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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물건 -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
모호연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5월
평점 :
반려 물건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모호연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꾸준히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무엇이든 분해해서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만, 동거하는 물건들에게는 지극히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반려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와 함께 일상적인 예술 창작을 위한 ‘SOSA PROJECT’를 결성하여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데일리 구독 매거진 『일간 매일 마감』의 주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재작으로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가정 생존자」, 「111 공방」 등이 있다.
dailymagam.com
mohoyeon@gmail.com
[예스24 제공]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나 현실은
맥시멈한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일인의 이야기에
내 라이프스타일과 너무 닮아 있는 그 모습이 반갑기까지 하다.
나름 정리 정돈을 한다고 하지만
남편은 별로 티가 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몇 시간동안 버릴 것과 수납, 정리로 깔끔해졌다고 생각하나
3자의 눈에는 별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하기에 맥이 빠진다.
조금 비워진 자리의 여백을 즐기는 건 잠시
또 새로운 물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남편이 그럴만도 하겠다란 생각도 들고
여전히 이 습성을 버리지 못한 고집스러운 내 취향에 스스로 답답해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잣대로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고 싶진 않다.
버리질 못하는 나처럼 내 기분과 취향에 충실한
이들과 한껏 공감하고 싶다.
이 책은 더없이 반가운 타이밍에 만난 책이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도 원고를 버리지 않고 집에 쌓아 두었다는 것이다.
매일 수십 장의 종이를 가져왔고 종이는 책상 한 켠에 차곡차곡 쌓였다.
방송대본으로 쓰는 종이는 일반 종이보다 두껍고 질이 좋아서 한 번 쓰고 버리기 왠지 아까웠다.
그렇지만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내 책상을 종이 무덤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엄격한 환경주의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비어있는 종이를 채우지 않고 버리는 건 마음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p41
학창 시절에 이면지를 모아 수학 문제 풀이할 연습장을 아빠가 만들어주셨다.
지금보다도 종이 질감이 거칠고 얇은 회색빛 종이들을
아빠 회사에서 버리는 폐품을 모아 두툼하게 어느 정도의 두께가 되면
스템플러를 두 번 찍어 무심하게 건네어 주셨다.
이면지를 쓰는 버릇이 그때부터여서일까
한쪽이 빈 공간에 뭔가 채워넣어야 할 것 같아
미련을 버리고 버리지 못하는 이면지가 책상에 산을 이룬다.
아이들은 왜 이런 쓰레기를 안버리냐고 하지만
아직 쓸 수 있는 물건이라는 이유로
버리질 못하게 하는 나도 옛날 사람인건가.
양면을 다 채우고 나서야 안심하고 버릴 수 있는
이 엄격하고 찌질해보이는 내 모습이
가끔은 참 우습기도 하다.
빈 종이를 들고 한참을 씨름하고
한 자라도 끄적이며 적어볼 생각으로
연필만 만지작거린 시간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면지는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절약이 몸에 벤 어른들의 습관이
서서히 나에게도 스며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쓰다만 종이엔 마음이 쓰인다.
그렇게 미련을 남기는 물건들로 집안이 가득 차 있는 게
어떨 땐 갑갑하게 느껴지지만
환경 보호라는 미명 아래 숨어있는 내 물욕을 잘 알고 있다.
어쩌겠는가.. 이게 나 인걸...
뜬금없이 물욕이 솟구칠 때는 당근마켓에 들어가본다.
중고 물건들을 한참 보고 나면 물건을 사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진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점점 사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진다.
스크롤을 내리다가 점점 다른 물건에 눈길이 가고 정작 사려던 물건을 까맣게 잊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욕을 퇴치하기 위해 중고 마켓을 이용하는 기막힌 선순환.
일반 쇼핑몰처럼 당장 결제하고 배송시킬 수 없는,
휴대폰 액정 너머에 동네 사람이 있는 중고마켓.
역시 재미있는 시장이 아닐 수 없다./p103
내가 원하는 컨디션의 물건이 딱 맞게 떨어지는 게 없다.
구하는 아이템들을 알림 설정까지 해두고도
가격이 맘에 드는 건 상태가 좋지 못하고
컨디션이 좋아보이는 건 거의 새것과 비슷한 가격으로 파니
중고 마켓 구매도 쉽진 않다.
내가 중고 시장을 거래하게 된 건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구도 장난감도 책도
큰 아이때는 다 새걸로 구입했지만 둘째 출산 이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험하게 써대는 통에 처음에 빛을 읽는 속도가
다른 집보다도 더 빠른 듯하여 중고 마켓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나름 현명한 소비를 했음에 뿌듯하고
아직 내 집이 아닌 공간 안에서 이사를 염두해야 함도 있기에
새것보다는 상태가 나쁘지 않은 중고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요즘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직거래를 할 수 있는
당근 마켓을 자주 이용한다.
그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음에
요즘은 초창기보다도 많이 핫할 정도로 신박한 물건들도 눈에 띄게 나온다.
물건들로 가득한 집이 더 정신없어지는건 시간 문제이기에
조금은 가속도를 멈춰 천천히 그 재미를 느껴보련다.
내 반려 물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확인하며
내 삶의 방식을 지금은 좀 더 즐기고 싶다.
나름의 취향이란 변명을 주절거릴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