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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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체제는 들뢰즈에 따르면 마치 “몸”처럼 조직되어 있다. 그것은 생정치의 체제다. 반면 신자유주의 체제는 마치 “영혼”과 같은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심리정치가 이 체제의 통치 형식이 된다. 그것은 “회피할 수 없는 경쟁을 끊임없이 확산시킨다.” 이로써 “유익한 승부욕과 탁월한 행위 동기”가 촉발된다는 것이다.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경쟁, 최적화, 자발성은 모두 신자유주의 체제의 심리정치적 통치술에 속한다.(33-34쪽)


우리 역사에서 문제적이었던 수많은 인물 가운데 황진이만한 영원의 아이콘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생이라는 멍에를 지고 산 여성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그의 자유는 당대의 스승 서경덕까지 존중한 고귀한 표상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와 달리 황진이가 유혹했으나 고고한 서경덕이 넘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서경덕이 황진이의 몸과 영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그리 한 것이고 이에 황진이가 공감·동의한 것입니다. 황진이가 당당히 화담 학파의 대모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위대한 두 자유인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 해석이 궁금하신 분은 김탁환의 『나, 황진이』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가부장적 양반사회에서 기생의 몸을 거두는 것이 영혼까지 취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서경덕과 황진이의 선택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몸도 영혼도 시대의 맥락과 사회의 지평을 뛰어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몸을 압제하여 착취하는 자본의 시공에 있을 때 자유의 모습과 영혼을 조종하여 착취하는 자본의 시공에 있을 때 자유의 모습은 다릅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변이체”(15쪽)라 하거니와 실제로 그것은 신식민지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전략 이론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신식민지주의는 독립국가라는 하드웨어는 주되 정치경제의 소프트웨어를 장악함으로써 “섬세하고 유연하며 스마트”(28쪽)하게 식민 지배를 관철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어법에 따라 말하면 “몸”의 지배를 내주고 “영혼”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예속을 업그레이드시킨 것입니다. 업그레이드인 까닭은 그것이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경쟁, 최적화, 자발성”을 장착하고 “경쟁을 끊임없이 확산”시킴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극대화된 이익은 각자도생의 사막으로 내몰리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예속 주체들의 자기 착취에서 발생합니다. “이처럼 친절한 권력은 억압적 권력보다 더 막강”(31쪽)한 법입니다.


자기 착취를 자유로 착각하는 오늘 여기에서 진정한 자유는 그러면 무엇이며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영혼이 예속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가짜 자유에 속고 있는 자신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심리정치적 통치술”인 “모티베이션, 프로젝트, 경쟁, 최적화, 자발성”을 하나하나 응시해야 합니다. 거절해야 합니다. 돈의 동기 부여, 돈에 의한 자발성과 최적화, 돈을 위한 기획과 경쟁을 기꺼이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는 공존을 위한 비워내기입니다. 비워내면 삶은 승부가 아니게 됩니다. 승부가 아닌 삶의 동기는 단 하나, “목적 없는 우정”(11쪽)입니다. 목적 없는 우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느낌, 알아차림, 받아들임이 다름 아닌 자유입니다.


우리사회는 식민지주의와 신식민지주의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매판세력이 어엿한(!) 독립 국가를 차려놓고 종주국의 조종 아래 몸의 억압과 영혼의 유혹을 양수겸장으로 구사합니다. 한병철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이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이 책을 읽습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를 위해 황진이와 서경덕의 격조 높은 사랑, 아름다운 연대를 꿈꾸어봄 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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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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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지배 질서는 긍정성의 빛을 발산한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기술은 섬세하고 유연하며 스마트한 형태를 취하며,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예속된 주체는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그래서 그는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친절한 스마트 권력은·······억압적이기보다 유혹적인 권력이다.·······

  ·······오늘날 자유의 위기는 자유를 부정하고 억압하기보다 자유를 착취하는 권력을 상대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자유로운 결정은 미리 정해져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선택으로 전락한다.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28-31쪽)


본디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다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자마자 없애버려 집에서는 거의 볼 기회가 없습니다. 한의원은 늘 켜져 있는 상태입니다. 오가며 힐끔거리다가 요즘은 유심히 들여다보곤 합니다. 사람과 사회 돌아가는 꼴을 있는 그대로 읽는 데 ‘딱’입니다.


TV를 흐르는 프로그램의 주류는 강박적이고 선정적인 국정교과서 뉴스, 사회의 지배적 트렌드를 홍보하는 통속 드라마, 닥치고 먹는 이야기, 개나 소나 나와서 떠드는 건강 이야기, 일상까지 드라마로 격상시키며 노닥거리는 연예인들 이야기, 그리고 눈 벌개지는 돈 이야기입니다. 이 가운데 돈 이야기가 단연 “유혹적”입니다. 그 무엇보다 유명 연예인들 동원해서 쉽게 돈 빌려준다고 손짓하는 이른바 제3금융권, 그것도 일본 야쿠자의 검은 돈과 결부된 대부업체의 광고야말로 약탈적인 우리사회의 진면목을 드러내줍니다.


원하기만 하면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최소 3백만 원의 돈을 뚝딱 손에 쥘 수 있는 이 세상이란 얼마나 “친절”하고 “긍정”적인 것인가.


미리 정해져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선택”을 해놓고도 “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예속된 주체”에게 이렇게 “섬세하고 유연하며 스마트한” 지상천국은 다시없습니다. “오늘날 자유의 위기”가 그 무엇보다도 타개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매판자본의 주구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 독립된 민주국가의 시민이라고 굳게 믿는 바로 그 사람들의 가짜 자유가 대한민국을 지상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미리 정해져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선택”으로서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백범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유관순을 여자 깡패로, 이승만을 국부로, 김대중을 김정일이 심은 간첩으로 둔갑시킵니다.


쉽게 받아든 돈 3백이 약탈의 종자돈이듯 그 사람들이 누리는 이 축복이 머지않아 저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늦습니다. 깨달음의 지연을 흔히 역사의 심판이라 미화합니다. 역사의 심판으로 살해당한 목숨이 살아 돌아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깨달음의 적기는 항상 지금 당장입니다. 오늘 이 땅의 예속된 주체에게 절체절명의 화두는 오직 이 하나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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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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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명령 체계, 모든 지배의 기술은 피지배자를 예속시키기 위한 고유한 성물Devotionalie을 만들어낸다. 성물은 지배 관계의 물질화로서 지배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성물은 곧 예속됨Devot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일종의 디지털 성물이다. 아니, 디지털 성물이 곧 스마트폰이다.(25쪽)


지난 토요일 지인과 식사하고 술 한 잔 하다가 음식점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왔습니다. 다음날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후에 다시 음식점을 찾았으나 휴무였습니다. 연락은 물론 송금과 같은 실생활의 상당 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만 이틀 동안 이런저런 성가심이 톡톡 심사를 건드렸습니다.


성가심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불안이었습니다. 느닷없는 분리 또는 불연속이 환기하는 예기豫期 불안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분명한 내용도 없고 어떤 지향도 없는 염려 또는 초조가 순간적으로 싸하게 속을 후비며 들어오고는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중독에 육박하는 익숙함이 단절되면서 밀려드는 격정일 것입니다.


익숙함은 곧 “예속됨”입니다. 예속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상황이 별안간 엄습해올 때, 그러니까 자유가 들이닥칠 때 전방위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불안은 이렇게 안팎이 맞물리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입니다.


편리함에 녹아 자유를 체념하는 상황에서 불편함을 통해 자유 감각을 일깨우는 분리 또는 불연속,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 없는 이틀의 진실입니다. 따지고 보면 스마트폰 없는 이틀은 스마트폰 있는 날들에 비하면 작은 틈에 지나지 않지만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각성의 빛, 돌이킴의 빛 말입니다.


스마트폰을 찾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불안의 파랑 밑에 갈앉아 있던 알 수 없는 평온의 정체가 다름 아닌 소통 없음의 자유, 적요의 자유였다는 사실. 소통이 강제인 세상, 훤화喧譁가 예속인 세상에서 소통을 중단하고 적요의 시공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 홀로 앉아 달곰쌉쌀한 술을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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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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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날 디지털 심리정치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수동적 감시의 시대에서 능동적 조종의 단계로 전진하는 중이며, 이로써 우리를 더 깊은 자유의 위기 속으로 빠뜨린다. 빅데이터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동력학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심리정치적 도구다. 이러한 지식은 지배를 위한 지식으로서, 이를 통해 개인의 심리 속에 파고들어 반성 이전의 층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해진다.

미래가 열려 있다는 것은 행동의 자유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인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로써 미래는 계산하고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자유로운 결정의 부정성을 관계의 긍정성으로 탈바꿈시킨다. 인간 자체가 긍정화되어 양화하고 측정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물이 된다.·······빅데이터는 인간의 종언, 자유의지의 종언을 선포한다.(24-25쪽)


어린 아들은 늘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시와 질책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년 봄 산에 올라가 싸리나무를 베어서 자신의 가슴둘레만큼 큰 맷단을 만들어 선반에 얹어두었습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그 매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최초로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들의 대답을 듣고 아버지는 빙긋 웃었습니다. 아들은 최초로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더 착한 아들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날은 아버지가 잠든 아들의 일기장을 몰래 꺼내 읽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아들은 머지않아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경악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알고도 분노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전능全能한 아버지가 전지全知까지 갖추어 완벽한 초월적 권위를 획득하는 순간, 인간적·윤리적 판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한평생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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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힐링 - 달콤하고 매혹적인 심리치료의 진실
폴 몰로니 지음, 윤영삼.김경미 옮김 / 나눔의집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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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0. 일관된 신랄함에 반하다


책의 원제는 『The Therapy Industry: The Irresistible Rise of Talking Cure, and Why It Doesn't Work』입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치료 산업: 대화요법의 압도적 성장, 그리고 그 허사의 근거』입니다. 번역본 제목『가짜 힐링』은 도발적이고 대중적이긴 하지만 저자의 의중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매우 신랄한 책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긴 호흡의 비판자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뚝심을 보여줍니다. 갈피마다 설렘이 있었고 결말에 대한 궁금함도 컸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는 실체를 보며 과연 그렇다 했습니다. 다만 날 세움이 예리한 만큼 반대 쪽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이거나 시공의 차이 문제일 것입니다. 독자는 또 독자의 한계를 안고 자신의 시공에서 틈을 메워 나아가면 되겠지요.


심리 또는 정신 치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뭐 이렇게까지 세세히 들여다봐야 하나 싶기도 하니 모두에게 정독을 권한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호흡 가다듬고 읽으면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사회문화, 정치경제의 주류 시스템 작동 기전과 그에 희생당하는 인간의 문제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아니라면 당최 알 수 없었을 묻힌 진실의 자락들이 도처에 보석처럼 박혀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이 책이 일깨우는 문제의식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1. 토건심리학civil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psychology(CECP)과 토건정신의학civil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medicine(CECM)의 따귀를 후려갈기다


토건심리학/토건정신의학이란 말은 심리학/정신의학과 심리치료/정신치료 이론은 물론이고 실제 임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에서 토건의 전형을 보여주는 영미 주류 심리치료/정신치료 집단의 행태를 고려하여 그들의 지적 도구를 표현하려고 제가 만든 용어입니다. 그들을 통렬히 비판한 저자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토건이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멀쩡한 땅과 강을 파 뒤집어 인공물을 만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명박의 4대강사업을 떠올리면 설명이 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상담심리학자인 만큼 전체 타깃은 토건심리학을 향하고 있지만 이해를 위해 먼저 토건정신의학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저자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하수인으로서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을 무기 삼아 토건 방식으로 정신장애 문제를 다루는 주류 정신의학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의학은 그 근간에서 과학적으로 (어쩌면 윤리적으로도) 이미 파산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모습의 정신의학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의 끄나풀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거대한 음모의 산물이다.”(90-91쪽)


DSM은 이론과 임상적인 연구의 산물이라기보다 제약회사 로비의 산물입니다. 편람의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병의 숫자는 신약 개발의 건수에 따른 발명품입니다. 이 약들은 현란한 마케팅을 통해 완벽한 치료제로 포장되지만 소비자들은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국가가 정신장애 문제를 사회정치적 문제 아닌 의료문제로 환원하는 정책을 쓰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 와중에 정신장애 진단을 받아 복약하는 사람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행을 이루는 토건심리학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심리적으로 훨씬 심각하고 만성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들도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의 별 도움 안 되는 약물처방보다는 사람과의 접촉과 대화를 선호한다. 더불어 성격을 완전히 개조하여 우리를 ‘초인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선전하던 유명 제약회사들에 대한 환멸도 커졌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대화치료법들 역시 기존의 정신과 의사들과 제약회사들이 보여주던 과도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어휘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치료법을 홍보하고 있다. 심리치료법들도 점점 정신장애를 단숨에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50쪽)


토건심리학 또한 토건정신의학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고통 문제를 사회정치적 문제 아닌 개인 치료문제로 환원하려 합니다. “의학과 대등한 위치에 설”(52쪽) 수 있기 위해 심리치료는 더욱 더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권위를 확보하려 합니다. 저자는 이런 음모적 토건 행태의 따귀를 후려갈깁니다. 후련하게 말입니다.


2. 사회유물론 심리학social-materialist psychology: 사회정치의 산물인 고통을 개인 문제로 돌리는 주류 심리학은 허사다It Doesn't Work


저자는 경구 같은 이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집약합니다.


빈곤은 영혼을 잠식한다.”(184쪽)


빈곤에게 잠식당한 영혼을 본디 상태로 되돌리려면 영혼에 손을 대서는 안 되고 빈곤에 손을 대야 한다는 진실을 머금고 있는 말입니다. 빈곤은 놔두고 영혼만 붙들고 약을 먹이려는 토건도 심리요법을 들이미는 토건도 말짱 허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허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인용문으로 자신의 견해에 갈음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어떤 곳에서도, 우리가 검토한 어떤 사회적 연구에서도,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천에는 대개 어떤 형태로든 과도한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364쪽)


저자가 제시하는 믿을만한 대안은 사회유물론 심리학입니다. 최후로 이렇게 정리합니다.


개개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경로를 우리가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트라우마를 유발할 정도의 학대와 핍박, 정신을 황폐화하는 노동, 비참한 빈곤, 실직으로 인한 권태, 특권층의 도덕적 설교와 같은 물질적인 요인들이 물질적인 몸에 작용한 결과 불안과 정신이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불행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 불행을 야기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빈곤층과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부를 재분배하고, 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조언을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이런 질환을 모두 해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출발점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364쪽)


3. 사람의 마음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변방에서 중첩적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의 신랄한 어조는 후련함으로 넘어 어떤 예언으로 읽힙니다. 다만 이런 난제를 하나 남깁니다.


·······이 관점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결론도 주장하지 않으며,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없다. 요컨대 채워야 할 세부적인 내용도 많고 면밀히 검토해야 할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361쪽)


불행을 야기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커다란 일의 필요성을 말하는 자리에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지침까지 언급할 여유는 없습니다. 저자와 그 동료들의 노력도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단계입니다. 우리가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무엇을 제공해주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몫이 아님에도 우리는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을 야기한 세상을 바꾸지 못한 현재 상태에서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 250명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도 요지부동인 권력 앞에서도 그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뇌에 터하여 저자의 신랄함 그 반대편의 불가피한 무딤을 우리 스스로 신랄하게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주류 심리학이 전제하는 “사회적 배경과 타고난 배경과도 완전히 구별되는·······단일한 완전체”(134쪽)가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옳습니다. 서구 유대-기독교 사상의 유구한 오류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이 부분은 책의 전체 논지로 보아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존재의 기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다. 모든 일을 결정하고 모든 일을 관장하는 내면의 결정자, 즉 정신적인 특성이 농축된 덩어리 같은 것은 없다. 전통적인 관점의·······자아란 환상에 불과하다. 자아는 우리의 행위의 원천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겨지는 일련의 이야기에 가깝다.”(118쪽)


이 주장이 좀 더 단호해진 경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가정하는 “내면의 힘”은 사실상 외적인 우위가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360쪽)


결국은 이렇게 됩니다.


환경이 핵심이다.”(226쪽)


인간의 마음이란 외부 조건을 반영하는 에피소드 정도입니다. 이 책의 전체적 논지로 보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도적 강조입니다. 서구 관념론의 폐해가 극심한 만큼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쳐도 좋은 장면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더 넘어가면 안 됩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원론적 관념론의 극단이 답이 아니라고 해서 그 반대편 극단을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외부조건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몸과 외부 조건의 상호작용인 사건입니다. 핵심인 환경의 일방적 변방이 아닙니다. 환경과 몸의 마주-가장자리에서 피는 변화의 꽃입니다. 외부와 절연된 단일 고립체는 아니지만 감각·기억·사유를 통해 일정 정도 지속성과 지향성을 유지하는 경계를 지닌 정보이며 에너지입니다. 부단히 변한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이 내부에 도사린 무엇이 아니라는 것과 외부의 반영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저자는 마음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마음에 대한 무딤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지점이 바로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진부한 관념입니다. 플라시보 효과야말로 마음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데 안타깝게도 저자는 여기를 드문드문 보고 지나가버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저자가 감정의 문제를 돋을새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서 보면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도 당장의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관건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심리적/정신적 장애는 감정 문제가 핵심입니다. 주류 심리학이 이성·의지 일변도의 기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감정 에너지의 왜곡이 뇌에 각인시킨 병적 정보는 빈곤이나 불평등과 같은 사회정치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자 자신도 이성·의지 중심의 서구적 사유전통 안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0. 감정연대로 정치적 치료를 실현하다


비대칭의 대칭구조로 된 세계 진실 속의 마음, 그 마음속의 감정이 지닌 진실에 무딜 수밖에 없는 저자의 한계는 오히려 우리에게 육중한 도움을 줍니다. 그 무딤이 없었다면 이 책은 덜 신랄했을 것이니 우리가 우리 현실 문제에 대한 통찰의 감각을 벼리는 데 임팩트도 덜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현안 문제를 신랄하게 묻고 신랄하게 답하는 계기를 새삼 정색하고 마련해야 합니다. 영미의 사실상 신식민지인 우리나라도 저자가 비판한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정신의학, 심리학, 상담학 이론 실천 모두가 영미의 것을 흉내 내기에 급급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극단화하고 교조화합니다. 세계체제의 외곽에 처한 우리 현실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지배층의 매판적 정체성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어 민중의 일대 각성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회 각 분야가 강박적으로 정치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정치권력이 사회 모든 영역을 사적 이익구조로 바꾸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월호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실을 은폐하여 대다수 국민이 잘못 알고 있으나 이 사건은 분명히 정치권력의 핵심이 개입된 사건입니다. 여기서 생겨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상처는 의당 정치적으로 치료되어야 합니다. 정치적인 치료가 실현되려면 마음 아픈 사람들의 감정연대가 필수적입니다. 저자의 어법을 빌어 맺음말로 삼고자 합니다.


“함께 흘리는 눈물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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