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한군데 꼭 갈 일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용산. 분명히 산이지만 그 산이 있기는 한가? 정확한 산 자리를 아는 사람은 없는데 “용산”은 유구하게 뜨르르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임오군란 때 청군, 식민지 때 일제 조선군, 군정 이후 미제 점령군, 일제 조선군을 계승한 허울 대한민국 국군, 이제는 심지어 허울 대통령실까지 덮쳐서 둥지 튼 악마 십승지(十勝地), 바로 거기 “용산”이 정말 용산인가? 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어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며 알아낸 결과만큼 경로를 잡아 일단 용산 걷기를 실행에 옮긴다.
제국과 부역 군대, 그리고 정권이 똬리 튼 “용산”은 가짜 용산이다. 아니, 일제가 본디 용산을 지우고 제 소굴을 “용(龍)산”이라 도둑질해서 조작한 상징이다. 저들이 소굴로 삼은 산은 본디 둔지산이었다. 그 이후 둔지산이란 이름은 사라졌다. 진짜 용산은 오늘날 마포구와 용산구 마주 가장자리를 이루는 능선과 그 자락이다. 이 능선은 안산(鞍山)에서 발원해 애오개를 내어주고 만리재마저 내어주면서도 계속 내달려 마침내 한강에 이르러 우뚝 서 발길을 거둔다. 오늘날 벽산빌라-외인 출입 금지, 경비가 지킴.-와 마포타워가 점령한 벼랑이 남호(南湖) 절경을 이루며 담담정, 읍청루를 불러들인 바로 거기다. 이 용산, 이 이름은 이미 고려 후기부터 있었다.
담담정 자리를 차지한 고급 빌라
그 유서 깊은 능선과 자락은 현재 거의 완전하게 숲을 빼앗기고 포장도로와 길가 겨우겨우 살아가는 몇 그루 나무 행렬로만 남았다. 대표적인 길이 백범교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새창로8길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가슴을 뒤흔드는 분노와 애통으로 자주자주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용산 마루에 이르러서는 더욱 참담해졌다. 거기에는 천주교 성당이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준(準) 성지에 해당하는 곳이라 한다. 용이 나타났기에 용산이라 했다는 상서로운 곳에서 정작 우리가 목격하는 이 풍경은 식민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국적 불명 어수선함이다. 숲도 이름도 사라진 산마루 주인이 “용산 성당”이라니.
사라진 숲을 지키는 거목 하나를 신목으로 삼다
빼앗긴 이름, 죽임당한 숲, 용산을 떠나기 전에 나는 결단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나 더 챙긴다. 사실, 이 걷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눈길을 가장 먼저 끈 이야기는 청암동 부군당(符君堂) 역사다. 부군당은 서울·경기 일원에 남아 있는 마을 신당이다. 특히 용산에서도 한강 가까이에 유달리 많다. 청암동 부군당은 처음 있었던 자리에서 두 번이나 이전했는데, 그 과정이 아프다. 일제가 도로를 내는 바람에 그렇게 된 일은 식민지 어디서든 일어났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중에 특권층 부역자들이 저지른 협잡은 치졸하고 야비하다. 구의회 의장 부자가 몫 좋은 부군당 부지를 사들여 6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부군당은 길 건너 산비탈 자투리땅으로 내몰렸다. 신당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마구잡이 잡식 양옥으로 시늉만 내고 프린트한 날림 현판을 걸어 놓았다. 일제보다 부역 세력이 더 그악하다는 진실을 유감없이 드러내 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머무르다가 고요히 내 의례를 마치고 떠난다. 이 막다른 좁은 길에서 맞닥뜨린 처연함은 쉽게 잊히지 않으리라.
짜투리땅의 초라하고 생뚱맞은 청암동 부군당(1)
짜투리땅의 초라하고 생뚱맞은 청암동 부군당(2)
청암동 부군당을 내쫓고 들어선 호화 건물
인근 산천동 부군당- 이와 비교하면 청암동 부군당은 간이 화장실 수준이다
마침내 가짜 용산 본영으로 간다. 아니. 못 간다. 경찰과 경호관이 길을 막아서다. 삼각지역에서 내려 이른바 대통령실 쪽으로 가는 큰길부터 제지와 간섭이 자행된다. 대통령실 “구경”할 수 없느냐 물으니 그렇단다. 국방부 건물 뒤를 가리키며 그쪽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윤석열 집단이 왜 여기를 근거지로 삼았는지 단박에 감 잡는다. 국민과 가까이서 소통하려고 외진 청와대 떠나 항간으로 나왔다면서, 빈 청와대 개방으로 헛생색은 내고, 정작 제 처소는 구중궁궐로 만든 까닭을 삼척동자 아니면 모를 리 없다. 그래, 거기다 저 제국 군대들이 쌓아온 강고한 점령 층위에 올라타 그 철권을 영속화하려는 야심을 묶으면 특권층 부역자 정권이라는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검은 감시자들 눈을 피해 사부자기 반제국주의 의식을 올리고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가는데 금방이라도 누군가 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은 두려움이 옷깃을 파고든다. 아, 저들이 노리는 바가 이렇게도 작동하는구나.
멘토라는 자, 또는 풍수 전문가라는 자, 이들을 끌어들인 자, 그 누가 만들었든 윤석열을 이리로 이끈 내부 서사는 내 알 바 아니다. 모든 정치, 더군다나 부도덕한 정치라면 으레 “인류학”적 행태를 극단 수준으로 펼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서사 자체가 아니라 신이나 영적 자연이 지닌 권위를 사적 탐욕에 가져다 바치는 자들의 생각 없음, 그러니까 진부성, 피상성이다. 그 진부하고 피상적인 인간 종자들이 경악스럽고 웅숭깊은 악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무섭다. 한나 아렌트는 그러므로 틀렸다. 악은 ‘평범’하지 않다. 악인이 ‘평범’하다. 평범은 실제로 평범 이하인데, 더 큰 문제는 평범 이하를 ‘비범’으로 믿는 과대망상이다. 그 과대망상증 환자 한 움큼이 주제넘게 갈개질하는 허울 대한민국은 찐 식민지로 되 치달아 간다.
야울야울 타오르는 공포와 우꾼우꾼 솟아오르는 분노를 다독거리며 가족과 약속한 저녁 자리로 간다. 오늘은 어디 갔다 왔느냐는 물음에 용산이라 답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게 실제 산이냐 묻는다. 내력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도둑맞은 산과 빼앗긴 숲을 걷기로 되찾았노라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빙그레 웃음은 눈에 넘기고 벌컥벌컥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가족인들 어찌 내 전쟁을 속속들이 알겠냐만, 못다 한 속 이야기가 몽글거리는 일 또한 어쩌겠는가. 거푸 한잔 더 마신 막걸리로 몸도 맘도 얼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