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5년 5월
평점 :
·······우울증 환자는 상실과 결여를 혼동한다. 욕망의 대상 원인[대상a, 결코 얻을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의 주된 특징은, 늘 이미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결여 자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는 대상의 결여를 대상의 상실로 여긴다.·······욕망을 폐기한 듯 보이는 우울증 환자는 한편으로는 바로 이런 ‘포기’ 상태에서·······특정한 형태의 욕망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형태의 주이상스도 찾는다.(70쪽)
장정일은 <시사인>의 독서일기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정녕 웃기고 슬픈 것은, 일반인을 위한 강의에서는 온갖 무례한 언사로 ‘당신들은 왜 그렇게 사는 거냐? 왜 그렇게 못났느냐?’라고 닦달하며 무안까지 주는 인문학 스타들이 최고 경영자 앞에서는 안 그런다는 것이다.”
그의 심경으로 위 인용문을 읽으면 우울증을 앓는 일반인에게 ‘당신들은 왜 그렇게 사는 거냐? 왜 그렇게 못났느냐?’라고 닦달하며 무안까지 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미상불 그 인문학 스타들과 라캉 (또는 살레츨)은 근본 지점에서 동일한 태도를 지니고 있을 터이니 그다지 과민한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욕망을 폐기한 듯 보이”지만 “바로 이런 ‘포기’ 상태에서·······특정한 형태의 욕망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형태의 주이상스도 찾는”데 이 반전의 비밀이 “상실과 결여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혼동”은 중립적인 어감을 주지만 “우울증 환자는 대상의 결여를 대상의 상실로 여긴다.”는 표현은 인지된 의도임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고의로 잘못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잘못의 핵심은 “상실과 결여를 혼동”한 것입니다. 본디 결여는 “늘 이미” 없는 것이고 상실은 있다가 없어진, 그러니까 잃어버린 것이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함은 분명합니다. 일단, 이런 개념적·이치적 혼동 자체의 잘못을 전제하고 구체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있지 않았던 것을 있었다고, 다시 그것을 잃었다(그것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착오가 아닙니다. 능동적 구성입니다. 날조한 내러티브입니다. 이런 적극적 협잡으로 욕망의 폐기를 연출해내고 그 쇼를 통해 특정한 욕망을 추구하며 특정한 주이상스를 추구하는 과정과 결과가 우울증이라면 우울증이야말로 참람하고 참담한 음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필 왜 우울증 환자가 참람함으로 무장하고 참담한 자기 파괴적 음모를 꾸미는가, 그 곡절을 말하지 않은 채 저자는 우울증 환자 닦아세우는 또 다른 말을 각주에 달아 놓았습니다.
30 흔히 우울증 환자는 한탄하면서, 떠나간 타인을 비난한다. “우울증 환자가 ‘나는 엉망이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엉망이야’로 이해해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말까지 듣는다. ‘왜 내 눈앞에서 죽은 거야?” Roberto Harai, Lacan's Seminar on 'Anxiety': An Introduction(New York: The Other Press, 2001).(69쪽)
있지 않았던 것을 있었다고, 다시 그것을 잃었다(그것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울증 환자의 “혼동”이라면서 “떠나간 타인”을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결여가 아니고 상실입니다. 혼동은 우울증 환자 아닌 라캉 (또는 살레츨)이 하고 있습니다. 저작의 다른 부분에서 우울증에 관해 또 어떤 다른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 부분만 보면 라캉 (또는 살레츨)의 주장은 난해하지 않습니다. 난잡합니다.
상실과 결여 문제를 재검토하겠습니다. 결여란 말은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뜻입니다. 상실은 있다가 없어진 것입니다. 필요의 당위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상실과 결여의 혼동이 우울증의 본질이거나 핵심 문제라는 지적은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차이는 상실과 결여에서가 아니라 상실과 부재, 또는 무無에서 나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결여는 “늘 이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이미” 없는 것은 부재, 또는 무無입니다. “늘 이미” 없는 것으로서 부재, 또는 무無는 당위적 필요의 영토가 아닙니다. 의미의 영토도 아닙니다. 필요와 의미 너머 있는 진실, 그것이 바로 부재, 또는 무無입니다. 우울증은 외상trauma적 상실의 경험을 통해 부재, 또는 무無를 격정 상태로 느끼는 것입니다. 우울증의 치유 또는 해방은 본디 부재, 또는 무無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울증 환자는 이렇듯 진실을 병으로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떠나간 타인을 비난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자가 아닙니다. 상실과 결여를 혼동하여 특정한 형태의 욕망과 주이상스를 찾는 자가 아닙니다.
우울을 모르는 자가 우울을 닦아세우는 짓은 인문학 스타라는 자가 보통사람을 닦달하며 무안까지 주는 짓보다 더욱 가소롭습니다. 닦아세우면 된다고 뻐기니 말입니다.