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오늘날 세계질서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쩌면 반 천년 만에 찾아온 변화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 500년 이상 세계질서는 유럽 그것도 서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돼왔다고 할 수 있다. 서방의 득세가 시작된 역사적 분기점은 흔히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와 아라곤의 페란도 2세가 이끄는 군대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1492년으로 꼽힌다. 1492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비유럽지역에 대한 유럽의 제국주의적이며 약탈적인 진출에 물꼬를 튼 해이기도 하다.

15세기 말 이후 서구는 비서구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자본주의적 세계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다고 해서 서구가 곧바로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아니다. 18세기까지도 오스만이나 중국 등 세계에는 서구와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비서방 제국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세계가 자본주의적 체계로 작동하게 되면서 서구의 위력은 계속 강화되었고, 반면에 비서방 세력은 갈수록 약화한 셈이다.

서구의 부상은 기독교, 자본주의, 근대적 세계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비서구, 전근대 비자본주의, 비기독교 세계는 타자화되어 학살과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와 같은 흐름 또는 ‘서세동점’이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인 제국주의가 창궐하여 세계 수많은 지역과 나라가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로 전락한 19세기 후반이다. 한국도 이때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고 급기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서세동점은 20세기 말에도 불변의 대세처럼 보였기에 그 흐름에 동참한 비서방 국가들도 적지 않다. 그런 점은 오늘날 ‘집단서방’으로 불리는 나라들에 유럽 이민자들이 건국한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물론이고 일본과 한국처럼 비유럽 아시아국까지 포함되는 데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유럽에서 기독교 세력에 의한 이슬람 세력의 축출이 일어난 1492년 또는 15세기 말 이후 500여 년이 지난 이제 ‘서세동점’의 장기 지속은 종언을 맞은 듯싶다.

서구나 구미, 서방, 나아가서 집단서방의 추락을 보여주는 징후는 차고 넘친다. 지난달 10〜11일에 미국의 워싱턴에서 열린 제75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의 모습도 단적인 한 예다. 나토는 군사 동맹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1949년에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12개국이 결성했는데 이제는 32개국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나토의 외형상 성장은 집단서방의 군사적 위력이 계속 강화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격적인 세 확장과는 별도로 나토의 실상은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번 회의에 참석한 주요 회원국 정상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점이 역력했다.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토가 수호한다는 ‘자유세계’의 수장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보여준 모습은 가련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으로 부르며 피아를 구별하지도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다.

바이든의 혼동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해프닝일 뿐이라면, 나토의 위상 추락을 보여주는 현실은 매우 엄중하다. 나토국가들이 총력 지원을 해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속절없이 패퇴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한 예다. 최근에 들어와서 우크라이나군은 전선 전체에서 대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7월 한 달 우크라이나군이 입은 사상자 수가 무려 60,000명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일방적 발표이니 믿을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동안 러시아와의 협상 시도 자체를 불법화해온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최근에 협상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른 것도 전선의 현실로 인해 압박받은 결과일 공산이 크다.

서아시아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무력함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자지구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 세력이 작년 10월 ‘알 악사 홍수 작전’을 펼친 것을 빌미로 이스라엘이 가자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자, 나토와 미국은 그런 폭력행위를 노골적으로 방조해왔다. 그러나 몇 주 안에 하마스 지도부를 소탕하고 인질을 구출하겠다는 이스라엘 군사작전의 목적은 실현이 요원한 가운데, 가자에서는 민간인 그것도 60%가 어린이와 여성인 사망자가 8월 1일 현재 공식적으로 39,480명에 이른다(의학 전문지 『란셋』은 7월 초까지의 실제 사망자가 186,000명을 초과한다는 추산까지 내놓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이미 집단 학살 혐의를 걸고 있는 가운데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포학한 살육이 그치지 않자 이를 방조하는 미국과 나토에 대한 세계인의 규탄도 하늘을 치솟고 있다. 국제법과 세계 여론을 무시하며 안하무인으로 극악한 살육행위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서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라며 무조건 지원하는 서방과 미국, 나토의 도덕적 위상은 나락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나토의 도덕적 위상만이 아니라 군사적 위상도 크게 떨어졌다. 그런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막강하다는 미 해군이 안사르 알라 세력이 주도하는 예멘군과의 군사작전에서 아무런 전과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이후 예멘이 이스라엘 선적 또는 이스라엘행 선박의 홍해 통행을 금지하자, 미국은 물류대란을 막을 목적으로 영국 등과 함께 ‘번영 수호 작전’을 펼쳐 해역을 장악하려 했지만, 항공모함 아이젠하워가 공격받아 전역을 떠나야 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미국과 나토의 군사력이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동안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국가들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로 구성된 나토는 한편으로는 회원국을 늘리며 세를 불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키면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그런 위력은 군사적 약체국가나 비국가 단체에나 통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초강대국 러시아와의 대결에 직면하자 나토의 군사적 능력은 허장성세였음이 그대로 드러났고, 서아시아에서도 하마스, 헤즈볼라, 안사르 알라, 이란 등‘저항의 축’을 맞아 나토는 이스라엘과 함께 무능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잘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무고한 민간인 살육에 동참하고, 반인륜적이며 반국제법적인 안하무인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세계질서의 지각 변동을 예시하는 또 다른 징후는 비서방의 놀라운 굴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제국주의적 서방과 비교하면 비서방에는 아직도 열악한 처지에 놓인 국가들이 많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비서방에서 경제적 군사적 능력의 괄목할 성장으로 지리정치적 위상이 서방 어느 나라와도 뒤지지 않는 국가들이 출현한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로, 비서방 세계는 지금 두 나라의 주도로 경제적으로는 브릭스, 군사 안보로는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중심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토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일주일 전인 7월 3〜4일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에서 SCO 정상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끝난 뒤 채택된 선언문의 첫머리가 관심을 끈다. “세계의 정치, 경제, 그리고 기타 국제관계 분야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중이다. 더 공정한 다극적 세계질서가 태어나고 있다.” SCO는 2001년에 출범했으며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이란, 인도 등 유라시아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가, 올해 벨라루스가 새로 들어와서 회원국이 10개국으로 늘었다. 회원국 외에 ‘대화 상대국’도 있는데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런 나라다. SCO 회원국의 인구는 30억으로 세계의 40%를 차지하며, 영토 면적은 유라시아 대륙의 60%를 차지하고, GDP는 세계 GDP의 25%가 넘는다. 보다시피 SCO 회원국 가운데는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의 주요 국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은 SCO가 미국이 주도하는 G7과는 다른 방향의 세계질서를 추구하며 브릭스와 협력관계를 추구할 것임을 말해준다. 올해 SCO 정상회의의 선언문이 국제관계의 ‘지각 변동’, ‘더 공정한 세계질서’를 언급한 것은 비서방 주요 국가들이 나토와 G7이 강요하는 국제관계가 공정하지 않음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과 다르지 않다. SCO 선언문은 비서방이 그동안 서방이 전개해온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즉 다극적인 세계질서를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비서방이 앞으로 서방과 적대적인 대결을 벌이겠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서방과의 국제관계에서 비서방의 자신감 표명인 것은 명확해 보인다.

500년 또는 반 천년 넘게 작동해온 서방 제국주의의 지배가 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서방의 맹주인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고, 경제력 또한 적어도 명목 GDP로는 세계 최대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의 국력도 여전히 막강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서방의 전통적 강국들의 쇠퇴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집단서방의 핵심인 G7과 비서방의 핵심인 브릭스의 경제력을 비교해보면 최근에 중대한 변동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중국 경제의 굴기가 특히 놀랍다.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중국의 GDP는 2016년에 미국을 이미 추월했다.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준 것은 브릭스도 마찬가지다. 1992년 브릭스 국가들은 PPP 기준 GDP가 세계의 16.45%에 불과했고 G7은 45.80%나 되었으나, 2022년에 이르러서는 두 진영의 지분이 역전되어 브릭스는 31.67%, G7은 30.31%가 되었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새로운 변곡점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있다. 지난 500년 지배적 위상을 누려온 자본주의적 세계체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서방 세계가 자발적으로 그동안의 지배를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전쟁, 팔레스타인 갈등에서 미국 등 서방은 기존의 헤게모니를 관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7월 28일 대선을 치르고 ‘21세기 사회주의’의 주창자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로 차베스가 시작한 볼리바르 혁명을 잇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의 3선이 확정된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에서 일으킨 마이단 쿠데타와 유사한 정변을 일으키려는 중이다. 그래도 세계체계가 지금 거대한 변동을 겪는 중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세력이 그동안 주도해온 국제관계가 해소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세계질서는 과연 자본주의적 세계체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눈 뜨고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세계의 해석이 아니라 변혁이 관건이라면 제국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할 실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하철은 참으로 다양한 인간 행태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부분 스마트폰 들여다보는데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대부분 자던 풍경과 비교하면 뭐 꼭 그렇지만은 않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각양각색이기 마련이다. 요즘 내가 궁금해하는 색다른 풍조 하나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신경 안 쓰고 넘어갈 문젠데, 옆 기대기 이야기다.

 

전동열차 맨 앞이나 뒤 칸 가로 벽은 보통 너덧 사람이 기대서서 간다. 언제부턴가 기대는 방식이 달라졌다: 등을 대어 뒤로 기대지 않고 한쪽 어깨를 대어 옆으로 기댄다. 내가 이런 기대기를 불편하게 느껴서 유심히 살피게 됐다. 내가 뒤 기대기로 섰는데 어느날 누군가 옆에서 내 얼굴-실제로는 그 사람 스마트폰-을 보는 자세로 기대는 바람에 촉발된 일이 분명하다.

 

며칠 동안 궁금해했다: 왜 사람들이 저런 옆 기대기로 바꾸었을까? 정답 없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 결론은 코비드-19가 몰고 온 불안이 폐쇄 의식을 증폭시켰다, . 옆 기대기를 하면 뒤 기대기보다 폐쇄 면이 배가된다. 뒤 기대기는 등과 가로 벽이 폐쇄 면 하나를 이루지만, 옆 기대기는 어깨와 가로 벽으로 하나, 타인에게 돌린 등으로 둘, 이렇게 폐쇄 면이 늘어난다.

 

폐쇄 면을 늘려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 본능 또는 무의식은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 심리와 맞닿는다. 마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대부분은 불안 지수가 높다. 불안 지수가 높은 사람이 위험에 더 잘 대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비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불안이 증폭된다고 거꾸로 생각하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옆 기대기 풍조가 우리 사회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계속되고 증강될 때 공동체성은 약해진다는 추론이 불가피하다. 아니다. 그 반대다. 제국이 부리는 신자유주의 주술에 걸린 개인이 저렇게 고립되고 소외되는 거다.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런 풍조가 더 결 지고 겹 지면 평범한 인간 모두가 참혹함으로 내몰리고 만다.

 

문제 삼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 삼기 위해 섬세하고 치밀하게 사유하는 습관부터 길러간다. 대충 사유하고 대번 판단하면 대병 들어 죽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그 길로 너무나 깊숙이 들어왔다. 이제부터라도 죽을힘을 다해 살길을 찾는다. 제국이 풀어 놓은 악한 주술을 확인하고, 내가 거기 걸려 있음을 직시하고, 함께 벗어나서, 팡이실이 선한 주술로 번져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경강(京江) 걷기는 강동구 천호동, 암사동, 고덕동, 그리고 강일동 일부를 거쳐 가는 동쪽 마지막 구간이다. 광진교 남단에서 떠나 동북쪽으로 강변을 크게 돌아 고덕천 두물머리까지 간 다음, 거기서 꺾어 고덕천을 따라 들어가 강일동 풍경과 살짝 마주치고는 곧바로 상일동역에서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한다. 경강 일곱 구간 중 다섯을 채운다.

 

광진교 남단 한쪽에는 도미(都彌) 부인 동상이 있다. 백제 개로왕이 권력을 이용해 평범한 백성의 옆지기를 빼앗으려 했으나 슬기로운 여인이 잘 대처해 끝내 사랑을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고 하니 허구만은 아닐 테지만 신라계 부역 지식인 김부식이 지닌 편견과 무관할 수 없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볼 만하다. 도미 부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일대는 건국 초기부터 백제와 깊숙이 얽혀 있는 곳이다.


 

광진교를 걸어 조금 북쪽으로 나아가다가 이내 강가를 향해 내려가는 길로 접어든다. 물에 바투 낸 호젓한 길을 따라 얼마 가지 못해 길은 드론 공원에 막힌다. 뭍 쪽으로 한참 나와 미루나무 길을 따라간다. 드론 공원 지나면서는 생태 보존 지역이라 더 한참 물을 보지 못한 채 간다. 이윽고 암사 둔치 생태공원이 숲을 열고 물 가까이 닿을 수 있게도 길을 내준다. 작은 습지가 징검돌처럼 놓인 사잇길을 가면서 제 본성 따라 피어난 푸나무며 버섯, 이끼가 목숨 내음을 자욱하게 풍겨낸다. 큰 낭아초 군락 길을 벗어나자, 고개가 시작된다.


 

고갯마루에 이르러보니 바위절터(巖寺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숲에서 절 건너뛰던 버릇대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다 뭔가에 이끌려 되돌아간다. 절터에는 뜻밖에 정자 하나가 떡하니 서 있다. 본디 백제 시대 암사, 또는 백중사(伯仲寺)가 있던 자리에 구암서원을 세웠으며 이를 기려 최근에 구암정을 지었다고 한다. 구암서원은 1667년 건립된 광주군 구천면 최초 서원이다. 이 일대 유생은 여기서 배워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할 수 있었으며 노론 집단에 속했다. 백제 흔적을 지우고 신라계 특권층 부역 집단 후예인 서인 노론 근거지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기억하게 하니 참으로 검질긴 매판 흑역사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심사가 울적하다.



 

구암정 현액 글씨는 여초 김응현 작품이다. 그 집안도 노론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고개를 내려오는데 온통 어수선하다. 세종포천고속도로라는 뜬금없는 토건 때문이다. 이따위 길 장사가 숲과 물에 무엇을 뜻하는지 아프디아프게 느끼는 나는 마치 무슨 큰 범죄자가 된 듯 형언할 수 없는 감정 상태로 곤두박질친다. 포효하는 자동차 소음까지 덤벼들자 나는 맹렬한 속도로 암사 고개를 벗어난다. 지도로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고덕천 다리 위에 몸이 서 있다. 고덕천 꼬마 두물머리가 얌전하게 콘크리트 단장한 모습으로 내려다보인다. 개울 수준인 시내가 아픈 몸 냄새를 풍기며 끌려 나간다. 양쪽 언덕 위에는 알 수 없는 토건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크게 오른쪽으로 돌자, 내를 건너온 강일동 자락과 마주친다. , 그 강일동···.


 

20여 년 전 나는 강일동에 의료봉사를 온 적이 있다.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1967년 흥인동·서부이촌동 철거민과 1968년 창신동·숭인동 이재민이 쫓겨와 정착한 곳이라 들었다. 좁고 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은 내가 10대를 살았던 동소문동 산동네와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동사무소 공간에 진료소를 차리고 하루에 250명 정도를 무료 진료했다. 정말 가난한 곳이라 계속 봉사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적잖은 부자들이 그랜저를 타고 와 진료받고 약 받아 가는 바람에 분노한 회원들 반대로 전격 중단하고 말았다.

 

그 강일동이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이른바 강남 따라하기”(탈성장 도시와 에너지 전환중 이상헌이 쓴 <한국의 탈성장 도시 이데올로기형성을 위한 개념적 고찰> 197) 전형에 해당한다. 옛 강일동 주민 대부분이 지금 그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알 수 없다. 마치 구암정에 자리 빼앗겨 암사라는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백중사와 같다.

 

강일동 최북단, 한강과 가장 가까운 마을 가래여울은 옛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여기는 백제가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중요한 곳이었다. 지금은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막아 철저한 고립 상태다. 부역·독재 세력이 자주·민주 세력을 빨갱이로 모는 일과 맥락이 같다. 일정을 마무리하러 지하철역 쪽 대로로 들어선다. 물 잡아먹는 불귀신 토건 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잠실동, 신천동, 풍납동, 천호동을 거치는 한강-탄천 두물머리에서 광나루 건너편, 그러니까 광진교 남단까지 길을 걷는다. 시간과 허리 상태를 살펴 끄트머리 부분은 유연하게 조정한다. 하루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한때 반짝 갠다는 기상정보 이야기를 듣더니 옆지기가 내게 조그만 삼단 접이 우양산을 건네주면서 말한다: 요즘은 남성도 양산 써요.

 

한강-탄천 두물머리로 다시 가보니 지난주보다 제법 수위가 높아진 게 확인된다. 곳곳에 출입 금지 표시가 있다. 가능하면 지킬 테지만 웬만하면 어길 생각이다, 늘 그래왔듯. 세상 이치가 그렇다. 공무원이 해야 할 일과 시민으로서 내가 선택하는 일 사이에 틈은 언제나 존재한다. 액면대로 납죽 엎드릴 필요도 없고 으레 그렇지 하며 톡탁쳐버릴 일도 아니다.

 

다른 어느 곳보다 탁 트인 느낌을 받으며 나아갈 때 내 눈은 역시 호젓한 길을 더듬는다. 대부분 사람이 다니는 편리한 큰길 아래, 또는 옆으로 난 콘크리트 소로가 지난주보다 더 연속성 있게 놓여 있어서 안정감을 준다. 얼마쯤 가다 보니 제3의 길이 나타난다. 콘크리트 소로 옆 길섶을 걸어서 낸 구불구불한 더 작은 흙길이다. 사뭇 삽상한 기분을 자아낸다.


 

그 구불길은 물과 더 가까울 뿐만 아니라, 끝도 없이 늘어선 버드나무를 계속 마주할 수 있어서 고맙고 고맙다. 그 고마움을 찰나적으로 깨뜨리는 제4의 길이 있다. 한층 더 물 가까이 이끄는 길 아닌 길, 다름 아닌 낚시꾼 길이다. 보행 아닌 탐색 목적으로 걸은 발걸음이 쌓여 제법 도타운 흔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길이 갈 수 없어서 이런 길은 아연 신비롭다.


 

기이하게 생긴 버드나무며 버섯이며 들꽃에 취해 주위를 살피지 못한 채 한참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한강-성내천 두물머리에 닿는다. 그 만나는 풍경을 이리저리 살피며 기리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장소 앞에 우뚝 멈춰 선다. 은빛 철조망으로 둘러막고 적어 놓은 글이 있다: 이 장소는 상수도 취수 지역으로 깨끗한 아리수 생산을 위한 상수원 보호 구역입니다.


 

여기가 취수 지역이라고? 상수도 취수·정수 과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상식적 판단밖에는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와락 의문이 든다. 아픈 체취를 역력히 풍기는 이곳 물이 내가 먹는 바로 그 물이란 말인데, 정수를 거친다 해도 얼른 수긍하기 어렵다. 수돗물에서 역한 염소(Cl) 냄새가 나는 까닭과 유관하다면 상수원이 팔당 어디쯤이라고 생각한 상식이 몰상식이다.

 

한참을 서성이다 묻는다: 물은 내게 무엇인가, 아니 누구인가? 내가 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다면, 몸속 물 50%가 나갈 때 내가 죽는다면, 그 먼저 내 몸 70%가 물이라면, 더 먼저 생명체 고분자 3차원 구조가 액체 물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면, 물 없이는 내 본성도 없지 않은가? 물은 몸 구성요소 물질” H2O에 지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 목마르다.


준비해 간 따스한 물을 삼가 부어드리고 나도 마신다. 제의와 동지 천명, 그리고 치유 행이다. 역한 냄새가 나더라도 서울 수돗물을 먹는 일이 시민 의식 아니다. 그 물을 정화하는 일도 시민 의무 아니다. 무엇보다 물 본성, 그러니까 생명 본성, 더 그러니까 세계 본성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 먼저다. 차마 여기를 떠나면서 나는 물로 곧장 나아갈 길을 쟁인다.

 

아이고, 천추가 쑤신다. 허기가 맹렬하다. 불친절한 미로를 헤맨 끝에 천호동으로 나온다. 가도 가도 공구상뿐이다. 가까스로 천호역 근처 뒷골목에서 허름한 음식점을 발견한다. 광진교와 운명을 함께하면서 쇠락해진 이 마을 꼬불거리는 좁은 길 위에 서서 오늘 내 운명을 헤아린다. 이런 서사를 빚어가면서 는적는적 뭉그러지는 반제국주의자, 그 말로는 어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마철이지만 비보다 땡볕 걱정하는 물길 걷기다 보니 일기예보를 꼼꼼히 챙긴다. 오전에는 개어 있다가 오후부터 국지성 소나기를 동반한 흐린 날씨가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달리 방도도 없고 해서 느지막이 잠원역으로 향한다. 거기 진입구로 들어가 한강 둔치를 따라 일단 탄천과 경강(京江)이 두물머리를 이루는 곳까지 가기로 한다.

 

잠원역 밖으로 나오면서 하늘을 보고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일기가 예보를 보지 못했나 보구나. 높이 솟은 파란 하늘에 덩달아 높아진 흰 구름은 일기예보와 말 맞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따금 잿빛 큰 구름이 오지랖을 펼쳐주고 바람이 부채질을 해주어 그나마 중도 포기란 말을 떠올리지 않게 만든다. 그래 한번 가보지 뭐.

 

잠원 변전소와 신반포 아파트 16119동 사이로 나 한강에 이르는 길은 본디 나룻길이었다. 이 나루터는 조선 임금들이 헌인릉, 선정릉 행차 때 이용했고, 도성 사람들은 봉은사 오갈 때 이용했단다. 송파 잠실리와 구분하기 위해 잠실리의 과 신원리의 을 따서 잠원이란 이름이 나중에 생겼으므로, 여기가 본디 잠실나루였다.


 

잠은 누에(). 누에를 길러 그 고치에서 비단을 자아내는 조선 국립양잠소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이곳에 있었다. 나루로도 잠실로도, 서초구 반포동에서 강남구 개포동에 이르는 이 일대는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전혀 다른 이유에서 오늘날도 여기는 대한민국 최고 중요한 곳으로 군림한다. 땅값·집값으로 말이다.

 

반포동, 잠원동, 압구정동, 개포동은 대한민국에서 땅값·집값으로 1~4위를 차지한다. 여기 그런 아파트에 실제로 살거나 소유하는 부자 대부분은 뿌리 깊은 일제 특권층 부역자 후손 아니면 부역 정권 부동산 투기 광란에 편승해 일약 상류층에 합류한 떼거리다. 저들이 열어젖힌 흑역사를 부둥켜안고 누군가 가슴 칠 뒷날일랑 남아 있을까.

 

한남대교를 지나자 곧바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성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권층 부역자 권력 집단과 토건 집단이 합작해 세운 부동산 왕국은 노회함으로 건재하다. 강 건너 최신 마천루를 쌍것 취급하는 오만이, 한물간 풍광 속에서 오히려 더욱 그 귀기를 증폭해 댄다. 때마침 저들이 사는 곳과 다른 지평선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한다.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붙여 만든 전형적 강변길, 그 아래다. 콘크리트를 깔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강 가까이 붙은 호젓한 길인데 걷는 내내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한다. 길은 이따금 물과 직접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귀띔해 준다. 곡진하게 물 모심을 하고 나면 그 길이 결국 끊어지고 만다는 사실과 마주칠지라도 그다지 섭섭하지 않다.

 

소담한 내 감사와 물을 소외시킨 부역 토건 종자들 행태를 에낄 수는 없다. 뭣에 쓰는지 모르는 시설 또는 인공물은 그렇다 치고 아는 것들조차 거의 예외 없이 유기·방치되어 있는 강변 살풍경이 점점이 펼쳐진다. 대부분 돈을 노리고 만들었으나 실패했다는 넋두리가 수런댄다. 이상한 콘크리트 더미에 홀렸다 빠져나오니 어, 탄천이다.


 

지하철 7호선 청담역에서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탄천-한강 두물머리 풍경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픈 물 몸 냄새가 자욱하다. 안간힘을 쓰며 물과 땅을 치유하는 다옥한 버드나무 숲이 아니었다면 나는 거기를 뛰어서 지나갔으리라. 두물머리를 잠시 살피다가 광나루까지 가려던 본디 여정을 포기한다. 탄천을 조금 더 걷는다.

 

탄천을 따로 걷는 일은 다른 기회에 맡기고 오늘은 양재천과 이루는 꼬마 두물머리를 거쳐 양재천 따라 조금 나아가다가 학여울역에서 마치기로 한다. 하구부터 얼마간 쭉 이어지는 도시 점령군과 마주한 탓에 무심코 꼬마 두물머리를 지나친다. 되돌아가서 찾지만, 모습을 선명히 볼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다음에 맞은편으로 가야겠다.


 

양재천 나머지 구간도 따로 걷는 기회에 맡기고 점점 무거워지는 허리를 추슬러 역으로 향한다. 정색하고 스스로 다시 묻는다: 제대로인 물 걷긴가? 반걸음 더 곱고 촘촘한 진실을 물으면 한 걸음 더 거기를 향해 내디디도록 팡이실이 춤이 초 인과로 약동한다. 혹시 물 본성 자체를 걷는 카이로스가 들이닥치는 찰나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