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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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수많은 지용성 화학합성물에 의한 자궁 내 오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화학물질 다수는 산업영농, 특히 살충제 및 제초제와 긴밀히 관련이 있다.(19쪽)


  ·······많은 인공 화학물질들·······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23쪽)


  ·······산업영농과 산업적 출산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현상의 두 가지 면모라고 주장할 수조차 있다.(30쪽)


20세기 총아 산업영농과 산업적 출산이 포개지는 지점에 인공 화학물질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저자는 주로 산업영농 과정에서 유입되는 인공 화학물질이 자궁을 오염시키는 문제를 거론하지만 실은 산업적 출산 과정에서 유입되는 인공 화학물질이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산업영농 과정에서 인공 화학물질은 의도적으로 사람 몸에 유입되지 않으나 산업적 출산 과정에서는 치료라는 목적으로, 약이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사람 몸에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사람한테 뿌려지지 않는 살충제·제초제와 사람에게 투여되는 약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통념이 문제의식을 교란시킨 듯합니다. 과학의 이치로 볼 때 서양의·약학의 화학합성약물이 살충제·제초제와 다를 까닭은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런 인공 화학물질이 사람 몸에 들어가 어떤 좋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느냐는 것입니다.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폭넓은 함의를 지닙니다. 저자가 언급한 남성 생식기관 이상, 나아가 남성 태아에 가해지는 위협만이 아닙니다. 에스트로겐의 이상 변동은 필경 성조숙증의 원인일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트로겐의 변화 주기가 세로토닌 변화 주기와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이는 우울장애, 강박장애의 원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가 스스로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만든 인공 화학물질이 인류를 질병과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대체 어떤 어두운 힘이 인류를 이런 자기 파괴의 길로 이끌어왔을까요?


물론 지금 인류가 마주한 상황을 하나의 형식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의 구성과 운동이 비대칭의 대칭, 그러니까 대칭의 자발적 붕괴와 재건의 과정인 것은 언제든 어디서든 진실입니다. 진화와 발전의 어떤 “열광”인 실재가 분명히 있습니다. 타락과 퇴화의 어떤 “재앙”인 실재도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열광의 탐욕이 재앙에 대한 공포를 탈감시킴으로써 인류 전체를 어리석음의 무덤에 파묻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음은 파멸의 향도입니다. 파멸을 막으려면 어리석음을 자각해야만 합니다. 어리석음을 자각하려면 현실 전체를 있는 그대로 느껴야만 합니다. 현실 전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려면 인류 최후의 영성을 지녀야만 합니다. 그것은 겸공 謙恭입니다. 오직 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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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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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 전체가 일종의 ‘대각성’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갑작스런 각성을 가져오는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다. 시기가 결정적인 요인이다.(12쪽)


사실 구제역이 농업의 역사에서 한 전환점으로 남게 된 것은 주로 그것이 발생한 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광우병 시대에 나타났기 때문에 산업농 전체가 즉각적 파기 정책 쪽으로 간 것이 분명해졌다.·······광우병이 새로운 각성의 기초를 놓았고, 구제역이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14쪽)


  광우병이 인류의 건강에,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 생각할 때, 10년 넘는 세월 동안 광우병이 미디어에서 차지한 공간은 적절치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널리 퍼져 있는 불안이 새로운 각성을 위한 조건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갑작스런 각성은 산업영농에 보편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17쪽)


이명박 정권 때 우리사회는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광우병과 구제역 문제를 모두 겪었습니다. 거의 모든 구성원이 실로 엄청난 파장 속에 흔들리며 서 있었습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정부의 협잡과 시민의 저항이 맞부딪치면서 한 동안 이른바 ‘촛불정국’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권력은 토건 식 밀어붙이기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광우병 자체의 과학은 당최 설 자리가 없었고 빨갱이 사주에 따른 괴담으로 치부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사회·경제·심리적 타격을 입은 채 막을 내린 것입니다. 이런저런 사후 평가가 난무했지만 진실은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0-2011년 이 땅을 강타한 구제역 문제는 350만 마리의 ‘살殺처분’(손실액 3조)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또한 구제역 자체의 과학은 당최 설 자리가 없었고 부패한 권력과 안일한 관료의 원칙도 배려도 없는 저인망 식 살해·매장으로 서둘러 덮여져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과 관계자는 물론 언론의 호들갑스런 보도를 접한 일반 시민들까지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사회는 똑같이 반응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구제역 문제 때도 광우병 문제 때도 과학은 주변부에서 권력에 부역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생각깨나 지닌 사람들조차 이 문제들의 기저에 놓인 산업영농 자체를 ‘대각성’은커녕 그 어떤 새로운 각성의 대상으로도 숙고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우선순위에 놓지 못하고 외부에 기대는 식민지 지식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 삼든 않든 산업영농 문제는 이미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절체절명의 화두입니다.


조건이 형성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령 섭씨 영하 0도가 물이 어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조건만 갖추어진다고 해서 물이 어는 것은 아닙니다. g당 80칼로리의 열이 방출되어야만 합니다. 응고열입니다. 물론 반대의 상전이가 일어나려면 g당 80칼로리의 열을 흡수해야 합니다. 융해열입니다. 인간 사회로 말하자면 누군가 주체적인 열정으로 헌신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누군가에서 저와 그대는 예외일까요?


오늘 여기서 나 하나가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인류의 건강에,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위협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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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플랑크가 그의 《과학적 자서전》에서 했던 말은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적합하다. “새로운 과학적 진실은 그 진실에 반대한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진실의 빛을 보게 됨으로써가 아니라, 그러한 반대자들이 결국 죽고, 이 진실에 친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함으로써 승리를 거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이 새로운 젊은 세대의 손에 닿기를 희망한다.(11쪽)


다른 것도 아니고 “진실”에 반대한 사람을 설득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부조리합니다. 현실적으로도 무리입니다. 대체 무엇으로 진실에 반대한 사람을 설득하겠습니까. 진실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실에 반대한 사람들이 죽어야 해소되는 문제입니다. 인욕忍辱해야 하는 기다림의 문제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담담해서 더욱 비장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이 새로운 젊은 세대의 손에 닿기를 희망한다.


동시대에 대한 절망 또는 포기를 책으로 써야 하는 진실의 사람의 아픈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으로 치면 당장 진실이 승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진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권력과 돈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으니 당최 싸움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런 상황의 극한에 다다랐습니다. 성육신한 거짓이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2016년 9월 25일, 경찰이 발로 조종한 물대포 직사를 맞고 뇌출혈을 일으켜 317일째 생사를 넘나들던 백남기 선생이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경찰은 용역을 동원해 장례식장 포함 서울대병원을 통째로 틀어막았습니다. 진실에 반대하기 위해서임은 물론입니다. 시민들은 밤새 시신을 지켜 저들의 침탈을 막았습니다. 법원은 부검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검찰이, 권력의 핵심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경험으로 미루어 이번에도 진실에 반대한 저들이 설득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이 일을 까맣게 모르(도록 관리되)는 사람들의 딴청과 침묵은 시대를 더욱 어둡게 합니다. 수천의 경찰·용역이 연건동, 원남동, 명륜동, 동숭동, 이화동, 혜화동 일대를 들쑤시고 다니는데 거리는 평온에 잠겨 있고 행인은 아랑곳없이 흘러갑니다. 이것이 산업적 농업으로 오염된 도시입니다. 이것이 산업적 출산으로 병든 인간입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이 새로운 젊은 세대의 손에 닿기를 희망한다.


이 속 깊은 급진성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은 사뭇 더 열악합니다. 진실이 젊은 세대의 손에 닿지 못하게 가로막는 손길을 무섭도록 느끼는 우리에게라면 분명 다른 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 진실을 새로운 젊은 세대의 손에 대어주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희망 넘어 서원. 서원 넘어 결단. 결단의 찰나로 쓱 진입. 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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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산과의사 - 개정판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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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책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본디 책에 있는 것은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지도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 책, 『농부와 산과의사』. 그 제목을 접하는 순간 저는 선명히 선명한 길 하나를 보았습니다.


번역본마저도 10년이 넘은 책을 두고 뒤늦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 있으나 마치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는 고백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식물적 생명 감수성을 지닌 데다 그 감수성으로 사람의 죽은 마음을 어루만져 되살리는 의사인 만큼 ‘선명히 선명한 길’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는 산업적 출산으로 야기된 인류의 위기를 누구보다 생생히 경험한 산과의사입니다. 산업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출산생리 본연의 이치를 구현하는 혁명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장본인입니다. 자신의 일이 산업적 영농으로 야기된 인류와 자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농업혁명과 본질이 같다는 사실에 터하여 그는 이 책을 썼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백척간두에 선 인류와 자연을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급진성radical radicality, 그 천명天命의 길은 농업혁명과 출산혁명의 연대뿐입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없습니다. 더 급진적인 것도 없습니다. 이 근본적 급진성에는 공통된 속성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치유”입니다. 이미 깊이 병든 인간과 자연을 치유하는 데서 참 혁명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혁명이되 이전까지의 남성가부장적 파시즘적 혁명은 안 됩니다. 대大모성적 영성적 혁명이어야 합니다.


특히 산업적 영농과 산업적 출산의 폐해가 자심한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 이 치유혁명은 그 어떤 공동체보다 끽긴한 과제입니다. 매판독재를 대놓고 표방하는 이 나라 불의한 권력과 자본, 그리고 종교의 삼각동맹을 깨뜨릴 근본적 급진성은 선거나 총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농투성이’와 ‘어미’의 손, 그 극진한 사랑의 손에서 나옵니다. 제가 본 ‘선명히 선명한’ 길이 이제 떠오르시는지요?


150쪽이 채 안 되는 작은, 그래서 큰 이 책을 꼼꼼히 챙겨보려 합니다. 요지부동으로 매판독재 정당만 찍어대는 비율과 제왕절개 하는 비율이 정확히 일치하는 이 땅에서 마음병 치유한답시고 주절대는 의사인 제게 각고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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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의사議師이며 의사義士이며 의사儀司이어야 한다. 






1. 議師란 단지 병만을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건강한 삶 전체를 함께 의논 또는 숙의하는 스승이어야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2. 義士란 개인의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 공동체 전체의 의로움을 위해 싸우는 올곧은 선비여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3. 儀司란 생멸의 벼랑 끝에 몰린 인류와 자연을 보듬어 안고 영성적 치유를 행하는 숭고한 사제여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여명기에 개인 건강의 지도자와 사회의 정치 지도자, 그리고 영성의 지도자는 하나였습니다. 타락으로서 분리를 겪으면서 개인 건강의 지도자인 의사는 단지 질병을 고치는 기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21세기 인류는 파멸과 개벽의 기로에 섰습니다. 개벽으로 가는 길에 서려면 의사는 議師이며 義士이며 儀司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議師이며 義士이며 儀司인 의사일까요? 생각이 맑고 바른 사람 모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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