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왜 밤에 잠 못 드는가 - 심리학자가 풀어낸 현장 리더들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의 해법
니콜 립킨 지음, 이선경 옮김 / 더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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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대통령은, 최전방에서 국적을 주시 경계하는 최고 책임자의 절대 고독을 한스러운 어조로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운영하는 업체 그 규모의 대소에서 차이가 날망정, 자기가 책임진 수백 수천 명의 피용인, 그 생계와 가족, 장래까지 두 어깨에 지고 있는 사장님들 역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저런 종류의 책무를 지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국가 원수라고 해 줄 만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왜 경영주들은 그리도 많은 몫을 갈무리해 가는가?" 그 답은 하나입니다. (물론 일부 악덕 경영자, 사주도 있겠으나) 책임 있는 지위의 부담과 무게는, 말만 편히 할 뿐인 관전자의 깜냥이 감당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죠.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그런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Buck Stops Here!" 책임은 모두 이 내가 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책은 사장님들의 고충담을 묶어서 수기 형식으로 내기라도 한 책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책이라면,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이 특별히 양심적이기라도 해서, 마음 속으로나마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착한 직원이거나, 아니면 지금은 일개 평범한 학 부생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사업체를 알토란같이 경영하고 싶은 미래의 사장님이거나 한 독자가 읽으면 좋겠죠.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아니라, 리더십에 관한 책입니다. 어떤 사람이라야, 작게는 자신이 속한 부서나 팀을 잘 통솔할 수 있고, 크게는 제 사업체에 자신이 채용한 직원을 잘 부리고, 충성하게 하며, 그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 회사에 기여하게 할 것인가, 이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경영자가 될 사람 아니면 읽을 일이 없는 책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또 누가 읽으면 좋은가, 뭘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직장에서 인간 관계가 매번 꼬여서 풀리지를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주로 직장입니다. 학교나 기타 1차적 관계, 연인 사이의 갈등 등은 이 책의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성격이 나쁘지도 않고(성격 나쁜 사람이라면 심리 치료를 받거나 자신이 각성을 해야 하지, 이런 책을 읽어서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성실한 관계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안 풀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에는, 요즘 소시오패스, 싸이코패스 관련 논의가 많은, "관계의 조작자(operator)"에 대한 논의도 짧게 다루고 있습니다(다만 범죄심리학적 관점의 소시오패스 개념이나 접근론은 피하고 있습니다). 매력도 능력도 충분한데, 그를 미끼로 삼아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이익만 취하고 껍데기만 남긴 채 냉혹히 버리는 유형에 대해, 어떻게 간파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가르쳐 줍니다.


리더십을 책의 논의 출발로 삼았지만,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론 워크북으로 이용해도 될 만큼 다루는 범위가 넓습니다. 각 챕터의 제목들도 독자의 구미를 확 당기게 잘도 뽑아냈습니다만, 읽어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일이, 성실히, 맞춰 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론"이라고 하니까 대학 학부 시절 배운 그 고리타분한 나열식 이론이 아닌가 생각하실 분들도 있는데, 아닙니다. 이 저자는 책의 전권에 걸쳐, 언제나 CEO로서 자기가 겪은 진솔한 개인적 체험을 논의의 실마리로 삼는데, 그것도 우리더러 친숙하라는 건지 주로 실패담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직접 겪은 실패담이 아니라면, 예컨대 악덕 기업주나 극단적 개인 플레이어인 직원을 모델로 두고 열심히 "뒷담화를 까는" 재미가 또 있습니다. 딱딱하기 쉬운 리더십이론, 기초 인간관계론을 실례(자기 주변의)를 통해, 부담 없이 들려주는 게 이 책의 강점입니다. 저자는 문학적 창작력도 높은 편인지, 자기가 직접 지어 낸 이상한 우화를 곳곳에 삽입하기도 합니다. 이런 분과 실제로 같은 자리에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겨운 분위기일 것 같아요. 편집도 깔끔하고 최신의 사정, 세태 반영이 이뤄진 참신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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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홀리데이 (2013~2014년판, 휴대용 맵북)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3
이동미 지음 / 꿈의지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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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예쁘고 실용적인 여행 서적이 많이 나오죠? 수수한 외모에 불필요한 장식적 서술을 일절 배제하고 영양가 있는 정보만 잘 추려 산뜻한 책으로 꾸며 내는 데에 재능이 뛰어난 이동미씨가 쓴 책입니다. 여행서적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책도 사이즈가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작고, 무게가 가벼우며, 좋은 질의 종이로 내용을 꾸렸으나 눈이 피로하지 않은, 쓰임새 만점의 여행 서적입니다.


이동미씨는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모두 B로 시작하는데, 다만 이스탄불이 예외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이고, 그 이전의 라틴 식 이름은 "비잔티움"이었는데, 이 이름이 다름 아닌 B로 시작하죠. 결핵 유병률이 세계 1위인 불명예스러운 구석도 있습니다만,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유산을 간직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의심의 여지 없이 B로 시작하는 방콕은 어떠한가? 방콕 가이드북은 많은 종류가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만, 이 이동미씨의 책은 과연 빠질 게 없는 알짜 정보로 잘도 묶어 놨습니다. 한 번도 현지를 다녀 온 경험이 없는 분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라도 될 만큼, 이러이러한 게 필요했는데 마침 이 안에 다 있네?싶은 정보가 가득하고,  한 번이라도 다녀 온 분이라면, "그때 그랬어야 했구나.", " 맞어, 딱 내 심정을 대변하네?" 같은 생각이 들 만큼 공감을 유발합니다. 일부 몰지각한 어글리 코리언들(주로 나이 든 분들이죠) 때문에 여러 부정적인 연상이 겹쳐지기도 하지만, 방콕은 오랜 세월 동안 불교를 숭상한 왕국이 그 터전을 잡아 온 유서 깊은 도시이며, 열대의 기후가 빚은 풍광의 아름다움이 비할 바가 없으며, 일부 매춘부나 악덕 상인을 제외하곤 사람들의 심성이 착하고 순한 고장입니다, 최소한 베트남 사람들보단 순박합니다.


저는 거기에 묵어 본 적이 없지만, 모든 방문객들의 로망은 "더 시암 호텔"이죠. 여행을 가서 특유의 자연 픙광이나, 오랜 고적, 건축물, 랜드마크도 아닌 고작 럭셔리 호텔을 로망으로 삼는다고 하면, 속물 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다시 찾는 방콕이라면 (노래 가사대로) 원 나잇이라도 방콕에선 "그 시암"에 머물고 싶습니다. 영어로는"사이암"이라고 읽는 이 이름은, 한번도 독립을 잃지 않았던 고왕국의 옛 명칭이죠. 이에는 동남아인 특유의 강한 자부심도 깃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푸드 로프트, 역시 관광객들 사이에 명성이 높은 곳이죠. 저도 한번 들어가 봤습니다만 너무 번잡한 탓이었는지 과연 명성과 비싼 가격에 맞는 서비스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세심히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처럼, 이 카드를 분실하면(정신 없어서 그런 일 벌어지기 딱 좋습니다) 최고 한도액을 다 물어야 합니다. 방콕은 또 특이한 게 방 크라차오라는 섬(정확하게 말하면 반도입니다)이 있어, 도심으로부터 배를 타고 조금 가거나, 그 협로를 통해 이동하게 됩니다. 우리로 따지면 여의도 같은 것이, 영등포나 반포에 한 꼭지가 붙어 있기라도 한  모습으로 생각하시면 되죠. 이 방 크라차오는 차오 프라야 강이 휩싸고 있습니다.


여행서는 사전 계획을 세울 때뿐 아니라, 현지에서 휴대하기에도 편해야 합니다. 여행서는 정보 취득이 우선 목적이라서 정작 급할 때 도움이 안되면 쓸모 없죠. 이 책은 차분히 즐거운 마음으로 계획을 짤 때도 유용하고, 더 알찬 여행이 되기 위해 다음번에는 휴대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누구에게나 강추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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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아는 삼성 안에서 배운 삼성 - 삼성전자 조 대리의 생생리포트
조승표 지음 / 아이넷북스(구 북스앤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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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의 입사란, 요즘 전 국민적 열망의 대상입니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만 하면 장래가 보장되고, 주위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 어려운 입사의 관문을 통과했으니 만큼 능력이나 인물의 품격이 이미 검증 한 단계를 통과했다는 말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내부 사정을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공채 단일 기수에 뽑는 인원수도 적지만, 이른바 "별을 다는" 임원의 수는 더 적고, 다들 뛰어난 사람들만 모이다 보니 실적 경쟁과 신경전도 장난이 아니죠. "정치"는 정치대로 잘 해줘야 합니다. 정년 보장? 꿈도 못 꿉니다. 웬만한 인재도 이런저런 곡절로 결국 임원 승급에 실패하면 결국 처량하게 짐 싸서 나가야 하죠. 삼성 경격이면 어디서건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편차가 큽니다.


이 책은 이런 말못할 뒷사정까지 다 담은 책은 아닙니다. 갓 입사하여 아직은 삼성의 푸른 피가 자기 온몸에 흐르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그 감격에 젖어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일 시절의 풋풋한 대리가 쓴 책이죠. 저자는 스스로를 말하길, 똑똑한 줄 알았으나 고교 시절 공부를 소홀히한 "죄로" S대 정도에 입학하는 데 그쳤고, 따라서 삼성 같은 꿈의 직장에 들리라곤 기대를 못 할 처지에서, 패기와 자신만의 메리트를 내세워서 당당히 입사에 성공했으며, 지금도 하루하루를 성취의 기쁨과 배우는 보람으로 살고 있음을 즐겁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하루하루가 익사이팅했던 삼성에서의 근무 실기를 적어 놓고 있습니다. 입사를 갓 마친 사원은 기초 연수를 받고, 다음으로 거치는 게 OJT입니다. 온더 잡 트레이닝의 약자로서, 현장에 배치되어 실무 감각과 직원들 사이의 분위기를 익히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물론 급여를 지급받는 정식 직원으로서의 근무의 일환입니다만, 새내기로서의 긴장이나 설렘, 미묘한 호승심이나 공명욕 같은 건 또 이때에만 느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사람에 따라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직원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이 저자분에게는 아주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나 봅니다. 사실 SKY출신들은 이런 분위기를 꼭 반기지만은 않죠. 저자분의 표현을 빌리면, "애사심이 팍팍 생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저자는 아직 나이가 어린 편인데도, 항상 이런 책 한 권을 저술했으면 하는 계획을 심중에 지니고 있었나 봅니다. <입사 후 3년> 같은 책을 쓴 신현만 씨의 말을 인용하는 품을 보면 그런 게 느껴집니다. 책 곳곳에서 암시되지만, 저자는 머리가 특별히 스마트하거나, 혹은 스타일이 훤칠해서 삼성에 들어 온 케이스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의 존재 가치는 거기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인생인데, 자기만의 열정과 패기, 비전만 간직하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직장이 삼성이고, 또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난 사람들, 걸출한 인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자아실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을 책을 통해 심어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 꿈이 어디까지 이워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세상은 본디 긍정의 마음가짐을 갖고 노력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 주게 마련이죠.


"개인의 가치는 그가 속한 조직의 가치로 대변된다. " 이 문장 하나에서 그가 현재 자신의 아이덴티티 한 부분에 대한 프라이드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자는 자신뿐 아니라, 같은 직장에 소속한 닮고 싶은 상사, 선배, 그리고 자신이 아끼고 탐내는 후배들의 유형을 하나하나 책을 통해 소개하고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이 사람은 소속 조직을 대외 과시용이 아닌, 주변에서 자기 인격, 정체감과 결정적 팩터에서 교집합을 이루는 그 모두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죠. 삼성에 들어와서 대단한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이니까 삼성 같은 좋은 직장에서 뽑아 오는 겁니다. 그가 무난히 회사 생활을 이어 가서, 모두가 우러르는 별까지 달아 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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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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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에서 요즘 박경리, 이어령 등 거장의 라이브러리를 한 권 한 권 예쁘게 복간하고 있습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을 감명깊게 읽었으나, <디지로그>의 선구성(?), 전위성(!)에는 다소 피로감을 느꼈던 저라서, 이어령 선생의 최신간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선생의 1980,90년대 "고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2008년에 나온 책이더군요. 이 마로니에북스판은 그 08년판의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요즘 통섭이라는 단어, 개념, 그리고 그 실천적 캠페인이 유행입니다만, 선 생은 이미 그 한참 이전부터 통섭을 몸으로 꿰고 글로써 그 빛나는 지성의 결과물을 다 지면에 옮긴 놀라운 철학자, 인문학자이면서도 문학 부면의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죠.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한국보다 저 일본에서 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였을 그때의 선생은, 오히려 복고적인 소재(그러나 아무나 다루기 힘든)를 저술의 테마로 삼아, 그 분석이 대단히 어렵고, 그 소통이 상당히 까다로울(타민족에게 그 개성이 뭐라며 깨우치는 작업이니까요) 작업을 해내었습니다.


선생은 기이하게도, 연세를 드시고 난 후 오히려 최첨단의 과학(자연, 사회, 기술 분야 두루)에 더 큰 천착을 보이시는 듯합니다. 이 책이 이처럼이나 최근에 저술되었는데도 제가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고(저의 무신경), 08년 기준으로 어언 76세에 달하는 연령에 이처럼 치밀하고 시세의 첨단 변화를 다 소화한 그 지적 능력에 놀랐습니다.


통섭 이전에 이미 당신 개인이 통섭 자체였기에, 작금의 학제간 연구이니, 콘실리언스이니(선생은 특유의 날카로운 영어 감각으로 "있지도 않은 단어를 만들어..."라시며 은근 마득찮은 심기를 노출하기도 합니다), 또 경계허묾(경제 경영 분야에서의)이 니 하는 것들이, 그 출현 즉시 즉각의 이해로 다가오셨을 듯합니다. 이 책은, 요즘 출판, 독서계의 트렌드를 최소한 4, 5 년 앞서 내다보고, 그 흐름을 우리 전통의 인문개념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원. 융. 회. 통"이 그것입니다.


책 어디 하나 버릴 구석이 없을 만큼 명언 명구 명논설로 가득합니다만(요즘도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삼국지가 아니라 이 책을 읽혀야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네요),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대칭성과 융합성에 대한 논급 부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국 장은 전통적으로 쌍두독수리인데, 이는 대칭성을 지나치게 따르다 보니 초자연적 기괴성으로 추락했다는 게 선생의 견해입니다. 대칭성을 희생하고 자연스러움, 나아가 평화 지향을 선택한 것이 미국의 일두 독수리(모양으로는 그러하나, 이 독수리 역시 "쌍두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이죠. 전근대성과 근대성 사이에서 후기근대성(선생의 표현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말로는 "포스트모던"이죠)이 탄생함을 예증하며 선생이 이 뒤에 바로 들고 나오는 건 우리의 "태극"입니다. 태극은 대칭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칭보다 안정적이면서, 대칭의 편협성, 고정성을 극복하고 변화무쌍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칭보다 우월합니다. 태극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조화를 해치지 않습니다.


선생은 불의 파괴성, 소모성보다, 물의 유연성, 순리성을 강조합니다. 바뀌는 세태에서 새로운 세대는 고체의 고정성을 지닐 게 아니라, 물처럼 주변에 융합하고 천변만화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정부의 치수 정책을 거론하는 대목이 나왔기에, 저는 여기까지 읽고 비로소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저작임을 알았습니다. 더 앞선 시기의 저술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은 것이, 선생은 당신 자신이 이미 통섭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게 없고, 그 아는 바를 하나의 관점과 시야로 꿸 수 있는 초인적 능력을 갖추었기에, 5년 전에 나온 책이 최신간 자계서마냥 감각이 새로운 거죠.


선생은 또한 선형성 체계에서의 탈피를 강조합니다. 최근 제가 읽은 <안티프래질>에서도, 역동과 발전을 위해서는 선형성의 지양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선생의 이 저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더 앞선 시기의 작품인데도요). 벌써 1990년데에 쪽거리(프랙털) 이론, 카오스-퍼지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인식의 지평선이 확장되었는데요. 우리도 이런 흐름에 마냥 뒤떨어진 건 아니라서 당시에도 퍼지 세탁기, 자연풍 선풍기가 나왔음을 선생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 원융회통,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맞서 이분법, 흑백논리의 극복을 또한 강조합니다. 융합과 조화, 다이내믹 변증법의 시대에 진영의 논리를 들고 나오는 자체가, 젊음의 속성. 본질을 배신하는 패착이라는 겁니다. 선생 말을 인용하면, "늙으면 어차피 세월의 풍화에 못 이겨 자연스럽게 한 쪽으로 기울 텐데, 새파랗게 젊어서 곡예하듯 균형 유지가 가능한 그 좋은 나이에 뭐하러 늙은이의 흉내를 내느냐."는 거죠. 이 책은 주로, 이제(08년 기준) 갓 대학에 입학한 파릇파픗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큰 인재가 되고 싶고 정신적으로 자유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기존의 낡은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통합과 조화의 이데아를 지향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을 보죠. "젊음의 탄생"입니다. 젊음은 사실 그 모습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 유아성, 미숙함 따위가 한 단계의 변태를 겪어 이행하는 다음 단계입니다. 그러니 젊음은 꽃이 때가 되면 피고 지듯, 자연의 순리로 다가오는 거지 어느 순간의 탄생을 요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굳이 이 젊음을 두고 "탄생"이라는 술어를 부착하고 있는데요. 이는 젊음이 물리적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역량과 본질의 건강성, 나아가 포텐셜의 생산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늙고 고루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그건 이미 젊음의 자격이 없다는 점에서, 저 같은 세대에게 많은 자성을 마련해 주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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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젊은 작가 03  문학성다양성참신성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이 펼쳐 가는 경장편 시리즈

 


 

 

 

“어느 오후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윤고은이 펼치는 전혀 새로운 상상력

‘재난 여행’ 상품 수석 프로그래머 ‘고요나’의

기상천외하고 스펙터클한 재난 사용법

 

 

 

  윤고은이 마지막으로 남겨 두고 싶었던 유토피아와 결별하는 소설적 공간이며

지독한 현실의 중압감을 다른 방식으로 허구화한 첫 작품이자 자신의 어떠한 문학적 기록을 거절하는 첫걸음.

단언컨대 『밤의 여행자들』은 윤고은의 소설적 세계의 전회이자 또 다른 도약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우리는 『밤의 여행자들』 이후 달라진 윤고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강유정(문학평론가)

 

 

 

“상상력이라는 것이 근거 없는 공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 인가, 라고 하는 절박한 인식의 방법임을 분명히 보여”(문학평론가 김경수) 준 소설가 윤고은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 소설의 밀도는 더욱 깊어졌고, 상상력의 자기장은 더욱 넓어졌”(문학평론 가 이명원)다.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이 ‘오늘 의 젊은 작가’ 03으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1인용 식탁』 이후 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 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단언컨대 『밤의 여행자들』은 윤고은의 소설적 세계의 전회이자 또 다른 도약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우리는 『밤의 여행자들』 이후 달라진 윤고은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상찬했다. “기발한 인공 현실의 창안과 신랄한 현실 비틀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해 온 작가 윤고은의 아주 특별한 재난 여행기”(문학평론가 백지은)이며, 또한 EBS 「라디오 연재소설」 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작품이기도 한 『밤의 여행자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보다 더욱더 놀랍고 독특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경험케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독자들이라면 단언컨대, 진한 감동과 전율의 소용돌이에서 한동안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 기상천외하고 스펙터클하며 버라이어티한 윤고은의 아주 특별한 재난 사용법

 


재난으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 여행’ 상품만을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의 10년 차 수석 프로그래머인 주인공 ‘고요나’.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그녀가 이번에 향한 곳은 사막의 싱크홀 ‘무이’다. 요나는 뜻하지 않게 여행지에서 고립되며 엄청난 프로젝트에 휘말리게 된다. 작가 윤고은은 어딘지 불미스럽게 재난과 여행을 한데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종말 의 위기의식, 묵시록적 음울함 등으로 채색된 흔하디흔한 종말 서사들 틈에서 윤고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은 확실히 자별한 데가 있다.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 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61쪽


윤고은은 재난 그 자체가 아니라 재난의 이미지가 상품이 되는 세상을 통해 묵시록적인 세계를 그려 낸다.

중요한 것은 윤고은이 그려 낸 이 공간이 단순히 재난을 추앙하는 종말의 묵시록 이 아니라, 그마저도 이미지로 소유하고 상품으로 소비하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섭리를 형상화
했다는 사실이다. 재난 여행이란 허구는 이곳의 현실보다 더 개연적이며 때로 핍진하다.여기의 일상이 정글의 각축장인지, 저기의 여행지가 정글의 미로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을 떠난 주인 공 요나와 함께 독자들은 ‘예기치 않은 하루’들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상품 사회의 풍속도에 민첩한 이야기인가 싶으면, 어느덧 설렘과 낯섦, 흥겨움이 생생하게 풍기는 여행기 안에 들어와 있다. 한 치 앞을 추측하기 어려운 사건, 사고 들이 드라마틱하게 밀어닥쳤다가는, 어느새 땅이 휘말려 들어가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추락하고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어 대는 재난의 한복판이다. 이 버라이어티한 소설을 횡단하는 동안 우리가 익히게 되는 것은 재난 대처법이 아니라 재난 사용법이다.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서자 곧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질문들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재난이란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자연의 재해인가, 인간의 파국인가. 재해의 ‘불운’과 그 불운이 비껴간 ‘행운’을 공존시키는 이 사태는 불가피하므로 공정한 것인가, 불가피 하지만 불공정한 것인가. 그 무차별성은 신의 섭리인가, 예기치 못한 운명인가. 혹은 그 차별성은 인간의 기획인가, 예기한 필연인가. 재난이라는 시나리오 안에서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엑스트라 인가. 누가 불행하고 누가 불행하지 않은가. 재난 안에서 ‘나’의 재난과 ‘남’의 재난은 구별될 수 있는가. 과연 재난이란 무엇이고 재난 아닌 것은 무엇인가. 정글은 어디이고, 또 정글 아닌 곳은 어디인가. 재난과 재건의 한복판에서 이토록 괴이쩍은 모험에 동승한 우리 모두에게 부디, 희망 있으라.

 

추천의 말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밤의 여행자들』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어디에도 있지 않은 이야기다. 책을 덮고 눈을 감으니 ‘무이’의 파도 소리가 들리고,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하늘의 별들이 그려진다. 소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섬무이를 배경으로 한다. 실재 하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미지의 섬. 무이의 풍경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질수록 그곳에서 벌어지는 음모의 윤곽도 뚜렷해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위협을 받기 시작 하면서 ‘요나’의 여행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람들이 조장한 무시무시한 사건을 외면한 채 나의 안위만 생각하던 등장인물들은 결국 인간이 꾸며 낸 일보다 훨씬 더 거대 한 힘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나 혹은 우리와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 장을 넘
길 때마다 퍼즐이 맞춰지듯 명확해지는 소설. 작가의 치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혜나(영화배우)


 

 

■ 작품 해설 중에서 


『밤의 여행자들』은 윤고은이 마지막으로 남겨 두고 싶었던 유토피아와 결별하는 소설적 공간 이며 지독한 현실의 중압감을 다른 방식으로 허구화한 첫 작품이자 자신의 어떠한 문학적 기록 을 거절하는 첫걸음이다. 단언컨대 『밤의 여행자들』은 윤고은의 소설적 세계의 전회이자 또 다른 도약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우리는 『밤의 여행자들』 이후 달라진 윤고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강유정(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북상하는 것.
고기압, 벚꽃,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황사, 파업, 쓰레기.


지난 한 주간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은 부음 소식이었다. 발인이 지나면 효력을 잃어버릴, 유 통기한이 짧기에 신속한 것.

소식이 시작된 곳은 경남 진해였다. 하필 벚꽃의 발원지와도 같은 곳. 어느 오후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꽃 마중을 갔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일광욕을 하던 건물도, 해변의 가로등도,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9~10쪽

그때 김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탔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요나에게 말했다.
“존슨이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군.”
“누구요?”
“존슨 말일세, 내 존슨.”
김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자신의 사타구니였다. 그곳은 21층에서 3층을 향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고, 김과 요나 두 사람만 있었다. 김의 손은 요나가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요나의 엉덩이였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고, 고의인 것을 들켜도 상관없다는 투의 몸짓이었다.
“자네 아직 젊지 않나? 근데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어?”
요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김의 손길을 피했다. 이번에는 김이 요나의 블라우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요나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김의 다른 모습을 봐서가 아니었다. 상사에게 성추 행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요나가 아는 바에 의하면, 김은 늘 퇴물들만 성추행 대상으로 삼았다. 옐로 카드를 받았거나, 곧 받을 예정인 사람들. 어쩌면 김의 성추행자체가 옐로카드인지도 몰랐다.      -18~19쪽


사막의 싱크홀은 5박 6일짜리 상품이었다. ‘무이’라는 곳이 목적지였는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인터 넷으로 조금 찾아봐야 했다. 무이는 크기가 제주도만 한 섬나라였다. 무이로 가려면 베트남 남부를 거 쳐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 공항으로, 버스를 타고 다시 해안 도시인 판티엣으로, 그리고 판티 엣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야 다다를 수 있었다. 왜 이 상품이 인기가 없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를 들여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다른 재난 여행 상품들보다 미약해 보였다.
상품 이름처럼 사막에 싱크홀이 생긴 것은 사실이고, 홍보물에 쓰인 설명처럼 그것은 꽤 ‘두렵고 슬 픈 풍경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게 지금은 호수로 변해서 딱히 무서워 보이거나 독특해 보이지 않 는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싱크홀’이라고 하면 적어도 2010년 과테말라 시티에 생겨난 깊이
500미터의, 도심 한복판을 강타한 괴 구멍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과연 이 지역이 그런 기대감을 충족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

재난이 한 세계를 뚝 끊어서 단층처럼 만든다면, 카메라는 그런 단층을 실감하도록 돕는 도구였다. 카메라가 찰칵, 하는 순간 그 앞에 찍힌 것은 이미 인물이나 풍경이 아니다. 시간의 공백이다. 때로는 지금 살고 있는 시간보다 짧은 공백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요나는 생각했 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은 이미 시작된 행보 를 확인하는 일일 뿐.                                              -33~35쪽

세상에는 하인리히 법칙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고 작은 수백 가 지 징조가 미리 보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재난의 발생에 주목한 것일 뿐, 재난을 당하는 사람 입장 에서는 그런 규칙이 있을 리 없다.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발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 그런 일. 그런데 그런 일을 인위적으 로 만들 수 있을까.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는 사진을 찍었죠. 원본을 카메라로 찍는 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서 별로 흥 미가 없었고, 그래서 전 그 반대를 하기 시작했죠. 사진을 보고, 원본을 복원해 내는 거죠. 한때는 인터넷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와서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했어요. 디카를 들고 와서 그대로 이미지를 복원 해 달라고 한다든지, 인테리어를 재현해 달라고 한다든지, 어떤 경우는 비슷한 사람들을 섭외해서 디카 속 졸업 사진 현장을 복원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이젠 재난 재해 쪽에서 일을 하죠. 싱크홀도 처 음은 아니에요. 모든 재난 재해가 다 신의 영역은 아닙니다. 그 밑에는 인간의 지분도 있게 마련이죠.”

(……)

“불안하지 않나요?”

“예술가에게 불안은 신발 같은 거니까요. 어딜 가든 걸으려면 신발이 필요하죠.”

“나중에 싱크홀의 원인에 대해 파고드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원인은 기초공사죠. 요나 씨, 난 아마추어가 아니에요. 싱크홀은 지하 암석이 용해되거나 지반이 약해서 일어나기도 하고, 지진 등의 내부 충격 때문에도 일어나고, 지하수가 고갈되거나 가뭄으로 땅 속이 메마를 때도 일어날 수 있죠. 그 모든 것들을 조합해서 원인을 만들었습니다. 탑 공사 말입니다.

 


저 탑이 우리의 알리바이가 될 거예요. 탑 공사 때 실제로도 사막에 많은 무리가 갔다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말이에요. 인공적으로 만든 건데도, 저 구멍들은 처음 우리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커졌어요. 직경도 깊이도 훨씬 커져 버렸단 말입니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쉽게 진행돼서 우리도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원래 싱크홀이란 게 석회암 지대에서 잘 발생한다고도 합니다만, 석회암이고 뭐고를 떠 나서 땅 자체가 구멍을 파는 데 그렇게 어려운 지질이 아니었어요. 이거 뭐 그냥 둬도 언젠가 진짜 뻥 뚫리는 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만치 솟아 있는 탑이 불안해 보일 지경이었죠. 반은 인
간의 노동력이, 그리고 반은 사막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거라고 봅니다.”

                                                                          -122~124쪽

무이는 각본대로 움직였다. 적절한 긴장감이 땅과 바다에도 찰기를 부여하는지 그물에 걸려드는 물고기들이 많았다. 어부들은 난데없는 풍년에 다소 놀랐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죽은 물고기가 가득 한 리어카를 끄는 사람들로 길이 조금 붐비기도 했다. 사막의 탑과 도로 일부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 식하듯 CC카메라를 매다는 사람들도 보였다. 경보기도 번식하듯 늘어났다. 모든 것이 착실하게 진행 되는 가운데 사소한 문제들도 생겨났다. 몇 사람이 사라졌다. 죽었거나 떠났거나, 어떤 사유인지는 정 확히 알 수 없었다. 남자 11과 여자 15, 여자 16의 자리가 비었다. 그러나 부품 몇 개가 없다고 돌아가지 못할 기계는 아니었다.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채웠다.

요나는 몇 건의 교통사고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처음만큼 충격적이지 않았다. 다만 방 금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좀 더 낯익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들 중에는 언젠가 요나를 찾아와 악어들 에 대해 묻고 묻던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가 노란 트럭에 치인 것을 목격하고도 요나는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아마도, 확실히 사라진 것 같았다. 종종 리조트 내에서 유령처 럼 떠돌던 여자의 실루엣이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밤에 매니저의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하 고 있었다.

“악어들을 풀면 됩니다. 미끼를 던지면 다들 모일 거예요. 안 움직이고 배기겠습니까. 그들이 원하 는 건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거주 허가지요.”

여자가 알아내고 싶어 했던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매니저의 말들은 요나의 머릿속에서 점점 큰 그림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이 시나리오에 대해 무뎌 지기 위해 요나는 애썼지만, 종종 8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 꿈에 나타났다. 운동회보다 두 시간 먼저 소집된 악어들이 거주 허가를 얻는다는 사실에 들떠 있을 때, 그들의 발밑이 지옥처럼 무너지는 꿈을.그건 꿈이 아니라 며칠 후 일어날 현실이었다.

요나가 그 현실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는 시간은 럭에 대해 떠올릴 때뿐이었다. 물론 완벽한 건 아 니었다. 럭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또 악어들이 떠올랐다.                              -190~191쪽

 

북상하는 것.
저기압, 장마,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파업, 쓰레기, 이야기.

이야기.

 

지난 한 주간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은 부음 소식이었다. 발인이 지나면 효력을 잃어버릴, 유 통기한이 짧기에 신속한 것.

소식이 시작된 곳은 무이였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지명. 어느 밤의 거대한 쓰나 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그곳 무이의 해변에 좌초한 쓰레기 섬은 점. 점. 점. 흩어졌다. 난파당한 선원들처럼 한국어가 찍힌 플라스틱들이 그곳 해변에 나뒹굴
었다.                                                          -223~224쪽

 

 

■ 차례

1 정글 7
2 사막의 싱크홀 37
3 끊어진 열차 75
4 3주 후 99
5 마네킹의 섬 131
6 표류 167
7 일요일의 무이 201
0 맹그로브 숲 221

 

■ 줄거리

 

재난과 여행의 결합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의 10년차 수석 프로그래머 고요나. 잘나가던 그녀에게 어느 날 위기가 닥쳐온다. 상사인 ‘김조광’ 팀장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를 노골적으로 성추행한 것. 그러나 성추행 자체보다 더 문제적인 것이 있다. ‘김’이란 인간은 여태껏 자리가 위태로운 사람들만 골라 성추행을 일삼아 왔기에 그것은 일종의 옐로카드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퇴출 위협을 느끼는 요나. 그렇다고 계속되는 김의 성추행을 참아 주고 있을 수만도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요나는 결국 사표를 제출한다. 뜻밖에도 김은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요나에게 한 달간의 휴가를 제안한다. 다섯 개의 퇴출 후보 여행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 소비자 입장에서 여행을 다녀온 후 보고서를 제출하면 출장으로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다.

요나는 사막의 싱크홀 ‘무이’로 떠난다. 5박 6일 일정으로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무이를 여행 하면서 그녀는 그곳이 왜 퇴출 후보지인지 절감한다. 그런데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 로 가던 중 요나는 일행에서 낙오되고 만다. 열차의 앞뒤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순간에 2번 객차의 화장실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자리인 7번 객차로 돌아가기 위해 5번 객차의 끝 문을 열었을 때, 요나 앞에 펼쳐진 것은 긴 꼬리처럼 따라붙고 있는 빈 철로뿐이었다.
짐도 일행도 저편으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묵었던 리조트벨에포크’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요나는 뜻하지 않게 엄청난 프로젝트에 휘말리게 된다. 요나가 정글의 직원임을 알 게 된 벨에포크의 매니저는 퇴출 위기에 놓인 무이를 되살리기 위한 인공 재난 시나리오에 그녀 가 동참해 줄 것을 제안한다. 디데이는 8월의 첫 번째 일요일. 계획은 차근차근 준비되고,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인데…….

 

 

■ 저자 소개


윤고은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1인용 식탁』과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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