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평꾼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제프리 유제니디스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바꾸는, 마술적인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 [뉴욕 타임스 북 리뷰]
1960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소아시아 출신의 그리스계 이민 2세인 아버지와 영국-아일랜드계 어머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86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년 후인 1988년 첫 단편집을 출간했다. 1991년 권위 있는 문예 계간지 [더 패리스 리뷰 The Paris Review]에 『처녀들, 자살하다The Virgin Suicides』의 일부를 발표해, 그해 그 잡지에 실렸던 단편소설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아가 칸 상(Aga Khan Prize)을 받았다.

첫 장편소설 『처녀들, 자살하다』는 1993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도서관 협회(ALA)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까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이 작품으로 유제니디스는 1993년 화이팅 작가 상(Whiting Writers' Award), 1995년 해럴드 D. 버셀 기념상(Harold D. Vursell Memorial Award)을 수상하였으며, 구겐하임 재단과 전미 예술 재단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소피아 코폴라 감독, 커스틴 던스트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2002년 9년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두 번째 장편 『미들섹스Middlesex』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프랑스 메디치상, 임팩더블린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다. 2011년에는 세 번째 책 『결혼이라는 소설The Marriage Plot』을 발표해 살롱문학상과 프랑스 피츠제럴드상을 수상한다. 30여 년간 단 세 편의 장편을 출간한 과작의 작가이지만, 빈부격차, 가족 해체, 젠더 갈등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부터 청소년기의 일탈, 결혼과 사업의 실패 등 개개인의 삶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위기까지 동시대인의 삶과 고민들을 예리하게 포착해내어, 오늘날 미국 문단의 주요 작가로 꼽힌다.

『불평꾼들』은 그의 네 번째 책이자 유일무이한 소설집으로, 유제니디스는 이 책을 ‘특정한 주제로 엮이지 않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뒤섞인 가방’으로 정의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에는 석사 학위 제출 작품 「변화무쌍한 뜰」(1988)과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스위치]의 원작인 「베이스터」(1995), 동료 작가 애니 프루가 ‘미국 최고의 단편’으로 꼽은 몽환적 소설 「항공우편」(1997), 어머니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쓴 「불평꾼들」(2017)을 비롯해, 작가의 30여 년에 걸친 문학 일기와도 같은 다채로운 이야기 10편이 담겨 있다.


[예스24 제공]







퓰리처상, 피츠레럴드상을 수상한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이 책은 총 열 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책이다.


각 단편들마다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다양하고

하나 같이 차별과 갈등, 위기와 일탈 등의 문제들로

현대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현 시대에서 고심해 볼 수 있는 주제들로 다양한 욕망을 그리고 있는

 인생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되는 책이기도 했다.


웃고 넘기기에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많은

깊은 탄식마저 느낄 수 있는 책 속 이야기들에 푹 빠져 읽어보았다.


그 중 첫번째 이야기 <불평꾼들>은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방관하기도 비관하기도

불평으로 살아내기도 하는 현실적인 모습 속에서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고민과 노년기에 겪을 어려움들을

가장 많이 고민해보았던 시간이었다.


"알츠하이머는 아니지만 그 다음 것."

캐시는 델라가 그 용어를 억누르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치매는 좋은 말이 아니다.

그 말은 마치 뇌의 일부를 퍼내는 악령이 있는 것처럼

폭력적이고 침략적인 언사로 들리는데, 실제로 그렇다.

p24


여든이 넘은 델리와 캐시가 남편과 사별 후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된다.


현실에 그저 순응하는 듯 흘러가는 것처럼 여겼으나

경로를 이탈한 폭주 기관차처럼 병원을 탈출해 시골 마을로 다다르게 된다.


다시 한번 살아 간다는 것과

살아남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만든다.


"자, 손도끼를 사용할 때야."

기죽지 말고 한번 해보자는 뜻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누이트 여자들과 공유한 또 다른 자질이었다.

부족 사람들이 칙다야크와 사를 남겨두고 떠난 것은 그들이 늙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불평꾼들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두 노파는 늘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투덜거렸던 것이다.

p42


불평도 중독이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 이후에 오는 짜릿함 때문에 맛을 들이게 되는 걸까.


나이들면 더 꼰대처럼 구는 게

자신들과 주변을 분리시키고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텐데

단순히 늙어서 그렇다기보다 중심이 나에게 너무 나에게 서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도 싶다.


이 책은 <두 늙은 여자>란 책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인디언 할머니 이야기와 연결선상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은 두 노파는

굶주린 상태로 돌아와 부족을 돌보며 가르친다.


그때부터 인디언들은 절대로 노인들을 남겨두고 떠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좀 더 걸어가고 싶었을까.


노년의 고독한 쓸쓸함과 내팽겨쳐진 현실의 안타까움 속에서

뭔가 모르게 마음이 아파온다.


<나쁜 사람 찾기> 역시 결혼 생활의 기대감을 소멸 시키면서도

그런 상실감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차분히 고민해보았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우린 이런 말다툼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해요.

두 분의 불행의 핵심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야 해요.

이런 것들은 표면에만 있는 거예요."

p234


"난 오랫동안 노렸했어요, 찰리.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려고요.

내가 돈을 더 벌면 당신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죠.

우리에게 더 큰 집이 있으면, 또는 당신이 늘 술을 마실 수 있도록 당신을 가만 내버려두면

당신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중 어떤 것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어요, 찰리.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았죠."

p259-260


아내 요한나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남편의 외도로 파국을 치닫고 평화로움이 깨졌다.


믿음과 신뢰를 상실한 결혼의 실체를

나쁜 사람 찾기의 검거에 성공한 듯 보이나

전혀 통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씁쓸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배우자와의 사소한 논쟁부터 큰 갈등을 다룬 이야기.


부부간의 논쟁은 서로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서

이긴 것도 지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결혼 생활을 하나의 단일한 존재로

서로가 우리로 보는 결합인걸까.


서로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깨어진 믿음 안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모든 걸 잃고나서야 가장 소중한 게 무언지 찾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남편의 잘못도 아내의 좌절과 분노도 서로가 감추려하는 모습 안에서

터져버린 염증처럼 오랜 동안의 믿음을 한순간에 상실하게 만드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열 편의 단편들이 가진 갈등과 문제들을 보며

이 시점에서 내가 고민하는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이었다.


잘 만들어진 소설이 아닌

우리의 실상을 그저 풍자적으로 빗댄 현실과 가까운 거리감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랍고 심연의 아픔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욕망과 고통 안에서 인간이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다시 일깨우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지금의 현실 감각을 더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이야기 속으로 한번쯤 빠져보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18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하는 것을 중요한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청송학술상), 『니체와 불교』(원효학술상), 『내재적 목적론』(운제철학상), 『초인수업』(대만, 홍콩, 마카오 번역 출간), 『그대 자신이 되어라―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 『현대철학의 거장들』,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 읽기』,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 『마르크스주의와 헤겔』, 『실존철학과 형이상학의 위기』, 『니체 I, II』, 『근본개념들』, 『아침놀』, 『비극의 탄생』, 『안티크리스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상징형식의 철학 I, II, III』가 있으며, 논문으로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하이데거의 실존방식 분석의 비교」(반야학술상) 등 다수가 있다.


[예스24 제공]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신념을 쉽게 받아들이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세상을 지나치게 불행하다고 해석하는 것 같아

사실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책을 보면서 더 면밀하고 촘촘하게 그의 생애와 사상과 배경을 살펴보면서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였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그의 말에 쉽게 긍정도 부정도 어려웠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고 낙심된다.


고통의 연속 선상에 있는 삶을 부정하기도 힘들다.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가 끊임없이 결핍감에 시달리는 맹목적인 욕망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개체도 맹목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왜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답이다.

이와 함께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악을 완전히 극복하는 길 역시 욕망의 불길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 즉 욕망을 극복하고 부정하는 데서 찾는다.

p39


이 세계는 인간을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쉽게 만족을 얻지 못하며

부족한 결핍에 대해 스스로 고통을 느끼며 산다.


이성이 욕망을 통제해야 하는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인 노릇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대로 제어하며 살 수도 있다고 보지만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이성이 욕망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 곧 욕망은 행복과 연결 선상에 있기도 하다.


좀 더 나은 행복은 비교적 가벼운 불행 속에 살면서

고통을 최소화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욕망과 행복이 구분지어 다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삶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욕망과 쾌락 속에서 좀 더 균형을 맞춰 살기 위해

지금도 안감힘을 쓰는 나에겐 여전히 쉽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욕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고통이지만, 욕망에서 벗어난

순수한 관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아름다움이다.

p162


순수한 관조의 눈은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라 말한다.


사물과 세계의 아름다움을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결핍과 불만에 가득 차 있으면

욕망을 충족시키려 분주하기 때문에

감각적인 쾌락에서 벗어나 욕망을 최소화하며

자족하게 되면 이 순수한 관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평화의 상태에 좀 더 머물며 사는 건

자연을 바라보는 평온한 마음을 허락하는 것 같다.


나의 정신적 수준이 어디쯤 와 있고

무엇이 지배하고 사는지 조금씩 파악하게 되면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에

더 강한 끌림을 느끼는 건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강한 두려움도 이겨낼 회복의 힘을 말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모든 욕망이 사라진 무의 상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의 상태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 환희의 상태를 가리킨다.

p226


욕망에 기생되는 행복이 아닌

근절된 완전하고 순수한 행복을

욕망이 무인 상태라고 말하는 쇼펜하우어는

이를 신비주의적 환희의 상태라고 말한다.


고결한 종교 철학자들의 가장 승화된 정신이 이와 같을까 싶어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과 본질이 이것인가 싶기도 했다.


이와 함께 죽음을 축복이라 함은

생과는 반대되는 상태라 좀 아이러니했다.


살면서는 고역을 치르고

죽어서는 소멸되지만 완전한 종말로 볼 수 없는 상태라니.


죽음을 혼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나는

삶에 대한 미련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럴 것이기에

여전히 죽음은 두렵고 어렵다.


죽음 앞에서 허망하기 그지 없는 사실들이 허다한 걸 알면서도

살아가는 내내 그것들로 속 상해 하며 사는 꼴이 참 아이러니하다.


생의 시작과 끝을 다 훑어보면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기초한 철학적 신념과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배받고 있는 욕망에 대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밤이 아닌 낮으로 나와 살고자 몸부림치는

나의 내면 세계에 대해 좀 더 투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삶의 본질적인 해석을

명쾌하게 풀어낸 강의로 유익한 즐거움을 찾아보길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가까운 위로 - 불완전한 나를 위한 따뜻하고 단단한 변호의 말들
정민지 지음 / 빌리버튼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정한 위로가 되어 힘든 나에게 더없이 담백한 당부를 마음에 심어주는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가까운 위로 - 불완전한 나를 위한 따뜻하고 단단한 변호의 말들
정민지 지음 / 빌리버튼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가까운 위로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정민지
에세이스트. 날마다 산문을 쓰고 가끔 글쓰기 강의를 한다. 둥글고 순한 모든 것들을 좋아하고, 쉽게 절연하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십여 년을 방송사와 종합일간지 사회부·경제산업부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다. 에세이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을 썼다. 앞으로 부지런히 내 글을 쓰고, 그것보다 더 부지런하게 타인들의 글을 읽으면서 살고 싶다.

“우리가 할 일은

의미 있게 생각하는 눈앞의 일을 하면서,

아주 짧은 순간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느끼면서,

그것에 힘입어 조금 더 나 자신과

내 주변에 다정하게 대하는 것뿐이다.”

브런치 HTTPS://BRUNCH.CO.KR/@MANDOO1505

인스타그램 @MANDOO1505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에세이

#가장가까운위로


쉬고 싶은가 보다.


요즘 나에게 더없이 날 사랑해 줄 에너지를

책으로 위로 받고 싶어서 이런 담백한 다짐이 나에겐 필요했나보다.


짐스러운 피로를 벗어던지고 어딘가 쉴 곳을 기웃거리며

방으로 부엌으로 거실로 오가면

집안에서 맴도는 시간들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애를 쓴다.


그렇게 헤매이다가 안주하며 안심하며

잘 견뎌준 하루에 그저 감사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런 내 이야기같은 당신의 이야기가 좋아서

책을 읽은 내내 고요한 정적이 마음을 다독여줬다.


절실하게 원하지도 않는 목표를 목표인 '척' 가지고서 아등바등하는 나 같은

'보편적인 사람'들로 바글댄다.

이건 좀, 뭔가 잘못됐다.

자꾸 자기 자신을 속이다보면 스스로를 실패자나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게 되니 말이다.

징글징글한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내 안의 거짓 목표부터 제거하면, 지금까지 계속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실패할 거라는, 이 징글징글한 자기 비하를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p26


영원한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후회의 순간이

반복되는 고리 안에서 숨이 막히도록 자길 괴롭힌다.


자발적으로 충분히 기쁜 일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나 싶다.


보여주기 식의 목표 설정이 불러오는 참사를

매번 알면서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이란..


심약한 인간에게 동정보다도

잦은 구박과 자기 비하로

더 낮아진 자존감은 언제 회복이 될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이 하루의 시간 안에서

나는 무얼 위해 애쓰는지 모르곘다.


무엇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라 자책만 하며

많은 시간을 때우고 있는지 참 안타까워진다.


칸트가 심각한 건강염려증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했던 그 필요가 나에게도 필요한 건가.


그런 절실함이 아니라면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이 아니라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에 좀 더 자족하며 살면 안될까.


매번 그게 어려워서 이러고 있나보다.


"타오르는 석탄 조각을 끄집어내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는 것이

중년 이후의 세월"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나에게는 클라리넷이 어린 시절 한때 타올랐던 석탄 조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석탄 조각들이 나란 사람에게 남아 있는 습관이 아닐까.

평소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향하게 되는 마음의 습관.

p82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작은 석탄 조각이

어릴때부터 남아 있어서일까.


그 불씨로 매일 그것들을 습관처럼

익숙하게 삶에 스며들어가 있는 이 행위가 그저 좋다.


꺼내 보여주지 않아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석탄 조각을

그저 슬며시 꺼내 볼 수 있는 그것으로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이 오늘을 살게도 내일을 살게도 하는 힘이 되니까.


꺼지지 않은 석탄 조각만으로도

난 충분히 오늘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한다.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말이다.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다정하게 내 맘을 들여다보는

조용한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낸다.


그런 시간들이 더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로 살아가게끔 해줄 수 있어

오래도록 이를 만끽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위로란, 내 안에 있는 날 다시 꺼내보며

다정한 무언가로 채우는 시간이기에

그런 가까운 위로가 책이라 감사한 시간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어있기 좋은 방
신이현 지음 / &(앤드)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숨어있기 좋은 방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신이현

1964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계명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살림, 1994)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하루는 집 앞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음에 나올 책을 위해 파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러 저녁에 먹을 기다란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글쓰기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설레는 즐거움이다.

오랫동안 파리와 프놈펜 등의 도시에 살다가 현재 한국 충주에 정착해 와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갈매기 호텔』, 『잠자는 숲속의 남자』와 에세이 『알자스』, 『루시와 레몽의 집』, 『에펠탑 없는 파리』, 『열대 탐닉』, 『알자스의 맛(그래픽노블 공저)』, 번역서 『에디트 피아프』, 『야간 비행』 등을 펴냈다.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1994년 데뷔작으로, 출간 당시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와 윤리적 논쟁으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작품이다.


[예스24 제공]





1994년도에 출간한 신이현의 장편소설이

재출간되어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에 적지 않은 충격과 여윤이 가시지 않아

무거운 공기 속에서 몸도 마음도 긴장해 있었다.


주인공 윤이금은 안전한 울타리가 없는

다소 철없고 무책임하며 즉흥적인 삶을 사는 듯 보여

계획적인 내 사고 안에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불편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철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서성거려야 했다.

속으로는 항상 '좀 즐겁고 싶어', '좀 자유롭고 싶어'하고 중얼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p39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불안에 잠식된 존재라고 하는 이금.


살아가야 할 방향성도 없이 그저 한순간도 단단하지 못하며

매번 흩날리듯 불안에 떨고 있다.


인생의 스승 따위를 찾아볼 수도 없었고

자신의 인생에 황홀한 순간이 언제 올지 또한 절망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직장 생활도 학교와 가정도

어느 것 하나 안정적인 것이 없었다.


의지할 수 없는 부모의 존재와 복잡한 가정사 안에서

숨이 막힐 법도 해보였다.


불안에 떠도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결혼 또한 억압이었고 희생이 강요된 속박이

그녀를 더 숨막히게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녀는 늘 떠돌고 있었다.


소라 속처럼 둥글고 은밀하게 숨어들이기에 좋았던 방.

p145


어긋나버린 그녀의 삶에서 그 방은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쾌락과 환희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태정이란 남자가 살고 있는 숨어있기 좋은 방은

아찔하고 은밀해 보이면서도 차선을 이탈한 듯 위험해보이지만

그녀에게선 유일한 돌파구처럼 생각한 것 같아 보였다.


그 후의 모든 비극 또한 그녀가 안고 가야 할 테지만

그러한 삶도 끌어안고 사랑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행복도 불행도 자신의 몫이니까.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걸치고 걷다가 또 어디 가서 몸을 구기고 잘 만한 곳을 찾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는 인생.

우리 함께 힘 모아 더 좋은 인생을 위해 노력해보자고 애원을 해도

귓구먼에 들어가지도 않는 오늘뿐인 사람들.

p238


탄식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괴롭다고, 나 좀 구원해 달라고.


지독하게 외롭고,

맥 빠져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는 그녀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우울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빨리 잠에 들려는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완벽한 안락함이 그녀에게 다가오기나 하는 건지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더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그를 사랑했는지 어쨌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와 함께 나는 신나게 웃어댈 수 있었다는 것이었따.


그것은 사랑했다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p278


이금이 웃을 수 있는 숨구멍이 바로 그곳이었다.


유일한 기쁨이 되는 남자. 그런 그와 온전한 사랑을 누릴 수 없었던

자신의 불안감과 흔들리는 삶이

무엇이든 오래도록 지속시키지 못했다.


끊임없이 외로워하며

행복하고 싶어 울음을 터트린다.


각자만의 숨어있기 좋은 공간 속에서 살길 우린 원한다.


그런 장소에서 내가 정화되는 느낌과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이금의 그 방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고립되게 만들진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그 삶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자신을 원망할 순 없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남자'에 붙들려 있었다.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하고 비통해 하면서

한스러운 자신이 새로운 판타지를 만날 수 있길 동경하는 걸까.


좀처럼 무거운 우울감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든 책이었다.


힘겨운 매일을 사는 이들에게

이금의 삶은 자기 그대로를 보여주겠지만

삶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모두가 자유할 수 있는 그 방을 찾아 때론 쉬어 갈 수 있길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