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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우울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울증은 땅거미가 황혼녘의 누리를 덮듯이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사회 어떤 계층, 어떤 부류의 사람도 우울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만 깜짝 놀라다가 곧 잊어버리는 습관을 되풀이할 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도, 사회적 여론이나 국가적 관심사로 발전시키지도 않습니다.(11-12쪽)
경기도 안산. 그중에서도 고잔1동, 와동, 선부3동. 세월호사건 때 죽임을 당한 250명 아이들 가운데 무려 204명이 이 세 동네 아이들입니다. 사건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거리에서는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주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자기 아이가 죽지 않았어도 슬픔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동네는 그 자체로 우울증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 동네들에 희망이 번져가고 있다 합니다. 스스로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는 힘으로, 유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물경 39개의 ‘희망 씨앗’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있는 동안 권력은 외면과 기만으로 일관했습니다. 아무리 권력의 속성이라고는 하나 도를 넘은 협잡입니다.
어디 안산뿐이겠습니까. 불의한 권력과 부도덕한 언론이 짜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시간들을 거짓과 조작으로 엮어 생중계를 해댔으니 가히 온 국민이, 온 나라가 우울증에 휘말렸을 것임은 불을 보듯 빤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의당 국가가, 통치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가하고 발뺌하고 외려 비아냥댔습니다.
국가 우울증 상태로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고 경제는 침체일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이미 쇠락이 시작되었던 골목상권은 빠른 속도로 형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서둘러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저 참담한 죽음들은 시나브로 잊히고 있습니다. 국가는 안도하고 노예사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매판독재분단고착세력 말고는 다 죽습니다. 정녕 살고자 한다면 그들이 파놓은 각자도생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저 ‘고와선(고잔동·와동·선부동)’ 자생 공동체 운동을 귀감으로 삼아 함께 살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정녕 살고자 한다면 위대한 영웅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도움을 청하고 일어나 손을 잡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연대해야 합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사회는 의료인 한 사람이 우울증 앓는 한 사람을 치료하는 단계에 있지 않습니다. 우울증은 실로 공공 현상입니다. 그 치료는 그러므로 공공 어젠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공 어젠다의 핵심은 정치 과정입니다. 정치적 치료 없이 세월호사건, 나아가 국가 우울증 상태의 치료는 없습니다. 권력이 한사코 거부한다면 그 권력을 침몰시켜야 합니다.
싸움은 힘겨울 것입니다. 오래 갈 것입니다. 힘겹고 지루한 싸움에서 이기려면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치지 않으려면 기억을 공유해야 합니다. 기억을 공유하려면 자꾸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러티브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을 끊임없이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 내러티브가 공공의 텍스트가 되는 순간 싸움은 끝납니다. 이름 없이 빛 없이 견디고 감내해야 합니다.
이 글이 끝날 무렵 오랫동안 우울과 불안 문제로 상담을 하고 있는 청년이 제게 올 것입니다. 저는 그와 다양한 내러티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월호사건 이야기도 거기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시민으로 태어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천명입니다. 여기서 자유롭다 믿는 자, 그는 아마 가금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