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이야기하면서 청암동 부군당 문제에 주목한 바 있다. 부군당은 마을 신당이라고 간단히 언급만 했었다. 부군이 부군(府君/府群/符君), 부근(府根/付根), 심지어 부강(富降)으로까지 한자화된 사실에서 부군이 본디 우리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부군당을 신봉하는 마을 사람들은 붉은으로 발음한다고 한다. “붉은밝은은 같은 어원에서 왔으므로 해, (으로 표상되는 존재와 상징)을 숭배하는 무속 신앙과 연결된다는 주장이 있다(양종승). 부군을 중국 무슨 인물 이름에 귀속시키거나 한자 의미를 추적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이런 이치는 국사봉에도 통한다.

 

숲에 빙의되어, 그러니까 미쳐서드나들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릴수록 소름 끼치는 기억이 쟁여져 간다. 다시 하라면 대뜸 낙장거리할 듯하다. 최근 일요일에 늘 계획이 없는 까닭이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다가 버스 타기가 싫어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국사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숲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왜 국사봉일까, 생각해 본다. 국사봉 북쪽 발치에 양녕대군 묘가 있어 전해오는 이야기는 그가 여기서 아우가 다스리는 나라를 걱정했다고 국사(國思)라 했다는 내용이다. 억지스럽다. 무학이 비보 사찰 사자암을 창건하자 이태조가 그를 기려 국사(國師)라 했다는 말도 있다. 이 또한 억지스럽다. 벼슬아치나 먹물들 유희에 가깝다.



부군이 붉은에서 왔듯, 국사는 굿에서 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는 인왕산 국사당이 굿당임과 같은 이치다. 전국에 있는 여러 국사봉 모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말과 한자 말이 이런 식으로 왜곡, 전도된 예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말이 나왔으니 다 하고 간다. 국사봉을 우리말로 하면 굿 봉우리가 될 테고, 부역 국어학자들은 봉우리의 봉이 봉()에서 왔다고 주장할 테다. 아니다. 봉우리는 순우리말이다. 봉우리와 봉오리는 다른 말이지만 같은 곳에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봉긋하다를 생각하면 대뜸 알 수 있다.



나는 요즘 굳세고 바른 마음으로 우리말을 공부하는 중이다. 제도 교육을 통해 배워 70년 가까이 써온 내 부역 국어 체계에 크게 금을 내려 함이다. 관련 책과 자료를 살피는 동안, 지난해 <말글 부역 서사>를 쓰면서 마주쳤던 분노와 죄책감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견뎌야 할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 나이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사람 자람과 반제국주의 싸움에 끝은 없다 깨우치며 다시 길을 나선다. 글씨체를 바꿨는데 글은 왜 못 바꾸겠는가 말이다. 아직은, 여기 내 글에도 엄연히 들어 있는 부역 풍경조차 엄밀히 걸러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으려 한다.

 

늘 그랬듯 산마루로 가는 길 마다하고 허리를 크게 한 바퀴 돌아 숲을 나온다. 다음 숲은 강감찬 숲이다. 스트로브 잣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갈피 살펴 걷는다. 거의 다 돌았을 무렵 지니고 온 도토리 생각이 불현듯 난다. 적당하다고 여기는 곳에 심는다. 이들이 다 싹 나서 큰 나무로 자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썩어서 흙이 되더라도 돌아갈 곳으로 가는 것이니 나는 그저 오늘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도토리 심기와 우리말 공부는 본성이 같다. 돈이나 명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압제와 살해로 세상을 삼킨 제국에 맞서 작디작은 팡이실이 한두 올 일으킬 뿐이다. 그 한두 올이 내 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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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년 동안 1,300번 내게 침 맞으며 건강을 관리한 마을 시장 상인이 있다. 요즘 들어 뜸하다 싶었는데 폐업했단다. 신고하러 갔더니 그처럼 막다른 길에 선 사람들이 길게 줄 서서 기다리더란다. 바람결 풍문으로나 여기다 막상 직접 들으니, 가슴이 철렁한다.

 

내 경우라고 다르겠나. 4·16 때부터 줄곧 내리막이었고 코로나 이후 바닥 고착화가 완강하게 자리 잡았다. 요즘 살풍경은 코로나 극성기보다 심하다. 이대로 가면 끝이다 싶지만, 워낙 심하게 각다분하니 당분간은 무슨 엄두도 낼 수 없다. 여기도 막다른 길이다.

 

아이고, 서민은 망해 자빠지고 죽어 나뒹구는데 허튼짓만 하고 돌아다니니, ··· 대체 어쩌자는 심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소. 진짜 식민지로 되돌리려 대놓고 이러는가.” 입 있어도 할 말 없는지 못 들은 척하더니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여기도 막다른 길이다.

 

지난 13년 동안 나는 리베카 솔닛이 말한 성가대에 설교하기원리를 어기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사람에게 진실을 전하려 했다. 이 사람이 앞으로도 쭉 제 삶에 반하는 주권을 행사하리라는 진실을 안다. 침 맞으러 주근주근 올 줄도 안다. 어디든 막다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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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한군데 꼭 갈 일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용산. 분명히 산이지만 그 산이 있기는 한가? 정확한 산 자리를 아는 사람은 없는데 용산은 유구하게 뜨르르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임오군란 때 청군, 식민지 때 일제 조선군, 군정 이후 미제 점령군, 일제 조선군을 계승한 허울 대한민국 국군, 이제는 심지어 허울 대통령실까지 덮쳐서 둥지 튼 악마 십승지(十勝地), 바로 거기 용산이 정말 용산인가? 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어 이리저리 자료를 뒤지며 알아낸 결과만큼 경로를 잡아 일단 용산 걷기를 실행에 옮긴다.

 

제국과 부역 군대, 그리고 정권이 똬리 튼 용산은 가짜 용산이다. 아니, 일제가 본디 용산을 지우고 제 소굴을 ()이라 도둑질해서 조작한 상징이다. 저들이 소굴로 삼은 산은 본디 둔지산이었다. 그 이후 둔지산이란 이름은 사라졌다. 진짜 용산은 오늘날 마포구와 용산구 마주 가장자리를 이루는 능선과 그 자락이다. 이 능선은 안산(鞍山)에서 발원해 애오개를 내어주고 만리재마저 내어주면서도 계속 내달려 마침내 한강에 이르러 우뚝 서 발길을 거둔다. 오늘날 벽산빌라-외인 출입 금지, 경비가 지킴.-와 마포타워가 점령한 벼랑이 남호(南湖) 절경을 이루며 담담정, 읍청루를 불러들인 바로 거기다. 이 용산, 이 이름은 이미 고려 후기부터 있었다.



담담정 자리를 차지한 고급 빌라

 

그 유서 깊은 능선과 자락은 현재 거의 완전하게 숲을 빼앗기고 포장도로와 길가 겨우겨우 살아가는 몇 그루 나무 행렬로만 남았다. 대표적인 길이 백범교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새창로8길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가슴을 뒤흔드는 분노와 애통으로 자주자주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용산 마루에 이르러서는 더욱 참담해졌다. 거기에는 천주교 성당이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준() 성지에 해당하는 곳이라 한다. 용이 나타났기에 용산이라 했다는 상서로운 곳에서 정작 우리가 목격하는 이 풍경은 식민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국적 불명 어수선함이다. 숲도 이름도 사라진 산마루 주인이 용산 성당이라니.



사라진 숲을 지키는 거목 하나를 신목으로 삼다

 

빼앗긴 이름, 죽임당한 숲, 용산을 떠나기 전에 나는 결단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나 더 챙긴다. 사실, 이 걷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눈길을 가장 먼저 끈 이야기는 청암동 부군당(符君堂) 역사다. 부군당은 서울·경기 일원에 남아 있는 마을 신당이다. 특히 용산에서도 한강 가까이에 유달리 많다. 청암동 부군당은 처음 있었던 자리에서 두 번이나 이전했는데, 그 과정이 아프다. 일제가 도로를 내는 바람에 그렇게 된 일은 식민지 어디서든 일어났으니 그렇다 치더라도나중에 특권층 부역자들이 저지른 협잡은 치졸하고 야비하다. 구의회 의장 부자가 몫 좋은 부군당 부지를 사들여 6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부군당은 길 건너 산비탈 자투리땅으로 내몰렸다. 신당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마구잡이 잡식 양옥으로 시늉만 내고 프린트한 날림 현판을 걸어 놓았다. 일제보다 부역 세력이 더 그악하다는 진실을 유감없이 드러내 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머무르다가 고요히 내 의례를 마치고 떠난다. 이 막다른 좁은 길에서 맞닥뜨린 처연함은 쉽게 잊히지 않으리라.



짜투리땅의 초라하고 생뚱맞은 청암동 부군당(1)



짜투리땅의 초라하고 생뚱맞은 청암동 부군당(2)



청암동 부군당을 내쫓고 들어선 호화 건물



인근 산천동 부군당- 이와 비교하면 청암동 부군당은 간이 화장실 수준이다

 

마침내 가짜 용산 본영으로 간다. 아니. 못 간다. 경찰과 경호관이 길을 막아서다. 삼각지역에서 내려 이른바 대통령실 쪽으로 가는 큰길부터 제지와 간섭이 자행된다. 대통령실 구경할 수 없느냐 물으니 그렇단다. 국방부 건물 뒤를 가리키며 그쪽에 있느냐 물으니 모른단다. 윤석열 집단이 왜 여기를 근거지로 삼았는지 단박에 감 잡는다. 국민과 가까이서 소통하려고 외진 청와대 떠나 항간으로 나왔다면서, 빈 청와대 개방으로 헛생색은 내고, 정작 제 처소는 구중궁궐로 만든 까닭을 삼척동자 아니면 모를 리 없다. 그래, 거기다 저 제국 군대들이 쌓아온 강고한 점령 층위에 올라타 그 철권을 영속화하려는 야심을 묶으면 특권층 부역자 정권이라는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검은 감시자들 눈을 피해 사부자기 반제국주의 의식을 올리고 크게 한 바퀴 돌아 집으로 가는데 금방이라도 누군가 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은 두려움이 옷깃을 파고든다. , 저들이 노리는 바가 이렇게도 작동하는구나.

 

멘토라는 자, 또는 풍수 전문가라는 자, 이들을 끌어들인 자, 그 누가 만들었든 윤석열을 이리로 이끈 내부 서사는 내 알 바 아니다. 모든 정치, 더군다나 부도덕한 정치라면 으레 인류학적 행태를 극단 수준으로 펼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서사 자체가 아니라 신이나 영적 자연이 지닌 권위를 사적 탐욕에 가져다 바치는 자들의 생각 없음, 그러니까 진부성, 피상성이다. 그 진부하고 피상적인 인간 종자들이 경악스럽고 웅숭깊은 악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무섭다. 한나 아렌트는 그러므로 틀렸다. 악은 평범하지 않다. 악인이 평범하다. 평범은 실제로 평범 이하인데, 더 큰 문제는 평범 이하를 비범으로 믿는 과대망상이다. 그 과대망상증 환자 한 움큼이 주제넘게 갈개질하는 허울 대한민국은 찐 식민지로 되 치달아 간다.

 

야울야울 타오르는 공포와 우꾼우꾼 솟아오르는 분노를 다독거리며 가족과 약속한 저녁 자리로 간다. 오늘은 어디 갔다 왔느냐는 물음에 용산이라 답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게 실제 산이냐 묻는다. 내력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도둑맞은 산과 빼앗긴 숲을 걷기로 되찾았노라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빙그레 웃음은 눈에 넘기고 벌컥벌컥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가족인들 어찌 내 전쟁을 속속들이 알겠냐만, 못다 한 속 이야기가 몽글거리는 일 또한 어쩌겠는가. 거푸 한잔 더 마신 막걸리로 몸도 맘도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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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숙취에서 아직 덜 깨어 요즘 걷기는 80%가량만 한다. 오늘은 청룡산.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로 넘어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160m 높이 낮은 산이다. 강감찬 장군이 지나다 울창한 숲을 보고 능 자리로 좋겠다고 하여 청릉산(靑陵山)이라 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개발에 밀려 사라졌지만 실제로 능과 능말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청릉산은 두음법칙과 어긋나게 청능산이라 불렸다. 정능(精能)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데 이와 혼용하면서 일어난 변화라고 추정할 만하다. 청룡이라는 이름은 6~70년대 개발 업자가 어감이 좋다며 붙인 이래 지금은 어엿한 역사가 되었다. 봉천동 행정동 가운데 하나로 청룡동도 자리 잡은 상태라 이대로 굳어지지 싶다.

 

저 설화와 역사를 찢고 나는 오늘, 이 산에 내 청룡을 모셔 영산으로 만든다. 걷기와 목부 심기로 이 산에 개벽 기운을 불어넣는다. 먼저 골짝 물기운을 찾는다. 자그만 물 용, 그러니까 도롱뇽이 태동하는 청정한 못가에 선다. 그래. 신화가 가공한 용이 아니라 여기 살아 꿈틀거리는 도롱뇽, 소미한 생명체가 이 숲과 반도와 지구를 정화하고 새 생명 운동을 일으킬 신성한 청룡이다. 미르()버들 한 가지를 샘이 발원한 언저리에 심는다. 골짝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돌고 능선을 넘나들면서 숲 품 모두를 숨에 품는다. 산마루 가까이 한 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정성 다해 둥지 짓는 광경을 지켜보다 그 나무뿌리 곁에 버드나무(Korean Willow) 한 가지를 심는다.


 

이제 이 나지막해서 큰 산은 참 청룡산이 됐다. 내 제의적 발걸음은 이 정한 물기운이 미르 형상으로 꾸민 사악한 불 짐승 두 마리 잡아 그 목숨을 거두리라는 소식 하나 품고 내일로 나아간다. 인과를 뚫고 합리를 허무는 이 인류학적 행동은 제국 지성소를 정조준한다. 제국 지성소에는 제 악을 인류학적 인류에게 뒤집어씌운 찐 악마 인류가 돈에 취해 뒹군다. 그 찐 악마 인류를 파동 타격하는 힘()은 힘()이 아니다_우치다 타츠루(內田 樹). 소식이다. 팡이실이다. 팡이실이 아닌 인과·합리로써는 제국과 부역 패거리를 해체할 수 없다. 죽임당한 참 인류가 지어내는 패자 팡이실이, 그 공생 운동으로써만 찐 악마 인류목숨을 거두어 거둘 수 있다.

 

참 인류는 숲에서 발원했다. 나무에직립 본성을 배웠다. 곰팡이한테서 팡이실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그러므로 인류는 인류 힘만으로 제국을 넘어가지 못한다. 인류 그 너머 생명과 비생명 모두와 더불어 어깨동무해야만 한다. 청룡산을 나서며 되돌아본다. 얼마나 나지막한지. 그나마 청릉산이라는 이름조차 부지하지 못하고 개발 업자한테 호적을 넘겨준 내력은 또 얼마나 구차한지. 인간이 인간 시선으로, 인간 언어로 조져 놓은 세상을 떠메고 가는 숲은 그러나 묵묵하다. 언제 다시 이 숲과 만날지 나는 모른다. 몰라도 아는 진실은 만나지 않는다는 말과 서로 고립된다는 말은 같지 않다는 초인과·초합리. 여낙낙한 봄바람으로 배웅하는 숲에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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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 걸은 날 숲 걷기가 사실은 개화산으로 끝이 아니었다. 방화역에서 지하철 타고 광화문 교보로 갔다. 이병도·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를 품에 안고 다시 버스를 탔다.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정류장에서 내려 잠시 생각했다. 가본 적이 없는 건너편 청룡산을 걸은 다음 곧장 집으로 갈까, 서울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강감찬 숲을 한 바퀴 돈 다음 샤로수길을 거쳐 집으로 갈까. 시간·거리를 헤아려 후자를 택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이 선택은 이틀 뒤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강감찬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낙성대 표지석 앞에서 정화 의례를 행한다. 여러 번 걸은 방향과 반대로 서울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갈라져 강감찬 숲을 한 바퀴 돈다. 지도를 확인해 샤로수길로 들어간다. 생각했던 대로 젊은이들이 물결치며 흘러간다. 고깃집, 찻집, 그리고 의외로 타로 사주 보는 집이 주로 눈에 띈다. 웬만한 식당은 엄두도 못 내다가 일반 음식점이라 써놓은 ㅇㅇ식당 앞으로 갔는데 거기도 안팎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결국 일부러 사람 없는 샤로수길 이전모습 식당으로 들어간다.

 

밥과 소주를 주문하고 기다렸다가 제법 먹을 때까지 나 말고 다른 손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절반가량 먹었을 때다. 갑자기 음식 맛과 술맛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까닭은 물론 전혀 모른다. 먹기를 멈추고 일어서 나온다. 심사가 묘하게 곤두선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생각은 그리로 향하는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이윽고 화요일 저녁 진료가 끝나 단골 백반집으로 가서 맥주잔에 따른 소주를 들이켠다. 벼락처럼 한 생각 떠오른다. 스마트폰으로 희석식 소주를 검색한다.

 

희석식 소주는 일제가 1899년 발명한 저질아니 가짜소주다. 싸구려 원재료를 발효시킨 뒤 연속 증류해 맛과 향을 모두 날려버리고 역한 냄새만 남은 주정에다 물을 타서 만든다. 역한 냄새를 감추려 인공감미료를 섞는다. 그렇게 오로지 취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알코올로 개돼지대중을 순치시킨다. 이 사악한 제국주의 부산물은 그대로 식민지 조선으로 번져간다. 관련법과 조세제도까지 바꿔가며 소주 시장을 석권할 수 있게 해준 조선총독부와 부역 대한민국 권력 덕에 희석식 소주는 소주 본진이 된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한다.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이 희석식 소주를 마시며 순치된 개돼지로 살아온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서둘러 한의원으로 돌아와 비통하게 운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무지렁이 부역자로 살아가는 참담함이 이렇게까지 파고들다니. 가짜 소주, 그 알코올에 온 세포가 절 듯이 내 영혼도 절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 싶으니, 통곡은 여간해서 잦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우는 소리를 감지하는 순간 그 소리는 더욱 크게 꺽꺽대고 만다. , 이제야 알겠다, 왜 맛이 사라졌는지.

 

나는 그 일요일 저녁부터 이 시각까지 일어난 일을 다시 한번 찬찬히 돌아보았다. 홀연히 희석식 소주가 내 제국주의 탐색 이미지에 포착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아니 모르긴 몰라도 가닿게 된 특별한 시공에 주의를 기울여 보았다. 물론 이성적·인과적 인식으로는 설명도 의미 부여도 당최 당치않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맞서는 일을 기조 삼은 내 삶에서 이런 소통로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를 팡이실이라 이름하며 그 실재를 이처럼 확인한다. 오랜 벗 희석식 소주, 이제는 그 우정을 끝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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