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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증언 -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ㅣ 카이로스총서 26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옮김 / 갈무리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성으로서의 질병illness-as-normality·······이것은 질병과 질병이 부과하는 어떤 요구나 제한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이 “정상적”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이 서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적은 질병에 주목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최소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 유형이다. 왜냐하면 질병 혹은 장애는 최소화를 요구하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19쪽)
제법 오래 전 티베트 의학승 다이쿠바라 야타로가 쓴 『티베트 의학의 지혜』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신선하여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서구 세계는 병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여기지만 티베트나 인도에서는 병을 함께 살아갈 친구로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이 책은 나중에 『병을 달래며 살아간다』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아마 이마저도 절판되었을 것입니다만.
아픈 사람들이 의사에게 가장 많이 묻는 것 중 하나가 ‘완치되느냐?’입니다. 특히 정신적 장애로 찾아온 사람들의 이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큽니다. 제 경우 각기 다른 구체적 상황에 따라 여러 대답을 하지만 맨 마지막에는 ‘마음의 병에 완치 개념이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마음은 기억이고 기억이 있는 한 마음의 아픔은 도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래도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병을 친구 삼으면 푸근한 마음으로 한 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뒷단속을 해줍니다.
서양의학은 약으로 완전히 새 사람을 만들어줄 것처럼 떠벌이지만 실제로 그 변화는 증상을 찍어 눌러서 나타나는 것이지 치료가 아니므로 일종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400가지 이상의 심리치료에서 쓰는 각종의 요법, 예컨대 EMDR, EFT, NLP 같은 것들도 피상적인 걷어내기skimming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도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에서 말하는 정신은 근원적으로 분석의 대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은 자체로 형용모순입니다.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러면 비정상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 말하는 것이 바로 “정상성으로서의 질병illness-as-normality” 서사입니다. 이 서사의 핵심 주장은 “질병과 질병이 부과하는 어떤 요구나 제한에도 불구하고 아픈 사람이 “정상적”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합니다. 동의합니다. 수용합니다. 단, 결론에 이르는 논리는 바꾸어야 합니다. “에도 불구하고”가 아닙니다. “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아프고, 아프기 때문에 따라오는 불편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정상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니! 아프고, 아프기 때문에 따라오는 불편함이 없는 존재는 당최 인간 일 수 없습니다. 인간인 한, 아픕니다. 아픈 인간만이 정상적인 삶이 무엇인지 증득證得할 수 있습니다.
“질병에 주목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은 아파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입니다. 아픔 때문에 혼돈에 빠질 지경이라면 그것은 이미 정상이 아닙니다. 삶이 아픔에 함몰되고 마는 상황이기에 말입니다. 결국 아파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필요충분조건은 질병 또는 장애가 “최소화를 요구하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설한 중도中道이며, 중도가 정도正道입니다.
우리 모두 아프지 않고 살다 죽으면 더는 소원 없겠다 말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비정상입니다. 아픔을 맞닥뜨리면 대뜸 진통제부터 처방하는 현대의학은 비정상 의학입니다. 비정상 의학에 몸을 맡긴 채 인류는 전방위적인 진통의 중독으로 빨려들고 있습니다. 부디 중독에서 벗어나, 인간 생명은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죽음을 향해 가는 유한한 현상이라는 사실, 그래서 아프다는 사실, 아파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길 기원합니다. 굿 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