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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우울증은 마음의 병입니다. 마음은 인간이 삶의 환경 조건과 함께 주고받는 상호작용입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우리 삶의 전체 과정과 깊이 맞물려 있습니다. 삶의 전체 과정은 복잡다단한 이야기로 구성되면서 우리의 인격과 특성을 드러내주는데, 바로 이 이야기 가운데 우울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 삶이 이야기이듯 우울증도 이야기입니다. 치료 또한 이야기임은 자명합니다. 이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울증 치료는 알맹이를 버린 껍데기일 따름입니다.
우울증은 이야기인 병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우울증도 처음 발생해 이어지고 접히며 뒤틀리다가 갈등의 절정에서 꺾여 스러지는 곡절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이 곡절은 말해지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겪은 사람이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숙명 때문에 이 곡절은 안에서 봉인된 신음입니다. 겪은 사람 스스로 그 봉인을 뜯고 입을 대는 순간부터 근본적인 치유의 가능성으로 열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말해지는 순간 그 이야기는 역설로서 생명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해진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 자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이 역설의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생명은 미분화의 정적을 깨고 역동적인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주보는 두 이야기가 서로 흔들고 떨며 엉키다가 마침내 뒤바뀝니다. 그 절정에서 급기야 함께 공중제비를 돌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서로를 비결정 상태로 놓아버리는 자유의 세계로 비상합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경청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실제적인 치료가 일어납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대칭을 통해 은유적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은유적 소통은 단순히 정서적 공감을 주고받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병의 감염(!)이 오갑니다. 치료의 감염도 오갑니다. 감염을 주고받음으로써 두 사람은 생명 공유의 타원을 만들어갑니다. 다르지만 쪼갤 수 없고, 같지만 포갤 수 없는 ‘가족적 유사성’이 두 사람을 엮어 생명연대가 형성됩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인격과 삶을 함께 도약시키는 통섭이 이루어집니다.
이야기는 말과 침묵의 절속絶續(단절과 연속이 교차함)을 통해 마음을 드러내는 생명 활동입니다. 말 자체는 이성과 의식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 경계에서는 감성과 무의식이 솟아오릅니다. 이를테면 무한을 끌어내는 유한한 끌개인 셈입니다. 이런 절묘한 본질은 아마도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허공, 즉 침묵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 침묵이 있어서 말은 말이 됩니다. 그 침묵 속에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생명의 연대와 통섭이 일어납니다. 결국 말은 침묵이라는 너른 여백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말은 이렇게 빛과 어둠을 가로지르는 역설적 동력으로 부정의 감정 에너지를 해독解毒합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모독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그렇다고 말함self reference으로써 격정 상태에 있는 부정적 에너지의 독성을 중화하기 시작합니다. 말의 긍정 에너지를 인정함으로써 긍정주의 상술에 동조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말은 긍정과 부정의 대칭을 넘어선 더 큰 ‘그러함’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더 큰 ‘그러함’의 대지는 바로 여성성의 땅입니다. 여성은 자신의 속에 다른 생명을 담아내는 어머니로서 근본적인 존재 기반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 그 생명 자체의 ‘그러함’을 용인하지 않으면 자신이 담아내는 생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런 이치와 존재론적 은유를 따라 여성은 말의 화신입니다. 여성의 우울증 치료에서 이야기하기를 빼놓으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언어적 존재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남성보다 말을 조리 있게 잘 합니다. 구사하는 어휘 수도 많습니다. 그리고 말할 때 좌뇌와 우뇌를 함께 쓰기 때문에 극단적인 긍정과 부정의 편향을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이 여성의 정서적 보상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말을 하는 경우도 그렇고, 듣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남성에게 말은 행동을 하기 위한 ‘최소한’이지만, 여성에게 말은 정서적 보상으로 마음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최대한’입니다. 우울증이 자기모독에 뿌리를 내린 병임을 감안할 때 말을 통한 치유 연대의 형성은 여성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상담치료가 설 자리입니다.(175-178쪽)
태초에 여성이 있었습니다.
여성은 비대칭적 대칭의 세계 진실을 드러내려고 남성을 낳았습니다.
남성은 일극집중의 욕망으로 비대칭적 대칭의 세계 진실을 접기 시작하였습니다.
접힌 비대칭적 대칭의 세계 진실로 도로 펴기 위해 여성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야기의 폄은 심판이자 치유입니다.
심판이자 치유인 길은 양육의 길입니다.
양육은 일이자 놀이로서 태초부터 있었던 여성의 숙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