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과 멋진 경험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자주 쓸쓸하고 문득문득 불안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이곳에서 보고 그린 그림들이 외로움을 달래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그림에서 큰 힘을 얻는데, 내 그림도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위안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p112
시간만큼이나 경험도 추억도 쌓이겠지. 언젠가는 이 여행을 끝내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누군가를 만나고 늙어가겠지. 내일조차도 알 수 없는 오늘은 그저, 먼 미래에도 내가 자유롭고 소중한 이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를 바랄 뿐. 지금 행복하다, 그러니 다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토닥이며 일기를 쓴다.
p189
여행이나 살아가는 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지루해도 무언가 새로운 게 있겠거니하고 살아간다. 부담감에 불안해하기도 하고 기대감에 행복해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다. 내 인생에서 짧고도 긴 지금, 나는 여전히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가고 있다.
p191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때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떠났던 그곳이 생각난다.
나는 또 금세 후회하고, 뒤늦게 깨달을 거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이젠 인정할 수 있다. 이제껏 많은 후회와 두려움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그런 시간이겠지. 뒤돌아보고, 잊지 못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살겠지. 그래도 그냥 고스란히 안고서, 무겁고 힘들어도 걸어가야겠다.
p263
사실 삶이란 게 뻔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 위해 홀로 떠나고,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찾으며 세상을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당신을 찾았다는 고백을 하고 싶었다. 이것이 찰나이든 영원이든 상관없다. 삶의 모든 것에 정답이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p339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너무 근사해서
글과 분위기에 취해서 읽다가도
쓸쓸해지기도 나른하기도 다정해지기도 힘이나기도 한
여러 기분들을 느끼는 문장 속에서 마음이 여러번 요동친다.
그림만큼이나 글이 좋았던 봉현 작가님의 이 책이
내 서재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들뜬다.
보물같은 책을 만난 기분이랄까.
커다란 상념 속에 빠져 여러 날 여러 해를
힘들게 보낸 지난 날을 추억하면서
괜시리 코 끝이 찡해오면서도 기대감에 부푼다.
언젠가 종착지에 닿을 걸 아니까 말이다.
나 역시 혼자인 나를 가만히 둘 수 없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했다.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서
결핍을 메워나가다보면 정답을 찾을 것만 같아
더 많은 것들로 날 덮어나갔던 것이 화근이 되기도 했다.
언제쯤 이 불완전함을 벗어날 수 있을까.
청춘의 방황이 젊을 때에만 머무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수없이 떠오르는 불안과 걱정이
머리에 둥지를 틀면
무수히 많은 밤을 생각에 깊이 잠겨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방황의 시간속에서 나를 찾기 위해
용기 있게 떠난 수많은 여행지의 종착역을
아주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에서 힘이 난다.
곁에 누군가가 함께 한다는 것이
걸어가는데 더 신이 나고
마음을 나눠가며 같이 호흡한다는 큰 위로를
낯선 길에서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