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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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과학, 신을 꿈꾸는 인간 편





이번에 만나보게 된 지식 편의점은

과학과 종교라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방대한 지식의 양을 축약시키기도 힘들텐데

이전엔 가볍게 살펴보면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다루면서도 이해하기 쉬워서 더 기대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 책도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었다.

접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다양성을 적절히 다루고

난의도를 상당히 높게 잡지 않아서

살짝 겁을 먹고 접근했던 나에게도 제법 책을 수용함에 어려움은 없었다.

흥미로운 과학의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놓을 수 있는지 말이다.

다양한 주제의 장 중에서도 과학 기술의 그림자를 다룬 두 가지의

중요한 서적이 집에 있음에도 아직 완독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어서 더 인상적으로 살펴보았다.

뉴턴 법칙으로 특정되는 기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은 발전이라는 개념을 신봉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더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용한 에너지가 쌓이는 것을 막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인류는 기술의 신화에 휩싸여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

리프킨의 진단입니다.

p223

제러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라는 열역학의 개념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이 개념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다.

무용한 에너지밖에 남지 않게 되면

가까운 시기에 멸명하게 될 지구를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기술 발달이 무질서를 쌓이게 한다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예시를 보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편리함과 유익함을 얻기 위한 기술이

엔트로피가 감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장기적으로는 증가하고 있는 것이란 걸 수긍하게 만든다.

에너지를 줄이고 물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장은 불편한 일인 건 분명하다.

대규모적인 기술 발전이아닌 소규모로 흐르는 기술로서

엔트로피의 증가를 최소화시킬 것에 대해 동의가 되고

적색 경고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한 발짝의 진보에도 앞뒤를 살피며 내딛는 주의 깊음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과학 기술의 능력이 크기 때문에 서툴거나 작은 행복 하나에도 인류 멸망이나

인류 말살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거든요.

이미 우후죽순 개발한 핵폭탄은 지구상에 보유한 것을 다 쓴다면

지구 자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르렀잖아요.

처음 핵폭탄이 등장한 지 불과 70여년 만에 인류는 자기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셈이 된 것이죠.

p239

지금의 때가 앞으로의 예기치 않은 대가를

갑작스럽게 얻게 낼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더 많은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겠지만

환경 오염이라는 문제가 항상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환경 문제에 대한 대단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책이 분명했다.

친애하는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해를 미칠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꽤 사실적으로 서술한 책이라 더 놀랄 수 밖에 없다.

살충제나 제초제 같은 유독성 화학물질이

대단히 큰 심각성을 가진 피해로 나타나

인간을 위협한다는 걸 책을 보면서 더 소름끼치게 느끼게 된다.

그 위험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으니

레이철 카슨의 위협적인 상황에서 걸어야 했을 진실의 목소리를

함구하지 않았으니 덕분에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연적으로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기술과 환경오염의

양갈래의 길 위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고심할테지만

맹목적으로 속도를 올리는 건 굉장히 위험한 수위인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개발과 적용의 단계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과학과 인류의 연결 고리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구조 속에서

같이 동행하며 걸어가는 것이 결코 쉬워보이진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역시나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호기심들이 편협한 사고를 확장시키고

관심사의 범위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식이 고플 때 언제든 찾아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지식 편의점을 항상 애정하고 있는터라

이번 주제만큼은 좀 더 비장한 마음으로 살펴보았던 책이었다.

지식의 깊이와 교양의 넓이가

한층 진화된 성숙함으로 만나본 이번 책은

과학이라는 손이 잘 닿지 않은 분야에 감히 뛰어들어 살펴보고

마음껏 사유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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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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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험





전원생활을 늘 꿈꾸며 산다.

집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집순이라

계절마다 가구 배치를 이리저리 바꾸며

몇 안되는 식물을 가꾸고

포인트가 될만한 어울리는 배색의 패브릭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지금 사는 집에서 당장의 이사를 꿈꾸지 못하기에

이렇게나마 소소하게 변화를 주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산다.

언제쯤 가능할지 모를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막닿아 있지 않은 꿈같은 생활을

책 속에서 대리만족하며 이들의 삶을 기웃거리며 살펴보게 된다.

아이가 있다면 더 재미있을텐데 싶어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뭇치게 그리운 전원생활을

나는 꿈만 꾸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부러움이 밀려든다.

현실판 전원 생활의 이모저모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책에나마 내 마음을 기울여보았다.

이 집에서는 어떤 일을 겪을지 몰랐다.

그래서 뭐든, 어떤 일이든 우선 신기하고 새로웠다.

조심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아이들을 단속하기보다는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하고 눈과 마음을 빛내며 창밖을 보곤 했다.

눈이 오고 비가 내리고 뱀을 만나고 벌집을 발견할 때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방방 뛰며 아이들을 불렀다.

암탉이 품던 알에서 귀여운 병아리가 태어났을 때도, 며칠 후 물통 속에 빠져 죽은 병아리 한 마리를 발견하고

슬퍼했던 일도, 위쪽 밭에서 커다란 두꺼비가 나타나고, 아이들이 작은 두더지를 잡아 보여준 일도

우리에겐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다.

p56-57

도시 생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는 나에겐

이같은 생활이 좀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긴하다.

뱀이라든지 벌집이라든지 두더지가 웬말인지 말이다.

아마도 놀라서 기겁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 소란스럽지 않을까 싶다.

더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좋아할땐 언제고

막상 이같이 자연과 벗하며 살게 될 전원 생활이

나에게 현실로 다가오게 되면 도시인의 삶을 정리하는데 나에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럼에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데에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생활이 모험처럼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모습들이

마치 내 일처럼 다가오는 생동감있는 삶에 동화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내게 오는 음식을 고맙게 여기는 것, 그 음식을 가져다준 수고에 감사하는 것,

그 마음을 알고 오래 느끼는 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노동에 더 겸손하게 한다.

독립은 그런 노동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집에 오고서야 내가 일상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에 기대왔는지 알게 되었다.

p90

도시 생활의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편리함이 익숙한 나머지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다보니

노동에 대한 집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좀처럼 잘 생기지 않는다.

전기 검침원, 정화조 기사, 난방유 공급 등 관리사무소에서

다 신경 써주기에 내가 신경 쓸 일이 없지만

전원 생활은 그들과 더 직접적인 관계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 같다.

소중한 집을 더 소중히 가꿀 수 있도록 수고호 돌봐주는 이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어디에 사는지 집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사사로운 것들이 더 큰 감사로 느끼는 예민함이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보여질 것이 참 교육 같아 좋게 생각된다.

자연 친화적으로 살다보니

이것 저것 불편한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일상 속에서 작고 비중있게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감사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들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나에겐 익숙함으로 무뎌진 감정들이

이곳에선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낭만과 멋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냥 삶 그 자체가 모험이고,

매일의 변수들이 호기심과 깨달음의 화수분으로 다가오는 생활 아닌가.

간절히 원하면서도 과연 내가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기대와 꿈을 가지고 생생하게 살아갈 그 집이라는 또다른 공간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또 살아가게 될지 궁금하다.

미리 먼저 살아본 이들의 삶을 보면서

그 친밀하고 따뜻한 전원의 생활을

너무 낭만으로만 무장할 것만이 아닌

단단한 체력으로 무장한 노동력과

탐험가의 자세로 양껏 충전된 몸과 마음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에겐 지금 이 공간 밖의 또 다른 집이라는 세계에

재미있는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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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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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삶이 힘들 때 책으로 숨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은 인생이기에

조금씩은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어제도 오늘도 어김없이 읽을 책을 곶간에 쌓아두고서

무얼 읽을까 고민하고 선택된 책을 뽑아들어

세상 편한 자세로 마구 뒹굴며 책을 본다.

이런 소소한 행복은 아마 평생을 해도 지겹진 않겠지.

책과 사람이 사는 삶의 이야기는 더더욱 특별하다.

저자의 특별한 직업에 굉장히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저자가 사랑하는 책에 대한 신뢰에 애정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마음이 가는 책이었다.

가만히 스며드는 문장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보며 책 속의 책을 찾아

나의 책읽기를 확장시킬 수 있는 호기심 창고인 셈이다.

그런 다정한 책읽기를 조용히 안내하는

이 책의 친절한 속삭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책에 마음을 기댔다.

책을 읽을 때 저는 진정한 의미의 '고독'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그러한 고독의 맛을 정말 잘 알고 있고, 글 속에서 독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읽고 쓰는 과정에서 철저히 고독한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요.

자신은 고독해서 행복을 느끼는 거지 고독함에도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p80

읽고 쓰는 행위 자체가 홀로 고독해지는 시간이다보니

고독을 느낀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즐기는 독서인들이 제법 많다.

나또한 그 중 한 명인지라 이같은 자발적인 고독에

애써 시간을 내고 이 시간을 맘껏 즐긴다.

탐독의 시간은 나에게 큰 자양분을 만들어주고

단절과 연합에 큰 힘을 더한다.

느리고 조용한 이 취미 활동이

지금은 반려 생활이 되어 가는 덕에

조금은 힘겨운 시간들을 고요하게 고독하게

잘 음미하며 지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지극히 내향적인 독서인이라서 말이다.

홀리아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주변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친구를 보면 나와 참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바라고, 사회에서 옳다고 하는 삶을 꽤 오랫동안 살았던 건,

저 역시 '완벽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누구보다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p169

책 속에 책들 매력을 느낀 책이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의 작품이었는데

저자의 리뷰를 찬찬히 읽다보니

뭔가 가슴 안에서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하고 안전하고 완벽하려 했던

내 안에 단단단 성벽을 뚫고 나오는

자유 의지가 꿈틀거리는게 느껴졌다.

뭔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여태껏 잘 쌓아온 외벽을 허무는 걸

좀처럼 허락하지 못했던 '착한'이란 수식어가

사방으로 튀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사실 내가 향하는 방향성은 그와는 다를 수 있다는 걸 의지적으로 알고 있다.

쉽게 허물 수 없었던 건 나의 욕심과 두려움이 늘 앞섰기 때문이다.

더 많은 핑계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도 있겠다.

그러나 이따금 찾아오는 끓어오르는 열망은

이와는 반대로 나답게 살아가라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허물어 버리진 못하고

조금씩 수정되어지고 있는 인생의 기준과 역할을

온전히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따라보기로 마음먹고 그리 살아가는

일탈의 재미를 느끼고 살아가는 요즘이다.

그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을

통쾌한 해방감과 즐거움이 있다는 걸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몰랐다는 것이 좀 억울할 정도이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 착한 딸, 착한 며느리 등

그저 남을 먼저 배려하고

지극히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했던 나의 욕심과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 더더욱 열심히였던 열심을 좀 내려놓고보니

그다지 나쁘지 않고 편하고 좋은 점이 많았다.

이제는 조금씩 내가 무엇을 원했던 삶인지

바뀔 수 있는 기준을 수정해 가면서

남은 인생의 시간을 조금은 내 기준에서 유쾌하게 살아가보고 싶다.

책방 주인이 소개하는 책은 뭔가 다른 건가.

이토록 매력적인 책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는 것이 가슴 설렌다.

반짝이는 책들을 하나씩 만나볼 생각을 하니

이 다정한 독서록이 어찌나 고맙고 감사한지.

책과 책이 연결되어 나를 이어주는

이 깊고 넓은 세계를 맘껏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나의 독서록도 이토록 아름답게 채워질테지.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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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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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늦깎이의 취미 생활이 밤샐 줄 모른다는 말을

과연 이 책에 비유해봐도 좋겠다.

왜 난 이 책을 보면서 이렇게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눈치보지 않고 양껏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잠시나마 노화의 속도를 느리게 붙잡는 양

활기와 에너지를 넘치게 만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체르니 100번을 끝으로

마흔이 넘은 이 나이가 되기까지 피아노를 쳐 본 적이 없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가끔 늦는 재즈, 클래식 피아노의 선율이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제법 저장되어 있는 걸 보면

난 연주하는 쪽보다는 지극히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작년에 문득 다시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덜컥 생겼다.

집 앞 피아노 교습소를 지나치다가

성인 강습반에 대한 문의를 하고서

아직 수강을 끊진 못했지만 나에겐 못다 친 피아노의 열망이 있었으리라.

지극히 내향적인 나에게 하나의 로망이 있다면

제법 악보를 보고 혼자 칠 정도의 스킬이 있으면

혼자 집에서 좋아하는 곡을 연주 또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상상으로 끝나지만 분명 그 선율은

내가 재생해서 듣는 피아노 연주와 흡사하리라 기분 좋은 공상에 빠져본다.

그땐 제법 무서운 선생님께 50센티 자로

손바닥을 맞으며 배웠던 기억에

마무리를 좋지 못하게 짓고 발걸음을 돌린터라

상처가 회복되고 다시 피아노를 들여보게 된 건 어른이 되고서였다.

그래서인지 늦은 나이에 뭔가를 열정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태도와 자세는

나에게 굉장히 좋은 에너지와 영감으로 다가온다.

노후가 신나고 재미있는 놀거리를 탐험 삼아

인생의 참 맛을 이제 제대로 즐겨볼 나이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체력만 허락된다면 맘껏 즐기며

내가 하고 싶은 걸 신나게 해보고 미련없이 살아보자고 외치고 싶어진다.

어른의 피아노는 다르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경험해 보면 누구나 놀란다.

또 한가지, 결승점이 없어서 좋다.

p78-79

경쟁도 없으며 강요도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으면 시작하는 것이고

아니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가슴으로 내 열정을 순수하게 끌어내서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

배움이라는 세계가 주는 커다란 힘 같다.

어른의 공부, 배움의 시간은 이토록 달달하다.

얼만든지 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평가에 눈물 지을 일이 없다.

그저 나의 만족으로 시작한 것을

계속 즐기면 그만이다.

듣는 것과 연주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연주는 더욱 깊게 듣는 행위다.

곡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를 사용해 곡을 연주함으로써 자신이 곡 자체가 된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연습에서는 악보 읽기가 버거워 감동할 여유가 없었다.

나도 조금은 발전했다는 증거였다.

p128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주를 하겠노라 용기를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보는 실행력을 보며

이토록 멋진 노년의 모습이 있을까.

곡이 완성되어 완전한 연주의 형태를

내 것으로 얻었을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이 안될테지.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노년을 나도 꿈꾼다.

눈이 반짝이는 재미와 즐거움에 푹 빠져

인생 후반전이 더 신나고 경쾌하길 소망해본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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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와 너머의 세계 - 무소속 낀 세대 여성의 나이 듦에 대하여
박의나 지음 / 왼쪽주머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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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가는 것이 제법 괜찮다는 걸 서슴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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