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목격에 대해 거리를 둔 구경꾼spectators일 수 없다·······.·······증언은 타자들을 그들이 목격하는 것에 연루시킨다.
이러한 목격의 상호성은 하나의 소통하는 몸이 아니라 소통하는 몸들의 관계를 요구한다.·······목격은 언제나 관계를 함축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항상 이야기를 하지만, 나 혼자에게 증언을 할 수는 없다. 이야기를 증언으로 만드는 것의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 그 증언을 받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증언은 그것의 목격자가 소통하는 몸-우리 중 누구도 아직 되지 못한-이 될 것을 요구한다.
·······증언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식은 함께하는 것이다.(274-276쪽)
[단원고 교실과 관련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께 드립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달라진 것은 416교실뿐이다.
정작 달라져야 할 모든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오직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과 교무실만 달라졌다. 250명의 학생들과 12분 선생님들이 꿈을 나누던 교실에서 참사의 현장으로.
그런데 416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게 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사람들이 참사의 현장이 되어버린 교실을 후배들이 공부할 교실로,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교실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교실은 재학생의 것이라며. 250명 우리 아이들과 12분 선생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은 참사의 현장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너무 아파서 “416교실”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교육청과 단원고등학교 그리고 일부 재학생 학부모들은 416교실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 내에서 추모와 교육을 함께 할 수 없다.”
“음산하고 혐오스러운 교실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에 지장을 받는다.”
“416교실이 계속 있으면 재학생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교실은 재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내 교육철학이다.”
“신입생을 받을 교실이 부족하다.”
이 중 내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신입생을 받을 교실이 부족하다” 하나뿐이다.
416가족협의회는 지난 9월 초에 단원고 내에 교사를 증축하고 416교실을 재학생들의 수업공간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단원고 교사증축과 416기념관 건립을 위한 제안”을 교육청과 단원고에 하였다. 이후 우리 가족들이 단원고와 일부 재학생 학부모들로부터 겪었던 일들은·······차마 글로 옮기기가 부끄럽다.
어쨌든 우리의 제안은 철저히 거부당했고, 11월 들어서야 교육청의 새로운 제안이 나왔다. 주요 내용은, 학교 앞 도로를 옮겨서 확보한 부지에 지상 5층 “민주시민교육원”을 짓고 그곳에 교실과 교무실을 이전, 복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공하기까지 약 2년여 동안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교실과 교무실을 임시로 이전, 배치하겠다는 것이다.(복원이 아니라 배치다.)
이 제안이 나온 후 나는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참사 이후 늘 우리 가족들과 함께 했던 많은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교육청의 안이 괜찮은 것 같은데 416교실을 굳이 학교 내에 그대로 둘 필요가 있겠는가? 가족들이 긍정적으로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반응을 보이며 우리에게 받아들일 것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거짓과 탄압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큰 충격이었다. 혹시 진보적인 시민과 단체가 진보교육감의 제안을 반대하는 것이 껄끄러워서 그런 건가? 그렇다면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행태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2015년 11월 26일 아침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온 예은이 아빠 유경근 씨의 글 전반부입니다. 그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동안 유족의 피어린 증언을 듣고 세월호사건에 자신을 “연루”시키며 “함께하는” “관계”를 맺어왔던 시민과 시민단체가 점차 “목격에 대해 거리를 둔 구경꾼”으로 변해가는 듯 보이는 조짐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면서도 유경근 씨는 분명 어떤 불길함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대체 세월호사건의 연루자 아닌 대한민국 국민인 자 그 누구입니까? 자기 아이가 죽임당하지 않았다고 연루에서 빠지는 것입니까? 대통령 지지자라고 연루에서 빠지는 것입니까? 세월호사건 때문에 경제적 불이익을 당했다고 연루에서 빠지는 것입니까? 어떤 곡절로도 대한민국이 공동체인 한, 연루에서 빠질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연루에서 빠지려면 대한민국의 공동체성을 부정해야 합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공동체성을 사실상 부정함으로써 대놓고 세월호사건의 구경꾼, 아니 공격자가 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월호사건을 현실과 역사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깨알 같은 협잡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짓이 자신들의 연루됨, 아니 범죄자임을 도리어 명백히 드러내주는 증거라는 사실을 알고도 서슴없이 그리 합니다. 자신만만합니다. 연루됨을 ‘개’무시하고 빨갱이라며 돌 던지는 광신도들이 방패막이로 서 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말입니다.
유경근 씨는 변함없이 우리에게 “그 증언을 받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몸-우리 중 누구도 아직 되지 못한-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아니 그 뒤에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증언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식은 함께하는 것이다.”
혹시 그만 하고 싶으십니까. 제 글도 지겹게 느껴지십니까. 이제 겨우 590일째일 뿐입니다. 잊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아니! 590일이나 지났습니다. 아무런 변화 없이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 590일이 흐르고 있는 오늘 이 순간 우리는 대관절 무엇이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