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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ㅣ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에게 “얘야, 포도주가 떨어졌다.”라고 말한다.·······
어머니 마리아의 말에 예수의 대답이 다소 충격적이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여자’라는 의미는 구약성서 <창세기> 2장 23절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의 어머니인 ‘이브’를 상징한다. 아담이 새로 창조된 여인을 ‘여자’라 불렀으며, 이 이야기에서 예수는 새로운 아담이며 마리아는 새로운 이브가 된다.(303-304쪽)
지난 9일 저녁 저는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의 초청을 받아 강연하러 내려갔습니다. 도착해보니 강연장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칠판도 강대도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초청한 교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하던 제 귀에 휑한 강의실 공간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소리 하나 들려옵니다.
“네 강연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는 단정한 표정으로 “그냥 시작하지요.” 하고 분위기를 수습한 다음 한 줌 정도의 수강자 앞에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마음속에서는 숱한 의구심이 자맥질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정성으로 준비했고 극진한 의미를 담아 마련한 기회가 허망하게 무너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강연의 주제가 ‘21세기 한국에서 21세기 한의사를 논하다’였습니다. 21세기 한의사를 논하는 자리를 21세기 한의대생들이 왜 외면한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 없습니다. 학생들의 관심사가 교수의 그것과 어긋날 수도 있고, 하필 금요일 오후 늦게라니 물색없다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런 어간에 서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르고 좀 불편해도 공동체의식을 지녔다면 분명히 어떤 소통의 채널을 피차 가동시킬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런 토대가 무너졌다는 데 있습니다. 순식간에 들이닥쳤던 이런저런 상념들을 다독거린 뒤 본디 마련했던 강의안을 버리고 흐르는 대로 강연을 풀어갔습니다. 하고자 했던 많은 말들을 하지 못했지만 희망 담은 간곡한 당부까지 잊지 않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가히 장관이라 할 풍경은 강연이 끝난 다음에 펼쳐졌습니다. 학생회장이 미리 마련된 뒤풀이 자리가 있으니 가겠느냐, 물었습니다. 흔쾌히 그러자, 하고 따라가니, 아뿔싸! 제가 강연하던 같은 시간에 강연장에 앉아 있었어야 할 바로 그 학생들 대부분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의구심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저는 그 상황을 통째로 받아들이고 두어 교수와 대여섯 학생들 사이에서 즐겁게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상황에 대한 해석이 끝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서울에 와서도 그 사건을 어떻게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지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리뷰 <14.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를 썼습니다. 마무리가 홀가분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감응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글이었습니다. 닷새가 지난 지금 그 글을 고쳐 씁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예수를 다시 읽은 뒤 가능해진 일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가 보인 명사적 불연속의 반응은 포도주가 지닌 치명적이고 종말론적 의미에 집중한, 냉엄하고 육중한 경계입니다. 동사적 연속의 반응은 그 경계를 뒤집고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경이로우면서도 유쾌한 이적입니다. 잔치집이니만큼 하객들이 마시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조건을 터준 것입니다.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삶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만 의미 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만 예수의 관심사가 국한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는 아직 이르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버려두지 않습니다. 이 순간을 살리면 매순간이 바로 “나의 때”가 된다는 진실을 증명해보였습니다. 예수의 포도주를 맛본 하객들은 앞의 것보다 더 맛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혼인잔치는 돌연 천국잔치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카이로스를 크로노스로 끌어내는 혁명입니다. 홀연히 그 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네 강연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는 이 소리를 듣고 아직 우리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우리의 인연이 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랬듯 아직 오지 않은 때를 우리 삶의 현실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강연을 진행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입니다. 의구심을 거느린 문제는 정답이 있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넓은 지평으로 번져가 한 생각 넘김으로써 해소되는 것입니다. 올 그 때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되는 파동의 커다란 마루임을 깨닫고 기다리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이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