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하나님인가, 세상인가 -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우상 버리기
피트 윌슨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드폰테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피트 윌슨 목사의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가 잘 담긴 책입니다. 기독교인의 영원한 고민거리는, 좋아하는 가치 중 서로 모순되는 둘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독교 서적 중 하나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 는 찰스 셀던의 소설입니다. 좋은 기독교 서적, 혹은 신앙 서적의 조건이란, 원초적인 물음과 요구에 대해,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찛러 주는 대답을, 나 대신, 혹은 멀리 계신 신 대신에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그 셀던의 소설을 보면, 얼마나 명쾌한 질문을 던지고, 또 대답하고 있습니까? 신앙과 세상적 삶의 충돌 문제는 관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막연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둘러치기 해답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신 앙인은 사실 세상의 욕구와 룰에 맞춰 거침 없이 살기가 힘듭니다. 자신의 욕구인지 세상의 유혹인지 모를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그건 꼭 신의 명령에 거역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가 쉽죠. 나를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보호막이지만, 동시에 그걸 해야 세상 살기가 편한 여러 가지 일들을 못하게, 혹은 삼가게 만드는 장벽이기도 합니다. 신앙과 세상의 요구는 서로 양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윌슨의 견해와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그는 파워트위터리안이기도 하죠). 그 러나 최소한 이 책에서, 그는 여러 골치 아픈, 혹은 마음이 아플 수 있는 문제와 질문에 대해, 절대 돌아가거나 회피하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요구를 배신하는 답도 아니면서, 일상의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시원하게 찔러 주는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191쪽을 보면, 현대판 우상에 대해 윌슨은 멋진 논증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순금으로 된 케이트 모스(슈퍼모델)의 모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어리석은 민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며 혀를 차지만, 정작 부질없는 육체를 숭배하고 감탄하며 음욕을 품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현대의 금송아지가 바로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우리 시대의 상업주의와 퇴폐 문화임을 그는 시원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의 괜한 상심을 그는 효과적으로 힐링하고 있습니다.


제 가 감탄하는 점은 바로 여깁니다. 신앙은 사실 일상의 삶에 많은 제약을 가합니다. 그런데, 윌슨의 논변은 분명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족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시원하게 파쇄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외모라는 터무니없는 우상을 숭배하느라 신과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배반하며, 정작 중요한 영적 의무를 소홀히합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받는 <인정(認定)>의 달콤함에 구속되어, 우리 자신을 진정한 자아와 신으로부터 소외시킵니다. 이와 관련, 윌슨이 다른 분의 말씀을 재인용하여 우리에게 설파하는 가르침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7년 동안 라헬을 얻으려는 일념으로 쉼 없이 일했는데, 하룻밤을 같이 지낸 후 깨어 보니 레아였다." 세속적 가치만 추구하다 결국 허망하게 끝나고 마는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우치는 구절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읽고 나서 과연 그렇다며 고개를 끄적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 신이 속한 입장과 관계 없이, 신앙을 깊이 있게 고민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심지어 불교의 가르침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유의 폭이 넓고, 열린 마인드를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읽고 나서 많은 팩터들에 대한 생각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 - 수리 논술, 대수·조합·논리·기하
마틴 가드너 지음, 아이작 아시모프 서문, 윤금현 옮김 / 보누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니고 다른 책에서 읽은 말이지만, 우주의 생성과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수학을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마틴 가드너의 책에는 그 소갯말로 이런 멋진 표현이 있더라구요.

"마틴 가드너의 책은 수많은 천진한 어린이들을 수학의 세계로 이끌었고, 수많은 수학 교수들을 천진난만한 어린이로 만들었다."


큰 관점에서 보면, 수학 역시 거대한 놀이임에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레고도, 지능이 뛰어난 아기가 아무래도 활용도를 높여서 잘 가지고 놀듯, 수학 역시 그걸 갖고 노는 사람의 지적 수준에 따라 편차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실용의 영역과는 관계 없는 차원에서 효용을 발휘하기 시작한 거니까요. 물론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아르키메데스 같은 이는 볼록 거울을 이용해서 적인 로마군을 퇴치하는 전쟁의 기술로 수학을 응용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거야 천재의 아주 예외적인 경우겠죠.


이 책에 보면, 고서점에서 옛 잡지(<어메이징 스토리>라는 제호인데, 물론 가상의 잡지일 것입니다)를 사려는 어느 신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16장, pp199-122). 서점 주인의 흥정은 이랬다고 합니다. "가장 최신호는 1달러, 그 다음으로 최근 것은 3달러, 이런 식으로 2달러씩 늘려 가면...."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 장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문제를 푸는 결정적 힌트는, "한 책에만 당신(와이프) 나이의 5배를 지불했어."라는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얼핏 들어 별 말이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그 말은, 두 그룹으로 나뉜 책들 중에, 그 가격에 해당하는 책은 어느 한 그룹에만 들어 있다는 뜻이잖아요? 각 그룹은 최대한 같은 권수를 가져야 하므로, 만약 총 구입 권수가 짝수라면, 이 가격은 이 그룹이나 저 그룹 모두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단 한 권'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총 구입 권수는 홀수라는 말이죠. 이를 결정적 힌트로 해서 이 퍼즐은 풀려 나가게 됩니다. 또, 서점 주인 노인은 왜 두번째 제안을 하면서 그리 큰 인심이나 쓰는 투로 말을 했을까요? 만약 첫번째 제안대로라면, 등차수열의 합은 책이 n권일 경우, n의 제곱이 됩니다(이 책 p122 위에서 셋째 줄). 그러나 두번째 제안대로라면(책에는 좀 시원한 설명이 안 나와 있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일반식이 나옵니다.

그래서, 첫째 제안보다 절반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결과입니다. 이 정도면 매도자가 스스로 가격을 반으로 후려 치는 거니 인심을 쓰는 척도 할 만하죠. 다만 마지막에 단서로 단, "100의 배수는 되어야 해." 가 함정이지만요.


그런데, 과연 이런 시시한 문제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이미 편입된 어른이 어디 가서 진지한 화제로 내세울 수 있을까요?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간, 영 모자란 사람 취급 당하기나 쉽습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한 소갯말의 그 표현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수학은 원칙적으로 어린이의 천진한 마음으로라야 그 진정한 접근이 가능한 놀이이다."


다 시 토픽으로 돌아가서요, 이 16장에서 다루는 문제라면 우리 한국에서는, 보통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배우는 등차수열과 같습니다. 가상의 주인공은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라고 하지만, 사실 등차수열의 합은 그렇게 감당 못할 정도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무서운 건 등비수열이죠. 이 책 21장(p153)이 다루는 토픽이 바로 그 등비수열입니다.


21장의 화제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바이러스라는 게 알고 보면 정보의 배열에 불과하다 일본 과학자들의 가설을 퍼즐화하여 소개하고 있네요. 그 가설은 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지만,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되겠죠. 왜 외계인들이, 번거롭게도 (우리 지구인이 하는 방식처럼) 전산 부호의 전송이 아닌, 바이러스의 형태로 정보의 매개체를 삼았을까요? 그 이유는 생명체(바이러스를 생명으로 본다면)의 무서운 증식 속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단계에서 아무리 적은 레벨에 머무르는 숫자라도,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일정 배수가 곱해짐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그 수는 어느 순간에는 감당 못 할 만큼 거대한 수치가 된다는 건 고등학교 수준의 등비수열 원리만 배워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은 이 당연한 사실을 잘 응용해서, 흥미로운 문제로 가공하고 있습니다.

마틴 가드너의 이름에 확 끌려서 이 책의 구입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아마 그 생각이 들 겁니다. "과거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지금도 시중에서 팔고 있습니다) 그 두 권과 혹시 내용이 겹치는 건 아닌가?" 조금 실망스러운 건, 그런 부분이 꽤 있다는 거고, 그것도 책의 첫 장 첫 토픽이 바로 예전 그 책들에서 본 문제라는 거죠. 그런데, 총 33개 장 중 그 두 권의 내용과 겹치는 건 11개 정도고, 그 내용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그 책들은 일반 원리의 설명이 많았다면(그리고 매혹적인 일러스트가 있었죠), 이 책은 보다 문제 위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 책들의 분위기가 좀 더 유럽적이었다면, 이 책은 유머 코드까지 포함해서 다분히 미국적입니다. 무엇보다, 비교적 최근의 성과를 반영한 원리와 주제가 많이 반영되어,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 책들>의 속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몇 군데 깔끔하지 못한 번역이 흠이지만,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어른들에게 아주 제격이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같이 한번 <레고>를 갖고 놀아 보자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 1945년 이후 유럽과 세계
페터 가이스 외 지음, 김승렬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9월
37,000원 → 33,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8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3년 04월 25일에 저장

프랑스의 역사- 개정판
다니엘 리비에르 지음, 최갑수 옮김 / 까치 / 1998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3년 04월 25일에 저장
절판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 천안함 특종 기자의 3년에 걸친 추적 다큐
김문경 지음 / 올(사피엔스21)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아마 요즘 차를 몰고 거리를 다니다 보면, "천안함 용사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같은 문구가 아로새겨진 현수막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오 늘의 한국은 모든 문제와 이슈가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파당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진영논리'라고 하는 건데, 개별 이슈의 독립성과 특수성에 상관없이, 자신이 소속되거나 지지하는 정파의 주견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정해 버리고, 반대편의 논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다. 거기까지는 또 그러려니 하겠는데, 남의 불륜은 그저 불륜이요 제가 하는 일은 로맨스라는 식으로, 자신의 '꽉 막힘'은 이념적 일관성과 지조로 강변하고, 남의 논리는 그저 '말이 안 통함'으로 매도하는 경향이다. 이런 사회라면 그 존립의 기반이 붕괴하는 걸 피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소속한 거대 집단 혹은 진영의 기계적 논지에 무조건 세뇌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 혹은 진실에 가장 접근하는지 구체적인 인지와 포섭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제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히 느끼는 직종은 어느 누구보다도 언론분야, 즉 기자들의 직업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말미에도 나오지만, 제아무리 전문성과 직업적 특수 지식으로 무장했다 한들, 특정 정치 세력과 가까워진다는 그 한 가지 평판만으로, 전체의 신뢰성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을 취재하며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정치적 중립성과 '오로지 사건의 진실'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축만 무너져도, 기자라는 직업인로서 디딜 발판이 사라지고 만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문경 씨는 YTN 기자다. 기자라는 직업은, 과장 하나도 보태지 않고 "특종에 살고 특종에 죽는' 직종이다. 기자 생활 전 커리어를 통해 특종 하나를 건지는 것은, 단순화하자면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는 바로 그 운명의 순간에나 비길 만큼 절박한 과제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 김문경은, 자신을 캐릭터화한 '오기자'를 통해(나는 처음에, 저자 김기자와 친한, 직장의 다른 동료가 따로 있어 그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 실제로 내 지인 중 하나가 YTN에 근무하는, 오씨 성을 가진 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는 이 저자분에 비해 연하지만), 특종의 발견이 기자로서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말단의 신경까지 흥분하게 하는 일인지 실감나게 적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직접 상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 본문 중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옷 로비 사건'의 경우도 역시 기자가 터뜨려 장장 일년 동안 전국을 달구게 한 대특종이었는데, 파장과 범위를 생각할 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이 천안함 특종을 터뜨린 기자라면 그 성취감이 처음에 어느 정도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기쁨은 간 데 없고, 처음 세상에 대사건을 알린 책임감이 그 희열을 대체하다가, 나중에는 회한과 부담만이 커리어를 압도하는 느낌까지 털어놓고 있다.

이 책은 실명 노출, 전형적 르포 형식으로 서술해 나갔어도 충분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저자는 바로 특종을 터뜨린 그 수훈자이기에 그런 정면 돌파식 진술 양식을 택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김문경 기자 본인이 아니라면, 이전 혹은 이후 누가 그런 작업을 감행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다분히 겸손하게도(?), 이런 소설체의 형식을 빌어 픽션처럼 그 중차대했던,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전역을 정치 이상의 무게로 짓누르는 그 사건을 묘파하고 있다. 이는 일단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논쟁의 중심에 섣부른 자극을 주어, 비생산적인 대립으로 분위기가 악화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든가, 정치적 중립성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은 기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다분히 작용했을 줄 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대체 이 작은 땅덩어리(정확하게는 발생 장소야 바다 속이었지만)에서, 뭐가 이리도 복잡한 진상을 지닌 미스테리적 사건이 이처럼이나 미묘한 시기에 터질 수 있는지, 특종을 한 기자 자신도 대담한 접근이 꺼려질 만큼, 그 실상의 인식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대끼며 사는 동시대인들의 사연과 갈등이 너무도 꼬이고 꼬여, 사고가 터져도 대체 그 발생 주체, 책임 소재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한 사고만 터지는 것일까? 대참사의 원인을 구명하기에 앞서, 먼저 비틀리고 왜곡된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오염시켜 온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하늘의 경고이기라도 한 것일까? 섬뜩한 진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추악한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고의 공부 - 창의성의 천재들에 대한 30년간의 연구보고서
켄 베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어쩌면 우리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는 하나, 엄연히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개념을 서로 같은 것이라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우 리, 그리고 우리 앞 세대들, 이후 우리를 대신할 세대들은, 인생을 미리 포기한 처지가 아니고서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다. 성인이 되어 행하는 작업을 '공부'라고 부르기가 다소 민망하다면, 이를 '자기계발'이라고 불러도 좋다. 아무튼, 우리는 왜 평생을 공부에 몰두하는 것일까? 사회가 점점 지식기반으로 변화함에 따라 정신적 동력과 자산을 보충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치에서조차 도태되고 마는 물리적, 실체적 이유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간은 어떤 환경과 위상에서건 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확인하고, 확장하며, 확증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그 본질상 지니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존재의 외적, 내적 동력이 되는 이 학습의 욕구와, 실제 우리가 이 시대 이 장소에서 '공부의 주류 양식'으로 자리잡은 그것과는, 서로 과연 밀접한 함수 관계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미 우리는 이 답을 알고 있다. 즉, 그런 '공부 방법'은, 그저 몸만 축나고 어쩌면 정신에까지도 무익한 에너지 소모 기제 이상이 아닌, 기이한 자기 학대나 퇴화에의 트레이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는 이 책에서 이미, 서두의 추천사에서도 잘 밝혀 놓고 있다. 우리가 흔히 도서관이나 학습실, 개인 서재에서 행하는 그 이상한, 어쩌면 '학습된 무기력의 드릴링'에 가까운 그 '동작'은, 이미 참된 의미에서의 '공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 는 여태, 지성의 전당이라 일컫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그 무익한 노력, 즉 시험에 출제되기로 예정, 기대되어 있는 복잡다기한 암기사항을 요약적으로 적어 두고 유독 시험 기간을 앞두고만 널리 애독(?)되는 그 resume, 속칭 '족보'와 무용성과, 이를 통해 그 학생의 일생을 통해 '능력 증명서'처럼 따라다니는 성적표의 효용에 대해, 깊은 강도로 회의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국 출장길에 들른 현지 대학의 실태 조사와 전문을 통해, 그런 무익한 암기, 반복, 벼락치기 서술 작업이 단지 우리만의 사정이 아닌, 세계의 중심이자 거의 모든 인재의 집결 장소인 미국의 대학에서라고 그다지 크게 다른 형편이 아님을 새삼 깨달은 적이 있다. 한국이 딱히 교육 현실이 열악하다거나 후진적이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그곳이라고 해서 유달리 선진적인 학습 평가 기법을 도입한 게 아님은 마찬가지였던 것! 그럼, 일견 무기력을 학습한 노예의 퇴행적 행동 패턴으로 보이는 이런 이상한 단순 반복-평가-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과의 악순환은, 별개의 존재 이유가 있기에 이토록 글로벌하게 행해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여 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하기로 하자.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책을 읽을 때에는 제목과 목차를 통해 나름 내용을 예측하고(A), 해당 부문에서 내가 여태 구축하고 있던 지식의 체계는 어떤 것이었는지 반추하며(B), A와 B를 종합(Synthese)하여 이 새로운 독서의 보람을 찾는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와이즈베리의 이 책은, 실망과 기대 충족을 동시에 안겨 준 경우였다.


즉, "대체 왜, 대학에서의 학업 성취도 평가가 보다 과학적이거나 실용적으로 개선될 기미가, 이토록이나 보편적으로, 혹은 글로벌하게도, 도통 보이지 않는가?"라는 보다 근본적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통해 전혀 얻질 못했다. 이 책은 이 사항에 대해서는, 대단히 피상적으로 인상 평가를 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데, 그 요지는 '물리학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실제 물리계에서 벌어지는 운동 현상에 대해 (실제 감각적인)이해가 증진된 바 거의 없음이 실증되듯, 클래스에서 높은 학점을 받은 학생이 진정으로 그 과목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했다거나, 혹은 그 지식을 내적으로 체화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상식의 확인에 그치고 있다. 이런 점은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동시대인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바이며, 어찌 보면 '어떤 방법으로도 그 지적 능력의 평가 순위에서 상향을 이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열등생들의 좋은 핑계로 애용, '악용'될 소지마저 있는 '도매금 진단'으로 빠질 위험까지 있다. 그런 건 생산적 독서를 기대하고 읽은 독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밀도가 부족한 현상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면 참된 공부, (혹은 우리말 제목으로 저리 달려 있듯) 최고의 공부란 대체 무엇인가?"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 책은 실망스러운 현상 진단만 잔뜩 늘어놓고 있는 중인가? 이에 대해서는, 도대체 이런 질문이 현생 인류의 얕은 지혜로 그 완전한 해명이 나올 성질이 애초에 아님을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 이 책은 아쉬운 대로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나름의 성실한 태도로 그 해명을 시도하고 있다. 영미권 저자들의 서술 미덕 중 하나는, 추상적이고 고답적인 선언적 언표에 그 결론이 머물지 않고, 실제의 적용 사례를 최대한 다양히 들어가며 귀납(프랜시스 베이컨 이래 그들 지성계의 확고한 공감 기저이기도 하다)의 성실한 행보를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니, 최고의 공부가 무엇인지를 논한다면서, 최고의 인생, 나아가 최고의 '도'를 논할 셈인가?" 이런 생각이 가끔 떠오를 만큼, '공부'에 포커스를 맞춘 책치고는 너무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다는 지적을 하는 이도 내 주변에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한두 마디로 답이 안 나올 질문이니만치, 상정 가능한 최대의 범위에서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저자의 고육책이 아닐까 싶었다.

오타가 여럿 있던데, 예를 들어 이 페이지 '모델'은 '모텔'아 맞을 것 같다.

' 최고의 공부'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 평범한 독자(라고는 하나 직장과 일상에서 사력을 다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는, 만만치 않은 엑스퍼트급 일상인들임이 분명하다)가 갖고 있는 수준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미리 감지하고 있는 해답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 실천에 옮기는가 하는, 그 정도와 방법에 있을지 모른다. 이 책에서 들고 있는 풍부한 사례는, 최소한 그 실천화의 좋은 자극이 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최고의 공부'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최고의 공부'에 대한 못말릴 강박에 찌든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볼 메타적 여유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최소한의 의의'를 찾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