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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 김은섭 암중모책
김은섭 지음 / 나무발전소 / 2020년 10월
평점 :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김은섭
도서 평론가. 인터넷 세상에서는 리치보이(Richboy)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1세대 온라인 서평가다. 제아무리 좋은 책도 읽히지 않으면 ‘죽은 나무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신념으로 좋은 책과 독서법 그리고 글쓰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다. 쓴 책으로는 서평집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 책을 읽고 즐기는 법을 이야기한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는 『공감의 한줄: 세상을 바꾸는 어록의 힘』,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 『평범하게 위대한 우리책 100선』 등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징가 제트 장난감에 홀려 60권의 책을 할부로 구매하고 다음 날 아버지한테 매 맞고 쫓겨났다. 물론 책과 친하지도 않았고, 책을 읽지도 않았다. 머리가 나빠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교과서와 참고서만 붙잡고 있느라 책과 담을 쌓고 살다가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를 꼴찌로 들어갔는데 웬걸,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책 읽기는 신기했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며 책 읽기 습관을 들였고, 1년 뒤에 책이 손에 달라붙는 경험을 하게 된 후로는 책에 푹 빠져서 살았다. 지난 20여 년간 직업은 네 번 바꾸었지만 하루라도 책에서 손을 놓은 적은 없었다. 매달 20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현재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책이 수천 권에 달한다. 교보문고 북모닝 CEO 선정 ‘북멘토’, 경향신문 「책으로 읽는 경제」 칼럼과 코오롱 그룹과 한전 사보에 북 칼럼,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에 경제경영 전문가 칼럼 등을 연재했고 MBN M머니 [경제 북카페], 팍스TV [부자가 되는 책], CJB 라디오 [김은섭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에 출연했으며, 2010년부터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입문]과 [독서클럽] 강의를 했다. 2008년부터 Daum 우수블로거로 꼽혔으며, 2010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TOP 100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스24 제공]


암이라는 병을 안고서 뭔가 집중하며 사색하는 시간이
과연 온전히 가능할까.
사실 난 자신이 없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아픈 것에 온통 신경이 다 쏠려서
그 좋아하는 책마저도 귀찮게 여겨지니 말이다.
투병 중에 병상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도 힘들다.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도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노동이다.
이 책을 보며 내가 읽고 있는 한 권의 책도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시간과 추억이다.
아직 철들지 않은 풋내 나는 독서와 글쓰기지만
좋은 책들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 같아
내가 만난 이 책은 그런 길로 나를 또 이끈다.
이 대목에서 멈춘 나는 책을 덮고 암환자가 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데에 몰두했다.
'피할 수 없으면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내가 대장암에 걸린 건 나라는 자동차가 인생이라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충주 어딘가에서 잠깐 고장을 일으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는 건 정비소에 잠깐 들려 고장 난 부픔을 떼어내고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 끼우는 정비를 하는 것이다.
단지 그러느라 원해 가던 길을 잠시 벗어났고, 시간이 지체되었을 분, 이제 다시 달릴 일만 남았다./p80
이 같이 마음 먹기가 쉬웠겠는가.
죽을 수도 있다란 극한 상황에서
비관적인 마음으로 모든 상황들을 조금이라도 여유있게 살필 수 없을 것만 같다.
인생을 자동차에 비유하는 이 설명만큼
지금의 자신을 잘 설명한 글을 보니
속도는 느리지만 천천히 고속도로에서 가다 쉬다 가다 쉬다하는
내 인생도 참 고단하지만 꾸준히 가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몇 번이고 현실을 부인하고 싶었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지만,
그에겐 책과 글쓰기가 강한 삶의 원동력인 것 같아 같이 힘을 내고 싶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라며
여행을 칭송한 바 있다.
또 어떤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떠나기 직전의 설렘 때문"이라고,
막상 떠나면 모든 여정은 '개고생'이라고.
나는 개고생 아니라 비행기 타고 이륙하자마자 김해공항으로 회항한다 해도 지금 떠날 수 있어서,
그럴 만큼 건강을 되찾고 있어서 공항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정말정말 행복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바쁜 하루를 보낸 의사 친구는 잠이 들었다.
나는 커피 한잔 받아들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가방에 담아온 책을 폈다./p199
가장 편한 자세로 책을 읽는 재미.
매일 밤 독서를 즐기는 나에겐
여행만큼이나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별거 아닌게 누군가에겐 가장 소중할 수 있다.
어디 먼 곳에 훌쩍 떠나고 싶어도 시국이 이러니
보고 싶은 부모님도 얼굴을 못 뵌지가 오래 됐다.
일상에서 잠시나마 나의 피로감을 덜 수 있는게 책이기에
여행 떠나는 그 기쁨과 설렘을 좋은 책 한권으로 달랜다.
커피 한잔과 책 한권이라면 충분할
나만의 시간이 별거 아닌데 괜히 더 감사하다.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시간이었음에도
삶의 긍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는 모습에
더 말할 수 없는 숙연함과 존경하는 마음에 손이 모아진다.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삶의 깊은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늘 손에 책과 펜이 들려있는 저자의 삶이
얼마나 가치롭고 숭고해보이는지..
아직 한참이나 부족한 나의 인생이
그를 흉내낼 수도 없기에 저자의 책으로나마
고단했을 인생 길 위에 책이 함께 있어 살아가고 깨닫고 성장하는
건강한 삶을 응원하고 또 격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