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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돈키호테의 식탁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천운영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문단의 전면을 장식하며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선보여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얘기를 쓰는 천운영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그의 자취방은 공부하던, 회의하던 친구들이 저녁마다 주막처럼 들러서 국수를 말아먹고 갔던 곳이다. 애들 교육은 못 시켜도 이웃에 떡은 돌렸던 할머니의 천성을 이어받았다는 천운영은 남들 음식 해 먹이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뚜렷한 사회 인식이 아니라 토익, 토플, 상식 따위이기에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공권력에 쓰러졌던 시절, 천운영은 손목에는 청 테이프를, 옆구리에는 대자보를 끼고 다녔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출석만 부르고 도망가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소설가의 꿈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고 말한다. 4학년 때 들은 평론수업 시간, 당시 김영삼 정권의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평론을 쓰는 과제에서 선생님이 그의 평론을 재밌게 읽고는 차라리 소설을 써보라던 한 마디가 순간 한 줄기 빛으로 천운영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당시 평론을 논설문이 아닌 현실을 빗대는 이야기를 만들어 썼다는 천운영은 선생님이 농담처럼 덧붙인 한 마디에 소설가의 길과 우연히 마주쳤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소설은 잘 쓸 수 있겠다'는 확신에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예대로 진학했고 2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수업시간에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메모를 했다가 저녁 때 서점에 들러 모두 읽어버리던 천운영은 그 2년 동안 평생 읽은 책보다 대여섯 배 많은 책을 읽었다. 천운영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었던 소설에 대한 꿈을 키운 서울예대 2년은 "소설에 관해 얘기하는 친구도 얻었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소설을 고민하는 열정을 배운" 시기였다고 한다
천운영은 소설을 쓰면서 매 순간마다 집중하는 '화두'가 있다.「바늘」의 미와 추, 「명랑」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요즘 고민까지.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씹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천운영의 소설들은 다르다.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차이는 자못 의식적일 정도이다. 가령, 「바늘」의 주인공은 남자들 몸에 문신을 새기는 젊은 여자이고, 「숨」에는 마장동에서 소머리를 분해하는 일을 하는 남자가 등장하며, 「당신의 바다」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고물상(행복고물상), 유원지의 도깨비집 관리인(유령의 집), 건축공사장 노동자(등뼈) 등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은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인물들이다. 그렇게 낯설고 독특한 이들의 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 역시 천운영 소설의 특징이다. 직접 발품을 팔고 꼼꼼히 취재한 노력이 돋보이거니와, 그것은 이웃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스24 제공]


# 음식에세이 # 돈키호테의식탁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소설가 천운영의 산문집인 <쓰고 달콤한 직업>에서
음식과 사람이야기가 담백하고 재치있게 쓰여져 인상 깊게 남아 있었는데
실제로 스페인 식당을 운영하는 저자의 에세이집을 만나게 되어 대단히 반가운 마음에 설레었다.
이 책은 돈키호테를 추억하며
소설속 음식의 자취를 추적해 나간다.
각 장에서 소개되는 요리 재료와 음식과 잘 어우러지는 이야기들.
소설 <돈키호테>를 통해 스페인 요리가 주목되는 책이다.
요리책과 소설책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매력에 푹 빠져 읽게 만든다.
덕분에 집에 있는 두꺼운 두 권의 양장본으로 구성된
소설 <돈키호테>를 다시 꺼내볼까 하는 충동을 일으킨다.
꽤 많은 음식들과 얽혀 있는 소설 속 캐릭터와의 어울림이
전혀 어색함없이 잘 어우러져있다.
여태까지 접해보지 못한 스페인 음식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에 흠뻑 빠져
스페인 요리의 다양한 음식들과 맛깔난 표현들이 섬세하게 쓰여져 읽는 재미를 더한다.
텍스트 안에서 살아 움직이듯 내 앞에
한 상 가득 거하게 차려진 배부름이 느껴질 정도로
그 디테일과 맛과 멋이 따로 떨어지지 않는 멋진 책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산초가 가장 좋아하는 오야의 일종인 푸체로라 하지 않고,
굳이 오야 포드리다라고 한 이유.
그가 결국 먹게 된 요리가 쇠고기 재활용 요리 살피콩과 약간 쉰내가 나는 우족 요리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음식 가지고 장난치더니 결국 쉰내 나는 우족이나 줄 거라면,
냄새 팍팍 나는 염장 고기 말린 것을 듬뿍 넣은 오야 포드리다를 달라고.
"인생 별거 있소? 살거나 죽거나지.
그러니 있는 그대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면서 평화롭게 함께 먹도록 합시다.
하느님이 아침을 여실 때 모두를 위해 여시는 것 아니겠소?"
p184
산초가 좋아하던 오야 포드리다.
온갖 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고깃국.
이 음식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공작 시나리오에 놀아난 폭소극에 웃지 못한 일인으로서
그 씁쓸함을 목구멍에 겨우 넘기고서
산초가 갈수록 현명해지는 걸 보면서
마지 못해 웃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내 모습 같아서.
호사스러운 음식을 뒤로하고
약간 상할 듯 말듯한 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고깃국
한 사발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
살거나 죽거나 하는 인생살이에
빡빡한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는 산초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오야 포드리다의 맛과 함께.
돈키호테가 무수한 고난 속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누었을 때, 산초가 굳은 빵 하나를 내밀며 이런 말을 했다.
빵과 양파만 있다면 그 어떤 고난도 좀 견딜 만하지 않겠느냐고.
p244
당신과 함께하면, 빵과 양파라도.
서약의 문장이기도 한 이 말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당신 곁에 내가 있고 내 곁에 당신이 있는데
빵과 양파만 먹고 산다 해도 괜찮지 않냐는 말이
애달프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정말이지 눈물 나게 달콤하다.
곡기를 끊으며 고행의 길을 외롭게 가는
외톨이 기사에게 동행자라도 있으니 좀 덜 외롭다 봐야할지 모르겠지만
이 말이 다른 어떤 멋진 말보다도 힘이 되는 건 그 안에 건네는 위로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다정함이 빵과 양파라는 음식 속에서 샙롭게 느껴지니
알싸한 매운 맛 뒤에 단맛으로 균형을 맞추는 양파와
딱딱하게 굳은 빵이라 할지라도 뜨근한 양파 수프 안에 녹아들여져
촉촉해짐으로 변신하는 이 둘의 조화를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늘이 정해 주신 날까지,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먹으면서 생을 이어나가겠다는
산초가 들려준 속담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렇게 매일 배를 불리며 살 음식들과 씨름하며 살테지.
돈키호테도 산초도 그의 말이 철학적으로 들리는 건
나이가 더 들고 나서였다.
이젠 그들이 먹었던 음식과 인생 이야기를
이 책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가장 편하게 돈키호테를 대면했던 시간이었다.
그의 삶과 밥상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난 돈키호테의 매력에 빠져들어
이 책을 덮고서 다시 두꺼운 양장본 책 소설 <돈키호테>를 집어들었다.
다시 엄숙한 미치광이의 이야기 속으로 출정 준비를 시작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