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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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두렵다. 그것은 소리 높여 스스로를 외치지 않으면서도 생의 모든 방위에 질기게 스며 있는 것이다....... 어느....... 지도 위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생은 비밀이면서도 또한 숨길 수 없다. 어디에 무엇으로든 흔적이 남는다. 지도는 기억에 직결된 가장 강력한 흔적의 창고다.”(195-196쪽)


얼마 전 한 일간신문에 친 아버지한테 성폭행당한 상처의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이 보낸 질문과 국민 멘토로 회자되고 있는 한 고수급 승려가 준 답변이 실렸다. ‘쾌도 상담’이란 멋진 타이틀 아래 그가 내린 ‘처방’의 골자는 이랬다.


“네가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니 떨치고 가서 감사하라.”


그 기사를 읽고 나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것은 법문이지 상담이 아니다. 법문은 도를 가르치는 것이지만 상담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다. 가르침과 치유 사이의 다른 점을 무시하는 거야말로 空 망상이다.”


성폭행 당했다는 생각은 상(相)이다. 상은 헛되다. 헛것에 매달리지 말고 감사로써 흘려보내라. 맞는 말이다. 그러나 헛된 상이 평범한 중생의 심리적 현실에서 어떻게 절박한 문제인지, 얼마나 두려운 힘인지, 있는 그대로 헤아리지 않은 답변은 그 자체 또한 헛된 상이다. 실체가 아니라고 해서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상하다고 해서 실재가 nothing이 될 수는 없다. actual reality만 reality가 아니라 psychic reality도 reality다.


심리적 실재는 “소리 높여 스스로를 외치지 않으면서도 생의 모든 방위에 질기게 스며 있는”, 그래서 두려운, “흔적”의 부활이다. 실체가 아닌데 힘 있다. 아니, 실체가 아니어서 힘 있다. 이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자는 구름 위를 떠다니는 공관(空觀) 마니아에 지나지 않는다. 수시로 부활하는 흔적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지 “공명”(196쪽)하지 못하는 자가 가르침이라면 몰라도 치유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름 아래 있는 아픈 사람에게 구름 위의 진실을 냉큼 던져주는 것은 염장 지르기를 방편으로 쓰는 결과/해결 중심 사유에 터 잡은 남성 가부장적 대승불교가 전가의 보도로 쓰는 구도의 방식이다. 일리 있다. 그러나 이것은 따뜻한 보살핌을 기조로 하는 과정/문제 중심 사유에 터 잡은 여성 또는 모성적 치유와는 맞지 않다. 간화선적 깨달음이 모든 것을 통괄하고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 깨달음으로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해보라.


더 빨리 어떤 목적지에 닿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펴 들게 된다면 서둘러 그 지도를 버려야 한다. 자기 앞의 생을 찾아가는 그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애틋한지를 보여주는 징표로서의 지도는 ‘거기’를 꿈꾸게 할 뿐만 아니라 ‘여기’를 돌아보게 하는 아주 느린 흔적들의 집이기 때문이다.”(199쪽)


해답을 알고 있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자가, 두 점 사이에 직선 긋듯 하는 교설은 상에 갇힐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 사람한테 성마름, 더 나아가 폭력으로 다가온다. “‘여기’”에서 “자기 앞의 생을 찾아가는 그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애틋한지” 살피는 따스함, 어루만짐 없이 “‘거기’” “더 빨리 어떤 목적지에 닿기 위한 길을” 던지는 차가움, 도도함은 아픈 사람의 분노와 절망을 증폭시킨다.


어둠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해주어야 할 일은 함께 그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게 공명이며 공감이며 공유다. 한 생명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출발점이다. 빛을 가리키며 이끄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바로 이 순서가 생명의 순서다. 인간의 순서다. 붓다의 순서다. 중생의 고통과 함께 한다고 입만 열면 떠드는 이른바 깨친 자가 싸늘한 사실 부여잡고 죽비나 내려치고 있으면서 불도를 운위하다니 실로 가소로운 노릇이다.


이 가소로운 일들이 어찌하여 대승불교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그럼? 탈속적인 삶을 구가하는 깨친 자들의 여유, 긴, 길어도 너무 긴, 그래서 늘어진 호흡에서 그런 실패(!)가 나온다.


내 앞의 생으로 오는 것들은 언제나 절박한 호흡으로 온다. 자기 앞의 생에 ‘오버’란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내 앞의 문제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온 것이다. 내가 의식하고자 하지 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민감한 더듬이를 지니고 자기 앞의 생에 직면하고자 할 때 생은 얼마간 고달프지만 또한 얼마나 찬란해지는가.”(198쪽)


내 앞의 생으로 오는 것들은 언제나 절박한 호흡으로 온다.” 아, 절창이다! 나는 이 한 문장 앞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영혼을 담그고, 아니 맡기고 머물렀다. 슬프도록 아름답다. 아름다이 슬프다. 이 절박한 호흡에 온 생명이 실려 있고 온 우주가 안겨 있지 않은가.


중생의 공포, 무지, 탐욕이 절박함을 몰고 온다, 왜곡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근본은 바로 이 절박함이다. 절박함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최고의 예의다. 절박함에서 놓여나는 일을 깨침이라, 열반이라 하지 마라. 그런 깨침, 그런 열반이라면 사양 억만 제곱이다. 그렇게 성취된 부처라면 단칼에 베어버릴 일이다.


절박함으로 “자기 앞의 생에 직면하고자 할 때 생은 얼마간 고달프지만 또한 얼마나 찬란해지는가.” 그렇다. 아니다. 고달프기에 찬란하다. 그러므로 더 고달프고 덜 찬란하더라도 인간인 한 절박한 호흡으로 자기 앞의 생에 직면해야 한다. 직면은 ‘여기’ 문제다. ‘저기’ 답, 아니다. 이 절박한 직면에 나 부끄러운 헌사 하나 바친다.


때로 절박함이

아무런 껴울림 없어

홀로 날숨으로

스러지는 삶 있으나

외로워하지 마라

어딘가

그 날숨 제 들숨으로 받아

일어서는 삶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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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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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대 앞에 앉은 사람들은 개개인이 모두 하나씩의 고유한 세계다. 화장대 앞에서 우리 모두가 가장 긍정적인 의미에서 자기만족적이었으면 좋겠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다. 혹자는 남성들이 점점 여성화되어 간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들은 아직도 더 많이, 적극적으로 여성스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과잉 축적되어온 남성성은 우리 모두를 얼마나 힘들게 해왔던가. 경쟁과 정복과 힘의 숭배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기도가 날마다 멀리까지 번져갔으면 좋겠다. 더 섬세하고 더 나지막하게, 경쟁이 아니라 연대를, 힘에 의한 배타적 지배가 아니라 공존과 포용과 아름다움을 꿈꾸는 세계가 날마다 넓어졌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화장대에 앉아서 자유분방하게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제의들이 날마다 넘쳤으면 좋겠다. 하나의 성 정체성으로 규정받아온 화장대가 양성구유였으면 좋겠고 개별자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화장대들이 일상이라는 꽃밭에 날마다 가득했으면 좋겠다.”(187-188쪽)


파르라니 면도한 뒤 날카롭고 강한 향기 풍기는 남성용 스킨로션을 얼굴에 바르고 손바닥으로 경쾌하게 두드리던 아버지 모습이 알 수 없는 부러움으로 쌓여가던 어린 시절의 기억. 도시 사내아이라면 누구한테나 있는 영상이지 싶다. 자라서 내 손으로 그 ‘아버지 화장품’을 사서 바르던 첫 날의 감회도 새롭고....... 그런데 느지막이 결혼하고 나서 얼마 뒤 나는 더 이상 남성용 화장품을 쓰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남성용 화장품을 무심코 사다주던 아내가 어느 날 우연히 내 피부를 살펴보더니 대뜸 여성용 화장품을 권했다. 지금까지 나는 아내가 쓰는 여성용 화장품을 같이 쓴다. 아내는 늘 내게 이것저것 다양한 피부 미용 방법과 화장품을 권한다. 나는 그 가운데 간단한 두세 가지 정도만 쓴다. 물론 여성적 방식으로. 20년 동안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제는 오히려 남성용 화장품 냄새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화장을 아내처럼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겨 정중히(!) 대하지 못 한 게 사실이다. 아마도 화장은 여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인습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찬찬히 아내와 내가 함께 쓰는 화장대를 살펴보았다. 내가 썼다고 하기에는 내 손 탄 흔적이 엷다. 화장이 참으로 “자유분방하게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제의”일진대 바야흐로 제. 의. 로서 내 삶에 자리 매겨야 할 때 아닐까.

 

아내와 나의 화장대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확실히 여느 남성에 비해 여성성이 농후하다. 지금 장년의 끄트머리에서 구태여 이 화장 문제를 내가 진지하게 사유하는 까닭은 醫者로서 내가 행하는 치유가 참으로 양성구유적인 것이 되려면 의학과 인문사회학적 지평을 넘어 예술적 차원, 즉 아름다움의 경지가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장대 앞에 앉아 외연의 화장도 곡진하게, 내면의 사유도 간절하게,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은 필경 기품 있는 쾌락을 일으키는 것이니 화장대의 제의는 무엇보다 신나는 놀이가 될 터이다. 그 놀이는 곧 내 치유의 본질로 흘러들 것이다. 치유 행위 자체도 놀이고 치유 결과도 놀이다. 일과 놀이를 분리하는 엄숙주의자는 놀이를 건성건성 하는 무엇이라 업신여기지만 놀이야말로 순수 몰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순수 몰입의 놀이가 몰고 오는 순도 높은 쾌락은 마침내 거룩함에 가 닿고야 만다. 릴라(lîla)다. 다 이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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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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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은....... 버려지는 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는 것을 ‘담는’ 통이라는 이율배반을 지니고 태어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쓰레기통에는 부정된 것들을 긍정하는 자의 힘이 있다. 버려지는 것들을 보듬어 안는 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당당히 수용한 자가 보여주는 적극적인 긍정의 세계. 그 힘은 명예나 부, 권력, 공명심 등과 거리가 멀지만 그것들보다 힘이 세다. 더 근원적이다....... 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며 진지한 쾌락주의자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자기애를 실천할 줄 안다.”(169쪽)


단도직입으로 말하거니와, 쓰레기통을 그린 이 말은, 김선우가 빚어낸 수많은 말의 집장태(集藏態)다. 살아 있는 날 것의 몸과 마음 냄새를 맡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 말에 전율했을 거다. 뭐, 그가 쓴 어휘는 누구나 다 아는, 그저 그런 거다. 이율배반, 부정, 긍정, 근원, 현실주의, 쾌락주의, 행복, 자기애....... 그러나 말이란 드러내진 어휘가 아니다. 그 연결도 아니다. 그 의미도 아니다. 말은, 어휘와 연결과 의미, 사이의 허공, 바로 그것이다. 허공을 흐르는 김선우의 그 말을 건져본다. 일심(一心). 화쟁(和諍). 무애(無碍). 이내 떠오르는 무조건의 그 이름, 원효! 그렇다. 쓰레기통 원효.


쓰레기통은 냄새다. 형언하기 어려운 혼돈....... 죽음과 삶이 뒤엉켜 춤추는 저 도저한 가장자리 냄새 말이다. 비릿하고 시큰하고 짜고 쓰고 들척지근하고 매캐하고 퀴퀴하고 곰곰하고 지리고 텁텁하고 아리고 니글거리는....... 가장자리의 혼향(魂香)들! 생명이 다해 주검으로 고여 들고, 주검에서 생명이 꼬물거리는 불가사의한 냄새다. 이 역한 진창에서 피워내는 연꽃 한 송이, 그 연꽃 중의 연꽃, 분황, 원효다. 원효란 말 한 마디도 쓰지 않고 길어낸, 아니 쓰레기통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묘사하는 것만으로 진실의 고갱이를 포착한 김선우의 생각 힘은 가히 한 소식 전한다 할만하다.


김선우가 전한 소식의 요체는 뭔가. “부정된 것들을 긍정하는....... 근원적....... 현실주의....... 쾌락주의”다. 빠르게 훑으면 이 말엔 별 게 없다. 찬찬히 저어 보면 낭랑-흐림, 출렁-고요, 촐삭-거룩이 담겨 있다. 모순의 공존, 역설의 회통이 가라앉아 있다. 요즘 사람들은 뭐든 빠르게 훑는다. 그래서 빠지는 함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긍정주의다. 김선우의 이 말도 빠르게 훑으면 마치 긍정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오해를 막기 위해 나는 위 인용문 첫머리에서 낙관주의라는 단어를 뺐다. 문맥을 살피면 이율배반이란 단어가 끌개 되어 긍정주의에 빠지지 않고 대칭성이 유지된다.


긍정주의란 무엇인가. 저 「시크릿」이란 책에 그려져 있듯, 否定적인 것은 버리고 긍정적인 것만 부여잡아라, 간절하게 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니 믿고 나아가라, 뭐 이런 이야기다. 한 마디로 초일극집중구조 신앙을 세속화한 교설이다. 그러나 이것은 삿된 길이다. 세계의 진실, 저 대칭구조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것을 버리면 안 된다. “부정된 것들을 긍정하는....... 근원적” 자세가 바른 길이다. 참 긍정은 부정을 기꺼이 껴안는 것이다. 부정을 껴안은 긍정은 긍정-부정의 이분법을 깨뜨린다. 이분법 깨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바로 김선우의 “현실주의”다.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을 깨뜨리면 세계는, 나는 긍정과 부정의 역동적 가장자리 어디엔가 자유롭게 노니는 확률론적 不定(uncertainty)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게 김선우의 “쾌락주의”다. 세계는 궁극적으로 놀이다. 생명은 궁극적으로 놀이다. 놀이는 결국 쾌락이다. 이 도저한 원형질 쾌락을 열반이다, 극락이다, 구원이다, 천국이다....... 한 것일 뿐이다. 원효는 이를 무애춤으로 구현했다. 무애춤은, 적어도 김선우 관점에서는, 쓰레기통 춤이다. 아니 쓰레기통이다. 김선우 쓰레기통은 긍정과 부정, 선과 악, 나와 너의 경계를 가로질러 번져가는 自利利他의 운동이다.


자리이타 운동의 개념 내포에는 쓰레기가 없다. 타자가 거대한 쓰레기로 변한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 사유와 문명의 체계로 무장되었기 때문이다. 탐욕의 체계에서 타자는 다만 소비 대상일 뿐이다. 이런 소비에는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따른다. 그중 가장 참담한 쓰레기가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다른 생명으로 자기 생명을 유지하면서 인간이 먹는 것에 경외심을 지니지 않으므로 다른 인간 생명에게도, 음식으로 삼는 생명에게도 쉽게 부정의 평가를 내리고 버리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제 문득 김선우의 쓰레기통 앞에 앉아 김선우의 두려움, 김선우의 질문을 깊이 음미해볼 일이다.


너무도 난폭하게 회의 없이 던져지곤 하는 음식물 쓰레기라는 말 앞에서, 넘쳐나는 식탁의 풍요와 쓰레기통 사이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이 몇 십조 원의 돈 낭비라는 돈의 수치로 환산되어야 아, 그렇구나, 자각하는 세태 속에서, 지구의 한쪽에서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물이 천문학적 수치에 육박할 때 한 끼니의 밥조차 얻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도대체 우리가 구해야 할 용서가 어디까지일지 두려워진다. 지금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쓰레기란 뭐지? 자기 몸속에 받아 안은 것들을 연민하며 누군가 중얼거린다.”(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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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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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봄 술이 제격이다. 내게는 그렇다....... 좋은 한낮에 꽃나무 아래서 마시는 낮술도 봄이라야 제격이다.”(161쪽)


내가 낮술을 시작한 것은 대학 일학년 봄이었다. 골초에 모주꾼인 기숙사 식당 아주머니 덕분이다. 어머니뻘인 그 평양 아주머니는 자궁암 말기 선고를 받자 인생을 포기하고 술 담배를 배웠는데 의사가 제시한 시한이 지나도 쭉 살고 있기에 병원 가보니 종양이 없어졌더란다. 술 담배가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인 셈.


나로 말하면 ‘술’ 소리만 들어도 잠자다가 팬티 바람에 벌떡 일어날 만큼 이미 유명 짜한 꼬맹이 모주꾼이었다. 술친구를 한눈에 알아 본 아주머니는 점심 식사 준비할 때 안주꺼리가 되는 게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주방 한 가운데 단출한 주안상(?)을 마련하고 영락없이 모자지간 같은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곤 했다.


그 봄에 시작된 낮술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아니 확장되어 요즘은 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술을 한다. 술을 마신다기보다, 요즘 말로 ‘애정하는’ 나를 보고 아내가 묻는다. 당신에게 술은 뭔가? 내가 단호히 답한다. 엄마지. 아내가 나지막이 한숨을 쉰다. 모자지간 생이별시키면 벌 받겠네.......


그 동안 이렇게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흘러나간 술은 풀장 하나는 족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빨간 병뚜껑 진로 소주에서 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 맥캘런까지 온갖 종류의 술이 지나갔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마신 것은 물론 소주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어루만지는 술은 단연 막걸리다.


죽음과 한두 뼘 거리에 있는 어르신들의 통증과 하루 내 있다가, 마지막 두어 시간 우울, 불안, 강박, 편집.......각종 마음 아픈 이들과 상담하고 나면 온 영혼이 갈증에 휩싸인다. 저녁 식사 시작하기 전, 잔 가득 술을 붓고 벌컥벌컥 소리 내면서 천천히 끝까지 마시는 동안  갈증은 서서히 떠난다.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술이 막걸리다.


우리 세대의 막걸리 추억은 양은주전자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막걸리 받아오라 하시면 으레 빈 양은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으로 나서기 마련이다. 여기서 끝나면 추억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꼴깍거리며 도둑 술을 마셔야 추억이 된다. 그러고 보면 최초의 막걸리 잔은 주전자였다!


막걸리 잔으로는 막사발이 제격이랄 수도 있지만 요즘은 오히려 양은 양재기가 갑인 듯하다. 하지만 뭐 국 대접도 좋고 냉면 그릇도 좋다. 내가 집에서 마실 때 쓰는 잔은 나무로 만든 작은 국 대접이다. 국 대접이라지만 그것은 국은 물론 숭늉, 물김치, 식혜, 그리고 특히 막걸리 담기에 두루 편하다. 내겐 이 잔이 최고의 잔이다. 

 

 

 

나는 이 잔을 볼 때마다 시 한 수를 떠올린다.


배는 뜨기 위해

제 속을 다 파낸다

너는 뜨기 위해

속을 다 파내 본 적이 있는가

변명은 하지 마라

운이 있다고 하나

그건

준비된 자의 덤일 뿐이다


박순길의 <준비>


내 막걸리 잔인 이 작은 국 대접은, 내 눈에, 뜨기 위해 제 속을 파낸 배로 보인다. 속 파낸 자리에 사람 태운 배가 강을 건너가는 일은 술을 가득 채운 잔이 사람 마음을 달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비우는 것은 어차피 채움의 바깥 면이다. 배든 잔이든 빈 공간은 또 다른 즐거움을 창조하기 위한 것일 터이므로.


내가 속 파낸 배에 막걸리를 가득 따를 때, 벌컥벌컥 소리 내어 마실 때, 행복한 음감(飮感) 사라지는 경계 무렵에 김치 한 젓가락 집을 때, 문득 김선우의 궁금증이 떠오른다. 그 궁금증으로“감각의 기원”을 묻는다, “잔 하나가 구현해가는 탐미의 방식”을 들여다본다.


자기 마음에 꼭 드는 작은 잔 하나씩을 가지자. 자기의 잔을 지니고 꽃나무 아래로 가자. 꽃나무 아래 잔과 독대하며 감각의 기원을 물어보자. 술이나 차를 채우거나 꽃잎을 받으면서 오종종한 작은 잔 하나가 구현해가는 탐미의 방식을 들여다보자. 산다는 것이, 환장할, 봄에, 그 정도는 탐하며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163쪽)


막걸리 아련한 흐름이 몸 한 바퀴 돌 즈음 “산다는 것이, 환장할, 봄에, 그 정도는 탐하며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너그러움으로 누군가 초대하려고 손 전화를 집어 든다. 문자를 두세 사람에게 보낸다. 답신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 는적는적 탐하는 시간 뒤에 무엇이 서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날이 저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한 잔 해야지

붉은 얼굴로 나서고 싶다

바람을 피하면 또 바람

모래를 퍼내면 또 모래

앞이 막히면 또 한 잔 해야지

타는 눈으로 나아가고 싶다

목마른 가슴은 아직 우리들의 것

어둠이 내리면 어둠으로 맞서고

노여울 때는 하늘을 보고 걸었다


이시영의 <바람이 불면 >

 

다시 잔 가득히 술을 따른다. 삼일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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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의 순 우리말을 아는가? ^^ ‘개짐’이라고 한다. 참으로 예쁜 말이다. 본디 옛 우리 여성들이 월경을 겪을 때, ‘몸 가지다’라고 표현한 데서 온 것이다. 그러면 몸을 가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기에 쓴 재치 넘치는 반어법일 수도 있다. 월경 기간 동안 남자들이 얼씬거리지 않으니 그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월경 현상이 없을 때의 ‘아이 가지다’라는 상황과 대칭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여성이 자신의 몸을 각별하게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묘사임에는 틀림없다.


이 알아차림에 터 잡아 월경에 대한 생각을 돋을새김 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월경은 단지 자궁에서 흘러나온 불필요해진 핏덩어리가 아니다....... 여성 성기의 하트와 자궁의 하트와 심장의 하트, 이 여러 개의 심장이 뿜어내는 생명력의 에너지는 겹치고 연결되면서 서로를 격려한다. 여러 개의 심장이 몸의 중심에서 피워낸 월경이라는 물질적인 증후를 긍정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불완전해진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 겹쳐진 심연의 핏방울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141-142쪽)

 

라고 한, 김선우의 이 미학적이면서도 의학적인 지적이 우리 삶의 완전성을 위하여 월경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을 확보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경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에 따르면 일대 전복(顚覆)이 일어난다. 월경은 임신의 실패가 아니다. 임신은 초경에서 시작하여 완경으로 끝나는, 월경이라는 저 장대한 역사의 부분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월경-임신-출산-육아-완경의 기나긴 과정은 여성의 한평생을 쥐락펴락하는 파동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에 터 잡아 빚어낸 의학이 산부인과의학이란 이름으로 지엽에 자리 잡은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다만 여성에게 일어나고 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강용원의「안녕, 우울증」122쪽)


따라서, 여기서, 그쳐서, 는 안 된다.


월경에 대한 사유는 정치(精緻)해야 한다. 정치 경제 문화의 구심에 여성을 들여놓기를 거부해온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 온갖 오해와 무지로 범벅된 채 오랜 세월 배제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월경 중의 여성은 불결한 존재로 취급되어 신성한 장소에 접근이 금지되었고....... 남성 중심의 의학적 관점은 월경을 손실과 실패의 경험으로 내면화시켜 오곤 했다....... 월경의 주체인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월경을 긍정하지 못하도록 내면화되기 일쑤였고....... 아직도 월경을 더럽다, 귀찮다, 소모적이다, 원죄다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흔하다.”(142-143쪽)


월경의 일부 사건, 임신으로 빚어진 인간의 진실을 정치(精緻)하게 들여다보면 일대 혁파(革罷)가 일어난다. 여성은 결핍된 성이 아니다. 남성이 부가된 성이다.


세상의 반이 남성이지만, 그 남성 모두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양적으로는 1대1이지만 질적으로는 1대1이 아닙니다. 본디 모든 성은 여성이고, 안드로겐 세례를 받으면 남성이란 성이 부가됩니다.”(강용원의「안녕, 우울증」120쪽)


부가는 덤이다. 없어도 되는데 있으면 즐거우니까 보태는 거다. 물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여성이 창조한 바고, 월경이 빚은 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벼락 맞은 듯, 이 진실에 화들짝 깨어나야 할 존재가, 바로 남성 아닌가. 한 개인으로서는 죽는 순간까지, 인류 전체로서는 멸망의 순간까지, 남성이 여성의 아들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늙어도, 아무리 성숙해도, 아무리 경지에 올라도, 어머니를 넘어서는, 그러므로 여성을 넘어서는 남성은 없는 게 천하 이치다.


그 천하 이치는 이 작디작은 한 마디 말에서 비롯한다.


엄마, 꽃이 비쳤어.”(145쪽)


이제 우리가, 특히 남성이 삶을 완전성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세울 깃발, 그 아래 풍경은 이렇다.


햇빛과 바람 속에서 환하게 나부끼는 희디흰 천들....... 오늘 광장에 나부끼는 생리대들 속에 내일은 월경혈이 선명하게 묻은 생리대가 나부껴도 좋겠고.......그 광장으로 구름이 목화 꽃처럼 내려앉아도 좋겠고 얼굴 맑은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월수(月水)를 받아 마시고 해탈에 이른 과거와 미래의 구도자들을 상상해도 좋으리라.......”(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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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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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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