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에 누군가 질문했다: ‘심난하다심란하다는 다른 단어죠? ‘심난하다매우 어렵다”, ‘심란하다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럼, ‘마음이 심난하다.’라는 문장은 잘못된 건가요?

 

국립국어원이 답변했다: ‘심난하다형편이나 처지 등이 매우 어렵다는 뜻이고, ‘심란하다마음이 어수선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심란하다로 쓰시는 것이 알맞습니다.

 

국립국어원 답변 수준은 참담하다. 심란하다는 단어에는 이미 마음이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심란하다는 표현은 마음이 마음이 어수선하다가 돼 잘못된, 그러니까 틀린 겹침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답변에 알맞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국립국어원에 누군가 질문했다:

 

1. 옳은 것을 고르시오.

2. 적절한 것을 고르시오.

3.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셋 다 비슷한 의미인 거 같기는 한데 어떤 차이가 있어요?

 

국립국어원이 답변했다: ‘옳다사리에 맞고 바르다.”, ‘적절하다꼭 알맞다.”, ‘알맞다일정한 기준, 조건, 정도 따위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뜻풀이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적절하다알맞다는 의미가 통하지만, ‘옳다적절하다/알맞다와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당 문항에 비추어 알맞은 단어를 선택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자기 답변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제대로 답변하려면 “‘마음이를 빼고 그냥 심란하다라고 표현하셔야 맞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한국어 연구를 주관하는 국립 기관이 어떻게 이런 지경일까?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수준 전반이 이렇다. 예를 들어본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돌림 풀이가 곳곳에 널려 있다. (이 이야기는 <나는 국립국어원이 그리 그악하다>(2024.3.5.)에서도 했다.)

 

경영: 기업이나 사업 따위를 관리하고 운영함.

운영:조직이나 기구, 사업체 따위를 운용하고 경영함.

 

경영은 운영으로 운영은 경영으로 풀어놓았다. 이는 풀이라고 할 수 없다. 대체 어떤 자들이 모여서 이런 짓거리를 했을까, 궁금하지도 않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이야기한다.

 

지혜-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슬기-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

 

한자 말 지혜와 순우리말 슬기는 서로 대등하게 맞바꿀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은 지혜를 슬기 상위어처럼 풀어 놓았다. “정신적 능력재능을 누가 대등한 표현이라고 하겠나. 재능의 재를 재주라고 해놨으니 말이다. 슬기가 재준가.

 

김명신 국정농단 논란에 윤석열이 사과한다면서 사전을 들먹이자, 누군가 국립국어원에 국정 농단을 질문으로 올렸다고 하는데 답변했는지 모르겠다. 답변하지 못했으리라 추정하거니와 이 또한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을 문체부 예하 기관으로 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이 여전히 식민지임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어( 연구)가 어떻게 문화·체육·관광 개념에 속한단 말인가.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속한 프랑스 학술원 관련 자료를 보면 국가원수가 보호한다.”라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은 대한민국학술원과 전혀 무관하며, 대한민국학술원조차 교육부 예하 기관이다.

 

대한민국은 바탕이 구겨진 나라다. 조선총독부 체제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구겨진 바탕에서나마 애써 꾸려오던 나라를 뉴라이트 정권이 들어서서 대놓고 쑥대밭으로 만드는 중이다.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다. 누구 말마따나 국립국어원도 토착 왜구들이 일부러 들어가 망치고 있지 않나 싶으니 심란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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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습관은 어린 시절 집의 온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어린 시절 겨울철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지, 방이 따뜻해서 티셔츠를 입었는지에 따라 열 기준선이 만들어진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뿌리 박힌 편안함의 감각이다.···따뜻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외부 온도와 무관하게 성인이 되어서도 온도 조절기를 더 높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격 형성기의 습관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_코메디닷컴

 

어디 열 기준선뿐일까. 거의 모든 정신장애, 정신병 또한 어린 시절 받은 자극과 반응에 뿌리를 둔다. 크게 보면 모든 정신장애, 정신병은 발달 불균형 증후군-일본 신경정신과 양의사인 호시노 요시히코(星野 仁彦)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에서 처음 쓴 용어-이다. 미국 정신 요법 가운데 과거 아닌 현재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있는데 이는 그들 특유 제국주의 사고를 드러낸 오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동심원을 그리며 번진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쟁여진다.

 

어린 시절 상처를 문제 삼을 때 흔히, 특히 가해자가 입에 올리는 말은 이렇다: 다 지난 일을 가지고 왜? 틀렸다. 지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입자적, 물적 실재만을 실재라고 하는 제국주의 사고를 일소할 때가 진즉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식민지에서는 주류로 대우하고 있다. 어른인 내 인격 속에 neoteny가 엄존하듯 어린 시절 습관과 상처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한의원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켜기다. 창이 열리면 예쁜 아기가 웃는 얼굴로 나를 맞는다. 심리 전문가에 따르면 아기 얼굴 심지어 그 사진이나 그림을 보아도 어른은 조심 mode에 돌입한다고 한다. 내가 아기 사진을 건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마음 아픈 사람을 치유할 때, 마치 어린 아기처럼 곱고 촘촘한 마음길로 대하려고, 아니, 발달 불균형인 채 성숙이 멈춘 어린 아기 실재(the real)를 다습고 살갑게 대하려고 말이다.

 

고백하건대 내 자신과 한 이 약속을 나는 충실히 지키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기가 내 앞에 있는 아기를 적지않이 질투했다; 어른 흉내 내며 내 앞에 있는 아기를 적지않이 꾸짖었다. 아무리 똑 한 걸음 앞 스승이 실팍한 스승이라지만 이만하면 농익을 법도 한데 갈 길은 아직 아득하다.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컴퓨터 화면 속 아기 눈을 그윽이 들여다본다. 다정한 눈빛에 이끌려 나도 한껏 다정해진다. 부디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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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석식 소주는 일제가 1899년 발명한 저질아니 가짜소주다. 싸구려 원재료를 발효시킨 뒤 연속 증류해 맛과 향을 모두 날려버리고 역한 냄새만 남은 주정에다 물을 타서 만든다. 역한 냄새를 감추려 인공감미료를 섞는다. 그렇게 오로지 취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알코올로 개돼지대중을 순치시킨다. 이 사악한 제국주의 부산물은 그대로 식민지 조선으로 번져간다. 관계법과 조세제도까지 바꿔가며 소주 시장을 석권할 수 있게 해준 조선총독부와 부역 대한민국 권력 덕에 희석식 소주는 소주 본진이 된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한다.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이 희석식 소주를 마시며 순치된 개돼지로 살아온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서둘러 한의원으로 돌아와 비통하게 운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무지렁이 부역자로 살아가는 참담함이 이렇게까지 파고들다니. 가짜 소주, 그 알코올에 온 세포가 절 듯이 내 영혼도 절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 싶으니, 통곡은 여간해서 잦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우는 소리를 감지하는 순간 그 소리는 더욱 크게 꺽꺽대고 만다. (2014.3.7. <개화산 이야기, 그 후렴>)

 

가짜 소주와 헤어지기로 다짐하며 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가짜 아니고 진짜 소주 마시려면 돈이 많이 들어 천하 가난뱅이인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다. 대신 막걸리 마실 경우도 같다. 값싼 막걸리에는 제국 악질 기업 몬샌토가 독점 공급하는 아스파탐이 들어 있다. 아스파탐 쓰지 않는 막걸리 가운데 왜식 누룩을 넣은 것은 값이 세 배다. 우리 누룩을 쓰는 막걸리는 훨씬 더 비싸다. 맥주 경우도 같다. 국산 맥주는 효모가 거의 없고 맥아만 있는 가짜다. 진짜는 비싼 제국 것들이다.

 

술마저 값싼 가짜가 판치는, 가짜를 거부하려면 더 성공한 부역자가 돼야 하는 모순이 판치는, 이 모진 식민지 거리에서 나는 오늘 저녁도 홀로 술 한잔할 텐데 모욕감 벗어날 방법을 당최 모르겠다. 물론 단순명료한 외길은 금주다. 금주 또한 소담한 반제 병기다. 문제는 술이 없을 때 내 삶 자체가 무엇인가다. 어떤 깊은 결여를 부둥켜안고 사는 내 삶에 대한 기림으로 나는 술을 마신다. 그 결여는 일제가 판 구덩이다. 이 중첩모순을 역설로 달여내는 문제에 금주가 답은 아니다. 큰 악이 작은 선을 무심코 물들이므로.

 

진부한 질문: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 정의로울 수 있는가? 한 사회도 한 개인도 단순하지 않으므로 이 질문은 단순한 답을 얻고자 제기되지 않았다. 답은 복잡하고 모호하다. 복잡하고 모호한 답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복잡하고 모호함으로 그런 사회에서 승리/성공하는 행위가 문제다. 이들을 일러 기회주의,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매판 부역이라 한다. 복잡하고 모호함으로 그런 사회에서 패배/실패하는 행위를 감행할 때 단순한 답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단순함은 불순물이 지닌 정의로움이다.

 

불순물이 지닌 정의로움, 더 정확히 말하면 불순물이기에 정의로운 사태는 큰 악이 작은 선을 무심코 물들이지 못하게 막는다. 자기 삶이 사회 전체 악 앞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진실을 정면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에게 엄습해 오는 개체 악 하나하나와 맞서 싸운다면 지더라도 그 패배 때문에 작은 선은 결코 큰 악에 무심코 물들여지지 않는다. 이 싸움이 제국주의에 부역한 존재론 철학을 갈아엎고 팡이실이 공생 윤리학을 세우는 혁명이다. 참 혁명은 가짜 소주 한 잔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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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혁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민자영의 본관은 여흥 민씨. 경기도 여주 출생이었다. 빈곤한 양반 집안의 자녀로 자랐지만,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끝내려 개혁 정치를 시도하는 흥선대원군이 간택을 단행, 그를 고종의 왕후로 책봉했다.

 

민자영은 왕후가 됐지만 고종이 이 귀인만 좋아했기 때문에, 한동안 왕과 자리를 함께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궁내의 여러 세력 간의 갈등 관계를 이용, 자기편을 만들고 세력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흥선대원군은 민자영의 여흥 민씨가 쇠락한 양반 가문이라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점점 자기 세력을 불려 나간 민자영은 결국 대원군을 탄핵하고 자기 일족들로 요직을 온통 채우기 시작한다. 대원군이 그토록 견제하려 했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그의 무수한 개혁 정책이 아니라, 며느리가 끌어들인 여흥 민씨에 의해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폐해가 물론 많았다 하나, 부정부패로 본다면 여흥 민씨는 역사상 그 끝판왕이었다.

 

민자영은 별기군이라는 신식 부대를 창설해 놓지만, 그 부대를 운영할 재정은 준비되지 않았었다. 밑에 돌을 빼서 위에 얹는 식으로 구 군영에 들어갈 곡식을 빼서 별기군에 지급하자 구식군의 폭동이 일어났다. 그게 임오군란이었고 민자영이 도망치자, 대원군이 돌아온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민자영은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대원군을 끌어내고 다시 입궐했다.

 

여흥 민씨 일족의 부정부패는 지독해서 재정이 텅텅 비어 가니 녹이 나오지 않고 지방 수령들은 저마다 자기 고을을 쥐어짜서 생계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민란의 시작이었다. 동학 농민 전쟁이 고부에서 시작해 일파만파로 치닫자, 민자영은 또 청나라를 끌어들인다. 뒤따라서 제물포로 입항한 일본군은 기관총을 들고 와 동학 혁명군을 학살하고 청나라도 몰아낸다. 자기 나라 민중이 일으킨 민란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고, 이제 조선은 일본에 통째로 먹힐 일만 남도록 만든 책임에서 민자영이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또다시 청이 개입하자 급진 개화파들은 급히 일본으로 망명했고,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민자영이 이번엔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한다. 그리고 일본 공사는 일본인 낭인들을 동원해 민자영을 암살한다. 이 순간에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쳤다는 말은 판타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고 실제로 그는 목숨을 구걸하였다고 한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민자영은 대단히 사치스러웠다. 실제 논문에 명례궁 수입이 291만 냥이었을 때, 궁의 지출은 444만 냥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엄혹하던 시기 민씨는 무엇에 그리 돈을 많이 썼을까? 궁의 지출 중 대부분이 식료비였다. 이는 연회, 다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더 큰 지출은 고사(굿, 제사) 탓이 더 컸다.

 

민자영은 궁중에 신당을 짓고 무당과 중을 불러들여 허구한 날 고사를 지냈고 빈객들에게 선물을 잔뜩 줘 보냈다. 민자영 이전의 어떤 궁주들도 이렇게 큰돈을 들여 풍성한 연회와 고사를 지낸 바가 없었다.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물가는 천정부지이며 일본 등으로부터 차입금이 증가하고 세수는 중간에서 탈취하는 탐관오리들로 인해 증발하던, 위기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앉아 있던 민자영은 그나마 있는 세수조차 무속인들을 부르고 이 사람 저 사람 불러 연회를 베풀며 저렇게 탕진하고 있었다. 1880~1894년의 일이었다. 민자영 같은 이가 정권을 쥐고 있는 이상, 이미 조선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를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과 같다. 세수는 곤두박질치고 정부는 재정이 비었고 외환 보유고도 빠르게 줄어간다. 연기금까지 헐어 환율을 방어하고 있으나 한국 화폐의 가치는 계속 떨어져 가고 증시는 나 홀로 내리막길. 이런 판국에 명태* 등의 증언에 의하면 무속적인 이유로 청와대를 버리고 새로운 공관과 집무실로 이주하는데 막대한 돈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집무실에 무속인들을 불러들여 항공기에 태워 순방을 돌아다니며 해외에 나가선 쇼핑을 즐기고 의료, 교육 등에 희한한 정책들을 남발한다. 국가 원수는 주말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고 주중에는 술에 절어 있는 동안 외척들이 나라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이 시기를, 후대에는 어찌 기록하고 있을까.

 

파국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가복음 4:23)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췄다고 하지만 미국의 시장금리는 그와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물가가 잡히지 않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준이 달러 가격을 통제하지 못하는 초유의 시대다. 이런 시국에 한국은 얼른 중앙은행 금리를 따라서 내리고 앉았다. 환율과 물가가, 이미 폭탄을 가득 안고 있는 우리 경제에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모피아들은 옛 여흥 민씨 척족들이 나라 재산을 저마다 빼돌리듯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막는 이도, 거칠 것도 없는 세상이다. 우리의 미래도 19세기 말 조선의 운명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종부세를 부과한 데 대해 복수심에 불탔던, ··(방가, 홍가, 김가 집안)과 토건 기업 언론들이 여론을 호도해서 앉혀 놓은 말도 안 되는 정권이 하는 짓이다.

 

참고로 김건희의 본관은 선산이며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그의 일족은 아무 데서나 "뒈질 놈들"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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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매일 가는 동네 백반집이 있다. 처음 갔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그 가격에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어낼까, 싶은 밥상이 차려져 나왔다. 달지 않아서, 다정함이 배어 있어서 한층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제법 시간이 흘러 이제는 주인 내외와 소주도 한잔하는 사이가 됐다.

 

주인 내외는 여전하다. 그러나 밥상은 조금 달라졌다. 장사 좀 잘되면 달라지는 그 변화가 아니다. 멋대로 뛰어버린 물가 고려하면 주위 다른 식당처럼 여러 차례 올려 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일어난 변화다. 만들어 파는 쪽에서는 느낄 수 없을 수 있지만 사서 먹는 쪽에서는 기민하게 느낄 수 있다. 음식 질이 확실히 낮아졌다.

 

얼핏 생각하면 값 올리고 질 높은 음식 파는 게 나을 듯하지만, 30년 가까이 동네 장사해 온 처지라 천 원 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동네 백반집 해서 떼돈 벌려 하겠나만 그래도 이문은 남겨야 하니 결국 배추 한 포기라도 예전보다 더 시든 것으로 사다 김치 담글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더 살갑게 그들 속을 헤아려야 할 처지다. 14년째 매일 온다고 나한테만 천 원을 덜 받으니 말이다. 그래도 달라진 밥상을 모를 리는 없다. 알면서도 고맙게 기꺼이 먹는 까닭은 여기서 먹을 수밖에 없는 내 조건 또한 헤아리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주위 다른 식당에 가지 않는 내 나름 지닌 판단 기준이 가로놓여 있다.

 

처음 개원해서 끼니 해결할 식당을 두루 찾아보았다. 이 집을 빼놓은 거의 모든 식당이 음식을 함부로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싸지도 않을뿐더러 남에게 파는 음식이니 세태에 걸맞은 풍조다 여기지만 그렇더라도 그 앞에 고개 숙이고 앉아 꾸역꾸역 먹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자기 아들딸도 내려와 먹는 이 백반집 말고는 선택할 곳이 없다. 토요일은 휴무라 어쩔 도리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다 마지못해 먹는다. 두어 해 전부터 그런 식당 음식을 대할 때, 뭔가 다른 감정이 일어나곤 했다. 지난 주말 시장 어느 골목에서 추어탕을 먹다가 문득 그 느낌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음식에 모욕당하는구나.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정확한 표현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먹다 말고 나는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단숨에 들이킨 다음 생각에 잠겼다. 모욕 주체가 음식 자체도 음식점 주인도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곧이어 들이닥친 생각은 삶이 나를 모욕하는구나.”였다.

 

이 뜬금없는 비약은 그만한 근거가 있다. 늦깎이긴 하지만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이 열린 이후 내 삶은 정치경제학 비판, 특히 최근 제국주의 공부를 거치며 개인사와 공동체 현안을 일치시키는 쪽으로 흘러왔다. 특권층 부역자 정권이 대놓고 나라를 다시 식민지로 되돌리는 중인 오늘 현실 삶은 그대로 나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모욕 그것도 밥상머리에서 받는 모욕이란 얼마나 비참한가. 어떤 악의도 지니지 않은 식당 주인이 무심히 차려낸 음식에서 모욕이 느껴지는 일은 어떤 선의도 지니지 않은 김명신이 유심히 짓는 협잡에서 모욕이 느껴지는 일과 본성에서 같다. 큰 악은 작은 선을 무심코 물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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