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더 단단해질 줄 알았던 마흔의 나이를
난 너무 큰 어른으로 생각했었다.
무르익는 시간이 나에겐 더딘가 싶기도 했다.
전보다는 요동치는 파도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는 잠잠해졌지만
여전히도 흔들리는 중년의 마음.
사춘기 자녀와의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기고
낮아지는 자존감을 붙들기가 힘들었다.
내 인생의 깃발을 단단히 세우고 있는 게 맞는지
엄마로 아내로 나로 살아가기 너무도 버겁게 느껴지는 건 나뿐인걸까.
아직은 좀 더 움츠러들어도 괜찮을 나이인지
나에게 이 책은 가만히 다가와 조용한 위로가 되어준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충분히 흔들릴 수 있다고.
타인이 불러준 이름은 '자아'가 아닙니다.
그 이름에 의존한 '내'가 있었을 뿐입니다.
중간항로 시기는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진짜 내 이름을 찾아야 할 시기가 왔다고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타인이 불러준 이름이 아닌,
내가 나에게 불러줄 이름을 찾을 시간입니다.
p57
내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 피어오르는 시간을 난 마주했다.
이따금 외면하고 살았는데 이젠 이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나보다도 좀 더 가족을 위한다는 이유로
항상 후순위로 밀려있는 나의 정체성을
이제서야 되찾고 싶은 생각에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러지고 싶은지 고심하게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란 쉽지 않았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따르지 않아 쉽게 속상하기도 했다.
가끔 죄책감이 엄습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한다.
정작 나로 살아가는 법을 잃어가는 걸 안타까워하지 못하고
더 잘하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나를 다그치고 있는 꼴이었다.
이젠 이 시달림의 시간을 끝으로
나를 쓰다듬어줄 시간의 필요를 가지게 되면서
나의 페르소나를 찾아보는 시간에 즐거움과 희열을 느낀다.
해방된 자유 안에서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중년의 시간은 값지다.
내 이름을 찾는 일부터 차근히 시작해 볼 생각을 하니 더 그러하다.
마흔 즈음의 터널은 생각보다 더 깊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자신을 비추는 작은 랜턴 하나 정도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책을 꺼내 한 소절씩 읽어나가며 몰두하는 순간,
복잡다단한 터널 속에서 랜턴을 켰을 때처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p158-159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이 필요하다.
그걸 찾는 시간과 기회를 갖는 건 분명히 반드시 필요해보인다.
나를 지켜주는 장막이라고 생각하면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도 무사히 그 길을 건널 수 있는 힘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책이란 친구는 나에게 그러하다.
암흑기를 지나는 깜깜한 시간에
불을 밝히며 읽었던 무수한 책들.
밤독서는 나에게 은둔의 시간이었고, 회복의 시간이었다.
삶에는 무수히 많은 불규칙한 혼란과 혼돈이 가득하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이 무질서 속에서
마음의 평온함을 안정감을 찾아 사색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조금이나마 충전된 시간을 가져야
풍랑을 잠잠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다행히 나는 내가 무얼할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지는지를
하나 둘 발견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곳에 머물러 있으며 은둔의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해보면 어떨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개인사가
이토록 찬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좌충우돌 정신없이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읽은 책이 쌓여가면서
내가 바라봐야 할 가치와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서
보석같은 시간을 발견하는 재미를 소소하게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오늘도 흔들리고 있을 엄마들에게
내 호흡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법과
감정의 위로를 더해주는 이 책을 발견하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로
든든히 배부른 식사를 한 기분으로 공허함을 메워가는 이 책을 곁에 두고 오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