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평점 :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아리
아리 (임현경)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공장의 표준화된 컨베이어 벨트를 크게 이탈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아니, 오히려 잘 따르는 축에 속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결혼 적령기라고 하는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나답게 살아간다’는 감각이 없었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아내라서’라는 말들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일상이기도 했다.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우연히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으로 짧은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곳의 한 허름한 도서관을 거닐다가 문득 ‘여기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국에 남아야 할 이유보다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더 컸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준비 끝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우붓으로 삶의 터전을 성큼 옮겼다. 남편은 한국에 둔 채로. 아이와 단둘이서. 함께 떠날 수 없다면 떠날 수 있는 사람부터라도 먼저 나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긴 휴가를 선물하고 싶기도 했다.
그 후 약 4년간 우붓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신 안에 숨겨진 수많은 가능성들을 열어젖히며 ‘진짜 나’를 만나는 경험을 했다. ‘하고 싶은’ 소망의 리스트만 있었던 삶이 ‘해내고 마는’ 성취의 삶으로 충만해져갔다. 요가와 명상, 살사와 키좀바, 오토바이 라이딩을 좋아한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우붓을 떠나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번역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타인에 대한 연민》 《NO BAGGAGE, 여행 가방은 필요 없어》 《속도에서 깊이로》 《제3의 식탁》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 등이 있다.
ㆍ 인스타그램 @ARI_BLOSSOM_
ㆍ 브런치 HTTP://BRUNCH.CO.KR/@ARIBLOSSOM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강제성을 가지고 쉬어야 할 의무를 잃어버리고
코로나 19와 함께 내 생활은 늘 아이들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
물론 감사하고 행복한데
이게 참 오롯이 혼자되는 시간이 없다보니
충전보다 소진되는 속도가 빨라 저녁이면 기진맥진 기운이 없다.
이 책이 나의 결핍되고 갈증나는 부분들을 두드린다.
좀 더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고
좀 더 나를 위해 살아도 좋다고..
그래서 떠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함과
이젠 다신 오지 않을 잃어버린 기회를
추억 한켠에 너무 일찍 보내어버린거 같아 맘이 아파왔다.
작은 여행이란 걸 계획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기쁨을 오랫동안 잊고 산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떠나는 용기가 부럽고
넓은 곳으로 달려가는 모습 속에서 설레이기도 한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 내게 꼭 필요했던 '그것'은 바로 멋진 책상이었다.
화장대와 선반을 겸하는 책상 말고, 짐만 올려놓게 되는 텔레비전 아래의 책상 말고, 진짜 책상다운 책상을 탐했다.
책상이 내 삶에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책상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었다./p77
여행을 떠나 혼자서 지낼 넉넉한 공간 안에서 책상이라니..
나를 위해 잘 차려먹는 끼니처럼
집 안에서 나만의 작은 공간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나 역시도 가족들과 분리된 내 책상이라는 공간을
돌보고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들로 나를 채워나간다.
대단한 서재는 아니지만 책상과 읽을 책들이 꽂힌 책장만으로도
꽤나 안정감을 느끼며 산다.
고단했던 하루가 이곳에서 다시 재충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간다.
'아, 나는 이미 꽃이었구나. 씨앗도 아니고 봉오리도 아닌, 벌써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이었구나.'
지그시 감은 두 눈, 머리 위의 꽃 한 송이, 뜨거운 가슴과 그만큼 뜨거운 눈물.
고요했던 그 순간, 나는 활짝 핀 한 송이 꽃이었다.
서른여섯 달 동안 아이는 예뻤지만 육아에 협조할 시간이 없는 남편은 견디기 힘들었고 나는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런 내 삶이 우울해서, 내 삶에 불행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아이한테 내 불행을 전염시키고 있는 것만 같아서 힘들었다.
놓쳐버린 꿈들과 어긋난 채 이만큼 흘러와버린 인생에 억울해하며 하루를 꾸역꾸역 살았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것 같은 내 인생이 안타까워 종종 울었다./p188-189
여행의 분위기에 취해서라기보다 나를 들여다 볼 조용한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당 십자가 앞에서
세 돌 지난 아이와 앉아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