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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아침 신문에, 노벨상을 수상한 의사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을 텔레비전 세트로 생각해야 한다고 기자에게 말했고, 정교한 비유가 뒤따랐다.·······텔레비전이 고장 나면 수리를 필요로 하듯이, 몸도 그러하다. 기원의 문제는 어떻게 기계를 다시 작동하게 할 것인가라는 퍼즐의 문제로 수렴된다.
기원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은·······본래의 근본적인 행위에서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정당화를 추구한다.·······그 사람이 처음에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행위들은 삭제된다.·······환자 역할을 촉발시키는 기질의 형태를 고려하지만, 그러한 기질을 가져온 조건을 변화시킬 필요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환자 역할에 있는 사람이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고쳐질 수 있는 무한한 미래가 있는 한, 기원이 되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진다.(181-182쪽)
부부나 연인 문제를 상담할 기회가 드물지 않습니다. 교감과 소통에 문제를 일으켜 심각한 갈등 상황에 빠진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의 화제에서 과거, 무엇보다 생애 초기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애 초기는 한 사람의 “기원”입니다. 생애 초기는 한 사람의 “기질을 가져온 조건” 자체이자 그 조건의 조건이 묻혀 있는 고고학적 근거지입니다. 이 이야기를 농밀하게 나누지 않은 채, 오늘의 문제점과 내일의 해결책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로 어긋납니다. 어긋나는 곡절을 모른 상태에서는 어긋남을 더욱 깊게 하는 언행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더 높은 벽이 되어갑니다.
기원 또는 조건의 문제는 비단 이렇게 특정 부부나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기원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이 모더니즘 사고의 전형이라고 말합니다. 모더니즘은 전 지구적 구속력을 지닌 헤게모니 문명 양식입니다. 모더니즘 문명의 핵심부에 자리한 모더니즘 의학은 “사람이 처음에 어떻게 아프게 됐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아프게 하는 “조건을 변화시킬 필요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이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은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고쳐질 수 있는 무한한 미래가 있는 한, 기원이 되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관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따지고 보면 모더니즘 문명의 구속 아래 사는 사람 그 누구나 이런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적·신자유주의적 성공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모더니스트는 “기계” 인간입니다. “고장 나면 수리”해서 “다시 작동하게” 하는 사람이 의사입니다. 의사의 일은 그러므로 기계 수리 “작업”일 뿐입니다. 이 작업을 잘해서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노벨상을 상징으로 하는 이 모더니즘 문명에서 인간의 역사, 공동체적 조건은 전혀 무가치합니다. 아니!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엇입니다. “고쳐질 수 있는 무한한 미래”라는 환상으로 내던져진 사이보그들만 와글거리는 세상입니다.
어제 오후, 한 여성이 찾아와 바로 상담 받을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실은 오늘로 전화 예약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예약한 뒤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마침 전화를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미안한 듯이 황급히 말을 마무리하는 그 분에게 나지막이 말해주었습니다. “오시기 어렵다는 거 압니다.” 그 분은 도리어 제 이 한 마디에 마음을 돌려 무작정 달려왔다고 합니다. 제 말은 그 분이 지닌 고통의 기원, 기원의 상황, 상황의 조건에 가 닿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내일 어린 딸과 함께 다시 제게 올 것입니다. 고통의 기원을 더듬으며 울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세월호사건 유족이 지닌 고통의 기원, 기원의 상황, 상황의 조건에 통치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 오늘을 살피고, 보상금 타서 내일을 해결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같은 입으로 역사, 그러니까 기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 기원을 왜곡하여 미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왜곡과 미화로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방어 기제의 작동일 따름입니다. 종당 병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불치 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 비극을 지켜보는 백성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