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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평점 :
월든, 시민 불복종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저자 :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콩코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첼름스퍼드에서, 하버드 대학 4년 동안에는 인근 케임브리지에서, 1843년 후반부에 스태튼섬에서 보낸 몇 달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콩코드에서 살았다. 어릴 적부터 자연 사랑이 남달랐으며, 특히 동식물에 비상한 관심이 있어, 어떤 꽃이 어느 때 피는지, 어떤 벌레가 어느 나무 밑에서 서식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1837년 소로는 초월주의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을 만나면서 문학 활동에서 큰 전기를 맞는다. 에머슨은 소로를 두 번이나 그의 집에 집사로 취직시켜 현실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이 기간, 에머슨의 서재에 있던 많은 책을 읽었고 그 덕분에 중국 철학과 인도 철학에도 눈을 뜬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19세기 미국 문학의 주요 사건인 초월주의 운동을 이끌어나갔다. 콩코드에서 잠시 교사 노릇을 했으나, 형 존과 함께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교사직은 적성에 맞지 않고 자연을 탐구하는 시인이 어울림을 확신하게 된다.
소로는 하버드 동창생 찰스 스턴스 휠러와 플린츠 호수에서 캠핑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1837년, 휠러가 지은 오두막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의 생활을 따라 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콩코드에서 남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빙하호 월든 호수 옆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숲속 생활에 들어갔다.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2년 2개월 동안 호숫가에 살면서 『월든』 초고를 쓰고, 매일 일기를 썼으며, 호수 주변의 동식물과 자연을 관찰했다.
1847년 문명 생활로 돌아온 이후 초월주의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면서 점점 더 행동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도망 노예들을 캐나다로 탈출시키는 “지하 철도”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월든』과 비슷한 시기에 쓴 「시민 불복종」에는 이러한 삶에 관한 정신적 기초가 충분히 녹아들어 가 있으며, 따라서 두 책은 하나로 읽힌다.
추운 겨울에 숲속에 들어가 나무들을 관찰하다가 기관지염에 걸렸고 이후 폐병으로 악화해 1862년, 사망에 이르렀다. 스승 에머슨은 제자를 위한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로의 영혼은 고상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그 짧은 생애 동안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탐구했다. 지식이 있고, 미덕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가 있을 것이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옮겼으며, 최근에는 인문 및 경제 분야의 고전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진보와 빈곤』, 『리비우스 로마사 세트(전4권)』, 『월든ㆍ시민 불복종』, 『자기 신뢰』, 『유한계급론』, 『공리주의』, 『걸리버여행기』,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등이 있다. 집필한 책으로는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 고전 읽기의 참맛을 소개하는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이 있다.
그림 : 허버트 웬델 글리슨
Herbert Wendell Gleason, 1855-1937
1855년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1883년에 회중교회 목사가 되어 미네소타주에 정착했다. 1899년 목회를 그만두고, 37년 동안 사진, 강연, 저술, 자연과 야생 황무지 연구 등에 전념했다. 그의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여러 단행본에 소개될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역자 : 이종인
그림 : 허버트 웬델 글리슨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간소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
그 가치를 지향하게 만드는 소로의 책은
근사하지 않아도 든든한 마음의 안식이 되어준다.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고 광대한 자연을 느끼며
즐거운 삶으로 초대하는 꽉 찬 마음이
내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숲속에 올뺴미가 있어 즐겁다.
그들이 인간을 위해 백치 같고 악마 같은 울음소리로 계속 울도록 두자.
그것은 햇빛이 스며들지 않는 습지와 미명의 숲속에 아주 잘 어울리는 소리다.
그것은 인간이 아직 자기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광대무변한 미개발의 자연을 암시한다.
p169
올빼미의 소야곡을 들었다는 그는
그 소리를 가장 울적한 소리라 말한다.
죽어가는 인간의 신음소리의 한 가락처럼
불쌍하고 혀약한 인간적인 흐느낌을 소호하는 듯한 소리.
먼 숲 속에서 여러 곡조로 답하는 올빼미를 보며
누군가는 아름다운 선율로 해석하기도 하며
탄식과 어둡고 눈물 젖은 애환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을 암시하기도 하는 지독한 미명을 생각하면
동물 족속이 자연의 의미를 표현하려
오늘도 요란한 소리를 내고 움직이며 사는 것이
어떨 땐 왜 그렇게 애석하고 구슬프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문명세계로 나가는 길 앞에
이들의 삶도 모두 사라질 것이 안타까워서일까.
나는 어린 시절, 이 호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노 저어 호수 중앙에 이르면 배 좌석을 가로질러 등에 대고 누워,
여름 오전 내내 눈뜨고 꿈꾸며 보냈다.
그러다가 보트가 모래톱에 닿으면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면 운명이 나를 호수의 어느 가장자리에 부려놓았는지 살폈다.
당시 게으름은 가장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일과였다.
나는 많은 여름 오전을 이런 식으로 몰래 달아나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을 빈둥거리며 보내길 즐겼다.
나는 돈이 많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햇볕 따뜻한 시간과 여름날만큼은 얼마든지 넉넉한 부자였고 그것을 사치스럽게 낭비했다.
그런 시간에 연필 공장이나 교사 책상에 나가 보내지 않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p251-252
자연의 풍경 중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상징인 호수.
이건 대지의 눈이자 자기 심성의 깊이를 측정하는 정결한 곳이라 그는 말한다.
잔잔한 호수 안에 작은 물고기들이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올라오면 평형이 흔들리고
부드러운 호면 위를 미끄러져 지나가는 물맴이,물거미,
가장자리 나무들은 호반을 장식하는 부드러운 속눈썹처럼
완벽하기 그지 없는 호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눈 앞에 장엄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한없는 평온함까지 떠밀려오는 기분마저 든다.
이 속에선 즐거움의 전율과 고통의 전율을 구분하기 힘든
가슴 벅참이 밀려오는 신비한 장소인 듯하다.
울창하고 키 큰 소나무와 참나무로 둘러싸인
월든 호수를 노를 저어 지상의 위대한 유산을 맘껏 관찰하며 느끼고 싶다.
숲 속 생활의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바라볼 여유와 기회가 있다는 것에
하천 및 호수의 해빙과 날씨 변화에
가장 빠르게 느끼고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부럽기만하다.
자연의 은밀한 움직임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도
자연과 나 사이에 아무런 비밀을 숨기고 있지 않다는 것도 말이다.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사는 요즘
우월한 자연의 산물을 느끼고 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위태로워보인다고 해야 할까.
내 생황을 좀 더 단순화시키고 우주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한층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연의 이치라는 걸
숲속 삶을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나의 고단한 오늘을 씨를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피어난 꽃들로 위로를 받는 것처럼
정체된 생활에 모든 사물의 신비와 강가 계곡과 숲은
밝은 빛으로 나를 깨워 일으켜주는 기분같아 마땅히 살아야겠다란 생각마저 든다.
자연의 좋은 향기로 나의 삶이 유연하고
조화로운 삶으로 되돌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