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제국 또는 미국이 주도해온 단극적 세계질서가 쇠퇴한 징조가 뚜렷한 가운데 제국의 역습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이 최근의 국제정세라고 여겨진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의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민주당의 해리스에 승리를 거두고 취임을 앞두고 있지마는, 우크라이나전쟁에서의 패배가 임박한 상태다. 러시아에 전략적 패퇴를 가하려 미국이 전력을 다해 지원해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막강한 공격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주식시장의 호황 등으로 미국은 경제가 일견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금융시장에서 엄청난 자본이득이 생기고 있기는 해도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상위 극소수 부자들뿐이고 인민대중은 물가고 등 갈수록 깊어지는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의 해리스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가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래도 미국이 세계 경찰—또는 깡패—로 군림하려는 기세는 여전하다. 그런 태도를 대표하는 것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같은 ‘우방’에 군사적 지원을 무진장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대외 정책 매파나 네오콘 세력일 것이다. 미국에는 세계를 미국의 손아귀에 넣어 짓주무르는 거대한 도당이 있다. CIA 분석관 출신 레이 맥거번이 ‘미캐매트’라고 부르는, 군대와 방산업체, 의회, 정보세력, 매체, 학계, 싱크탱크로 구성된 권력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하지만 국제정세를 멋대로 농단하기에는 미국도 이제 힘에 부치는 것이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군사적 전략 자원이 이제 고갈 상태가 된 것이 한 예다. 미국의 경제력도 이전 같지 않다. 냉전 시기 이후 사실상 세계 패권을 휘둘러온 것은 막강한 경제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GDP의 50%나 차지하던 미국도 지금은 구매력평가지수(PPP)로 보면 2023년 기준 15.56%로 18.75%인 중국에 뒤진다. 특히 미국은 신자유주의화를 통해 탈산업화를 추진한 여파로 군수산업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에 밀리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나토의 군사력이 러시아의 그것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제국의 속국들 형편도 악화한 모습이 역력하다. 속국들이 밀집한 유럽을 보면 안정적인 나라가 거의 없다. 최근에 프랑스에서는 내각이 불신임당해 붕괴했고, 영국은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노동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고, 독일의 경우 미국의 요구대로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집권 연정이 내년 2월에 조기 실시될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 확실시된다.

유럽 최대의 산업 국가 독일의 경제 상황이 특히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독일이 자랑하는 폭스바겐 자동차에서 노동자 10만 명이 파업을 벌여 9개 공장 조립라인이 중단된 적이 있다. 폭스바겐은 최소 3개 공장을 폐쇄하고 대규모 해고를 감행할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의 파업 사태는 독일 경제가 위기에 처한 징후임이 분명하다. GDP 성장률—이것만 놓고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을 놓고 보면 독일은 2023년에 마이너스 0.3%의 성장을 기록한 뒤 2024년에 –0.1%의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유럽 다른 주요 국가들도 경제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2023년에 GDP 성장률 0.9%로 매우 저조했고, 2024년에는 1.1%로 약간 개선될 것이 예상되는 2025년에는 0.8%로 다시 악화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근에 바르니에 내각이 붕괴한 것이나,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을 지지하는 여론이 61%로 나온 것도 그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태리의 경제성장률은 프랑스의 그것보다 더 낮다. 2023년에 0.9%를 기록한 뒤, 2024년 0.5%, 2025년 0.8%로 예측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2023년에 0.1%를 기록해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하고, 2024년 1.1%, 2025년 1.4%로 약간의 개선이 예상되나 그렇다고 성장률 저조 추세에서 벗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권 노동당이 7월의 총선에 압승해놓고도 석 달 만에 총리 키어 스타머의 지지율이 0을 기준으로 –38로 급락했다. 노동당 출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악화한 데에는 겨울철 연료 지원금을 삭감하려는 정책이 한몫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국의 범 서방 속국의 상태도 좋지 못하다. 일본의 경우 2023년 경제성장률이 1.9%로 저조했고, 2024년은 0.3%로 예상되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7월 지지율 15.5%를 기록하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퇴진한 뒤 새로 들어선 이시바 시게루의 지지율도 처음에는 50%를 넘기다가 11월 말에 이르러 퇴진 위기 수준인 30%대로 떨어졌다.

아시아에서 일본과 더불어 제국의 범 서방 속국의 하나로 있는 한국의 상황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기도와 실패 이후 한국 사회는 지금 다시 국가의 명운을 놓고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이번 쿠데타 기도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에 한국이 무기를 지원해줄 것을 미국이 원했을 것이고, 조선군이 러시아에 파병되었다는 ‘썰’을 근거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중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용한 것을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윤석열이 쿠데타에 성공해 권력을 완전 장악하고 나면 미국의 입맛대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설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윤의 친위쿠데타 실패는 따라서 제국 미국으로서는 실망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제국의 역습도 만만치 않다. 지금 가장 큰 지정학적 변동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의해 붕괴한 것이다. 시리아가 그렇게 급속하게 붕괴하리라고는 어떤 국제정세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2015년 이후 반군과 잘 싸워오던 정부군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능하게 궤멸하고 불과 며칠 만에 합법적 정부가 붕괴해버렸다. 하지만 그 결과 이스라엘의 무도한 패악질을 견제하고 미 제국의 서아시아 농단을 막기 위해 결성된 ‘저항의 축’에 엄청난 균열이 생긴 셈이다. 시리아는 저항의 축 실질적 수장인 이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무기를 지원하려면 거쳐야만 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는데 이번에 친이스라엘, 친미, 친터키 반군 세력에 장악되어 버렸다. 앞으로 저항의 축이 전선을 어떻게 구축해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개할 것인지 주목된다.

제국의 역습은 동유럽 지역, 즉 러시아의 서쪽 세 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몰도바와 조지아, 로마니아에서 제국주의의 색깔 혁명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인 것이다. 11월 초의 몰도바 대선에서 친 EU 후보인 마이아 산두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서방의 열렬한 지원을 받은 선거 공작을 통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산두가 겨우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에 거주하는 부재 투표자들의 몰표 덕분이었다. 국내 유권자만 놓고 보면 친러 후보로 여겨진 알렉산드르 스토야노글로가 훨씬 앞다는데, 산두 정권은 그를 지지하는 부재자가 많은 러시아 등에는 투표소를 단 2개만 설치하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공작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서방의 어느 나라도 몰도바의 민주주의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조지아에서는 대서방, 대러시아 중립적인 정당인 조지아의 꿈 당이 지난번 총선에서 54.08%를 얻어 37.77%를 얻은 친EU 연합을 압도했으나, 지난 몇 주 동안 ‘부정선거’를 외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당과 대통령, (제국의 지원을 받는) 시민사회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조지아에서도 시위 군중이 의회 건물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데, 현재 한국의 상황과 다른 것은 그들은 제국의 앞잡이 역할을 자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집회는 그래도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한다는 데서 조지아의 상황보다는 나은 편이라 하겠다.

로마니아에서는 대선 1차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우크라이나전쟁 반대 후보가 최종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나섰다. 칼린 제오르제스쿠 후보는 1차 선거에서 22.95%를 얻어 집권당 후보를 제치고 1위가 되었고, 12월 8일에 열릴 예정이던 결선 투표에서 당선이 유력했는데 헌법재판소의 방해를 받은 셈이다. 그는 로마니아가 나토의 하수인이 된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워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왔다. 제오르제스쿠가 로마니아 딥스테이트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그런 점 때문일 공산이 크다. 제국의 역습이 만만치 않다.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제국의 쇠퇴가 대세임은 분명해 보이나 그 역습도 거세다. 한국은 지금 그 소용돌이에 말려 있는 형세다.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내란에 가담한 세력을 처벌하는 것은 제국의 역습에 맞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제국의 역습을 만만치 않게 봐야 하는 것은 몰도바, 조지아, 로마니아에서 보는 것처럼 제국은 끊임없는 색깔 혁명을 기획해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을 막으려 하고, 시리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역습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만 하겠는가. 제국의 역습은 제국의 힘이 약화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것은 제국의 역습이 상식을 벗어난 모습을 띤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시리아를 점령한 반군은 알카에다, ISIS의 남은 세력이 힘을 다시 키워 만든 반문명 세력이다. 조지아의 시위 군중, 몰도바의 부정선거 집단, 로마니아의 헌법재판관 등은 반민주 세력이다. 그런 세력을 졸개로 쓰고 있다는 것은 제국이 정상적으로는 통치를 이어갈 수 없음을 말해준다. 제국의 역습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제국의 쇠퇴까지 불신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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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에 선약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일어선다. 날이 저물어서야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한다. 인파가 발길을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은 압도적인 10대와 20대 물결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절망 끄트머리에서 벼락같이 솟아오른 희망 아닌가. 한강이 한 말을 문득 떠올린다. “희망이 있으리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 아닐까요.”



밤이 깊어 가는데 시민은 등돌리지 않고 있다. 애통한 오늘을 여전히 부둥켜안고 구호를 외친다. 시민이 짓는 표정은 싱그럽고 내는 목소리는 탱탱하다. 한 가족과 마주친다. 엄마, 아빠, 여고생 딸.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한다. 여고생에게 묻는다: 실망하지 않았어요? 그는 활짝 웃으며 우렁차게 대답한다: 아뇨! 한강이 한 말을 문득 떠올린다: “소년이 온다.”



이미 잠들었어야 할 시각도 넘어서야 나는 집으로 향한다. 여의도에 있던 시민 발소리를 지하철 두 번 갈아탄 뒤에도 듣는다. 민주주의와 국민과 역사에 등돌려 퇴장하면서 히히거리던 국짐 패거리 모습을 한참 되새긴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겠다. 독한 증류주를 병째 들고 입안 가득 흘려 넣는다. 결코 이 애통을 잊지 못하리라. 한강이 한 말을 문득 떠올린다: “이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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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인지란 자기 인지 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발견·통제하는 정신 작용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지를 다시 인지하기다. 사유를 다시 사유, 사상을 다시 사상, 삶을 다시 삶, 이런 확장 과정을 열어 놓은 개념이다. 그런데 한 차원 높은 시각이란 표현은 좀 생각해 볼 며리가 있다. 하기 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전에서 사용할 용어로는 적당하지 않다. 차원이란 말 자체가 그렇다. 과학 범주로 들어가면 매우 어렵고, 통속한 의미대로 쓰면 사전에 올리기에는 함의가 거의 없는 허언에 가깝다. 들머리에서 인용한 사전은 안타깝게도 후자다.

 

메타인지를 거치지 않은 인지는 기본적으로 그 자체와 다른 또는 반대인 인지를 하지 않은 한 방향 인지다. 가능한 인지 전체를 놓고 보면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부분은 오류다라는 유명한 문장은 그래서 나왔다. 인지 오류를 극복하며 나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그 인지와 다르거나 반대인 인지와 마주치는 일을 거쳐야 한다. 어떤 사물 또는 사태에 대한 한 인지는 그 사물 또는 사태에 대한 인지라는 점에서 모두가 옳다. 그러나 어떤 사물 또는 사태에 대한 전체 진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그르다. 서로 마주치는 일이 필수인 며리다.

 

이 과정이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라는 표현은 최근에 나왔지만 1400년 전 이미 이를 이야기한 위대한 스승이 바로 원효다. 원효는 이를 일러 화쟁이라 했다. 물론 화쟁 사상은 더 깊고 웅혼한 내포를 지니지만 기본에서 메타인지와 다르지 않다. 메타인지는 자람인 사람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메타인지로써 넓은 시야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다만 온전한 인지 획득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메타인지는 다르게 관찰·발견·통제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 팡이실이 사건에 참여함으로써 더불어 생명 누리는 장엄에 배어들기 위한 거룩한 의식이며 신나는 놀이다.

 

메타인지는 평생을 관류하는 운동이다. 자람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메타인지를 멈춘 자에게 메타 인생은 없다. 메타 인생 없는 자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허울 인간이 통치하는 국가는 공화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공화국이 아니다. 최고 헌법기관이 헌정을 무너뜨리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참담한 시간이 애통 속에 흘러간다. 국격은 둘째 치고 국민 인격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다. 생존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오늘 저녁 여의도로 가지 않으면 나는 인간이 아니다. 국민 이전에 쌀독이 비어가는 생명으로서 나는 촛불을 들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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