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 제국한테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집안 어른들은 성씨 자부심이 강해 여러 경로를 통해 어린 시절 내게 그런 서사를 전해주곤 했다. 청소년기 한동안 거기 심취했던 기억이 새롭다. 진주강씨는 대성(大姓) 가운데 유일하게 고구려계다. 시조인 강이식 장군 고구려부터 고려로 이어지면서 무가(武家)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 대표 인물이 다름 아닌 인헌공 강감찬 장군이다. 그래서 강감찬 장군은 내 기억 지성소에 오래 굳게 머물러온 영웅이다.

 

비록 무지렁이 부역자에 지나지 않으나 내가 나라 걱정할 때 걷곤 하는 길이 바로 강감찬길이다. 집에서 나와 대부분 숲길을 걸어 낙성대-강감찬 생가터-로 간다. 묵념·기원을 올린 다음 안국사-친일 매국노 박정희가 지은 강감찬 사당- 경내 낙성대 삼층 석탑으로 향한다. 석탑 꼭대기 장식 부위는 왜놈이 훼손해 사라지고 없다. 게다가 박정희가 본디 낙성대에서 멋대로 여기다 옮겨놓았다. 아픈 역사를 되새긴 다음 돌아 나와 관악산으로 향한다.

 

낙성대에서 출발해 큰 산줄기 타고 관악 올라가는 첫 숲에다 나는 강감찬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린 강감찬이 우뚝 솟은 관악을 바라보며 영웅 기상을 키워갔을 그 숲을 천천히 걷는다; 앉아서 잔잔히 생각에 잠긴다; 풀과 나무, 그리고 버섯을 살피며 나아간다. 얼마 뒤에 곧장 올라가면 관악 큰 봉우리고 오른쪽으로 틀면 완만히 돌아 내려와 다시 낙성대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길을 따라 낙성대 건너편 또 다른 길에 가 닿기로 한다.

 

그 또 다른 길은 이순신길이다. 소년 이순신이 한양서 내려와 배를 타고 노량진에 닿은 다음 살피재 넘고 봉천천 건너 선영-여기를 나는 이순신숲이라 부른다-에 이르러 제사 올리는 광경을 상상한다; 묘역에서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삼층 석탑이 인헌공 강감찬 장군을 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 소년 이순신은 돌아가는 길 낙성대에 들른다; 구국 영웅 기상을 품어 키운다. 두 영웅이 걸었던 길을 이어 걸으며 나는 자주·민주를 빌어마지않는다.


충부공 이순신 5대조 정정공 이 변 부부 묘-낙성대 맞은편 나지막한 산에 있다

 

요즘처럼 나라가 요동할 때는 내 삶도 따라 요동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발길은 인간사를 끌고 들어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도시 골목으로 나오는 발길은 숲 생기를 안고 나올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아프고 슬프다. 얼마만큼만이라도 성공 거둔 사람은 주파수 높은 소리를 내지만 내가 쓰는 글 쪼가리는 자루 뒤집어쓰고 눈 부라리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그래서 그런 글 쪼가리라도 증언으로 남기기 위해 강감찬길에서 이순신길까지 걷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법 버러지 준동에 이어 국짐 쌍·권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당내 민주주의 탈을 쓴 조직력으로 김문수가 살아나긴 했으나 다시 문제는 이제부터다. 여전히 내란은 진행 중이다. 바람 불고 비 오는 광장으로 나는 간다. 연속 스물네 번째 발길이다. 장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도산 허리께에서 들리는 외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악에 받친 한 사람 소리가 계속 반복해서 들려온다. 그리고 듬성듬성 태극기를 손에 들거나 어깨에 두른 사람이 숲길을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촛불행동 집회 장소에 숭미·모일 매판 떼거지가 우글거린다. ‘우리 편은 어딨지?

 

까만 백 팩에 커다란 노란 리본을 매단 채 나는 그들을 가로질러 서초역 쪽으로 내려간다. 왜 공지가 없지? 스마트폰 열어보니 황급히 장소 변경한 흔적이 뜬다. 대법원 앞이라는 상징성을 빼앗으려 저 성조기 부대가 경찰과 짠 듯하다. ‘우리 편은 사랑의교회 앞으로 쫓겨났다.


 

하기는 사랑의교회 앞도 나쁘지 않다. 사랑의교회나 사랑제일교회나 큰 차이가 없을 테니 말이다: 사랑제일교회나 대법원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으니 말이다. 개신교 판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대법관 호명할 때 덧붙일 후렴 인명 더 생겨서 신명 아연 비상한다.

 

비바람 맞으며 있다가 조금 먼저 나온다. 찬 빗물이 모자와 옷을 뚫고 살갗에 닿기 시작해서다. 저녁을 먹으려 식당으로 들어간다. 20대 젊은이 넷이 술을 마시면서 시종일관 나누는 이야기는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미셀러니다. 나이 든 저들 손에 들린 성조기가 환상으로 나타난다.

 

강하게 머리를 젓는다: 설마. 설마가 얼마나 편안하게 우리 뒤통수를 후려쳐 왔던가. 인간이라면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을 언제 어떻게 벌여도 죽기 살기 지지하는 극우가 국민 1/3 이상인 해괴한 나라에서 설마를 또 입에 올릴 수 없다. 소걸음이더라도 범 눈을 뜨고 나아갈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송경근(청주지방법원 판사) 님 글을 전재한다 



“대법원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대법관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재판을 통해 정치를 한다.” 등의 국민적 비판이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DJ 정치자금 수사와 같이 선거철이 되면 진행 중이던 수사나 재판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중단했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사법 불신사태를 누가 왜 일으키고 있는지, 사상 초유의 이례적이고 무리한 절차진행이 가져온 이 사태를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선거 후 사법부가 입을 타격이 수습 가능할 것인지 그저 걱정될 뿐입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고, 오이 밭에서 신발 고쳐 신지 말라.”, “결론과 절차가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99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법관생활 30여년 동안 참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워낙 자질이 부족한 저로서는 이를 제대로 지키며 살지 못했지만, 대법원에 계신 ‘저스티스’들께서는 적어도 저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믿고 그 판결을 존중하였습니다.

6만 쪽이 넘는다는 방대한 기록을 이례적으로 항소심 선고 후 불과 2일 만에 정리하여 대법원으로 송부하고, 피고인의 답변서가 제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날인 4. 22. 소부 배당 후 즉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당일 오후 1차 합의기일을 갖고, 이틀 후인 4. 24일 2차 합의기일을 갖은 후 1주일 후인 5. 1.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30여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초고속 절차 진행이더군요.

1, 2심이 정반대의 판결을 선고하였고,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사안을 말입니다. 게다가 보도되는 판결이유를 살펴보니 사실관계 확정이 결론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라 사건기록도 열심히 보아야 했을 사건이더군요. 1, 2심의 결론이 다르고 그 심리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실관계 확정 및 법리 적용이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아닌지요.

하기야 6만 쪽 정도는 한 나절이면 통독하여 즉시 결론을 내릴 수 있고, 피고인의 마음 속 구석구석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관심법까지, 그야말로 신통방통하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신 훌륭한 분들만 모이셨을 것이니...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우둔한 제 기준에만 맞춘 기우인가 봅니다.

대법원이 대선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이재명 대표의 사건을 심리할 때부터 저는 “대법원이 왜 정치를 한다는 국민적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저런 무리한 행동을 할까”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주심대법관이 불과 몇 개월 전 유사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판결이 무죄 선고의 법리적 근거로 삼은 판결이 바로 위 판결이며, 파기환송 하더라도 절차와 시간상 대선 전에 확정판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안이므로, 상고기각을 하려나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경우 “이재명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날개 달아준 후 덕 보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될 것이고, 설령 파기환송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선거에 영향을 주어 이재명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됨으로써,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든 “대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행위를 했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법원판결의 배경을 설명하는 보도자료, 차라리 내지 않은 것만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느닷없이 적절한 비교대상도 아닌 미국의 부시-고어 재검표 판결을 끌어오질 않나, 1, 2심의 결론이 달리나온 것을 두고 “혼란과 사법불신의 강도가 유례 없어 신속한 절차진행이 필요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다수의 평범하고 선량한 유권자들이 정말 그렇게 인식하고 있던가요. 보도자료를 작성한 분은 평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언론매체를 보고 들은 것인지요.

12. 3. 친위쿠데타 세력들은, 권력의 실정과 전횡을 비판․견제하는 야당과의 반목 상황을 들어 “국가적․사회적 혼란과 대립 양상이 극에 달해 군을 동원한 질서 유지가 필요했다”고 했었지요. 저는 그날 밤 비상계엄 발령 사실조차 모른 채 재판부 구성원들과 함께 술을 꽤 마시고도 늦은 시간 아주 안전하게 귀가했습니다.

민사사건이 아닌 형사사건, 그것도 과실범이 아닌 고의범 사건에서, 피고인이 어떤 사실을 말 한 적이 없거나(골프 발언) 자신이 느낀 대로 또는 이를 과장해서 말했더라도(국토부의 협박 발언) “당시 상황과 발언의 전체적 맥락을 토대로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이해되는지 살펴야 한다”는 이른바 ‘유권자의 관점’을 내세워 ‘구체적인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이 경우 피고인은 당시 압박을 느껴 협박이라고 말했더라도, 법원이 사후에 유권자의 시각에서 판단한 결과 협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고의범인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되는 것이지요.)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나, “기록도 보지 못한 사람이 뭘 알고 그런 말을 하냐”고 할 것 같아 굳이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마음 속으로 “언어의 내적 의미가 아닌 사용맥락을 중요시한 천재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무덤에서 깜짝 놀라 뛰쳐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해봅니다.

그동안 우리 사법부의 행정책임자들이 위헌․불법적인 비상계엄 사태 때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상황이 너무나 엄중한지라 사법부를 위해 참았습니다. 그 직후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그에 관한 질의나 문제 제기조차 전혀 없었다는 것에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참았습니다. 과거 사법행정권 남용행위 등에 적극 가담하거나 방조하고 수구 언론들과 소통하면서 그 청산 노력을 방해하던 사람들이 대법원, 법원행정처, 각급 법원의 책임자로 복귀하는 것을 보면서도, 인사권자는 대법원장이고 종전의 실수를 거울삼아 더 잘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사법부의 발전을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종전에 사법행정권 남용, 권력과의 거래 의혹 등에 문제를 제기하던 법관들에게 ‘정치판사’, ‘이념 편향적 판사’라고 그렇게도 비판하던 분들, 지금은 왜 이리 조용하신가요. 과연 무엇이 법원을 해치는 행위인지요. 법을 전공하고 그것으로 엘리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군을 동원해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러한 세력들을 말도 안 되는 궤변과 허위사실로 변호함으로써 법정을 희화화하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가진 재판권은 공부 잘 하고 시험 잘 보았다고 받은 포상이 아닙니다. 권력자가 준 것도, 변호사가 준 것도 아닙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 세상에 잘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 ‘공부’ 그것도 ‘법률공부’ 하나 잘 해서 법관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 인문학적 소양, 공직자로서의 자세 등 법률지식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시민적 소양은 검증된 바 없습니다. 평범한 국민들 중에는 위와 같은 능력에 있어 우리 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만 모를 뿐입니다. 국민은 그저 지배대상이, 재판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임명한 주인입니다. 결국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