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명랑하게, 매일 하는 심신단련 - 소란한 세상에서 나만의 리듬이 필요할 때
신미경 지음 / 서사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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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나만의 리듬이 필요할 때>

나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마음이 향해 있는 곳과 삶이 흘러가는 방향이

궤도에서 많이 이탈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에겐 이 모든 고민으로부터 답을 찾고 있는 시기라

이 책이 더 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만난 좋은 삶의 도구가 되어주었다.




오프라인 장보기부터 손글씨, 종이책, 그리고 어떤 날에는 영화관에 가는 아날로그 생활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기계와 맞닿은 생활을 줄여나가자 결국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면 너머에 사람이 있어요!’ 이런 외침은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에서는 공허한 주장이 될 때가 많다. 상대가 나를 모른다는 이유로 나쁜 인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서로를 마주하는 현실에서라면 조금 더 많은 점을 살피게 된다. 공감과 배려는 감정이입에서 출발하는데 논리와 객관성으로 무장한 기계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무뎌지는 감각이다.

p86

생각보다 스마트폰에 많이 노출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꽤 많은 시간을 눈이 뻑뻑해질 정도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별 생각없이 시간을 떼우는 간편하고 유익한 용도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손에서 놓고 있질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날로그의 힘을 믿고 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모순처럼 화면 너머의 세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못하다.

의식하지 않으면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감각들을

책을 보고 외면했던 내 모습이 아차 싶어서 멀찍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려둔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가보다란 걸

요즘 피로에 지친 내 눈 상태를 안과 검진으로 확인한 바 있기에

삶의 균형에서 중요한 핵심과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바로 이 부분을

개선하고 환기할 필요를 크게 느꼈다.

시작부터 소란한 디지털 세상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를 선언하면서

차차 소개 될 작가의 삶의 질서들을 따라가는 설렘을 느끼며 책에 몰입했다.

불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확실히 나에겐 기쁨이 결핍되어 있다. ‘다 해본 일이라서 설레지 않아’가 중년 감정의 기본값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영화관에서 평소와 달리 차를 마시거나 참지 않고 마구 울며 시간을 보내니 훨씬 즐거웠다. 단순한 기쁨이다. 성취에 얽매여 성장, 또 성장을 외쳐봤자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갈망은 이와 상관없이 홀로 커지기만 할 때가 많았다.

기쁨을 자주 느끼고 또 쌓아간다면 삶에 주어지는 여러 과업을 놀이라 여기게 될 테고 결과를 연연하지 않고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p178-179

계획적인 성향을 가진 나에게 불안이란 감정은

늘 나와 함께 공존하고 살아가는 핵심 감정처럼 가장 센터에 위치에 있다.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불안의 변수들을

온몸으로 막아내기 위해 불필요한 계획까지 끌어들여

불안을 더 가중시킬 때가 많아 이따금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같은 반복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급기야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삶은 결코 행복하고 즐겁기 어려웠다.

단순한 기쁨을 회복해 가는 시간이 나에게 맞춤 처방이었다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기쁨을 외치고 추구하면서도

기저에 깔린 불안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해보인다.

즐거움을 느끼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강박적인 불안이 더 자리를 차지하고자 머릿속을 헤집는다.

나또한 영화 <인사이드아웃 2>의 ‘불안이’를 보면서

마치 내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음에 놀랍고 슬펐다.

지금 나의 지배적인 감정이 불안이기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항상 대비해야 할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넣고 있는터라

생각을 환기할 거리들이 필요하단 생각을 늘 한다.

결국은 내려놓고 보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그리 염려할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데

혼자서 발을 동동 둘리며 염려했던 마음이 꽤 시간과 체력과 돈을 낭비한 꼴이었다.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긴장된 삶에서

조금 벗어나 삶의 여백들을 채우기보다 그대로 두면서

작은 기쁨들을 찾아가는 연습들이 필요해보인다.

신미경 작가님이 건네주는 삶의 균형과 리듬으로 살아가는 법이

소란한 내 마음을 정리하고 단련하는 좋은 위로가 되어줘서 감사하다.

건강한 루틴들을 체득해가는 과정과 필요성을

먼저 실천하고 경험한 바를 들려줌으로써

애쓰고 힘주어 살아가는 나에게 다정한 구원처럼 다가오는 친절하고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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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 - 웅크림의 시간을 건너며 알게 된 행복의 비밀
이덕화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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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완전하지 못한 나에게 찾아오는 불안감은 늘

내 삶에 상주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너무 겁먹지도 너무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덜 불안할 수 있도록 마음의 방향을 천천히 돌려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나에겐 매번 색다른 발견을 선물해주는

좋은 책친구가 있어서 깊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이따금 즐겁기도 이따금 기쁘기도 한

마음의 감동을 일으켜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웅크리는 것들’

죽은 듯 가만히 있어보이지만

매일 사투하며 버티며 살아가는 삶의 흔적들이

이곳 저곳에서 발견하는 재미를 책 속에서 발견한다.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는 무해한 책 속에서

잔잔한 위로와 쉼을 얻을 수 있어서 꽤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웅크린다. 생존을 위해, 발현을 위해, 도약을 위해 각각의 웅크림의 시간을 가진다.

식물은 씨앗 때부터 웅크리고 있다가 흙과 물을 만나면 싹을 틔우고, 성장하며, 생명력을 한껏 뽐낸다. 그러다 일정한 때가 오면 다시 다음 철을 위해 몸을 웅크린다. 추위에 약한 이파리에서부터 에너지를 거두어 안으로 에너지를 모은다. 그렇게 감당해 내야 할 시간을 거친 후 다시 각자의 철이 돌아오면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터트린다.

사람도 그렇다. 고난이 오면 내면 깊이 에너지를 수렴하며 웅크린다.

p52-53

“우리 부모님을 닮았지만 업그레이드된 버전이야.”

걸어가야 할 인생이 많이 남았기에 부정적인 과거에 얽매이면 나만 손해니까. 부모님 세대보다 한발 나아간 삶을 살아 보려 하는 것이다. 구겨진 마음을 그렇게라도 말하면서 펴 보는 것이다. 아빠가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것, ‘아빠의 정원’에 대한 좋은 기억을 큰 유산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p84

영화가 끝날 때쯤 그녀는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독백한다.

“슬픔의 황야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 내 인생도 모든 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하다. 진정으로 가깝고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한 때는 소중한 인연이었으나 이제는 그 인연의 수명이 다하여 보내 주어야 하는 것들을 마음에서 놓아 보내 줄 때 비로소 우리는 셰릴이 말한 것처럼 이 귀한 인생을,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으로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p216

삶의 작은 온기가 모여 하루 하루 빛나게 살아가는

작은 일상의 이야기가 참 좋다.

이 책도 그런 결의 책이라 나에게 어둠을 밝히는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게 만든다.

때라는 것이 정말 있나보다.

그렇게 바라던 바들이 이뤄지길 간절이 원하고 바랬건만

결국 가닿지 못한 마음과 결과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에게 봄날은 사치처럼 여겨지고

마음의 셔터를 내리고 깊은 동면 상태로 빠져드는 우울한 시간을 보냈었다.

긴터널의 끝에 밝은 빛이 닿을 수 있을까 싶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 마음이 잔뜩 겁을 먹고 웅크렸다.

지나고보면 이 시간이 필요했음을 증명할 때가 온다.

함께 지나온 시간과 계절 속에서

나와 맞닿아 있는 가족과 소중한 이들이

곁에 머물러 있었다는 감사를 깨닫고서

작은 움이 트더니 좋아하는 데이지꽃이 만개한 모습을 보면서

다시 봄이 오는 노크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농장에 피어있는 작물과 꽃들을 잘 가꾼

누군가의 수고와 정성이 참 예뻐 보이고,

소꿉 농사를 통해 세상을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새삼 부럽기도 하다.

분명 필요했을 시행착오가 결코 값없진 않음을.

피고 지는 생명의 움트는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보내고 싶은 응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해진다.

누구에게나 결핍은 존재한다.

그 흔적이 삶을 더 강인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지런히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양분이 된다는 것에 두 말 할 것도 없이 동의한다.

뜨거운 여름 볕에 지지 않고

무성하게 꽃피울 꿈을 나도 응원한다.

‘웅크리고 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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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세요, 책과 수프에서 - 따뜻한 위로의 공간, 선물 같은 하루
윤해 지음, 별사탕 그림 / 바른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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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숲 속 오두막 같은 모습이 인상적인 가게.

이곳은 ‘책과 수프’ 북카페이다.

수프라는 단어에 이끌려 오는 손님도,

책에 흥미를 느껴 들어오는 이들도

이 곳을 지나치는 모두가 지친 몸과 마음의 위로를 얻고 간다는

마법같은 힐링 장소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원기를 회복시켜 줌은 물론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책과 수프에서 찾아감에 괜히 신나고 설렌다.

이 오두막 안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 책은 지친 기색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각기 다른 낯빛을 가진 이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어

넉넉한 마음을 채워 세상을 살아가는 따뜻한 힐링 소설이다.




혜지가 이렇게 책에 흥미를 붙이는 데는 다소 노력이 필요했지만, 수프에 흥미를 느끼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 없었다. 혜지는 메뉴판의 수프 사진들을 보자마자 이 음식과 사랑에 빠질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p54

요즘 동욱이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읽고 있는 책이었다. 그 책은 선영이 선물로 건네준 <노인과 바다>였다. 그녀의 말로는 이 책은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과거를 긍정하게 하는 힘을 주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녀는 책을 선물로 주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개구기도 더 높이 뛰기 위해서 몸을 웅크린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동욱 씨도 더 높이 뛰기 위해서 잠시 몸을 웅크린 것뿐이에요. 누구나 내일을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은 있어야 하니까요.”

p87-88

마법 수프라도 되는 걸까.

이 공간 안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따뜻한 수프 한 접시가 입과 몸을 데우며

동우 자신이 그토록 헤매이며

꿈을 쫓아 달려가면서 돌보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되돌아보는 시간.

잠시 쉼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이들에게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단비처럼 ‘책과 수프’는 다정했다.

힘든 일 이후로 심신이 지쳐 만신창이가 됐던 샌디를 그나마 위로해 준 건 선영의 만화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따뜻한 수프가 있는 북카페를 운영하는 선영과 그곳을 드나드는 여러 사람의 일상이 그려져 있었다. 샌디는 이곳에서 수프를 먹어보고 싶었다. 아직은 공황장애로 밖에 나가는 건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해 주던 만화책의 그 가게의 수프를 자신이 먹을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랬는데 다행히도 해령이 가져온 호박 수프를 먹은 이후로 그런 걱정은 하나 덜어내었다.

p156

찾고 싶은 책을 찾게 된 손님이 선영에게 고마워하면 선영은 이렇게 말했다.

“책이 손님과 인연이 있었나 봐요.”

선영은 책도 사람도 모두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 믿었다.

p177

농부가 되는 것도,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도, 아무것도 그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한때 배우를 지망하면서 오디션을 보러 가던 그에게 나중에 농부가 되고 글도 쓰게 될 거라고 하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보며 선영은 인생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P234

섭식장애로 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샌디에게

선영의 만화 속 이들이 먹는 수프를 함께 먹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면서

몸과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곁에서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의 정성으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스스로 가두게 된 자유로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곳은 정말 도무지 알 수 없는 매력과 마법의 장소가 분명하다.

<크리스마스 캐럴>를 찾던 재구는 연인 희진과 책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 비춘 사랑의 언어로 둘 사이의 추억이 피어오른다.

책방지기 선영이 손님들의 다양한 사연을 마주하면서

저마다의 고민 속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만화를 그리고 오랫동안 이 곳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란 바램이 생긴다.

이들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짐은 우연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세운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열게 되는 이 곳에서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이 채워주는 온기와

책으로 닿게 되는 인연의 실타래를 어떻게 허물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함이 유지되는 잔잔한 물결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친밀한 연대 속에서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린 그런 다정한 위로와 편안한 안식처가 필요하다.

<책과 수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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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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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사색을 다룬 잔잔하고 차분한 문장들이 담긴

자연과 정원의 이야기의 책을 만나보았다.

다양한 형태의 형식이 모두 담겨있는데

에세이, 시, 소설, 편지가 조화를 이루어 감상의 묘미를 더해준다.

그녀만의 내면 이야기를 조용하고 담담히 이야기하면서도

정원이라는 버지니아 울프가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 속에서

치유와 회복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느껴져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을 캐낼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기억-과거-을 내 뒤에 있는 하나의 도로로, 장면들, 즉 감정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긴 띠로 본다. 거기, 그 도로의 끝에는 여전히 정원과 아이들방이 있다.

p17

세인트아이브스는 내가 이 순간 염두해 두고 있는 저 “순수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었다. 느릅나무의 레몬색 잎들. 과수원의 사과들. 잎들이 속삭이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나를 여기에 멈추게 하고, 인간의 힘이 아닌 얼마나 많은 힘들이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p31

꽃들은 인간들의 열정을 상징하고, 인간의 축제를 장식하고, 죽은 자들의 베개 위에 (슬픔을 아는 듯이) 놓여 있다. 놀랍게도 시인들이 자연에서 종교를 발견했다고 전해준다. 사람들이 시골에 살면서 식물들에게서 미덕을 배운다고 말해준다. 식물은 무심함으로 위안을 준다. 인간이 밟아본 적이 없는 영혼의 저 설원에 구름이 찾아오고 떨어지는 꽃잎이 입을 맞춘다. 마치 다른 영역에서 밀턴과 포프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잊었기 때문에.

p254-255

짙고 옅은 구름들이 지나가며 그 아래에 깔린 풀밭의 빛깔을 흩뜨린다. 해시계는 하루의 시간을 익숙한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기록한다. 마음은 한가하게 바로 이런 삶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노래하거나 흥얼거린다. 난로 선반 위의 냄비 같은 인생, 인생, 인생, 그대는 무엇인가? 빛일까, 아니면 어둠일까, 급사의 플란넬 앞치마일까, 아니면 풀밭에 있는 찌르레기의 그림자일까?

p266-267

계절을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며

삶의 숨겨진 지혜를 찾아볼 수 있는

낭만 넘치는 사색의 공간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갈란투스, 히아신스, 목련, 장미, 백합, 과꽃, 달리아,

사과나무, 벚나무, 배나무 등이 상록수가 자라나는 꿈의 정원처럼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디테일한 묘사가

감상을 너머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너머의 세계로 이미 가 있는 듯하다.

황무지를 지나 짙은 보랏빛 언덕의 걸어가다 지푸라기를 힘겹게 끌고 가는

메뚜기를 보며 인생의 고난을 떠올리기도,

저녁이면 헤더 꽃들 사이로 나방들이 전신선들로부터 들리는

말도 안되는 기이한 웃음 소리가,

녹색 동굴에 오랫동안 홀로 살아 온 물고기들이

인간의 말을 들어 온 자연 만물의 모두와 인간이 얽혀 살아가는 인생이 참 묘하게 아름답다.

어쩜 이렇게 작고 작은 미물들에 관심을 가지며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여지는 그 너머의 마음을 생각하며 글을 쓸까 싶다.

그녀가 내내 글을 쓰는 것처럼 존재의 모든 것들도

그 자리에서 영영토록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대체 얼마나 더 섬세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 놀랍고

간간히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있는 이 곳이

울프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마저 느끼게 만든다.

삶을 풍요롭게 채워가는 법을 알았던 그녀의

안식처럼 요새가 되어 준 정원 속에서

외로움과 친밀함과 안전함을 느꼈던 것에 안도감이 든다.

그 안에서 부디 모두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는 그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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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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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색다른 판타지의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동양의 마법 이야기를

배명훈 작가만의 색으로 잘 풀어놓은 작품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다.

단순한 마법 이야기가 아닌 서사와 성장 스토리가

따뜻하게 녹아있으며 시대의 비판적 시선을 날카롭게 분석한 글이기도 한 책이기도 했다.

기병과 마법사가 맞닿게 되는 세계의 끝은

결국 연대의 끈끈함이 이룰 수 있는 개인의 성장이었다.

그런 서로간의 결속력과 신뢰가 전장에서 더 치열하게 피어오르고

녹아들 수 있는 이들의 서사가 눈부시게 빛난다.




그때 무언가 커다란 것이 밀려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자아가, 세상이, 우주가, 삼라만상이, 인연의 덫과 끊지 못한 슬픔이, 멸족의 운명이, 생의 감각이, 그리고 또 허무 자체가, 무가 유로 바뀌는 감각이, 생명체의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고 단지 존재와 부재로만 구분할 수 있는 우주의 근권에 닿은 무언가가.

드디어 윤해는 답을 얻었다.

‘맞아! 나는 문이었어! 궁지에 내몰린 나는, 빠져나갈 구멍을 갈망하다가 내가 바로 그 자리에서 문이 되었어. 곰개는 거기로 튀어나온 거야. 열려 있는 문으로. 나를 통과해서. 내가 바로 열린 문이야!’

p290-291

윤해가 문이 되어 마로하를 자기 세계로 보내주었다.

윤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언젠가 둘은 또 만나겠지만, 미래의 윤해가 과거의 마로하를 만나거나 미래의 마로하가 과거의 윤해를 만날 뿐, 지금의 두 사람이 이대로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예언자의 직감이었다.

그래도 윤해는 외롭지 않았다. 윤해에게는 이제 삶의 초원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 있었다. 혼자 버려진 윤해를 도화 날개가 되고 말이 되어준 사람.

이 사람이 접어놓은 초원에서라면 언제까지라도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먼 길을 달려온 기병과 마법사는 마침내 온전한 안식에 이르렀다.

P380

폭군이 된 숙부가 그 검은 속내를 드러내자

영윤해는 죽음의 위기를 직면하게 된다.

마치 조선의 연산군 모습이 떠오르는 듯

소름끼치는 폭군의 파멸이 불러일으키는 파장이 어떻게 그려질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위기의 순간에 곰개를 소환함으로

닫힌 문이 열리는 마법, 그 너머의 세계가 시작된다.

마목인들의 경계에 사는 다르나킨을 만나 두 인물이 함께 세상을 구원하고

사명을 다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게 그려진다.

단순히 혼자만의 성장 스토리를 다룬 것이 아닌

서로의 신뢰 속에서 함께 나아가며 술름고리에 녹아드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기병과 마법사 윤해의 눈부신 활약을 살펴보면서

독자들은 연대의 중요성과 함께 이 세계 안에서 크나큰 안식이 있는

또다른 희망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400페이지 분량 가까이 되는 두께감의 책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던 강한 몰입감은 작가만의 필력과

배경이 되는 사건과 심리묘사의 티테일함이 꽤나 섬세해서

물 흐르듯 잘 읽어지는 가독성 좋은 책이었다.

참담한 상황 속에서 있다하더라도 술름이 될만한

위로와 기쁨이 되어줄 세계 속에 놓여있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하나된 문으로 통해 때론 혼자로

때론 둘이 되어 삶의 초원을 거닐 것을 알기에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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