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연은 가장 긴 실만을 써서 무늬를 짠다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EBS BOOKS / 2021년 5월
평점 :
자연은 가장 긴 실만을 써서 무늬를 짠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TASNEEM ZEHRA HUSAIN)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퍼즐에 푹 빠져 있었다. 숨은 패턴 찾기든 단어 맞추기든 논리 퍼즐이든 보이기만 하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연보다 더 두뇌를 자극하는 것은 없었기에, 물리학에 푹 빠지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끈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키스탄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그 뒤로 11차원에서의 초대칭 플럭스 배경을 분류하는 연구를 했다. 이탈리아에서 대학원생으로 있다가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했다. 연구원으로 있을 때 고향인 라호르에 LUMS 과학공학대학 설립을 도왔고, 지금은 바로 그곳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창의성이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념, 개념을 다루는 온갖 방식, 그 상호 작용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생각을 빚어내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교양 과학서 편집과 발간에도 참여하는 이유다. 현재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머물고 있으며,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역자 : 이한음
서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으며, 글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바스커빌가의 개와 추리 좀 하는 친구들〉, 〈청소년을 위한 지구 온난화 논쟁〉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노화의 종말〉,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논픽션과 픽션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내용 전개나 구조가 특이한 책을 만났다.
여성 물리학자가 쓴 소설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거쳐
물리학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풀어낸 멋진 소설이다.
지적 호기심은 물론이고 세계를 탐험하는
연구자들의 시선과 닿지 못했던 과학의 세계 안에
조금씩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딱딱한 과학서, 학술서로 접근하기 보다는
묘한 감동과 시적 표현들이 난무하는
아름답고 경의로운 책이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담고 있는 과학적 이론과 설명이 책을 술술 넘기게 하고 있진 않지만
천천히 호흡하며 곱씹고 넘어갈 부분들이 많아
이 책은 굉장히 호흡이 긴 책이라 봐야 한다.
조금씩 꺼내 먹는 달달한 디저트처럼
어려운 과학을 다양한 문학 작품과 어울려
읽는 재미가 배가 되는 기분을 천천히 스며들어 읽기 권하고 싶다.
하늘의 혜성은 태양에 얽매여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도는 천체라고 설명되었다.
꼬리를 태우면서 날아가는 혜성은 어떤 무시무시한 질병을 퍼뜨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더 이상 "불길한 전조"와 "미래 세대에 닥칠 불행의 조짐"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불타는 모습은 그 어떤 전조가 아니라, 그저 태양을 도는 우리 행성처럼 확실하게 규정된 궤도를 따라
지루하게 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혜성은 운명의 전령이 아니었고, 따라서 두려워할 대상도, 인간사에 조언을 해줄 존재도 아니었다.
p123
현상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우주의 여러 현상들을 단순히 다양한 운동의 통합으로 이해하고
지구에 작용하는 현상이라고
여기는 정도로 생각을 이해하고 넘어가도 좋지만,
운명을 판가름 하는 듯 혜성의 불길한 전조를 점치며
자신의 운명마저 그에 맡기는 모습이 조금은 아이러니 해진다.
인간이 우주 탐사와 정복에 앞장 서고 있지만
한편으론 운명에 속박되어 있는 모습 같아 의아하다.
오히려 규정된 궤도를 돌고, 끊임없는 반복되고 있는 자연 현상에
그저 속박되어 있는 건 천체인데
작은 선입견에 빠져 큰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인간의 옹졸한 모습이 유난히 작아보이는 건 왜 일까.
'시공간의 모양'을 이야기할 때 생기는 한 가지 문제는
시공간이 무형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고등 수학을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우리의 놀이터가 속한 세계의 모양이 바뀐다는 것뿐이다.
p231
어쩌면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강력한 교훈은 이것인지도 몰라.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 말이야.
겉으로는 별개인 양 보이는 것들이 더 깊이 파고들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경이로운 근본적인 현실의 서로 다른 측면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
아마 자연의 진정한 모습이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엄청난 까닭에 우리는 걸러진 이미지만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p297
우리가 중력이라 부르는 것이 휘어진 기하학의 한 표현이라면
질량을 가진 물체도 빛도 휘어질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별에서 오는 빛이 태양을 스칠 떄
살짝이 경로를 바꾸게 된다는 걸
이미 그 옛날 아인슈타인은 방적을 통해 빛이
휘어지는 정확한 각도까지 예측하였으니 실로 놀라울 뿐이다.
이런 지적 호기심이 가득찬 밤이면
밤하늘의 별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캄캄한 우주 공간안에서 천제가 숨기고 있는
많은 비밀들을 하나씩 파헤쳐 볼 때 오는 쾌감과
아직 모르고 있는 자연의 범주 안에서
우린 얼마나 예의를 지키며 사는지도 고심하게 만든다.
물리학에 빠져들면 혼란만 가중한다고 생각하고
입자와 파동이 뒤섞인 영역 너머에서
너무 먼 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 끝이 어딜까 싶어 아득하기만 한 자연의 짜임새를
쉽게 간파하긴 힘들겠지만
작은 조각이라도 그 실마리를 가지고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가는
연구자들의 노고와 다양한 이론을 결합시켜
굉장한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학문적, 문학적 접근이 굉장히 신선했던 책이라
이 책이 담고 있는 풍성한 과학 이론들 안으로
좀 더 가까이서 그 세계를 동경하며 관찰해 보길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