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의 감각에 예민한 편도 둔한 편도 아니지만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후각과 미각 기능이 떨어지면서 불편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일상적이고 사소한 냄새가 몸의 기능을
제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냄새를 지각하고 맛을 느낀다는 것이
굉장히 자극적이고 예민하게 받아들일만한 감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같은 경험 후 다시는 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아 두렵기도 했다.
모든 우리 몸의 기관과 감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끊임없이 냄새를 맡고 있는 몸의 증거들을 책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코의 신체적 기능외 냄새를 탐구하는 역사적 증언들과
여러 각도에서 파생되는 부가적인 이야기들이
이토록 매혹적인 코의 치명적인 매력에 몸둘바를 모르며 책장을 넘겼다.
현대적인 연필을 만들 때 최초로 쓰인 나무는 플로리다, 조지아, 테네시에서 자라는 붉은 삼나무였다.
붉은 삼나무 냄새는 지금도 삼나무로 만든 옷장, 서랍장에서 맡아볼 수 있다.
붉은 삼나무로 만든 연필에서는 알싸한 검은 후추와 계피 냄새가 났고
연필을 깎은 부스러기는 붉은 기운이 도는 분홍빛이었다.
p189
붉은 삼나무의 수요가 높아지고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르자
새로 대체할 나무가 필요했는데
향 삼나무는 색깔과 향이 너무 연해서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이를 붉은 삼나무처럼 보이도록 염색하고 향을 입혀 생산하자
소비자의 불만이 끊기게 되었다고 한다.
몸체의 나무와 심의 흑연과 끝에 달린 지우개로 이루어진 연필 중에
상당부분 많은 부분이 나무를 차지하는데 사실 흑연의 강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향이 더 강한 나무를 썼다는데 상당히 궁금해진다.
사실 연필을 이루는 흑연은 냄새가 없다고 한다.
점토와 왁스 첨가제 냄새로 연필의 냄새를 떠올리게 되는게 일반적이다.
이런 물성을 가진 연필의 냄새를 떠올리면
왜 글을 쓰는 이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까.
묘하게 기억되어 있는 냄새와 시공간의 엮여 있는
기억의 재생과 반복이 오랜 데이터처럼 쌓여서인지
후각과 기억의 관계안에 냄새라는 공간은 열려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울 따름이다.
우리 몸의 냄새는 나이와 함께 변한다.
2020년의 한 연구에서 아기 때는
그토록 좋았던 몸 냄새가 왜 자라면서 점점 불쾌한 냄새로 변하는지를 규명했다.
연구에서 밝혀낸 증거에 따르면, 엄마들은 아이의 체취에 따라
아이의 성장단계와 엄마와 아이간 관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p331
터울이 많은 우리집 두 아이를 보면서 느낀 건
아직 아기 냄새가 나는 막내와 사춘기 큰 아이와의 냄새는 확연히 다르고
10대가 되면서 변화는 체취가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면서도
엄마로부터 떨어져 독립할 때를 알려준다는 걸 의미한다는 걸 보면
냄새와 시간의 흐름이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지금 자기의 영역에서 자신을 방어하고자 기를 쓰는 사춘기 아이의 냄새와
머리부터 발 끝까지 보송보송한 아기 냄새가 아직도 나는 둘째 녀석을 보며
시간을 막을 수 없어 좋은 향을 큰 아이에게서는 맡을 수 없지만
우린 서로의 냄새를 매일 매번 맡으며 살아가기에
각자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고 살아간다는 것에서 조용한 냄새의 존재감을 느낀다.
냄새와 언어.
이를 따로 두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경솔했음을 고백하게 된다.
냄새를 생각하고 은유하는 활동들을 해본적이 전혀 없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이 감각을
언어적으로 표현해 내고 그 세계를 이해시키려 애를 쓴 흔적들이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충분히 신선했고, 충분히 아찔하고,
충분히 매혹적이었던
냄새라는 감각의 세계에 묘한 매력 속으로 한번 빠져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