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주 동안 물 걷기를 했다. 한강, 특히 경강(京江) 중심으로 걸으면서 이런저런 서사를 만지작거렸다. 숲에서와 달리 아픈 물 몸 냄새를 맡고 그 매운 기운을 통증으로 감지하면서 한층 더 깊은 지경으로 걸어 들어가는구나, 했다. 그러는 동안 이 문제를 화두 삼을 때 여태까지와는 뭔가 다른 사유를 해야 한다는 통찰이 찾아왔다. 그 이야기 들머리를 열어 볼 때다.

 

몇 번 툭툭 던지고 지나쳤던 질문을 아금박차게 한다: 물은 무엇인가? 아니. 물은 누구인가?

 

먼저 물이 본디 숲이라는 이야기부터 다시 불러온다. , 그러니까 바다 생명이 뭍으로 올라와 이룬 숲은 물이 덜 있는 바다다. 덜 있다는 말은 단순히 양만을 뜻하지 않는다. 질도 그렇다. 이를테면 뭍 속, 껍질, 바깥에 있는 모든 물은 민물이다. 뭍에 사는 생명체 몸속에는 소금물이 들어 있지만, 그들이 몸 밖에서 섭취하는 수분은 특별한 예외를 빼고는 모두 민물이다.

 

인간 몸은 바다를 담고 있다. 하여 민물을 몸속 정맥에 주사하면 죽는다. 입부터 항문까지, 넓은 의미로 말하는 창자, 곧 장()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 몸이 아니다. 대롱인 몸 안쪽에 있는 바깥이다. 하여 바닷물을 직접 마시면서 살 수는 없다. 이런 이치는 바닷속과 바다 밖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어떤 교언으로도 인간 생명이 물에서 발원했다는 진실을 왜곡할 수 없다.

 

이 진실은 단지 인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물이 필수적이다, 뭐 이런 도구 차원하고는 전혀 다르다. 생명체와 물은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그 이상으로 완전히 쪼개질 수 없다. 물 자체는 생명체가 아니지만 생명체를 형성하는 계기·기조이므로 비생명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표현은 지나친 수사거나 생명 모독일 수 없다. 생명이 비생명에 우선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생명에 관한 한 모든 물이 다 물이지는 않다. 액체 물만 물이다. 액체 물에서만 삼차원 생체 고분자(biopolymer: polynucleotide, polypeptide, polysaccharide)가 형성 유지되기 때문이다. 생명 품은 액체 표층수는 태양계에서 지구에만 존재한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는 근거가 액체 물이므로 이 물 고리를 벗어난 생명은 존재 불가능하다.

 

이 놀라운 사실 말고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물 고리, 그러니까 생명 고리를 존재 가능하게 하고 유지하는 주체가 바로 달이라는 사실이다.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 지구 공전 궤도가 생명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균형 잡는다. 지구 자전축 안정도 달이 좌우한다. 이를테면 달은 태양계 생명 시스템 거대 에너지 전류를 제어하며 조절하는 미세 정보 전류다.

 

내친김에 아금박찬 질문 하나 더한다: 달이 지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데 생명은 어찌 될까?

 

지구 자전 주기가 어떻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어떻고 말하지만, 달이 지구 중력장을 벗어나 우주로 사라진다면 지구 공전 궤도가 태양에서 멀어질지 가까워질지 말하는 이는 없다. 멀어지든 가까워지든 물 고리를 벗어나면 생명은 끝이다. 아직도 인간은 달이 누군지 모른다. 물이 달 물이라는 사실은 더욱 모른다. 여기가 제국과학의 한계다. 범주 인류 과학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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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우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은 중동의 사태를 놓고 논의했다. 우리는 가자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되는 노력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천명했다. 우리는 합의를 최대한 빨리 종결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 이집트의 시시 대통령, 카타르의 아미르 타밈이 이번 주말에 협상을 재개하라고 공동으로 요청한 것을 지지하며, 더 이상 잃을 시간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당사자는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덧붙여 구호품의 수송과 배포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란의 침략에 맞서, 그리고 이란의 후원을 받는 테러 집단의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을 방어하겠다는 지원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계속되는 군사적 침략 위협을 중단할 것을 이란에 요청했고, 그런 침략이 일어나면 지역 안보에 생겨날 엄중한 결과에 대해 논의했다.” 


이것은 8월 12일 자로 ‘중동 사태에 관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공동성명(Joint Statement from the United States, United Kingdom, France, Germany, and Italy on the Middle East)’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다섯 나라 공동성명의 전문이다. 


이런 성명이 왜 나왔는지는 분명하다. 지금 중동, 정확히 말해 서아시아에서는 핵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대규모 지역전쟁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 그것이다. 그런데 성명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방 ‘지도자들’은 위기의 원인을 ‘이란의 침략’과 ‘이란 후원을 받는 테러 집단의 공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왜곡된 것이다. 


성명은 이스라엘을 방어와 지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이란과 그 동맹 세력은 침략과 테러 공격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아시아에서 지역전쟁의 위기가 생긴 것은 이스라엘 때문이지 이란과 그 동맹 때문은 아니다. 지금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지난 7월 31일 이스라엘은 이란을 방문한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암살했다. 하니예가 이란의 새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숙소에 머물던 사이 단거리 발사체로 살해한 것이다. 손님으로 온 외국의 고위인사가 자국 영토에서 암살당하는 것을 용납할 나라는 없다. 사건 직후 열린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이란의 주유엔대사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는 “이란은 이번 테러 범죄 행위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서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시점에 단호하게 대응할 고유한 정당방위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성명에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스라엘 측에 있다는 점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의 책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반면에 피해자인 이란의 예상되는 대응에 대해서는 ‘침략’으로, 그 동맹 세력은 ‘테러 집단’으로 규정한다. 성명문에서 언급된 ‘긴장을 완화하고’ ‘휴전과 인질 석방’을 해야 하는 의무도 살펴보면 이란과 하마스에만 지워져 있다. 


그러나 서아시아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당장 ‘휴전’을 실시해야 할 당사자는 이스라엘이지 이란 측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인 다수—특히 남반구의 인민 대부분—가 가자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육을 멈추고 휴전할 것을 외치고 있는데도 북쪽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공격하고 있고, 이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전쟁을 도발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그런 태도는 특히 개인적 부패 문제로 전쟁이 종식되면 재판에 회부되어 감옥 갈 공산이 큰 총리 비비 네타냐후,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유대 국가로 재건하려는 강경 극우세력으로 현 내각에 들어와 있는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등이 이란과의 갈등 격화를 통해 전쟁을 도발해 미국이 직접 개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다섯 나라의 공동성명을 보면 서방의 태도, 특히 다섯 나라의 수장인 미국의 태도가 위험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지금 서아시아에서 전쟁 확전을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임을 모를 리 없으면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고 되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말하고, 피해국인 이란에 대해서는 불법 공격을 받은 데 대해 정당방위를 행사하려는 것도 되레 침략으로 말하고 있다. 


자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귀빈으로 참석한 온 외국 지도자를 국제법을 무시하고 살해한 이스라엘을 이란이 용납할 리는 없다. 이란은 지난 4월 1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주재 자국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공습해 혁명수비대 소속 장성 2명을 포함한 10여 명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300대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의 군사기지를 공격해 세계 최강의 방공망임을 자랑하는 ‘강철지붕(Iron Dome)’을 무력화한 바 있다. 당시 이란의 공격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미리 통보한 뒤에 이뤄졌고 이스라엘의 방공망, 미국과 프랑스의 공중 지원, 요르단 등의 미사일 요격 등을 뚫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세계가 놀랐다. 이번에 예상되는 이란의 공격은 지난 4월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명문을 보면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이 커져만 가는 서아시아 전쟁 위기를 완화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있지도 않은 이란의 ‘침략’을 거론하고 동맹국을 테러 집단으로 폄하해 이란을 도발하려 한다는 인상이다. 이미 미국은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항공모함 전단과 핵 잠수함 등을 이스라엘 근해에 추가 배치하는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스라엘이 당장 가자에서 학살을 멈추고 휴전을 한다면 이란은 7월 31일의 불법적 암살을 불문에 부칠 수 있다는 전언이 있다. 자국 영토 내 귀빈 살해라는 이스라엘의 도발 행위를 응징하는 것을 이란이 포기하려면 이스라엘이 적어도 가자 지역에서 자행하는 살육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이란 측의 보복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먼저 휴전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계속 도발적 태도를 드러낸다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은 필연적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개입도 필연적이라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란은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이란과 미국 사이에 군사적 갈등이 벌어지면 러시아가 개입한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러시아는 지금 이란에 상당한 군사적 원조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8월 5일 러시아 전 국방장관이자 현 국가안보회의 서기인 세르게이 쇼이구가 이란을 방문해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이란군 참모총장 등을 두루 만나고 갔다. 러시아뿐이겠는가. 이란과 미국 간의 군사적 갈등이 생기면 중국의 개입도 배제되기 어렵다. 중국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란과도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을 방문한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를 이스라엘이 암살한 데 대한 응징을 이란이 할 때 만약 미국이 양국의 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부추기는 선택을 하면 서아시아에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우려가 있는 것은 그런 점들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타국과의 공존과 협력 의무를 무시하며 안하무인으로 타민족을 살육하는 이스라엘의 무모한 행위로 세계는 새로운 대규모 전쟁의 위기로 빠지고 있다. 서아시아는 지금 아마겟돈으로 변할 조짐이다. 이런 상황을 앞두고도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제지해 확전 우려를 더는 대신에 되레 이란을 탓하고 전쟁을 도발한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지구를 파탄으로 빠뜨릴 전쟁을 일으키려 안달인 것만 같다. 


이란, 러시아, 중국의 지혜로운 대응이 무엇보다 요청된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아시아에서 깊어가는 지역 긴장, 전쟁 위기를 완화하는 데 이스라엘과 서방이 좋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정당하게 응징하되 더 이상의 확전은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이스라엘과 서방이 무모한 확전을 하지 못하도록 이란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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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으로 나눈 서울 한강(京江) 걷기가 오늘로써 마무리되었다. 실제로는 더 있었다: 경기도 양평 구간 다녀온 끄트머리에 걸었던(616) 옥수동·금호4가동 구간, 그리고 어제 걸은 이촌1동 구간. 굳이 하나 더 끼워 넣는다면 한강과 청계천 알레고리에 터 잡아 걸었던 두물개부터 청계천 두물다리까지 구간.

 

어제는 전혀 뜻하지 않았던 약속이 이 동네 한 음식점으로 잡히는 바람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한 시간가량 걸었다. 정북방에 자리한 대통령실을 향해 축징하기 위해 불현듯 잡은 일정이었다. 미리 준비해 둔 버드나무 신목을 챙겨 가서 강가 단단한 돌 옆에 심고 허리 접어 발원하였다: 모쪼록. 부디. 제발. . .

 

그제도 후배들과 잡은 저녁 약속으로 10km가량 걸었고, 어제도 8km가량 걸었는데, 오늘 길은 20km 넘을 듯해서 일단 각오부터 한다. 게다가 나지막하나 산도 둘을 올라야 한다. 물을 넉넉하게 챙기고 양산도 넣는다. 오전 오후 두 일정을 이어서 진행하기로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염제가 훅하고 들어온다.

 

방화역에서 내려 우선 국립국어원부터 간다. 경강 걷기 마무리가 여기서 비롯할 줄은 몰랐다. 몰라서 필연이 아닐까. 다시 한번 식민지 어문 현실 정화와 겨레말 현창을 빌어마지않으며 꿩고개를 오른다. 넘어가면 한강 둔치로 가는 나들목이 있다고 한 지도를 믿고 거침없이 나아가다가 막힌다. 되돌아서 찾아간다.


 

왔던 길 되돌아가며 길 찾는 일은 이제 이골이 난 상태다. 언제 봐도 식민지 도로는 자동차 위주다. 악의 없는 불친절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러구러 다족류 괴물 같은 방화대교 교차로 밑을 지나 강서 습지생태공원으로 들어선다. 입구부터 나름대로 손탄 흔적이 역력한 산책로가 손쉬운 걷기를 안내한다.


 

버드나무 중심으로 무성히 자란 푸나무가 자잘한 섬들을 경계 삼아 아옹다옹 어우러지는 습지를 구불구불 걷는다.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작은 물줄기가 정겹지만, 단 한 번도 가닿을 수는 없게 돼 있다. 심지어 습지 관찰하도록 만든 데는 나무판자 길이 아예 공중에 떠 있다. 아쉽다.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물 걷기를 하는 나로서는 무엇보다 물에 가 닿아야 한다. 이윽고 행주대교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삭막한 공사 차량 통행로로 들어선다. 직진하면 물이 나오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거기서 아픈 물과 만난다. 신음을 들으며 매운 체취를 맡으며 물 모심에 몰입한다. 돌아 나와서 경강 끄트머리로 간다.


 

명박 운하 아라뱃길까지는 가지 않으련다. 그 토건에 토역질하느니 곱게 숲길 돌아서 마곡나루로 가자. 시간을 가늠해 보니 조금 서둘러야겠다. 마곡동 구간은 곱촘히 살피지 않고 곧게 난 흙길을 따라 빠르게 걷는다. 마곡 나들목 가까이서야 길을 벗어나 물가로 간다. 삼가 물 사룀을 한다. 사뢰면 병이 나으니까.


 

마곡동은 삼()을 많이 재배했던 골짜기란 뜻으로, 본디 고고마진 나루터가 있는 어촌 마을이었다. 큰 홍수가 난 뒤 제방을 쌓으면서 나루터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지금은 하수처리장이 있다. 이곳 습지를 중심으로 짰던 야심 찬 오세훈표 수변 토건 계략이 무산되고 남겨진 허울뿐인 생태습지공원엔 얄팍함만 빈둥거린다.



 

땡볕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궁산으로 스며든다. 궁산은 나지막하나 건너편 행주산성과 더불어 한양 서쪽 하구를 지키는 군사 요충이었다. 실제 임진년 왜란 때 의병과 관군이 여기 집결했다가 행주산성 권율 장군과 합류해 대첩을 이루었다. 그 역사를 못마땅히 여긴 일제가 산 동남쪽에 군사용 땅굴을 파 앙갚음했다.

 


산 정상에는 성터가 있고 그 한가운데 성황사가 있다. 도당 할머니 신을 모신 사당이다. 뱃사람 물길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신앙과 결부돼 있을 듯하다. 순우리말 이름이 있을 텐데 조선시대는 사대 벼슬아치들이 한자 음차로 모욕하고, 식민지 시대 이후는 제국 잡귀가 능멸함으로써 초라한 모습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나는 준비한 물로 제수 삼아 예를 갖춘다. 이른바 고등종교야말로 도리어 큰 미신이다. 저들이 사악한 정치꾼 앞뒤에서 벌여 온 주술을 역사가 기억하는 한,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남의 신 데려다 머리 조아리느라 제 신 짓밟고 버리는 식민지 살풍경과 행주대첩이 이루는 모순을 직시하며 나는 소악루로 내려온다.


 

겸재가 양천 현감 시절 남산 일출을 보고 반했다는 소악루에 걸터앉아 남산을 밀어낸 쓰레기 산을 탄식한다; 봉산 줄기와 삼각산을 내쫓은 거대한 토건 괴물에 경악한다; 제국 따라 하기에 골몰하는 부역 국가 내부 식민주의 패거리를 축징한다. 오늘 하늘은 왜 저리 이글거리도록 파란지, 구름은 숨 막히도록 하얀지.



 

숲을 착취 주술 도구로 삼았듯 물도 돈 쏟아내는 화수분 취급하는 특권층 부역자 권력에 대체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갈수록 미궁이다. 그리하여 걷는다; 걸음으로써 숲을, 강물을 서로 주체로 세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먹는다; 증언한다. 나는 물 한 방울 입에 물고 불난 산으로 날아드는 벌새일 뿐.

 

궁산을 나와 경강 줄기 따라 직선으로 열린 가양동 구간 산책로를 따라간다. 가양역에서 경강 걷기를 마무리하면서 생각을 매만진다. 예상보다 충실히 걸었다. 걷기가 이끈 서사도 나로서는 마무리답게 풀렸다. 기획 아닌 기회가 빚은 구성이다. 음모 넘어 운명 같은 거다. 다음 주엔 운명과 대놓고 의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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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카세 히데아키(加瀨英明, 1936.12.22.~2022.11.15.)는 1936년, 동경에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카세 슌이치, 일본흥업은행 전 총재를 지낸 오노 히데지로(小野英二郞)의 딸 스즈코 사이에서 출생했다. 참고로 어머니 오노 스즈코의 언니가 바로 존 레논의 두 번째 부인 오노 요코(小野洋子)였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만, 존 레논은 1971년 오노 요코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으며 카세 히데아키와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존 레논이 <이매진(Imagine)>이란 노래를 만든 배경에는 자신과 일본 신도의 영향이 있었다고 썼다.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 컬럼비아 대학에 유학했다. 귀국 후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의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 외교관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은 덕인지 청년기부터 국제관계나 외교문제에 대한 발언과 평론활동을 통해 일본의 외교평론가이자 유대인 전문가로 활동했다. 일본의 여러 내각에 걸쳐서 고문 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내용은 대단치 않으나 국내에서도 항상 어느 정도의 인기를 끄는 유대인 처세술서 같은 책들이었다. 예를 들어 『세계를 지배하는 유태인의 성공법』(2002), 『유대인 유머의 지혜』(2003) 같은 책은 한국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그는 1979년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으로 스파이방지법 제정촉진 국민회의 활동을 통해 본격적인 극우파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일본 내 여러 극우파 단체의 핵심멤버로 활동하며 “일본의 대동아전쟁 덕분에 전후 아시아와 유색인종의 해방이 가능했다.” “일본 민족이 앞서 싸웠기 때문에 수백 년에 걸쳐 억압된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민족을 해방되었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아 왔다. 그는 난징학살사건을 부정했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도 부정했다.

문제는 이런 책이 국내에서 출판된 시점이 그가 『추한 한국인』의 실제 저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서울 한복판에서 극우적 망언을 해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난 1993년으로부터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란 것이다. 현재는 품절이거나 절판 상태이다. 이후 한동안 잊힌 인물이었던 그가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은 지난 2019년의 일이었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Miki Dezaki) 감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2018)은 2019년 7월 무렵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다. 소수의 극장에서만 개봉되었는데, 일부러 극장에 가서 영화를 찾아보았다. 영화 막판에 ‘카세 히데아키’의 말에 분통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난 뒤 페북에도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조만간 붕괴할 것이고 그럼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다. 정말 귀여운 나라 아닌가? 한국은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귀엽다.”

지난 2022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말로 죄를 지은 자들이 가는 지옥을 불교에서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이라고 하는 데 이곳에서는 죄인의 입에서 혀를 뽑아 몽둥이로 짓이겨 부풀린 다음 밭을 갈 듯 소가 혀 위로 쟁기질을 하는 벌을 받는다.

그가 어떤 벌을 받을지야 알 수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 상황이 참으로 처참하다.

아무리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잡지 인생 30년을 눈앞에 둔 편집자로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이 죽지도 않고 권력의 비호 속에 부활하는 것인지 그 뿌리가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이들을 계속해서 부활시키고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가. 이런 상활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기가 차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끔은 우리가 분단국가라서 정상국가나 보통국가가 못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저런 자들의 발호를 막지 못해 정상이 아닌 국가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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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도는 쓰레기매립장으로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 유명한 신혼여행지였을 만큼 아름다운 섬이었다. 젊은이들한테는 무슨 전설, 그것도 개그 판본처럼 들리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난은 난초고 지는 영지다. 오늘날 모습과 사뭇 다르게 배를 타지 않으면 오갈 수 없을 만큼 뭍(!)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대개는 뭍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농사를 지었다. 생활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1978년 쓰레기매립장으로 지정된 뒤 15년 동안 200만 톤에 달하는 생활 쓰레기, 산업폐기물, 건설 폐자재를 쌓아 올려 90m가 넘는 산을 이루었다. 1992년 매립이 금지되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잔해는 예외로 거기 묻혔다. 먼 훗날 무슨 일로 여기를 발굴(?)한다면 거대 지층을 이룬 라면 봉지와 부서진 백화점 한 동 유적을 보고 대체 뭐라 할까? 모순이 들끓는 식민지 풍경이 그때는 사라지고 없을까?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에도 사람이 살았다. 전성기에 700여 명, 최후에는 400명 정도였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을 캐내 삶을 이어갔다. 공식으로 출입 금지였으니 공권력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극빈층으로 분류돼 이를테면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았다. 그들과 후손은 어찌 됐을까? 오늘 푸른 난지도가 깔고 앉은 검은 역사를 대체 어찌해야 할까? (이상 내용 많은 부분은 나무위키를 참조.)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나는 그 공원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난지도 경계를 따라 한바퀴 돌면서 물에 가까이 닿는 일이 목표다. 한강 지천인 홍제천, 홍제천 지천인 불광천, 한강, 한강 또 다른 지천인 향동천, 향동천 지천인 난지천-아마도 옛 이름은 샛강이었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점검한다. 마포구청역 7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홍제천과 만나면서 오늘 걷기 출발이다.

 

홍제천은 삼각산과 백악산에서 나와 여기까지 오는데 제법 물이 깨끗하다. 가장 하류인 지점에서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지천인 불광천과 만나는 꼬꼬마 두물머리가 나타난다. 불광천은 오염이 심하다. 최하류 지점에서는 흐름마저 거의 없다. 그 불광천을 만나면서부터 홍제천도 신음을 토한다. 주춤주춤 역류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내려간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선다.


불광천-홍제천 꼬마 두물머리


홍제천이 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부터 나는 다다 물 가장 가까이 놓인 길을 골라 걷는다. 그러나 한동안 좀처럼 물에 가닿지 못한다. 처음 닿은 곳은 의외로 물가에 깔아 놓은 덕 뜯어진 부위다. 그 아래 찰랑거리는 물을 반가이 모신다. 별일이라며 웃는다. 그다음부터는 수시로 자연스레 물에 닿을 수 있도록 곁 내주는 길이다. 35도짜리 땡볕 피하려 나무 그늘 좇으며 서둘러 걷다 보니 가양대교 아래 서 있다.


홍제천-한강 두물머리


희한한 물모심 


드디어 향동천 두물머리가 보인다. 하지만 접근 불가다. 수량도 아주 적을 뿐 아니라 방치 상태로 거기까지 시난고난 흘러왔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향동천은 나지막한 봉산이나 망월산 어디선가 시작됐을 테니 본디부터 작은 시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강으로 흘러드는 열한 개 지천 가운데 하나-가장 서쪽에 있는-임은 틀림없다. 따로 떼어 걷기는 그렇고 오늘 난지도 경계를 따라 최대한 다가가기로 한다.


향동천-한강 두물머리 


강변북로 밑에 뚫어 놓은 생태로를 통해 푸른 쓰레기 산으로 올라간다. 가장 먼저 나타나 가장 끄트머리까지 이어진 길을 따른다. 가양대로 가까이서 찾았지만, 향동천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여러 번 숲 틈을 기웃대 겨우 작은 물길을 발견했지만 여기도 접근 불가다. 결국 통행 금지된 곳까지 내려간다. 향동천과 난지천 꼬꼬마 두물머리를 찾아낸다. 여기마저 접근 불가다. 난지천에 닿고서야 물 위에 선다.


난지천-향동천 꼬마 두물머리


난지천(샛강)


폭서는 가차 없이 땡볕과 땀과 갈증과 허기, 그리고 단내나는 거친 숨으로 나를 몰아댄다. 가져간 물도 동이 났다. 빨리 식당을 찾아 목을 축이고 속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마지막 발걸음은 더듬대고 구불거린다. 지도만으로는 찾기 어려운 복잡함을 견디며 찾아낸 최단 경로는 월드컵경기장역 직전에서 불광천 따라 내려가 처음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 잘됐다. 불광천은 이렇게 마무리다.

 

마포구청역 일대 음식점이 죄다 문을 닫았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 건널목을 건넌 다음 다시 올라와 찾은 유일한 음식점에서 나는 막걸리부터 시킨다. 없단다. 이런! 얼른 맥주로 바꾼다. 한 병을 순식간에 다 마시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500ml까지는 맥주가 다만 시원한 물일 뿐이구나. 다음은 대구맑은탕 차례다. 찬 맥주 바로 뒤에 닿은 뜨거운 국물도 몸은 시원한 물로 감지한다는 사실 하나를 더 깨닫는다. !

 

물과 술이, 찬물과 뜨거운 물이 하나로 경험된 염천 속 물 걷기는 여태까지 물 걷기 기운데 가장 힘들었다. 갈증은 밤까지 이어졌다. 집에 와 확인하니 오늘 걸은 거리는 20km였다. 힘들 만했구나. 경강(京江) 걷기는 이로써 7구간 가운데 하나만 남았다. 마무리되면 지천 걷기로, 지천 걷기가 끝나면 철길 따라 경기도, 강원도로 번져간다. 그다음은 모른다. 물이 이끄는 대로 간다. 의전이자 놀이인 생명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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