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느티나무 가지 떨어지듯 가을이 들이닥칠 때 내 마음에도 냉기가 세차게 밀려왔다. 환자 예닐곱이 잇달아, 온다고 한 또는 와야 할 날을 넘기고도 일절 소식이 없다. 이 사건이 몰아치는 힘으로 마음에 큰 금을 내선지 여간 신산하지 않다.

 

의료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치료( 효과)와 관련해 보이는 환자 반응이다. 대놓고 항의하면 차라리 낫다. 답변할 기회가 있으니 말이다. 잘 오다가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끊으면 오만 상상을 다 하게 된다. 왜 오지 않느냐 물어보기도,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기도 뭣하다. 우울증 병력을 지닌 나 같은 사람은 수치심이 쉽게 도진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어? 하고 보면 이미 넘어져 있다. 물론 한창 아플 때처럼 속수무책 당하지는 않지만, 곧장 일어서려면 정색하고 마주해야 한다. 다른 사람, 인간 사회, , 그리고 물에 주의하느라 소홀했던 내 마음에 빙의해야 한다.

 

내 마음에 빙의하는 일은 내 마음을 극진히, 그러니까 거룩하게 모셔 부둥키는 일이다; 큰 눈길로 곱촘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적요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아파서 싱그러운 냄새를 맡는 일이다. 다디단 쓴맛에 혀를 적시는 일이다; 바깥 발을 거두지 않은 채 안에 지긋이 서는 일이다. 이 일 뺀 살가움을 희생이라 한다.

 

건강하고 당당한 희생은 장엄을 모시는 숭고지만, 여기 내 마음 빙의를 봉인한 희생은 희생양일 뿐이다. 남남 사이, 연인 사이, 가족 사이, 이웃 사이, 시민과 국가 사이에도 희생양은 언제나 존재한다. 희생양을 없애는 과정이 팡이실이다.

 

글 읽기와 쓰기를 모두 중단한 채 내 마음에 빙의하기로 한 달 여를 산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야 있으랴만, 뭔 일 있나, 궁금해할 사람을 위해 잠시 끼적인다. 바깥 향한 문을 죄다 걸어 잠그고 내 마음에 빙의하는 일도 독이기는 마찬가지여서다. 가장 좋아하는 9, 이어 오는 10월 상달을 이렇게 보내기는 또 생전 처음이다.

 

 

<2>

 

내가 어렸을 때 가장 두려워한 일은 다른 사람 집 대문 두드리기였다. 그 두려움은 60년 지난 오늘까지 이어져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기가 그렇게 망설여질 수가 없다. 대체 이 병적 심리는 어떤 본성을 지닐까, 늘 궁금했지만 여태까지는 잠깐씩 들여다보다가 그만두곤 했다. 아마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듯하다. 최근 연이어 겪은 사건 따라 내 마음에 빙의하다가 홀연히 이 기억과 마주쳤다. 필경 분명한 연관이 있을 터, 되작거리기로 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 일이다. 민 아무개라는 벗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하고 일요일 아침 동소문동 산동네를 출발해 걸어서 삼양동 산동네 그의 집에 도착했다. 문제는 대문 두드리기였다. 물론 소리쳐 부르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두 시간 이상 주위를 서성거리기만 했다. 속은 타들어 가고 그럴수록 오줌은 마렵고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몰리자 나는 울면서 뛰어 내려왔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없다. 물론 이런 일은 한두 번에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갔을 무렵이었다. 중학교 입시 문제를 상담하러 아버지는 전문가(?)였던 친구댁으로 나를 보냈다. 나는 역시 대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조바심만 내며 동동거렸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 친구분이 외출하러 나서다가 나를 발견하셨다. 나는 이제 막 도착했다고 둘러댔다. 친구분은 내일 저녁 일찍 다시 오라 하시곤 이내 갈 길을 가셨다. 나는 아버지께 해야 할 말을 찾으려 낑낑대면서 어둠 쌓여 가는 산동네 골목길을 돌고 또 돌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담임 선생님과 함께 급우네 집 가정 방문하기로 돼있었다. 선생님 댁에 들러서 모시고 가야 하는데 댁 앞에서 역시 대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 뺑뺑 돌기만 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선생님이 혼자라도 가실 요량을 나오시다 나를 발견하셨다. 나는 배가 아파서 그랬다고 둘러댔다. 맙소사! 선생님께서는 집에서 활명수 한 병을 가지고 나오셨다. 나는 애먼 활명수나 들이켰다.

 

이런 일은 고등학교 때도 일어났고, 대학 때도 일어났고, 사회생활 할 때도 일어났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감히, 능히, 차마 그럴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한의학 공부하겠다며 수능 준비할 때였다. 벌어 놓은 돈이 있을 리 없었던 나는 새벽에 우유배달 해서 생계비를 벌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맡았다. 월말이면 수금에 나섰다. 수백 집 대문을 두드려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처음 몇 번은 쭈뼛쭈뼛 망설였지만, 어린 딸 눈망울을 떠올리는 찰나, 감정보다 먼저 손이 움직였다. 그렇게 1년 반을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모질고 끈질겼던 병리 증상이 사라졌다. 물론 잠복이었다. 모름지기 죽어서도 근절되지는 않으리라. 곰곰 생각해 본다: 이 압도적인 망설임 밑바닥에는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분명히 단순한결정 장애는 아니다. 수치심과 공포가 작동하고 있을 테다.

 

수치심은 뭔가 잘못을 저지른 뒤 느끼는 떳떳지 못함 따위가 아니다. 윤리 넘어 존재에 가 닿는 정서다; 자기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자기부정 증후군 핵심 정서다. 대개 시생대 버림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방어기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을 버림받을 만한 존재로 규정해, 버린 자를 정당화해야 그에 기대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이래서 요구도 거절도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 집 대문 두드리기, 이 얼마나 주제넘은 요구인가.

 

요구하지 못하는 또 다른 며리가 있다. 그 요구가 버림받았을 때 휘말렸던 공포를 환기하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이치로 따지면 수치심은 이해와 수용이고, 공포는 즉각적 정서 반응이니 공포가 먼저다. 무서워서 얼어붙으니, 손을 들어 대문 두드리는 일일랑은 당최 불가다. 공포는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예기 불안으로, 예기 불안은 범() 불안으로 번져 삶 전체를 집어삼킨다. 이 과정을 거쳐 대문 두드리지 못하던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전화를 잘 하지 못한다.

 

나는 unwanted baby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가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일찌감치 떠났고, 아버지는 10년을 거부하다가 10년만 같이 살고는 떠났다. 내 수치심과 공포는 여기서 발원했다. 이를 일러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존재론적 우울이라 했다. 내일모레 일흔인데 아직도 나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병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야 맞다. 최근, 이 진실을 일깨운 사건들과 마주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 마음에 빙의한다. ()!

 

 

<3>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치심 이전 공포와는 또 다른 방어기제가 하나 있다. 두드림 당하는 사람 정서를 극단으로 끌어들이는 투사다. 사실은 내 두려움인데 그걸 상대방에게 씌워주고 그런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서사화함으로써 실은 내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위장 논리다. 상대방이 실제 그런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상대방 몫이라는 진실보다 내 두려움에 대한 병적 반응이 먼저 작동한다. 공포(무서움)는 인지하지 못하는 몸-반응이라 가능하지 않지만, 두려움은 인지하는 마음-반응이라 다른 병적 대응이 가능하므로 겹이 다르다. 공포가 쌓아 올린 여러 겹 불안이 우울과 결합하면 난공불락이다.

 

, 봉인되었던 60여 년 전 기억이 틈 아닌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일일까, 아슴아슴한데 어느날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 시골집 나무 대문이 쾅쾅쾅! 요란한 소리를 낸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가족이거나 마을 사람 아닌 외지인 손길이 빚어내는 낯선 소리였다. 나는 아연 두려움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어서 덜컹덜컹! 한참이나 계속되는 문 흔드는 소리에 맞춰 심장도 덜컹거렸다. 며칠 뒤, 그가 간첩이었으며 읍내에서 잡혔다는 맹랑하고 기괴한 소문이 돌았다. 먼 훗날, 그가 박정희 쿠데타에 반대하다 빨갱이로 몰려 도망 다니던 민주인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병이 이미 내 몸에 각인된 다음이었다.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와 어쩌면 정반대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거칠고 세차게 문 닫히는, ! 소리 또한 내가 정말 정말 무서워해 온 대상이다. 그 즉시 땅이 꺼지고 내 몸이 빠져 내릴 것 같은 찰나적 파국 풍경이 가슴을 관통한다. 닫힌 문 안에 갇히든, 밖에 내동댕이쳐지든, 버려지긴 마찬가지인 상황에 대한 극한 공포다. 아버지와 열 계모가 수없이 내게 자행한 폭력이었다. 백미는 이랬다: 초등학교 3학년 혹한인 어느 밤이다. 라디오 드라마 듣던 중 웃음보가 터진 아들을 제지하다가 격분한 아버지가 아들을 발가벗겨 밖으로 내쫓는다. 방문이 쾅! 닫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떨던 나는 어느 한순간 의식이 휘리릭 사라지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대문 두드리기를 하지 못하는 일과 거세게 문 닫히는 소리를 무서워하는 일은 한 사건이 지닌 두 측면 진실을 반영한다. 열고자 내는 소리에 닫힌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마음 실재하고, 닫으며 내는 소리에 열고 싶은 비원이 얼어붙는 마음 실재가 어찌 본성상 따로일 수 있겠는가. 불면에 대한 특정 공포를 지닌 사람 침상을 지키는 동안, 의자로서 마주친 수치심과 공포를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나는 내가 아니라 나를 여기로 데려다준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지금 모습이 어떻든, 그가 빚어낼 삶은 옹글고 향 맑으리라는 축원을 띄운다. 나는 기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기적을 일상으로 만들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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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10월 26일 아침 이스라엘이 마침내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날 공격은 상당 기일 예상된 것으로 4주 전인 10월 1일 이란 측이 이스라엘 전역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가한 것에 대한 ‘보복’이다. 당시 이란의 공습은 사실 무단한 소행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국에 먼저 가한 공격에 대한 반격이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자국이 공격당했다는 것만 트집 잡아 대이란 공습을 진행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군사적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지난 10월 1일 이란의 대이스라엘 공격이 위력적으로 진행된 성공적 작전으로 평가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00대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했다고 하니 공격 규모가 작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습 직후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이스라엘 측이 이란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측은 ‘제한된 피해’만 봤다고 하고 있고, 많은 관측자도 이란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CIA 분석관 출신 래리 존슨은 한 팟캐스트 프로그램(Dialogue Works)에 나와서 공습 직후 이란인들이 올린 비디오로 판단할 때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은 전혀 위력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SNS에서 접한 한 비디오에서는 이란인 서너 명이 건물 옥상에서 테헤란을 공격하러 왔다는 이스라엘 폭격기가 어디 있는지 찾는 시늉을 하고 있다. 이번 공습을 이란인이 가소롭게 여기고 조롱한다는 것인 셈이다.

그렇다면 26일 공습의 결과는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가 그동안 경고해온 것과는 아주 다르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갈란트는 10월 1일의 이란 공습에 대한 반격을 예고하며 ‘치명적이고 정밀하며 놀라운’ 타격을 예고해왔다. 말 다르고 행동 다른 것일까,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격에서 그런 위협과는 딴판의 실행 성적을 낸 셈이다. 심지어 공습 하루 전 자국의 공격에 대한 반응을 자제해달라고 이란에 부탁했다는 설도 있다. 미국의 뉴스 웹사이트 악시오스가 그렇게 전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이 그동안 허풍깨나 떤 것은 실제로는 이란을 두려워함을 숨기려는 수작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이 허약했던 것은 공격 계획이 사전에 노출된 점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에서 어떤 세력이 공격 관련 정보를 1주일 전에 유출한 바람에 이스라엘은 공격 계획을 제대로 실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 내부에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수뇌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참수 작전’을 세웠던 모양인데, 그 위험성을 우려한 미국 내 세력이 이스라엘의 계획을 폭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스라엘의 참수 작전은 악명이 높다. 4월 1일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과 군 장성을 포함한 10여 명 제거, 7월 31일 테헤란에서 하마스 수장 하니예 살해, 9월 27일 레바논의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 암살, 10월 16일 하마스의 새 수장 야히야 신와르 사살 등 그동안 이스라엘이 제거한 이슬람권 ‘저항의 축’ 지도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스랄라의 후임 헤즈볼라 신임 사무총장이 된 하심 사피에딘도 3주 전에 이스라엘의 공습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나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등을 제거하려 기획한 모양이다. 이스라엘의 그런 위험한 계획을 막으려는 세력이 미국 안에 존재할 공산은 충분하다. 스위스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사에서 근무한 바 있고, 팔레스타인 갈등, 우크라이나전쟁 관련 유의미한 책들을 다수 저술한 자크 보에 따르면 자신이 현역 시절 만나본 미군 장교들 가운데 이스라엘군의 행태를 지지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를 용납하는 태도를 지닌 군인이 없기는 나토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런 점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게임을 역겨워하는 세력이 미국에 존재할 공산이 클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계획에 관한 정보를 유출했다면, 그것은 안하무인으로 이웃 나라를 공격하려는 이스라엘의 행태가 계속 묵인되면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경우 미국이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스라엘이 이란에 직접 공습을 가한 사실은 전대미문의 일에 해당한다.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었는데도 공격을 감행한 것은 그들의 확전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거리는 2,000킬로로 아주 멀다. 폭격기 등이 쉽게는 왕복할 수 없는 거리다. 이번 공격이 있기 전 미국이 이스라엘 측에 공중급유기를 보낸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이스라엘이 이번 공습에 과연 100대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했다면, 공중에서 대규모로 재급유를 받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점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병참 지원은 물론 위성 자료 제공 등 형태의 미군 대대적 참여가 있었다는 것, 이스라엘의 공격 계획을 폭로한 세력과는 별도로 미국은 여전히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것 등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뒤에는 미국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며, 따라서 이번 공격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대이란 도발은 쉽게 중단될 것 같지 않다.

이번 공습 이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는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한편으로 이란은 이번 공격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 했다는 말이 있고, 또 한편으로 공격이 워낙 미미했던 점 때문인지 보복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즉각적 확전은 없을지 몰라도 두 나라, 나아가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 사이의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전망은 희박하다. 이스라엘이 서아시아에서 국가로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역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리 네타냐후를 비롯해 이스라엘의 수뇌부는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 건설을 되뇌기까지 한다. 현재 이스라엘 영토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전체,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라크의 영토까지 점령하려는 것이 ‘대이스라엘’의 백일몽이다. 그런 허황한 야욕을 품고 있는 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학살을 중단하고 이웃 나라들과 평화를 회복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26일의 공습만 놓고 보면 이스라엘이 얼마 전까지의 확전 태도에서 벗어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전에 치명적이고 정밀하며 놀랄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선전한 공격치고는, 그리고 100대가 넘는 항공기를 동원한 공습치고는 이란에 준 타격이 그리 크지 않다. 어찌 보면 이스라엘은 이번에 공격 피해를 줄이려 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보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밝혀온 입장과는 크게 상치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지난번 공습에 대해 큰 철퇴를 가할 듯이 말해왔다. 네타냐후 총리의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 때문에도 이란과의 충돌을 격화시켜 미국의 참전을 획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이번 이란 공습은 꼬리 들고 상대에 험상궂게 덤벼들던 개가 정작 물 때는 힘을 쓰지 않은 꼴처럼 보이는 점이 없지 않다.

혹시 이스라엘은 이번 공습을 계기로 해서 행보를 바꾸려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만행으로 가자와 웨스트뱅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아이들 여성들 할 것 없이 무참하게 죽어 나가고 이제는 레바논에서도 대량 학살이 진행되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희망을 품는 것은 이스라엘의 건국이 서구 제국주의의 세계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19세기부터 계획되었다는 점,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에너지의 보고인 서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지배전략으로 이스라엘이 지역내 국가와 인민에 대한 불법과 만행, 학살을 자행해도 그에 대한 지원정책이 계속된다는 점,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서구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만만찮은 지정학적 기능과 역할을 한다는 점을 외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흐지부지하게 공격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전망은 낮다.

이스라엘이 서아시아에서 이란을 포함한 인근 국가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찾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그사이에 가자와 웨스트뱅크, 레바논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다는 점이다. 그래도 미국 안에 이스라엘의 안하무인 행동에 제동을 걸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이스라엘이 미국과 서방의 일방적 지원을 받아 온갖 폭력적 침략을 자행해도 가자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안사르 알라, 이라크의 민병대, 시리아, 이란 등 저항의 축이 건재하다는 것도 그러하다. 지금은 서아시아에서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무력을 써서 이웃 나라와 그 인민을 침략해 학살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그래도 이스라엘로 인해 가자와 레바논 등에서 희생자들이 계속 그것도 엄청나게 나온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아직은 막막하기만 해 보인다는 것, 그것이 정말 문제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으로 서아시아는 더욱 음울한 전운에 휩싸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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