하다면, 중국은 예전 덩샤오핑이 내세웠던 도광양회 단계를 아직 탈피하지 못했다는 인상도 줍니다. 차이나 3.0을 논하는 시점인데도 말입니다. 이 대목은 어제 한중 정상회담에서, 원-위안화 직거래소(청산결제은행)을 서울에만 두기로 합의한 사실과 연관하여 다시 주목됩니다.

미국이 중동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야심차게 기획한 것이 셰일가스 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더 이상 석유가 아닌 대체 자원을 통해, 중동 정세에 좌우되지 않고 독자적인 에너지원을 확보하여 패권국의 위치를 굳힌다는 전략임은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셰일가스층의 최대 매장량은 오히려 중국이 확보하고 있으며, 현재 달러의 기축 통화 위치가 석유 거래 결제 수단이라는 그 하나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제 셰일 가스로 이 위상마저 흔들린다면 달러는 급속도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명을 재촉할 수 있다는 논리죠. 다만 이것이 현실화되려면, 저자 스스로도 지적하듯 "물 없이 가스를 추출할 수 있는 신기술이 개발되어야"만 합니다. 중국에서 부족한 게 바로 물 자원이기 때문이죠.

중국의 지도층은 과연 건전한 내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낙관적인 분석을 내놓습니다. 한 대를 건너 뛰며, 다음 지도자를 현직이 지명하는 식으로 각 계파의 이해를 배려하는, 대단히 유익한 지혜가 발휘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지명했으며, 지금의 시 주석은 장쩌민이 지목한 후계자라는 거죠. 시 주석은 처음에 대단히 취약한 권력 기반에서 주석직을 시작했지만 현재 아무 문제 없이 대국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중국식 집단 지도 체제가 대단히 안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독자 스스로 기준을 세워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며 읽어야 할 줄 압니다. 최고 수준의 중국 전문가인 저자는, 애널리스트라기보다 자기 계발 톱스타 강사처럼, 현란하고 명쾌하며 재미있는 어조로 책에서 시종 일관 독자를 매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처럼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중국 측의 전략이 매번 잘 먹히는 건 아니고,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친미 대열에서 이탈하여 중국에 기운다는 사실은, 현재 필리핀 등의 태도를 보아도 사실과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건,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히 부실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겁니다. 설사 중국이 어리석고 무능해도, 미국이 지금처럼 패착을 거듭한다면, 패권이 정말 중국에게 넘어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요한 건 냉철한 현실 감각이고, 그것이 우리 같은 작은 나라가 생존을 도모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수의 공모자들 -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언론이 침묵하면 돌들이 입을 열어 소리칠 것이다." 이 말의 출전은 본디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합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故 리영희 선생의 인용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합동통신, 조선일보에서 기자로서 젊은 시절 커리어를 다진 분이었으며, 그가 한양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강좌를 담당하며 교편을 잡은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입니다. 선생은 거의 전 생애를 바쳐 "제 할 말을 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이 사회의 공기요 소금 같은 존재라는 진리를, 글과 행동을 통해 한국인에게 확신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인지, 한국의 언론은 과거 군사정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를 찾은 편입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 최소한, 작금 일본의 형편보다는 나은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그 점을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언론은 사실 권력의 탄압 때문에 할 말을 못하던 우리의 과거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언론과 권력(주로 관료 세력과 보수 정치인) 사이의 자발적인 유착으로, 진실을 가공하거나 은폐하는 경향입니다. 권-언 유착이란 말은 과거 우리 나라에도 있었지만, 주로 사주(社主)와 권력자 사이의 음험한 야합이었을 뿐, 일선의 기자들은 맹렬한 저항정신으로 이를 막았죠. 일본의 상황은 이와는 크게 다릅니다.

이러한 일본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고,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며, 자신의 조국 앞날을 진정어린 애국심으로 염려하는 저자는, 동경대 법학부 출신(졸업은 못하셨다고 하네요)으로, 외교관의 길에 일찍 투신하여, 駐 이란 대사까지 지낸 마고사키[孫岐]우케루[享]씨입니다. 이 책은 그를 정치외교 전문가, 비판적 진보 지성 등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과 달리 화려한 공적 커리어를 지닌 인사를 준 귀족으로 취급하는 일본에서는 그 관록이 일반에 주는 무게감이 다릅니다. 일본은 원래 진보적 지식인이 많이 배출되는 나라입니다. 한국의 한겨레신문 등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이들도 많고, 이미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맑스레닌주의에 투신한 이, 식민지 한국의 처지에 깊은 공감을 갖고 해방 투쟁을 도운 이들도 많습니다. 그저 진보 인사라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커리어나 학벌 상 주류 중 주류에 속하는 이런 분이 몸소 행하는 비판이라면, 일본에서는 그 무게가 다릅니다.

어제 이한(離韓)한 시진핑 국가 주석도 그런 입장을 표명했지만, 최근 들어 일본의 우경화는 주변국의 우려를 크게 부를 만큼 심각하고 치밀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죠. 저자 마고사키 씨는, 이런 아베 행정부의 노선이 사실은 미 네오콘의 사주, 최소한 부추김을 받아 일어나고 있는, 종속변수적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에서 보는 프레임과는 사뭇 다른 태도입니다. 일본은 최근 중국의 위협적 확장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더 이상 비무장 노선을 고수하다간(언제 그런 적이 있지도 않았습니다만) 국가 안보를 장담할 수 없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통국가화"를 추진하며, 미국 역시 더 이상 말릴 힘이 없어 이를 방관한다는 정도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2008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민주당 정권)의 노선과 자민당이 알력을 빚는 듯한 겉모습은 사태의 핵심이 아니며, 중국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강대국 레벨에서 탈락시키려는 네오콘의 원모(遠謨)에 아베가 꼭두각시로 놀아나고 있다는 취지입니다. 그는 이런 전제를 깔고 책의 1장에서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필요 이상으로 참여 강박 증세를 보이는 아베 정권의 태도를 비판합니다.

오키나와는 과거 류큐라는 독자적 실체를 지닌 지역 왕국이었습니다. 사실 덕천 막부도 강력한 봉건적 권위로 열도를 다스렸을 뿐, 본토 역시 중앙집권적 체제로 통일된 상태는 아니었죠.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강력한 근대 국가 외형을 갖추려는 양번(兩藩) 실세들의 기도에 따라, 강제로 일본에 편입되었을 뿐입니다. 저자는 근래 들어 미군 기지 문제와 함께 현지에서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자치운동을 분석하면서, 강압적으로 형성된 억지 대세가 어떻게 현지인들의 이해와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실로 파격적입니다. 요약하면, "오키나와도 주권을 회복해야 하며,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는 기형적 국가인 일본 역시 참된 의미에서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3부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아베 정권의 본질을 파헤치며, 그 허상을 맹공하고 있습니다. 3개의 화살인 금융, 재정, 성장 정책 모두가, 치밀한 전략이나 비전을 뒷받침하지 않는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아베 정권이 이처럼 빈약한 정신적 기반밖에 못 갖춘 이유는, 미국 안에도 매파와 비둘기파로 대표되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처롭게도 "재팬 핸들러"로 불리는 네오콘만 해바라기하는 그 편향되고 근시안적인 자세에 이유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장에서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어리석은 정치 쇼로,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고 미국 비둘기파를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4부에서 그는 외교관답게, 대체 이 미묘하고 인화성 강한 센카쿠(다오위다오) 열도 문제가  1970년대 중일 수교 당시에는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지를 짚고 있습니다. 해답은 "일단 현안에 대한 일도양단식 판단을 삼가고, 현상 유지와 평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자세입니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이미 대만과 일본 사이에서 그 의미심장한 첫걸음이 내디뎌졌는데, 중국과의 사이에서 유사한 해법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첫째도 평화, 둘째도 평화입니다.

5부에서는 이 책의 결론으로, 대중과 국민에 대해 진실을 알리고 건강한 해법을 찾기 보다, 밀실에서 결정난 가공되고 왜곡된 오피셜 스토리만 전파하려 드는 언론의 행태를 집중 비판합니다. 여기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미국산 요격 미사일의 진짜 성능,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부상(浮上)한 스타 정치인의 자질 등에 대해, 대중 스스로가 "과연 진실일까?"를 끊임 없이 자문해 봐야 한다는 충고를 합니다. 그는 다소 감상적인 태도로, 이란 대사로 재직할 당시 현지에서 접했던 어느 동화를 인용하며,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홀로 노를 외치는 이의 고독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합니다. 진실이야말로 총칼이나 기만, 강압, 금력 등 그 모든 의롭지 못한 수단을 궁극에 가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이 노전사는 책에서 절절히 외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S 대입 자기소개서 바이블 - 대입 수시전형 합격의 열쇠
김한슬 외 24인 / 지식채널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 제 풀이 입시 위주의 신입생 선발 방식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건 누구나 동의합니다. 대학은, 자기 학교에 들어오려는 학생의 인물 됨됨이를 보고 입학 자격을 주어야 하며, 문제를 잘 푸는 기계를 우대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곤란하죠. 그래서 현재 각 대학에서는, 수능 점수가 주된 선발 기준이 되는 정시 전형 말고도, 자기소개서의 완성도와 진정성으로 적합성을 평가하는 수시 전형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료입니다. 이 대학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성취해 왔으며(꼭 "스펙'을 말하는 건 아니죠. 현재 상당수의 대학은, 토익 점수 등 스펙을 기재한 자소서에 대해 0점 처리의 원칙을 유지합나다), 이 대학에서 앞으로 어떤 계획 아래 학업을 이뤄 나갈 것인지를, 분명하면서도 진솔한 방법으로 진술해야 합니다.

이 책은, 자소서 위주 전형에서 고득점을 받고 합격한 학생들이 몸소 적은, 모범적인 답안례를 소개하거나, 이렇게 쓰면 높은 평가를 받기 곤란한 답안의 실제 예를 들면서 개선해야 할 점을 상세히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자소서를 잘 적기 위한 원칙은 여러 가지가 제시되어 왔지만, 그 대부분은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건지가 모호하거나, 서로 상충되기까지 합니다. 학생들은 아직까지 초, 중등 과정에서 자기 표현이나 자기 생각을 효율적으로 적는 훈련을 덜 받아 왔기에, 자소서를 적으라고 하면 그저 막막해하거나, 좋지 못한 미사여구의 남발만 보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잘 쓴 자소서인지, 또 바람직하지 못한 서술 방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예문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본문은 410페이지, 부록이 80페이지에 달하는 아주 방대한 분량입니다.

양이 이렇게 많다 보니, 웬만한 학생이면 "아, 나는 이 선배와 처지나 적성, 환경이 비슷하구나, 이런 식으로 적으면 되겠다."라든가, "나는 자소서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적어 나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곤란한 거였구나."면서 고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문은 이론이 아닌 구체적 실전에 의의가 있으며,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자소서라면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범적인 자소서를 두고,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든가, 여러 예에서 좋은 요소만 따 와 짜깁기를 하는 방식은 절대 금물입니다. 작성자는 자기 혼자 생각으로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사정관은 수없이 많은 자소서를 보면서 어떤 것이 정직한 작성이며 어떤 것이 "점수 따기만을 위한 컴필레이션 픽션"인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원칙은 준수하되(모범적인 형식 구비), 거기에 담아야 할 내용은 철저히 자기 자신의 정직한 이야기라야 합니다.

참신함과 논리적 비약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기
읽 으면서 "이런 자소서도 있구나."할 만큼 신선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소서는 초현실주의 신춘문예가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 전개와 구조는 건전한 상식과 논리에 맞아야 합니다. p44를 보면 "목감기 때문에 말의 소중함을 배웠다."는 예가 나오고, 이에 대해 적절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을 첨부하자면, 너무 내용이 늘어지거나 글자 수 제한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근거와 짜임새를 첨부하면 식상함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무리한 시도는 아닙니다. 다만 이대로의 모습은 곤란하며, 상당한 글재주가 아니고서는 이 소재로 멋진 진술까지 발전시키기에는 조금 힘에 부칠 것 같습니다.

전문 경영인이라야 의료 법인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이대로 방치하면 특정 직업군을 비하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죠. 구체적으로, 의료인이 경영을 맡았을 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근거라고 든 사실이 지나치게 길어져서는 그것도 곤란합니다. 다만, 사회의 현 제도가 분명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린 학생 개인의 입장에서 이의 개선을 위해 어떤 포부를 갖는지 서술하는 건 바람직합니다. 이 경우에도, 개인 범위를 벗어나는 지나친 욕심, 과장된 비전 나열은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입학 사정관을 기다리게 하지 말라(p70)

왜 글이 두괄식이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좋은 예죠. 사정관은 많은 지원자를 대면(혹은 서면을 통한 접촉)하고 평가, 사정해야 합니다. 과도한 자의식으로 문장을 질질 끄는 것은 자소서 스타일에 어긋납니다. 개성의 표출은 대학에 입학한 후, 그런 스타일이 잘 들어 맞는 다른 상황에서 뽐내야 합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라
일 관성이란 같은 단락 안에서 같은 주제, 화제만을 다루는 기본 원칙을 말합니다. 학생 주관적으로는 토픽 A와 B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나, 사정관이나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연결점을 찾기 어렵다면, 그런 서술은 일관성을 잃고 자기 주장을 전달하는 데에 실패하기 쉽죠.

은유적 표현을 피하라

잘된 은유는 글에 참신성과 생기를 더하지만, 자소서처럼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에다 비약적인 표현을 남발하고, 이에 근거를 덧붙이며 낭비하다가는 사정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지원하려는 학과에 대해 평소 깊은 관심을 가져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전공 분야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건 전형에 따라 꼭 필요한 성의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서술"이라는 미덕과도 관련됩니다.

진솔하고 구체적인 서술
p202 를 보면 서울대 인문학부에 지원하여 합격한 남미희 씨의 좋은 예가 나옵니다. 보통 명문대에 지원하고 입학하는 학생들은 강남 출신이 많다는 선입견에, 아주 보기 좋게 반박하는 답안으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참신하고 흥미로운 답안이었습니다. 이 사연은 모범 답안을 베끼거나 대필이 절대 아니겠구나 하는 인상을 주려면, 결국 자기 이야기를 정직하게 적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글에는 명확한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 환경이 그리 유리하지 않은 가리봉동에서 나고 자란 상황이,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는 데에 구체적으로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 이 답안은 설득력과 매력을 겸비한 채 잘 전달해 주고 있었네요.

p258에 보면, 기업체 채용시 그렇게나 기피된다는 마마보이 캐릭터의 어느 학생이, 역시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설득력 있는 학업 비전을 젛묘하게 잘 표현한 사례가 나옵니다. 잘된 글은, 역시 자신에 대해 평소부터 분명하고 건강한 정체감을 형성한 학생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약점이라고 해도 감추지 않고, 자신의 개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치밀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는 자소서 뿐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공통된 원칙이겠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난 학생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지난 이력을 적은 답안도 있었습니다. 이런 답안도, 마무리는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을 이해하며.." 같은, 건설적이고 열린 자세의 표현으로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김살 없이 자라나 인성에 왜곡이 없는 지원자를 선호하는 대학들이, 이처럼 어른스러움까지 드러내는 자소서를 아주 마음에 들어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어떤 답안(경제학과 지원)은 "매몰 비용"에 대해 학생으로서 깊은 사고를 해 보았음을 토로한 것도 있었습니다. "고기 뷔페 식당에 가서, 배가 터지게 먹는 것은 결국 비이성적인 선택이니..." 그런데 이 경우처럼, 지불과 효용이 밀접하게 시간적으로 닿아 있는 것을 "매몰 비용"으로 포섭하는 건 오류죠. 계획과 실행이 근접할 때에는, 갑자기 신체적 조건이 악화되거나 한 게 아니라면, 처음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각 대학의 특성을 파악하자
현 재 자소서 전형이라고 명칭을 달고 있는 대학은 없습니다. "21세기 인재 전형", "프론티어 전형", "다빈치 전형".. 이렇게 이름이 다양하다는 건, 그 전형에서 중시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말도 됩니다. 어느 대학에 지원하려면, 그 대학이 학생의 어떤 면을 보는지부터 알아야 하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대학의 전형 취지를 꼼꼼히 읽고, 자소서의 개요를 구상해야 합니다.
이 책에는 대학이 잘 묻는 질문의 특성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평소에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해 적어 보라든가, 대단히 특이하게도 "지원 동기 중심으로 대학이 학생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적으라는 문항도 있었습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할 줄 아는지를 묻는 것도 되며, 아울러 왜 스펙에 치중하면 안 되는지, 대학의 선발 동기를 학생에게 처음부터 알리려는 의도도 됩니다. 이런 게 잘 맞지 않으면 그 대학에 자소서 전형으로 입학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부록에는 각 대학의 구체적인 자소서 양식이 나와 있어서, 지원자의 작성 실전에 감각을 더 잘 살려 주는 포맷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첨삭자의 느낌이 생략된, 원문 그대로의 모범 답안이 본문과 중복 없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저 희 때에는 그저 수능 점수로 학생을 뽑았으며, 수시 전형이라고 해도 그 대부분은 역시 내신이나 수능 점수가 선발의 기준이 되었어요. 기업체 취직 말고는 자소서라는 걸 써 볼 일이 없었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미국이나 유럽처럼 그 학생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자소서를 통해 대학에 가기도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물론 수능 최저 조건도 만족시켜야 하고(이게 없는 전형도 있죠), 내신도 잘 관리해야 하지만, 자소서의 비중이 이렇게 높아진 건 새로운 추세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새삼 "나는 누구인가?"를 점검하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 읽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또한 바람직한 글쓰기란 과연 무엇일까.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환경과 가정 형편에서 자라나서, 결국 같은 대학에 입학하기도 하는구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팀 - 어떻게 탁월한 팀이 되는가
코이 뚜 지음, 이진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990년대부터 한국 직장에도 연공 서열, 직제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의 "계급 파괴" 바람이 불었습니다. "OO부 XX과"라는 소속 대신, "∆∆ 팀"과 같은 성과 위주의 유닛이 일상화되었죠. 심지어는 공식 직제가 큰 의미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팀제나 다름 없는 구조였던 중소기업이나 영업팀 같은 곳에서도 (그 실질이야 어찌되었던 이름만이라도) 이를 따라했습니다. 이런 트렌드에서 완전히 무풍지대일 것 같은 공무원 사회, 공기업에서도 현재는 "태스크 포스"제를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팀 개념"은 자유로운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하는 서구 사회에서 그 효용이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지만, 한국이나 일본 같은 유교, 농경사회적 전통을 보유한 곳에서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습니다.

본디 서양은 "슈퍼맨"을 지향하면 했지, 집단에 개인을 매몰하는 문화는 기피하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팀을 짜서 일하면, 동양인들(공, 사 불문)보다 더 높은 효율을 내곤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성향이 "팀 활동"에 맞아서가 아니라, "팀"을 잘 짜고 잘 굴러가게 하는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팀" 중에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여기에는, 개인 단위로는 아예 성취가 불가능한 것도 포함됩니다), 도무지 달성이 불가능한 높은 실적을 올리는 "드림팀, 슈퍼팀"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드림팀이 슈퍼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드림팀이 다 슈퍼팀이 되는 건 아닙니다. 슈퍼팀은커녕, 평범한 팀보다도 못한 성과를 내고 온갖 비난을 다 받는 드림팀도 많았습니다. 이렇다면, 구성원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그들로 이뤄진 "팀"까지 잘하란 보장은 없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 최소한 남들이 전혀 바라보지도 못했던 일을 해 내는 팀은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내기보다, 최근에 존재했던 슈퍼팀의 성공 사례 7가지를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응용할 수 있는 답안의 pool을 제공합니다. 각 챕터는 "슈퍼팀" 하나씩을, 경영 분야뿐 아니라 군사, 대중문화, 스포츠 경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택하여 그 구체적인 성과의 경위를 자세히 풀어주고 있으며, 챕터 말미에는 이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교훈을 명제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장에는 픽사의 사례가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첫째 장에서 굳이 이들을 다룬 데에는 저자의 분명한 동기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픽사의 예에서 우리가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대체 왜 팀이 필요한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공동의 목적이 없다, 팀을 꾸려서까지 이뤄야 하는 열정의 대상이 없다면, 처음부터 팀제를 검토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죠. 또한, 활동 영역이 아무래도 예술 분야다 보니, 영화를 위해 일을 하느냐(-돈을 버느냐), 그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느냐 같은 기초 인식에서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이 "팀 픽사"의 예에서 금전적 보상은, 빼어난 개인의 동기 유발을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뒤 챕터들에서도 나오는 포인트이지만, 너무 단결이 잘 되고 대외적으로 순조롭기만 한 팀도 지속성 이슈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긴장감은 팀의 건강성 면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테니스에 데이비스 컵이 있다면, 골프에서 국가(미국 대 유럽의 형식입니다만) 대항전으로는 라이더 컵이 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에는 복식이라는 형식도 있지만, 골프에서는 압도적으로 개인 단위의 시합이 주류 포맷입니다. 게다가, 골프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개인 멘탈 조절의 비중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직업 골퍼들은 극도로 예민한 감정적 성향을 보입니다. 이런 골퍼들로 한 팀을 꾸린다면, 팀웍이니 매니지먼트니 하는 게 타 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 꼬입니다. 그런 면에서 콜린 몽고메리가 중심이 되어  2010년 라이더 컵 대회를 위해 결성했고, 결승전에서 미국 팀을 맞아 극적인 승리를 거둔 사례는, 경영학적 측면에서도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가 지금 피파 월드컵을 보면서도 알 수 있지만, 개인기가 능숙하다고 반드시 팀에 적시적소의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며, 단 한 번의 슛으로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승부차기를 잘 해내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선수들로 이뤄진 팀일수록, 그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콜린 몽고메리는 그 자신이 필드 멘털의 달인이었고, 이런 체험과 소신, 강렬한 스타일로, 상대에 비해 그닥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전력으로 승리했습니다. 특히 그가 타이거 우즈에 대해 코멘트한 걸 눈여겨 볼 필요가 있더군요.

전쟁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전쟁이 꼭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미 터진 전쟁이라면 그냥 손 놓고 패배하는 게 최상의 선택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전쟁의 "승리"는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한 명(혹은 소수)의 힘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게 전쟁이요, 평화시에는 이 전쟁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 게 범죄자 소탕, 폭력 진압, 인질범으로부터 인질 구조 같은 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세번째로 다룬 게, 1980년 주영(駐英) 이란 대사관에서 이란 내 쿠제스탄 분리주의(이란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이런 위험이 상존합니다)자들의 인질극이었습니다. 여기서 영국 툭수부대 SAS는, 놀라운 능률과 과감한 작전, 치밀한 계획으로 인명 손실 0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SAS는 영국군 뿐 아니라 전세계 군사조직 중 최고의 명예를 상기시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시사하는 교훈은 강렬했는데요. 최고의 팀은 결코 개인의 개성을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난척하고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을 과시하고, 더 날카롭게 갈고 다듬을 것으로 조장됩니다. 그러면 과연 팀이 유지가 될까? 이 스쿼드는, 워낙 빼어난 개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스킬이나 체력만으로는 분명한 우열이 안 갈라집니다(구태여 가를 필요가 있다면 말이죠). 따라서, 조직원으로서 추앙받을 수 있는 기준은, 같은 동작을 수행해도 그 동작이 가능하면 팀을 위한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느냐입니다. 잘하는 건 누구나 다 잘합니다. 더 잘하는 팀원은, 같은 노력을 들여도 팀의 다른 구성원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선택한다는 점을, 우리는 이 사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팀 때문에 개인을 죽이는 우를, 이 슈퍼팀은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많은 "엉터리 팀"은, 무능한 팀원을 피곤하게 만드는 우수 팀원을 기를 쓰고 끌어내리려고만 들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팀은 결코 개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룹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와 대조되는 컬러로도 유명하지만, (그 음악적 성취의 레벨은 별론으로 하고) 비틀즈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멤버가 거의 다 살아 있으며, 개인 단위로 활동하기보다(이 정도 나이면 팀은 고사하고 개인 단위 활동도 어렵습니다. 물론 롤링스톤스의 이 빼어난 멤버들은 개인 활동도 합니다) 여전히 팀을 이루다시피 한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뮤지션들이야말로 세상과 융화를 못 이루는 가장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임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일이죠. 우리가 잘 알지만 믹 재거니 키스 리처즈니 하는 사람들이 인간성은 또 좀 괴팍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도 무려 반 세기를 잘 "굴러 온" 비결이 과연 무엇인가? 실제로 이 책에 나온 바로도, 믹과 키스는 불과 얼음이라 할 만큼 상극이었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제 스타일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하나의 요령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은근히 강조한 건, 로니(론) 우드의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개성이 내 개성과 실제로 충돌만 안 한다면, 그냥 보기 싫다는 이유로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는 게, 이 무지막지한 개성이 모인 팀이 그리 오래도록 굴러간 비결이라는 거죠. 이 챕터는 "공연은 열심히 하는데 돈을 못 버는" 초기의 실패에서 시행 착오를 거쳐, "인기와 공연 성공을 고스란히 수입으로 연결시키는" "사업 단위로서의 롤링스톤스"가 커 나가는 모습도 알려 줍니다(이 책의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흥미로운 대목).

요즘 잠잠한 동네가 있습니다(더 시끄러워진 우크라이나, 이라크 같은 데도 있지만). 바로 북아일랜드입니다. 요즘 "신페인당"이니 IRA니 하는 말은 아예 뉴스에 안 나옵니다. 이유는 바로 지난 세기말,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이 잘 체결되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백년(최소한으로 잡아서요) 불구대천지 원수들이 이런 극적인 화해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토니 블레어 행정부가 구사한 전략은 1) 상대를 악마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 2) 그 자리에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대신 채움 3)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되, 억지 화해가 아닌, 대립하는 현실의 긴박함도 상기하게 함 등의 모범적 수순이었습니다. 원칙은 알아도 실천이 어려운데, 토니 블레어 팀은 분리주의와 연방주의 세력 대표자들을 한 데 모아, 이들을 "평화'라는 공통 목표를 추구하는 "팀"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팀은 이처럼, 종래의 피아 구분을 극복하는 인식상의 도약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배울 수 있는 바는, 억지로 개성을 누르는 선택은 필패로 이끌어진다는 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초 안에 떠오르는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 비밀 - 끊임없는 성장을 위한 전략적 브랜드 관리 와튼스쿨 비즈니스 시리즈
바바라 E. 칸 지음, 채수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내용은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알찬 지침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상당수는 실제 기업의 경영 사례입니다만, 사례 중에서도 타 상황에 교훈으로 적용할 수 있는, 꽉 찬 사례가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사례로부터 추출하는 명제 역시, 익히 들어왔던 것이지만 맥락 속에서 또다른 의미를 지닌 것들이 많아서, 밑줄 쳐 가면서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브랜드"란, 소모품과 동반자 사이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쥐틀, 철못 따위를 사면서 브랜드를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난 세기만 해도,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에는 소모품이 브랜드품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허나 지금은 대중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이에 따른 욕구 수준도 높아졌으며,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까닭에, 기업은 "판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再考)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만들고 나서 팔리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무엇을 소비하고 기대하는지 미리 예상하고, 타 기업에 앞서 시장을 선점하고, 선점에 앞서 아예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브랜드 하면 바로 이것이 떠오를 만큼, 컨셉과 개성, 스토리를 모두 갖춘 브랜드를 개발하는 게,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성공하는 브랜드, 로컬을 넘어 글로벌 스케이프에서 선전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수 사례를 통한 개발상의 중요 포인트를 잘 짚어 주고 있습니다. 흔히, "내가 브랜드를 만들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런 고민을?"이라고 하는데, 직장인이라면 회사(나아가 CEO)와 고민, 그에 따르는 전략 개발에 동조 동감할 줄 알아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거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이 시대 기업의 화두 "브랜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선 저자는 "우수한 브랜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에는 더 이상 강조가 식상할 만큼 유명한 사례로서 애플이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신기한 건, 1990년대 말만 해도 애플은 "고립적 브랜드. 타 제품과 호환이 안 되는 소수 마니아(이게 중요하죠)만을 위한 제품"으로 학계와 언론계에서 찍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성공을 위한 모범으로 아예 공인되고, "소수 마니마 운운"은, 시대를 앞서간 하위 세그멘테이션 전략이 지구를 제패한 대성공 모범"으로 180도 바뀌어 있습니다. 경영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자발적 관심 유발은 아무 소용이 없는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기도 하지만, 캘빈 클라인의 유명한 광고("CK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잘 말해 주듯, 효과적으로 소비자의 머리에 각인된 이미지는 언젠가 제 역할을 해 줄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선명한 이미지입니다. 추상적이어도 괜찮고("코크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같은 건 아무 효용도 주지 않습니다만, 대단히 성공한 카피입니다), 기능적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 책 2장에 나오는 에스티 로더의 브랜드 "오리진스"이 사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에스티 로더는 처음에 "오리진스"를 백화점 매장에서 다른 고급 브랜드와 경쟁하는 강력한 하위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좀 엉뚱하게도 "friendly fire"를 맞게 되는데, 시청자(따라서 소비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오프라 윈프리가 자기 쇼에서 "나는 욕실에서 '오리진스'를 쓴다"고 발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지도 않은 "지원"은 업계에서 큰 행운으로 여겨지지만, 에스티 로더 측은 오히려 당혹해했습니다. 그들이 지향한 브랜드 이미지는 고급품 레벨에다 다양한 기능성의 스펙트럼을 지닌 제품군이었지만, 오프라의 저 발언은 "아로마 제품" 정도로 이 브랜드의 컨셉을 훼손(나아가 오염)시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브랜드 전략이란, 일관성과 선명한 이미지의 각인이 그 핵심입니다. 일시적 판매 증가에 일희일비할 게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차별화 전략입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비슷비슷한 표준적 제품의 제조가 성공의 비결이었다면, 현대의 시장이 지난 시절과 확고한 선을 긋는 부분이 비로 이 대목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차별을 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한 차별이냐, 또 어떻게 수행하는 차별화인가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라고 하는군요.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다음 질문은
"그게 시장(하위 세그먼트)에서 중요한가?"
"당신이 비교하는 대상(경쟁 상대)은 누구인가?"
라고 합니다. 참 정곡을 찌르는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지셔닝에 대한 백 가지 정의, 천 가지 사례 열거보다 이 질문이 가르쳐 주는 바가 더 많습니다.

그런 고민을 통해 창출된 브랜드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 여러 논의와 주장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정평 있는 "인터브랜드 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분야는 전통적으로, "추상적이고 구름 잡는 논의"라며 일부 기술만능론자에게 비판 받아 왔지만(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이론적 발전이 워낙 현저했기 때문이죠), 예컨대 회계학에서도 영업권 같은 것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합니다. 인터브랜드 시스템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이익"과 "브랜드의 강도"를 곱해서 종합 가치를 측정합니다. "이익"을 산출할 때에는, 과연 창출된 소득의 몇 퍼센트 정도가 브랜드의 기여인지를 염두에 둡니다. 향수는 95%, 호텔은 30% 정도가 해당 산업의 평균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강도"의 측정에 있어서는, 이익(현재, 잠재)과 위험을 동시에 낮추는 게 그 핵심 지표이자 지향점입니다. 보통 수익과 위험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인데, 브랜드 젼략은 이런 "상식에 반하는" 결과를 안겨 준다는 점에서 기업의 관심사가 됩니다.

이 책은 기존 마케팅 교과서에서 많이 강조한 개념들이 충실히 잘 정리되고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정통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편입니다. "브랜드 확장", " 마케팅 믹스  4P" 등등... 그런 중에서도 최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실감나는 서술과 유기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의 머리에 오래 남게 하는 게 두드러진 장점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호텔 종합 체인인 메리엇 그룹의 사례에서 처음 들어보거나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서울 강터에도 있는 JW 브랜드가 그런 전략적 지향점을 지니는 줄은 처음 알았고요. 시계로 유명한 불가리 브랜드가 벌써 이 기업에 넘어간 사실도 처음 접했습니다. 여러 모로 유익했지만. 다만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도 발견되는데요, 이를테면 P&G의 사례에서, 지나치게 많은 컨셉의 창출로 인해 오히려 총 점유율이 줄어든 결과를 지적합니다만, 과연 어디까지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어디부터가 그 초과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 설명은 없습니다(그저 결과론이죠). 또한, 21세기 폭스 사의 사명 변경은 오히려 브랜드 고수 전략의 예로 들어져야 맞습니다. 이름이 바뀐 건 루퍼트 머독이 새로 만든 모회사이며(따라서, "바뀌었다"고도 할 수 없죠), 영화 제작사는 아직 "20세기 폭스" 그대로입니다. 고민고민 끝에 원 명칭을 유지한 경우인데, 사실 모회사의 작명이 더 비판 받는 사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