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와 언론의 자유가 선한 의도에서 발원했다고 생각하는 우리 상식은 그리 상식적이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오늘날 종교와 언론의 자유가 남용되고 훼손되는 현실만 보면 마치 기득권을 수호하려 만든 보장으로 비친다.

 

202412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탄핵 의결을 촉구하는 시민 200만이 모여 시위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개방 화장실이 부족해 시민이 큰 불편을 겪자, 누군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화장실 개방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한다.

 

거절 이유가 놀랍고도 가소롭다: 하나님 뜻인지 몰라서 개방할 수 없다. 말인즉 너희들 하는 짓은 하나님 뜻에 반한다, 그런 얘기다. 종교 시설을 정치 집회에 내줄 수 없다, 정도도 아니다. 이 나라 개신교도에게 종교의 자유란 무엇일까.


 

20231217일 김명신 부부는 공식 순방으로 위장해 네덜란드를 사사로이 여행했다. 위장에 속아 네덜란드 국왕 부부가 그들을 맞아 만찬을 베풀었다. 그때 네덜란드 왕비는 김명신과 건배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 아는 그 사실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사진을 합성해 두 사람이 건배한 것처럼 보도했다. 눈길이 서로 어긋나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텐데, 담당 기자가 혼자 그 짓을 했을까. 지나가던 개가 다 웃을 일이다. 국민일보 데스크, 아니 사주에게 언론의 자유란 무엇일까.

 

국민일보 사주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차남인 조민제다. 종교단체가 언론사를 소유한 실제 목적이 무엇이든 우리 현실에서 볼 때 두 분야가 지닌 어둠은 서로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손잡고 함께 무저갱으로 내려가는 중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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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 부조리극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의외출연자가 있다. 종교인이다. 개신교는 말할 나위조차 없고 불교 또한 만만치 않은 배우를 양성해 냈다. 멀리 갈 일도 아니니 윤석열이 시대만 보더라도 대단하다. 윤석열 대통령 만든 공신 가운데 개신교 이만희·전광훈이 뜨르르하고, 불교 자승이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 탄핵 심판이 헌재에서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이 종교에 속한 명망가들은 양비론 따위들을 들고 저 더러운 행렬에 올라탄 채 시민에게 훈계질한다.

 

방가(方家) 가족 신문이 16일부터 원로인터뷰를 시작해 오늘까지 세 사람 말을 실었다. 첫 번째가 불교 조계종 성파, 두 번째가 개신교 김형석, 세 번째가 개신교 손봉호다. 나이나 사회적 위치로 따지면 원로라는 용어가 그런대로 어울리지만, 저들이 한 말로 따지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치적 문맥에서 읽힐 줄 뻔히 알면서도 도무지 정치 청맹과니처럼 말하니 말이다. 그런 말이 결국 윤석열 두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최 알다가도 모르겠다.

 

성파는 종정이다. 종정은 총본산 우두머리로서 당대 으뜸가는 선지식으로 인정받는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듣고 도대체 뭘 깨달아서 그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았다. 전두환 시대 성철이 뇌까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와 도긴개긴이었니 말이다. 경전 탐구와 참선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반야 놀음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을 따름이다. 붓다 원음에서 너무도 멀리 이탈해 버린 통속 불교 반야 놀음 탓에, 절집 대웅전에는 옳아서 그른 빈말만 무성하다.

 

김형석은 백년을 살아보니로 유명한 통속 철학자로 개신교 장로다. 왜놈 제국 유학파로 저들을 숭모하는 특권층 부역자다. 문재인을 좌파로 몬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백년 넘게 살아서 딸랑 이런 인터뷰나 하고 있으니, 백년 무상이다. 손봉호는 직접 교회를 세우고 목회까지 한 개신교 장로다. 철학 교수로, 올곧은 종교인으로 사회정치적 현실에 깊숙이 몸담았었다. 30여 년 전 전교조 합법 주장이 담긴 내 글을 그가 내동댕이친 뒤부터 더는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종교가 정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가 어려울 때 원로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논제가 진부한 까닭은 답을 이미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종교도 원로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둘이 한 인격에 결합해 나타날 때 그 미혹은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신교는 진즉 버렸고, 나이 아무리 들어도 원로 소리 들을 일 없는 나야 남을 오도할 리 없으니, 늘그막이 홀가분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찾아드는 이 회한은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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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백반집에서 저녁 먹으며 안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천덕꾸러기 자식이 결국엔 부모 모신다는 말이 나왔다. 제 얘기부터 가까운 친척 얘기까지 두루 톺아보니 증거가 차고도 넘친다. 무슨 법칙이기야 하겠나만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동감 구조 안에 있음은 틀림없다. 그래서 굽은 나무 선산 지킨다는 옛말이 생겨났으리라.

 

가부장 사회에서 딸과 둘째 아들, 그리고 막내가 그 천덕꾸러기 우선순위에 놓인다. 딸은 여성이라 전원이 대상이고, 둘째 아들은 맏아들에 치여 대부분 소외되고, 막내는 딸만 낳다가 끄트머리에서 얻은 외아들이 아닌 한 대개 방치되었다. 이 일그러진 풍경은 망국과 식민지, 전쟁과 독재 시대를 거치며 신산하게 살아온 서민 사회에서 더욱 서러운 서사를 생산해 냈다. 너무나 익숙해서 정색하고 비판할 수도 없는 분위기가 똬리 틀었다.

 

사사로운 수다 넘어 공공 서사로 번져가도 맥락은 같다. 난 놈 든 놈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이 살풍경 한가운데서 계속 어른거리는 죽은 사람 그림자”-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소설가 엘렌 맛손이 한강이 그린 세계를 소개하는 중에 쓴 표현이다-가 산 사람과 망해가는 나라를 지켜내는 광경을 나는 보았다, 윤석열이 탄핵 된 14일 밤 여의도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여성은 이명박 촛불 세대에서 박근혜 4·16세대를 거쳐 윤석열 10·29세대로 이어지며 큰 흐름을 만들어낸 주체다. 같은 세대 남성과 극한 대조를 이루는 까닭으로 커뮤니티 문화를 꼽는 전문가 견해와 달리 그날 나는 홀로 온 10대를 유난히 자주 보았다. 홀로 왔다는 사실이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았다는 직접 증거일 수는 없으나, 홀로 오기로 결단한 그 독립된 주체성에서 나는 죽은 사람 그림자하나하나 읽어냈다.



홀로 온 소녀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순간 그는 우리 신이었다.

 

죽은 사람이란 누구를 말함인가. 불의한 공권력이든 사악한 개인 폭력이든 그들에게 죽임당한 사람은 물론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 취급당하는 모두를 가리킨다. 여성, 노동자, 노인, 아동, 장애인, 성소수자, 호남인, ‘빨갱이’, 이주민, 난민···. 이 개념은 살해·수탈·오염되는 동물, 식물, 미생물, 바이러스, , 먼지, 대기까지 궁극으로 넓혀야 한다.

 

4·16 이후 내 화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였다. 식물 공부를 하면서 비인간 생명과 인간 생명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로 번져갔다. 제국주의 공부를 하면서 비생명과 생명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로 끝까지 나아갔다. 각각 지닌 경계가 차례로 사라지면서 산 자 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생명 중심주의가 무너졌다. 선산 지키는 굽은 나무가 근원 시공에서 누군지 철저하게 또 처절하게 깨치게 되었다.

 

굽은 나무끼리 가꾸는 팡이실이가 선산을 지킨다. 패자 연대, 그러니까 못-난 자, -든 자들이 어른거리는 그림자와 함께 추는 춤이 나라를 지킨다. 아니!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못-난 자, -든 자들과 함께 추는 춤이 나라를 지킨다. 왜놈 제국 부역자에게 짓밟힌 나라 지키는 일에서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에 짓밟힌 지구 지키는 일로 펼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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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요훈(기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김건희처럼 개명 좀 하라고 매달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라는 김대중이다. 하필이면 세계가 인정하는 ‘민주주의 지도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름이 같아 육두문자 섞어 비판을 하려다 이름 부르는 게 싫어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다.


조선일보 대표 논객 김대중의 괴물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나 잔여 수명에 반비례하여 갈수록 그악스러워지는 것 같다. 그가 쓴 칼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정론직필의 언론인이 아니라 간악하여 무서운 선동꾼이다.

‘괴물 선동꾼’ 김대중은 내란 수괴 윤석열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엄 이후의 상황이 가관이라며 ‘국회에 나와 계엄을 비난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군인, 뒤늦게 태도를 돌변해 내란죄 운운하며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과 경찰, 이제 와서 마치 정의의 수호자인 양 공개적으로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국힘 의원들, 그리고 통합보다 분열의 아이콘이 돼 버린 한동훈 전 대표’라고 싸잡아 매도한다. 기회주의, 보신주의, 배신이라는 거다.

이어서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전가의 보도인 ‘기승전 이재명 혐오’를 독자들의 뇌에 주입한다. 윤석열은 확증편향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조선일보도 그렇다.

조선일보의 ‘괴물 논객’ 김대중에 따르면, 이재명의 정치는 너무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니 보수는 단합해야 한단다. 보수가 자정 기능을 발휘해야 한단다. 보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안단다. 한국 보수는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나라를 지켜낸 역사를 가지고 있단다.

그 망상의 궤변을 이렇게 돌려주겠다. 보수의 정치는 너무도 뻔뻔하고 탐욕스럽다. 몰상식하고 몰염치하다. 한국의 보수집단에는 자정 기능이 없다. 한국의 보수는 나라를 망쳐놓고도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이명박은 나라를 말아먹었고, 박근혜는 이명박이 말아먹은 나라를 농단했고, 윤석열은 저 살자고 군대를 동원하여 내란을 일으켰다.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간 건 보수 우파였고, 그럴 때마다 나라를 구한 건 깨어있는 시민이고 민주진영이었다.

선거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후보 검증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괴물 논객 김대중은 대선후보 윤석열은 자질이 검증되지 않아 불안한 후보이지만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는 ‘때가 묻지 않은 후보’라며 발상을 바꾸라고 유권자들에게 훈계를 했었다. 2022년의 대선은 ‘문재인 5년’을 지우는 ‘청소부’를 뽑는 선거이니 꿩 잡는 게 매라고 ‘용기와 배짱’의 윤석열이 적임자라며 보수 유권자들을 홀렸다.

그뿐인가. 대통령 윤석열은 좌파의 폭정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고 아부의 찬사를 진상했고,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파문으로 윤석열이 궁지에 몰리자 대통령이 ‘이 xx’라고 욕 좀 한 게 뭐 그리 공분할 일이냐고 뻔뻔하게 두둔했었다.

반면에 이재명과 민주당에는 끊임없이 집요하게 험악한 표현을 동원해가며 ‘혐오 프레임’을 씌웠다. 거듭되는 실정과 악행으로 윤석열의 지지율이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릴수록 ‘괴물 논객’ 김대중의 ‘기승전 이재명 혐오’는 그악스러웠고 도드라졌다.

개판정치의 장본인, 대권놀이, 무서운 사람, 전율, 막가파, 괴물, 변방의 도지사, 뻔뻔함, 기고만장한 좌파 세력의 폭주, 무정부 상태... 조선일보 대표 논객 김대중이 ‘이재명 혐오 프레임’에 동원한 표현이다.

기자는 주관적, 감정적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된다. 그게 언론의 윤리이고 조선일보의 윤리규범에도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 대표 논객 김대중은 언론의 윤리쯤은 개무시한다. 언론의 윤리를 지키면 프레임을 씌워 독자들을 홀리고 속이는 선동질을 못 하니 그런 걸 거다.

표현만 그악스러운 게 아니다. 조선일보가 ‘전가의 보도’처럼 즐겨 애용하는 논조는 ‘기승전 이재명 혐오’다. 윤석열도 나쁘지만 이재명은 더 나쁘다, 윤석열도 끔찍하지만 이재명은 더 끔찍하다, 윤석열 정권의 잘못이 많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혼란이 오니 윤석열의 국힘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 내쫓으면 이재명이 대통령 된다... 조선일보는 그렇게 대중을 세뇌하였고, 그 정점에 ‘괴물 논객’ 김대중이 있다.

이재명 싫다고 그토록 지키려 했던 윤석열이 내란의 수괴가 되어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자 ‘이재명 혐오 프레임’을 풀가동하며 ‘보수여, 반이재명의 깃발 아래 뭉치자’는 선동질을 하는 조선일보는 나라를 망치고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국가의 적이고 사회의 암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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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2-17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대중의 논조...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내 아버지 논조의 주필버전..

bari_che 2024-12-17 16:42   좋아요 0 | URL
혹시 아버님이 김대중 칼럼 애독자 아니실까요?^^
 


 

20241214일에 핍박받는 민중이 일으킨 대단한 일을 보고하려 이튿날인 일요일 청와대 주산인 백악에 올랐다. 오천 년 동안 그랬듯 나라를 지키고 구한 주체는 언제나 민중이었다. 싸지른 놈들이 나라를 구한 적은 없었다.



청와대 주산, 백악 마루

 

김명신과 윤석열이 주술로 말아먹은 나라를 구하려고 내가 한 일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저들이 희화한 청와대 주산 백악에 올라 저들을 축원하는 것이었다. 여덟 자 진언을 언제나 올렸다. 누가 물었을 때 천기누설이라며 입을 닫았었다. 오늘 비로소 입을 연다: 명신파멸 석열파면. 아직 헌재가 남았으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민중은 다시 응원봉을 들 테다.

 

백악을 두루 살피며 걷는데, 곳곳에 보이는 참상은 지난 폭설 후유증이다. 꺾이고 넘어지고 방치된 나무들이 슬프고 아프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518처럼 416처럼 1029처럼 김진숙처럼 쌍용차 해고 노동자처럼



곳곳에 부러지고 뽑힌 나무들이 뒹군다.

 

산을 돌아 마침내 칠궁(七宮)에 닿는다. 칠궁은 시민 대부분이 모르는 곳인데 조선 임금 낳은 후궁을 모신 사당이다. 청와대 서쪽 모퉁이에 있다. 드라마 <동이> 주인공 최숙빈을 모신 육상궁이 본궁이고 나머지 여섯은 이를테면 셋방이다. 그런데 그 셋방살이 궁 현액은 다 궁인데, 정작 본궁은 묘다. 묘는 궁보다 아랫급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숙빈은 쌍것-무수리 출신이라고 전해온다-이었으니까. 결국 이 차별과 모멸은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며, 전라도 사람, 장애인,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 , 먼지로 번져간다. 천추 뼈 아프게 걸은 오늘 길은 이렇게 어제 걸은 여의도 길과 다르지 않다.



육상묘

 

나는 걱정한다. 김명신이와 윤석열이를 골로 보내도 변치 않을 어떤 어두운 세계를, 세월호 예은이 아빠가 유예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그러나 오늘 밤만이라도 꿀잠을 자고 싶다. 어젯밤과 오늘 밤이 한 밤이었음 좋겠다. 내일은 또 내일을 부둥키련다. 변방 무지렁이 삶은 그저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 걸음 내디딜 만큼일 따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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