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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평점 :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프랑수아 를로르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85년 의학박사학위와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를로르는 아동 자폐증 전문가를 아버지로 둔 탓에 정신과 의사란 직업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직업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환자들을 검진하기보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깊은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아버지 뒤를 이어 정신과를 택하게 되었다.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1년 간 미국 정신의학계에 몸담게 되며, 프랑스로 귀국해서 1986년~88년, 파리 르네 데카르트 대학 병원인 네케르 병원의 정신과 과장을 지낸다.
건축과 회화, 문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진 그는 현대인들의 정신질환을 치유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빼어난 글 솜씨 덕택에 펴낸 저서 가운데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2년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엑또르 씨의 행복 여행』(국내 『꾸뻬 씨』로 소개)을 출간했다. 행복의 의미를 찾아 떠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전 세계 12개 국에서 소개되었다. 2006년 9월에는 세 번째 시리즈 『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Le nouveau voyage d'Hector a la recherche du temps qui passe』이 출간되었다.
현재 를로르는 정신과 의사로서 NGO단체 알랭 카르팡티에 센터에서 일하며,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를로르의 저서로는 『꾸뻬 씨의 행복 여행』,『감정의 힘』,『엑토르, 그리고 사랑의 비밀』, 『혼란스런 사랑 나라의 윌리크』, 『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미치광이들을 위한 자유』, 『엑토르 씨의 시간 여행』, 『정신과 의사의 콩트』 등이 있다.
[예스24 제공]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의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의 장편 소설을 만나보았다.
북극에서 온 남자 이누이트 울릭.
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아가는 그는
카블루나라고 부르는 문명 세계의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서
예측할 수 없는 현실과 지독하게 외롭도록 싸우게 된다.
그 곳은 울릭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간과 사고를 가진 이들이 배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처참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며 견딘다.
현대 사회 속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카블루나의 문명 생활은
나에게 낯설게 없지만
울릭은 결코 익숙하지 않기에 더 혼란스러웠으리라 생각된다.
고독 속에서 혼자 익숙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누이트인 울릭.
울릭의 시선 속에서 문명 사회를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가족과 친구를 찾지는 않습니다.
도시 생활은 늘 바쁘거든요.
위로가 필요하다고 바쁜 친구를 잡아둘 수는 없지요.
그러다가 자칫하면 친구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모든 사람이 위로해 줄 친구가 있는 건 아닙니다."
p136
화려한 도시의 카블루나에 살아가는 이들도
어쩌면 외롭기는 매한가지처럼 보인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매순간 고독하게 싸우는 건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낯설지 않다.
외로운 걸 알지만 쉽게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다는 고독감과 상실감을
우린 뻥 뚫린 가슴 안에 품고 산다.
이런 외로움이 좀처럼 잘 해소되지 않아
시선을 돌릴 다른 위안과 위로가 필요해 서성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미움을 사는 것.
부족민 사이에 증오가 싹트면 인생이 고달파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포획물을 공평히 나누는 이유입니다.
부족의 평화를 위해서요."
p177
울릭은 배 한 척을 장만했다.
평생을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돈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매일 저녁 먹을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난 경험을 통해 욕망이 삶을 갉아먹는 독임을 배웠다.
그리고 자기 안의 욕망을 다스리는 행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를 위한 일임을 알았다.
p282
파괴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을 그대로 보존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편리로 인해 순수한 자연이 회손되어 가는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만 보고 있자니 토악질이 나온다.
말이 문화적 교류지 석유 회사가 이익을 창출해 내기 위해
하나의 안전 장치로서 그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에 울분을 쏟아내고 싶어진다.
미동도 없어보이는 울릭의 차분함에
더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지 않았을까 싶다.
새로운 삶을 다시 개척해 나가게 되는 울릭을 보며
그 모든 상실감과 고독 속에서 진화되어진 자신을 마주보며
사랑을 찾아 살게 되는 그 뒷 이야기가 더 기대된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어두운 고독 속에서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말이다.
완전한 사랑으로 가는 길을 더듬어
천천히 가더라도 울릭처럼 결국은 그 곳에 닿아 있고 싶다.
간절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